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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독서회는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다루는데,

모두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읽다가 던졌다는 소문이 분분.

발제도 하고 토론도 해야하는데,

고민하다 최근 이슈에서부터 접근해 보기로 했다.

(이글은 카페에 올린 발제문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얼마 전 개그맨 장동민이 SNS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요. JTBC <마녀사냥>에서 한혜진(근데 누군지는 모름;;) 의 어떤 점이 싫으냐는 질문에,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아무튼 모든 걸 갖췄다" 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한 연예기사는 이것을 유쾌한 농담, 웃음 폭탄으로 오히려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위터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장동민의 이전 발언까지 드러나면서, 빅데이터 시대라 감출 방법이 없군요, 방송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었습니다.

 

그때 조나단이라는 분이 이런 트윗을 올리게 됩니다.  혼잣말처럼 쓴 것인데, 엄청난 주목을 끌며 폭풍 리트윗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페미니스트 구호가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다양한 버전으로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조만간 티셔츠나 에코백 같은 것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웃자고 한 소리에 예민한 페미니스트들이 죽자고 달려드는 것일까요?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 특징인데,

그것 때문에 싫다는 것은

'여자'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겠죠.

역시 동서양 모두 Man 은 오로지 man이군요.

 

설치고 떠들고 말많고 생각하는 여자란 어떤 여자인걸까요?

빨간 머리 앤은 어떤가요?

 

 

 

  

 

소설가 김훈이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남성중심주의는 『칼의 노래』만 읽어도 감이옵니다만,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하시는 군요.

 

 

페미니즘이 뭐 별거겠습니까?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이런 시각들,

우리 자신조차 별 거부감 없이 내면화 해버린 차별들,

이런 것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떠들어대는 것이 아닐까요?

역시 설치고 생각하고 떠들어야 하는군요. ^^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원제목은

『Reading Women: How the Great Books of Feminism Changed My Life (2011년)』입니다.

 

책 내용에 관해서는 몇 달 전에 써놓은 리뷰를 올려놓겠습니다. http://blog.aladin.co.kr/753199155/7321680

 

토론 주제를 제안한다면,

첫 째는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입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면 없는대로,

부정적이라면 또 그런대로,

흔히 말하는 꼴페미라면 투사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얘기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들 째는 엄마로서, 혹은 엄마의 딸로서 바라보는  "자기희생" 입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가 먼저 생각나는군요.

이 책이 아마존 랭킹에 오르며 미국에서 인기를 끈다는 뉴스를 들으며 저는 미국사람들이 왜?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명시적인 주제와는 반대로

독자들이 이 책에서 그리워하는 것은

자기희생을 하는 헌신적인 엄마가 아닐까,

그런 삐딱한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이 가져보지 못한(어쨌든 우리보다 훨씬 빨리, 많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엄마가 자기 욕망을 온전히 드러낼 때,

자식들은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빨래하는 페미니즘』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 있어요.

돈과 생명은 아이들에게 내줄 수 있어요.

하지만 나 자신을 내주지는 않을 거예요. p156”

 

돈과 생명이 아닌 나 자신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요?

나에게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보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의 각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입장을 바꿔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든 본질이든 엄마의 자기 희생을 댓가로 성장한 자식은

행복할까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건 아직까지도 유행하고 있고,

고부갈등의 바탕에 깔린 시어머니의 당담함과 자신감이기도 합니다.

 

희생이 희생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엄마는 배신을 느낍니다.

배신자가 되지 않으려면 자식은 '희생-은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엄마의 희생은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고요?

엄마가 희생하지 않으려는 단 한가지가 바로 희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가 희생을 고수하는 한, 자식은 가해자라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청준의 <눈길>이나 <살아있는 늪>은

엄마에 대한 원죄의식과 그 부채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청준은 옛날분이지요..

엉엉소리내어 울게 만들지만, 한발 더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요즘 직장맘들은 여기에 하나더,

슈퍼우먼 컴플렉스까지 가져야 합니다.

드라마 <미생>의 선차장을 보셨지요?

페미니즘의 승리로 직장으로 진출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자기희생의 당위를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희생하지 않는 직장맘은 죄의식에 빠져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

주위에 참 많습니다.

전업주부들에게는 또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요?

이번 토론회는 이런 것들에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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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5-06-2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유래가 있었군요 문구가 하도 멋있길래 원래부터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줄 알았는데...
 

어제 저희 독서회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습니다.

8명이 참석해서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자유 토론을 했습니다.

처음엔 이 책을 제안하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티슈가 많이 필요했고,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지만,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습니다.

책뿐 아니라 추적 60분의 <세월호 실종자 가족, 멈춰버린 1년>,

뉴스타파의 <목격자들> 을 본 소감부터

국회에서 열려했던 <4월의 어느 멋진 날에> 콘서트까지

대한민국의 오늘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4.16은 불의의 교통사고도, 불운한 사고도, 일탈적 사고도 아닙니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다 보면 이 나라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는 이 비정상의 나라.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했던 '비정상의 정상화'란 구호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생각'하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반성도 많았습니다.

