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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 이것이 진짜 혁명이다
[기고] "복지정책으로 농민문제를 푼다고?"
평소 존경하는 사람이 얘기를 할 때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되는데 글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도 기억한다. 김성훈 선생님 얘기다. 참여정부 때 농수산부 장관을 지냈지만, 훨씬 그전에 이 분과 만났고 몇 번 만나지 않아 좋아하게 되었다. 1993년쯤에 우리쌀지키기 운동본부 일을 하실 때 서울역 집회장에서 처음 만났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때는 중앙대학교 부총장인가 하는 자리에 계실 때다. 수수한 풍모가 시골 아저씨 같아서 편안한 분으로 특히 눈이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 같이 유순해서 더 그렇다. 유머와 비유도 최고 수준이다.

그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을 빨리 망하게 하는 세 가지 비법이 있다면서 농지 소유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첫째라고 했다. 농사를 짓건 안 짓건 아무나 농지를 사고팔 수 있게 하면 우리나라 농업은 금방 망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외국농산물을 마구 들어오게 하는 농산물시장 개방이었다. 

이 얘기를 한 때가 이명박 정부 초기였는데 당시 정부의 농정 기조가 바로이랬다. 정부의 어떤 관료는 농업이 망해도 복지정책으로 농민문제는 풀면 된다고 말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복지정책으로 농민문제를 푼다는 것은 농민 다수를 농사에서 노골적으로 퇴출하겠다는 것인데, 이때 먼저 퇴출당하는 농민이 바로 소농이다.

천덕꾸러기 취급되는 소농 

쌀 소득보전 직불금만 해도 그렇다. 매년 달라지는 지급대상자와 대상농지 기준은 오로지 지급대상을 줄이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급 금액도 계속 낮아진다. 한 마디로 농사짓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늙은 사람. 땅 적은 사람. 돈을 많이 동원할 수 없는 사람. 대형 농기계를 쓰지 않을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은 농사 그만 지으라는 것이 정부의 변함없는 농업정책이다. 

요즘은 농민 개인에게 지원되는 농자재와 농자금은 거의 끊겼다. 농업회사 법인이나 영농조합 법인으로 대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는 농업경영체등록이라는 것을 해야만 예취기 면세유라도 받지 안 그러면 아예 농사짓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오죽하면 정부 공식 호칭에서 농민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농업인 또는 농업경영인이라 부르겠는가. 

정부에서 하는 영농 관련 시책에 제안서를 내려 해도 마찬가지다. 가족 단위의 소규모 농사꾼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런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좀 더 심해졌을 뿐이고 참여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다. 아니, 대한민국이 생기고 나서 줄곧 그래 왔다. 그 덕분에 대한민국의 농토는 팍 줄어버렸다. 농민 수도 줄었다. 농가소득과 도시근로자 가구소득과의 격차도 계속 벌어졌다. 뭐 하나 나아지는 건 없고 농가부채만 늘었다. 재미있는 것은 농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왔는데도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는 농업구조개선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42조 원이나 농업에 투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향수를 가진 노무현 정부는 '6헥타아르(ha) 7만 농가 육성'이라는 기치를 내 걸고 119조 원을 농업농촌 종합대책으로 내놓았다. 억 단위가 아니고 조 단위다. 그 돈들이 다 어디로 가고 농민들은 부채가 늘었을까?

그 돈들은 대부분 기업들에게로 갔다. 특히 대기업들. 기계공업, 전자공업, 석유화학공업, 제약회사, 석유회사에 갔다. 제약회사로 농업지원금이 갔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 내막을 알면 기가 막힐 뿐이다. 농업정책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된 돈들은 거의 다 농민들은 이름만 빌려주는 꼴이 되고 돈은 기업들에게 가는 방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시골 촌놈 등쳐먹는 세상은 변하지 않고 있다.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겉으로는 농사짓는 사람도 자가용 굴리고 대형농기계로 힘든 농업노동을 대체하고 있어 번지르르 해 보이지만 그게 속 빈 강정과 같다. 대기업과 관료, 사기꾼들 배만 불리는 시스템은 더 교묘하게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농사판이 중공업화가 되어버려서 그렇다. 대형농기계, 시설농사, 비닐멀칭(비닐 바닥덮기), 석유화학제품으로 된 농자재, 석유에서 뽑아내는 비료와 농약 등등 농업의 공업화는 예를 들기에도 끝이 없다.

이 과정이 소농의 축출 과정이다. 농어촌의 지자체들이 연소득 1억 원 이상의 농가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가족노동력 중심의 소농은 안중에 없다. 농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11년에 1억 이상의 소득을 올린 농가가 1만 7천여 호에 이른다고 한다. 2억 원 이상 소득농가도 760호나 된다고 자랑이다.

이런 농업정책은 농업을 경쟁력 강화, 농사규모 확대, 기계화, 첨단 과학화 등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나온다. 소규모 가족농은 생산비는 높고 생산성은 낮다는 평가도 같은 논리에서 비롯된다. 농산물 수입을 전제하고서 시장개방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다. 그러니까 소농은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소농이 뭔지에 대한 얘기는 조금 뒤로 미루고 과연 경쟁력을 높이는 농업, 생산성이 높은 농업, 농사규모가 커지고 기계화가 더 진척되면 우리 농업의 미래가 밝을까?

물고기 유전자로 딸기를 키우다 

작년 봄, 농업관련 신문에는 놀라운 소식이 실렸다. 바다 밑 1000미터 아래 차가운 물속에 사는 물고기 유전자를 딸기에 이식해서 딸기가 냉해를 입지 않게 되었다는 보도였다. 겨울철 딸기 생산에 연료비가 절감된다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우리 농업의 현주소와 잘못된 먹을거리의 범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식이었다.

우리가 지엠오(GMO : 유전자 변형 농산물) 식품을 멀리하는 이유가 뭔가. 유전자가 변형된 식품을 먹는다는 건 나중에 어떤 변이를 일으킬지 모르는 시한폭탄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육종과는 달리 지엠오는 다른 종류의 식물들을 교합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잡초와 콩, 옥수수와 바이러스 등을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교합시킨 것이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비티옥수수는 '바실루스 투링기엔시스'라는 토양박테리아를 옥수수 속에 집어넣은 것인데 이 박테리아는 벌레를 죽이는 독성이 있다. 그래서 벌레들이 감히 옥수수에 달려들지 못하게 된다. 이런 옥수수를 사람이 먹으면 어떨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이 종자를 만들어 낸 초국적기업 '몬산토(monsanto)'의 주장이다. 과자나 양념, 간장 등으로 변신하여 지엠오 옥수수는 우리 밥상을 점령한 지 오래다. 사료로 만들어진 것은 축산물을 통해 우리 입으로 들어온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생물농축'에 있다. 
수은이나 카드뮴, 납 등의 중금속과 디디티, 비에이치시(BHC) 등의 농약, 합성수지 성분인 피시비(PCB)는 자연 속에서 분해되거나 배설되지 않고 생체에 쌓였다가 먹이 연쇄 사슬을 따라 상위 개체로 이동하는데 먹이사슬의 위쪽에 갈수록 농축 비율이 급격히 높아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다.

토양이 오염되면 풀이 오염되고 풀이 오염되면 초식동물이 오염되고 육식동물도 오염된다. 마지막에 육식하는 사람에 이르면 수천 배로 오염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오염물질은 분해되거나 배설되지 않기 때문이다. 4단계 먹이사슬을 거치는 동안 농축도가 1000배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농약류와 합성수지류는 뇌종양, 뇌출혈, 위장장애, 근육마비 등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이 경쟁력과 효율성, 시장경제를 우선시하는 농업의 일그러진 실태는 부지기수다.
종이 다른 식물과의 교합은 물론, 바이러스와 교합된 유전자 조작 옥수수도 회피하는 마당에 물고기의 유전자를 떼어다 딸기에다 집어넣었으니 그 딸기를 먹으면 우리 몸속에서 몇 년에 걸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력으로 8월 15일인 추석을 앞두고 벌어지는 기막힌 사과농장의 현실을 보자. 추석 전에 사과를 출하하기 위해 사과밭에 지베렐린(gibberellin)이라는 성장촉진제를 쓴다. 작년에는 농식품부 장관이 나서서 공공연하게 농가소득을 올린답시고 지베렐린을 살포하라고 촉구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베렐린이 무엇인가? 성장촉진제인데 벼의 키다리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지베렐라 푸지크로이(Gibberella fujikuroi)'라는 병원균을 배양해서 만든 농약인 것이다.

현대 농업에서는 온갖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식물의 성장을 조절하는 장치들을 만들어 쓴다. 씨 없는 포도도 앞서 얘기 한 지베렐린으로 만든다. 시클라멘이라는 개화촉진제로 꽃을 강제로 피우게 한다. 담배농사 할 때 겨드랑이 눈 억제제로 말레산히드라지드라는 약물을 쓰는데 이 약물은 두통, 현기증, 말초 신경염, 간 장애 등의 부작용이 있다. 

동물은 어떨까? 소와 돼지도 이시엑스(EC-X) 라는 발정제를 사용해서 억지로 새끼를 배게 한다. 발정제를 투약해서 발정을 하면 그때 수놈 정액을 주입해 인공수정을 하는 식이다. 그러니 이 동물들은 인간의 돈벌이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짝짓기 한번 못해보고 일생을 마친다. 인간의 야만이 다른 생명 종에까지 광범하게 행해지는 현실이다. 

농사에 쓰이는 화학물질 계열에서 카바릴 수화제라는 적과제를 빼놓을 수 없다.
적과제는 과수밭에서 열매를 솎아내는 약물이다. 손으로 꽃을 따 주어야 열매가 적당히 열려 굵어지는데 일일이 손으로 따 줄 수가 없다 보니 농약을 쳐서 이제 막 맺히기 시작한 열매를 죽여 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농법들이다. 돈벌이가 목적인 농업이다. 이런 농산물을 먹은 사람들 몸에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지, 내일 이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도 없고 알 바도 아닌 그런 농업이다. 

제 발등을 찧다 

요즘 같은 봄철에 나는 딸기를 마트에서 사보면 아이들 주먹만큼이나 크다. 붉기는 어찌나 붉은지 붉은색 잉크를 발라 놓은 것 같다. 볼레로, 엘란, 플라멩코 같은 비닐하우스에서 공장식으로 생산 한 개량종 딸기들이다. 

