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왔다. 밀양 얼음골 사과, 15kg.

택배 아저씨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커다란 박스가 인터폰 화면에 비쳤다. 분명 15kg다.

 

11월, 막 부사가 나오기 시작하는 철에 지인이 사과 몇 개를 가지고 왔다.  밀양에 놀러간 언니가 농장에서 사 보냈다고 했다. 저녁에 사과를 먹어본 남편이 감탄했다. 자기가 먹어본 사과 중 제일 맛있다고. 남편은 쓸데없이 미각이 발달해서, 유난히 손맛이 없는 나를 고민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정작 자신도 매우 힘겨워 한다. 미묘한 맛들이 너무 잘 느껴지니, 어지간한 음식에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떤 음식이든 맛있다며 먹는 사람들을 차라리 부러워한다. 슬프게도, 미각은 사슴의 모가지처럼 고고하지만, 현실의 식탁은 싱겁고 짠 간조차 들쭉날쭉이다. 그런 남편이 신선한 산미가 살아있는 맛있는 사과라 극찬했으니, 밀양 얼음골 사과가 맛있기는 맛있는 모양이다. 내 혀는 미련밤퉁이라 대충 맛있는 혹은 대충 맛없는 것들만 구분한다.

 

지역 온라인 몰을 통해 지인이 알려준 농장의 사과를 주문해 먹었다. 그런데 두 번째 주문에 문제가 생겼다. 10kg 36과를 시켰는데, 44과가 온 것이다. 사과는 같은 중량이면 갯수가 많을 수록 싸다.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44과는 딱 보기에도 너무 작을뿐 아니라, 도저히 부사꼴로 봐줄 수 없는 설익은 사과도 섞여 있었다. 온라인 몰에는 아예 44과는 상품으로 올라오지도 않았다. 가장 작은 것이 40과이다. 전화를 했더니 생산자인 그 농장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한창 막바지 수확이 바빴을 때인 그 때, 농장 주인 아주머니는 과수원이라 했다. 사과를 하며 어떻게 해주면 되겠냐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뒤로 아저씨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그냥 들어도 싸움처럼 들리는 그 사투리에 나무람이 가세하니 아주머니를 향한 고함이 나에게 날아오는 듯 했다.

 

사실 나는 화가 났다. 지난번 택배는 경비실 문 밖에 놓여 있었다. 내가 전화를 못받았기 때문이지만, 10kg 박스를 들 수 없는 나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천적으로 허리가 약할 뿐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태가 나빠져 무거운 것은 일체 들지 못하고 있다. 남편이 돌아올 늦은밤까지 경비실 문 밖에, 안도 아니라 밖에 먹을 것을 놔두기에는 아무래도 찝찝해서 나는 결국 이웃집에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사실 나는 택배 특히 무거운 택배는 잘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섬세해서 슬픈 남편의 미각을 위해서 한껏 신경이 쓰이는 택배 주문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농장주인 아주머니는 처음에, 다시 보내줄테니 잘못 보낸 사과는 되돌려 보내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아픈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하며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은 사과를 이미 냉장고에 채운 후였다. 그러면서 갯수를 정확히 헤아려 본 것이다. 그런데 그걸 다시 다 꺼내 또 박스에 담아서 다시 택배로 보내고, 택배 기사가 올 시간에 맞추어 집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니, 그러고 다시 택배가 오면 또 사과를 나누어 냉장고에 넣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니, 그 힘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또 하라니, 순간 나는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했다.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다만 내가 이렇게 화가 났다는 것만을 일방적으로 알릴 뿐인 소위 '고객불만' 을 말이다. 나의 불평을 난처하게 듣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드릴까요? 라고 아주머니가 묻는 그 순간에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내 귀를 쳤고,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두 제품의 가격 차액을 돌려받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일이 끝난 저녁 7시경에 송금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서야 과수원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번에 주문할 때는 5kg를 더 보내주겠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내가 다시 주문할 것을 기대하는 아주머니가 약간 우습기도 하고, 속으로 살짝 기대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다.

