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4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고깔모자 아틀리에>는 4월 둘째주 현재 2회까지 나왔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파스텔 풍의 배경과 따듯한 느낌의 작화가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평소 액션 장르를 좋아해 피 튀기는 모습을 주로 보아왔던 터라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이야기는 가벼워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꽤 생각할 거리를 준다. 마법이 실생활에 녹아들어 펼쳐지는 세상. 하지만 마법은 오로지 마법사로 태어난 이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일반인들은 결코 마법을 행할 수 없다. 코코는 재단사 어머니 밑에서 일을 도와주며 마법사를 꿈꾸는 평범한 아이다. 하지만 마법사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마법을 펼칠 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날 이 마을에 키프리라는 마법사가 나타나고, 코코는 우연찮게 마법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훔쳐보게 된다. 그리고 마법의 비밀을 알고서 어렸을 적 한 고깔모자 마법사로부터 받았던 마법책을 흉내내어 마법을 펼친다. 하지만 이 마법은 주변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이었다. 집과 함께 엄마도 돌이 되어버렸다. 코코는 키리코를 따라 그의 아틀리에로 가서 엄마를 다시 되돌릴 마법을 펼치기 위해 본격적으로 마법을 배우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친절하게도 왜 마법사만 마법을 펼칠 특권이 주어지는지를 이야기 해 준다. 인간이 모두 어떤 일이든 가능한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자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일종의 대표자들이 모여 마법에 제한을 두고, 그 마법은 오직 비밀을 잘 지킬 수 있는 한정된 이들에게만 전파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펼쳐진 마법들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는 것은 절대 불허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마법만이 허용된다. 


코코는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았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사건으로 인해 흑화된 마법을 펼치게 됐고, 이제 이 흑화된 마법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기억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이로인해 코코는 마법을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은 왜 전쟁을 일으킬까. 그건 능력의 확장과 연관되어진 것은 아닐까. <고깔모자 아틀리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과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코코의 세상처럼 능력을 제어하기 위한 특권층을 만드는 것이 옳은 일일까. 특권의 벽을 깨고 마법을 배우는 코코가 결국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결말을 향해 갈 것이 확실(?)해 보이는 <고깔모자 아틀리에>를 통해 전쟁과 특권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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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를 맞이한 <사냥개들>은 복싱 이외 다채로운 무술이 눈길을 끈다. 시즌1이 복싱을 사랑하는 두 청년의 혈투였다면, 시즌2는 주짓수, 그래플링, 무에타이, 칼리 아르니스(필리핀 단검 무술), 레슬링을 비롯해 CQC(실전 격투술) 등등 다채로운 무술을 상대로 액션신이 펼쳐진다.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생존 격투가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액션을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건우(우도환)와 우진(이상이)에게 빌런 보스 임백정(정지훈,비)이 불법 글로벌 격투 경기에 참여할 것을 강요한다. 전 세계적으로 400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어 판돈이 크다. 한 번 게임에 참여해서 승리까지 하면 150억원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건우는 이를 거절한다. 불법 격투에 참가시키기 위한 임백정과 이를 거부하는 건우 간의 싸움이 극을 진행하는 큰 줄거리다. 이야기 자체 만의 매력은 크지 않다. 액션을 위한 멍석깔기라고 보면 되겠다.


시즌2의 가장 큰 매력인 액션 장면은 정지훈의 표독스러운 악인 연기와 그 밑에서 행동대장 역을 맡은 특수부대 출신 윤태검(황찬성)의 연기로 빛을 발한다. 윤태검은 주짓수 적 요소가 가미된 발차기 중심의 실전 격투술로 화려함을 뽐낸다. 임백정은 건우와 마찬가지로 복싱이 주무기다. 왼손 오른손을 다 쓰는 양손잡이로 오소독스와 사우스포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복싱을 주로 하는 둘의 대결은 액션의 합이 정교하게 잘 짜여져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다. 


