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후의 세계 - 챗GPT는 시작일 뿐이다, 세계질서 대전환에 대비하라
헨리 A. 키신저 외 지음, 김고명 옮김 / 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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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사용된 지 10여 년. 이제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이 어려워질 지경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카메라, 비디오, 지도 제작 등과 관련된 일은 순식간에 사라져갔고, 앱과 모바일, SNS와 관계된 일자리는 새롭게 생겨났다. 또 소비의 행태가 변했으며, 정보를 접하는 방식도 변했고, 소통의 양상도 바뀌었다. 생활의 편리와 함께 숏폼과 같은 짧은 동영상의 중독성으로 인한 부작용이나 알고리즘으로 인한 확증편향성의 확대로 가치의 극한 대립이 걱정되고 있다. .   


아무튼 스마트폰이 불러온 삶의 곳곳의 변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어 가는 와중에 생성형 AI가 등장했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는 인간처럼 대화가 가능하며,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능력까지도 보여준다. 가끔은 정말 어린아이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뛰어난 조수를 곁에 둔 것처럼 듬직하게 어려운 부탁을 척척 들어주기도 한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73% 정도가 이 AI를 활용해 일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활용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 일상 속으로 벌써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문제는 AI라는 그 능력의 한계치를 알 수 없는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다. 만약 핵과 같은 무기의 운용이나 전쟁과 같은 전략의 도우미로 AI를 사용하게 될 경우엔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딥페이크를 비롯해 각종 거짓 선전 선동의 도구로 사용될 경우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치명적 무기도 될 수 있다. 반면 뛰어난 패턴화와 정보 사용 능력을 통해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역시나 AI도 하나의 도구이기에 의사의 칼처럼 인류에게 도움이 되거나 강도의 칼처럼 인류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칼은 그 작용이 소수에게 미치지만 AI는 인류 전체에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세상을 완전 뒤바꿀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도구를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할 것인지를 토론하고 협의하여 규율을 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미래에서 살게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AI를 인류의 동반자로, 또는 협력자로 삼아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AI의 일반적 사용과 함께 그 정의와 지침을 내려야만 한다. 이 책 <AI 이후의 세계>는 AI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과 의미를 탐색해보고, 우리가 당장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AI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AI와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와 재미를 두루 갖춘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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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웅의 AI 강의 - 챗GPT의 실체부터 AI의 진화와 미래까지 인간의 뇌를 초월하는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
박태웅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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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발표된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에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사실 이 주장을 체감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실감하는 것은 어렵다. 아니, 솔직히 말해 미디어가 콘텐츠보다도 더 중요하게 사회적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엔 역량부족이었다고 고백한다. 지금도 K콘텐츠의 영향력에 대한 '국뽕'에 가까운 환호와 열광은 쉽게 접하지만, 그것이 가능케 한 넷플릭스라는 미디어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체로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스마트폰을 접하면서 왜 미디어가 메시지인지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할 수 있는 플랫폼의 등장은 전적으로 스마트폰 덕분이다. 이제 우리의 삶 대부분은 플랫폼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즉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의 등장이 우리 삶의 양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AI가 등장했다. 챗GPT로 시작된 인공지능에 대한 열광은 가히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과연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는 것 만도 벅찰 지경이다. 박태웅의 AI강의라는 책은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고, 또 발전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 삶에 어떤 선한 영향과 부작용을 가져올 것인지를 개괄한다. AI라는 미디어가 가져올 메시지를 탐색케 하는 책인 것이다. 만약 AI가 가져올 메시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 번 훑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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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 미국 없는 세계에서 어떤 국가가 부상하고 어떤 국가가 몰락하는가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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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관점 중의 하나로 지정학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한, 미, 일과 북, 중, 러 간의 해양과 대륙 세력 간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 지정학적 해석에 눈길이 쏠린다. 


이책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의 저자인 피터 자이한은 지정학 전략가이자 글로벌 에너지 및 안보 전문가이다. 그는 지극히 미국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 책은 미국이 셰일가스를 발견하고 개발하게 되면서, 더이상 에너지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져, 세계 질서 또는 안보를 위해 힘쓸 필요가 없어졌다고 평한다. 즉 미국은 자국 내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 에너지, 식량을 비롯해 안보까지 갖추고 있어, 지구가 평평할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미국이 세계 곳곳의 갈등이 벌어지는 곳에서 점차 발을 떼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세계는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으로 들린다. 


