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시집이라도 시작하면 다행이다. 이게 이 글의 주제문이다.

시 수업 첫 번째 시간이었던가, 자기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시인도 있었고, 한 두번 들어 이름이 귀에 익숙한 시인의 시도 있었다. 나는 류근 시인의 시집 상처적 체질에 수록되어 있는 유부남를 낭독했다.

 

 

 

 

 

 

 

 

 

 

 

당신이 결혼 따위 생각하지 않는 여자였으면 좋겠어 우리 그냥 연애만 하자, 이렇게 시작하는 시였다. 사랑하는 여자와의 현재 욕망에는 충실하지만 자신의 가정은 전혀 깰 생각이 전혀 없는 이기적인 유부남이 여자에게 연애만 하자고, 서로 구속하지는 말자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여자를 꼬드기는 내용의 시다.   

선생님은 류근 시인은... .... “라며 이 시인이 얼마나 유명한 분인지를 표정으로 증명해 주셨고, 앞자리 맞은편의 님은 , 이런 시 좋아해?“라고 물으시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려주셨다.

그 때, 그 시간이 다시 떠오르게 된 건 오늘 아침 신문의 시집 소개란 때문이다.

 

 

독자 직거래 시인류근, 통속의 미학을 말하다 <한겨레신문 2016. 9. 9.>

첫 시집때도, 두 번재 시집도 류근 시인은 화제의 중심인가 보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내 기도가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당신은 당신의 기도로

나는 나의 기도로

서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살아서 다시는 서로의 빈자리를 확인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축시(祝詩)’ 부분>

 

왜 베스트셀러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모든 베스트셀러가 다 훌륭한 책이 아닌 건 확실한 듯 하고, 정말 좋은 책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못한 책들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래도. 처음 시작할 때는 조금 봐주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좋은 책과 별로인 책, 희대의 명작과 읽지 않았어도 될 책을 판별한 만한 감식안이 있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는, 처음 책 읽기를 시작할 때는 베스트셀러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책을 안 읽는, 아니 책을 못 읽을 수 밖에 없는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이, 그래도 책 한 권 읽어볼까, 하고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들어와 책을 검색할 때, 아니면 교보문고에 새로 깔린 반짝반짝 빛나는 새 책들을 훑어볼 때, 그 사람이 802쪽 철학으로서의 철학사나 672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를 선택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알라딘 서재에는 책을 전투적으로, 집중적으로 읽으시는 분들이 많으시니 가끔 깜빡할 때도 있지만, 근래에 출판시장이 페미니즘으로 뜨겁다는 걸, 2015년 카톡 유언비어 반박문으로 유명한 심용환 선생의 『단박에 한국사』가 출간되었다는 걸, 김중혁의 신작 나는 농담이다가 나왔다는 걸사람들은 모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달에 한 권, 아니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그런 경우라면, 어떤 사람이 어디 책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시작하려할 때 접근이 쉬운 베스트셀러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집의 경우는 더한데, 책읽기의 최고봉 시 읽기, 그 중에서도 난해하다는 현대시를 보통의 독자가 처음부터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다.

그렇다면, 많이 알려진 시집부터, 근래에 화제가 된 시집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싶다. 좋아하는 한 권의 시집이 생기고, 선호하는 시집 전문 출판사를 마음에 두고, 한 명, 한 명 새로운 시인의 시집을 읽어가다 보면, 내 영혼과 똑같이 닮은 한 명의 시인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화제의 중심, 류근 시인의 어떻게든 이별를 구매해서는, 가을이라서 시집이야, 라는 식상한 멘트를 날리며 즐거운 시읽기에 돌입할 예정이다.

베스트셀러 시집이라도 시작이 어디인가.

시작은 반이고, 반이면 많이 왔다.

이제 반이 남았다.

겨우 반이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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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9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안 읽는 사람들이 네이버 블로그는 알아도 알라딘, 예스24 블로그는 모를 거예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9-11 21:29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ㅎㅎㅎ 아무래도 그렇겠죠.
네이버 블로그는 넓은 세계라서~~~~

구름물고기 2016-09-0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읽게되면 얇고 짧은글들이 어지간한 책 한권 이상의 시간이 걸리더라구요 많이 남기도 하고..책을 읽으라고 권하지만 읽지 않는 ㅠ 도정일 문학집에 그런말이 생각나네요 책을 놓으면 `안`읽는게 아니라 `못`읽게 된다고

단발머리 2016-09-11 21:3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시집을 읽을 때 시어 하나하나 되새기다 보면 시간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아요.
물론 깊은 감동도 받게 되지만요.

