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난 사람들> 올해 에미상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 8관왕에 오른 작품. 넷플릭스 총 10부작(1부 당 30~40분).


운전대만 잡으면 사나워지는 사람들. 일종의 현대인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로드 레이지'라는 이름으로 기사에 실리면서 알려진 이 현상은 언론의 과장 보도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소위 보복운전 방지법이 나올 정도로 무시못할 현실이 되었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미국의 동아시아 이민자들을 주인공으로 난폭 운전으로 알게 된 남녀가 복수를 통해 분노를 해소하려다 삶이 뒤엉키고 망가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블랙코미디 형식의 이 드라마는 과연 복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 파장이 궁금해 쉴 틈 없이 보고플 정도로 흡입력이 높다. 


영화는 재미교포 수리공 대니가 할인매장에서 화로를 반품하려 하지만 영수증이 없어 그대로 사 들고 나오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실상 이 화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자살을 시도하려고 구입했던 것이다.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던 대니가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다 지나가던 하얀색 SUV와 부딪칠뻔 한다. 그런데 이 하얀색 차의 운전자 에이미는 자신의 회사인 고요하우스를 천만달러에 넘기려하지만 구입자의 갑질에 시달리며 몇 년 째 답보 상태에서 또다시 협상에 성공하지 못한 침울한 상태였다. 마트 주차장을 지나가려 하는데 갑작스레 픽업트럭이 나오면서 사고가 나려하자 경적을 울리고 손가락욕을 날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이 둘 간의 맹 추격전. 소위 로드 레이지가 벌어지고 급기야 부촌의 한 가정집 정원을 망가뜨리게 된다. 이 사건의 일부가 동영상으로 온라인에 실리면서 비난이 쏟아진다. 


<성난 사람들>은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화가 잔뜩 나 있던 대니와 에이미의 충돌로 시작된다. 이 충돌은 한바탕 추격전으로 끝나지 않고 복수와 복수로 이어지면서 추레하지만 또는 지루하지만 나름 평온했던 삶을 뒤흔들고 망가뜨리는 사건들로 이어진다. 


<성난 사람들>은 현대인의 감추어진 억압과 폭력성을 일련의 복수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운전대만 잡으면 욕을 해대는 사람들은 차를 타면 얻게 되는 익명성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일상 속에서는 타인에게 쉽게 화를 내지 못한다. 대부분 을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기에 남에게 분노나 미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온라인이나 차 안과 같은 익명성이 보장된 곳에서 억압됐던 분노는 어긋난 형태로 터지기 일쑤다. 


또한 <성난 사람들> 속 인물들은 자신이 한없이 착하고 약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착한 성정에 대한 보답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 타인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에 한 치의 거리낌도 없어 보이는 아이러니함을 보여 준다. 


여기에 더해 <성난 사람들>이 블랙 코미디의 소재로 쓰고 있는 점은 소위 전문가라는 것이 실제 전문성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이나 경험의 축적을 쌓아왔거나 한편으론 이미지의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약간의 스포일러임)

대니가 부모님을 위해 지어준 집이 화재가 난다거나, 에이미가 황량한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수분을 얻기 위해 취한 열매가 독초였다는 설정은 이 시대 진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정보가 넘쳐나고 이미지도 넘쳐나는 시대, 전문가와 전문가인척 하는 사람들의 구별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성난 사람들> 속 인물들이 이렇게 분노와 거짓말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자기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분노란 드라마 속에서도 언급하듯이 짧은 감정의 상태이다. 이 감정은 순전히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발생한다. 거짓말 또한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나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기에 주저함이 없거나 변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분노와 거짓말은 나 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갇혀 살아가기에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로드 레이지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은 어떻게 끝맺음을 맺게 될까. <성난 사람들>은 분노도 거짓도 모두 감쌀 수 있는 해결책이라 할 만한-모든 문제의 해결점일 수도 있는- 사랑이라는 것도 얼마나 조건적인 것인지를 말한다. 과연 우리는 성난 사람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조건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가까이 다가갈 수록 사랑하게 되듯, 타인을 이해할 수록 용서하게 되듯,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더욱 많이 알아야만 조건없는 사랑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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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4-01-23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