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팬암 103편 폭파 사건>은 영국 작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총 6부작. 1988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발생했던 민간 항공기 폭파 사고를 다루고 있다. 서독 프랑크프루트에서 영국 런던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 103편이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하며 로커비 마을에 추락해 비행기 탑승자 259명 전원과 로커비 마을 주민 11명 총 270명이 사망했다.(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 중 한 명이 자살을 하는데 이 사망자까지 포함해 271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시리즈는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 수백 명과 로커비 마을 주민, 희생자 가족 등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항공기가 왜 폭발했는지, 누가 이 폭발의 주범인지, 그리고 10년이 흐르고 재판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폭발 원인과 폭발의 주범을 찾는 과정이 스릴러를 연상시킬만큼 긴박하다. 과장됨 없이 담백하게 풀어나가고 있어 오히려 더 긴장감을 더한다. 과연 범인이 어떻게 밝혀지고, 이들이 재판에서 처벌을 받을 수 있을지,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사건의 진행 과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시리즈 <팬암 103편 폭파 사건>의 백미는 로커비 마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난데없는 날벼락 같은 비행기 폭파로 자신의 마을도 초토화 되고 피해를 입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피해자를 수습하는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에 더해 피해자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 실질적 도움을 전한다. 길어봐야 몇 주에 그칠 줄 알았던 사고 수습 과정이 몇 달을 넘어 몇 년에 이르지만, 로커비 마을 사람들의 자원봉사는 계속 이어진다. 타인을 향한 친절이 어떻게 세상에 따듯한 위로가 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특히 이 시리즈 <팬암 103편 폭파 사건>에서는 로커비 마을 주민과 반대로 미국의 행정 관료들과 담당자들의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무관심이 대조되면서,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마음 깊이 알려준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들이 많았다. 과연 우리는 이 사건들로 인해 남겨진 이들을 어떻게 대해 왔을까. 로커비 마을 사람들의 자세가 심금을 울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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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라스트 하우스>는 미국 제작으로 110분 SF 영화다. 요즘 한국 영화 HOF를 비롯해 다수의 콘텐츠들이 소통불가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 영화도 '제발 다른 사람 말 좀 들어봐' 하는 절규가 튀어 나온다. 격리는 곧 죽음일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 인간이 집 밖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단독주택 단지에 살고 있는 한 가족. 한국의 옛 시골처럼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 인지를 알 만큼 교류가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 마냥 그냥 얼굴 정도만 아는 이웃들과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집의 굴뚝에 금이 가는 등 기반이 부실한 징후가 조금 보여 살짝 불안하다. 하루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비가 쏟아지고, 이 비가 접착제마냥 모든 출입구를 틀어막아 집 밖으로 전혀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집 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 통신은 끊겼지만 다행히 물과 전기는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한 가족들은 이웃과 창문을 통해 종이에 글씨를 써 가며 소통을 시작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이웃에 대한 정보가 쌓인다. 반면 전기가 끊기고, 외부와 단절된 상태라 먹을 것도 떨어져 간다. 자신의 이웃집 노부부는 먹을 것이 부족해 결국 아사한다. 주인공이 거주하고 있는 집은 금이 간 굴뚝 덕분에 굴뚝 천장을 열 수 있게됐고, 이를 이용해 미끼를 던져 사냥을 시작한다. 이들 가족은 과연 생존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집을 막고 있던 비의 정체는 무엇일까. 


기발한 상상력의 SF다. 타인과의 소통없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살아가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메타포도 흥미롭다. 비의 정체와 이 비를 내리게 한 것의 정체가 밝혀지기까지는 대체로 수긍이 가지만-물론 몇 가지 과장된 측면도 있다- 미지의 정체가 밝혀지고 난 후 이 미지의 정체의 행동 패턴이 조금 수긍가지 않는다. 주제의 명확성을 위해 논리적 일치가 훼손되는 점이 아쉽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제발 다른 이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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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레전드의 비밀작전>은 영국 작품으로 6부작, 청불이다. 1990년대 초 대처 정부 말기, 영국 전역에 마약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대처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의 밀반입을 막기 위한 작전이 펼쳐진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스릴러다. 꽉 짜여진 각본에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까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강추.


마약의 주요 거래처가 된 런던과 리버풀. 마약의 밀반입을 막기 위해 세관이 잠입수사를 계획한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한다면 세관의 입지는 좁아지고, 대신 경찰의 입김은 더 커질 것이다. 세관은 이 작전을 위해 세관원 중 특수요원을 선발한다.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고, 지원도 거의 없으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특별 교육조차도 변변치 않다. 그렇기에 이 작전을 수행할 뛰어난 역량의 요원이 절실하다. 수많은 지원자 중 4명 만이 선발됐다. 이들은 자신의 실력과 무관한 세관일에 치여 답답한 일상을 살아왔다. 이 일상을 박차고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목숨이 위태로운 것도 감내할 수 있다. 도파민이 터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태세다. 이들은 '레전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가짜 캐릭터를 연기하며 마약상에 접근한다. 이들은 과연 마약상의 유통 과정을 밝혀내고, 영국으로 들여오는 마약을 막아낼 수 있을까.


<레전드의 비밀작전>은 언더커버가 된 세관원의 마약상 퇴치라는 과정이 쫄깃하게 그려진다. 매회 이들의 정체가 탄로날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과연 마약 카르텔을 끊어낼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이 잘 녹아있는 긴장감 가득한 시리즈다. 