도정일님 말은 옳은 것 같아요. 책을 놓으면 다시 손에 잡는 게 쉽지 않죠.
못 읽게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전진해야겠네요. ^^

2016-09-0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근시인님 모셔서 야나문에서 낭독회합시다! 추진위원장:단발머리님
섭외위원장:야나님
바람잡이:쑥
낭독위원장:꿈섬님
홍보위원장:정영효시인님
(이상, 마음대로 지껄여보았습니다^^)

단발머리 2016-09-11 21:33   좋아요 0 | URL
나머지 분들 다 마음에 쏘옥!!! 드는데, 추진위원장님이 문제네요.
이래서는 연내에 추진되기 어렵습니다.
섭외위원장의 겸직을 추천합니당....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니면 바람잡이님이요~~~~

꿈꾸는섬 2016-09-15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베스트셀러부터 시작할게요. 그럼요. 그럴게요.ㅎㅎ

보름달만큼 풍요롭고 행복한 추석되세요.^^

단발머리 2016-09-15 08:40   좋아요 1 | URL
ㅎㅎ 저의 변명을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며느리들에게 완전 좋은 시간은 어렵지만...
나름 좋은 시간 되시길요~~~~ ㅎㅎ

꿈꾸는섬 2016-09-15 12:08   좋아요 0 | URL
전 이번 추석엔 미리 다녀와서 홀가분하게 여유를 만끽중이에요.ㅎㅎ

단발머리 2016-09-15 12:21   좋아요 1 | URL
우하하!!! 정말 여유로운 추석이시네요~~ 전 시댁이요^^ 이제 점심 차리고 먹고 치우고 집에 가야지요~~~ 내일부터 자유시간~~~
 

 

 

 

 

 

 

 

 

 

1. 셰익스피어

    

나는 처음부터 셰익스피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책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데 의미를 두었던 것 같기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소네트 몇 개를 읽었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소네트 한 개를 외웠다. 십이야를 읽었던 것 같고, 좋으실 대로였던 같기도 하고. 아무튼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훌륭하지만 너무 옛날 사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철없는 청춘. 그 때는 인생을 몰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문호라는 명성을 누렸으나 그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아주 단편적이고 불확실하다.(25) 확실한 기록 중에 하나가 15821127일 발행된 결혼 증서인데, 18세의 셰익스피어는 자기보다 여덟 살 연상의 마을 자작농의 딸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26) 작가 개인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유치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관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의 극에 자주 등장하는 맹목적인 사랑이란 주제가 실제 그의 사랑과 얼마만큼 닮아있는지,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이 책이 말한다. 그런 궁금증이라면 저에게 물어봐 주세요.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책소개> 빌 브라이슨은 특유의 재치 있고, 간결하지만 강렬한 필치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삶과 근거 없는 억측과 음모설을 파헤친다. 셰익스피어는 누구이며, 그는 과연 그 작품들을 집필한 진짜 셰익스피어였을까?

 

 

 

 

 

 

셰익스피어 작품 대부분이 그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를 당대에 유행하던 연극 작품을 모아 놓은 수집가정도로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상황은 조금 복잡했다.

 

당시 연극은 대단히 인기가 있어서 극장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연극이 공연됐다. 한 작품의 평균 공연 횟수는 10회가 넘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한 극단이 성공적인 작품을 공연하면 경쟁극단에서는 극작가에게 비슷한 주제의 새로운 연극을 가능한 한 빨리 제공하도록 요청했다. (46)

관객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유행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즘의 드라마와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특별한 이유 때문에 금남의 장소에 들어가 남장을 하게 된 아리따운 여주인공이 직업적 성취와 멋진 남주와의 진실한 사랑을 획득한다,는 내용의 드라마가 몇 년전부터 최근까지 유행이다. 비슷한 내용, 비슷한 전개이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에 와 닿는 대사, 특별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박민영이, <바람의 화원>에서는 문근영이, 최근에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김유정이 비슷한 유행극의 비슷한 역할을 맡아 자신만의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 이만하고.

  

  

 

2. 여성 혐오

 

의처증 3부작 오셀로, 겨울이야기, 심벨린에는 아내가 바람을 피워 이마에 뿔이 돋은 오쟁이 진 남편(cuckold)들이 나온다. 제일 유명한 이야기면서 비교적 최근에 읽어 기억이 또렷한 오셀로.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에밀리아가 말한 이 대사에서 묘사하는 속성은 곧 이아고의 의심이다. 또 장차 오셀로가 겪는 의처증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성적 상상력에 시달리는 이아고는 모든 여성이 음란하고 부정하다는 병적인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기 아내 에밀리아와 데스데모나를 포함한 베니스 여자들 대부분이 부정한 여자고 베니스는 자기와 오셀로처럼 오쟁이 진 남편 천지라고 생각한다. (185)

 

이아고는 베니스 여성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당대의 편견도 이용한다. 그는 베니스 여성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태연히 음탕한 짓을 하지만 남편만은 속이죠.” (33201-203) 같은 대사들을 통해 음란한 기질이 베니스 여성들의 일반적인 속성인 양 말한다. (187)