모든 종자개량의 목표는 동일하다. 크게, 달게, 균일하게, 생육기간을 짧게 하는 게 유일한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우량종자가 되는 것이다. 생산성과 경쟁력이 있는 농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요소는 부차적이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종자가 된다든가 물 비료를 계속 줘서 키워야 된다든가 하는 요소들은 비용개념으로만 취급된다. 비료도 일종의 성장촉진약물이다. 성장이 빨라야 생산기간이 단축되어 비용이 절감된다. 완전히 공장 논리다. 생명이라는 개념은 없다. 

덩치가 큰 데다 빨리 성장하다 보니 허약하다. 살충제와 살균제 농약을 먹고 자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농약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유착제도 뿌리고 색깔을 좋게 하기 위해 착색제도 뿌린다. 벌이만 좋다면 비용이 더 드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한다. 이런 화학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이 사람의 몸에 이로울 리 없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런 농법이 지속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이미 끝났다고 본다. 관변학자들마저도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농사법이라고 지적한다. 

우선, 땅이 다 망가진 점을 든다. 
대형 농기계를 사용하다 보니 땅이 굳어 버렸다. 이를 경반층이라고도 하고 비독층이라고도 한다. 트랙터의 삽날이 헤집고 들어가는 30Cm 정도 아래에는 십여 톤에 이르는 대형농기계가 계속 짓누르고 다니다 보니 바위보다 더 딱딱하게 다져져서 공기도 안 통하고 배수도 되지 않을뿐더러 뿌린 농약이나 비료가 그곳에 고여 있게 된다. 경반층과 비독층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품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가 없다.

땅이 죽으면 농사는 끝이다 

화학농법은 토양유기물을 남기지 않으며 토착미생물도 다 죽여 버려서 결국 땅을 죽게 만든다. 땅이 죽으면 농사는 끝이다. 유기물이란 미생물 활동에 의해 분해가 되는 것으로 분해가 되면 식물의 먹이인 무기질이 되는 원료이기도 하다. 각종 농사부산물인 콩 대궁, 옥수수 대, 깻 대, 콩깻묵, 어분, 비지, 부엽토, 미강 등에 톱밥, 왕겨, 가랑잎 등이 다 토양유기물이다. 이런 유기물이 풍부해야 땅을 기름지게 하는 토착미생물이 활동하기 좋다. 

이 부분에서 토착미생물의 역할과 기업형 화학농업과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착미생물이 작물에 주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미생물 얘기를 할 때는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관계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토끼풀이나 콩, 팥, 싸리나무 등이 다 콩과식물인데 이런 작물의 뿌리에 들어온 박테리아는 숙주식물의 영양분으로 살아가고 대신, 공기 중에 81%나 있는 질소를 끌어당겨서 뿌리가 먹기 좋은 유기질소로 바꾸어 식물에 제공한다. 

그런데 농기계를 들이대고 농약을 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죽는다. 
유기물이 많고 미생물이 잘살고 있어야 흙은 떼알 구조가 되어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되는데 정 반대쪽으로 가기만 하니 땅은 죽어 조금만 비가와도 토사가 지고 습해장애도 일으키고 가뭄을 탄다.

흙이 떼알 조직으로 되는 것은 습기를 보존하면서도 배수도 원활하게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흙을 말한다. 이런 흙은 통기성도 좋아 작물 뿌리에 산소를 잘 공급한다. 바로 유기물과 미생물이 흙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인데 현대 시장논리에 포박된 생산성 중심의 농업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다.

땅이 죽으니 죽은 땅을 부축해서라도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시설농사라는 비닐하우스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온실효과를 노리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었으나 이제는 자연 상태에서는 스스로 자랄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작물들을 모아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인위적인 조작과 조절을 통해 농산물 생산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농작물들이 마치 요즘 청소년들과 같다고 하면 좋은 비유가 되겠다. 칼로리 높은 음식만 먹고 운동량은 부족하니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끝까지 달리는 애들이 없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극성스런 부모가 다 챙겨주다 보니 스무 살이 넘어도 자립은커녕 제 손으로 밥상 하나 차릴 줄을 모른다. 허드레 잡일로 돈을 벌어 마트에서 사 먹을 줄만 안다. 

비닐하우스 덕분에 한겨울에 오이도 먹고 딸기도 먹고 채소도 먹는다. 그런데 새파란 겨울 채소를 절대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 채소와 과일과 견과류는 건강의 기본인데 채소를 먹지 말라니? 싱싱하다 못해 퍼런 상추가 겨울 식당에 삼겹살과 함께 오르기 일쑤다.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질소 과다 식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발암물질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색이 진하고 윤기가 나며 보기도 좋은 이런 엽채류들은 질소비료를 액상 상태로 줘서 키운 비닐하우스 출신이다. 이게 침과 섞이면 아질산염(NO2-질산태질소)으로 바뀌고 몸속에서는 메트헤모글로빈이라는 효소로 변하는데 이는 혈액의 산소 운반능력을 없애버린다. 그래서 산소결핍증이 생긴다. 채소를 먹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경쟁력 중심의 농업, 생산성 중심의 소득증대 농업이 저지른 자살골들이다.

회식 때 이런 질소성분 많은 채소와 삼겹살을 먹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채소류의 질소함량을 500피피엠 이상이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비닐하우스 겨울 채소들은 2,000-6,000피피엠을 웃돈다는 보고가 있다. 10,000피피엠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건 짐승도 못 먹는 폐기 대상이지만 버젓이 밥상에 오른다. 망가진 땅은 망가진 먹을거리를 만들 뿐이다. 

망가진 땅 다음으로 지적되는 것은 석유문명의 종말이다. 성인 한 사람이 200일 동안 해야 하는 농사일을 단 16시간으로 단축시킨 것이 석유다. 석유 한 숟갈이 성인 남자 1시간 노동량이라고 하니 보통 생활 수준의 현대 가정들이 평균적으로 노예 50명씩 거느리고 사는 것과 같다는 지적은 석유문명에 도취한 현대물질사회를 잘 드러낸다. 

학자들 간에 이견은 있으나 대략 석유 총 매장량은 2.2조 배럴이라고 한다. 퍼 쓸수록 매장량은 줄다가 끝내 사라진다. 한정되어 있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일일 생산 최대치를 석유정점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몇 년 전에 지났다는 게 정설이다. 석유문명의 종말과 함께 우리의 농업도 과거로 회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석유에 의존하는 지금의 농사가 결코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소농을 경건하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소농운동은 새로운 문명운동 

자연은 힘이 세다. 힘이 셀뿐 아니라 신비하다. 자연이 가진 복원력, 치유력, 회복력은 인간의 어떤 약물도 따라갈 수가 없다. 사람도 자연 상태에 보다 가까워지면 병도 없고 갈등도 없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이로 이것이다. 소농 말이다. 

자연에 살며시 얹혀살며 자연의 복원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짓는 농사가 소농이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 현대 농업의 반 자연성, 중화학공업화를 길게 얘기했다. 부메랑이 되어 제 발등 제가 찧는 꼴이 되어 있는 문명병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농업도 예외가 아님을 역설한 것이다.

최근에는 빌딩농업, 식물공장이라 하여 아예 땅을 버리고 수경재배를 통해 어떤 계절이건, 어떤 기상이변이 오건 관계없이 일정한 수량의 청정 농산물을 생산해낼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소식을 듣다 보면 농사의 끝장을 보는 기분이다. 

농사는 그것의 이른바 다원적 가치 때문에 천하의 근본이라 했거늘, 망가진 흙에 사죄하고 이를 살릴 생각은 않고 빌딩을 지어 농사짓겠다면 농사를 통해 얻는 자연정화라든가 정서적 순화, 수자원의 보전 등의 다원적 기능을 포기하는 셈이다. 

소농은 철 따라 씨앗을 뿌리고 그 지역의 제철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며 핵에너지나 석유에너지 의존을 줄이거나 벗어나서 몸 에너지, 자연에너지, 가축에너지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농사법이다. 혹, 농사규모만을 기준으로 삼아 대농, 중농, 소농을 나누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틀렸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맞는다고 할 수도 없다.

오래가지 않아 인류가 맞게 될 지구적 환경위기 때는 농사가 무엇보다 소중해지면서 지구를 지키는 기본산업으로서의 가치가 빛나게 될 것이다. 이를 대비하고 미리 나선 사람들이 소농들이다. 지구 위기에서 인류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 곳은 농업과 농촌과 산촌이다. 왜냐하면, 이렇다. 간단하다. 사람은 먹어야 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데 있어 밥과 물, 공기가 가장 필수다. 그래서 소농을 다가오는 새로운 문명의 중심이라 하는 것이다. 소농의 기본은 순환농사다. 

사람, 가축, 농장, 하늘, 땅, 물, 이웃이 막힌 데 없이 잘 소통하고 순환하는 삶이다. 그래서 농사부산물이 외부로 유출되거나 특별히 외부에서 들어올 필요가 없다. 논과 밭, 식구와 이웃, 가축과 농기구 등이 균형을 잘 맞춘 농사다. 모자라서 전전긍긍하지도 않고 남아서 흥청망청하지도 않는다. 자연에서 빌려 쓰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농사다. 

농사짓고 생긴 부산물은 반드시 본 땅에 돌려주고, 밭과 그 주변의 식물들은 죽이거나 뽑지 말고 베어서 깔아 준다. 음식물 쓰레기와 똥, 오줌은 다시 밭으로 보낸다. 

소농은 자립하는 삶이다 

요즘 순환농사가 많이 거론되는데 마트의 유기농 식품들처럼 돈벌이 목적으로 순환이다 유기농이다 하면서 접근하는 대규모 농기업은 자연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않는 경우를 본다. 순환을 말하려면 자연에 인간의 작용력을 최소화 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농약과 비료만 안 하면 다 유기농이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한 생각이다. 

순환농사는 순환의 대상과 범위, 또는 순환 주기 등을 최소 단위로 해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순환이라는 개념을 물리적 차원에서 인문ˑ사회적 차원까지 확대해서 접근하는 것이 진정한 소농의 정신이라 하겠다.

소농의 첫째 정신이 순환하는 삶이라면, 두 번째 정신은 자립하는 삶이다.
자립은 자급에서 출발한다. 자급 능력이 자립의 기초가 된다. 먹을거리도 입을 거리도 교육도 건강도 놀이도 문화도. 노동력도, 자급률을 일정부분씩 때로는 100% 이상 확보하는 삶이 소농의 삶이다.

에너지, 물, 맑은 공기도 자급체제를 갖추고 재난에 대비하는 체제가 소농의 삶이다. 때로는 지역차원의 자립 품목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원거리 교환을 통한 자립이 있을 것이나 자급의 삶에 뿌리를 두고 짓는 농사가 중요하다. 농사에서 입을 거리, 집 짓기, 에너지, 건강, 교육 등이 생산되도록 하는 방식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소농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적 삶이다. 이것이 소농의 세 번째 정신이라 하겠다.

