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부작 드라마 <정도전> 이 어제 끝났다. 인터넷 기사들은 이 보기 드문 드라마에 일제히 ‘명품사극’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나는 드라마에도 문학처럼 고전이 있다면, <정도전>이야말로 첫 손에 꼽아야 할 고전이라 말하고 싶다. 그 다음으로 <뿌리 깊은 나무>, <선덕여왕>, <추적자>, <황금의 제국> 정도가 우선 떠오른다.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 같은 작품들은 불행히도 TV를 볼 여유도 없이 바삐 살던 시절의 것들이라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내 이름은 삼순이>를 할 무렵인 것 같다. 드라마의 주 전공이라 할 멜로물에서 볼만한 작품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드디어 사극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드라마의 성장 역시, 어떤 천재의 갑작스런 출현보다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처럼, 드라마의 역사가 쌓아온 통찰과 인식 그리고 표현력의 발전에 힘입은 탓이 클 것이다. 일 년에 한 편 정도만 고전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 나온다면, 우리 드라마의 미래는 밝을 것이고, 드라마를 즐기는 우리들에겐 대단한 즐거움이 될 것이니, 나는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속인으로서 좋은 드라마를 열렬히 기대한다.
<정도전>은 정통 사극이다. <대장금> 이래 MBC가 주도했던 ‘팩션사극’의 틀에 박힌 공식과 역사왜곡의 논란을 벗어나, 비교적 사료에 충실하게 전개된 사극이란 의미이다. 물론 드라마라는 형식상 사실로만 구성될 수는 없었겠지만, 여말선초의 주요사건들과 실존인물들의 기본 가치관과 행위는 사실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이외에 정도전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정도전을 ‘민본 사상’을 실현한 혁명가라고 규정하려 한다. 혁명가란 ‘가슴에 품은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낸 사람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일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정도전이란 인물을 흥미롭게 보게 된 것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다룬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서가 먼저이다. 한석규가 ‘지랄’ 을 찰지게 내뱉으며 욕쟁이 세종을 멋들어지게 만들어낸 <뿌리 깊은 나무>는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대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도전>의 마지막 회 장면인, 송현정에서의 이방원과 정도전의 최후 논쟁에 두 입장의 차이가 뚜렷하게 개진되었다. 이방원은 국왕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강력한 왕권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반면, 정도전은 왕은 존재하나 실질적인 통치권은 재상에게 있는 재상총재제도를 조선의 정치제제로 확립하려 하였다. 이방원은 정도전이 추진하고자 했던 정책들, 사병혁파, 요동정벌, 토지개혁 등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면서 다만 재상총재제도를 포기하고 함께 대업을 완성시키자고 회유했다. 그러나 정도전은, 민본정치는 재상총재제도 안에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왕가에는 언제든 폭군이 나올 수 있지만, 재상은 누구든 능력 있고 덕망 있는 인재를 뽑아 쓸 수 있다. “이 나라의 성씨를 모두 합쳐서 뭐라 하는지 아느냐? 백성이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재상은 백성이 내린다! 해서,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게 더 가깝고, 더 이롭고, 더 안전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도전의 재상총재제도는 입헌군주제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하늘이 성군을 내리기만 기도하는 것 보다는 제도를 확립하고 이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론도 만만치가 않다. 고려 말의 허약한 왕권은 강력한 권문세가의 출현을 막아내지 못하고, 이인임과 같은 부패한 권신이 국정을 농단하고, 백성을 수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조선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폭군이 훌륭한 재상을 쓸 리는 거의 없다. 폭군은 정언직설이 아니라 감언이설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는 이 딜레마에서 시작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과 비슷한 느낌을 주며 일종의 추리 사극의 형태를 띠었다. <정도전>과는 달리 정통사극 보다는 퓨전사극에 가깝다는 말이다. 정도전과 그 후손에 관한 사실도 조금은 왜곡되어 있었다. 실제 이방원은 정도전의 장남을 살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나주목사로 복권시켰으며, 이후에 후손들도 관직에 나가 명성을 누렸다. <뿌리 깊은 나무>가 주요 갈등으로 그렸던 것과 같은 탄압은 없었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기본 갈등 구도를 위해서 고심 끝에 내린 왜곡이었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정도전>의 후반부에 드러난 대립 구도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물론 드라마 방영 순서로는 <정도전>이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퀼 격이지만 말이다. 우연인지 이념 대립을 다룬 드라마들의 당연한 결과인지, <뿌리 깊은 나무>의 마지막 회도 정도전의 조카 정기준과 이방원의 아들 세종 사이의 최후 논쟁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정기준은 외형적으로는 정도전의 가치관을 되풀이 했다. 세종이 성군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다음, 또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세종의 답은 바로 훈민정음이었다. 백성이 글을 알면 왕이나 사대부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스스로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정기준은 훈민정음이 오히려 백성의 독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백성을 속일 수 없는 것은 돌이나 나무를 속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글을 깨친 백성들은 이제 교언영색으로 쉬이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 개탄했다. ‘백성을 속일 수 없다’는 말은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에 남긴 것이다. “백성은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어리석지만 지모로 속일 수 없다.” 