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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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팟 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들으며 보내고 있다. 팟 캐스트 <빨간 책방>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덕분에 <빨간 책방>은 듣지 않게 되었다.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20권이라는데, 방송은 90회 정도 되지 않나 싶다. 헤아려 보지 않았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본편이 50 여회 정도, 나머지는 외전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본편은 50대 네 남자가 참여하는데, 저자 박시백, 사학과 교수 신병주, 인문학자 남경태, 출판사 휴머니스트 대표 김학원이다. 박시백은 <비정상회담>의 타일러 같이 똘똘한 느낌을 주고, 신병주는 학문적 깊이 보다는 대중 친화력이 높다. 가끔 아니 조금 더 자주, 조선왕조실록에 관한한 교수 신병주 보다 만화가 박시백이 더 박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경태는 활력가득 기운을 불어넣지만 서구 중심주의적이라는 의심을 살만하고, 김학원은 진행자로서 ‘어떤’, ‘뭔가’ 따위의 불필요한 단어를 남발하여 마이크를 빼앗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완벽한 조합은 아니지만, 내용 자체가 훌륭해 겨울 내내 듣고 또 다시 듣고 있다.

 

외전은 휴머니스트에서 출판한 몇 가지 역사관련 책으로 진행되는데, 그 중 하나가 조유식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다. 이 책은 1997년 조유식이 <말>지 기자시절에 초판이 간행되었고, 개정판은 2014년에 출간되었다. 조유식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의 성공한 CEO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대표이다. 팟 캐스트는 조유식과 박시백 그리고 김학원이 참여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듯 나의 정도전에 대한 관심은 딱 1년 전의 드라마 <정도전>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적 우파로 낙인찍힌 조재현을 비롯해 박영규, 유동근 등의 면면과 ‘국민의 방송 KBS'의 사극이라는 점에서 전혀 볼 생각이 없었던 드라마다.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극의 진행과 함께 날아든 ’입소문‘에 흘깃흘깃하다 금방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사극들 중 단연 최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역사 왜곡의 문제에서 어쩔 수 없는 약점을 가진 것에 반해, <정도전>은 역사를 거의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극적 재미와 긴장이 어떤 팩션 사극보다 더 팽팽했다. 이인임 같은 인물을 생생하게 살려낸 작가의 힘도 컸겠지만 무엇보다 정도전, 이성계, 정몽주라는 당대의 거물들 그대로의 힘과 매력, 그들의 가치관을 둘러싼 치열한 대립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를 통해 마음속에 들어온 정도전이 팟캐스트로 되살아났고, 나는 책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자야말로 내가 가장 깊이 생각할 수 있고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의 첫 인상은 이것이 드라마 <정도전>의 원작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줄거리는 물론 이인임을 제외하면 주요 인물들의 성격까지 거의 비슷하다. 드라마에 원작이 있다는 말이 없는 걸로 보아, 책 자체가 원작은 아닐 것임에도 이렇게 유사할 수 있는 것은 책도 드라마도 모두 역사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시대의 역사야말로 드라마 이상의 드라마이고, 그 시대를 만들어간 인물들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독특한 캐릭터들이다. 작가가 무엇을 더하고 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정도전을 위한 변명』은 작가 김유식의 작품이고, 드라마 <정도전>은 정현민 작가와 강병택 연출자 등의 합작품이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특히 1997년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정도전을 이상적 혁명가로 재조명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작가의 가치관을 말해주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조선의 개국을 단순히 왕조교체에 의한 지배 권력의 이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민본사상’이라는 근본적 이념에 기반한 혁명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 이상이요, 그가 세운 나라 이상이었다. 고조선 이래 수천 년간 이어 내려온 귀족 중심 체제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기도한 모반자이자, 이미 600년 전에 군주제의 한계를 인식하고 재상 중심의 정치를 실천한 합리주의자였다. 또한 열강들 사이의 일시적 권력 공백을 파고들어 만주 수복을 도모한 야심만만한 국제 전략가였다. 선비인가 하면 정략가였고, 유교 이론가인가하면 군사 지휘자였다. 수학과 의학, 불교에 두루 밝았고, 직접 악기를 제작할 줄도 알았다. 조선의 문물제도, 경복궁과 태평로, 종로 등 서울 도심의 기본 설계, 사대문과 사소문, 그 안의 동네 이름이 다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건국의 공으로 치더라도 단연 으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시대 내내 만고역적의 대명사였으니, 역사를 주재하는 신은 그에게 너무 각박했던 게 아닐까. p6~7 」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計民授田계민수전, 백성의 수를 헤아려 땅을 나누어준다는 것이다. 정도전이 주장한 민본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정치의 일차적 목표는 백성이 잘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토대도 그렇고, 정치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것도 서민 경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도전은 실제로 모든 땅을 거두어 국유화한 다음 백성의 수대로 나누어 주려했던 반면, ‘서민경제’를 외치는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놀랐던 것은 정몽주이다. 정몽주의 丹心단심은 백면서생의 박제된 이상이 아니었다. 그는 정도전만큼이나 치열한 실천적 정치가이자 지략적인 개혁가였다. 다만 그는 혁명가가 아니었을 뿐이다. 더욱이 정몽주와 정도전의 우정은 믿기지 않을 만큼 깊고 애달파서 당연히 극적 효과를 노린 작가의 상상이려니 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정도전을 가르치고 이끌고 보살피고 정도전과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 꿈꾸었던 자가 정몽주였다. 그런 정몽주가 마지막 순간에 정도전을 제거하려 칼을 뽑았다. 정도전 역시 정몽주의 목에 칼을 들이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 정씨의 격돌만으로도 고려 말의 역사는 드라마였다. 세 번째 놀란 것은 이성계라는 인물의 성격이었다. 유동근이 연기하는 저 정 많고 눈물 많고 답답할 만큼 결단이 더딘 사람이 어떻게 한 왕조의 창시자가 될 수 있을까, 이것도 작가가 만든 성격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성계는 진짜로 ‘떠밀려 올라가기’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위화도 회군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무엇을 쟁취한 적이 없이 남들이 밀어주고 추대하면 못 이기는 척 하나하나 이루어나가다가 마침내 왕좌까지 올랐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폐위되고도, 이성계가 임금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닷새 동안이나 고려도 아니고 조선도 아닌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성계는 떠밀려가 아니라 떠밀린 척하며 올라가기의 귀재였을 것이다.

