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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날씨가 매섭다. 찬 공기 때문인지 미세먼지가 없는 날엔 일출이 멋드러진다. 잠깐 하늘을 쳐다보다 개밥을 챙겨주고, 개똥을 치우려했다. 


하지만 흠칫!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털복숭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살펴보니 꼼짝을 않는다. 죽은척 하는건가? 계속해서 요지부동인 것이 아무래도 죽은 듯하다. 자세히 보니 너구리처럼 보인다. 


요 몇일 전 백구가 집 옆 복숭아밭을 쳐다보며 '컹컹' 짖어댔다. 뭐가 있나 살펴봤지만 눈에 뜨이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슬금슬금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너구리였다. 설마 지금 눈앞에 죽은 너구리가 그때 봤던 너구리일까. 그런데 왜 여기서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지?


딸내미에게 너구리가 죽어있다고 하니 잠이 덜 깬 눈을 한 채 쏜살같이 달려온다. 어라? 무섭다거나 징그럽다며 도망칠 줄 알았더니.... 반대로 너구리가 궁금하다며 다가갔다. 웅크러져 있는 너구리를 뒤집어달랜다. 얼굴과 배 쪽도 보고싶단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죽은 너구리를 살펴보다 왜 너구리가 이곳에 죽어있는지 의문이 갔다. 딸내미 또한 이렇게 저렇게 추측을 해본다. 



어디에선가 독극물을 먹고 나서 죽었을까. 딸내미가 입에 거품자국이 없다며 아닐 것 같단다. 그렇다고 하필 여기서 얼어죽었을리는 없고...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작은 개가 너구리를 물어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초코라고 부르는 이놈은 올 여름엔 뱀을 물어뜯어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구리가 죽은 위치는 초코가 묶여 있는 곳에서는 닿지 않는 거리다. 혹시나 초코에게 물린 후 경사진 곳으로 굴러떨어졌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면 너구리는 묶여있는 개조차 피하지 못할 정도로 무뎠다는 것인데... 


알쏭달쏭 미스터리다. 게다가 죽은 너구리를 보고도 신기해하는 딸내미도 미스터리?^^ 하기야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 박제 박물관도 좋아했으니, 겁낼 이유는 없어보인다. 어쨋든 비명횡사한 너구리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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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학교인데요, 오늘 따님이 도자기 수업에 참석 안했네요. 지금이라도 보내시면 됩니다."

갑작스러운 전화였다. 분명 30분 전에 딸내미와 연락해서 수업에 참석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로 간거지....

딸내미에게 전화를 해도 신호는 가지만 받지를 않는다. 한 번, 두 번... 왜 전화를 안 받는거니? 점점 짜증이 일기 시작한다. 

이 시간에 가 있을만한 곳을 수소문했다.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하고, 친구 어머니에게 전화해보고, 이곳저곳 연락해봤지만 본 사람이 없다. 짜증이 걱정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조마조마하다. 

다시 딸내미에게 전화를 하지만 좀처럼 받지를 않는다. 일 초, 일 초가 지옥처럼 변해가고 있다. 

안되겠다 싶어 학교로 갈 채비를 차렸다. 그리고 막 학교로 움직이려는 순간, 다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네, 아버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실수를 했네요. 같은 이름이 있어서 잘못 알았네요. 지금 수업 잘 받고 있습니다."

아~, 안도의 한숨이 밀려왔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선생님에 대한 화는 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안심이 되면서 다리에 힘이 풀릴듯 축 쳐진다.


수업이 끝나고 딸내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냥 꼭 안았다. 딸내미야 어리둥절... 그 시간에 재미있게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단다. 아빠는 속이 타 들어가고 있었는데. ㅜㅜ; 


아~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한 알게되었다. 짜증과 분노, 불안과 걱정, 안도를 오가는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지나고 보니, 평정심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경전 속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감정의 요동으로 치닫는지를 경험했으니 말이다. 십년은 늙어버린듯한 기분이다. 과연 우리는 고요한 마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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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4년생인 딸내미의 마음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하루는 "사람들이 돼지, 닭, 소는 고기로 먹으면서 개와 고양이는 고기로 안 먹는게 이상해"라고 하길래 종교, 문화, 가축과 반려견에 대한 인식의 차이 등등으로 각 국가나 민족마다 먹는 동물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한참 말을 듣고 있던 딸내미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왜 아빠는 내 말에 호응을 안해줘. 아빠는 항상 반박만 하잖아"라는 것이 아닌가. 

???

"아니, 아빠가 네 의견에 반박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이야기해준 것이야. 고기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서로 다른 모습을 말해준 것이지, 반박하려고 한 것이 아니란다."

그래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든다. 

"아빠는 항상 네 편이야. 아빠가 말해 준 것은 반박이 아니야. 그저 설명한 것 뿐이지. 아빠는 항상 네 편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아빠는 항상 네 편이란다."

하며 꼬~옥 안아주니, 그제서야 조금씩 진정한다. 


다음날, 딸내미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듯 상쾌하다. 최근 재미를 붙인 자전거를 타고 싶단다. 바람빠진 내 자전거의 바퀴에 공기를 집어넣고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마침 집 주위 둑방길이 차도 거의 다니지 않고 널찍해서 자전거 타기에는 안성맞춤. 바람이 조금 차가웠지만 함께 자전거를 탔다. 