선한 공동체. 밥상 공동체. 수행과 함께 가는 공동체. 여민동락하는 공동체. 마을 공동체. 뜻의 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삶을 지향하는 것이 소농의 삶이다. 공유와 사유의 대상이나 범위를 현재의 삶에 맞게 잘 조직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이 무너진 현대의 자본주의 삶을 극복하는 대안이다. 파편화된 분열적 삶을 관계 속에서 회복하는 것이다. 

농사에도 생명윤리가 도입되어야 

미국은 농가당 경지면적이 120헥타아르다. 한국은 1.45헥타아르. 노무현 정부 때 규모화의 목표로 삼았던 7만 가구의 6헥타아르가 이룩된들 경쟁이 될 수 없다. 일본도 한 농가당 경지면적은 1.57헥타아르에 불과하다. 규모화를 통해 국제 농산물시장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은 공업을 위한 농업의 희생전략을 윤색한 것으로 보인다. 

농사는 그 본령이 경쟁이니 효율이니 하는 것을 중심에 둘 수 없는 특별한 영역이다. 결코 산업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농민'은 사라지고 '농업인'이 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농업경영인'이 되어 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되어 사람을 교육산업의 자원으로 전락시킨 것과 같다.

'농사'도 사라지고 '농업'만 남았다. 농사는 하늘 뜻을 알고 온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기계와 기술이 장악 해 버렸다. 그래서 시ˑ군마다 '농업기술센터'다. 

소농은 과일나무 꽃을 솎기 위해 적과제를 뿌릴 수 없다. 적과제란 사람으로 치면 황우석의 줄기세포 파동으로 생명윤리 논란을 일으켰던 배아체세포를 죽이는 것과 같다. 이미 생명체로 봐야 하는 아기 열매를 약을 쳐서 몰살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는 성관계 후 사후 피임약 복용마저도 금하는 엄격한 생명윤리를 채택하고 있다. 생명 존엄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이미 동물과 가축에 대해서는 꽤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식물에게까지 즉, 농작물에까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 먹고살기도 힘든데 동물복지니 식물복지니 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배부른 소리라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4년 안에 절멸한다는 사실 앞에서 동물복지, 식물복지가 배부른 소리가 아님은 자명하다. 이것은 떠도는 인터넷 소문이 아니라 인류 최고의 과학자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오히려 복지 운운하면서 마치 인간이 시혜라도 베푸는 듯하는 표현이 어색할 뿐이다.

음식이 오염되면 사람이 죽는다. 음식은 이동과정 조리과정에서도 오염되지만, 농산물 자체가 오염되어 있으면 근원적인 오염이다. 농산물은 땅이 오염되면 치명적이다. 지금 우리의 땅은 과잉영양으로 영양지수가 오이시디(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사막화가 진행되어 땅심은 사라졌고 겨우 인공시비의 영양제 투입으로 연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제야 겨우 밝혀지는 진실들이 많다. 돈벌이 기업들이 일단 번쩍하게 만들어서 팔아먹고 보는 식이니 그렇다. 시골집 슬레이트 지붕이 한때는 주목받던 지붕 마감재였으나 발암물질 덩어리라는 것이 밝혀져 걷어내기 바쁘다. 석면도 그렇다. 건설현장의 최고 단열재였었다. 유리섬유도 그렇다.

석유화학제품의 대명사인 멜라민 수지 그릇이 예쁘고 견고해도, 아무리 녹도 슬지 않는 신비한 주방용기지만 페놀이라는 환경호르몬을 뿜어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테프론이라는 불소 코팅으로 만들어 눋지 않는 프라이팬도 마찬가지다. 열이 가해지고 긁혀서 코팅이 조금이라도 벗겨지는 순간 납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게 이제야 밝혀지고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지금처럼 대형농기계와 화학약품으로 짓는 농사가 빚어내는 재앙은 하나하나 폭로되고 있다. 소농의 등장이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하나인 농사가 삶이 되는 

자연의 섭리를 잘 익히고 그에 따르는 농사가 소농이다. 소농은 농사 규모라기보다 농사법에 가깝다. 농사법이라고 하기보다는 삶 전체의 개벽을 암시하고 있다. 

감자밭에 드문드문 울콩을 심어 공기 중의 질소를 끌어와서 거름을 삼게 한다. 가뭄이 오래되어도 식물 뿌리에 바로 물을 주지 않고 멀찍이 물을 줘서 뿌리가 스스로 물기를 찾아 뻗어 나오게 한다. 더디 자라지만 그래야 건강한 농산물이 된다. 

고추 모종을 옮겨 심을 때는 이삼일 그늘진 곳에 물도 주지 않고 놔두었다가 고추 모종의 모든 에너지가 물을 찾아 뿌리로 집중하게 한 뒤에 밭에다 옮겨 심고, 고추 심은 지 한 달 동안은 지지대에 묶어 주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바로 서도록 하는 게 소농의 농사법이다. 고추 심을 밭에 미리 비료랑 거름을 듬뿍 넣어 로터리 치는 일은 없다. 

풀을 매기보다는 남은 상추씨앗이나 호밀을 골에 뿌려 다양한 식생이 어우러지면서 잡초가 번성하지 않게 하는 식생 과학이 소농에 접목된다. 태양이 주는 풍부한 에너지로 전기도 만들고 온수도 만든다. 현재의 햇볕 에너지로 농사를 짓고 과거의 햇볕 에너지인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등에 대한 의존을 획기적으로 줄인다. 사람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잘 활용하여 육체노동의 신성성을 체득하면서 덤으로 건강을 챙기는 삶이 소농이다.

비닐 없이는 농사 못 짓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비닐 멀칭이 얼마나 땅과 작물에 해로운지를 알고 비닐로 땅의 숨구멍을 틀어막지 않는 게 소농의 농사법이다. 요즘 들판을 둘러보면 너도나도 감자 심은 곳이나 고추 심을 곳에 검은 비닐로 덮어씌웠다. 그렇게 하면 온실효과로 발육도 좋고 잡초도 안 난다. 보습효과를 노리고 비닐을 씌울 때는 비가 온 다음날 씌운다. 

이런 견해는 한 가지는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다. 비닐에 숨이 막힌 땅속 생명체들은 낮에 50도 이상 올라가는 고온과 과중한 습기에 다 죽어버린다. 잡초는 안 나겠지만 땅이 죽는다. 작물의 뿌리도 부실해진다. 밤낮의 일교차가 너무 커서 물에 잠기다시피 한 잔뿌리가 상한다. 

소농은 참나무나 밤나무 등의 활엽수종이나 대나무밭 아래의 부엽토를 모아 토착미생물을 배양하여 밭에 뿌리고 밭에서 지렁이와 땅개, 거미, 무당벌레가 번성하게 한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보다 더 많은 흙을 먹으면서 그 양만큼 배설하는 지렁이가 그 과정에서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하고 일반 흙보다도 5배나 많은 질소, 2배나 되는 칼슘, 7배인 칼륨을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안다. 

고기도 즐기지 않는다. 가축이 아니라 축산이 되어버린 고기는 오염이 심해서만이 아니라 그 동물의 학대에 가까운 비참한 일생에 대한 양심 때문에 고기를 멀리한다. 해물도 비슷하다. 성장호르몬을 강제로 조절 당한 양식장의 연어는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먹고 급성장하며 일반 연어보다 15배나 크게 자라기 때문이다.

연어는 원래 초식 물고기가 아니다. 연어는 어릴 때는 강에서 사는데 물에 사는 곤충류를 잡아먹는다. 커서 바다로 나가면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다가 좀 더 성장하면서 갑각류, 어류 또는 갑오징어나 꼴뚜기 같은 두족류를 먹고 사는 육식성 물고기다. 이런 연어를 속성으로 키우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해서 옥수수를 먹게 한 것이다. 이런 물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것은 소농의 식성이 아니다. 

소농은 모든 인위적으로 가해지는 돈벌이 목적의 수단들을 경계하고 배제한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하나 있다. 

일반 물고기 6만 마리 속에 유전자 조작으로 덩치가 큼직한 물고기 60마리를 넣었던 실험이다. 유전자 조작 물고기는 덩치도 크고 번식률도 일반 물고기의 4배에 달해서 일반 물고기는 점점 줄고 유전자 조작 물고기가 늘더니만 겨우 5세대 만에 일반물고기 개체 수를 추월해 버렸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유전자 조작 물고기는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특징이 있어서 특정 시점에서부터 유전자 조작 물고기가 줄기 시작하더니 40세대가 되는 시점에서 모든 물고기가 멸종되었던 실험이다. 끔찍하지 않은가? 

농민 기본소득 보장제 

자연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몬산토에서 만든 고약한 제초제 '라운드 업'이라는 게 있다. 이 몬산토는 지금 우리나라에 떠도는 엄청난 괴담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삼성과 함께 새만금 부지에 세계적 규모의 지엠오 생산기지를 만든다는 괴담이다. 그럴듯한 말인데 진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부의 골든씨드(Golden Seed) 프로젝트가 이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라운드 업'이라는 제초제는 녹색식물은 다 죽인다. 그러나 '라운드 업 레디'라는 몬산토가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콩만이 안 죽었다. 콩 종자와 제초제가 짝을 이뤄 팔렸다.

그런데 웬걸? 슈퍼 잡초가 등장했다. 라운더 업에도 죽지 않는 잡초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주요 농업지역에 출산율이 저하되는가 싶더니 암 증가율이 급증했다. 제초제와 유전자 조작의 독성이 돌고 돌아 사람의 밥상을 덮친 것이다. 이처럼 자연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과 옥수수의 95%가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된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콩 소비량의 93%를 수입해 먹는다. 옥수수 자급률은? 0.8%다. 끔찍하다.

자 어떤가? 이래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농업을 고수할 것인가? 낭떠러지에 선 현대농업의 현실을 알기에, 스스로의 행위가 자신을 해치는 꼴이 되는 현대 물질문명병을 알기에, 임종갑 박사 같은 농학자는 소농이 진정한 애국자고 진정한 지구 파수꾼이라 칭송했지 않았겠는가? 쓰노 유킨도 같은 일본의 농학자도 지구를 지켜 온 사람은 소농이라고 했다. 

