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최요한 옮김 / 남해의봄날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과거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을 때 쓰는 말일텐데, 이것이 복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속에서 과거의 문화나 정신들을 새롭게 살려내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이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92년에 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 방언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하였다가, 평화롭고 지혜롭던 그들의 삶이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으로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후 헬레나는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로서의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세계화를 외치며 몸집을 키워가는 신자본주의로 사회가 분열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부작용에 신음하고 있다. 


헬레나는 라다크 복원운동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로컬 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책 <로컬의 미래>는 그의 주장을 대화 형식으로 싣고 있다. 그는 환경과 사회 파괴는 경제 규모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를 통해서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지역화란


경제를 인간적인 규모로 되돌리자는 것


이다. 대도시 중심이 아닌 마을 단위 생활 형태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든 대도시든 중요한 것은 <규모>다. '규모의 경제'는 단일화를 가져오고, 힘의 집중을 불러온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규모 단일작물 농장과 소규모 다품종 유기농장의 생산성은 단위면적당으로 따지면 소규모 농장이 더 높다. 하지만 대규모 단일농장은 기계를 가지고 소수의 인원으로 움직일 수 있기에 1인당 생산량으로 따지면 훨씬 더 높게 된다. 즉 소수의 사람이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유럽의 농장 3퍼센트가 유럽연합 전체농지의 50퍼센트 이상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소규모 다품종은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그만큼의 일자리 증가를 의미한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고 일자리도 증가하고, 여기에 더해 지역 중심의 유통이 이루어진다면 한쪽에선 배고파 죽는 곳이 생기고, 한쪽에선 남는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은은 최소한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 정치체계가 무엇이든 말이다. 


대규모의 농사로 지어진 농산물은 어떻게든 팔려나가야 한다. 필요(수요)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하고, 이것이 실패할 땐 버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채고 그것에 맞추어 생산할 수 있는 소규모의 경제 활동이 인간적인 규모의 경제이지 않을까. 화석연료를 펑펑 써가며 세상 반대편까지 농산물이 날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지역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지역과 지역간의 나눔이 필요할 터. 그런 부분에서 지역화의 세계화는 필요하다. 대도시로 대도시로 몰려가는 사람들, 그로인해 치우쳐진 힘의 균형, 군중 속의 고독과 환경 파괴는 대규모가 가져다 준 상처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 <로컬의 미래>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 군의 열두 달 - 그리고 이곳 지곳의 스케치, 대안신서 2
알도 레오폴드 지음, 송명규 옮김 / 따님 / 200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계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바이러스 전파 확대를 막고, 진정시키기 위한 싸움이 격렬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러가지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의 민낯을 보고 있다는 관점도 등장했다. 일련의 사태를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이용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않다. 개인적 문제가 아닌 집단,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상호간의 믿음과 윤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생명체란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만약 이런 방어체계가 없다면 생명체가 스스로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이런 스스로의 자기 회복 능력 체계를 넘어 의학과 방역 시스템 등을 통해 인류 전체의 자기 회복 능력을 키워왔다. 인간의 이런 능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해내는 것이 먼저이겠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메르스와 사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등 각종 전염병의 창궐을 모른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전염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것은 쉽지않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생명체가 갖고 있는 자기복제와 자기 회복 사이의 균형이 깨져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이 균형이 깨진 원인 중의 하나는 인간이 야생과 밀접한 접촉을 자주 갖게 된 것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발전이나 개발이란 이름으로 야생의 서식지가 줄어들었다는 직접적인 원인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서식지 변경으로 인한 간접적인 원인으로 살펴볼 수 있을듯하다. 즉 뭇생명이 살아갈 건강한 땅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알도 레오폴드는 '근대 환경 윤리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약 100년 전 토지윤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래 군의 열두달]이라는 책이 발간될 즈음 세상은 여성에게, 흑인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인권의 대상이 확대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윤리의 확대가 인간을 넘어 뭇생명의 어머니인 토지에게로까지 이르리라고 내다봤다.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의 말마따나 땅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다. 흙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친밀하지 않은 대상의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자아내지 못한다. 흙은 우리의 일상과 멀어지면서 슬픔의 대상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생명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흙이 전제되어져야만 한다. 건강한 흙이란 다양한 미생물이 살아있는 흙이며, 이 흙을 토대로 뭇생명들이 균형을 유지하며 온생명을 다할 수 있다. 레오폴드는 인류가 인권을 확대해 온 것처럼, 토지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고, 생태계의 모태인 흙의 건강함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켜주었으면 좋겠다. 그동한 흙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고, 흙의 소중함은 잊혀진지 오래이다. 지구온난화를 최대한 저지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위한 흙의 건강성을 되찾기 위한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 군의 열두달]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함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건강성을 유려한 필체로 이야기하고 있다. [월든]은 월든 호숫가 옆 숲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간 살아온 이야기이다. [모래 군의 열두달]은 위스콘신 강 주위 농장과 오두막을 사고 수년 간 주말농장 비슷하게 꾸려오며 생활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 중 레오폴드의 다음 주장을 귀담아 들어본다.

