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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톨
와타야 리사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여고 3학년 입시생,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똑같음을 알아차린다. 학교에 가서 똑같은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똑같은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방송을 듣고 또 똑같은 시간에 학교를 향하는 쳇바퀴 같은 나날. 남들과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돌아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에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것이 엄마 몰래 학교를 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방 안을 모두 치워버리고 쓰레기 장에서 마치 쓸모 없어진 자신의 가구들 마냥 눕는다. 남들과 다르지 않는 삶이란 그렇게 쓸모없는 삶이라 생각되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타난 초등학생 꼬마 녀석. 그 꼬마에게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고장난 컴퓨터를 줘 버린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으로 꼬마의 엄마를 찾아간 집에서 고장난 줄로만 알았던 컴퓨터가 인스톨만으로 생명을 얻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그렇게 새 생명을 얻은 컴퓨터 마냥 인스톨 되어 새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래서 꼬마의 얼토당토 않은 채팅 알바를 허락한다. 남자들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역할. 아침엔 그녀가, 오후엔 꼬마가, 그리고 현실에선 술집의 실제 작부가. 세 사람이 모여 한 사람의 역할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채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그다지 색다른 사람들이 아님을 알게 된다.
세상 사람들, 정말 이런 세상도 있구나 생각하는 그런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그저 평범함을 지닌채 살아가고 있다. 남들과 다르게를 꿈꾸지만 실은 평상의 삶 속에서야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학교를 나가지 않는 생활이 남들과 다를지라도 그것은 그저 일탈일 뿐이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틀어져 존재할 뿐이다. 틀어졌을땐 인스톨시켜 다시 평상으로 복귀한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전진>이라고!
이크크! 열일곱에 삶의 비밀을 알아채버린 것은 너무하다. 열일곱엔 평상을 알아채기 보단 모험의 세상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세상이 모험을 허락하지 않으니 쉽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열일곱의 나이에 인스톨시킨 삶이라는 건 가혹하다. 서른, 마흔이 넘어도 모험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래도 열일곱엔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입시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그들에게 평상은 여전히 지옥일테니까. 인스톨이 아니라 딜리트해버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꿀 수 있기를. 평상의 삶은 그 이후에도 늦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