 

나의 외갓집도 과수원을 했다. 어릴 때는 떨어진 사과나 조금 썩은 사과를 많이 먹었다. 외할머니가 커다란 양철 바케쓰에 주워 담은 사과를 머리에 이고 버스를 갈아 타가면서 가져다 주신 것들이다. 그 강골의 외할머니는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보다 더 억척이시던 분은 외숙모였다. 밀양 얼음골 보다 조금 더 윗쪽인 외갓집 과수원에도 딱 얼음골 사과농장의 주인 같던 외삼촌이 계셨다. 두분도 하루종일 과수원에서, 논에서, 들에서 일을 하셨다. 한번도 살가운 말, 부드러운 눈길을 받아보지 못하셨을 외숙모도 명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여름방학에 놀러가면, 사시사철 갈라터진 손으로 콩이며 옥수수이며를 삶아 주신던 외숙모였다. 비오는날 대청마루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뜨거운 옥수수 김이며, 흙마당 위로 떨어지던 빗방울이 그림처럼 생각날 때가 있다. 겨울방학이면 광에서 꺼내오시던 국광이라 불리던 사과도 있었다.

 

무어라해도, 허리가 아프다해도, 내 손은 하얗고 말랑하다. 내가 무엇이 힘들까.... 너무 작아 맛이 날까 싶던 사과도 다행히 얼음골 사과의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과는 너무 크지 않은 것이 더 단단하고 맛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조직이 더 치밀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다. 채 자라지 않은 것인지 맛이 아예 이상한 것 두어개를 골라 버린 것 외에는 불만 없이 먹었다. 

 

그런데 얼음골 사과는 사실 비싸다. 집앞 과일 가게의 부사보다 심하게는 두배 혹은 한배 반 정도는 비싸다. 그래서 가게에서 몇 개를 사왔더니, 남편이 이 사과는 흔히 먹는 그런 부사고 얼음골 사과와는 완전히 다르단다. 그래서 또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온라인몰에는 여러 농장들이 들어와 있어, 다른 농장에서 시킬 수도 있지만, 그냥 그 농장의 사과를 주문하고 전화를 했다.

 

아주머니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살짝 서운(?)했지만, 얘기를 하고 이번에는 잘 확인하고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자기가 무슨 약속을 했냐고 물었다. 나는 15kg를 보내 준다고 하셨지만, 그냥 좋은 놈으로만 보내주시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15kg이 왔다.  나는 5kg의 약속을 기대하고 전화를 했던 걸까? 어쩌면.... 혹은 그냥 외숙모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claim에 당한 것도 아주머니이고, 그것 때문에 또 아저씨한테 한 소리 들었을 아주머니... 그러고도 다시 주문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던 아주머니...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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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간 들어온 <어린이 독서 지도사> 수업이 끝나간다. 시험과 모의 수업만 남았다. 시험은 예상문제가 있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고, 모의수업이 문제다. 실제 수업은 보통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인데, 모의수업에서는 10분 안에 축약해야 한다. 3~4주에 걸쳐 24명 수강생 전원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짧아서 처음 모의수업을 한 4명 모두 줄거리만 요약하다 시간을 흘러 보냈다. 관건은 미리 제출한 수업계획안의 ‘이해 - 분석- 비판 - 독후활동’ 항목 모두를 10분 안에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다. 실제수업에는 필요 없는 고민이 모의수업 최대의 고민이 될 판이다.