아내를 의심하던 이아고는 오셀로에게도 데스데모나에 대한 의심을 불어넣는다. 이아고는 자신의 아내 에밀리아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의심한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세상 모든 여자에 대한 증오를 키워나간다.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당신도 부정한 아내를 두었으니 나와 같은 입장이다라고 말하며, 부정한 아내(로 의심받는, 실제로는 정숙한 아내)를 둔 자신들을 한없이 불운하고 억울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 여성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전체 여성에 대한 미움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거절에 대한 실망감이, 근거 없는 의심에 기반한 증오가 여성 혐오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 가해자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CCTV 분석과 정황 파악을 통해 가해자가 화장실에서 남자 6명을 그냥 내보내고 첫 번째 만난 여성을 살해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범죄 대상으로서 여성만기다렸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의 살인이 여성 혐오에 의한 것임을 추정하거나 혹은 확신할 수 있다. <경향신문, 2016520. “살인범, 남자 6명 그냥 내보내고 여자만 기다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02230005&code=940100>

자신을 무시했던 특정한 여성에 대한 미움이 여성 일반에 대한 증오로 변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아주 여러 번, 이 사건은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조현병환자의 일탈이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 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병을 갖고 있으며, 범죄를 저지른 그는 아마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외감의 원인을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분노의 초점을 여성들에게 맞춘 것은 분명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 사회 내에서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심리적 현상인 여성 혐오가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은 맥락이 있다.       <경향신문, 2016519, 서천석 정신과 전문의

 

사랑하는 이의 배신, 변심 혹은 불륜에 대해 질투의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두 사람이 묶여있을 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가히 절대적이라고 주장할 만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할 때에는, 서로 사랑할 때에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 사람을 내 사람이라고,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타협 없는 배타성역시 사랑의 중요한 측면이라 생각한다.

오셀로의 질투에 공감한다. 질투할 수 있다. 문제는 그의 질투, 어쩌면 사랑에 근거했을 수도 있을 그의 질투를 이아고가 비겁하게 확대시켜 가는 방식이다. 이아고는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모든 여자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데스데모나의 사랑이 필요한 오셀로에게 그녀에 대한 잘못된 허상을 심어줌으로써, 오히려 그녀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사랑을 갈구하는 오셀로에게 증오를 가르쳐줌으로 해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했던 그 여인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의심 많은 이아고, 아내를 의심하던 이아고가 했던 일이다.

 

 

3. 다시 셰익스피어

 

너무 오랫동안 돌고 돌아 이제 겨우 4대 비극. 그래도 읽어야겠다. 셰익스피어를

사느냐 죽느냐햄릿과 욕망의 화신 맥베스, 그리고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효녀로 만들어다오,리어왕을 읽어봐야겠다.

 

 

 

 

 

 

 

 

 

 

하지만,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은 리처드 3.

 

 

 

 

 

 

 

 

완숙기에 쓰인 비극들과는 달리 인물들의 성격이 변화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리처드 3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악인으로 등장하며 자신이 저지르는 온갖 만행에 대한 심리적 갈등이나 고뇌가 없다. 아직까지 셰익스피어 특유의 깊이 있는 심리적 묘사와 내면에 대한 통찰력이 발휘되지 않은 탓이다. (137)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는 이 이야기를 읽고 싶은 건, 사랑 혹은 사랑 아닌 어떤 것 때문이다. 그의 사랑이 진심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악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의 고백을 맘껏 누렸을텐데.

 

리처드    당신의 아름다움이 원인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이 나의 잠을 설치게 하고

당신의 달콤한 품에 안겨 한 시간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남자를 죽여도 좋았습니다. (12125-28) (142)

 

꼭 셰익스피어여서는 아닐 테고. 어쩌면 꼭 셰익스피어여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야기다. 내가 진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야기다.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사랑이야기.

만나게 되고, 눈길을 마주치고, 마주하고, 바라보며 웃고. 그리고 미소 짓는. 그렇게 사랑하는 이야기다.

