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아메리카기 - 지구를 살리고 나를 지키는 탈문명, 탈소비, 탈경쟁의 여정
마사키 다카시 지음, 김동준 옮김 / 정신세계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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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디지털 장바구니에 클릭하여 물건을 담는 순간, 행복감은 궁극에 달한다. 실제 구매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그 물건이 집에 도착해서 사용되어질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지어진다. 소위 '지름신'이 강림하면 이 장바구니 속 물건이 실제 꼭 필요한 것인지 조차 따져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행복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짧게는 장바구니 속에 담는 찰나의 순간을 지나면서부터, 길게는 실제 집에 물건이 도착해 언박싱을 하는 순간이 지나면 행복감의 정도는 급속히 떨어진다. 그래서 다시 손가락은 장바구니에 담을 물건은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소비하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더불어 이런 행복의 추구가 지속가능할까. 지구는 80억이 넘는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만큼 넉넉할까. 만약 이 행복이 마치 중독마냥 자신의 몸을 죽여가는 쾌감이라면 어떡해야 하나. 


이책 <출아메리카기>는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비문명>이라는 책을 쓴 마사키 다카시가 자신이 인도에서 영성을 얻게 된 과정과 함께 자급자족적인 삶을 이행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까지를 담고 있다. 


그는 인간이란 동물성과 인간성, 신성을 함께 지닌 존재로 보고, 신성의 획득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인간의 만족이란 욕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과 욕망 자체를 줄이는 것이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는 욕망과 소유에 집착하며, 이 욕망의 크기를 계속 확장시킨다는 측면에서 탈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풍족한 문명은 오히려 인간에게 무능과 무기력함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일안으로서 그는 월급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그리고 실제 이를 위해 자급자족을 꿈꾸며 시골로 향해 차밭을 가꾸고 나무를 심으며 숲을 일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와 같은 소비주의적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면, 말뿐이 아닌 실제 삶으로 그 대안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마사키 다카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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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된다는 것 -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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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내가 된다는 것>을 읽고 나서 기억나는 것은 딱 하나다. 요즘 인공지능 AI의 급격한 발달로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많다. 특히 <특이점>을 언급하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면,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점이 힘을 얻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 책 <내가 된다는 것>은 그런 특이점으로 인해 인간 사회가 위협을 받을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고, 게다가 그 시기도 먼 미래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개인적으로 책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보니 확신하기가 힘들다) 

저자인 아닐 세스는 지능과 의식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지능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해서 꼭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의식과 지능은 별개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의지라는 것도 의식이 전제가 되어야 하기에,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떤 (순수한?) 목표를 위해 인간을 위협할 일 또한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의식이란 지능보다는 오히려 감정 쪽에 가까워 보인다. 생명체란 생존을 위한 기계이며, 따라서 몸뚱아리의 보존을 위해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전달 받은 것을 취합하여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고 생존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의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휴~ 이 책을 읽고서 나름 정리해 본 생각이지만, 제대로 읽었는지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아무튼 의식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의지란 정말 가능한 것일까? 까지 묻는다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을 읽으며 얼핏 의식과 의지란 무엇일지 살짝 접근한 듯 여겨지다가도 도통 안개 속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또다른 지식과 지혜를 쌓은 후 다시 읽어보아야 할 책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단 한 번의 독서로 이 책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손에 쥐고 읽을 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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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시청하다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일인 다니엘이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앞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반성과 치유의 상징으로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조성된 공간이다. 직접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느끼게 되는 공포감, 고립감, 불안감 등등을 통해 학살당한 유대인에 대한 공감과 위로, 반성과 치유를 체감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 말은 우리가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요즘 독일 젊은이들은 왜 자신들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하느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자신들은 전혀 이 학살과 관련이 없는데" 대략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사건이 세대를 거쳐가면서 그 기억을 갇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갈 때, 그 사건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그리고 전달받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과거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런 사건들을 잊히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추모 공간일 것이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또한 이런 측면에서 조성된 공간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어질 뿐, 자신의 할아버지조차 겪어보지 못한 일로 젊은이들이 죄책감을 가져야 할 것인지는 충분히 가져볼 수 있는 의문일 수도 있겠다.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바로 이 부분을 다룬다. <진격의 거인>은 과거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탄압과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복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되풀이 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 복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다니엘이 말한 것처럼, 과거 역사 속의 탄압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이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탄압과 전쟁과 무관했던 일반인과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우리가 분노의 화살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가해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국가와 정부의 사과와 과거의 일이 잊혀지지 않도록 추모하는 일은 마땅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책무가 역사 속에 휩쓸려 갔던 일반인들의 후손에게까지 강요되어질 수 있을까. 