 

조선은 士大夫사대부의 나라였다. 사대부란 士와 大夫 곧 선비와 정치가를 하나로 보는 표현이다. 유가에서는 정치가 곧 선비의 책무이다. 修身齊家수신제가 했으면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를 하는 것이 도리다. 公子曰, 孟子曰을 예절이나 가르치는 케케묵은 빈말로 경시하는 풍토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공자 사상의 핵심은 정치다. 예란 제상을 앞에 두고 사과와 배를 어디에 놓을지를 다투는 것이 아니다. 禮의 큰 의미는 제도다. 어떤 시스템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가정을 꾸리고, 자기 자신을 닦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유교 이상으로 무장하고 고려 말 새롭게 등장한 신진사대부는 책방 문사가 아니라, 실천적 지식인이자 유가적 관료 정치가였다. 공자와 비슷한 시기의 희랍 철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도 비슷한 유형의 정치를 주장한다. 플라톤의 ≪국가≫에 이상적 정체로 나오는 철인국가의 통치자는 거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스타일이다. 동시대의 동서양 모두 비슷한 생각을, 지금으로 봐도 너무 훌륭한 이념을 가졌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먼저 국가는 출생 신분에 관계없이 아이들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음악, 체육, 계산, 수학, 변증법 등과 더불어 고통과 긴장과 결핍을 견뎌내는 훈련을 실시한다. 20세가 될 때까지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고위직 후보 자격을 박탈한다.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다시 10년간의 교육을 받고 또 한 번 선발 과정을 거친다. 통과한 사람은 5년 동안 철학 교육을 받는다. 35세가 될 때까지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사람은 이제 관념의 세계에서 냉혹한 현실공간으로 내려와 15년 동안 생존 현장에서 실전 훈련을 거쳐야 한다. 혹독하고 냉정한 생존 투쟁을 견디고 50세가 되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남자로서 지도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세계 철학사』

 

