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로 적다보니 길어져서 따로 페이퍼로 씁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는 상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가끔 제 리뷰에서 제가 말한 의도를 다르게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제 글을 읽고 다르게 이해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일이지 저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쓰기 시작합니다.
4월 19일 페이퍼 '자꾸 왜 이러세요' http://blog.aladin.co.kr/798187174/8438826
에 대한 feel6115님의 댓글 전문
우연히 글을 보고 그냥 지나갈까 하다 글을 남겨봅니다.
분위기로 봐서 좋은 소리 못 듣겠지만..
저는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정의에 따른다면 페미니스트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급하신 위의 글들을 보고 `자꾸 왜 이러세요`라고 하시는 단발머리님의 반응은 조금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들어가는 말에서 아내의 부정을 알고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동정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작가가 말 그대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사실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감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프랑켄슈타인을 동정하기보다 그의 피조물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질로만 따지면 프랑켄슈타인은 죄가 없고 그의 피조물은 전혀 동정조차 받아서는 안 될 대상이 됩니다. 후자만 살인을 수없이 저질렀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점을 알기에 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생각을 한다면 - 다소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 오다시마 유시라는 작가의 글이 그렇게 매도할 수준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성 분들 중에는 티비에까지 출연해서 공공연히 여자의 외도를 남편 탓으로 돌리고 정당화하는 분들도 적잖습니다.
글쓴 님의 생각대로라면 남편이 잘해주지 않았다 해서 부인이 바람을 피운 게 정당화될 수 없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공감을 사는 게 현실이지요.
(물론 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다음으로 사노 요코라는 분의 글과 관련해서는 솔직히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 책을 다 보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만, 언급하신 부분만 봤을 땐 그저 한 여성이 남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뿐이니까요.
만일 작가 혹은 다른 등장인물이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점에 관해 위에서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는 부분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 글에서 청자는 왜 헤어지지 않았냐는 식으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펼치는 책마다 가정 폭력,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는 글쓴 님의 생각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남녀 불평등에 직접 기여한 세대는 아니지만(오히려 저도 왜곡된 성 역할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성들이 저런 내용에 화가 날 수 있는 점 이해합니다.
다만 그럴수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을 하는 게 성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더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 몇 자 남겨봤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구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1. 오다시마 유시의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에서, 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의 경우,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였음이 드러나면 동정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대목입니다.
feel6115님은 댓글에서,
“작가가 말 그대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라고 썼습니다.
feel6115님은 아내의 부정을 알고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구요.
저는, 페이퍼에 썼듯이, 부정한 아내라고 해도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남편의 행동은 ‘동정’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 ‘동정’이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가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1 .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
2 .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풂.
feel6115님이,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의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기며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푸신다면, 그에 대해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동정’ 정도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제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미국 중년 여성 외상의 제1원인이 교통사고가 아니라 가정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수의 여성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가정 폭력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그 원인이 아내의 부정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하나의 의견을 더하자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해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아내가 살림을 못 한다고, 아내가 음식을 못 한다고, 아내가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한다고, 아내가 돈을 적게 벌어 온다고, 아내가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아내가 퉁명스럽다고, 아내가 너무 싹싹하다고, 이 중의 어떤 이유를 가지고서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미화될 수도, 이해될 수도, 동정 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사노 요코의 에세이에 대해서는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는 저의 문장 중, ‘서술된다’만 사노 요코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오다시마 유시의 <머리말> 속 문장들이 아내에 대한 폭력을 미화하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관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노 요코의 문장과 관련해서는 ‘서술된다’만 해당됩니다.
3. 저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제가 자란 독특한 배경이 있고, 환경이 있고,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알라딘서재, 나의 서재 속, 제 글들은,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을 하는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저는, 저의 주관적인 의견만 밝힐 수 있습니다.
아내의 부정을 이유로 흥분한 상태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은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동정’ 정도도 받을 수 없습니다. 동정 받아야 할 사람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남편에게 폭력 행위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이게 저의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성차별에 반대합니다. 그와 동일하게, 가정 내 폭력 행위에도 반대합니다. 저는 여자입니다. 여자인 제가, 성차별에 대해 의견을 말할 때, 어떤 면에서도 제 의견은 객관적으로 해석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건 남자라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 사람으로서, 남편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 흥분해서 폭력을 휘두른 아내가 동정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동일하게, 아내의 부정을 알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도 동정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feel6115님의 댓글에 제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하는 일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