정기준의 해석은 글을 가진 백성은 지모를 갖게 되고, 지모는 지모에 의해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 듯하다. 아쉽게도 <뿌리 깊은 나무>는 지모를 갖게 된 백성이 왜 더 잘 속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별 다른 해석을 내놓지 않고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세종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 또 백성은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라 낙관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그리는 세종은 백성을 아이처럼 보살피는 성군이 아니었다. 백성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그 무기인 문자를 만들어 주려 했던 왕이었다. 이렇게 훈민정음 창제의 바탕에는 ‘민본사상’ 이 깔려 있다. 백성이 힘을 가지지 못하고서는, 폭군이 되었건 탐관오리가 되었건, 착취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방원은 왕권으로, 정기준은 신권으로 이를 견제하려 했지만, 제도에 집착한 나머지 민본의 가치 자체는 오히려 등한시 되어 버렸다. 물론 드라마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이야말로 정도전을 계승한 진정한 인물이었다. 세종 스스로도 정도전이었다면 훈민정음에 찬성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민본을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업적이 바로 훈민정음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이런 세종의 뜻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세종의 민본사상의 요체가 훈민정음이라면, 정도전의 그것은 ‘계민수전 計民授田’ 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정권을 장악하자, 정도전은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여 백성의 수대로 골고루 나누어 주고자 하였다. 계민수전이라 이름붙인 이 혁명적인 토지제도는 그러나 권문세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했다. 대신 정몽주가 제안한 과전법이 실행되었는데, 모든 토지에 대한 세금을 국가가 걷어 들이도록 하여, 고려 말 권문세가의 가혹한 조세 수탈로부터 백성을 보호하였다. 이후 쌀밥에 이밥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조세제도의 개혁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된 백성들이 감사의 뜻으로 이성계의 李자를 붙여 ‘이밥’이라 불렀던 것이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민본사상의 핵심이 바로 이것, ‘밥’이었다. 밥을 먹여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는 동서고금을 통튼 모든 국가의 핵심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져야 할 것이 있는데, 지젝이 말한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이다. 모든 것의 바탕에는 경제가 있지만, 그 경제를 바꾸는 것은 정치이다. 조선건국은 계민수전을 위해 정도전이 반드시 해내어야 했던 대업, 바로 정치였다. 고려 안에서는 진정한 대업을 이루어낼 수 없었기에 정도전은 평생의 지기인 정몽주와 극한의 대결을 벌여야만 했던 것이다.
현대의 우리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의 진실이다. 정치와 경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믿음은 이제 깨어졌다. ‘보이지 않는 손’ 자체가 이미 장막 뒤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정치적 손이다. FTA라는 정치적 협상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더욱 맹렬히 우리의 농업을 파괴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자영업을 무너뜨렸다. 88만원 세대는 이제 잉여사회의 잉여물이 되어 SNS에서 온갖 분노와 증오를 쏟아 내거나, 일거수일투족을 현시하며 시시껄렁한 모든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중이다. 이 경제적 무력감을 삼성이 해결할 수 없다.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이다. 경제적 투쟁은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권력은 자본에 넘어갔다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탄은 외견상 사실처럼 보였어도, 섣부른 포기였고, 무능함에 대한 변명이었을 따름이다. 불행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의 고향마을에서 뒤늦게 후회했지만, 더 깊은 성찰을 이어갈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권력은 국가에 있고, 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대로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드라마 <정도전>의 마지막 메시지는 500년 전의 조선의 백성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말하자면 헌법 제 1조를 믿어라. 우리 자신의 권력을 믿어라, 라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대업, 진정한 대업이다.”
요즘 어디 가서 청년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다가는 엿 사탕 세례를 받기 십상이겠지만, 그래도 이것 외에 출구는 없을 것이다.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을 때, 이 꽉 막힌 현실을 깨뜨릴 조약돌 하나라도 쥐어볼 수 있지 않을까. 맹자를 빌어 정도전은 말했다. “불위야 비불능야 不爲也 非不能也”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덧붙임 : 사람들의 말처럼 <정도전>의 연기자들은 너무 훌륭했다. 조재현, 유동근, 박영규 모두 자연인으로서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그 흠결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을 만큼 멋진 연기를 해주었다. 특히 유동근의 함경도 사투리와 넋 들린 연기에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제 <정도전>을 능가하는 여말선초의 드라마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정도전>과 비록 팩션 혹은 퓨전 사극이나마 <뿌리 깊은 나무> 에 의해 조선의 건국이념과 태조에서 세종까지의 우리 한국사의 요체가 완성되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의 말대로 이조 오백년이 허송세월이 결코 아니었음을,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목숨 걸고 투쟁했던 조상들이 있었음을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