 

사실 나는 어린이 독서 지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적어도 청소년, 좋기로는 성인과 노인을 대상으로 혹은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일을 하고 싶다. 처음에는 여기 지방 국립대 평생교육원의 <독서 지도사> 과정을 들으려 했다. 그런데 수강 인원이 미달되어 폐강되었다. 심지어 그 과정의 작년 수강생들은 봄 한학기만 듣고, 가을 학기는 못 들었다고 한다. 일 년 과정인데 봄에 들었던 몇 명이 빠져나가자, 가을 학기가 폐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무책임하지만, 강사료가 발목을 잡은 것 같다. 온라인에서 자격증을 따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강의의 질도 의심이 되고, 이론 보다는 경험담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을 텐데, 온라인 강의는 실제로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듣게 된 것이 <어린이 독서 지도사> 과정이다. 아파트 입구에서 2차선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시립도서관인데, 수강료도 싸고 가깝기도 하고, 노느니 장독 깬다고, 마실 삼아 나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시간은 쏜살이고, 세월은 유수라, 그저 앉아만 있었는데도 어느새 1년이다.

 

요즘은 스펙이 학생들이나 취업준비생들만의 관심거리는 아니다. 하도 오래 사는 세상이라, 사 오십 대의 주부들에게도 열풍이 되었다. 생업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소일거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칠팔십을 넘어 구십, 백 살까지 긴긴 세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일흔 정도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지만, 장담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존엄사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인간이란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지만, 또 죽음에 절대적으로 저항하는 존재기도 하다.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이승이 좋다고 하게 될지 또 모르는 일이다.

 

여든을 훌쩍 넘은 엄마가 요즘 영어 알파벳에 열중이다. 복지관의 영어수업을 신청해 놓았다는 것이다. 엄마 친구 분들 중에는 수학을 배우는 할머니도 있고, 한문을 배우는 분도 있다. 엄마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TV 광고나 간판을 읽기 위해서다. 수학을 배우는 마음은 무엇일까? 치매방지를 위해서일까? 순수한 학문적 관심일까? 노인교육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를 통해 간간이 얻어 듣기로는, 처음엔 노래, 등산, 춤 등의 취미활동이 주 대상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영어, 일어, 수학, 한문 등 학생들도 싫어하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그런 학문으로 확장되었다. 왜 머리가 빨리빨리 돌아가지 않는 노인들이 이런 어려운 것들을 배우려 하는 것일까? 간판이나 광고 꼬라지를 보면, ABC를 알고 싶다는 욕망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내일 모레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면 이런 골치 아픈 것들을 굳이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의 시대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가 아니라 ‘인생은 길고 할 일은 없다’ 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그저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 있는 시간이, 딱히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도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간절히 요구될 것이다. 나는 이런 분들과 함께 책을 읽었으면 한다.

 

우리가 배우지 못한 것은 영어, 수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다. 지금의 칠팔십 대가 아니라 앞으로의 칠팔십 대는 더욱 그렇다. 1950년대 생들만 해도 고등학교까지는 많이 졸업했다. 한글을 모르거나 ABC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정말 배웠어야 할 것들은 우리들도 그리고 아마 지금 젊은 세대들도 거의 배우지 못하고 지나쳐 왔다. 존재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세상은 평등한지, 민주주의는 필요한지, 타자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지 등등의 질문에 진지한 사유를 해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왜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지, 우리가 걸어온 역사는 무엇인지, 서구의 근대가 오늘의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등은 그저 연도만 달달 외우는 역사 공부로는 생각조차 해볼 수 없다. 문학은 또 말해 무엇 할까? 훌륭한 고전들은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하룻밤에 읽는~’ ‘시험에 나오는~’ 따위의 편집으로 누더기가 되었다. 고전의 깊이는 줄거리에 있지 않다. 오로지 입시를 위해 칼질해 버린 긴 묘사들, 역사적 배경들, 지루할 정도로 세세한 풍속 묘사들 속에 고전으로서의 고전이 있다.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이든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이든 <오만과 편견>이든 <고리오 영감>이든 그 줄거리는 우리가 욕하며 보는 막장 드라마와 거의 다르지 않다.

