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도올은 유교적 합리주의가 꿈꾸는 세상은 종교가 없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분명 우리가 버리지 못할 종교의 순기능이 있지만,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듯 그 폐단 또한 만만치 않음을 생각해보면 설득력을 지니는 생각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제국주의와 맞물려온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은 수많은 전쟁의 원인이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사회라는 것이 바로 제국주의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자기 스스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저자 보네거트는 기독교에 메스를 들이대고, 자본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단지 실업을 없애기 위해 우주시대를 제창하며 우주선을 만들어 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화성으로 끌려가 기억마저 제거된채 그저 안테나로 조정되어진다. 마치 텔레비젼이나 라디오와 같은 대중매체에 의해 자아를 상실한채 그들의 메시지대로 움직이는 현대인과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영화 올드보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대중매체를 통해 습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 꼭 들이맞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험하다) 엔트로피만을 증가시키는 소비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 있어 한번쯤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고 생산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또 운명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모두가 핸디캡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설정은 맹목적 평등의 사상의 위험성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의도는 이런 평등을 바라는 것인지 비꼬는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자신의 몸에 몇킬로그램이나 하는 쇠덩이를 핸디캡이라고 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가?

또 작년 열풍이 불었던 로또라는 복권처럼 어떤 행운이 우리에게 다가왔을때 그 행운을 양심의 가책없이 받아들이는 경우, 선행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에선 행운이라는 것이 선행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행운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듯하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지면 곳곳에 흐르는 무정부주의적이며 허무한 생각에 사로잡혀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대신 인생의 목적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 사랑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갑자기 뜬금없는 결말로 치닫는 듯하지만 주인공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결국 인생이란 사랑의 기다림이요 사랑의 창조임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된다.

이렇게 고독한 우주에 외로움을 친구로 삼을 수 없다면, 언젠가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우리는 바로 옆에서 항상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의 향기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찬찬히 옆의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