그게 바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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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6-09-0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셰익스피어 작품을 다시 쭉 읽었는데,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뭐랄까... 불편한 기분이 들고 화가 나는 부분도 꽤 많더군요.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여자는 부정한 짓을 언제든지 저지를 수 있는 존재랄까요. 남자는 그래 마땅하지만 여자들이 그러는 건 아주 `부정`한 일인 거죠.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라는 점도 그렇고.... 암튼 전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ㅎㅎ

제가 이번에 읽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엔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악인(들)은 끝까지 악인입니다. 아니, 이 작품을 읽으면 인간 자체가 악 같아요. ㅎㅎ

단발머리 2016-09-09 11:42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이 말씀하시는게 뭔지 알것 같아요. 맞아요, 불편하기도 하고, 가끔 화도 나구요.
근데, 가끔은 저는 작품 속의 생각들이 다 셰익스피어의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해봐요.
그러니까, 그게 셰익스피어의 생각이나 말이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라는 거울을 통해 그 당시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거든요. 그러면 셰익스피어가 조금 덜 밉기도 하구요.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는 처음 듣는 작품이네요. 찾아봐야겠어요. 충격적인 작품이라 하시니....
더욱 궁금합니다. ㅎㅎㅎ

꿈꾸는섬 2016-09-07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셰익스피어를 읽은 게 언제적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도 재밌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6-09-09 11:3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리처드 3세-햄릿-맥베쓰, 이렇게 순서는 정해놓았는데... ㅎㅎ
다른 책들에 밀리지 않아야겠는데, 걱정입니다.
에이바님이 최근에 세익스피어 관련해서 완전 좋은 페이퍼를 올려주셔서요.
저는 에이바님 페이퍼 읽다가 읽고 싶은 책들이 몇 권 더 늘었어요.
영국의 작가들이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멋져라~~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고나서 그 작품들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항상 계획은 이렇게 원대한지만.... ㅎㅎㅎ
 

 

 

 

 

 

 

 

 

 

<페미니즘 원년, 우리가 갈등하는 감정의 모든 것>이 부제인 이 책은 불확실성의 시대, 감정은 어떻게 배치되는가?”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1. 페미보비아femiphobia

페미포비아femiphobia는 페미니즘 포비아feminisim phobia가 너무 길어서 저자가 축약한 단어이다.(23) 저자는 글로벌 페미포비아가 글로벌 신자유주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시대의 고용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는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헌신, 희생, 신뢰, 정직, 양육, 보살핌과 같은 가치들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된다.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가사노동 역시 미흡한 집안일이라 여겨진다.(24)

소비가 노동과 분리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양극화됨으로 인해 노동자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반면 소비자는 능력자로 비쳐지게 된다.

 

고용이 불확실한 시대, 한가롭게 소비하는 자아처럼 보이는 여자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남성들의 불안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남성이라고 하여 하나의 남성인 것은 아니므로, 일자리를 위협받는(다고 가정하는) 남성들은 자신들과 경쟁하는 여성들이 얄밉다. 그러다보니 경제적 걱정 없이 한가롭게 소비하는 자아의 이미지로 포장된 된장녀는 선망과 미움의 대상이 된다.(25)

 

한가롭게 소비만 하는 여자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실제 여성들이 된장녀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문제 되지 않는다.(25) 소비하는 여성을 된장녀로 취급할 뿐이다. 그 여성이 어떻게 일하는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미움의 대상이 된다. 돈을 버는 남자와 돈을 쓰는 여자로 양분한다. 분노는 돈을 쓰는 여자, 돈을 쓰기만 하는 여자에게로 집중된다.

 

2. 추락

  

  

 

 

 

 

 

 

 

과거에는 현대 문학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배울 의욕 없는 학생들을 열정 없이 가르치고 있는 데이비드 루리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여학생 멜라니 아이삭스와 관계한다.(196) 멜라니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였다는 게 루리의 주장이다. “어느 날 저녁, 대학 정원을 걷다가 문제의 여학생과 만났고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로스가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루리는 동료 집단과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성 있는 고백과 사죄를 거부하며 자기 행위가 성추문이 아니라 에로스라고 위로하면서 대학을 떠난다.(205)

루리는 케이프타운 고지대의 흑인거주지에 살고 있는 딸 루시를 찾아온다. 그는 동물복지연합의 일을 돕게 되면서 동물 복지까지 주장하는 베브 쇼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선의가 지나쳐, 얼마 후에는 몸이 근질거려 밖으로 나가 강간을 하고 약탈을 하고 싶겠어. 아니면 고양이를 발로 차버리든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저주가 실제로 이루어진다. 세 명의 흑인 강도가 집에 침입해, 그의 딸 루시를 강간한 것이다.

루시는 백인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강간을 암묵적으로 사주한) 흑인 농장주인 페트루스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 살겠다고 말한다(207). 자신의 땅을 지참금으로 가지고 페트루스의 셋째 부인이 되는 것, 그곳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그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이 자신이 이 곳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한 사회의 정상적 규범이 주는 특권들 즉, 결혼, 가족, 이성애 일부일처, 직장, 젠더적 특징으로서 여성다움, , 지위가 있으면 가능하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당연히 불행해야 한다. 지배담론은 그런 것들을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혹은 장차 미래의 행복을 약속해 줄 것이라고 설득해왔다.... 불행유발인자들을 루시는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녀는 레즈비언이다. 여성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뚱뚱하다. 몸놀림이 둔하고 여성스럽지도 않다. 레즈비언인 파트너와 살고 있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흑인거주지의 외계인이자 주변인으로서 텃밭에서 채소와 꽃을 가꾼다.... 루시는 기존의 정상성 규범에서 보자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존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는 기존의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그런 의미에서 루시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바닥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214)

 

아무 것도 아닌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루시가 놀랍다. 모든 것을 상실했기에 개처럼 수치스럽다고 여겨지는 그 지점에서 자신의 의지로 자율적인삶을 택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치욕과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했다는 바로 그 점에서 말이다.