 

인문학은 청소년기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쩌면 청소년에게는 너무 벅찬 것이기도 하다. 그 나이에 고전의 깊이를, 철학적 사유를,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읽어내기는 힘들다. 보르헤스가 말한 상호텍스트성을 인정한다면, 텍스트는 삶의 두께와 함께 더욱 두터워진다. 결혼생활의 권태를 겪어본 여자가, 애증으로 부대끼며 사오십년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자식에게 헌신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아버지가, 기억이 가물대며 치매를 걱정하는 할머니가 읽는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고리오 영감>, <엄마를 부탁해> 는 청소년이 읽는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텍스트일 것이다. 작가가 뽑아낸 삶의 진실에 자신이 겪어온 경험이 얹힌다면, 밤을 세워 나누어도 시간이 모자랄 이야기가 쏟아질 것이다. 텍스트는 저마다의 경험으로 더욱 깊어지고, 자신만의 경험에 갇혀 있던 노인의 옹고집은 텍스트의 전체적인 시각에 의해 풀어질지도 모른다.

 

노인의 경험이 세상의 지혜가 되기 위해서는 전체적 맥락 속에 개인의 경험을 위치지울 수 있는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때 노인의 경험은 오히려 젊은 세대와의 연대를 단절시키고, 세대 간 불신을 촉발하는 독이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의 모습은 이런 단절을 향해 가고 있다. 젊은 것들은 모르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경험, 전쟁과 빨갱이, 배고픔과 새마을 운동을 젊은 세대에게도 강요하고 있다. 그것이 한 세대의 특정 경험일 뿐이라는 자각, 역사적 맥락 속 어디에 놓여있는지, 그것들이 만들어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인교육의 핵심은 이런 성찰의 기회를 열고, 그 능력을 기르는데 있어야 한다. 2차 방정식을 푸는 것보다 새마을 운동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읽으면서 말이다. 물론 인문학을 위해서는 노인의 똥고집을 버려야 한다. 똥고집을 버리기 위해서도 인문학은 노인에게 더욱 필요하다.

 

좋은 책을 선택해서 똥고집 노인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보고 싶다. 그들의 경험이 진정 이 세상의 지혜가 되도록 곰삭히는 방법을 함께 찾고 싶다. 자신의 세대를 제대로 된 맥락 속에 위치지우고,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는 멋진 ‘신세대(오래된 신인류)’가 우리나라에도 출현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노인이 되기 전에 노인 복지관을 가고 싶은 이유이다.

 

 

 

내가 선택한 어린이 독서지도사 모의수업 교재, <바보 한스>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려다 엉뚱한 이야기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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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부작 드라마 <정도전> 이 어제 끝났다. 인터넷 기사들은 이 보기 드문 드라마에 일제히 ‘명품사극’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나는 드라마에도 문학처럼 고전이 있다면, <정도전>이야말로 첫 손에 꼽아야 할 고전이라 말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뿌리 깊은 나무>, <선덕여왕>, <추적자>, <황금의 제국> 정도가 우선 떠오른다.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 같은 작품들은 불행히도 TV를 볼 여유도 없이 바삐 살던 시절의 것들이라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내 이름은 삼순이>를 할 무렵인 것 같다. 드라마의 주 전공이라 할 멜로물에서 볼만한 작품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드디어 사극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드라마의 성장 역시, 어떤 천재의 갑작스런 출현보다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처럼, 드라마의 역사가 쌓아온 통찰과 인식 그리고 표현력의 발전에 힘입은 탓이 클 것이다. 일 년에 한 편 정도만 고전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 나온다면, 우리 드라마의 미래는 밝을 것이고, 드라마를 즐기는 우리들에겐 대단한 즐거움이 될 것이니, 나는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속인으로서 좋은 드라마를 열렬히 기대한다.