이때 뒤따르는 질문이 예상된다. 그렇게 농사지어서 먹고 살 수 있겠냐고? 그래가지고 지구의 식량난을 어떡할 거냐고?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자. 현재 전 세계의 농지 중 1/3이 동물들에게 먹일 사료작물을 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총선 때 녹색당은 농민 기본소득제를 주창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사회적 기여도를 감안하고 농지 보전 역할에 대한 정당한 응대로서의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소농이 수행하는 역할은 수출 많이 하는 대기업 못지않다. 아니,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은 공기나 물이나 땅을 해치면서 돈을 벌어 공공의 부담을 가중시키지만, 농사는 그 행위 자체가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다. 물론 소농의 농사법일 경우에 그렇다. 중화학공업에 포박된 현대농사는 그 반대다. 오죽하면 지구생태계와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위험요소가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축산업이라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05년에 보고서를 냈을까. 

농민 기본소득 보장제는 이런 정신에서 출발한다. 뿐만 아니라 농민이 인구의 15%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귀 기울여야 한다. 한 농가가 여섯 가정을 먹여 살리는 정도의 농사가 적절하다 하겠다. 자연의 복원력을 해치지 않는 농사 규모가 어떤지는 더 연구해야 하겠지만 자연을 맹렬히 훼손하는 현재의 농업이 물러가면 그 자리를 메워 나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바로 다음 문명을 이어 갈 소농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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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의 그 한결같은 마음을 멋들어지게 노래하고 있는 국민가요 <님과 함께>의 한대목이다. 생각해 보자,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랑하는 님과 함께 소박하게 농사짓고 사는 일이라니! 가던 길 멈추고 상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노래야 모두가 즐겁지만, 그런 마음의 울림에 깊이 공명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귀농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실제 농사를 지으러 농촌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손으로 꼽을 지경이다. 왜 그럴까?
귀농은 간단히 말해, 농(農)촌으로 돌아가는(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많은 오해와 숨겨진 진실, 막막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져 나오는 그리움, 주변의 반대와 또 한편의 격려, 현실적 생존의 문제와 실존적 가치관의 문제 등등. 하나하나 확실히 짚어서 역으로 튼튼한 징검다리로 만들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도시에서 귀농을 준비하는 단계를 포함해서, 실제 귀농을 해서도 필요한 덕목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 글은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짧고 부족한, 게다가 다소 과격한 길잡이일 뿐이다. 귀농이라는 아름다운 꿈이자 냉정한 현실을 내 것으로 만드는 길고 긴 과정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어쨌든 수년간의 경험이 녹아든 결과물이고,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을 담은 글이기도 하다.
 
 
귀농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텃밭농사 - 주말농사를 시작하라.
귀농을 해서 백평 농사를 하건 만평 농사를 하건, 무언가를 심고 거두게 될 것이다.
도시생활 내내 흙과 멀어진 채로 살다가, 귀농을 하면 그때 가서 거창하게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이라면 문제가 있다.
재를 묻혀서 심는 씨감자의 경험, 알이 맺히지 않는 배추농사의 경험은 부지런하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이다.
여건을 탓하지 말고 좀 멀어도 좋으니, 아이들과 주말마다 교외로 나가보자. 옥상이 있다면 화분에 고추나 배추를 심어보자.
지하철에서 스포츠신문을 볼 때가 아니다. 영농서적을 외우듯이 읽어보자. 5평 농사의 풍성함을 만끽해 보자.
귀농의 필수조건이다.
 
준비 기간 동안 귀농교육을 받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모으라.
도시에서 귀농 준비를 하는 순간 귀농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운영하는 생태귀농학교에 참여하면 많은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얻게 된다. 간혹 귀농교육을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강의나 다른 이들의 사는 이야기보다는 내가 직접 부딪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농사만큼은 혼자서 되는 일이 없다. 농사는 원래 하늘이 짓는 것이고, 이웃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시작할 수도 없다. 하늘이든 이웃이든,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는 농사건 귀농이건 불가능하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귀농은 고달프기만 하다.
귀농과 관련된 정보나 영농정보도 넘쳐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인터넷 덕분에 정보의 홍수라, 오히려 옥석을 가리는 일이 더 힘들 지경이다. 그 중에 내가 원하는 정보만 집중해서 찾고 스크랩해 보자.
정작 귀농해서는 자료나 정보를 폭넓게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철을 좇아 사는 일로만 하루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준비하는 두툼한 자료뭉치는 분명히 큰 자산이 된다.
 
철학적 고민, 시대와 호흡하는 정신적인 무장이 중요하다.
철학적 고민이라니, 좀 생뚱맞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귀농은 삶의 전면적인 전환이다. 단순히 샐러리맨에서 농부로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의 생활양식이 농촌생활에 어울리게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무수한 철학적 고민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도시 친구들에게 감자 한 박스를 팔아보자.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 친구는 나의 수고와 땀을 모른다. 감자가 알이 작다느니 남아서 썩었다느니, 속 썩는 이야기 듣기 십상이다. 어쩌다 생산을 많이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볼라치면,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농민들이 왜 수확 철에 더 속이 터지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수해나 태풍이라도 얻어맞으면? 그래도 나는 귀농을 행복하다 할 것인가? 그 때, 나의 준비된 철학, 단단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이 글 처음에 적은 노래가사에 나오는 저 푸른 초원도, 그림 같은 집이 서 있을 곳도, 다름 아닌 바로 오늘의 농촌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농촌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다. 노래에 나오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의 농업 순환은, 다름 아닌 WTO 체제 아래의 한국농업 위의 순환이다. 귀농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는 시공을 초월한 순백의 종이가 아니다. 바로 오늘의 힘겨운 농촌과 무너져 가는 농업, 그 위에다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민을 가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달리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농업?농촌의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되, 애정을 가지고 해야한다.
 
귀농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지 말라.
결론적으로, 귀농을 해서 도시생활과 같은 경제적 수준을 유지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자연이 주는 수많은 기쁨과 혜택이 또 다른 수입이다. 이걸 누릴 수 있으려면 앞서 말한 철학적 고민이 받쳐주어야 한다. 도시에서는 식의주와 건강문제, 교육문제에 들어가는 돈은 밑도 끝도 없다. 모두 돈과 맞바꾸어야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다르게 접근할 수 있고 풀 수 있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하는 이야기들은 귀농본부에서 펴내는 계간지 <귀농통문>에 가득하다.
대체 자금이 얼마정도 있어야 귀농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물론 답은 없다. 그렇지만 굳이 답을 해야 할 때는, 몸 누일 집과 50평 텃밭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 이상은 옵션이다. 황토집을 짓든 시설농사를 하든 소를 키우든 그건 모두 옵션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다들 웃는다. 전혀 웃을 일이 아닌데 말이다.
도시생활을 고스란히 이동한 귀농을 생각하면 자금은 수억이 들 것이다. 도시에서 바쁘게 일하던 것처럼 농촌에서도 일하려고 한다면, 우선 좀 멈추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귀농설계는 그곳에서 다시 해야한다. 물론, 도시에서의 설계도 필요하지만, 농촌에서는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특히 땅 사는 일, 집 짓는 일은 되도록 천천히 신중하게. 귀농은 치킨집 신규창업과는 전혀 다르다. 속도와 경쟁이 아니라 느리게 천천히 사는 일이다. 자금을 많이 들이면, 그만큼 바빠지고 고달프다.
 
농사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접어라.
간혹, 농업을 통한 성공사례가 소개된다. 부디 현혹되지 마시기를. 농사꾼 1~2%의 특출난 사례가 우리의 것이 되기는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꿈도 꾸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 그런 분들의 경우,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아니면, 정말 시기적절한 아이템이 있어야 한다. 귀농을 하려는 이들은 그 줄의 맨 끝에 서 있다.
농사는 투기가 아니다. 한탕으로 되는 농사는 없다. 사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귀농을 하지 않아야한다. 수십 년 유기농업을 하시는 선생님들 가라사대, 돈 버는 작물은 없다. 땀 흘린 만큼만 거두고 먹는다는 진리에만 충실하면 된다. 귀농을 해서는, 돈을 번다는 개념이 달라야한다. 자급자족만 할 수 있어도, 좀 거칠게 말하면 ‘시골에서 붙어 있을 수만 있어도’ 성공적인 귀농이라고, 귀농자들은 말한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면, 이를테면 소를 규모 있게 키우거나 시설작물 같은 것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좀 천천히 바닥부터 일을 익힌 후에 투자를 하시라고 곡 말씀드리고 싶다. 프로 농사꾼들이 자기 노동을 최대한 들여서 농사지어도 될까말까 한 일이다. 농업은 계산 잘 해서 투자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며, 거기 내 땀이 깃들여야 한다.
농업소득에 관해서 유념할 일은 유통에 관한 문제이다.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제때 제값에 팔지 못하면 그만큼 허탈한 일이 없다. 귀농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유리한 면도 있다. 도시 연고를 잘 활용하면 되지만, 그게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유통망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농민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목반에 가입하거나, 유기농 생산자로 인정을 받아 생협이나 한살림 생산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채우려면 게으를 수가 없다.
농사로 돈 버는 방법! 그 어떤 작목이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능력이 있으면 가공을 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친지든 조직이든 든든한 유통망에 기대라는 말 외에 더 보탤 말은 없다.
 
농촌에는 농사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농촌에서 직업을 이어가라.
귀농을 하게 되면 꼭 농사를 지어야 할까? 꼭 농사꾼이 되어야만 할까?
아니다. 농촌에는 농사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농도 농사를 지어야만 귀농은 아니다. 시골에서는 그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10평 채마밭 가꾸는 일은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예를 들면 더 좋을 것 같다. 우선 교사들은 그런 면에서는 유리하다. 부부 중의 한사람이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일을 하면 여러모로 수월한 법이다. 아내는 읍내에서 약사로 근무하고 남편은 농사꾼으로 땀 흘리는 부부들도 있다.
남자들은 지역 내의 농업관련 활동을 전업으로 할 수도 있다. 영농조합법인이나 생산자공동체 사무 일을 보거나, 트럭을 몰고 배송을 하러 다니는 귀농자들도 있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지역 정보를 두루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자들은 여성농업인센터 등에서 방과 후 아이들을 지도하거나, 면사무소에서 농민들 컴퓨터교육을 계약직으로 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 일들은 도시에서 일을 해 온 귀농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농번기에 품을 팔거나 산불감시원 등을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을 일원으로서 충분히 인정을 받아야 가능하고, 생활의 보조 수단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일들도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매이지 않고 자원봉사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평 농사이든 평수는 상관없이, 역시 귀농은 역시 내 농사가 제 맛이다.
 
