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때부터 고민을 했더랬다. 도서관에 가본지 어언... 흠..그러니까 4~5개월 가량이 흘러(하. 정말 오래가보지 않았구나) 너무너무 그리웠는데. 하필 월요일부터 꽃샘 추위라니. 몸조리를 위해 일주일 정도는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검색하는 책마다 도서관에 떡하니 비치 되어있으니 이건 꼭 외출하라는 하늘에 계시이리라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들은 신랑은 정말 어의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 자 봐봐. 이 방에 온통 책이야~ 이 책 다 읽었어? 여기 이렇게 책이 많은데 왜 서점이나 도서관을 가려는거야?' 라고 묻는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 자 봐봐. 이 방 티비 옆에 온통 게임기 뿐이지. 각 시리즈별 플스와 닌텐도하고 여기저기 보이는 게임기 보여? 그래도 오빠는 게임기를 사고싶어했고 결국 샀지 (플스 프로가 출시되었을때 우리 신랑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그거랑 같은 마음이라면 알겠어? '
신랑은 당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겼다. 만세!
한때는 신랑이 나와 같은 취미가 아님을 아쉬워 했던 적이있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좋은 작가를 서로 추천하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시간들을 만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요 근래 퇴근 후엔 늘 신랑 혼자서 하던 게임보다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하자며 마리오 카트로 내 형편없는 운전실력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고 커비의 대 변신을 보여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자신이 가장 즐겨하는 일로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만약 신랑이 나와 같은 취미라서 조금은 힘들고 지치는 이 시기에 이 책 저 책을 막 권했다면 아마도 책에 질려버렸거나 머리가 뻥~ 터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다른 성향만큼 다른 취미가 있다는 것도 꽤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은 분주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씻고 아침을 준비하고 신랑의 옷가지를 꺼내놓고 회사로 출근시킨 다음, 청소기를 돌려 청소를하고 유리 세정제로 거울과 티비 모니터를 닦아내고 손빨래를 한 다음에 기모가 달린 옷을 찾아 입고 외출 준비를 했다.
버스 시간을 조회해보니 도착까지 30분 가량이 남아 북플에 들러 올라온 글을 재미나게 보다가 그만 버스 도착 9분전에 헐레벌떡 뛰어나가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버스에 타지 못하게 되었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서경석과 양희은의 '여성시대'를 들으며 부끄러움도 잊은채 낄낄거리다 도착한 버스를 타고 병원 앞에서 내리게 되었다.
오늘은 마침 병원에 들러 약을 받아야 하는 날이기도 해서 (갑상선 약을 타는 날이다) 병원에 들렀더니 대기실에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접수대에 '대기시간 1시간 30분'이란 글귀가 보여 불현듯 오늘이 월요일 이구나 싶은 생각이 났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생이 가장 힘든 날이 월요일이라고 했는데 아마 오늘도 힘들겠구나 싶은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도서관부터 다녀오자 싶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쌀쌀한 공기가 코트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책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너무 들떠서 추운지도 몰랐던 것같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아동 열람실은 텅 비어있어서 마치 내 서재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한참 즐겨 읽는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에서 소개된 올리비에 탈레크가 그린 <무릎딱지>라는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동 열람실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리라. 아동 열람실에서 책을 찾는다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줍는 것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사용하는 열람실이다보니 책은 번호를 망각한채 뒤죽박죽 꽂혀있기 일수라서 제자리에서 찾아내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그래서 딱 포기할때쯤 찾게 된다면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보물처럼 손에 쥐고 이번에는 성인 열람실에 들어섰다. 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발소리를 죽이며 들어온 신간부터 쭉 훑어보는데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책 냄새를 맡자 달콤한 향수를 맡은것 처럼 기분이 업업되었다.
그리고 발견한 김진명의 <고구려 6>은 도서관에서 대출해보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또 하나의 보물처럼 손에 쥘 수 있어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찾기 시작한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 내 방식대로 읽고 쓰고 생활 한다는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휴대폰으로 대출검색을 해보니 역시 이미 대출된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책을 찾아보니 <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가 보여 냉큼 집어들었다. 다음으로 장강명의 에세이집 <5년만에 신혼여행>과 <댓글부대>를 찾아들었다. 요즘 '책번개'라는 프로그램에서 노홍철씨와 함께 진행하는 모습이 좋았는데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 한 권 밖에 읽지 못했던 터라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에 대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 책을 너무 재밌게 읽고 있어서, 아니 재밌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삶이있고 지혜가 있고 열정이 있는 너무나도 좋은 책인지라 이 분이 쓴 다른 책을 읽고 싶어서 검색해보니 <명화가 내게 묻다>와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이란 책이 있었다. 두 권다 대출하고 싶었지만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도 빌려야 했기에 고민하다가 <명화가 내게 묻다>를 먼저 대출하기로 하고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을 책장 깊숙이 눈에 띄지않게 밀어두었다.
'아. 다음 주까지 있어야할텐데. 다른 사람의 눈에 절대 띄면 안되는데' 하는 못된 심보가 발동되었다.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 너도 순실이처럼 뻔뻔하게 세상을 살아보란 말이야~ '라고. 이럴땐 엄마 말씀을 듣는게 옳다. 한번쯤 얌체처럼. 뻔뻔이처럼 되어봐야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7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서 무거운 발걸음을 디뎠지만 마음만큼은 날아갈듯 기뻤다. 병원으로 돌아가던 길가에 참나무에서 떨어진 작은 도토리들이 보였다. 어느 블로그를 보니까 이 도토리들도 발아를 해서 싹을 틔우던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코트 주머니에 담아왔다. 베란다에도 새 식구를 늘릴 수 있을까? 오늘은 이래저래 행복한 일들이 잔뜩 있는 하루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