 

 

 

 

 

<정도전>은 정통 사극이다. <대장금> 이래 MBC가 주도했던 ‘팩션사극’의 틀에 박힌 공식과 역사왜곡의 논란을 벗어나, 비교적 사료에 충실하게 전개된 사극이란 의미이다. 물론 드라마라는 형식상 사실로만 구성될 수는 없었겠지만, 여말선초의 주요사건들과 실존인물들의 기본 가치관과 행위는 사실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이외에 정도전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정도전을 ‘민본 사상’을 실현한 혁명가라고 규정하려 한다. 혁명가란 ‘가슴에 품은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낸 사람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일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정도전이란 인물을 흥미롭게 보게 된 것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서가 먼저이다. 한석규가 ‘지랄’ 을 찰지게 내뱉으며 욕쟁이 세종을 멋들어지게 만들어낸 <뿌리 깊은 나무>는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대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도전>의 마지막 회 장면인, 송현정에서의 이방원과 정도전의 최후 논쟁에 두 입장의 차이가 뚜렷하게 개진되었다. 이방원은 국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강력한 왕권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반면, 정도전은 왕은 존재하나 실질적인 통치권은 재상에게 있는 재상총재제도를 조선의 정치제제로 확립하려 하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 사병혁파, 요동정벌, 토지개혁 등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면서 다만 재상총재제도를 포기하고 함께 대업을 완성시키자고 회유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민본정치는 재상총재제도 안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왕가에는 언제든 폭군이 나올 수 있지만, 재상은 누구든 능력 있고 덕망 있는 인재를 뽑아 쓸 수 있다. “이 나라의 성씨를 모두 합쳐서 뭐라 하는지 아느냐? 백성이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내린다! 해서,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게 더 가깝고, 더 이롭고, 더 안전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도전의 재상총재제도는 입헌군주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하늘이 성군을 내리기만 기도하는 것 보다는 제도를 확립하고 이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론도 만만치가 않다. 고려 말의 허약한 왕권은 강력한 권문세가의 출현을 막아내지 못하고, 이인임과 같은 부패한 권신이 국정을 농단하고, 백성을 수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조선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폭군이 훌륭한 재상을 쓸 리는 거의 없다. 폭군은 정언직설이 아니라 감언이설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이 딜레마에서 시작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과 비슷한 느낌을 주며 일종의 추리 사극의 형태를 띠었다. <정도전>과는 달리 정통사극 보다는 퓨전사극에 가깝다는 말이다. 정도전과 그 후손에 관한 사실도 조금은 왜곡되어 있었다. 실제 이방원은 정도전의 장남을 살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나주목사로 복권시켰으며, 이후에 후손들도 관직에 나가 명성을 누렸다. <뿌리 깊은 나무>가 주요 갈등으로 그렸던 것과 같은 탄압은 없었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기본 갈등 구도를 위해서 고심 끝에 내린 왜곡이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정도전>의 후반부에 드러난 대립 구도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물론 드라마 방영 순서로는 <정도전>이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퀼 격이지만 말이다. 우연인지 이념 대립을 다룬 드라마들의 당연한 결과인지, <뿌리 깊은 나무>의 마지막 회도 정도전의 조카 정기준과 이방원의 아들 세종 사이의 최후 논쟁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정기준은 외형적으로는 정도전의 가치관을 되풀이 했다. 세종이 성군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다음, 또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세종의 답은 바로 훈민정음이었다. 백성이 글을 알면 왕이나 사대부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정기준은 훈민정음이 오히려 백성의 독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백성을 속일 수 없는 것은 돌이나 나무를 속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글을 깨친 백성들은 이제 교언영색으로 쉬이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 개탄했다. ‘백성을 속일 수 없다’는 말은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에 남긴 것이다. “백성은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어리석지만 지모로 속일 수 없다.” 정기준의 해석은 글을 가진 백성은 지모를 갖게 되고, 지모는 지모에 의해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 듯하다. 아쉽게도 <뿌리 깊은 나무>는 지모를 갖게 된 백성이 왜 더 잘 속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별 다른 해석을 내놓지 않고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세종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또 백성은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라 낙관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그리는 세종은 백성을 아이처럼 보살피는 성군이 아니었다. 백성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그 무기인 문자를 만들어 주려 했던 왕이었다. 이렇게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에는 ‘민본사상’ 이 깔려 있다. 백성이 힘을 가지지 못하고서는, 폭군이 되었건 탐관오리가 되었건, 착취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방원은 왕권으로, 정기준은 신권으로 이를 견제하려 했지만, 제도에 집착한 나머지 민본의 가치 자체는 오히려 등한시 되어 버렸다. 물론 드라마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이야말로 정도전을 계승한 진정한 인물이었다. 세종 스스로도 정도전이었다면 훈민정음에 찬성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민본을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업적이 바로 훈민정음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이런 세종의 뜻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세종의 민본사상의 요체가 훈민정음이라면, 정도전의 그것은 ‘계민수전 計民授田’ 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정권을 장악하자, 정도전은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여 백성의 수대로 골고루 나누어 주고자 하였다. 계민수전이라 이름붙인 이 혁명적인 토지제도는 그러나 권문세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했다. 대신 정몽주가 제안한 과전법이 실행되었는데, 모든 토지에 대한 세금을 국가가 걷어 들이도록 하여, 고려 말 권문세가의 가혹한 조세 수탈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였다. 이후 쌀밥에 이밥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조세제도의 개혁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된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이성계의 李자를 붙여 ‘이밥’이라 불렀던 것이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민본사상의 핵심이 바로 이것, ‘밥’이었다. 밥을 먹여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는 동서고금을 통튼 모든 국가의 핵심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져야 할 것이 있는데, 지젝이 말한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이다. 모든 것의 바탕에는 경제가 있지만, 그 경제를 바꾸는 것은 정치이다. 조선건국은 계민수전을 위해 정도전이 반드시 해내어야 했던 대업, 바로 정치였다. 고려 안에서는 진정한 대업을 이루어낼 수 없었기에 정도전은 평생의 지기인 정몽주와 극한의 대결을 벌여야만 했던 것이다.

