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카뮈의 작품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작품의 시작부터 주인공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던져놓고 누구도(심지어 작가조차도) 이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한다.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 역시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당한다. 체포하러 온 사내들에게 이유를 묻지만, 그저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라는 말뿐이다. "페스트"는 또 어떠한가. 건물 안에서 갑자기 죽은 쥐가 한 마리 발견되더니, 이윽고 삽시간에 전염병이 오랑 시를 덮쳐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문학작품은 아니지만, 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에반게리온"에서도 상황은 유사하다. 14살인 주인공 신지는 몇년 동안 보지도 못했던 아버지에게서 갑자기 부름을 받고는, 생전 처음 보는 로봇을 조종해서 적 사도를 무찌르라는 명령을 받는다. 사도가 무엇인지, 왜 하필 본인이 해야 하는지에 관한 설명이나 설득 따윈 없다. 그저 로봇에 올라타야 한다는 강압적인 지시만 있을 뿐.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부조리한 현실 자체보다는 이를 대하는 주인공들의 태도이다. 카프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굴욕적인 죽음을 맞기는 했지만, 죽는 순간까지 주어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요제프 K가 마지막 순간 내뱉은 말("개 같다!")은 그의 반항심이 집약된 표현이다. 카뮈의 주인공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반항한다. 페스트라는 절대적인 죽음의 공포와 위기 속에서도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움"으로써 신이 침묵하고 있는 세상에서 성자가 되고자 한다. "에반게리온"의 신지의 경우 처음에는 타인과의 접촉을 두려워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길 꺼리는 수동적인 존재였지만, 종국에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가둬두었던 알을 깨고 나오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요는 이렇다. 인생이라는 고통의 늪에서 어떻게든 발을 빼고 싶은 마음이 들지언정, 이를 회피(여기에는 자살도 포함된다)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주어진 운명, 실존을 직시하고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것, 자꾸 안으로 숨으려 하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 운명과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이 이 부조리한 세상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내라"는 것('살아라'와는 다르다), 그것이 위 작품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