 

3. 페미니즘

 

에 마주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과 읽어야할 것이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푸코도, 라캉도, 프로이트도, 그냥 쉽게 길을 비켜주지 않을 것이다. 울적하다. 임옥희,라는 이름이 뇌리에 꽂혔다. 일부러 찾았던 건 아닌데, 다음 책으로 준비운동 중인 주디스 버틀러 읽기역시 그녀의 책이다.

한 가지 배웠다는 뿌듯함보다는 갈 길이 멀어 아득한 이 느낌을.

여기에 남긴다.

이제 주디스 버틀러에게 간다. 더 깊은 아득함을 향해.

한 걸음.

딱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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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9-0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몇 년전에 [추락]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지금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궁금해지네요. 어쩐지 그때랑은 다르게 볼 것 같아요.
아무개님도 단발머리님도 계속 이렇게 공부하고 생각하고 그걸 또 적어내주셔서 너무 좋아요. 요즘에 너무 기운 빠졌었거든요. 되게 외롭다고 생각했었어요 ㅜㅜ

단발머리 2016-09-02 15:19   좋아요 0 | URL
저는 몇 년 전에 다락방님이 [추락]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ㅎㅎ
근데 그 감상을 읽고 저는 조금 두렵더라구요. 내가 읽을 수 있을까?,,.
저는 아직 [추락]을 읽지 못했어요.
[젠더 감정 정치]에서 임옥희씨가 비평한 것만 읽었는대도 어마어마하더라구요.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락방님이 좋다하니 나두 좋구요.
쪼금만 아주 쪼금만 기운 빠져있다가......
다시 기운내세요.
당신은 우리의 다락방님이예요.
잊지 마세요~~~~

아무개 2016-09-0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디.스. 버.틀.러!
저는 도전해볼 엄두도 못내고 있어요.

페미니즘이란게 프로이트부터 마르크스 그리고 푸코 라캉 까지
그 영역이 너무나 방대해서
소름끼치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만큼.
참. . . 아득~~하게 멀고 멀고 먼 길 같아요.

아무개 2016-09-02 15:21   좋아요 0 | URL
아씨. . 근데 다 남성작가들뿐이네요 쩝

단발머리 2016-09-02 15:36   좋아요 0 | URL
진짜 아씨~~~ 아저씨들이네요.
괜찮아요.
우리한테는 정희진도 있고, 임옥희도 있고, 아무개님도 있고, 다락방님도 있잖아요~~

저는 주디스 버틀러,를 읽는게 아니구요.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를 읽는 거예요.
주디스 버틀러에게 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ㅎㅎㅎ
사실은.... 읽기 난해하다 해서 각오하고 있어요.@@

수이 2016-09-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디스 언니 조아...... ^_________________^

단발머리 2016-09-03 07:08   좋아요 0 | URL
나두 좋아하게 됐어요.
사진 보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잠자냥 2016-09-0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관련 좋은 책이 요즘 많이 나오네요. 그런데 재미난 것은 제가 느끼기에 그런 책을 더는 안 읽어도 될 분들만 여전히 읽는다는 것이죠. ㅎㅎ 꼭 좀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나몰라라.... 흠흠. ㅎㅎㅎ

단발머리 2016-09-03 10: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느낀 적이 많아요. 꼭 좀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좀 더 읽어야할 듯 해요.
뭐, 대단한 걸 알고 싶다기 보다, 정희진씨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여성으로서 삶`을 자각한 순간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여성으로서의 삶과 여성주의에 대해서요.... ^^
 

 

 

 

 

 

 

 

 

또 소설을 읽지 않고 소설가의 에세이를 먼저 읽는다. 위화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고, 위화의 책으로는 첫번째다. 제일 흥미로운 부분을 옮겨본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결심하게 했던.