다양한 현대의 격투 무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강추한다. 이야기의 재미를 좇는 이들에겐 비추다. 하나 하나 격투 장면이 이어질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이 상당하다. 마지막 장면은 시즌 3를 예고하고 있는 듯 한데,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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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3일 오픈한 넷플릭스 일본 시리즈 6부작 <이쿠사가미;전쟁의 신>은 마치 <오징어게임>을 일본 메이지유신 시대로 옮겨 사무라이들을 참가자로 한 서바이벌 게임(따지고 보면 <오징어게임>보다 먼저인 <배틀로얄> 계열이라 하는게 더 적확하지 않을까 싶다)으로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근대화로의 대변혁시기로 사무라이라는 계층 또는 집단이 몰락하고, 이들이 차고 있던 검도 모두 반납해야 하는 시기였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하는 직업이 변하듯 사무라이는 그 변화에서 뒤처지는 신세가 된 것이다.(AI 시대의 도래로 많은 이들이 직업을 잃지 않을까 걱정하는 현대의 우리도 비슷한 신세라고 할까.) 하지만 아직 과도기인 관계로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꾀하는 이들에게 사무라이는 언제든 이 변혁을 방해할 수 있는 집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에 이들을 완전히 사라지게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닌 강경파들이 사무라이들을 상금으로 유혹해 서바이벌 게임으로 유혹하면서 이 시리즈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시리즈의 성패는 드라마적 요소에 있다기 보다는 과연 사무라이들의 서바이벌 즉 검투를 비롯한 다양한 격투 장면이 어떻게 묘사되느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이쿠사가미;전쟁의 신>은 꽤 성공한 시리즈가 될 것 같다. 모든 액션 장면마다 최대한의 공을 들이지는 않아 보이지만, 각 회마다 눈길을 끄는 격투장면이 있다. 특히 검을 다루는 주인공의 전광석화같은 검술이 매력적이다. <바람의 검심>을 연상시키는 재빠른 칼부림에 혀를 내두른다. 여기에 홋카이도 출신의 아이누 카무이코차의 활은 마치 요술을 부리듯 변화무쌍해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영화 <최종병기 활>이나,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원티드>의 총알이 연상된다.)  


물론 이런 액션 장면만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계속 잡아끄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교토에서 도쿄까지 가야하는 이들의 여정과 과연 마지막 도착지인 도쿄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도쿄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 지 등등의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다만 이 이야기의 재미는 시즌1이 아닌 시즌2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듯 싶다. 액션의 재미와 이야기의 흥미가 더욱 진해지길 바라며 시즌2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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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캄보디아 범죄집단의 보이스피싱과 사기범죄로 인한 사건으로 한국이 들썩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돈의 유혹에 이끌리거나 속아서, 일부는 자발적으로 이 범죄에 엮이면서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 이런 범죄집단이 동남아 국가 사이에서 권력과 연계해 매우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범죄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범죄에 가담한 이들 사이에서도 인권 유린과 고문 등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런 보이스피싱을 다룬 한국 영화도 있다. 2024년 개봉한 <시민덕희>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고, 2021년 <보이스>는 보이스피싱의 범죄집단과 본거지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범죄의 배경이 된 곳은 모두 중국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오픈한 <회혼계>는 대만에서 만들어진 9부작 시리즈 물로 서기, 리신제가 주연으로 나온다. 벤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이 범죄조직이 이번 캄보디아 사건과 닮아 있어 관심을 끈다. 


시리즈 <회혼계>는 벤카의 보이스피싱 범죄 집단에 감금되었다 결국 목숨을 잃거나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두 어린 소녀의 엄마가 벌이는 복수극이다. 두 엄마는 기어코 이 범죄집단의 두목을 기소해 결국 사형까지 이끌어낸다. 하지만 막상 사형이 집행되고 나니,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다. 그냥 이렇게 사형으로 끝내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의문마저 든다. 두 엄마는 목숨을 빼앗는 것이 복수의 끝이 아니라 딸들이 당했던 고통을 고스란히 똑같이 안겨줘야 만이 복수라 할 수 있다며, 새로운 작전을 꾸민다.


