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의 AI 강의 - 챗GPT의 실체부터 AI의 진화와 미래까지 인간의 뇌를 초월하는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
박태웅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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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발표된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에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사실 이 주장을 체감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실감하는 것은 어렵다. 아니, 솔직히 말해 미디어가 콘텐츠보다도 더 중요하게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엔 역량부족이었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K콘텐츠의 영향력에 대한 '국뽕'에 가까운 환호와 열광은 쉽게 접하지만, 그것이 가능케 한 넷플릭스라는 미디어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체로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스마트폰을 접하면서 왜 미디어가 메시지인지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할 수 있는 플랫폼의 등장은 전적으로 스마트폰 덕분이다. 이제 우리의 삶 대부분은 플랫폼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즉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의 등장이 우리 삶의 양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AI가 등장했다. 챗GPT로 시작된 인공지능에 대한 열광은 가히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과연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는 것 만도 벅찰 지경이다. 박태웅의 AI강의라는 책은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고, 또 발전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 삶에 어떤 선한 영향과 부작용을 가져올 것인지를 개괄한다. AI라는 미디어가 가져올 메시지를 탐색케 하는 책인 것이다. 만약 AI가 가져올 메시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 번 훑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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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로 본 <삼체>는 그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의 류츠신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로 3개의 시즌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시즌1 8부작이 공개되어 있는 상태다. 개인적으로는 웹툰으로 먼저 <삼체>를 보았는데, 소설과 웹툰, 드라마의 각본상 차이를 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를 줄 듯하다. 



류츠신이 중국을 대표하는 SF 소설가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종의 기원담] 등으로 한국 SF소설로는 최초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 김보영 작가를 개인적으로 손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종의 기원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소설을 접한 입장에서는 인류와 로봇의 순환론적 기원- 인류가 로봇의 기원이 되었다가, 로봇이 인류의 기원이 되는?-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가까운 미래, 인간의 입장에서 암울한 미래를 그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AI가 고도로 발달이 되면서 인공지능로봇의 발달-진화-이 이루어지고, 한편으로는 기후위기를 자초한 인간이 결국 인간 거주가 가능한 환경의 임계치를 넘겨버림으로써 인간의 생존이 거의 불가능해져버린 지구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멸종 상태이지만, 로봇은 생명이 거주하기 힘들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아 스스로 계속 진화해가는 세상 속에서, 로봇이 자신들의 기원과 발전을 어떻게 그려내는지를 담은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거주할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들고, 또한 이 소설이 내비치고 있는 인간과 로봇의 공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탁월한 소설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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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촘촘히 짜여진 이야기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던 드라마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의 특기가 살아날지 궁금해지는 10부작 드라마. 배양육을 생산하는 생명공학기업 BF의 대표 윤자유(한효주)와 그의 경호원으로 접근하게 된 퇴역장교 우채운(주지훈)이 대통령 테러 사건을 비롯해 윤자유의 목숨을 노리는 일련의 사건, 또 윤자유 주위 인물들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2. <비밀의 숲>2에서는 검경수사권을 둘러싼 양방의 논리가 이야기의 양념이 되었다면, <지배종>에서는 생명공학기술을 둘러싼 혜택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양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양념은 10부작 중 7~8부에서야 드디어 드러난다. 다소 양념이 늦게 처지는 바람에 초반의 밍숭맹숭한 맛을 잘 견뎌내야 본 맛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배양육은 애피타이저 였을뿐, 본 요리는 배양장기라는 생명공학기술이었고,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룰 지가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양념이었던 것이다. 


3.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라는 짧은 대사가 명연기에 입혀져 강렬한 이미지를 뿜어냈다. <지배종>에서는 한효주가 생명공학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보여준다. [모두가 혜택을 본다면 진화, 혼자서 차지한다면 변이]라는 것이다. 변이를 통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말 자체는 어찌보면 모순적이라 보여지지만, 맥락으로 이해한다면 정말 기억에 남는 대사라 할 만하다.

물론 생명 연장에 대한 공학기술을 다루는 SF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기술의 혜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빈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제는 자주 다루는 내용이긴 하다. <지배종>의 윤자유는 BF가 내놓는 생명공학기술이 빈부의 차이 없이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연구자이자 사업가로서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생명공학기술이 아니라, 모든 이가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몽상가'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기술을 돈벌이 또는 권력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세력과는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4. <지배종>에 나오는 BF는 배양육 뿐만 아니라 배양식량, 배양생선, 배양식물 등 모든 1차 생산물을 2차 산업으로 전환시키는 일대 혁신을 일으키는 기업이다. 당연히 이로 인해 1차 생산에 종사하는 농부, 어부 등은 생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지금도 배양육을 바라보는 시선은 환경오염을 줄이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생산과 도축 과정의 비도덕적  또는 비건강적 조건을 없앤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산업의 전환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풀어가야 하는지는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 앞에 닥친 AI도 이런 문제를 품고 있다. 