그리고 각자도생을 위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먼저 식량확보가 가능한 기후, 그리고 자국 내 원활한 물류, 미래 경제를 가능케하는 인구구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에너지와 식량의 수출과 수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해군의 힘을 꼽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정학적 조건을 바탕으로 미래에 떠오를 나라로, 프랑스, 터키, 일본, 아르헨티나 등을 꼽는다. 


개인적으론 세계가 현재와 같은 평화적 무역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항공모함 등)에 있다는 관점에 흥미가 간다. 우리는 가끔 해적에 나포된 선박으로 인해 인질 등을 구하기 위한 협상에 나서는 정부의 모습을 뉴스에서 접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하루에 수백, 수천 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을텐데, 유조선을 포함, 다양한 선적들이 무사히 다닐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피터 자이한은 이런 평화적 무역이 바로 미군의 해군 덕분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굳이 이런 일을 도맡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판단하고, 대양에 있는 미국의 해군을 철수시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멀어지면서-셰일 가스 덕으로 석유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자- 벌어지고 있는 중동의 변화를 보더라도, 미국의 움직임으로 인한 세계 정세의 변화는 결코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한편으론 지금 우리의 시선은 미, 중 간의 대결구도에 쏠려 있는데, 피터 자이한은 머지않아 중국이 쇠퇴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지정학적 조건이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예측 근거이다. 이또한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게 된 해군세력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세계 2위의 해군을 보유한 일본은 앞날이 창창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항공모함(2022년까지 3척, 2035년까지 6척 운항 계획)과 운항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중국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래가 어떨까. 피터 자이한이 말한 조건들을 살펴보면 식량자급률 20%대에,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으며, 걸음마 단계인 해군까지... 결코 앞날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정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라도, 정말 세상이 미국의 방임으로 흘러갈지, 또 설사 미국이 방임한다면 이후 어떤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지 등등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들이 나타날 것이다. 다만 다양한 관점 중 지정학적 관점에서도 식량 자급률과 저출산 해결 등 우리가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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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해서는 안 된다
마야 괴펠 지음, 김희상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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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경제가 잠시 멈추면서 우리가 마주친 것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경제는 여전히 예전대로 성장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잠시 맑았던 공기는 다시 미세먼지로 가득하고, 지구는 계속 달구어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어찌됐든 시간이 지나면 바이러스라는 속성상 결국 해결되어질 것이다. 다만 얼마나 빨리 해결되는가의 문제이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지구가 달구어지고 있는 위기는 어떤가. 폭염, 폭한, 폭우, 폭설 등 점차 기후변화의 혹독함을 자주 접하면서 그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삶에서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지구의 온도를 낮추자는 목소리는 들리지만, 그것을 위한 행동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책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의 저자 마야 괴펠은 우리가 지구를 위한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더 늦기 전에 즉각 행동에 옮길 것을 주장한다. 

그가 책에서 내세운 여러가지 이유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 역설이다.


하나는 가치의 역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과, 생존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 다이아몬드는 그 가치에 있어서는 물이 훨씬 중요하지만, 그 가격은 다이아몬드가 수만 배 높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격, 즉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듯 여겨지지만, 물과 다이아몬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 지구는 물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 가치는 엄청나지만 가격은 홀대받는 것. 하지만 공기와 자연이 공짜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접할 순 없다. 진정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또하나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이스털린 역설이란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정체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생기고 난 이후에는 소득과 행복 간에는 비례관계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을 더 얻기위한 노력보다는 행복을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는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고, 이 성장이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고 유혹한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끝없이 자극함으로써 자본주의는 그 힘을 키워가는 셈이다. 이런 성장의 논리는 지금의 화석연료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린에너지를 택한다. 언뜻보면 지구를, 환경을 위한 정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막대한 에너지 소비 자체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의 방법만을 바꾸고자 할 뿐 성장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아니 인류를 살리기 위해선 욕망을 덜어내고 성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스털린 역설이 말해주는 듯하다. 


지구온난화가 가져오는 위기는 공유지의 비극을 닮았다. 지구라는 공유지를 개인(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함으로써 지구는 황폐화되고 있다. 지구의 황폐화는 한 개인이나 국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류, 국가는 물론 후대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우리의 삶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영화 [돈룩업]에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각자의 진영 논리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종말을 맞듯, 우리는 지구온난화라는 혜성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음에도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우리는 돈과 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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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역습 - 우리는 문명을 얻은 대신 무엇을 잃었는가
크리스토퍼 라이언 지음, 한진영 옮김 / 반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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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책 [휴먼카인드]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아니 적어도 이기적이며 악하지는 않다는 증거를 들이댄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한 가지 드는 의문! 왜 이렇게 선한 인간들이 모여사는 지금, 현대인의 삶은 행복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이기적이다는 전제하에 굴러가고 있는 자본주의 탓인가? 전제를 잘못 세웠으니, 그 과정과 결과 또한 잘 될리가 없을테니 말이다. 