 

매큐언은 다른 작가들이 자기에게 미친 영향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당신이 5, 6주 시간을 들이면 필립 로스를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가 나쁘지 않다면 그다음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흉내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전에 나는 문학은 마치 길과 같아서, 양쪽 방향으로 모두 향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독서 여행은 이언 매큐언을 거쳐 나보코프와 헨리 밀러, 필립 로스 등의 정거장에 이른다. 반대로 나보코프와 헨리 밀러, 필립 로스 등을 거쳐 이언 매큐언의 정거장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이언 매큐언의 서사가 우리의 독서와 여러 가지로 교차되는 이유다. (121)

 

5, 6주 시간을 들여 필립 로스를 모방하는 게 가능한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필립 로스라는 길을 거쳐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겠다는 매큐언의 말은 한편으로는 결연하고 또 한편으로는 웬지 모를 편안함을 준다. 매큐언이 열어둔 길로 필립 로스에게 갈 수 있고, 필립 로스와 함께 있다 보면 매큐언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겠다.

위화의 말이 옳다. 문학은 마치 길과 같아, 양쪽 방향으로 모두 향할 수 있다.

매큐언에게서 필립 로스로, 필립 로스에게서 매큐언에게로.

 

<속죄>, <칠드런 액트>, <첫사랑, 마지막 의식>

 

 

 

 

 

 

 

 

<유령 퇴장>, <포트노이의 불평>, <에브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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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08-2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에 관한 책인줄 알고 골랐다가 위화작가의 에피소드가 많아서 잠깐동안 놀랐던 책이에요. 절반정도 읽다가 뒀는데 마저 읽어야겠어요. 책 읽게 만들어주는 책 이었어요~

단발머리 2016-08-25 10:01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절반 정도 읽고 이 페이퍼를 썼어요.
위화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작가인것 같더라구요.
전 아직 작품을 안 읽어봤지만,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네요. 위화^^

기억의집 2016-08-2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상하게 이언 매큐언도 필립 로스도 불편해요. 특히 저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재밌기는 한데, 소설속 장면이 이게 뭐지 하는 게 간혹 있어요. 예로 칠드런 액트 읽는데, 맨 마지막 장면에서 그 청년이 백혈병 재발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남편이 부인에게 그 아일 사랑했냐고 다그치는 장면에서 이게 뭐지 이랬다니깐요. 저도 나이 사십 후반 좀 있으면 오십 바라보지만, 주인공이 육식 가까이 되는 나이였나 그럴 겁니다.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 나지 않지만, 보통 그 나이에 그 아일 연민으로 바라보지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진 않지 않나요? 그 장면 정말 웃겼어요. 너무 오버해서. 나이가 젊든 늙든 저런 관계조차 사랑으로 보다니, 이언 맥큐언의 남자의 심리가 늙던 젊던 그렇다는 걸 보여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나 싶더라구요. 분명 그 판사가 그 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이 맞는데... 이건 뭐지 싶었어요. 제가 읽었던 책중에서 아마 최악의 장면이지 않나 싶습니다.

다락방 2016-08-25 14:32   좋아요 1 | URL
크- 기억의집님께서 말씀하신 그 마지막 장면, 저는 참 좋아했어요. 좋아하고요.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었거든요. 저는 기본적으로 연민이 아닌 사랑이 찾아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서 그 질문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지거든요. 무엇보다 그 아이에 대한 얘길 남편에게 다 했다는 것, 그 얘길 다 해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 이야길 다 듣고 잠드는 아내 곁에 있어주는 남편이라는 게, 그전에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바닥까지 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관계라는 건 다시 이런 식으로 회복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는 이언 매큐언 소설을 네 권정도 읽었는데, 그 중에 [칠드런 액트]가 제일 좋았어요. 병이 재발하고 다시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에서는 `와 이 아저씨 정말 세구나` 생각했고, 자신에 대한 연민일지도 모르는 감정에 소년이 집착하는 걸 보면서 `인간이란 정말 너무나 불안정한 존재` 이며 `서투른 연민은 정말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구나` 라고도 생각했거든요. 종교와 사회와 개인과 사랑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그 한 권에 썼다고 생각했어요.

단발머리 2016-08-26 16:09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언 매큐언과 필립 로스가 불편해요. 불편해요. 그런데도 좋아요. 자꾸 끌리고.
저는 제가.... 더 정확하게는 필립 로스에게 매혹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를 불편하게 하는 필립 로스를 좋아합니다. ㅎㅎㅎ

제가 어제.... 기억의 집님 댓글을 봤을 때 도서관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 건가 책을 찾아 확인해봤어요.

