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큰 잘못은 휴가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대출한 일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먼저 접한 독자라면 그 둘을 아우르는 흥미로운 프리퀄로 읽는 재미 또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407)

 

 

 

 

 

 

 

 

내가 그런 독자다. 줄리언 반스의 책 중, 이렇게 두 권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는 일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너무나 애달팠다. 이 책은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죽음에 대한 해석이 좀 더 유쾌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런데... 애를 많이 먹었다.

서서히 찾아든 아버지의 죽음, 자기중심적이고 당당한 어머니의 죽음, 가족에 대한 어릴 적 기억들과 철학교수인 형과의 대화, 죽음을 키워드로 수집한(?) 예술가들의 일화와 인용문들이 교차 등장한다. 종교예술 애호가로서 신자들에 대한 부러움과 미래의 인류에 대한 과학적 예측들도 이어진다. (옮긴이의 말, 404)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았지만 그런대도 쉽지는 않았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와 달라서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전망이 너무 암울해서이기도 하고, 일면 그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따라가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구절은 이렇다.

 

라디오에서, 인간 의식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인간의 뇌에도, 컴퓨터상의 뇌에도 중심이 없다(자아가 있는 곳도 없다)’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우리가 영혼이나 혼에 대해 생각하는 개념은 분산된 뉴런의 절차개념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299)

    

당연하지! 틀렸다. (틀려도 이만저만 틀린 게 아니라) 늘 틀렸었다. 그런 데다 그렇게 직설적으로, 위협적으로 중대한 것을 지금껏 생각해보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아마추어적인가. 60억 년 후에 멸종될 존재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를 훨씬 뛰어넘는 어떤 존재, 그렇지 않다 해도 아무튼 우리와는 완연히 다른 존재가 멸종될 것이다. ... 최고의 존재니 가장 똑똑한 존재니 하는 건 잊어버려라. 진화가 모종의 웅대한, 비인간적인,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버전의 우생학이라는 말도 잊어버려라. 진화는 우리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우리를 데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진화는 엉성한, 적응하기엔 역부족인 원형인 우리를 저버릴 것이며, 그런 후 우리(와 바흐와 셰익스피어와 아인슈타인)’를 고작 박테리아와 아메바처럼 여기게 될 정도로 까마득하게 다른 새로운 형태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348)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죽음-영혼-내세의 문제를 따로 떼어 내어 생각하지 못 하겠다.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고, 분해와 변형의 과정을 거치게 될 육체와 달리 영혼은 불멸의 존재라 믿는다. 물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혼이 속해 있을 특정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시대 유럽 사회에서 ’, ‘천국그리고/혹은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일은 모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징벌에 가장 극한 형태가 출교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에 대해 믿었고, ‘내세에 대해 확신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21세기, 지금 이 시대에, ‘천국’, 그리고/혹은 지옥의 이야기는 어떠한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 믿어진다는 것 자체가 희극적인 일이라 여겨지지 않겠는가.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을 읽자의 설명은 이렇다.

 

왜 모든 인류 문화가 종교를 지니고 있을까? 도킨스는 이것을 바로 (문화유전자)’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생존과 번식에 투자하는 유전자만을 선호하는 냉혹한 자연 선택 속에서 너무 낭비적이고 사치스럽고 파괴적인 종교가 살아남은 이유는, 다른 상황에서는 유용한, 혹은 과거에는 유용했던 심리적 성향의 불운한 부산물인지 모른다고 말이다. ....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연대감과 우리의 존재를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을 충족시켜 준다는 이점 때문에 종교는 모든 부족에서 각자 다른 형태로 진화해 왔다. (154, 156)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98)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여러 가지 제도들 중 최고로 정교한 형태라는 뜻일테다.

 

 

 

 

 

 

 

 

책은 도끼다에서 박웅현은 말한다.

