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末에 EBS에서 방송한 <강유원의 위기의 시대에 읽는 고전>을 몇일 전 '다시 보기'로 한번 빠르게 듣고, 어제와 오늘은 다시 한번 찬찬히 정리하면서 들었다. 강유원 선생의 긴 강의에 익숙해 있다가 이 짧은 강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아쉬움이 꽤 있었는데, 다시 한번 집중해서 들으니 전체 강의의 구성이 조금 눈에 들어오면서 하나의 주제로 잘 짜인 강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전체 10강 중 앞 부분 1,2강은 서문에 해당하고 3강에서 8강까지는 본문, 마지막 9강과 10강은 결문이라 할 수 있다.
서문에서는 고전이란 무엇인가와 독자를 고전으로 이끄는 놀라움이라는 파토스에 대해 설명하고, 본문에서는 전환기의 시대상과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들에 대한 한·두가지 독서 포인트를 제시해 주며, 결문에서는 고전들을 통해 나와 세계를 돌이켜 보기를 제안한다.
이 강의들을 하나로 꿰는 주제는 "신념의 체계와 삶의 방식" 인 것 같다.
1강 고전을 읽는 방법
고전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강유원 자신만 해도 고전 시리즈를 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정의를 내려왔다.
<인문고전강의. 2010>
2010년 출간된 『인문고전강의』에서는 고전을 '스승'으로 표현했고, 2012년 『역사고전강의』에서는 '지혜를 길어 올릴 수 있는 책"으로 정의했다.
<역사고전강의. 2012.>
마지막 『문학고전강의』에서는 문학의 특성을 감안하여, '잘 만든 이야기'를 문학 고전으로 정의하였다.
<문학고전강의. 2017>
이번 강의에서는 "이야기 하는 존재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지고, 가장 재미있고, 가장 많은 사람이 읽었고, 가장 오랫동안 전해지는 이야기"로 정의하고 있다. 인간을 규정하는 다양한 , 'Homo OOO' 에 빗대어 인간을 '이야기 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수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 남은 이야기가 고전이란 것이다.
따라서 고전을 읽는 방식은 단순하다. 공부를 하듯이 밑줄을 긋고, 주제를 찾고, 독후감을 쓰는 따위의 방법은 독서 교육의 병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저 재미 있게 읽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다시 재미있게 들려 줄 수 있으면 잘 읽은 것이다.
재미있다는 것은 이야기에 푹빠지는 것이고, 주인공에게 공감하여 함께 울고 웃는 것이다. 고대 희랍에서 최고의 문학 장르로 인정 받았던 비극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연민- 공감할 수 있어야 좋은 이야기다. 비극이 한바탕 마음을 휘몰아치고 나면 그 끝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카타르시스이다. 강유원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개운해 진다."
그런데 우리에게 고전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려운 이야기로 인식되어 있다.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독해력이다. 한글로 씌어 있다고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읽고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 훈련되지 않으면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내지 못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이제스트판이 아니라 원전(완역본)으로 고전을 읽는 훈련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아주 천천히 때로는 놀이하듯 때로는 씹어 먹듯 1년에 한두 권 정도를 가지고 책 읽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수영도, 악기도 어릴 때 배워 놓아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
2강 놀라움 (驚)의 파토스
놀라움이 앎의 시작이라는 말 자체가 놀라웠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놀란다. 호기심이 생기고, 그 궁금함을 풀어보려 답을 찾고, 그 속에서 가치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달을 때 기쁨을 느낀다. 철학함이란 알고자 하는 노력, 앎을 향한 욕망이다.
앎의 과정도 파토스이다. 희랍어로 Pathos는 고통, 경험을 뜻하는 단어(πάθος)에서 왔으며(위키피디아), 영어 passion의 어원으로 감정, 열정, 고난 등의 뜻을 갖는다. 열정이 있으니 열심히 하는데 그 겪음이 고통스럽다는 말로 나는 받아 들인다. Pathos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의미는 '겪음, 경험'이다.
<문학고전강의>
희랍의 널리 알려진 격언으로 'Pathei Mathos -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가 있다. 사실 이 격언은 대부분의 문학작품의 구조이기도 하다. 오뒷세우스도, 오이디푸스도, 어린왕자도 고난을 겪고 성장한다.
또 Pathos는 연민이다. 같은 것을 함께 겪으면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되고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연민을 뜻하는 영어 Compassion은 함께(com) 겪는(passion) 것이다. 함께 겪으며 나누어 가지게 된 고통을 함께 덜어 보려는 마음이 연민-자비-사랑이다. Pieta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의 예수와 함께 느끼는 고통이자 사랑이다.
함께 느끼는 것은 Sympathy다. 공동체가 함께 겪고 같은 것을 느낄 때 공감이 형성된다. 이 공감이 Sensus Communis(공통 감각) 즉 Common Sense(상식)이다. 올바른 상식이 올바른 공동체를 만드는 토대인 것이다.