 

현대의 우리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의 진실이다. 정치와 경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믿음은 이제 깨어졌다. ‘보이지 않는 손’ 자체가 이미 장막 뒤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정치적 손이다. FTA라는 정치적 협상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더욱 맹렬히 우리의 농업을 파괴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자영업을 무너뜨렸다. 88만원 세대는 이제 잉여사회의 잉여물이 되어 SNS에서 온갖 분노와 증오를 쏟아 내거나, 일거수일투족을 현시하며 시시껄렁한 모든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중이다. 이 경제적 무력감을 삼성이 해결할 수 없다.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이다. 경제적 투쟁은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권력은 자본에 넘어갔다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탄은 외견상 사실처럼 보였어도, 섣부른 포기였고, 무능함에 대한 변명이었을 따름이다. 불행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의 고향마을에서 뒤늦게 후회했지만, 더 깊은 성찰을 이어갈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권력은 국가에 있고, 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대로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드라마 <정도전>의 마지막 메시지는 500년 전의 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말하자면 헌법 제 1조를 믿어라. 우리 자신의 권력을 믿어라, 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대업, 진정한 대업이다.”

 

요즘 어디 가서 청년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다가는 엿 사탕 세례를 받기 십상이겠지만, 그래도 이것 외에 출구는 없을 것이다.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을 때, 이 꽉 막힌 현실을 깨뜨릴 조약돌 하나라도 쥐어볼 수 있지 않을까. 맹자를 빌어 정도전은 말했다. “불위야 비불능야 不爲也 非不能也”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덧붙임 : 사람들의 말처럼 <정도전>의 연기자들은 너무 훌륭했다. 조재현, 유동근, 박영규 모두 자연인으로서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그 흠결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을 만큼 멋진 연기를 해주었다. 특히 유동근의 함경도 사투리와 넋 들린 연기에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제 <정도전>을 능가하는 여말선초의 드라마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정도전>과 비록 팩션 혹은 퓨전 사극이나마 <뿌리 깊은 나무> 에 의해 조선의 건국이념과 태조에서 세종까지의 우리 한국사의 요체가 완성되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의 말대로 이조 오백년이 허송세월이 결코 아니었음을,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목숨 걸고 투쟁했던 조상들이 있었음을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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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트윗에서....