 

 

바람직한 토지 이용을 오직 경제적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라. 낱낱의 물음을 경제적으로 무엇이 유리한가 하는 관점뿐만 아니라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도 검토하라.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보전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은 옳다. 그렇지 않다면 그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어족이 온다 - 금융위기 후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라이프스타일 혁명
스콧 리킨스 지음, 박은지 옮김 / 지식노마드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는 주말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무엇부터 할까?

당장 생계를 위해 해야만 했던 일을 집어치우고, 평소 하고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하고 싶다.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파이어족이 온다>라는 이 책에 조금은 공감할 듯싶다. 하지만 좋은 세단에 명품옷, 값비싼 음식 등을 먹고싶다고 생각했다면 이책 <파이어족이 온다>가 커다란 자극제가 되거나, 반대로 멀리 던져버리게 될 책이 될 것이다.

 

파이어(FIRE)족이란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신조어다. 소위 금융위기 이후 밀레니얼 세대에게 새롭게 다가간 트렌드 중의 하나이다. 몇주 전 방영됐던 fvN시프트 김난도의 <트렌드 로드 뉴욕>에서도 언급되기도 했다.

 

앞에서 말했듯 로또 1등 당첨금이 있다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돈이란 수단이다. 파이어족이 뜻하는 경제적 자립에 방점을 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어족은 희박한 확률의 복권 대신 소비를 줄이고 열심히 일해서 복권당첨금과 같은 은퇴자금을 빨리 마련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리고 이 목돈이 마련되면 돈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굴려놓고 자신은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활용해 돈을 모으지만, 삶의 방식은 소비를 줄이고 자신에게 행복이나 가치를 줄 행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소비 줃심의 자본주의와는 거리를 둔다는 점이 특이하다.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돈을 통해 구축해놓고 정신적 풍요로움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즉 돈이란 자유를 위한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 조기은퇴가 가능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고소득, 고연봉자가 아닌 이상, 돈벌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을 모아 일찍 은퇴한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벌어질 일이다. 더군다나 임금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돈을 모으는 일조차 버거운 계층이 더 늘어나고 있다. 즉 파이어족의 취지에는 공감하더라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대상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먼나라 이야기이지 꿈같은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아파트 한 채 사겠다고 목숨걸 것이 아니라, 파이어족이 지향하는 '행복의 최적화'를 위해 노력해볼 만한 의지를 불태우는 자극제는 될성싶다. 파이어족이 지향하는 것처럼 완벽한 소유물의 유혹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과 완벽한 삶을 위한 길을 모색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파이어족이 온다>는 다소 우리 현실과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곱씹어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일독을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백수'라는 답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 백수는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을 갖추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떠오르는 '파이어족'과 무척 닮아있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자발적으로 조기 은퇴를 추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20~30대 때 극도의 절약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서 40세 전후에 은퇴를 하는 것이다.

 

최근 백수가 되었다. 풀타임 정규직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7년 전엔 자발적 백수의 길을 택해 시골로 내려왔지만, 이번엔 비자발적 백수가 되다보니 기분이 다르다. 파이어족이 될만큼의 경제적 자립기반이 충분하지 않기에 다소 당황스럽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가야 할까. 그래서 찾아본 것이 연암 박지원의 사생팬(?)이라 할 정도로 연암을 좋아하는 고미숙의 책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였다.  

 

연암을 본보기 삼아 백수로 사는 법이 이 책의 중심 테마다. 백수로 사는 법 중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측면은 일본의 '프리터족'에 가깝다. 자유롭게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기본 생계를 꾸린다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을 통해 수입이 되는 길을 찾는 것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즉 저자 자신처럼 연암을 좋아해 공부를 하고, 이 공부 덕에 강연이나 책 등을 쓰면서 돈을 버는 방식 말이다. 생계를 위한 억지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활동이 돈이 되는 길을 찾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프리터로 활동하며 최소한의 생계비로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단 시간만큼은 어느 부자보다 많은 타임슈퍼리치로서 자유시간을 누리는 행복은 포기해서는 안된다.  

