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엔 두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jtbc에서는 <나의 해방일지>가 tvN에서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기다려진다. 



<나의 해방일지>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맴돈다. 

도대체 평상시에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써봤을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글로 표현됐을 때는 자연스럽지만 말로 드러날 때는 어색해지는 단어들이다. 소위 입말로 쓰지 않는 단어가 입말로 쓰이면서 뇌리에 박히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 첫 번째 단어는 '추앙'이다. 맨 처음 이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는 정말 검색사이트를 찾아서 추앙이라는 단어를 치고 그 뜻을 되새김질했을 정도였다. 사랑이 아니라 추앙! 이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추앙받고 싶어진다.

두 번째 단어는 '해방'이다. 일본 치하에서 해방됐을 때의 그 해방 말고 일상적인 말로써 해방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낸 적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어딘가에 묶여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해방을 꿈꾼다는 것을.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래가 입 안에서 흥얼거린다.

한수와 은희의 첫사랑과 돈에 얽힌 줄타기는 다소 힘이 약해 보였지만, 영주와 현의 임신으로 인한 인권과 호식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강렬하다. 사건으로 기억되는 <우리들의 블루스>의 이야기는 이 사건들 사이로 흐르는 노래가 감정을 출렁이게 만든다. 김연지의  '위스키 온 더 락' 부터 시작해 10센티의 '포 러브'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물결을 타고 흐르는 OST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는 슬로건이 노래를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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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정보없이 보게 된 jtbc주말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회를 보고 있자니, 왠지 [나의 아저씨]가 자꾸 연상이 됐다. 조금은 우울한 듯 보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동네친구>들이 등장하는 모습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나의 해방일지]의 작가를 찾아보니 [나의 아저씨]를 쓴 작가(박해영)였다. 



[나의 아저씨]가 개인적으로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동네친구들의 찐한 우정 덕분이었다. 아이유가 분한 여주인공이 낭떠러지 앞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힘을 얻은 것이 이 우정 덕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따듯한 감성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드라마였다. 최근 [나의 아저씨] 드라마 대본이 책으로 나오면서 또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경기도 외곽의 산포시에 살고 있는 세 남매를 주요 인물로 그리고 있다. 청춘의 많은 시간을 출퇴근에 사용하고 있는 이 세 남매의 외로움과 우울함이 또 어떤 모습으로 치유가 될지 궁금해지는 드라마다. 특히 막내 염기정은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와 닮은 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이유의 대담함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보자면 I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기정은 "인간관계가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정이 집에서 아버지 일을 봐주고 있는 외지인 구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명령한다. <추앙>이라니.... 구 씨는 추앙의 말뜻을 찾아본다. 과연 추앙은 기정이 생각하는 노동의 인간관계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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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만 잘 하면 456억원을 벌 수 있다고? 누가 참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패배는 죽음이라.... 머뭇거려지는가. 목숨을 걸기엔 부족한 액수라서? 아니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으니까? 그런데 이승이 지옥같다면 게임에 참가할 마음이 생길까.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몰고 있는 <오징어 게임>을 보았다. 1화를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일본 만화 <도박 묵시록 카이지>의 한국판 게임 버전이었다. 물론 카이지는 게임이 도박이라는 것이고, 오징어 게임은 한국의 전통(?) 놀이라는 것이 다르다. 여기에 더해 아주 큰 차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공정성이다. 



카이지에서는 도박 게임의 결과가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되어진 상태로 게임이 진행된다. 주인공인 카이지는 이런 조작을 간파하고, 오히려 불리함을 이로움으로 바꾸는 통쾌한 반전을 펼친다. 반면 오징어 게임은 게임의 주최자가 게임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관리한다. 미리 다음 게임을 알고서 유리한 선택을 취했던 참가자를 공개처형할 만큼 신경을 쓴다. 소위 말하는 부정부패나 비리는 없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뛰고 있는 운동장만큼은 현실과는 달리 기울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로또는 1,000원을 투자해 수십억원을 벌 수 있는 도박이다. 결과는 순전히 운에 달렸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운이 적용된다. 1,000원의 가치는 동등한 1등 확률을 보장한다. 너무나 희박해서 그렇지... 그런데 화천대유 사건은 어떤가. 로또와 다름없는 대박을 얻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정보를 입수하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힘의 커넥션이 작용했을 것이다. 화천대유가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그 불공정성에 있다. 한편으론 내가 그 불공정의 특혜를 입을 수 없다는 좌절과 분노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일확천금을 목표로 살고 있는가는 논외로 치고 말이다. 