크리스토퍼 라이언은 책 [문명의 역습]에서 인간이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은 농업이 생겨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수렵채집으로 살고 있던 인간은 남녀노소가 모두 평등했고, 무리로부터 언제나 벗어나 새로운 무리에 합류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며,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농업이 생겨나면서 권력, 계급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생겨나 그 격차가 벌어지면서, 우리는 승부가 없는 지속적인 게임에서 이겨야만 하는, 그래서 끝을 맺어야 하는 게임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농업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온화한 기후 덕에 풍부한 식량을 얻을 수 있어 인구가 증가하게 됐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줄어든 식량 탓으로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선택이 농업이었다는 가설. 하지만 초기엔 언제고 다시 수렵채집으로 돌아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못한 채 농업이라는 늪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브라이언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열기구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를 막기 위해 줄을 잡았다 열기구와 함께 공중으로 떠오른 후 결국 떨어져 죽은 사건처럼 말이다. 얼른 줄을 놓아야했음에도 불구하고 줄을 놓지 못한채 열기구와 함께 공중으로 떠오르듯 인류도 농업을 시작하고 나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농업은 축적을 낳았고, 이는 불평등의 씨앗이 되었다. 힘겨운 농업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이는 노예를 얻기 위한 전쟁 등 필연적으로 갈등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문명의 역습]은 문명 이후의 인간의 삶이 발전했다는 생각은 오해이며, 오히려 수렵채집 시대의 인간이 행복한 삶을 누렸다는 것을 다양한 사료와 자료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수렵채집 시대로 회귀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저자인 크리스토퍼 라이언이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수렵채집 시대의 삶의 양식을 가져온다면 우리의 삶이 보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상상해보고 있다. 


저자는 "자연분만, 가축의 방목과 인도적 도축, 유기농 채소와 과일, 평등한 기업조직, 공유경제, 남녀이분법을 벗어난 다양한 성, 유연한 인간관계, 성소수자들의 권리,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집과 개인경제, 대체의학, 환각제를 이용한 심리치료, 이 모든 유행의 뿌리는 고대인들이 영위하던 삶이다"고 말한다. 이를 근거로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수직적인 기업구조를 동료 진보주의 네트워크와 수평적인 조직으로 전환하고,  각 지역에서 청정에너지를 생산하며, 전쟁 비용으로 쓸 돈을 모아 전 세계적 차원의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고, 자녀 갖지 않기를 장려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수렵채집 시대의 삶의 양식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이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은 몽상가처럼 느껴진다. 전 세계적 합의라는 것이 지금의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지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휴먼카인드]와 [문명의 역습]을 통해 생각하게 된 것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본성에 있다기 보다는 사회 환경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불안이 우리를 불평등으로 몰아갔고, 불만이 우리를 폭주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위기로 언제 굶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기면서 농사를 통해 축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수렵채집 시대 인류는 저장을 하지 않았으며, 혹여 누군가 저장을 했다 하더라도 1년이 지나갈 즈음 축제를 통해 모두 소진해버렸다. 축적을 행한 이를 영웅시하지 않음으로써 축적에 대한 욕망이 억제되었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가져온 불안이 이런 소진의 시대를 끝내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 또한 우리의 불안을 자극해 더욱 불평등의 격차를 키워가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이런 불안으로 비롯된 축적은 계급을 낳았고, 점차 불만을 불러왔으리라. 누군가의 축적은 누군가의 가난을 의미했다. 가난한 자도 부유한 자도 모두 불만투성이게 되었을 것이다. 보다 더 가지지 못했다는 불만은 상대를 누르고 더 많이 차지해야하는 경쟁으로 치닫게 만들었을 것이다. 불만은 무한경쟁으로 우리를 내몰고, 그 경쟁이 발전을 가져온 양 보이지만, 불만은 결코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하기에, 우리는 경쟁이라는 끝없는 폭주기관차에 몸을 실었다고 여겨진다. 


수렵채집 시대의 행복한 인류란 결국 불안과 불만이 없는 인류였지 않았을까. 불안과 불만이 없는 삶이란 결국 축적이 없는 무소유의 삶일 수밖에 없다. 두 책을 통해 결국 우리의 불행은 '부'로부터 또는 '부'를 바라보면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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