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평점 :
너무 놀라면 몸이 움직이지 않고 너무 좋아도 말이 솟아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좋은 부분이 많아서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를 두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더랬다. 수없이 쌓여가는 태그를 적어가며 한쪽 방향으로 쓰자니 다루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아쉽고, 또 모두 다 정리해볼까 하는 야심찬 생각을 갖자니 그러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거 같다는 고민들. 그렇게 고민되는 이유가 제목만 살펴보자면 그림책 작가들에 관한 그림책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책을 펼쳐 읽어보면 그곳에 삶이 있고 그 삶이 한 권의 책과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열 명의 각기 다른 작가들의 인터뷰임에도 그들의 생각은 한결같다는 걸 발견하면서 인생이란 지름길이나 샛길 없이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성실한 영역임을 깨닫는다. # 공감, 창의력, 육아, 꿈, 희망, 끈기, 도전, 편견, 상상, 놀이, 학교, 교육, 부모, 인생등 실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들과 함께 고뇌하고 부딪치고 넘어지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임을 깨닫는다.
###
' 30년 후에 두 아이가 저를 좋은 엄마였다고 회상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엄마 이전에 자기만의 삶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아무리 음식을 잘하고 뒷바라지를 잘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엄마의 열정과 영혼이 안느껴진다면 아이는 껍데기 엄마와 만나는 겁니다. 뭔가에 열정을 지닌 살아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표를 모으거나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 그 대상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 없어요. 엄마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해가는 과정과 그리 멀지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p61)
###
' 시도해보고, 감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다시 해보며서 변화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은 거짓말이에요. 그 말좀 믿지 마세요.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산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난관을 통과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언제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수정하고 진화 할 수 있습니다" (p103)
###
'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생소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몽상에 빠진다는 것은 그 아이의 주의력이 산만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가 동시에 여러 곳에서 존재할 수 있음을 뜻한다'(p217)
###
' 저는 책에 질문을 많이 넣습니다. 하지만 답은 절대 적지 않습니다. 인생의 본질이 그래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하는 상황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채 나아갑니다. 우리를 발전하게 만든는 건 인생의 그 모호함 입니다.'(p220)
###
' 일상 속에서 어떤 감정이나 장면이 쉽게 넘겨지지 않아서 자꾸만 되새김질 하고 곱씹어보게 된다면, 혹은 일을 하는데 숙련되지 않은 과제가 주어져 자신을 긴장 시킨다면 그건 좋은 신호다. 경계를 깨고 관점을 바꾸는 것들은 ' 모호하다' 그리고 '결코 편하지 않다' 안에르보에게 창의력이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불편과 막막함을 견딘 자세를 의미했다"(p220)
프랑스 아동문학의 살아있는 고전이라 불리는 클로드 퐁티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고정관념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꼬집어 낸다.
' 부모들 중에서 핑크색 치마를 입은 공주 인형을 보며 폭력성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드는 그런 류의 인형도 폭력의 일종 아닌가요?'라고
그러고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나는 줄곧 교복으로 치마를 입어야 했다. 몸이 좋지 않거나 쌀쌀한 날에 체육복 바지라도 입고 있을라치면 선생님들의 매서운 질타가 쏟아지던 기억이 사뭇 떠올랐다. 여자는 왜 여성이라는 이유로 치마를 입고 등하교 해야 했던가 라는 질문을 나는 여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셈이다. 그냥 선생님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교칙이라는 이유로 뒤집어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 남자는 왕자, 여자는 공주,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 어릴 적부터 고정된 관념은 지금껏 한번도 나의 생각을 흔들어 균열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미치자 이 고정관념이라는 게 얼마나 단단하고 무서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규범, 규칙, 질서라는 정해진 틀을 흔들어 볼 수 있는 힘, 그런 힘을 기를 수 있는 건 역시 책을 읽으며 나아갈 수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