내가 고전 읽기를 시작하면서 정리해 본 고전의 필요성이다. 공동체가 거대해지면서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은 간접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공동으로 읽을 수 있는 Text야 말로 우리 시대에 공감 능력을 키우는 훌륭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감을 통해 합의된 덕, 그 시대적 가치야말로 사회적 정의를 논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 덕(arete/virtue)이든 사회적 가치이든 간에 (다시 본 강의로 돌아와서..) 그 기준은 '신념의 체계와 삶의 방식'에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신념은 앎에 기반한다. '신념'에 믿음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이미 특정한 앎을 지칭하는 듯 보이지만, 여기서 신념 체계를 가치 체계라고 바꾸어 생각해 보면 될 듯하다.
플라톤은 앎을 4가지 단계로 나누고, 지성으로 알아낸 제1원리를 최고의 진리로 삼았다. 제1원리에 대한 앎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신적 앎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통해 이를 가리켜 보이려 했으나, 에로스의 사다리 위에서도 '갑자기' 라면 모를까,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인간적 종류의 앎은 아니다.
'추론적 사고'는 현대의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고, '믿음 또는 확신'은 인격 신이든 비인격 신이든 혹은 어떤 가치이든 간에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이며,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의외로 많을 지도 모르는 상상, 망상이 있다.
나의 신념은, 나의 가치관은 어떤 앎 위에 세워져 있는가를 한번쯤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방식은 신념의 체계에 뿌리박고 있다. 나의 신념 체계가 상상이나 엉뚱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면, 내가 오늘 올바르다고 생각한 행동이 내일 가짜이거나 어릿광대 놀음이었음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고전이 놀라움(驚)의 파토스를 주는 것은 예전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신념의 체계와 삶의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효율성이, 돈과 벌거벗은 생명이 최고의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나는 것은 놀라움이다. 영웅 아킬레우스의 삶을 노래하고, 공연하고, 그것도 모자라 포도주 병에, 희석용 동이에, 접시에 그려 놓고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했던 고대 아테나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더 큰 놀라움이다.
이 경이(驚異)가 자연의 섭리와 같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 보게 하고, 그 뿌리에 놓인 신념의 체계를 반성하게 한다. 이 반성(Reflecction)이 철학의 출발점이다.
3강.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혼돈의 서막
신념의 체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삶의 발판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혼돈의 시기에, 더 이상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은 위기의 순간이 닥쳐서야 비로소 수백 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념의 체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것에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고, 새로운 토대는 아직 윤곽조차 잡히지 않는 절망의 시대에 등장하는 몸부림, 그 절실한 탐색이 전환기의 사상들이다. 경쟁하는 사상들은 시대의 변화 속에 하나의 신념의 체계로 통합되고 전환기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미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된다.
청동기 문명의 파괴와 함께 수백 년의 암흑 시대가 이어지던 고대 희랍 세계는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에게해 주변으로 수백 개의 폴리스가 생겨나 경쟁과 협력 속에 번성해 갔다. 기원전 5세기 초에 놀랍게도 大페르시아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며 에게해 세계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아테나이가 해상 강국이 되어 밖으로는 주변 폴리스들을 규합하여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고, 안으로는 민주정을 활짝 피워냈다.
아테나이의 제국화를 보며 시기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폴리스들은 스파르테를 중심으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했고, 아테나이가 이끌던 델로스 동맹과 전쟁을 시작했다. 고대 희랍 세계의 내전인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431년에서 기원전 404년까지 27년간 이어졌다.
전쟁은 평상시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야수같은 인간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 생존과 욕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배우고 무엇이든 거리낌없이 했다. 전쟁은 그 자체가 '잔혹한 교사' 이다.
법은 구속력이 없었고, 정의는 경멸되고, 말의 의미는 변질되었다. 이 혼돈 속에 희랍 세계는 동반 몰락의 길을 갔다. Polis 그 자체가 삶이었던 시민의 공동체는 사라졌고 탐욕에 가득찬 개인만이 살아 남았다. 전쟁은 명성과 부를 가져다 주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 전쟁에서 장군으로 선출되기도 했고, 추방도 당했던 아테나이 귀족 출신의 투퀴디데스는 <역사> 라는 전쟁 보고서를 썼는데, 마치 비극 드라마처럼 만들었다고 평가 받는다. 이 거대한 비극의 주인공은 아테나이다.
이 비극의 원인은 희랍 비극이 대개 그러하듯 휘브리스 Hybris, 즉 아테나이의 오만에 있다고 투퀴디데스는 분석한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너무나 큰 번영을 누리던 아테나이가 동맹국들을 압박하며 제국의 길로 들어 선 순간 이 비극은 예견되었다. 희랍인들은 휘브리스(오만)에 의해 하마르티아(잘못된 판단/무모함)를 저지르게 되고, 신의 네메시스(복수/응징)를 불러 온다고 생각하였다.
4강. 『소크라테스의 변론』 : 아테네의 쇠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와 정체의 급변을 겪으며 아테나이 시민의 심성은 거칠어졌다. 남부끄럽지 않은 부와 명성을 얻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아테나이의 영광과 몰락을 모두 겪었던 소크라테스는 남부끄럽지 않다고 자부하는 아테나이의 잘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의 얼굴에 찬물을 퍼부었다. 남에게 부끄러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문제라고 몰아세웠다. 강유원의 맛깔난 표현으로는, "남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문제인 줄 알아?" "어이, 젊은이, 너 자신을 알아야 할 텐데." 와 같이.