지역 관공서나 기관 및 조직을 적극 활용하라.
귀농을 지원하는 안정적인 지원시스템은 없다. 스스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
시골 면사무소는 도시의 동사무소와 같은 레벨이지만, 농촌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면사무소 직원과 통하면, 상당한 지역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농업기술센터의 역할도 무시 못 한다. 도시에서야 가급적 관공서 안 가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농촌은 관공서와 친해질수록 좋다. 실질적인 귀농자 지원 방안은 각 면 단위에서 쥐고 있다. 속된 말로 자꾸 찔러야 한다.
농촌의 특징은 무수한 민간조직이 있다는 것인데, 웬만한 촌부들은 이장이나 무슨무슨 모임 회장을 안 해본 분이 없다. 생활과 직결되는 작목반부터, 대체 무슨 일들을 하는지 알길 없는 동호회와 오래된 농촌조직들이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정착에 도움이 된다. 후견인들을 얻는 것이다.
귀농자들은 붙박이 농민들과는 달라서, 좋은 교육이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또 도시에서의 경험 때문에 무슨 박람회니 교육이니 하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대충 알아본다. 근래에는 모든 군에서 친환경농업 육성을 과제로 삼고 있어서, 상당한 교육과 투자를 하기도 한다. 여기 잘 참여하고 활용하기만 해도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귀농지 선정은 연고지와 인맥을 적극 활용하고 인내하라.
귀농지 선정만큼 막막한 일이 있을까 싶다. 심지어 지도를 펴고 눈감고 찍은 곳부터 돌아보았다는 분도 있다. 어디를 어떤 방식으로 다녀야 내 귀농지를 찾을 수 있을까.
고향으로 귀농을 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고향을 피하는 이유야 알지만, 고향은 또 다른 면으로 품어주는 곳이다. 이제는 농촌 어르신들의 귀농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는 귀농자가 있는 지역이면 좋다. 귀농자의 마음은 귀농자가 아는 법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다. 그런데 꼭 주의할 점들이 있다. 우선, 귀농자라고 해서 나를 도와줄 의무는 없다. 그런데도 용케 인연을 얻어 귀농자와 함께 마을을 돌아보고 술 한잔 나누게 된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건만, 당장 내 목표가 급하다고, 그런 소중한 인연을 허술하게 생각하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한번 만난 귀농자와는 자주 안부도 묻고, 농산물도 앞장서서 팔아 주면서 더 깊이 만나기를 바란다. 행여 사귀기도 힘들고 할 이야기가 없을까 걱정 마시라. 농사 이야기만큼 사시사철 무궁무진한 주제가 어디 있으랴.
그 외 몇 가지 요령은 있다. 우선 대상 지역을 최대한 좁히는 것이 좋다. 하나의 군만 집중 공략하라. 지역 부동산정보지 같은 것도 활용하고, 면사무소 직원을 잘 만나면 같이 다니기도 한다. 마을 이장을 찾아갈 때는 빈손 말고 음료수 한 박스는 사들고 가기 바라고, 그 지역 토박이 농사꾼을 알면 제일 좋다. 귀농지를 찾는다고 차 몰고 다니는 마음이야 절절하지만, 시골 사람들 눈에는 부동산 투기하려는 사람과 구별이 가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땅값부터 묻는다든지 할 일이 아니다. 뭐 좀 있는 행세는 제발 하지 말기를.
우선 땅은 빌려서 농사를 짓기를 권하고 싶다. 마을 어른들은 한해 농사 하는 것 보고서야, 이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믿는다. 그러니 첫해 농사는 정말 열심히 해야한다.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면 된다. 그 다음부터는 농지를 빌려주겠다는 사람, 내 땅을 싸게 사라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일년이면, 옆 마을이나 산너머 마을 정보도 얻게 된다. 사실 일개 면 범위의 정보면 충분하건만, 우리는 천여평 농지를 얻기 위해 전국을 헤매는 것이다.
땅을 사는 일과 집을 짓는 일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촌생활 속에서 얻는 정보는 살아있는 정보이다. 또, 살면서 내가 어떤 형태의 귀농을 할 것인가가 좀더 구체화되면, 농지와 집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많은 귀농자들이 거처를 옮긴다. 밀려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좋은 선택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귀농지를 찾는 일은 배필을 찾는 일과 같다. 아주 극적인 인연이다. 노력하는 필연과 하늘이 내리시는 우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내 맘에 꼭 맞는 귀농지는 없다. 직업상 수백 동네를 다녀 보았지만, 집과 농지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정말 기막힌 곳이라 생각한 집은 서너군데에 불과하다. 고향은 어디인가? 정들면 고향이다. 나의 귀농지는 어디인가? 정들면 그곳이 최고다.
 
 
귀농을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을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성공적인 귀농의 최후 비결도 여기에 있다.
귀농과 전원생활의 차이도 여기에 있고, 귀농의 최종 목표도 여기에 있다.
그 마을 사람이 되는 것. 귀농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마을 사람이 되기 위해 중요한 점은,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몸과 마음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열쇠는 애정과 믿음에 있다. 농촌이라는 이름 안에 있는 수많은 요소들에 대한 애정과 그 중에서도 농민에 대한 믿음. 결국 사람을 믿지 않으면, 귀농이고 뭐고 풀릴 일도 없다.

흙이야 늘 정직하다. 땀 흘린 만큼 돌아온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들이 내게 기대는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노력은 꼭 뿌린 대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힘들지만, 즐거운 숙제이다. 그 과정이 귀농이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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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농법 전파하는 농사꾼 이영문

 

"쟁기질 써레질을 왜 합니까"




    '논 팔아 굿하니 맏며느리가 춤춘다’는 속담이 있다. 며느리가 덩실거리는 것은 굿이 흥겨워서가 아니라 힘들고도 지겨운 노역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됐다는 데서 오는 홀가분함 때문일 것이다. 농사란 전래적으로 ‘뼛골 빠지는’ 일로 인식돼왔다. 모처럼 농촌 들녘 나들이에 나선 도회인들이 “나도 이런 농촌에 와서 씨 뿌려 가꾸며 살고 싶다”고 뇌까리곤 하는데, 땅을 일궈 농사를 짓는다는 일이 어디 도시 사람들이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처럼 목가적이기만 한 생활인가. 귀농을 하겠다고 마음 다잡고 내려간 도시 젊은이들 중에 1년을 못 참고 다시 보따리를 싸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만 봐도 농사의 어려움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경상도 하동 땅의 한 농촌에 갔다. 농사가 기계화됐다고는 하나 망종(芒種)을 눈앞에 둔 시기라 밀·보리 수확하랴, 모 쪄서 논에 내랴, 부지깽이도 달려나와 거들어야 할 만큼 바쁜 때였다. 그런 때 가장 민망스러운 사람은 모처럼 볼 일이 있어서겠지만 멀쩡하게 차려입고 마을을 찾은 외지인이다. 유유자적 논둑길을 걸으며 땀 흘리는 사람들을 구경하자니 뒤통수가 스멀거리고, 그렇다고 구두 벗어던지고 남의 논바닥으로 빠져들 수도 없잖은가.
그런데 농번기에도 이 사람의 논을 지날 때에는 그 미안함이 덜하다. 갈고 엎고 물대고 심고 하느라 정신없는 다른 논들과는 달리, 그의 논에는 아직 평화롭게 밀·보리가 익어간다. 양말까지 챙겨 신고 논둑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주인의 표정 어디에도 ‘재 너머 사래 긴 논을 언제 갈아’ 모를 낼까 따위의 걱정 한 주름 없다. 밀과 보리도 딴사람들 모내기가 다 끝나갈 무렵에나 슬슬 거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뿐인가. 벼농사 짓겠다는 사람이 못자리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이쯤 되면 필시 금년 벼농사를 포기한 사람이거나, 동네에서 아예 내놓은 게으름뱅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논바닥이 손바닥만해서 서두르고 말고 할 건덕지가 없는 경우리라.




혼자서 쌀농사만으로 연간 억대 매출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이 사람이 1년에 짓는 논농사만 줄잡아 3만5000 평이다. 보리나 밀을 빼고 쌀만 400가마 넘게 수확하고, 순전히 쌀농사만으로 연간 억대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다. 그는 대농(大農)에 속하는 그 많은 일을 혼자서 거뜬히 해치운다. 그렇게 큰 농사를 지으면서도 집 안에 비료포대, 농약포대 하나 보이지 않는다. 무슨 마술이라도 동원하는 것일까?
어쨌든 필자가 그를 찾아갔을 때 모내기철을 맞아 바삐 돌아가는 다른 들녘과는 달리 그의 논에는 걱정스러울 만큼 태평스럽게 밀과 보리가 하늘거리고 있었고, 그 들판을 바라보는 주인의 표정도 한정없이 태평스러워 보였는데, 바로 이 ‘무사태평’이 농사꾼 이영문씨 (45)의 농사철학과 그의 독특한 영농법을 설명해줄 화두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그의 농기계수리점 겸 태평농법을 전파하는 사무실에는 ‘태평농업’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미안스럽게도 들에 나갔던 그가 서울에서 방문객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 소형 승합차를 몰고 서둘러 돌아왔다.
―태평농법으로 농사 짓는 사람은 다른 사람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 오히려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들판에서 무슨 일을 하고 오셨습니까?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작년 홍수로 무너진 논둑을 좀 손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태평농법이라… 그러니까 무사태평으로 게으름 피워가면서 농사 짓는 방법입니까?
던져놓고 나니 너무 무례한 질문인 성싶었다. 사전 귀동냥에 의하면 요즘 그는 농사 짓는 데 쓰는 시간보다 전국 각지에서 그 농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농사 요령을 설명하고, 정부기관이나 대학, 크고 작은 농민·사회단체에 불려가서 강연하느라 빼앗기는 시간이 더 많다고 했다.
“한번 따져봅시다. 옛날의 부자를 천석꾼이니 만석꾼이니 하지 않습니까. 대부분을 다 소작 주고 몇 백 마지기만 지었다고 쳐보자고요. 경지정리도 안 된 쪼가리 논이어서 일하기가 대단히 힘들었을 텐데, 과연 소 몇 마리하고 머슴 몇 사람 데리고 일일이 쟁기로 갈아엎고 써레질해서 농사를 짓는 게 가능했겠느냐고요. 불가능합니다. 지금처럼 기계화 영농이 일반화하고 경지정리가 잘 된 상황에도 한 가구에서 수백 마지기 농사 짓는 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옛날 우리 조상들이 모두 항우 장사나 홍길동 같은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를 가졌거나 신출귀몰한 사람들이 아니었을 바엔, 지금 방식으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다른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뭐냐….”