정도전의 전제 개혁안은 말 그대로 혁명적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그렇다. 그는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자였을 것이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썼다. 민본사상의 바탕에 땅이 있는 것이다. 고려 말에 전제개혁을 주장 했던 사람들은 정도전 외에도 여럿 있었으나 정도전만큼 철저한 개혁을 주장했던 사람은 없다. 정도전의 계민수전은 전국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키고, 모든 농민들에게 식구 수대로 땅을 분배하는 것이다. 이른바 토지공개념인데, 토지 사유를 인정할 경우 토지가 부의 축적 수단이 되어, 한편에서는 지주 한 사람이 토지를 독점하고 한편에서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 농민들이 유리걸식하는, 부익부빈익빈의 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600여 년 전에도 깨달을 수 있었던 사상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집값에 전세 값까지 폭등시키고 있다. 집을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점점 가지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이른바 ‘따끈한 국수’ 다. 청문회에 나오는 모든 고위공직자 후보들은 예외 없이 투기를 일삼고도 ‘sorry' 한마디면 끝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고 시행하는 정책들은 또 다시 부익부빈익빈을 가속화한다. 퉁퉁 불어터진 국수든 따끈한 국수든 국수는 국수다. 먹고 나면 금방 꺼지는 것이 국수다.

 

「옛날에는 토지를 관에서 소유하여 백성에게 주었으니, 백성이 경작하는 토지는 모두 관에서 준 것이었다. 따라서 천하의 백성은 누구나 다 토지를 받았고,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빈부 격차가 그리 심하지 않았으며, 그 토지세도 다 나라에 수납되었으므로 나라 또한 부유했다. 《조선경국전》 p192 」

 

그러나 실제로 제기된 개혁안은 정도전의 원안에 비하면 매우 타협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1390년에 실제 실시된 전제개혁안은 이것보다 더 후퇴한 내용이었다. 국역을 지는 백성들과 백정들에 대한 토지 분배가 제외되었다. 다만 군역을 지는 군인들에게는 군전을 지급하였다. 그럼에도 조세 부담 면에서는 농민들의 부담이 크게 완화되었다. 고려 말 일반적이던 1/2 혹은 1/4의 과중한 부담에서 1/10에 가까운 세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농민의 경작권을 지주가 임의로 빼앗지 못하게 했다. 정도전은 자기의 원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해 크게 한탄했지만, 고려 시대보다는 낫다는 평을 남겼다. 쌀밥을 이밥이라 부른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이성계가 준 밥이라 해서 백성들이 붙인 이름이 李밥이었다. 정도전의 계민수전 원안이 좌절된 것은 물론 기득권 세력의 극렬한 반발 때문이었다.

 

정도전의 마지막 전쟁은 혁명이 성공한 이후, 혁명 세력들 사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더욱 비극적이다. 정도전은 패하여 만고의 역적이 되었고, 이방원은 태종으로 후세에 기록되었다. 정도전은 왜 이방원과 함께 할 수 없었을까? 이방원의 카리스마와 정도전의 국정 능력이 손잡았다면 조선은 더욱 찬란하게 꽃필 수 있지 않았을까? 보통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립을 신권과 왕권의 대립으로 본다. 두 세력 간의 다툼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정치 체제를 결정짓는 이념 투쟁이었던 것이다.

 

「 그러나 역사의 도정에서 정도전이 가야할 길과 이방원이 가야 할 길은 달랐다. 조선 개국에 반대하다 유배당한 하륜을 최측근으로 삼은 데서도 드러나듯이 이방원은 보수·안정 지향적인 정치가였다. 이방원이 귀족적이었다면 정도전은 평민적이었고, 이방원이 우파라면 정도전은 좌파였다. 정도전이 이방원을 적극적으로 세자로 밀지 못한 데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정도전은, 자질이 일정치 않은 세습 군주가 전권을 행사하는 왕권 중심주의보다는 천하 인재 가운데 선발된 재상이 국정의 중심이 되는 재상중심주의가 왕조 국가에서 가장 합리적인 정치제도라고 믿었다. 즉 군주는 상징적인 전제권을 가지고, 정치의 대강은 정승이 장악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원래 유가에는 군왕보다 지식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공자와 맹자도 임금에게 무조건 맹종하는 기능적 지식인 이 아니라, 임금의 잘못을 깨우쳐 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철인 정치가였다. 정도전의 재상 중심주의는 이러한 유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그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p279~80」

 

왕권중심주의냐, 재상중심주의냐? 제도상으로 절대적인 우위가 있는 것일까? 정도전의 사상은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 실현된 신권 중심의 정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나라를 말아먹은 당파정치라는 인식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 조선정치를 바라보게 만든 최초의(?) 대중적 작품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다. 왕권을 회복하려는 정조와 신권을 지키려는 노론 영수 심환지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추리역사물이다. 이 책의 독자는 보통 정조의 왕권을 강력 옹호하게 된다. 정조가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이루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그리 허망하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저절로 든다.