그러니까 긴 흐름으로 봤을 때 제가 칠십 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그만큼의 박웅현이라는 객체는 객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수억 년의 흐름에서 칠십 년인 건데요. 끊임없이 이어진 기다란 띠에서 점 하나 찍는 정도도 안 되는 순간을 제가 사는 겁니다. 큰 흐름의 관점에서 보면 제 몸뚱이는 잠깐 동안 뭉쳐졌던 덩어리죠. 어느 순간 생겨나서 칠십, 팔십 년 살다가 죽고, 죽으면 썩을 거예요. 땅속에 묻어두면 벌레들이 먹을 거고 누군가의 자양분이 되겠죠. 그러면 나란 실체, 존재는 없어지죠. 이렇게 흩어져버리는 게 죽음이고 이게 큰 기의 흐름이라는 겁니다.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다가 바로 이 얘기인 것이죠. 그렇게 보면 소유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삶에 의미가 있을 겁니다. (336)

 

아직도 서성이는 사람에게는 역시 도킨스가 쐐기를 박는다.

철 좀 들어라,라는 것이 도킨스의 요지다. 신은 가상의 친구다. 당신은 죽으면 끝인 거다. 어떤 영적 경외감을 느끼고 싶은 거라면 망원경으로 은하수를 찬찬히 관찰하면 된다. 바로 지금 당신은 아이의 만화경을 빛에 비춰 보고 있는 것이며 그 색색의 마름모꼴들이 신이 집어넣은 거라 둘러대고 있는 것이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149)

 

그래서, 요약을 해 보자면. 거친 산문을 쓰듯이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뇌는 우리 몸의 다른 부분처럼 고깃 덩어리일 뿐이고, 자아는, 정신은, 영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종교란 인간 세계의 결속을 위해 지어낸 가장 세련된 거짓말이며,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철 좀 들어라. 당신은 죽으면 끝인 거다.

사람의 생각이란 쉽게 변하는 게 아니고. 물론 나도 그렇다.

 

불가지론자인 그가 신을 믿지 않음에도 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다. 철학자인 그의 형은 그런 그가 질척하다고 일갈하지만, 그는 자기와 달리 내세를 믿고, 그래서 르 레베일 모르텔’(죽음의 엄존성과 삶의 필멸성에 눈 뜨는 계기)에 시달릴 일 없는 신자들(구체적으로는 기독교도들)을 부러워한다. (옮긴이의 말, 405)

 

질척한 정도가 아니라, 풍덩 빠져 사는 나로서는 크게 반응할 일도 없지만... 다만...

죽으면 모두 끝이라는 이야기,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면, 현재 삶의 의미 없음, 그 끝없는 무의미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하기는 하다. 나로 말하자면 생명과 죽음에 대해, 그 시작과 끝, 과정과 결과에 항상 감탄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더욱 솔깃해지는 스타일이니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각 정자와 난자의 주인들이 이처럼 무작위하게 서로를 선택하여 한 아이가 탄생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 아이가 지니게 되는 유전정보의 고유성은 10²²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고유함이 곧 여러분들 각 사람이 지닌 정보의 정체성입니다. (정용석, <나는 이미 기적이다>,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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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일이 어려워요. 읽고 싶어서 어떤 책을 골랐는데 휴가지에서 읽으면 재미 없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8-22 21:5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는 이번 휴가 때는 책선택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집에서 읽기엔 괜찮았겠지만, 휴가지에서는... 어울리지 않았네요^^

잠자냥 2016-08-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스를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ㅎㅎ 반스는 국내에서 <예감은...>으로 널리알려졌지만 그의 진면목은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플로베르의 앵무새> <내말 좀 들어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기회되시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단발머리 2016-08-22 22:06   좋아요 0 | URL
저도 조금 힘들더라구요. 진도가 안 나가서요~~~
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익숙하네요. 읽어보지는 않았구요. 제목만 익숙해요^^
추천하신 다른 책들도 구경해봐야겠어요. 추천 감사해요. ㅎㅎㅎ

icaru 2016-08-2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키워드로 대여섯권의 책을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 많지 않아요 와!! 짱이어요!!! ㅎ ,, ㅎ
저는 음... 읽은 책 한 권 나와서 반색한 얼굴 하고 있네용

단발머리 2016-08-24 23:36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icaru님께 재차 말씀 드리지만 제 방에 자주 좀 오세요~~~~
icaru님 칭찬에 기쁨의 몸이 된 단발머리의 부탁입니다^^
엮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재주는 없구요. 생각나는 구절만 모아봤어요.
읽으신 책 한 권은 무엇이었을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