"태평농법은 조상들의 농법을 되찾는 것"




―그럼 쟁기질이나 써레질을 하지 않고 벼를 재배했을 거란 얘긴가요?
“언제부터 쟁기질을 했고 언제부터 써레질을 했는지를 여기저기 다 뒤져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내 나름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경사진 땅을 파서 편평한 논을 만들 때 안쪽의 흙을 바깥쪽으로 끌어내서 평탄작업을 하지 않습니까. 그랬을 때 흙을 깎아냈던 안쪽은 바닥이 단단해서 농작물이 뿌리를 내릴 수 없단 말이에요. 그곳만 쟁기질 써레질로 일궜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그가 개발한 농법(그는 아주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했던 농법을 되찾은 것이라 했다)이 바로 태평농법이다. 태평농법을 짧게 설명하면 이렇다.
논에 보리나 밀을 파종한다. 6월 중하순쯤에 밀과 보리를 베어내고, 그 자리(쟁기질을 하지 않은 마른 논바닥)에 볍씨를 뿌린다. 그런 다음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덮는다. 그걸로 파종이 끝난다. 화학비료도 뿌릴 필요 없고 농약과 제초제는 더더욱 필요없다. 물? 열흘이나 보름 간격으로 2∼3일 동안만 대주면 된다. 가을이 되면 벼가 익는다. 보리파종도 간단하다. 벼를 수확하고 난 마른 논바닥을 갈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보리 씨앗을 뿌리고 벼 수확하면서 생기는 짚을 논바닥에 덮어두면 보리가 저 알아서 잘 자란다. 이 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으면 땅을 갈 필요가 없으니 쟁깃날도 필요없고 써렛날도 필요없다. 보리 베고 그 자리에 마른 볍씨를 뿌리기만 하면 되니 못자리도 필요없고 장화를 신을 일도 없다. 수만 평 농사를 혼자서 지어도 여유가 있으니 인건비도 필요없다.
그러나 아무래도 장난같이만 들리는 이 농사법을 처음 듣고 ‘정신나간…’ 운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필자도 그랬고, 현장을 보고 온 지금도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씨는 한정없이 한갓진 듯 보이는 그 농법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20년 동안이나 끈질긴 실험을 해왔고, 지금 그는 한두 뙈기의 논에 실험적으로 해보는 게 아니라, 3만5000평의 자기 논 전부를 바로 그 태평농법으로 경작하고 있다. 아니 경작의 ‘耕’은 ‘논밭을 간다’는 뜻이니 괭이질 한 번 하지 않고 벼를 재배하는 태평농법에 ‘경작’이라는 말은 걸맞지 않은 표현이다.




중1 두번 중퇴가 학력의 전부




태평농법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따져보기 전에, 그가 어떤 연유로 ‘쟁기질하고, 써레질하고, 못자리 만들고, 비료 주고, 농약치는’ 고전적인 쌀농사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먼저 알아보기로 한다.
농사꾼 이영문은 1954년 경남 사천의 농촌에서 빈농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름으로 된 농지는 한 뼘도 없었고, 얼마 안 되는 종중논을 일궈서 간신히 끼니를 잇고 살았다. 외아들이었으니 어지간하면 고등교육을 시켜보겠다는 엄두를 냈을 법도 한데, 그의 아버지는 자식 교육은 물론 보릿독 바닥 드러나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한량’이었다. 어머니의 호미품팔이로는 중학공부마저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중1 중퇴. 중학교 문턱에 들어가자마자 나와버린 셈이다. 서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을 안고 무작정 상경길에 올랐으나 어렵게 들어간 야간 중학마저 다시 그만둬야 했다. 발육이 제대로 안 돼 왜소한 체구인 그를 받아줄 일터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고생만 ‘엄청시리’한 끝에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두 번씩이나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1학년 때 그만둔 게 그의 학력 전부다.
그 무렵 부친도 ‘정신을 차리고’ 세 식구를 이끌고 지금의 하동군 옥종면으로 이사를 했으나 비빌 언덕이 없었던 탓에 이영문은 기술을 배워보겠다고 나섰다. 뭐든 뜯었다 맞췄다 하는 데에는 남다른 재주를 타고난 그가 농촌에서 소질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분야가 다름 아닌 농기계였다.
기술 서적을 갖다놓고 밤낮 없이 기계에 매달린 끝에 드디어 어떤 농기계에도 자신이 붙었다. 때마침 정부에서 기계화 영농을 농업 근대화 정책으로 내걸었고, ‘기계로 논밭을 간다’는 것은 당시 모든 농사꾼의 소망이었기 때문에 농기계 보급이 빠른 속도로 확산돼 가고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만 해도 농기계에 대한 지식이 빈약하던 시기라 농민들은 나사 하나만 죄면 될 일을 가지고도 큰 고장이 난 줄 알고 수리점을 찾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심하게 고장이 난 기계도 그의 손에만 오면 해결됐으니, 그의 농기계 수리점은 수지가 맞았고, 찌든 ‘가난의 때꼽재기’도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농기계 수리공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계가 완제품을 수입해서 조립한 겁니다. 그런데 왜 이게 자꾸 고장이 나느냐, 우리 토양에 맞지 않기 때문 아니냐,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연 소로 쟁기질하고 써레질하던 전래 농사법을 팽개치고 기계에다 쟁깃날 달고 써렛날 달아서 마구 파헤치는 농사법이 과연 옳은 것이냐, 이런 의문에 봉착한 것이지요.”
이씨는 영농현장에 적용시켜보지 않고는 농기계를 제대로 알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외국산 농기계를 쓰는 영농과 소를 이용한 경작의 차이를 논에서 직접 실험하고 관찰했다. 실험 관찰 끝에 내린 결론은 기계에 의한 영농방식이 ‘틀려먹었다’는 것이었다.




농기계 수리업 포기 후
벼의 '무경운(無耕耘)재배' 선언




“소로 갈 때는 말입니다. 소가 쟁기를 끄는 힘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깊이 갈 수가 없습니다. 쟁기를 보면 끝부분에만 금속이 붙어 있지 않습니까. 많이 갈아야 20cm예요. 20cm 밑에 있던 흙이 위로 올라오고, 온갖 잡초의 씨앗이 떨어져 있던 표면의 흙이 그만큼의 깊이 아래로 들어갑니다. 거기다가 써레질은 기껏해야 5cm 정돕니다. 그런 상태에서 모를 심으면 뿌리가 직근(直根)합니다. 왜냐고요? 20cm 아래에 잡초 씨앗이나 뿌리가 달린 흙덩어리가 그대로 있어서 산소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수입 농기계로 갈고 써레질을 하는 경우는 땅을 무지막지하게 파헤치는데다, 흙을 믹서에 야채 갈 듯 완전히 파괴시키기 때문에 무게별로 지층이 형성됩니다. 맨 위에는 점토질이 형성되면서 흙보다 가벼운 잡초 씨앗도 모두 위로 떠올라요. 그 상태에다 작물을 심으면 뿌리가 착근하지 못하고 옆으로 퍼져서 뻗기 때문에 성장이 잘 안 되는 겁니다.”
―제초제라는 것도 기계화 영농이 본격화하면서 보급됐는데, 제초제가 단순히 김을 맬 일손을 덜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니라, 그걸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잡초가 무성하다 보니까…
“딱 맞는 얘깁니다. 논바닥의 흙을 마치 체로 흔들 듯이 해놓으니까 잡초 씨앗이 모두 위로 올라오게 되잖습니까. 옛날 소로 농사 지을 때에도 잡초는 났지만 사람이 손으로 뽑아도 될 정도였어요. 게다가 기계로 파헤치는 경우 뿌리가 수직으로 착근하지 못하고 옆으로 퍼지니까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제대로 성장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령 날을 짧게 한다든가 하는 방식 등으로, 기계를 이용하면서도 예전에 소로 경작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농기계를 만들어보시지 그랬어요? 농기계에 ‘도사’시라면서요?
“만들어봤지요. 우리 환경에 맞는 농기계를 만들어보자고 작심하고, 써렛날이 현재 일반 농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의 1/8에 불과하고 동력 손실도 1/5밖에 안 되는 한국형 농기계를 시제품까지 만들었는데, 그걸 받아서 생산할 업체가 있어야지요.”
―왜 그랬을까요? 동력 손실이 적으니 기름값도 덜 들고, 제초제나 화학비료도 덜 쓸 수 있어서 효율적이었을 텐데.
“물정 모르는 말씀 마세요. 농기계 제작·수입 업체로서는 엔진도 크고, 파손도 잦고, 가격도 비싸야 자꾸 신형으로 교체할 것이고, 그래야 장사가 될 것 아닙니까. 제가 만든 것처럼 작은 엔진에다 고장도 잘 안 나고 간단하기 짝이 없는 기계, 그거 만들어봤자 수지가 안 맞아요. 농민들 사이에도 비싼 수입 농기계를 써야 최고인 줄 아는 인식이 확산됐는데, 그렇게 된 데에는 바로 그런 농기계에 의한 영농이 표준농법인 양 지도를 한 농업 지도기관의 영향도 크지요.”
실망한 그는 농기계 수리업을 포기했다. 자신이 개발한 기계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지 맞는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에 농기계 수리점이 생겨났고, 80년대 들어 소 파동에다 작물 파동 등이 잇따라 자꾸 외상만 깔리는 등 운영에 어려움이 닥친 탓이었다. 이제 그는 농사를 짓기로 작심했다. 다른 사람의 논을 임차하고 일부는 구입도 해서 벼농사에 돌입하는데, 수입 농기계를 중심에 두고 진행되고 있는 관행적인 영농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것인지가 문제였는데, 그는 벼의 ‘무경운 재배’를 선언한다. 무경운(無耕耘), 논을 아예 갈지 않고 벼농사를 짓겠다는 것이다.
―한 해 농사를 그르치면 손해가 막심한데, 무턱대고 그런 생소한 농법을 실험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으로 보이는데요?
“주먹구구식으로 덤벼든 게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충분히 확신이 섰어요. 갈고 써레질 하는 이유가 뭡니까. 흙을 부드럽게 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보리나 밀이 자라고 있는 땅의 흙을 만져보세요. 대단히 부드럽습니다. 보리나 밀을 한 번이라도 베어본 사람이면 다 압니다. 낫질 서투른 사람은 자꾸 뿌리째 뽑아놓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갈아 엎어서 부드럽게 하지 않아도 자연 스스로 미생물에 의해서 충분히 제 살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볍씨 처음 뿌린 87년엔
잡초만 무성한 도깨비밭




