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스타디를 끝냈습니다. 철학사 스타디의 끝이기도 하고, 2015년에 시작하여 4년째 이어온 마을 스타디의 마침이기도 합니다. 길게는 만 3년 이상을 짧게는 2년 가까이 함께 한 분들입니다. 한국사에서 시작해서 세계사 그리고 철학사까지 나름대로 소위 인문학이란 것을 함께 해보았습니다. 전문성도 없고 깊이도 없고 방향성도 뚜렷하지 않은 스타디를 3년 이상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나름대로 공부를 하시면서 틀린 부분들 부족했던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실텐데요. 우리 스타디는 첫 발걸음이었음을, 단지 공부에 대한 재미를 일깨운 시간들이었음을 기억해주신다면 너그러이 웃으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마지막 스타디에 열 다섯 분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20세기의 다양한 철학들 중에서 영미의 분석철학 (논리실증주의)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실존주의에 대해서 조금 공부하였습니다. 까뮈의 소설들과 시론을 예로 들어 실존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해보려 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늘 건강하시기를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1-06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9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전원이 참석하였습니다.  특히 5월과 6월은 결석이 많아서 들쭉날쭉 공부한 분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哲學 '史'의 특성상 빼놓지 않고 읽어야 이해가 될텐데 부득이 건너 뛴 부분이 있다면 나중에 혼자라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헤겔 이후의 19세기 철학에 대해 주로 공부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마르크스, 니체 등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았는데요.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 독일 관념론에 대한 비판이 이들 철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세기말 비엔나'의 우울과 불안 속에 프로이트도 등장했고요. 20세기에는 '현대철학의 언어적 전회' 를 이루어낸 비트겐슈타인도 있습니다. 

 

다음주에는 이 책의 남은 부분들을 모두 훑어 보겠습니다. 말그대로 훑어보는 수준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445 ~ 5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은 아홉 명이 참석했습니다.

'어려운' 헤겔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헤겔이 무엇을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철학을 했는지 어렴풋이 그려보았습니다.

 

헤겔 평생의 목표는 '낭만주의의 이성화' 입니다. 헤겔은 계몽주의자인 동시에 계몽주의를 비판한 낭만주의자 입니다. 헤겔은 낭만주의의 '통일 철학'을 추구하되 무조건적 믿음이 아니라 반성적 오성을 사용하였습니다. 강유원에 따르면 헤겔은 "초월적 직관을 배제하고 절대적 반성을 통하여 '유한자를 계기로 삼아 정립되는 무한자' 를 인식" 하려 하였습니다. 이것을 헤겔의 변증법이라고 합니다.

 

무한자는유한자에 선행하는 논리적 · 내재적 목적입니다. 그러나 유한자는 이 목적을 모르고 살아가며, 무한자는 유한자가 삶을 통해 이 목적을 실현해야만 드러납니다. 무한자가 유한자에 선행하지만 유한자 없이 무한자가 성립되지는 못합니다. 유한자의 내재적 목적 즉 무한자를 아는 사람은 무한자의 위치에 올라선 유한자입니다. 흔히 상수리나무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상수리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한 채 이 과정은 계속됩니다. 싹이 틀지, 나무가 될지 꽃을 피울지 열매를 맺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앞을 알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신은 미리 알고 있습니다. 이미 그 삶을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의 입장에 올라선 인간은, 유한자이면서 동시에 무한자인 인간은 이 과정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철학고전강의> p393

 

<정신현상학>은 책의 내용이 그대로 변증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식의 경험의 학' 인 <정신현상학>은 신적 인식에 이르기 위해 인간이 거쳐가는 의식의 과정입니다. 저급한 감각에서 시작한 정신의 여행은 절대 정신에 이르면서 완성됩니다. 유한자인 동시에 무한자가 된 것입니다.

 

"헤겔은 지식은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물리학과 수학이 아니라 생물학과 유기체를 자신의 패러다임으로 택하였다. 의식 역시 비시간적인 것이 아니며, 의식이란 그로부터 혹은  그 속에서 우리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 초월적인 조망 같은 것만도 아니다. 의식도 성장한다. 의식은 새로운 개념들과 범주들을 발전시킨다. 의식은 자신이 하나의 '의식 형태'와 다른 의식 형태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음을 발견하며, 그 둘을 조화시키거나 어쨌든 그 둘을 넘어서는 것을 배운다. 의식과 지식은 모두 역동적이다. 그것들은 변증법적이다. 그것들은 단순한 관찰과 이해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립과 투쟁을 통해 성장한다." <세상의 모든 철학> p380

 

 

다음 회에는 헤겔 이후의 몇몇 주요 철학자들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391 ~ 4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덟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칸트를 공부하였습니다.