참사 자체도, 구조 작업도, 국가 시스템도 모두 결국에는 돈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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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동씨는 이제야 그 영화 <설국열차>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진즉에 사라진 그 영화가 TV VOD 상자에 덜커덩 나타난 것이다. TV를 끄고 컴퓨터 앞에 앉은 곰동씨의 얼굴은 괜스레 발개졌다. 굿 뒤에 날장구 치는 놈이 겸연쩍은 것은 당연지사, 그래도 곰동씨는 자판을 톡, 치기 시작했다. “영화는 ....”

 

곰동씨는 생각했다. 너무 노골적이야... 이거 좀 심한걸...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는 딱 하나였다. 너무 분명해, 말 깨나 한다는 어떤 평자도 이견을 내지 못했을 것 같았다. 사실 곰동씨는 작년 개봉전후에 쏟아져 나오던 평들을 거의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곧 볼 것이니까. 그런데 해를 훌쩍 넘긴 것이다. 여하튼 그러므로 지금부터 곰동씨가 중언부언하는 것은 곰동씨 딴에는 새로운 것이다. 남들은 이미 예전에 열을 올리다 이제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들이겠지만.

 

곰동씨의 머리에 맨 처음 떠오른 것은 지젝이었다. 이 영화는 지젝이 귀 딱지가 앉도록 외쳐대는 ‘환상을 횡단하기’ 다. 나쁜 것이냐? 더 나쁜 것이냐? 의 선택. 월포드의 ‘order' 는 나쁜 것이다. 그러나 열차 밖의 얼어붙은 땅은 더 나쁜 것이다. 행복한 삶은 고사하고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땅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얼어붙은 눈 위의 첫발자국을 선택해야 하는가? 봉준호의 답은 그렇다, 이다.

 

시스템 안에서는 어떤 미친 지랄도 궁극에는 시스템의 봉사자로 기여한다. 종교적 구원도 유혈 봉기도 시스템의 손바닥 안에 있을 뿐이다.

 

길리엄도 월포드 만큼이나 체제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존재한다. 종교란 늘 그래왔다. 굶주리고 헐벗은 자의 옆에 서지만, 그 자리는 늘 같은 곳이다. 가난한자는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꼬리칸에. 곰동씨는 아! 나쁜 감독이라, 속삭인다. 종교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까대다니. 구원의 한 가닥 줄마저 잘라버리는 잔인한 인간 같으니!

 

커티스는 어떤가? 목숨을 건 봉기가 체제 전복이 아니라 체제 안정의 도구였음을 알게 된 커티스에게 월포드는 자신의 자리를 제안한다. 체제를 지키는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라! 다 때려 부수어도 좋다. 단, 열차 안에서라면. 커티스 네 녀석도 알게 될 것이니. 인류의 생존은 열차에 달려있고, 열차는 질서와 균형에 의해 달린다는 진리를! 커티스가 엔진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엔진이 인간을 장악한 것이다. 곰동씨는 속삭인다, 자본주의처럼. 자본에 대한 어떤 비판도 상품으로 만들어 자본주의 화하는 괴물. <괴물>이 괴물에 잡아먹혔던 봉준호의 그 영화처럼. 그 때 <괴물>이 싹쓸이한 스크린이 몇 개였더라?

 

그래서, 엔진은 완전한가? 시스템은 영구적인가? 톱니처럼 돌아가는 엔진 틈새로 쪼그려 앉아 뭔가를 닦던(?)) 그 꼬마 아이. 곰동씨는 악! 놀라는 동시에, 오! 감탄했다. 부품을 대신하고 있던 그 아이, 엔진의 치명적 결함을 은폐하는, 동시에 드러내는, 그 유색인 아이. 그 조그만 이물질. 라캉의 대상a !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체현하고 있는 아이. 하.하.하... 괴물 같은 시스템이, 그 영구적인 엔진이, 그 무한궤도의 설국열차가 한낱 이물질에, 조그맣고 깡마른 고사리 손에 달려 있다.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는 아이, 그 아이가 가리고 있는 것은 시스템의 구멍이다. 아이가 부품을 대신하여 구멍을 가리고 있는 한 엔진은 영구적이다. 아이가 빠져나와 그 구멍이 그대로 드러나면 엔진은 멈추고 시스템은 마비된다. 시스템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전체이다. (W)hole ! whole인 동시에 hole인. 대상a는 hole을 whole로 만드는 스크린이자, whole이 hole일 뿐임을 가리키는 지시자이다. 곰동씨는 또다시 속삭인다. 이건 대상a에 대한 최고의 사례가 되겠어, 정말.

