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19도~25도 비(장마)


지난번 1시간 동안 쏟아붓듯 퍼붓던 비로 인해 토사류로 물바다가 됐던 약초밭. 옆밭의 배수로를 잘못 파놓은 탓이었다. 그전엔 어떤 비가 쏟아져도 끄떡없었으니 말이다. 실제 배수로로 물길이 생겼고, 그 물길을 따라 물이 쏟아져서 집의 사면에 흙이 다 쓸려내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주변 흙을 모아 물길을 막아 물이 넘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지난번 임시방편의 효과로 장맛비에도 잘 견뎌주던 배수로가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비의 양이 훨씬 많은 탓이었는지 암반 위에 있던 겉흙이 통째로 쓸려내려왔다. 흙을 잡아주고 있던 풀들도 그대로 흙과 함께 내려앉았다. 흙이 쓸려내려간채 바위의 표면만 남은 사면이 안타깝다.


정말이지 수단과 방법만 있다면 옆밭의 배수로를 다 메워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쨋든 빗속에서 흘러넘치는 옆밭의 배수로 부분을 다시 보수하고, 토사로 막힌 약초밭 주위의 배수통과 배수로를 정비하니 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고 흙이 마르면 쓸려내려온 토사를 옮길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느티나무 묘목을 심은 옆밭은 온통 풀밭이 되었었는데, 지지난주 제초제를 뿌려 풀을 온통 죽여놨다. 풀이 죽은 자리는 누렇게 변해 흉물스럽다. 오로지 돈으로 생각하는 묘목 하나만을 키우려는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생태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니 처참한 생각이 든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처리하니, 배수로 하나만 하더라도 옆집에 대한 배려없이 그냥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 귀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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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19~28도 비


시골에서 콩은 밭을 마련해 심기도 하지만 짜투리땅에도 심겨진다. 요즘같은 경우는 고라니 피해가 걱정이지만, 일단 심어놓으면 크게 손가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아도 잘 크는 것이 콩이다. 



몇년째 이맘 때면 만나는 풍경이 있다. 정말 45도 경사는 너끈히 될 듯한 사면에 할머니 한 분이 착~ 달라붙어서 콩을 심는다. 고추밭 옆의 경사면을 조금도 남김없이 콩을 심으신다. 콩이 나고 함께 풀도 자라면 할머니는 또 경사면에 착~ 달라붙어 풀을 뽑으신다. 이정도 규모면 짜투리땅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콩밭이다. 전국에서 가장 경사가 큰 콩밭일지도 모른다. 정말 스파이더맨처럼 바짝 엎드려 이 밭을 다 매고 계시는 것이다. 


할머니의 억척스러움에 때론 감탄을, 때론 서글픔을, 때론 경이로움을, 때론 아련함을 느낀다. 억척스럽지 않으면 안되는 삶의 고달픔이 쪼그려 앉은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마디에서 묻어난다. 흙 한 줌 버려두지 않는 알뜰함은 시골 아낙네의 몸에 배어있다. 무더운 여름을 넘길 저 콩은 머지않아 누군가의 밥상에서 따뜻한 김을 모락모락 피어내며 피와 살이 될 것이다. 미끄러지거나 굴러 떨어지지 마시고, 부디 편안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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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20도~24도 비



인형인가? 인테리어 아니 아웃(?)테리어인가? 식당 문앞 위에 제비집이 비현실적으로 지어져있다. 게다가 제비 6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고 있는걸 보자니, 내가 제비를 구경하는 것인지, 제비가 사람 구경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이 집 식당만이 아니었다. 다른 가게들 문 위에도 제비집이 하나... 둘... 거의 한 집 걸러 하나씩은 있는듯 보였다.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의 목도시장내 풍경이다. 


어렸을 적 흔하게 보던 제비도 어느 순간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제비를 보면 반가울 수가 없다. 꼭 한 번 쯤은 박씨를 물고올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목도시장내 가게 주인들은 제비를 쫓아보내지 말자고 약속이나 한 듯 보인다. 사람들을 많이 많이 불러다주라고 제비에게 소원을 빌고 있다는 듯 말이다.  


실제 제비는 익조로 분류한다. 제비 한 마리가 1년에 5만 마리의 벌레를 잡는다고 하니, 나같은 어슬렁 농부에게는 최고의 일꾼인 셈이다. 우리 집에도 한 번 놀러와 주면 좋으련만. 맨날 손으로 벌레를 잡고 있자니, 제비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마치 놀부가 '제비 몰러' 나가듯 말이다. 물론 제비 몰지는 않고, 귀하게 초청하고 싶다.  


제비도 제비지만 제비집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난다. 밑에 받쳐주는 받침대 없이 맨 벽에 흙과 지푸라기들을 모아서 시멘트로 바르듯 단단하게 집을 지어놨다. 이렇게 한 번 지어놓은 집은 내년에도 그대로 쓰는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들이 또다시 자기 집으로 찾아올지도 궁금했다.


제비가 집 짓듯 스스로 자기가 살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옛 친구를 만난듯 반가운 제비다. 환경의 변화로 사라져가는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이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이들과 함께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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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2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살이님 덕분에 오랫만에 제비집과 제비들을 보네요. 일부러 사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한듯한 제비들이 앙증맞습니다. ^^

하루살이 2020-06-26 20:38   좋아요 0 | URL
저 말고도 대여섯명이 사진찍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비가 사람 구경하고있는듯 하더라구요 ^^
 

집에는 개가 두 마리 있다. 올해로 3살이 된 녀석들인데, 큰 놈은 리트리버 믹스로 누렁이에 가깝다. 작은 놈은 큰 놈보다 2~3개월 늦은데, 비글 믹스다. 큰 녀석은 코코, 작은 녀석은 초코다. 딸내미가 지어준 이름이다. 