주인공인 이정재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등의 각종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참가자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연대였다. 물론 죽음 앞에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이기기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을 갖고서 게임에 임했는데 우승을 차지하다니... 정말 용케도 우승을 차지한 셈이다. 선한 마음의 선한 결과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징어 게임 속에 등장하는 게임들은 얼핏 보면 공정한듯 보인다.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 중의 하나가 운이기 때문이다. 달고나의 모양이라든가, 건너뛰기의 순서 등은 그야말로 운발이다. 하지만 달리기가 빠른 이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유리 전문가의 건너뛰기, 힘이 강한 자의 줄다리기 처럼 필시 누군가에겐 유리한 게임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참가자들이 모두 똑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처럼 공격자가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도록 암행어사를 외치기 전까지는 한 발로 뛰어다니도록 핸디캡을 만드는 등의 보완요소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게임의 공정성도 중요하지만(공정성에 대한 의견통일은 지난하다) 그 결과가 몰아주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승자독식! 공정과 함께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이 승자독식의 결과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456명 중 오직 1명 만이 456억원을 차지하는 게임이 정말 공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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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가 끝났다. 직장 내 애환을 담은 이 드라마는 신입사원의 적응기가 아니라 N년차 직장인의 생존기였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기 위한 직장인들의 눈물겨운 사투기였다. 


드라마의 결말은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환상을 담아냈다. 결국 직장에서 쫓겨났지만, 내 사업을 차려서 멋지게 성공함으로써 나를 쫓아낸 직장에 복수하는 짜릿한 상상말이다. 드라마니까,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쾌감을 준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해피엔딩이 결코 해피하게 보이지 않는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주인공은 그렇게 일에 매달리는 것일까. 미쳐야 미친다고 했지만, 주인공이 코피 쏟아가며 야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분투를 넘어, 자신의 사업을 차리고 나서도 그는 일에 매진한다. 집에 홀어머니와 어린 딸아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일에 매달리도록 만들었을까. 정말 일이 즐거워서? 하루종일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즐거운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일이 전부인 것일까. 


자기사업, 쫓겨난 회사에 대한 통쾌한 복수, 성공...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꿈구는 이것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근면, 성실, 자기 희생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지만, 정녕 그 덕목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버트란트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글을 썼다. 말 그대로 게으름을 피우라는 것이 아니라 여가를 충분히 갖는 삶에 대한 찬양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여가는 왜 우리로부터 도망갔는지, '미치지 말고'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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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너는 나의 봄]이 끝났다. 김혜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그 탓인지 시청률이 그만큼 나오지는 못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였다. 젊은이들의 사랑을 담은 멜로적 측면과 살인 사건을 다룬 형사물의 냄새를 잘 버무려, 세상은 살 만하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것은 어릴적 상처다. 마지막회 전인 15화에서 피투성이가 된 발로 길을 걷는 세 명의 아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 아이들이 서로 다른 어른을 만났는데 한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신발을 벗어 주었고, 또 한 아이는 남을 위해 더는 자신에게 상처를 내지 않도록 숨겨졌지만, 다른 아이는 신발이나 위로 대신 비난이나 학대를 받았다. 세상에는 발이 없는 아이도 있는데 너는 신발이 없다고 징징댄다고. 그날의 일은 세 명의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주인공인 주영도는 엄마의 신을 신었던 아이와 형에게 신을 벗어주지 못했던 아이는 타인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힘겨울 수 있겠지만 끝내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건 죄책감일 뿐 죄가 아니니까. 하지만 다른 한 아이는 아무도 약한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좌절이 분노가 되는 발화의 순간이 올 수 있다.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생겨나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트라우마는 어른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갑자기 툭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갉아먹어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거나, 극단적으론 목숨마저 앗아갈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타인에게 화살을 돌릴지도 모른다. 이런 불행을 막아주는 것은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다시 마주치되, 그를 응원해줄 사람이 곁에 있어, 함께 극복해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네받았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목구멍에 걸린 칼날을 뽑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아름다운 세상은 분노를 유발하는 현실에서 잔잔한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럴 때면 항상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오 헨리의 단편 [마녀의 빵]이다. 누군가의 선의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섬뜩하다. 다만 우리는 재앙이라는 결과만을 보지않고 선의라는 그 의도를 보는 마음도 함께 가졌다는 것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그 누구라도 [너는 나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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