˝입술을 완전히 맺댄 채로 담백한 키스가 가능하다면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한순간의 접촉이지만 키스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 어머니가 장성한 아들에게 하는 입맞춤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 초 정도, 아니 어쩌면 삼 초 정도의 접촉, 말랑한 입술의 부드러움 안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있던 모든 세월, 모든 삶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

저는 피오나가 그 아이에게 가졌던 감정이 연민이 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연민에 근거한 감정이지만 연민만은 아니었고.... 일부러 피오나가 그 아이를 피하는 과정 전체가 두 사람이 갖게 될지도 모를 관계의 위험성에 대해 미리 감지한게 아니었나...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좀 더 정교하게, 세련되게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랬다면 남편의 버럭도 이해될 수 있었을 테고요.
그런 면에서는 저도 최악의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단발머리 2016-08-26 16:1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안녕하시어요~~^^

저는 피오나가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꼭 하지 않아도 됐었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자기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이잖아요... 나쁜.... 그런데도 피오나가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한 건, 피오나가 그 키스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가벼운 키스가 아니라, 서로의 삶과 시간을 꿰뚫은 키스라는 걸 피오나는 느꼈던 것 같구요. 남편은 피오나랑 함께한 시간이 기니까, 피오나가 짧게 말했을 때 본능적으로 알아챘던 것 같아요.
당신.... 진짜로 그 애를 사랑했던 거구나.... 그래서 버럭!! 했던 거고요.

저는.... 그 아이도 약간은 느끼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 아이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피오나가 연민 이상의 감정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 아이는 더 밀어붙일 수 없는 상황이니까 어디까지나 피오나의 반응을 살필수 밖에 없는데,
피오나는 말하지요... 넌 가야돼....

그래서, 자살이라고 생각해요. 피오나처럼 저도, 그 아이는 자살한 거라고 생각해요.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무게 때문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매큐언의 작품은 <속죄>예요. ㅎㅎ
 

 

  

 

 

 

 

 

 

 

제일 큰 잘못은 휴가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대출한 일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먼저 접한 독자라면 그 둘을 아우르는 흥미로운 프리퀄로 읽는 재미 또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407)

 

 

 

 

 

 

 

 

내가 그런 독자다. 줄리언 반스의 책 중, 이렇게 두 권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는 일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너무나 애달팠다. 이 책은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죽음에 대한 해석이 좀 더 유쾌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런데... 애를 많이 먹었다.

서서히 찾아든 아버지의 죽음, 자기중심적이고 당당한 어머니의 죽음, 가족에 대한 어릴 적 기억들과 철학교수인 형과의 대화, 죽음을 키워드로 수집한(?) 예술가들의 일화와 인용문들이 교차 등장한다. 종교예술 애호가로서 신자들에 대한 부러움과 미래의 인류에 대한 과학적 예측들도 이어진다. (옮긴이의 말, 404)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았지만 그런대도 쉽지는 않았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와 달라서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전망이 너무 암울해서이기도 하고, 일면 그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따라가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구절은 이렇다.

 

라디오에서, 인간 의식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인간의 뇌에도, 컴퓨터상의 뇌에도 중심이 없다(자아가 있는 곳도 없다)’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우리가 영혼이나 혼에 대해 생각하는 개념은 분산된 뉴런의 절차개념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299)

    

당연하지! 틀렸다. (틀려도 이만저만 틀린 게 아니라) 늘 틀렸었다. 그런 데다 그렇게 직설적으로, 위협적으로 중대한 것을 지금껏 생각해보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아마추어적인가. 60억 년 후에 멸종될 존재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를 훨씬 뛰어넘는 어떤 존재, 그렇지 않다 해도 아무튼 우리와는 완연히 다른 존재가 멸종될 것이다. ... 최고의 존재니 가장 똑똑한 존재니 하는 건 잊어버려라. 진화가 모종의 웅대한, 비인간적인,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버전의 우생학이라는 말도 잊어버려라. 진화는 우리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우리를 데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진화는 엉성한, 적응하기엔 역부족인 원형인 우리를 저버릴 것이며, 그런 후 우리(와 바흐와 셰익스피어와 아인슈타인)’를 고작 박테리아와 아메바처럼 여기게 될 정도로 까마득하게 다른 새로운 형태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348)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죽음-영혼-내세의 문제를 따로 떼어 내어 생각하지 못 하겠다.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고, 분해와 변형의 과정을 거치게 될 육체와 달리 영혼은 불멸의 존재라 믿는다. 물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혼이 속해 있을 특정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시대 유럽 사회에서 ’, ‘천국그리고/혹은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일은 모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징벌에 가장 극한 형태가 출교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에 대해 믿었고, ‘내세에 대해 확신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21세기, 지금 이 시대에, ‘천국’, 그리고/혹은 지옥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희극적인 일이라 여겨지지 않겠는가.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을 읽자의 설명은 이렇다.

 

왜 모든 인류 문화가 종교를 지니고 있을까? 도킨스는 이것을 바로 (문화유전자)’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생존과 번식에 투자하는 유전자만을 선호하는 냉혹한 자연 선택 속에서 너무 낭비적이고 사치스럽고 파괴적인 종교가 살아남은 이유는, 다른 상황에서는 유용한, 혹은 과거에는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의 불운한 부산물인지 모른다고 말이다. ....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연대감과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충족시켜 준다는 이점 때문에 종교는 모든 부족에서 각자 다른 형태로 진화해 왔다. (154, 156)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98)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여러 가지 제도들 중 최고로 정교한 형태라는 뜻일테다.