얼굴에 똥물을 맞은 듯 분노한 아테나이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결국 사형을 선고했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항변한 연설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생각과 플라톤의 생각의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 서서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배심원들을 향해서 항변하지 않았다. 평소에 하던 대로 아테나이 시민들을 향해 언제나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을 뿐이다. 다만 늘 개인적으로 하던 이야기를 재판정에 모인 전 시민들을 향해 '대중 연설'로 했던 것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부끄러워 하라고 질타했다. 명예와 부를 위해서는 크토록 마음을 쓰면서 슬기로움과 진리 그리고 영혼이 훌륭해 지는 것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는 것이다.
강유원 선생의 예가 참으로 적절한데, 집값 광풍의 시대에 최대한 끌어 모아 갭투자라도 하려는 사람에게, "갭투자 말고, 영혼에 마음을 쓰세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인가? 당장 모든 인간 관계가 단절될 것이다. 나도 그렇다. 형제 자매, 지인들과 절교를 마음먹지 않는 한 입밖에 꺼내기 힘든 말이다. 너도 나도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소위 '투자' 로 한몫을 보지 않는 한 거지꼴을 면하기 어려운 약탈적 자본주의 시대에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 놓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의 체계를 고수하고 삶의 방식을 유지했다. 그리고 독배를 마셨다.
영혼을 돌보는 것은 쾌락을 반대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쾌락, hedone는 삶을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이다. 헬레니즘 철학의 하나로 유행한 퀴레네 학파가 주장한 것이 쾌락주의이다. 개인의 정서적 즐거움을 삶의 가치로 삼는 철학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Polis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대두하면서 등장하는 신념의 체계로서, 이후 알렉산드로스에 의한 Polis 시대의 종말과 이어지는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철학으로 계승된다.
소크라테스는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역설한다. 영혼을 돌보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이 훌륭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인지 따져 묻고 또 묻는 일이다.
캐묻는 삶은 피곤하다. 부와 명성을 얻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 행위를 거울에 비추어 반성하고 올바른 행위인지 따져 묻는 것은 자학이라고 생각되기 십상이다. 부와 명성과 영혼이 함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크라테스도 영혼을 위해 가난과 비난을 선택한 셈이다. 거친 심성과 탐욕이 난무하는 시대에 소크라테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을 돌보라"는 소크라테스의 질타는 수천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가끔 어떤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위력이 있다.
5강. 『고백록』 : 영원한 제국 로마의 몰락
기원후 3세기가 되자 영원할 것 같던 로마 제국도 혼란과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4세기부터 남하한 게르만족들이 로마 깊숙이 파고 들었고, 로마는 게르만 뿐만 아니라 훈족 등의 이민족에게 유린되어 갔다.
하지만 로마는 로마다. 로마의 식민지들은 Romanized 했다. 로마의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희랍에서와 같이 명성과 부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로마 식민지의 시민들은 명성과 부를 위해 로마로 모여들었고, 그 중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다.
로마에서 명성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뛰어난 수사학을 구사하는 법률가가 되는 것이다. 로마에서 수사학자는 웅변가이자 법률가였다. 카르타고의 야심만만한 젊은이는 로마에서 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문득 이 젊은이에게 삶의 회의가 찾아 왔다. '문득'의 순간이 어떻게 찾아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명성과 부와 정욕과 방탕으로 가득찬 삶을 '문득' 뒤돌아 보았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깨달았다. Metanoia, 회심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성서를 읽었다.
그는 로마의 주교가 되었으며, 초기 교부 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가 되었다. 삶의 참다운 의미를 신 안에서 찾고, 진리를 찾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신학이 아니라 고전의 관점에서, 즉 잘 만든 이야기로 읽는다면 "야망에 가득찬 젊은이가 성공의 가도를 달리다가 문득 삶의 회의를 느끼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으로 볼 수 있다. 겪음을 통해서 지혜를 혹은 진리를 찾는다는 고전의 전형적 구성을 하고 있다.
'신념의 체계와 삶의 방식'을 진리 위에 정초하려던 소크라테스는 "영혼을 돌보는, 끊임없이 캐묻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진리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모른다."를 되뇌었고, 아테나이의 그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을 논박으로 밝혀 내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뿐이었다. 진리를 모른 채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반성하고 캐묻는 삶은 끝없는 길 위의 영원한 나그네처럼 고달프고 신경질적이다.
중세인들은 차라리 안정되고 평화로웠을 것 같다. 신은 진리 그 자체이고, 신에 대한 믿음은 '신념과 삶'의 진리성을 보증해 준다. 알라리크의 로마 약탈의 대 혼란 속에서도 천상의 국가는 영원할 것이니, 신의 품속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했을 것 같다.
* 이 글은 강유원 선생의 글을 정리하고 있지만, 중간 중간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 있고, 그것이 분명이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어, 강유원 선생의 강의나 그 의도에 벗어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밝혀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