 

칸트는 계몽주의 철학의 완성자입니다. 하지만 흄에 의해 '독단의 잠'에서 깨어난 칸트는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자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재에는 "계몽사상을 계몽 사상 자신의 끊임없는 의문으로부터 구해내었다."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칸트의 계몽주의에 대해서는 독일 계몽철학 잡지인 <베를린 월보>에 실린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칸트는 계몽을 '미성숙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이라 하였습니다. 편견이나 미신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몽의 주체는 이성입니다. 칸트가 말하는 이성은 '보편적 인간 이성' 입니다. 칸트는 인간은 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보편 이성). 모든 사람이 진리의 담지체라는 생각에는 18C 프랑스혁명에 나타난 평등 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칸트는 콩도르세와는 달리 인간 이성이 완전 가능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인간 이성). 인간의 이성은 오류 가능성을 지닌 부분적 이성입니다.  계몽을 통해 진리에 접근할 수는 있지만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계로 인해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며 이런 소통과 공감의 과정을 통해 보다 나은 합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칸트의 보편적 인간 이성이라는 개념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기반이 됩니다.

 

칸트의 철학은 비판(Kritik) 철학입니다. 칸트에게 비판이란 '한계를 명료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칸트는 합리론자들과 같이 인간의 타고난 선험적 이성을 인정합니다. 칸트는 경험에 의해 물들지 않은 선험적 이성을 순수 이성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앎이란 혼잡한 감각자료에 대한 직관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 면에서는 경험론과 인식을 같이 합니다. 칸트가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을 가진 감성의 직관능력과 12개의 범주 형식을 가진 오성의 개념(인식)능력의 종합 작용으로 우리는 대상물에 대한 앎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앎은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순수이성은 직관에 의해 나타난 '현상' 에 대해서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물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1차원적 시간과 3차원적 공간 그리고 12개의 범주를 벗어난 물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감성과 오성의 능력을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인식이 대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간의 인식을 따른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대상에 대해 인식한 것은 순수 이성이 구성한 것입니다.  이를 칸트의 '구성설적 인식이론' 이라고 합니다.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 합니다. 오성의 작용없이는 보아도 본 것이 아닌 것처럼(맹목), 직관에 들어오는 감각물질 없이 추상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은 텅 빈 것입니다. 여기에서 형이상학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순수 이성은 신, 영혼불멸 같은 감각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순수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순수이성의 조건과 인식 능력 그리고 한계를 뚜렷이 하였습니다.   『순수이성비판』으로 칸트는 흄에 의해 치명적 타격을 입은 자연과학을 복구합니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순수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수 이성에 의해 구성된 자연 세계는 동일한 법칙 아래 움직입니다. 자연 세계가 인과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연세계에 속합니다. 자연적 성질 즉 본능에 따라 인과성의 법칙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또한 절대적인 자발성, 자유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자연세계의 인과법칙과 상반됩니다. 인간에게 자유로운 의지가 없다면 인간의 행위가 오로지 자연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면 인간 사회의 윤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로봇에게 자유가 없기 때문에 책임이 없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이 없습니다. 귀책성이 없는 사회에는 도덕이 불가능합니다.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인간의 절대적 자발성과 자유의지 그리고 윤리학을 굳건히 세웁니다. 윤리적 행위의 지속적인 동기 유발을 위해 이론 이성에서 배제했던 형이상학적인 이념들을  실천 이성으로 하여금 요청하게 합니다.

 

자연세계와 자유세계 즉 현상계와 예지계라는 칸트의 이분법적 세계는 논리적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분리된 두 세계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두 세계를 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두 세계는 통합되어야만 합니다. 칸트는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을 동원한 『판단력 비판』을 써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자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자살은 인간의 생존 본능 즉 자연 법칙에 위배됩니다. 하지만 절대적 자발성으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자연과 자유라는 두 세계에 속한 인간은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하는 것일까요? 유치원 승합차에서 내리고 있는 어린 아이들과 갑자기 언덕 아래로 굴러내려오는 텅 빈 버스 사이를 승용차로 통과하려던 은탁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일까요? 칸트를 빌어 정의하자면 자살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자연성을 절대적 자발성을 통하여 폐기시켰다." 강유원 선생님의 설명입니다. 은탁이 죽음을 불사하고 굴러 내려오는 버스를 가로막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어린 생명들을 지켜야 한다는 목적 때문입니다. 생존 본능을 거스른 은탁의 철저히 자발적인 자유 의지가 윤리적 실천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다음주는 헤겔과 낭만주의 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375 ~ 390

 

강유원 강의, 2012 서양철학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열 한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이른바 경험론에 속하는 로크와 버클리, 흄의 철학과 반계몽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 루소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경험론자들은 앎의 근원이 경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크는 정신이란 tabula rasa, 빈 서판이며 일생 동안의 경험들이 그 위에 쓰인다고 합니다. 합리론자들은 인간은 상당히 많은 선천적인 관념들을 갖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경험론과 합리론은 근대 철학의 두 대립적 사상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경험론이든 합리론이든 앎의 주체를 인간, 인간의 이성에 둔 계몽주의 철학입니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싸움은 일종의 '가족의 싸움' 입니다. 그들의 진정한 공격의 대상은 비합리성이었습니다.

 

 

다음주는 칸트입니다. 길고 지루한 철학사에 지쳐 그만두고 싶어도 칸트와 헤겔을 하지 않고는 그만둘 수 없습니다. 칸트야말로 플라톤과 더불어 철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

p 362 ~ 3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