 

사실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가 아닐 것이다. 역사적 국면과 시대적 소명에 따라 제도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정도전이 이방원에 승리하여, 재상중심주의가 기틀을 마련했다면, 조선 500년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정도전의 사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정도전의 죽음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재상중심주의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의 민본 정신이다. 정도전의 《경제문감》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다.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남을 책임져야 하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남의 근심을 품어야 한다.” 남의 음식을 먹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바로 사대부다.

 

드라마 <정도전>의 마지막 장면은 장엄하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약간은 간지럽기도 하다. 정도전이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외친다.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대업, 진정한 대업이다.” 600년을 훌쩍 뛰어, 오늘의 시청자에게 직접 던지는 메시지다. 그러나 IS와 사토리, 증오와 토닭토닭이 뒤얽힌 시대에, ‘불가능한 꿈’에의 주문은 또 하나의 허망한 청춘담론은 아닌가? 옴짝달싹할 수 없이 계층화된 사회에 맨 주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기는 할까? 불가능한 것은 그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라캉은 성구분 공식이라는, 전혀 수학적이지 않은 수학공식을 제시한다. 여성 공식은, ‘모든 x가 남근 함수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근 함수에 속하지 않는 어떤 x도 없다.’ 이다. 얼핏 들으면 논리적 모순 같지만 이것이 라캉의 여성 공식이다. 다른 말로 하면 , not-all 혹은 not-whole 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예외도 없다. 남성 공식은 ‘모든 x가 남근 함수에 속한다. 단, 남근 함수에 속하지 않는 어떤 x가 하나 있다.’ 이다. 남성 공식은 예외에 기반 한 총체다. 법의 경우와 비슷한데, 모든 것은 법을 따라야 한다, 단 법 자신은 예외다. 법의 최종 근거는 법에 있지 않다. 주권자의 자의적 결단에 있다. 남성, 아버지의 이름, 법은 예외를 바탕으로 닫힌 구조이다. 여성은 예외도 없지만, 전부도 아니다. 닫혀 지지 않은 원이다.

 