 

 

 

 

 

 

 

 

책은 도끼다에서 박웅현은 말한다.

그러니까 긴 흐름으로 봤을 때 제가 칠십 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그만큼의 박웅현이라는 객체는 객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수억 년의 흐름에서 칠십 년인 건데요. 끊임없이 이어진 기다란 띠에서 점 하나 찍는 정도도 안 되는 순간을 제가 사는 겁니다. 큰 흐름의 관점에서 보면 제 몸뚱이는 잠깐 동안 뭉쳐졌던 덩어리죠. 어느 순간 생겨나서 칠십, 팔십 년 살다가 죽고, 죽으면 썩을 거예요. 땅속에 묻어두면 벌레들이 먹을 거고 누군가의 자양분이 되겠죠. 그러면 나란 실체, 존재는 없어지죠. 이렇게 흩어져버리는 게 죽음이고 이게 큰 기의 흐름이라는 겁니다.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가 바로 이 얘기인 것이죠. 그렇게 보면 소유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삶에 의미가 있을 겁니다. (336)

 

아직도 서성이는 사람에게는 역시 도킨스가 쐐기를 박는다.

철 좀 들어라,라는 것이 도킨스의 요지다. 신은 가상의 친구다. 당신은 죽으면 끝인 거다. 어떤 영적 경외감을 느끼고 싶은 거라면 망원경으로 은하수를 찬찬히 관찰하면 된다. 바로 지금 당신은 아이의 만화경을 빛에 비춰 보고 있는 것이며 그 색색의 마름모꼴들이 신이 집어넣은 거라 둘러대고 있는 것이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149)

 

그래서, 요약을 해 보자면. 거친 산문을 쓰듯이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뇌는 우리 몸의 다른 부분처럼 고깃 덩어리일 뿐이고, 자아는, 정신은, 영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종교란 인간 세계의 결속을 위해 지어낸 가장 세련된 거짓말이며,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철 좀 들어라. 당신은 죽으면 끝인 거다.

사람의 생각이란 쉽게 변하는 게 아니고. 물론 나도 그렇다.

 

불가지론자인 그가 신을 믿지 않음에도 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다. 철학자인 그의 형은 그런 그가 질척하다고 일갈하지만, 그는 자기와 달리 내세를 믿고, 그래서 르 레베일 모르텔’(죽음의 엄존성과 삶의 필멸성에 눈 뜨는 계기)에 시달릴 일 없는 신자들(구체적으로는 기독교도들)을 부러워한다. (옮긴이의 말, 405)

 

질척한 정도가 아니라, 풍덩 빠져 사는 나로서는 크게 반응할 일도 없지만... 다만...

죽으면 모두 끝이라는 이야기,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면, 현재 삶의 의미 없음, 그 끝없는 무의미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하기는 하다. 나로 말하자면 생명과 죽음에 대해, 그 시작과 끝, 과정과 결과에 항상 감탄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더욱 솔깃해지는 스타일이니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각 정자와 난자의 주인들이 이처럼 무작위하게 서로를 선택하여 한 아이가 탄생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 아이가 지니게 되는 유전정보의 고유성은 10²²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고유함이 곧 여러분들 각 사람이 지닌 정보의 정체성입니다. (정용석, <나는 이미 기적이다>,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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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일이 어려워요. 읽고 싶어서 어떤 책을 골랐는데 휴가지에서 읽으면 재미 없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8-22 21:5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는 이번 휴가 때는 책선택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집에서 읽기엔 괜찮았겠지만, 휴가지에서는... 어울리지 않았네요^^

잠자냥 2016-08-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스를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ㅎㅎ 반스는 국내에서 <예감은...>으로 널리알려졌지만 그의 진면목은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플로베르의 앵무새> <내말 좀 들어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기회되시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단발머리 2016-08-22 22:06   좋아요 0 | URL
저도 조금 힘들더라구요. 진도가 안 나가서요~~~
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익숙하네요. 읽어보지는 않았구요. 제목만 익숙해요^^
추천하신 다른 책들도 구경해봐야겠어요. 추천 감사해요. ㅎㅎㅎ

icaru 2016-08-2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키워드로 대여섯권의 책을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 많지 않아요 와!! 짱이어요!!! ㅎ ,, ㅎ
저는 음... 읽은 책 한 권 나와서 반색한 얼굴 하고 있네용

단발머리 2016-08-24 23:36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icaru님께 재차 말씀 드리지만 제 방에 자주 좀 오세요~~~~
icaru님 칭찬에 기쁨의 몸이 된 단발머리의 부탁입니다^^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재주는 없구요. 생각나는 구절만 모아봤어요.
읽으신 책 한 권은 무엇이었을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