아침에 세월호 이야기하고 돌아서서 벚꽃놀이 다녀왔다는 고백,

하냥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미안함,

몇 년째 흔들어 보지도 않고 구석탱이에 감춰놓은 소화기,

어느새 경쟁을 부추기는 학부모로 되돌아 가 버렸다는 고백까지.

 

우리가 이렇게 제 앞가림만 하고 살지만

적어도 세월호 유족들이 당당히 투쟁할 수 있도록

온갖 왜곡과 조롱만은 막아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기사들 많이 클릭해주고,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키보드 전사로 싸우기도 하고. 

책도 많이 사서 보고,

주위에 사보라고 권유도 하고. 

 

책들을 모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런 모임을 했다고

카톡과 트윗, 카스, 페이스북, 블로그 가리지 않고

자랑질 하기로 했습니다.

겨우 이런 걸로 생색내냐는 말이 귀에 들리는 듯하지만

철판깔고 소문내기로 했습니다.

한 친구라도, 한 이웃이라도 더,

책을 읽고, 이야기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런 부끄러움 쯤은 참기로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유족 간담회도 준비해 보기로 했습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보면

유족들이 전국 곳곳으로 간담회를 하며 다니십니다.

자리만 마련되면 기꺼이 함께 하시는 듯 합니다.

유족들에게는 연대의 힘이되고

저희들에게는 반성과 다짐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립도서관에 요청해 보려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안된다면 저희 독서회 차원에서라도 추진해 볼까 합니다.

 1주기가 지나 사람들의 관심이 잦아들지도 모를 하반기쯤

해보자고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물론 유족분들의 의사를 먼저 정중히 여쭈어보아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미리 광고를 합니다.

조그만 도시 평범한 중년들도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고

그렇게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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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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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읽은 《강철은 어떻게 단련 되었는가》가 생각났다. 제목만 생각난다. 내용은 다 잊어버렸고, 진짜 읽기는 했나 싶을 만큼 기억도 희미하지만, 제목만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고리키의 《어머니》와 더불어.

 

『금요일엔 돌아오렴』

그저 안타깝게 울며 읽어야 할 줄 알았다. 진짜 꺼이꺼이 울며 읽었다. 하지만 그 울음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투사로, 단련 되는가를 읽을 수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단지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왜 정부의 ‘보상’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가 절절히 느껴졌다.

 

 

사이가 좋지 않다가 헤어진 게 제일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는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씨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정부에서 우리를 정직하게 대해줬으면 안 그랬을 거야. 사고였는데 최선을 다해서 구했는데 못 구했다 그러면 우리도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하다못해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그 원인을 밝히는데 이건 304명이 죽은 대형 사고잖아요. 처음부터 투사가 되어 이걸 밝히고 말거야 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부모, 한 명도 없어요. 그렇게 정부가 우리를 끌고 온 거지요. 너무 얕본 거지, 우리를.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가족들을 몰아붙일지는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국민도 아닌 것 같아요. 대통령이 국회에 연설하러 왔을 때는 거의 경악 수준이었어요. 엄마들이 새벽같이 올라가서 대통령 눈 길 한번 사로잡으려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치는데 눈길 한번 안 주더라고. 그러면서 웃으면서 지나가더라고. 그게 사람인지요. 정말 그럴 줄은 몰랐는데 ..... 대통령이 그러니 그 밑에 사람들은 어떨까 싶고. p157」

 

4.16TV(세월호 유가족 방송)에서 활동하는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씨의 이야기는 사고 당시의 대처 상황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위해 찾아다닌 주위 섬들의 어부들은 하나같이 격분했다.

 

「내가 섬에 내려갔을 때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갖고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 고 욕을 하는 거죠.

섬에 있는 동생 옥령이가 그래요. “형님, 나 정말 힘듭니다.” 선원들 중에는 학생들이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어대고 얼굴을 유리에 대고 숨을 거둬가는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섬에도 트라우마가 있었던 거예요. “형님, 저희 선원들은 그 세월호 선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선주는 배가 생명입니다, 우리는 4톤짜리 고깃배도 안 버립니다.” p179~80」

 

옥령이는 지성이를 건져 올린 동거차도의 어부다. 그 인연으로 문종택씨와 형님, 동생 사이가 되었다. 정부의 무능함에 신물이 난 문종택씨는 배에 대한 사고에 한해서는 세월호 유가족만큼 전문가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우리도 익히 보았듯이 사고 직후부터 시신수습과정까지 거의 대부분이 유가족의 제안과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심지어 사고 원인 규명과 안전 대책까지도 유가족이 나서서 투쟁하고 있다. 누가 국민이고 누가 정부인가?

 

문종택씨는 세월호는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왜’라는 물음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그 무수한 ‘왜’ 에 대해 아직까지 아무런 해답이 없다.