 

백수는 노동의 소외에서 벗어난 존재다. 백수의 경제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활동의 산물이다. 당연히 소비와 부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동시에 투기 자본에도 포획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철학이다. 돈과 삶의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 그게 바로 백수의 생명 주권이다.(69쪽)

 

자, 이제 쇼핑, 일, 연애, 뮤지컬 등등에 중독되지 않고-이런 것들은 대부분 돈이 없으면 누릴 수 없기에. 그래서 도서관 등 공유경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의 거품을 걷어내고 살아보자. 무엇을 위해 살아가지 말자는 것이다. 살다보니 찾아오는 것들은 적극 반기면서 살아가는 거다. 반복은 중독을, 중독은 우울을... 또는 고립은 우울을, 우울은 중독을, 중독은 충동과 폭력을,... 그러니 새로움을 찾아, 즉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길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 소유와 독점으로부터 벗어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경험이다. 경험의 공유는 친구들과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경험이란 새로운 감각, 시선, 생각으로 반복에서 벗어나 배움을 준다. 명랑하게 길을 떠나 친구를 만들고, 또는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서 새로운 경험으로 배움을 갈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미숙이 말하는 백수의 길은 그야말로 외적성향의 청년백수에게 적용될만한 행동요령이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내적성향의 사람에게는 다소 버거운 제안이다. 다만 화폐가 주는 쾌락, 즉 여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만의 활동(노동이 아닌)을 하라는 것은 새겨들을만하다. 어차피 최소한의 생계비로 삶을 유지해야하기에 거품은 걷어낼 수밖에 없다. 다만 길을 나설 수 없는 조건(과 성향)에서 끊임없는 배움을 어떻게 성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깊다. 고미숙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가 꼭 정답은 아닐테지만, 백수로 명랑하게 살아갈 요량과 응원을 건네주는듯하다. 자, 한 번 가보자. 명랑백수의 길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킨 인 더 게임 Skin in the Game -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에 대한 경고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김원호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조국 장관을 둘러싼 싸움이 한반도 정국을 어디로 흐르게 할지 결정하는 주요 사항이 되고 있다. <진영>이라는 단어가 이 싸움의 새로운 키가 됐다.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은 이런 일련의 사건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경제적 관점을 넘어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심 탈레브는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양보하지 않는 소수>라고 이야기한다.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소수와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양보하는 다수가 부딪히면 전자가 승리하게 마련이다. 양측의 관계가 심각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이 같은 비정상적인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 양보하지 않는 소수들의 영향력이 점차 그 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양보하지 않는 소수가 절대악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양보하지 않는 소수가 선할 수도 있다.

 

한 사회의 가치관은 대다수의 의견인 여론이 진화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한 사회의 가치관은 완고하면서도 비타협적인 소수가 만들어 내는 경우가 더 많다. 시민권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드러난  비타협적 소수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까, 아니면 뒤로 물러서게 할까. 아무튼 이 소수가 확장되면서 소위 말하는 진영이 형성된 모양새다. 양보하지 않는 소수집단이 하나가 아닌 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수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 사회의 진화는 투표, 위원회, 시민 참여, 학술 회의 등을 통한 합의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뛰어나가는 소수의 사람이 불균형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불균형으로 무게 추가 쏠리면서 진화가 진행된다. 다시 말해 한 사회의 진화 역시 소수에 의한 장악의 결과다. 사회가 진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소수다.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는 어느 정도 불균형이 존재한다. 전체의 약 3퍼센트 정도의 활동가만 있으면 메리 크리스마스를 해피 홀리데이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런데 소수 집단의 숫자가 커지면 오히려 소수에 의한 장악이 어려워진다. 혼합주의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영을 형성했을 뿐 아직 혼합주의에 이르진 않았다. 아마 이 세력 중 어느 쪽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진화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세력 다툼 이전에 양 진영 모두 원하는 것은 <검찰 개혁>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성 싶다. 검찰 개혁을 이루는 방법은 진영간의 차이가 크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명심하면 좋지 않을까.

 

행동과 책임의 균형은 정의 , 명예, 희생 등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즉,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데 있어 그 실패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

 

판단과 책임이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이 시스템의 부패를 막는다.

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이 자신이 내린 판단의 결과로 현재 위치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사회가 더 평등한 사회다.

언제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체계(검찰의 경우 자신이 기소한 사건이 무죄로 판결될 경우 등)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이유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보든 억지 주장이든, 편가르기든 오도든 말과 글의 자유엔 그만큼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의 권력이란 부패와 불평등을 만들뿐이다.

 

나심 탈레브의 <스킨 인 더 게임>은 도전하는 사업가가 되라는 충고의 말을 건네고 있지만, 이 경제적 관점이 우리 사회의 지금 모습에도 잘 적용되는듯 싶다. 책임지는 말과 행동,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우리를 앞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