―화학비료는 그렇다 쳐도 퇴비도 줄 필요가 없습니까?
“식물이 퇴비를 먹고 자란다는 인식부터 버려야 합니다. 유기물을 먹는 게 아니라 무기물을 먹는 거예요. 흙 위에 유기물을 얹어놓으면 토양 속의 미생물이 그걸 먹고 무기물을 분비하는데 식물은 그 무기물을 먹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무기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라인이 이미 흙 속에 갖춰져 있어요.”
―그렇다면 물은 왜 댑니까? 옛날에는 산간지역에서 밭벼를 재배하기도 했잖습니까?
“벼는 물에서도 잘 자라고 물 없는 데서도 잘 자랍니다. 아마 아열대 식물인 벼를 처음 도입했을 때에는 마른 땅에서 했을 겁니다. 그런데 중간에 왜 논에 담수를 했느냐, 물이 있는 곳에서 재배를 해보면 잡초가 훨씬 덜 납니다.”
―태평농법에서는 물을 보름 간격으로 2∼3일만 넣어주면 된다고 했는데, 순전히 잡초를 없애기 위한 방편인가요?
“아닙니다. 소출을 높이기 위해섭니다. 2~3일 동안 물을 대주면 그 물을 토양이 다 가져가기 때문에 일부러 빼줄 필요가 없습니다. 물에는 혐기성(嫌氣性:산소를 싫어하는) 미생물이 많고, 마른 논에는 호기성(好氣性:산소를 좋아해서 공기 중에서 잘 자라는) 미생물이 많습니다. 그 미생물들이 살아 있을 때 분비하는 물질이 바로 식물의 먹이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물을 넣어줬다 빼줬다 하면 혐기성 미생물과 호기성 미생물의 분비물이 풍부해져서 작물 성장이 더 활발해지지요.”
그러나 한국의 기후는 몬순 기후여서 쌀농사를 짓는 데에 물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적당한 시기에 비가 와서 담수 됐다 말랐다를 저절로 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인위적으로 파 헤집어놓은 논바닥은 조금만 가물어도 거북등처럼 갈라지지만, 자연에 의해서 부드럽게 유지돼온 흙은 아무리 가물어도 아래쪽에 수분이 있어서 멀쩡하다는 얘기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도 그의 빈틈없는 논리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처음 그런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서 보란 듯이 성공했나요?
필자의 질문에 이영문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결과는 참패. 웃음거리였다.
“될 것 같았어요. 아니, 이론적으로 반드시 돼야 했어요. 그때가 아마 87년도였던 것 같은데, 자신만만하게 볍씨를 뿌렸던 논에는 잡초만 무성했지요. 도깨비밭이었어요. 그래도 드문드문 벼가 있긴 했는데….”
알 만했다.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그를 향했을 건 뻔하다. 히야아, 그 잡초숲을 뚫고도 자란 벼가 있긴 하네 그려. 아예, 산에다 볍씨를 뿌리지 그래. 제초제 뿌리는 법 모르면 내가 가르쳐 줄까?




"한 해쯤은 잡초가 맘껏 자라도록
방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관행으로 굳어져 온, 농기계로 파헤집는 식의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은 굳어져만 갔다.
“그러나 나도 완강했지요. 너희들이 잡초 없애겠다고 10년간 제초제를 뿌렸으면 풀이 완전히 없어져야 옳은 것 아니냐. 그런데 한 해만 농사 안 지으면 무성하게 우거진다 이 말이지. 이건 제초제로 잡초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의 패배예요.”
그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잡초를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짚으로 논바닥을 덮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이모작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때 발견했다. 그러니까 초기에는 마른 논에 그냥 볍씨만 뿌려놓고 말았는데, 다음 실험으로 그는 밀과 보리를 심어서 수확해낸 다음에, 그곳에 볍씨를 뿌리고 밀짚과 보릿짚을 덮었다. 그렇게 하니 새가 주워 먹지도 않았고, 잡초도 거의 돋아나지 않았다. 성공이었다. 태평농법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수입 농기계로 갈아엎고, 화학비료나 농약, 제초제를 뿌려서 농사 지어온 농토에도 어느 해 갑자기 보리 재배했다가 마른 논에 볍씨 뿌리고 짚풀을 덮어주기만 하면 태평농법으로 농사 짓는 게 가능하다는 얘긴가요?
“가능합니다. 첫해부터 갈지도 않고, 비료도 안 치고, 농약도 안 치고 해야 지력이 금방 회복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첫해에는 제초제와 비료를 조금은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워낙 그런 농법으로 단련된 토질이기 때문이죠. 저는 애당초 70%의 소출만 올리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시도했었거든요.”
제대로 해볼 양이면 수확량 걱정하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제초제나 비료 따위를 쓰지 말고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고 그는 말한다. 독한 제초제를 쓰다가 한 해만 안 써도 잡초가 무성하게 치올라오는 것은 자연이 스스로를 복구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 그걸 보고 인간은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파괴해버린 자연을 원상으로 돌린다는 차원에서라도 한 해쯤은 잡초를 맘껏 자라도록 방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이 얘기도 잘 안 믿겠지만….”
필자가 워낙 못 미더워하자 이씨는 답답해하며 그런 사족을 달았다.
“논에 피가 많이 나서 너도나도 피사리를 하느라 땀을 흘렸지 않습니까. 그러나 피는 뽑아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 해만 농사를 안 짓고 방치해보세요.”
―그러면 다음해엔 논이 온통 피밭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씨가 엄청나게 떨어져서 피가 많이 나지요. 그러나 그 다음해에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잔디처럼 논바닥을 뒤덮을 것 같지요? 천만에요. 훨씬 줄어들고 3년째엔 피가 한 포기도 안 납니다. 그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태평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밀이나 보리를 병작(竝作)해야 한다는 얘긴데, 같은 땅에다 이 작물 저 작물을 번갈아 심으면 지력이 쇠해서 소출이 줄어든다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전혀 잘못된 상식입니다. 이것 저것 많이 심어줄수록 지력은 좋아집니다. 물론 단작(單作)일 때에는 지력이 떨어집니다. 단작을 되풀이하면(같은 작물을 거듭 파종하면) 미생물의 종류가 다양해지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러 작물을 파종하게 되면 미생물의 종류가 다양해져서 흙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산(山)의 토양을 생각해보세요.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자라는 산의 흙은 기름진 부엽토지만, 한 가지 나무만 자라는 곳의 흙은 그렇지 않습니다. 논밭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논리가 유수 같은데 그렇다면 어째서 초기에는 참패를 면치 못했을까? 이유가 있었다. 보리나 밀을 베어낸 자리에 볍씨를 뿌려놓기만 했을 뿐 덮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릿짚 밀짚을 덮으면 잡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때가 1987년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수확을 하는 둥 마는 둥했었는데, 이때부터 제대로 소출을 올리게 된 셈이다.
“제가 ‘이상한’ 농사법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정부의 연구기관에서 찾아왔더라구요. 이 사람들이 와서 정말로 논을 안 갈고 파종을 하는지, 비료나 제초제를 안 주는지, 물을 안 대주는지 등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실험도 했어요. 그런데 자기들이 땅 갈고 농약치고 비료 주는 방식으로 한 켠에다 시험농사를 했던 곳보다 내 방식으로 지은 곳에서 오히려 수확이 더 나온 겁니다. 300평당 488kg이 생산됐어요. 이렇게 되니까 내 방식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지요.”




수확과 파종을 동시에 하는
'농비 제로 직파기'




이 무렵 이씨는 이미 자신의 농법에 맞는 농기계를 만들어두고 있었다. 이름하여 ‘농비 (農費) 제로 직파기’다. 보리나 밀을 수확하면서 동시에 볍씨를 논바닥에 자동으로 뿌려주는, 또는 벼를 수확하면서 보리나 밀의 씨앗을 동시에 파종하는 기계였다. 그러니까 보리 베는 작업 따로 하고 볍씨 뿌리는 작업을 따로 하는 게 아니라 베어내면서 바로 다음 작물의 씨앗을 뿌리는 기계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 기계를 가지고 정부 연구기관의 작물시험장에 찾아가 파종을 해주기도 했다.<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 농사법을 ‘무경운건답 이모작 직파농법 (無耕耘乾畓二毛作直播農法)’이라고 이름을 붙여서는 자신들이 연구 개발해낸 농법인 양 보고를 한 겁니다. 제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방식을 실험해온 것을 빤히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남의 연구성과를 가로챘느니 어쨌느니 하면서 분개했지만, 저는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일개 농부인 내가 아무리 획기적인 농사법을 찾아냈다고 해봤자 정부 기관으로부터 검증이 안 된 상태인데 농민들이 그 농법을 도입하겠습니까? 그리고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농기계업체나 비료·농약제조업체 등)의 조직적인 반대가 있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부의 연구·지도기관에서 권장한다면 차원이 다르거든요. 어쨌든 저는 농민들이 이 농법을 많이 도입해서 토양이 살아나고 국민들이 무공해 쌀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물론 지금은 정부기관이나 학계에서도 이 농사법을 ‘이영문의 태평농법’이라 부른다. 동네 농민들이 이씨를 부르는 별명도 ‘태피이’다. 남들은 장화 신고 온몸에 흙칠해가면서 논을 간다 모내기를 한다 야단일 때(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논둑길로 흰고무신에 양말까지 갖춰 신고 천하태평으로 돌아다닌다 해서 ‘태평이’란 별명이 붙은 것이다(태피이는 태평이의 경상도식 발음이다).
태평농법이 일반에 알려진 데에는 경상대학교 농과대학측에서 이 농법에 관심을 갖고 이씨와 더불어 지속농업산학연구회를 만든 게 계기가 되었다. 이제 태평농법이 안정적인 농사법의 틀을 갖췄다고 생각되자 이씨는 그동안 하고 싶던 말을 쏟아놓았다. 농민들이 쓰는 화학비료의 인산(燐酸) 때문에 우리 농토가 다 죽어간다는 등의 주장을 공공연하게 내놓은 것이다. 그러자 무서운 협박이 날아들었다. “목숨이 두 개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겠다”는 전화폭력이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된 것이다.
―농기계 업체 쪽에서도 달갑잖아 하겠는데요?
“물론입니다. 아마 8월쯤 되면 현재의 농기계 업체들이 신제품이라고 하면서 또 다양하게 수확기(收穫機)를 수입할 겁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구형으로 밀려난 것들이에요. 그러면 작년에 구입했던 것은 또 창고로 밀려나게 되지요. 엄청난 낭비입니다. 제가 개발한 농비 제로 직파기가 지금 전국에 800대 가량 보급돼 있습니다. 그런데 IMF로 그 기계 만들던 회사가 문을 닫아버렸어요. 그래서 이번에 아예 일본이나 유럽에서 들여오는 어떤 콤바인에도 부착해서 사용할 수 있는, 호환성 있는 직파기를 다시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생산비는 한 마지기에 1만원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한 번 따져봅시다. 태평농법을 도입해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한테 태평농법의 원조(元祖)가 어떤 작황을 올리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알리는 것 이상의 홍보효과가 없을 것 같은데요. 무공해 농법이고, 토양을 살리는 자연친화적인 농법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일반 농가에 뒤지지 않습니까?
“이 농법이 자리를 잡은 게 5년 전부턴데, 98년도의 경우만 보더라도 단보(300평)당 전국 평균 생산량이 413kg이었는데, 나는 그보다 85kg 많은 498kg을 수확했어요.”
―판매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집니까?
“가을 수확기가 되면 대개 금년 수확량이 얼마다 하는 게 나옵니다. 도시 소비자들이 1년간 먹을 쌀값을 미리 갖다 줍니다. 돈을 미리 받고 소비자들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올 때마다 택배로 보내줍니다.”
―태평농법으로 생산한 고유쌀이니까 품질인증을 받으면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이름도 근사하게 무슨 쌀, 혹은 무슨 미(米)라고 붙이고….
“그런 것 안 합니다. 이영문이가 생산한 쌀이 가령 태평미라는 이름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칩시다. 1년에 400가마 남짓 출하하는데, 서울의 어떤 백화점에 200가마, 부산의 한 백화점에 200가마를 납품했단 말이에요. 그럼 백화점에서 그 200가마 팔고 나면 손털고 말 것 같습니까. 1년 내내 태평미 팝니다.”
―농비가 제로(0)라고 했지만 기계를 빌려 쓰는 경우 기계삯도 있을 것이고…생산비가 얼마나 듭니까?
“우선 이 지역에서 일반농법으로 농사 짓는 경우를 예로 들어봅시다. 남의 농기계를 빌려서 짓는 경우를 기준으로 할 때, 200평 한 마지기를 기계로 갈아주는 데에 1만5000원이고, 써레질하는 데에 역시 1만5000원이 듭니다. 이앙기로 모를 심는 데 2만원이고, 수확해주는 데에 2만원입니다. 제초제며 비료값이 마지기당 1만5000원 정도 듭니다. 여기다 종자값 등 기타 경비를 합하면 200 평당 13만원에서 18만원이 듭니다. 그럼 태평농법은 어떠냐. 보리나 밀을 벨 때 기계를 빌려 쓰면 2만원인데, 밀·보리를 수확하면서 동시에 벼를 파종합니다. 기계가 한 번만 논바닥을 지나가면 끝이에요. 벼 수확할 때에는 보리파종을 동시에 해버리고… 한 번에 2만원이 드는데 그걸 수확비용에 넣어야 합니까, 파종비로 계산해야 합니까. 두 가지 중 한 번은 빼줘야 하지 않습니까.”
굳이 계산하자면 마지기당 1만원이 든다는 얘기다. 더구나 수만 평 농사를 혼자 ‘태평’ 하게 어슬렁거리며 관리할 수 있으니 인건비 부담 역시 전무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농비 제로’가 빈 말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판매가는 일반농법으로 생산한 쌀보다 약간 비싸다. 그야말로 무공해 청결미인 셈이니 품질면에서 우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농사 현장을 둘러본 소비자 중에는 “생산비가 전혀 안 드니 쌀값을 더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더 싸게, 혹은 같은 값으로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씨의 행복한 고민이다.