5. 드라마 <지배종>에서는 이런 갈등을 1차 생산자의 시위와 자살, 또는 무력봉기로 간략히 비쳐준다. 윤자유의 대척점에 있는 국무총리(이희준)는 이 갈등을 자신이 생명공학기술을 독점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생명연장의 기술이 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그리고 이 기술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앞으로 닥칠 명약관화한 문제다. 에너지 혁명으로 산업화, 기계화가 되어지면서 우리에게 닥쳤던 문제가 새로운 옷을 입고 또다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배종>은 테러와 살인을 일으키는 범인의 윤곽이 잡혀가는 재미와 함께 기술이 가져올 갈등에 대한 예고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꽤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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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24년 1월 26일 출시

액션 / 107분

감독 허명행 / 출연 마동석, 이희준, 노정의, 안지혜, 장영남


대지진으로 문명사회가 멸망한 미래 어느 시기. 지구는 물과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이 되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 남산(마동석)은 사냥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남산이 식인집단으로부터 구해낸 수나(노정의)에게 선생님(장영남)이라고 불리우는 사람과 일행이 찾아온다. 이들은 수나를 깨끗한 물과 식량이 풍부한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제안을 한다. 이곳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로(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 양기수(이희준)라는 박사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약물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양기수는 인류의 존속보다는 죽음 앞에 처한 자신의 딸을 살려내려는 목표로 딸 또래의 아이들을 실험체로 사용해 왔다. 남산은 선생님 일행의 수상한 행동에 의심을 품고, 수나를 구하기 위해 아파트를 찾아간다. 


<황야>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마동석의 액션에 있다 할 것이다. 아파트에 거주하며 정체불명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세력들을 처참하게 짓밟는 과정에서 엔도르핀이 치솟고, 정의감이 불타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다. 이번 마동석 액션은 영화 <범죄도시>류와는 달리 주먹 뿐만 아니라 총과 칼도 등장한다. 물론 무기를 사용하긴 하지만 일격필살의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한 방에 끝내버리기! 마동석의 액션이 호쾌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특수부대 소속 중사 이은호(안지혜)의 아기자기한 액션이 더해지면서 일률적인 액션 장면에서 벗어나는 재미도 준다. 


한편으론 항간에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닮은 듯 다른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실제 <황야>를 보고 나니,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폐허가 된 지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라는 설정만 똑같을 뿐, 그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관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패거리, 소유, 계급으로 인한 갈등과 인간성이 주 모티브라면, <황야>는 급속하게 변한 지구의 환경에 맞추어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적응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즉 급격한 변화에 맞춘 우리 인류의 신체적 적응을 위해 진화라는 긴 시간은 생존의 가능성이 낮으니, 유전자 조작을 통해 속도를 맞추는 것이 나쁜 것이냐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냥 식량작물의 진화를 기다리기 보다 우리 필요에 맞추어 유전자 조작, 즉 GMO 작물을 생산, 소비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으로 확대되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동석의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흔쾌히 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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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라워 킬링 문> 원제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릴리 글래드스톤, 로버트 드니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드라마 / 206분 

개봉 2023년 10월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 지역의 인디언 부족 오세이지족이 거주하고 있는 땅에서 석유가 나오면서 이들은 갑자기 부자가 되고, 오세이지족의 돈을 노리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백인 남성 어니스트와 오세이지족 여성 몰리의 사랑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영화.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어니스트는 돈을 벌기 위해 삼촌 헤일이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오클라호마의 인디언 거주 지역을 찾는다. 헤일은 어니스트에게 운전수 일자리를 주고, 어니스트는 운전을 하다 오세이지족의 여인 몰리를 단골로 맞게 된다. 헤일은 오세이지족이 오일머니로 돈이 많기에 이들과 결혼하는 것은 좋은 투자라고 말한다. 어니스트는 몰리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헤일의 권유에도 응해 몰리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헤일은 겉으로 오세이지족을 위하는 일을 하는 척 하며, 실제론 이들을 살해하면서 자신의 부를 채우고 있다. 어니스트의 부인 몰리 가족들도 차례로 죽여가면서 몰리의 유산을 차지하려고 한다. 몰리의 가족뿐만 아니라 오세이지족이 연쇄적으로 살인 당하고 있지만, 지역의 경찰과 법은 헤일의 편에 서 있고, 워싱턴에 이 사실을 알리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어니스트의 몰리에 대한 사랑과 재산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다소 방관자적 입장에 있게 되면서 겪게되는 갈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헤일의 야망을 과장되지 않게 보여준다. 또한 오일머니로 부자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인디언들의 모습과, 사람을 마치 투자 대상으로 여겨 함부로 대하는 백인들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외압에 저항하고자 하는 오세이지족은 나약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경악스러울 뿐이다. 


영화 속 헤일은 로버트 드니로가 맡고 있는데, 그가 이곳에서 왕처럼 군림하면서 원주민을 위하는 사업을 벌이는 척 하지만, 뒤로는 이들을 해치는 모습은 로버트 드니로가 영화 <대부>에서 연기했던 비토 콜레오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물론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론 로버트 드니로의 이미지로 인한 자연스러운 연상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투자(이익)의 대상으로 여기는 모습은 1920년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얼필 얼핏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되어 슬프고 안타깝다. 장장 3시간 가까운 긴 영화임에도, 또한 한 컷 한 컷의 길이가 꽤 김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 생각된다.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어니스트의 모습과 이런 그를 사랑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몰리의 심정. 그리고 인디언을 죽여가며 돈을 챙기는 백인과 이들에게 맞서려 하지만 힘을 쓰지 못하는 인디언 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궁금하다면 이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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