 

엔진이 멈추고 콰쾅~ 폭발! 열차는 궤도를 이탈하고, 아니 궤도 자체가 날아가고, 세계는 파멸한다. 누군가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무엇도 미래를 보증하지 못한다. 대타자는 없다. 폭발과 함께 인류는 멸종할 수 있고, 운 좋게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 위험을 무릅쓸 미친놈이 아니고는 시스템을 파괴할 수 없다. 시스템 내에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자의 최대치는 커티스다. 커티스인가, 남궁민인가? 남궁민의 한국말은 방언이다. 약에 쩐 놈의 중얼, 중얼, 중얼. 설국열차 안의 사람들에게 남궁민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미친놈, 그래서 선지자이다. 죽음의 땅 너머 가나안을 예언하는 선지자, 그러나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곰동씨는 감탄한다. 봉준호는 영리하다. 한국말은 선지자의 방언이며, 주변부 감독의 자부심이다. 곰동씨의 동족들은 열광한다. 오~ ‘어린쥐’ 위로 툭툭 던지는 ‘시발’의 쾌감이란!

 

지배자도, 지도자도, 선지자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너머를 보는 눈을 가진 요나와 시스템의 이물질,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꼬마. 여자 하나, 남자 하나. 인류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눈밭위에 이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 아무도 답하지 못하지만, 저 멀리서 이들을 일별하는 흰 곰 한 마리. 그래, 곰동씨의 조상은 곰이었지, 웅녀가 보우하사 새로운 나라 만세? 귀여워라 봉준호.

 

궤도를 달리던 열차는 날아갔다. 궤도는, 좌표는 없다. 맨 땅, 언 땅에서 길을 만들어야 한다. 루쉰이 말했다. “원래 땅 위에 길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아니 장자가 먼저 말했던가? 곰동씨는 그사이 까먹었다.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분명히 들었는데, 뤼쉰의 길 운운은 장자에서 따온 것이구나 생각했는데, 고 문장이 생각이 안나네 웅웅;. 머리 한번 따콩 쥐어박고. 다시 돌아가자, 길로. 그런데 새로운 길은 더 좋은 세계로 맞닿아있을까? 곰동씨는 그것이 늘 걱정이다. 그러나 영화는 언제나 그 전에 끝난다. 시원하게 부쉈으면 됐지, 더 뭘 바래? 영화는 그렇게 곰동씨에게 눈을 흘기는 것 같다. 눈 밖에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세상은 설국열차의 질서와 균형 잡힌 세계 보다 더 나을까?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답할 수 없다. 누구도 모르니까. 가지 않은 길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아니, 나지도 않은 길에 무엇이 있겠는가? 곰동씨의 말장난에 의하면, less than nothing 이 있을 뿐이다. nothing 보다 못하지만 nothing은 아닌 것. 곰동씨도 무슨 방언을 하는 걸까? 곰동씨도 선지자? ㅋ ㅋ ㅋ 온 세계에 무능함과 부패함을 널리 알리느라 정신없이 바쁜 곰동씨의 앙칼진 정부가 독이 잔뜩 오른 채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는 이 시절에 무슨 그런 혹세무민의 농담을! 곰동씨는 그저 주워 읽은 것을 툭 한번 던져 보았을 뿐이다, 말이 되거나 말거나. 여하튼 <설국열차>는 곰동씨를 허연 눈벌판에 내려놓았다.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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