혁명이 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꿈이 가능한 것은,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사회 구조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구조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 불완전성이 주체를 출현시키는 것이 아닐까? 필요한 것은 목숨을 건 도약, 신념의 도약이다. 혁명은 무수한 도약의 실패를 딛고, 기적적으로 성공한 도약이다. 우리의 도약은 거의 모두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성공한 도약은 개천에서 승천한 용이 아니다. 용만 날아가고, 개천은 여전히 개천이지만, 혁명은 사회구조 자체를 바꾼다. 삶을 옥죄이던 구조를 파괴하고, 그 폐허 위에 새로운 구조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더 좋은 사회가 될까? 폐허의 심연을 견디어 낼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모를 일이다. 다만, 그 불확실성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어떤 혁명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이 고답적인 외침을 21세기에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관 세대가 될 것인가, 증오 세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불가능한 꿈을 품을 것인가. 선택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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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
찰스 디킨스 지음, 민청기.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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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평가단의 1월 주목신간으로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을 추천했다가 떨어졌다. 다행으로 생각한다. 선택되었다면 조금 욕을 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점에서 'thanks to'를 주시고 구매하신 분께 참 죄송하다. 관점과 취향은 다양하므로, 좋게 평가하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위안을 해본다. 그러셨으면 좋겠다.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은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이야기책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원제목은 <A Child's History of England> 다. 디킨스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책,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썼다." 고 한다. 처음부터 책으로 쓴 것은 아니고, 디킨스가 자신이 창간한 주간지에 3년 간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1851년 1월부터 1853년 12월까지 연재했으니, 160여 년 전의 관점으로 쓴 영국 왕실의 역사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은 어린이들이 행복했을까는 잘 모르겠다. 책 전체가 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디킨스는 영국의 역사를 철저히 왕위 계승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카이사르(BC 100~ BC44)가 브리튼 섬을 원정해 영국이 로마의 통치 아래 들어간 때부터,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명예혁명을 이룬 1688년까지, 약 1700여년의 영국 역사는 줄곧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반란과 숙청, 전쟁의 연속이었다. 순조롭게 왕위가 계승된 때가 있기는 한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한번은 기억난다. 왕위다툼이 재앙적인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왕과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 사이의 투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세력 간에 정쟁이 일어나면 영주들과 기사 그리고 농노들까지 브리튼 전체가 전쟁에 돌입한다. 마을이 온통 불타고 귀족들은 런던탑에라도 끌려가지만 농노들은 그 자리에서 몰살된다. 이런 피바람이 왕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걸 읽고 있노라면, 도대체 당시의 민중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싶으면서, 조선이 백번 나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번 겨울은 내내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을 듣고 있다. 왕조 자체가 바뀌는 조선 개국의 혼란기에도 백성들이 뿌린 피는 그다지 크지 않다. 고려말 왜구나 북방 오랑캐의 약탈이 물론 있었지만, 그것이 정쟁의 결과는 아니다. 정도전의 찬란한 이상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잡았던 조선초를 거쳐 중기 그리고 후기로 갈수록 나라꼴이 가관이지만, 전주 이씨의 왕조 자체는 유지되어 왔다. 왜란이나 호란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몇 차례의 반정도 있었지만, 왕권을 놓고 백성들끼리 칼질하는 일은 없었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은 영국에 비하면 순탄했다 할 수 있다. 조선은 사대부들이 입으로 싸우는 나라였다면, 영국은 곧바로 칼과 대포로 싸우는 나라였다. 영국보다 조선이 낫다는 것이 아니라, 디킨스가 서술한 왕위계승 중심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디킨스는 거의 모든 왕을 욕한다. 그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도 디킨스에게는 "자질은 뛰어났지만 거칠고 변덕스러운 데다 위선적이었으며, 나이 먹어서도 젊은 아가씨처럼 허영심이 심했다. 전체적으로 나는 자기 아버지를 쏙 빼닮은 엘리자베스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p493"  디킨스가 유일하게 칭찬하는 통치자는 왕이 아니라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이다. 청교도 혁명으로 잘 알려진 크롬웰은 잉글랜드 공화국의 호국경을 직함을 받아 최고 통치자로 군림했다.

 

이 책의 문제점은, 디킨스 자신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롬웰이 호국경이 됨과 동시에 영국은 영국 역사상 최초의 공화국(The Commonwealth of England, 1649~1660) 이 되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어떤 설명이나 해석을 하지 않는다.  다만 "크롬웰은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의회를 정리했고, 장교 위원회는 잉글랜드 공화국 호국경의 직함을 주어 크롬웰을 잉글랜드 최고 통치자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p568" 고만 적는다. 의회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의회라는 것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역사적 해석을 하지 않는다. 그냥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의회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해서 의회와 왕이 대립하는 양상만을 상세히 기술할 따름이다.

 

디킨스가 19세기 중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지, 이 책을 쓴 목적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고,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하여튼 영국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알기 위해 선택할만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릴 때 보았던 드라마 <조선왕조오백년> 과 비슷하다. 왕가를 둘러싼 암투들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출판사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왕을 비롯한 통치자들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때로는 냉혹한 비난과 감시의 시선을 보내면서 함께 역사를 일구어온 수많은 민중의 삶과 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이 책 전체에 깔려있다." 고 홍보하고 있지만, 그 수많은 민중은 화면의 배경처럼 깔려 있다. 이 책에 더 많은 것은 민중들 보다는 디킨스 자신의 감정적 개입이다. 거의 모든 국왕들을 멍청이나 악당으로 비난하며 못마땅해 한다. 무성영화의 변사나 셰익스피어의 광대(잘은 모르지만;;) 같은 추임새를 넣고 있다. 그러니 역사서로서 객관성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국 역사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남의 나라 역사이고, 영국의 아이들만큼이나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비교적 쉽게 1700여년의 영국 역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듯 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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