실은 여기서 이 시리즈물의 진입장벽이 생긴다. 현실적인 미스터리물이자 복수극이 이어지기 위해 죽었던 사형수를 살려내는 판타지적 요소가 끼어든다. 온전한 시체가 있다면 단 일주인 간 되살려낼 수 있는 주술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시리즈물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진입장벽을 뛰어넘어, 즉 이 전제를 인정하고 시리즈를 지켜본다면 이 일주인간의 환생이라는 제약이 극의 전개에 긴장감을 더하고, 반전에 반전을 기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극의 재미는 배가 된다. 


<회혼계>의 재미는 사건의 반전이 이어진다는 점과 함께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다는 부분에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엮이게 된 소녀들은 자신의 부모 또는 경찰들이 자신의 소식이 알려지면 분명 찾아와 사건을 해결하고 자신들을 꺼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범죄집단은 이들이 찍은 영상을 부모에게 또는 외부에 보내는 것처럼 속여 놓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즉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절망감을 안긴다. 여기에 더해 피싱범죄의 목표치를 정해 이를 달성하면 내보내주겠다는 희망을 전하며, 실제 목표달성을 한 소녀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게 만든다. 물론 이것도 모두 가짜다. 소녀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육체적 고문뿐만이 아니라 이런 희망고문이다. 


여기에 더해 소녀들이 범죄조직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실패의 원인을 서로에 대한 의심으로 만듬으로써 심리적 고통을 더욱 가한다. 친구들 간의 이 불신은 다시 이들 부모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믿음이 흔들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극을 더욱 긴장 속으로 몰아간다. 


<회혼계>에서는 이들 범죄조직은 다시 이교도 집단과 맞물려 있고, 이교도 집단은 권력층과 엮이며, 사회 곳곳에 깊숙이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범죄집단의 견고함과 일상성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협적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범죄조직의 실체와 반전으로 이루어진 사건의 전개, 등장인물들의 흔들리는 심리 <회혼계>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다만 마지막의 반전은 조금 과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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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시청하다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일인 다니엘이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앞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반성과 치유의 상징으로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조성된 공간이다. 직접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느끼게 되는 공포감, 고립감, 불안감 등등을 통해 학살당한 유대인에 대한 공감과 위로, 반성과 치유를 체감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 말은 우리가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요즘 독일 젊은이들은 왜 자신들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하느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자신들은 전혀 이 학살과 관련이 없는데" 대략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사건이 세대를 거쳐가면서 그 기억을 갇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갈 때, 그 사건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그리고 전달받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과거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런 사건들을 잊히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추모 공간일 것이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또한 이런 측면에서 조성된 공간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어질 뿐, 자신의 할아버지조차 겪어보지 못한 일로 젊은이들이 죄책감을 가져야 할 것인지는 충분히 가져볼 수 있는 의문일 수도 있겠다.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바로 이 부분을 다룬다. <진격의 거인>은 과거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탄압과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복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되풀이 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 복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다니엘이 말한 것처럼, 과거 역사 속의 탄압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이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탄압과 전쟁과 무관했던 일반인과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우리가 분노의 화살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가해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국가와 정부의 사과와 과거의 일이 잊혀지지 않도록 추모하는 일은 마땅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책무가 역사 속에 휩쓸려 갔던 일반인들의 후손에게까지 강요되어질 수 있을까. 


우리가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무리 과거와 무관한 젊은이들이라도 역사를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역사를 잊게 만들지 않는 작업은 국가와 정부의 몫일 것이다. 다만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 역사를 기억하되, 죄책감 대신 평화를 향한 도전의식이 싹트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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