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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가 내게 묻다 - 당신의 삶에 명화가 건네는 23가지 물음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6월
평점 :
살아가면서 삶이 참 허무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느껴 본 적은 있는지..
며칠 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지수 씨가 출연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삶의 허무함 때문이었노라 토로와 함께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봤고, 나도 모르게 깊은 공감을 하고 말았다.
아마도 25살 때였던 거 같다. 모두가 깊이 잠든 그 시간에 너무나도 지친 얼굴로 들어온 의사선생님은 내게 수술 동의서를 내밀며 사인하라고 했을 때 처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과 죽음은 늘 자웅동체였건만 젊다는 이유로 철이 없다는 이유로 죽음과는 까마득하게 생각했던 그 시절에 수술대에 누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봤던 그 시간이 두둥실 떠오른다.
수술 이후 '좀 더 열심히''좀 더 부지런하게'란 모토로 열심히 살아가고자 했건만 삶이란 늘 원하는 반대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아서 어디로 떠밀려 갈지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게 무언가 의지를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자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그런 의지가 자꾸 물거품처럼 느껴지면서 삶이 덧없음을, 무의미함을 절절하게 느끼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내 삶에 훼방을 놓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이런 시기에 나는 '최혜진'이란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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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어떤 사람이 될까? 어떤 인생을 보내게 될까. 좋아하는 글을 계속 쓰며 살 수 있을까? 내가 가려는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p75)
누구나 마음속에 들끊는 고민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지만, 그녀의 삶과 내 삶은 마치 거울처럼 닮아 보였다. 어린 시절 아팠던 경험과 삶의 무의미함을 깨달아버렸던 그 시점에서 나는 작가 최혜진이란 사람보다도 나와 똑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최혜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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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다짐했던 그림쇼의 자기주술적 표헌처럼 보이는 반복들. 달빛 아래서 막연함을 그냥 막연함으로 흘려보내며, 두둥실 마음속에 떠오른 답 없는 질문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매달리듯 그렇게 끼적여단 흔적이 지금 우리의 마음에 아련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p82)'
평소 그림을 좋아했던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 삶의 질문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기자생활 10년을 접고 훌쩍 유럽으로 날아가 묵묵히 일상에서 그 가치를 발견해온 화가들에게서 답을 구했다던 이야기들 속에서 결국 흘려 보내라고, 그 물음이 지나가길 기다려보라고 애써 답을 구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모두가 살아가는 거라고 다독여주는 손길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삶이 던지는 질문과 물음들을 품고 열어보기를 권한다. 화려한 화가들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나 색채에 관한 이야기나 시대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지 말기를. 그저 그림속에 숨겨진 질문에 답을 구한 이야기가 여기 있을 뿐이라고. 그런 물음에 대한 이야기가 당신에게 열릴꺼라고. 그래서 그녀가 너무 반가웠다고 느껴지던 깊은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