개인적 실험인가, 혁명적 농법인가




이영문씨의 태평농법을 극히 특이한, 그리고 개인적인 한 실험으로 좁혀볼 것이냐, 혁명적인 농사법으로 받아들여야 옳으냐 하는 것을 필자로서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태평농법이 너무 황당하게 들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전국의 모든 농민이 기존 농사법을 집어치우고 태평농법으로 전환해서 성공적인 영농을 해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한국농업=쌀농사’라는 등식이 당연하게 들릴 정도로 주곡인 쌀 의존도가 높은 우리 실정에, 이 농법은 우리 농정사에 가장 획기적인 혁명이 아닐 수 없다. 농지개량조합과 수세 징수 문제로 티격태격할 필요도 없고, 전국의 농약·비료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며, 비싼 돈 주고 농기계를 수입해올 필요도 없을 것이고, 농촌 일손 부족 문제도 옛 얘기가 된다. 생산비가 제로에 가까운데다 글자 그대로 무공해 농산품이니 가격 경쟁력이 현저히 높아져서 쌀시장의 전면개방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된다. 또 이 농법은 이모작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운동본부까지 차려서 우리 밀을 살리자고 외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토양을 전혀 파괴하지 않고 자연을 자연답게 존중하면서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서도 모방한 이씨의 태평농법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이영문씨의 명쾌한 대답은 ‘문제가 없다’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은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이미 곡창인 호남지역에서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영문씨를 찾는 농민들도 1년이면 수천명에 이른다. 여름철에 와서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갔던 농민들이 가을 수확기에 와서 보고는 ‘과연!’ 하며 돌아간다.
―그러니까 일반 농사 방법으로 벼를 재배하던 사람이 당장 내년부터라도 보리 베어내고 마른 논에 볍씨 뿌려서 농사 지을 수 있다는 얘깁니까?
“수십년 동안 땅을 갈아엎고 독한 농약 쓰고 화학비료 쓰고 해온 땅을 단번에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3∼4년 후면 땅이 본연의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그 때 땅을 향해서 ‘그동안 괴롭혀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고 큰절 한 번 올린 다음에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됩니다.”
―정부에서는 태평농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몇 년 전만 해도 위험한 농법이라고 농민들을 말렸는데 지금은 최소한 말리지는 않고 있는 단곕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작물시험장 재배과에 전화를 걸어 태평농법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 농법을 잘 안다는 김순철 박사의 얘기는 이렇다.
“우리 실정상 벼농사는 생산성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태평농법의 생산성은 불안한 상탭니다. 이런 상황에 태평농법을 일반화하는 것은 모험이지요. 물론 토양을 살리는 환경친화 농법으로 나름의 의미는 있습니다.”
개인이 소규모로 그런 방식의 농사를 시도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으나 일반화하기는 위험이 따른다는 얘기였다.
그런데도 이씨에게는 종자를 보내달라는 주문이 쇄도한다.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보고는 싶은데, 땅을 갈아엎고 농약과 비료를 쳐서 수확한 벼를 종자로 하는 것보다는 태평농법으로 수확한 볍씨가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모방의 천재인 일본 사람들이 이씨의 농법을 배워가서 벼농사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씨의 무경운 이모작 직파농법(일명 태평농법)을 글자 하나만 바꿔서 ‘불경운 이모작 직파농법’으로 명명해놓고 있다. 한국에서 배워왔노라고 얘기하기가 싫은 탓일까.




두 아들도 농업전문학교 졸업반




이씨의 태평농법은 벼농사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 그는 고추나 배추, 상추, 시금치, 파 등도 경운하지 않고 재배한다. 그는 그런 채소들을 가을철에 파종한다. 식물은 밤을 감지하기 때문에 밤에 자란다, 따라서 밤이 길어지면 결실도 크다, 그래서 가을에 심는다는 것이다. 배추며 상추가 겨울에 얼어죽지 않느냐고 이씨에게 물었다간 또 한참 동안 지청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비닐하우스가 생기면서 배추, 상추가 요즘처럼 됐지, 본시 그것들 모두가 월동식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구마나 감자를 캘 때 알맹이만 빼내고 줄기가 어지럽혀져 있는 상태에 구멍을 내고 그 자리에 마늘을 심는다. 그래야 이듬해 잡초가 적게 난다는 설명이다. 한 마디로 땅에서 자란 것 중에서 먹을 것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두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의 두 아들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한국농업전문학교 졸업반이다. 자식들이 가업으로 전승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농사 짓는 얘기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주겠느냐는 취지에서 자식들한테 진학을 권했는데, 아버지의 농법하고는 반대되는 지식만 가르치니 공부할 맘이 안 난다고 투정이 대단하단다.
주로 벼농사 얘기만 소개했으나 사실 쌀 얘기는 그의 삶을 설명하는 데에는 그야말로 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파도의 힘으로 손쉽게 전기를 일으켜 축전하는 파력 발전장치를 손수 만들어 그 아이템을 대덕연구단지에 넘겨줬고, 시화호같이 썩어가는 담수호를 살려내기 위한 그 나름의 실험을 몇 년째 하고 있다. 썩어가는 호소(湖沼)를 살릴 수 있는 그의 비책을 잠깐 들어보면 이렇다.
“부력 있는 천을 물 위에 띄워놓고 볍씨를 뿌립니다. 그러면 벼뿌리가 부영양화시킬 수 있는 물질을 영양분으로 흡수하게 되니까 물이 살아납니다. 또 햇볕을 차단하게 되니 부영양화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농사 짓는 얘기와 땅에 대한 철학, 그리고 태평농법에 대한 상세한 얘기는 그가 최근에 펴낸 책 <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양문출판)에 담겨 있다.
이영문씨, 그는 이 진땀나는 농번기에 보리와 밀이 바람에 물결치는 자신의 들판을 태평스럽게 바라보고 서 있다. 속으로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농민도 좀 쉬자.

 

-- 신동아 99년 7월호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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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켈로그 생긴다-농림수산식품 업무보고

 

이르면 올해 말 미국의 선키스트·켈로그 같은 대형 농수산 식품회사가 생길 전망이다. 고령화하고 있는 농어촌에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농어촌 뉴타운’도 조성할 계획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농식품 기업과 농어업인이 공동 출자하는 식으로 ‘농어업 전문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자체 브랜드 개발로 경쟁력을 키우고, 나아가 농수산물의 국내 유통 및 수출까지 전담하는 회사다. 한국의 농어업이 덩치를 키워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마련한 조치다. 정부는 이를 위해 300~500㏊ 규모의 간척지를 30~50년간 장기 임대해주고 경지 정리, 용수로 개발 등 인프라 구축은 물론 시설자금도 융자해줄 계획이다.

또 유통구조를 단순화해 농수산물을 싸게 공급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시·군마다 지역 생산물의 3분의 1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유통회사를 설립한다. 이들 유통회사와 농어업 전문회사에서 생산·가공된 농수산물은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형마트·외식 체인점 등에 전달된다.

농어업 전문경영인도 키운다. 정부는 내년까지 다른 산업 임원급 가운데 100명을 선발해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교육시킨 뒤 농어업 전문회사·유통회사를 운영할 경영인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농촌에 거주하기를 꺼리는 30~40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춘 뉴타운을 조성하기로 했다. 올해 공급 예정인 국민 임대주택 100만 호 중 일부를 활용해 전원형 임대주택 단지를 조성한다. 뉴타운 내에는 보육시설과 유치원을 설치하고, 영·유아에 대한 양육비도 지원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전국 10여 곳에서 시범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놀고 있는 농지를 생산적으로 쓰기 위해 농지·산지에 대한 각종 규제도 대폭 풀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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