십 년 넘게 안 타 본데다, 동생에게 얻은 자전거를 개시한 것이라 흔들흔들 조금은 불안하다. 그래도 옆으로 천이 흐르고 멀리 산이 보이고, 백로가 날고,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이 예쁘게 다가온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조잘 해대며 딸내미와 함께 자전거를 타니 마음이 가볍다. 아직 자전거 초보인 딸내미의 속도를 맞춰 페달을 밟는 것이 힘이 들지만, 오랜만에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게다가 딸내미와의 의미없는 잡담이 왜 이리 즐거운지 ^^ 종종 딸내미와 함께 자전거를 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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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급식에서 블루베리 나왔다. 대개 달았어~"

"오, 그래!"

"근데 아빠, 블루베리가 물렁물렁했어. 왜 그래?"

"아마 딴지 오래됐거나, 너무 익어서 그럴거야"

"그래, 그럼 역시 아빠 블루베리가 최고야!"


딸내미의 이 한 마디가 웬지 모를 힘을 준다. 아빠를 응원해주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이라면, 그 정도 배려심을 갖춘 아이가 되었다는 것에 기쁘고, 자연스레 나온 말이라면 그 또한 위로가 된다. 


아하! 아이의 칭찬이 어른을 춤추게 할 수도 있구나. 난, 어땠나? 부모님한테. 그래도 가끔은 "엄마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지않았을까. 


그래, 부모님에게 칭찬의 말을 툭 던져보자.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기에. 부모님께, 또는 어르신께 아낌없이 칭찬의 말을 건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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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면서 가장 허기를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문화다. 영화를 보려면 인근 도시로 향해야 하고, 뮤지컬이나 콘서트 구경을 위해선 대전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로 가야한다. 하물며 제대로 된 연극을 본다는 것은 먼저 마음을 먹는 일부터가 쉽지가 않다. 다행히 교통이 편해지면서 도시와 대도시로의 접근이 쉬워 결심만 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런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보면 시골에서 자체적으로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고, 도시로 떠나야만 하는 이 상황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삶터가 문화의 터가 되지 못하고, 항상 도시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누려야만 한다는 것은, 결국 시골의 삶이 도시로 빨려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소비만 하는 것은 결국 소외된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작은극장 메인무대

 

■ 국립극단이 시골을 찾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생산할 수준의 인구구성조차 점차 어려워지는 환경에 처한 시골에 국립극단이 찾아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10월 한달간 용인과 음성, 양양 3군데의 초등,중학교를 찾아 2019 우리동네 작은극장이 열렸다. 운좋게도 전교생 56명의 음성 소이초등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덕에 딸내미와 함께 작은극장을 찾았다. 요란스러운 홍보가 없던 탓인지, 매달 음성지역에서 열리는 '놀장'이라는 행사와 더불어 진행됐음에도 100여 명 안팎의 사람들만 모였다. 정말 작은 극장에서 조촐하게 모여 친밀하게 연극을 관람했다.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진행된 이번 행사 덕에 밤하늘의 별도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동네 작은극장 밤풍경

 

자살광대(위)와 말로의 작업실

 

■ 상상력이 돋보이는 1인극

이번 연극은 대부분 1인극이다. 하지만 1인극이라고 해서 극이 단조롭진 않다. 빛과 그림자, 가야금, 사다리 등 소품과 도구를 활용한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튀어나오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을 정도의 30~50분 정도 길이의 연극이 7개, 1:1 인형극 2개, 콘서트<우주 도깨비> 등으로 구성됐다. 2~4세 대상의 영유아극 <꿈은 나의 현실>, 4세 이상의 <씨앗 이야기><무용극 보따리>, 12세 이상의 <구름공장>, <자살광대>, 14세 이상의 <소녀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등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 그래도 꽤나 만족스러운 운영으로 느껴진다.

 

씨앗이야기 무대

 

무용극 보따리

 

우주 도깨비 콘서트

 

■ 유쾌한 웃음과 진지한 성찰

딸내미와 함께 본 연극은 총 3편. <구름공장><자살광대><씨앗이야기>. <구름공장>은 죽기 전 마지막 숨을 담아 구름을 만드는 공장이야기다. 그림자판을 만들어 손전등으로 비쳐 배경이나 표정을 담아낸다. 다소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인지라 아이들에겐 어렵게 느껴질듯싶다. <자살광대>는 사다리를 빌라로 사물화시켜 반지하에 살고 있는 주인공 광대가 매일 자살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하지만 날마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죽음을 뒤로 미룬다. 딸내미는 이 연극이 가장 재밌다고 한다. 무려 자살시도가 8천번이 넘는다면서 ^^. <씨앗이야기>는 가야금을 기반으로 줄타는 처녀와 구멍가게 총각의 사랑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관객추천지수 1위답게 시종일관 유쾌하다. 관객과 호흡을 맞춰가며 진행되는데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면 더 즐거운 연극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연출하고, 출연하는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는 1인극의 묘미가 가득 담긴 우리 동네 작은 극장이 전국 곳곳에서 매주 열린다면 참 좋겠다. 국립극단뿐만 아니라 정말 우리동네 작은 극단이 펼치는 작은 극장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런 작은 극장을 찾아 전국투어를 한 번 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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