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워낙 깨알같은 재미를 촘촘하게 박아놓은, 디테일한 요소가 일품인 원작을 재밌게 읽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수소니 산소니 패스파인더니 MAV(화승상승선)니 하는 복잡한 용어들이 난무해도 마크 와트니의 긍정적 에너지. 도대체 어디서 저런 긍정성이 솟아날까 의구심이 생길 만큼 마크 와트니는 시종일관 유쾌했고, 원작에서 그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는 촘촘한 디테일을 자랑하며 무사 구출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해피엔딩을 맺기에 영화에서 그려낼 영상미에 대한 기대심이 컸음을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맥이 딱 풀려버리고 말았다. 맷 데이먼의 엄청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영화을 다 본 후의 나의 느낌이란... 대체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영화만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영화는 너무 많은 부분을 삭제, 축소시켜버렸고 그런 면들이 심플한 영상미를 제공하며 그야말로 화성판 생존기에 그치는면에 불과했음을 느끼게 된다.
<화성에서 감자 재배를 성공한 마크 와트니>
원작에서 재미요소를 꼽자면 그 첫 번째로는 그가 화성에 혼자 남겨졌고 그러므로써 감당 해야하는 생존문제(식량, 산소, 물)가 시급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마크 와트니는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라는 것. 그야말로 무인도에 떨어져도 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맥가이버 같은 매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에 쓰일 감자에 싹을 틔워 재배할 생각을 해낸 마크는 인분을 화성 흙과 지구에서 가져온 흙으로 버무려 재배를 시작한다. 여기서 그의 매력은 다양한 공식과 실험방식들로 디테일하게 그려지는데 그런 원작의 재미가 영화에서는 축소 되어버려서 좀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패스파인더를 찾아낸 마크 와트니>
두 번째로는 나사와 통신을 위한 과정들이다. 1997년도 '선도자'라는 뜻의 패스파인더가 화성에 쏘아올려지고 배터리 부족으로 통신두절 되었던 상황을 생각해낸 마크 와트니가 패스파인더를 찾으러 이동하는 선외활동의 디테일함. 예로 로버를 장시간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하고 내부 온도 조절을 위해 방사선 물질인 RTG와 절대적인 태양 전지의 필요성의 언급을 삭제 시키므로써 극의 몰입도와 재미를 감소 시키고 있다.
세 번째로는 화성 탈출을 위해 상승선인 MAV가 있는 스키아파렐리 분화구까지의 여정이다. 이동을 위해 로버를 다시 개조하는 과정과 이동 중에 만나게되는 모래폭풍과 그로인해 태양 전지의 효율이 크게 떨어져 로버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긴박함 속에 맥가이버 같은 순발력으로 해결 해나가는 마크의 디테일한 요소들이 삭제되어 버렸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렇게 정리해보자면 영화에서는 '마크 와트니'라는 천재 학자의 디테일함을 축소 시켜버린 셈이다. 어쩌면 감독 리들리 스콧은 마크라는 인물 보다도 화성이라는 광활함과 구조라는 절박함에 초점을 두고 해피엔딩이라는 안전한 발판을 만든 셈인지도 모른다. 다시말해 맥가이버 같은 능력의 거품을 빼버린 대신, 한 인간이 화성에서 살아내기 위한 과정들을 아주 심플하게 구성하며 온 지구촌 사람들이 그의 무사 생환을 한 마음으로 바래는 그 뭉클함을 이끌기 위한 과정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그렇지만 영화가 아무리 심플함으로 무장했을지라도 결말에 이르렀을땐 눈시울을 붉게 한다. 마크를 구하기 위한 동료애와 전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원작 만큼의 감동으로 전해지 때문이다. 더욱이 '무사 생환'이라는 결말이 우리나라에선 유독 슬프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2014년의 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씨네 21>에서 '김혜리의 영화일기'의 한 대목이 마음에 콕 와서 박힌다.
' 개인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상태는, 당사자의 의지와 태도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희망과 의욕의 토양이다'P32<씨네 21 NO.1028>
김혜리 기자의 이야기를 증명하듯 원작에서 마크 와트니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헌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명이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그래도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P598<마션>
우리는 언제쯤 탄탄한 신뢰의 땅을 딛고 희망과 의욕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일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 <마션>을 두고 원작을 먼저 볼까 영화를 먼저볼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면 나는 영화를 먼저 권하고 싶다.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책을 읽으며 더 풍부한 상상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다. 원작을 먼저 본 나로써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듯한 기분을 느낀 점이 핑계라면 핑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