우리가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무리 과거와 무관한 젊은이들이라도 역사를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역사를 잊게 만들지 않는 작업은 국가와 정부의 몫일 것이다. 다만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 역사를 기억하되, 죄책감 대신 평화를 향한 도전의식이 싹트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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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시리즈 15부작. 25년 9월 12일 오픈. 김고은, 박지현 주연. 절친과의 절교. 그리고 죽음에의 동행을 통한 우정의 완성. 죽음에 이르는 새로운 길. 존엄사를 생각해보다. 


2. 은중과 상연은 초중고 시절 베프다. 가난했지만 따듯한 심성으로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은중. 집도 부자고 똑똑한데다 못하는 것이 없지만 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상연. 둘은 같은 반이던 학창 시절, 자습 시간에 떠든다는 이유로 선생님 대신 상연이 매를 들고 은중의 손바닥을 내리치는 사건을 맞는다. 친구를 때렸다고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은 상연이 은중에게 피리를 주고 앙갚음 하라고 하지만, 은중은 이게 회초리보다 더 아프다며 복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이 사건이 <은중과 상연>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은중의 상연에 대한 동경, 상연의 은중에 대한 질투는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될 때까지 이 둘의 관계를 뒤흔든다. 동경과 질투가 어떻게 다른지를 은중과 상연을 통해 배우게 된다. 


3. 은중과 상연을 맡은 아역배우는 물론 성인 배우인 김고은, 박지현 까지 모두 완벽에 가까운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가 결국 남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에 빠져 있는 동안은 남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스며든다. 그런데 <은중과 상연>은 '그래,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수시로 자각을 하면서도, 두 주인공의 마음을 한시도 빠지지 않고 헤아리게 만든다. 극의 초반부인 1부에서 5,6부까지는 은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중반부에서는 오히려 상연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하지만 시리즈의 후반부로 가면 다시 은중의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든다. 이렇듯 두 주인공의 마음을 왔가갔다 하면서 시리즈의 종반부 울음을 터뜨릴 준비를 마친다. 


# 스포일러가 아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음

4. 상연은 말기암으로 수명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는 존엄사를 택하고, 스위스로 떠날 결심을 한다. 절교했던 은중을 찾아 함께 떠나줄 것을 부탁한다. 은중은 처음엔 거부했지만, 상연과의 추억을 더듬다 결국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마지막 2회는 존엄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5. 따지고 보면 결국 작가는 존엄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연의 입을 통해, 그리고 시리즈를 통해 죽음의 두 가지 기존 방식을 보여준다. 상연의 오빠와 상연의 어머니가 죽었던 극과 극의 방식. 하지만 상연은 이제 존엄사라는 새로운 방식의 죽음이 있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새로운 죽음의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만큼의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6. <은중과 상연>은 두 주인공의 삶의 과정을 큰 과장 없이 잔잔하게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삶의 나열과 함께 둘이 좋아했던 한 남자라는 상투적 삼각관계 등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상연의 오빠의 죽음이 왜 발생했는지를 추적한다거나, 상연의 첫사랑이 누구였는지를 밝혀가는 추리적 과정이 삽입되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점도 좋다.   


7. <은중과 상연>을 통해 우리가 마주친 함께 먹는 따듯한 밥 한 끼, 언제든 안길 수 있는 가슴 깊은 포옹이 우리가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게 만드는 따스함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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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범죄도시> 2,3,4편은 연속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트리플 천만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범죄도시>는 마동석이 제작과 기획을 맡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기획력이 이후 계속될지 관심사다. 

그 와중에 영화가 아닌 TV로 복귀해 주연 및 각본, 제작에 뛰어든 드라마가 있다. 바로 <트웰브>다. 동양의 12지신을 모티브로 해서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인간 세상에서 인간처럼 살아가는 12지신이 악마와 싸운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시청률은 처참하다. 그래도 괜찮겠지 하며 4회까지 지켜보다 5,6회는 설렁설렁 보게 됐다. 이제 고작 2회를 남겨뒀지만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생각은 나지 않는다. 

너무나 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캐릭터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마저도 식상하다. 게다가 가장 기대가 됐던 액션 장면은 돈을 들이지 않겠다는 티를 팍팍 내는 듯하다. 마동석의 주먹은 더 이상 통쾌함을 주지 못하고, 12지신의 액션은 드라마를 찍고 있다기 보다는 액션스쿨에서 합을 맞추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어설프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사마귀:살인자의 외출>은 2017년 프랑스 드라마 <사마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잘 짜여진 원작에 변영주 감독과 고현정 주연은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2회를 보고 나서 이 드라마를 계속 보아야 할 지 갈등이 생긴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증을 증폭해야 하는데, 이야기의 전개와는 상관없이 배우들의 연기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 같아 집중이 힘들다. 배우 각자는 열연과 호연을 펼치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이들의 연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각자 연기를 따로 하는 것처럼 느껴져 몰입이 어렵다. 그냥 원작이나 찾아볼까 하는 마음이 크다. 드라마의 요소로서 이야기 이외에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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