여기에 더해 영국의 당시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까지 갖췄다. 관료 조직 간의 영역 싸움과 행정주의, 인종차별 등을 도드라지지 않고 극 중 자연스레 녹아낸 점이 좋다. 더불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지만 이름을 알릴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과 이런 위험한 업무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위태롭게 하는지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 '레전드'라는 캐릭터 속에 빠져들어야만 했던 요원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의 험난함과 결코 불안함은 사라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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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연일 화제다. 감독 필모의 최고작이라는 극찬이 쏟아지고 있다. 해외도 국내도 모두 최고 평점을 받을 정도로 칭찬 일색이다. 172분 동안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눈앞에 그대로 펼쳐내는 점이 놀랍다. 특히 CG를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실제의 물성을 필름으로 잡아내고 있어서 아이맥스가 아니더라도 화면이 전체적으로 묵직하다. 멧 데이먼, 앤 해서웨이. 톰 홀랜드, 샤를리즈 테론, 로버트 패티슨 등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빼 놓을 수 없다. 


다만 <오디세이아>의 내용을 알고 보는 사람들과 모르고 보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테고, 특히 정통 서사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호감이 가는 반면, 최근 우리가 접하는 자극적인 내용과 반전 등의 스토리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CG의 발달로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화면에 익숙한 이들에겐 실제 모습으로 표현되는 극 중 판타지적 요소가 오히려 흥미를 줄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목마라는 전술을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 왕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의 과정과 고향에 돌아와서 자신의 빈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108명의 무뢰배(?)를 처단하는 과정을 그린다. 다만 이 지난한 과정을 시간의 순서대로 보여주질 않고, 고향에서의 현재 상황과 회고 장면을 오가는 식으로 극을 전개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순서대로 정렬하지 않는 것은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어 고향에 돌아와 경쟁자들마저 처단한다는 영웅적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지 않았을까 싶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선택의 상황에 놓인다. 그 선택의 상황은 많은 이들을 잃을 것인가, 소수를 희생할 것인가의 선택지인 경우가 많다. 또한 모든 선택이 이성적 판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감정적 판단도 개입된다. 오디세우스 자신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대부분 희생이 따르면서 그에게는 승리와 생존이라는 자부감 보다는 희생된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둘러싼다. 놀란 감독은 오디세우스의 이 죄책감을 영화의 중심에 놓고 오디세우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당시 이들의 문명을 지탱했던 <제우스의 법> 즉 '낯선 이를 환대하라'는 규칙이 오디세우스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제우스라는 신이 거지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수 있으니, '거지 차림의 낯선 이라도 내쫓지 말고 접대를 하는 것이 좋다'라는 규칙은 절대 법칙에 가깝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 규칙을 이용해 트로이의 목마를 적에게 바치고, 목마 속에 군인들을 숨겨 기습하는 작전으로 전쟁에 승리한다. 반면 고향에서는 환대의 법칙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10년이 넘게 왕의 빈자리를 대신하면서도 그 자리를 넘보는 이들을 내쫓지 못하고 접대를 지속한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돌아와 접대를 받는 이들을 척결한다. 즉 환대의 시대가 끝이 났으며, 그것은 현 문명이 몰락했음을 말한다. 이제 환대의 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어떤 새로운 문명이 도래할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이 각자도생의 시대로 흘러가는 것이 바로 환대의 시대가 저물고 나타난 모습일지도 모른다. 


정통 서사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강추하지만, 이런 서사에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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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사랑하는 아이>는 독일에서 2023년에 공개된 6부작 드라마다. 도대체 극의 전개가 어디로 흘러갈 지 예측할 수 없는 스릴러의 묘미가 가득하다. 다만 후반으로 가면서 범인이 밝혀지고 반전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예측불가능성이 조금 약해지면서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는 아쉬움은 있다. 원작 소설 <사랑하는 아이>는 로미 하우스만의 데뷔작으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지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할 만큼 인기가 많았다. 쾰른 크라임 어워드 2019 수상작이다. 우리나라에는 2021년 번역 출간되었다. 


통제된 곳에서 감금되어 있던 엄마와 아이가 탈출했다. 엄마는 숲 속에서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응급실에 실려간 이 엄마의 인상착의를 수사망을 통해 확인한 경감 브륄은 마티아스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마티아스는 입고 있던 옷과 손바닥의 상처 등을 통해 13년 전 잃어버린 딸 레나라 확신하고 한밤중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 여자는 자신의 딸 레나가 아니었다. 실망감에 병실을 나와 복도로 향하던 그에게 충격스러운 장면이 목격된다. 12살 정도된 여자 아이가 딸 레나와 꼭 닮은 것이다. 직감적으로 이 아이가 자신의 손녀임을 알아챈다. 도대체 레나라고 불리는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자신의 진짜 딸 레나는 어디에 있으며, 레나를 꼭 닮은 아이는 진짜 손녀일까. 더불어 레나라 불리던 여자와 손녀는 알려지지 않은 외딴 곳에 갇혀 있었다. 갇혀 있던 곳에서는 손녀보다 더 어린 남동생도 있다. 도대체 이들을 가둔 이는 누구일까? 레나로 알려진 여자가 범인을 죽이고 탈출했다는데, 과연 진짜 범인일까? 남동생은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을까?   


시리즈를 보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점이 생긴다. 의문이 하나 해결되면 또다른 의문이 생겨나면서 극에 집중하게 만든다. 더해서 의문점 이외에 과연 인간은 완벽히 가스라이팅 당할 수 있을까? 라는 철학적 질문도 던지게 된다. 완벽할 정도로 철저하게 억압된 환경에서 주어진 규율은 그 억압이 해제되었을 때에도 작동할까. 파블로프의 개가 말해주는 조건반사처럼 인간도 조건이 주어지면 반사적으로 행동되어질까. <사랑하는 아이>는 이런 질문을 자연스레 떠올리며, 물리적 폭력보다 더 끔찍할 수 있는 정신적 폭력의 참혹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감금된 곳으로부터 탈출한 이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었을까.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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