두 녀석 모두 말썽꾸러기이다. 뭐, 말썽꾸러기가 아니라면 개가 아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초코는 샘이 많아서 코코랑 잘 놀면서도 주인이 코코쪽으로 가면 코코에게 덤빈다. 물론 항상 코코에게 목덜미를 물리면서도 말이다.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다. 


가끔 줄이 풀릴 때가 있는데, 초코는 이때다 싶어 옆 마을까지 줄행랑을 친다. 주인이 부르면 힐끗 뒤돌아보고서는 냅다 도망친다. 한여름엔 이놈을 잡으려 뜀박질을 하다보면 땀이 한바가지다. 코코는 한바퀴 휘 둘러보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올해 옆밭엔 느티나무 묘목이 심겨졌다. 묘목만 심어놓은채 관리를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다. 그때문일까. 올해는 유독 못보던 동물들이 집 근처에 서식하는듯 하다. 우려스러웠던 것은 뱀이다. 2년 전 꽃뱀을 한 번 봤었는데, 초코 옆을 스쳐 집안으로 들어갈뻔 했다. 초코는 멀뚱멀뚱 뱀을 쳐다만 볼뿐 짖지도 않았다. 


집에서 짓는 농사는 모두 친환경이다보니 농약을 치지않는다. 가끔 개구리가 펄쩍펄쩍 도망을 간다. 즉, 뱀의 먹이가 천지에 깔려 있다는 소리다. 보름전 집 밖에 설치된 장독대 근처로 뱀이 다가오는게 보였다. 얼른 내쫓았지만 소름이 돋았다. 뱀이 자꾸 집쪽으로 오면 안되는데... 걱정이 앞섰다. 



어제 초코와 코코에게 물과 사료를 주러 밖으로 나서는데, 초코 주위에 줄 같은게 널부러져 있다. '뭐야, 이 녀석! 또 사고를 친거야?'



꼭 무슨 호스를 닮은 듯한 모습. 하지만 심상치않다. ㅜㅜ



개 목걸이에 대롱대롱 걸려져 있는 것은 뱀의 머리부분. 아윽! 뱀이 세 동강이 난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대단한데~. 2년 전 멀뚱멀뚱 뱀이 지나가는 걸 쳐다보기만 했던 놈이 뱀을 물어뜯은 것이다. 제법 어른이 된 셈이다. 혹시나 물리진 않았을까 걱정이 됐지만, 한참동안을 지켜봐도 평소와 크게 다른 건 없어보였다. 


꽃뱀 즉 유혈목이는 대부분 독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독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물론 강한 독이 아니긴 하지만, 일본에선 꽃뱀에 물려 사망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무시할 수만은 없다.


장하다 초코! 자식~ 왠지 든든해 보이는 걸. 말썽꾸러기가 한 몫 했구나. 머리를 쓰담쓰담. 특식이라도 줘야 할텐데...^^;


뱀이 해꼬지를 한 적은 없다. 그런데 뱀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리고, 소름이 돋는 것은 본능적인 것일테다. 혹여 물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작동하는 것이다. 



요즘 잦은 비로 집 벽을 타고 다니는, 그리고 집 안에서도 몇 마리 발견된 노래기도 마찬가지. 긴 몸체에 수많은 다리는 지네를 연상시키고, 지네 독 또한 치명적이기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아~ 이 지독한 외모지상주의라니! ㅜㅜ; 그러나 어쩌랴. 본능에 틀어박혀 이성까지 마비시키는 그 강렬함을. 


하지만, 적어도 인간은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개와 뱀의 본능적 다툼은 말릴 순 없지만, 인간은 적어도 본능적 회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외모가 풍기는 선입견에서 해방되는 길은 무지로부터 벗어나야 가능하다. 특정 외모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것. 거기에서부터 혐오는 조금씩 지워져 갈 수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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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밭 옆으로 복숭아밭이 둘러싸고 있다. 올겨울 기온이 따듯한 덕분에 꽃들이 다소 일찍 피었다. 그런데 4월초 전후로 아침 기온이 영하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과수꽃의 냉해가 걱정된다. 집에서 조그맣게 기르던 모종들도 냉해를 입었으니 말이다.

 

복숭아밭 어르신을 마주쳤다. "어르신, 복숭아꽃 냉해입지 않았나요?"

"뭐, 나야 모르지. 냉해 입었으면 입는거고. 그냥 거둘 수 있는만큼 거두면 되는 거니까."

"아~. 네"

"하기야, 어제도 아침에 물 받아둔 게 얼었더구만. 아직 새벽엔 춥긴 추워"

 

'복숭아 농사 1,2년 지은 게 아니다' 이런 포스가 느껴진다. 하기야, 만약 냉해를 입었다한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에 걱정을 하고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그리고, 맞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침 기온을 올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이미 냉해 피해를 입은 꽃들을 다시 건강하게 살려낼 수도 없는 일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몫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행동이 '하늘에 맡긴다'는 뜻일 것이다. '농사의 반은 하늘에 달렸다'는 의미도 이런 뜻까지 포함한다고 보여진다. 내가 바꾸거나 막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리고 그 결과를 겸연히 받아들이는 마음. 복숭아 농사를 수십 년 지은 농부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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