 

「저희 유가족들은 지금 세월호를 두 번 타고 있습니다. 그런 유가족들에게 국민이고 정치인이고 언론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컨테이너를 얹고, 쇳덩어리를 얹고, 쌀가마니를 얹어요. 선원들보다 해경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어요.

.......

상황이 자꾸 안 좋아지니까 지성이한테 제일 미안합니다. 저는 수사권, 기소권 달라고 목매달지 않았어요. 전 생각이 좀 달라요. 저희에게 기소권까지 다 줘도 진상규명은 안 된다고 봐요. 이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는, 대통령이 ‘본인 스스로까지 조사해서 문제가 생기면 이 정권을 내놓겠다’ 는 이야기를 하면 진상규명이 되겠지만, 대통령이 이처럼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해도, 국회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100퍼센트 인정해줘 갖고 제가 모든 것을 요구하는 자료를 싹 다 내놓고 묻는 말에 그대로 대답했다고 하더라도 안 밝혀집니다, 왜냐? 정권이, 이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는 순간 이 정권이 무너집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밝힐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자료를 남겨주려면 우리가 할 일은 최대한 밝혀야 하는 거죠. 알다시피 우리 부모들이 국정원이잖아요. 우리가 국정원이고 조사원이고, 우리처럼 열심히 일하는 국정원이 어디 있겠어요. p187~8 」

 

유가족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강철처럼 단련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 세대에 밝힐 수 없다하더라도 언젠가는 밝혀질 아니 밝혀야 할 진실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기록을 남긴다. 쉬 낙관하지도 않고 쉬 절망하지도 않는 단단함을 품기까지 쏟아낸 눈물은 얼마였을까.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동현씨의 삶은 30년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87년 6월 항쟁의 그 거리에서 그는 세상이 완전히 바뀔 줄 알았다. 88년 졸업 후 안산의 철강회사에 들어가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고 살았다. 세상의 모순은 잊고 애들 키우며 빠듯이 먹고 살았다. 1997년 IMF로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고, 2009년 제2 금융위기 때는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망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그리고 딸이 희생당했다. 이 사회는 소신을 지키며 살기도, 먹고 살기도, 가족을 지키며 살기도 힘들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우리 현대사의 급류에 휩쓸려왔고, 그 끝에서 참사의 당사자가 되어 이렇게 길거리에 앉아 있어요. 87년 6월 항쟁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그때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어떻게 이렇게 변한 게 없을 수 있을까 싶어요. 오히려 더 나빠진 것 같아요. 사회의 모순은 고착되고 견고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허울만 좋은 민주주의에 국민들이 완전히 속았어요. 참담하죠. 내 딸을 잃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우리가 꼭 진실을 밝힐 거예요.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30년 후에 나 같은 사람이 또 가족을 잃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 p310~1」

 

우리 또래는 다 그렇다. 87년 민주화로 다 된 줄 알았다. 민주가 그때는 자유인 줄 알았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민낯을 상상하지 못했다. 평등 없는 자유는 동물의 왕국이라는 걸 몰랐다. 계층의 고착화는 밀림의 서열과 같다. 날카로운 이빨 대신 돈이 그것을 가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세월호 증개축과 과적, 고박불량, 선원, 심지어는 해경과 언딘까지도 철저히 돈의 논리에 따랐다. 세월호 인양을 두고도 돈이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것처럼 유가족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참사와 마주하고 있다. 강철처럼 단단해진 투사도 있고, 아직 아이의 이름도 입 밖에 내기 힘든 부모도 있다. 장례를 치르자마자 안산을 떠난 분도 있고, 아이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보존하며 오래 기억하기 위해 100살까지 살 것을 다짐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그 슬픔과 분노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문상을 가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맨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는 너무 의례적이어서 아무 말도 아닌 것 같고, 가만히 두어도 울음이 터질 텐데 얼마나 슬프냐고 울음을 재촉할 수도 없고, 피붙이의 죽음을 눈앞에 둔 이에게 그깟 건강을 챙기라는 말도 터무니없어 보이고, 차라리 눈을 피하고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하물며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을 대면하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까. 그런데 딸의 시신을 찾고도 다시 진도로 돌아가 실종자의 가족 곁을 지키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옆에 있는 거지. 뭔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등 두드려드리고 같이 밥 먹고 옆에서 자고 또 담배 같이 피우고 그렇게. p264”

 

뭔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름들을 기억하고, 분노를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다. 열세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는 304명 희생자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일반인 희생자들도 아이들과 같은 꿈과 삶과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김건우’란 이름만은 잊지 않도록 되새기고 또 되새기기로 했다.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씨는 치매가 걸려 모든 것을 잊어도 건우만은 기억할 것이라 말한다.

 

「저는 앞으로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 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그랬어요. “건우 아빠, 나는 아흔 살 백 살까지 살 거야. 내가 건우를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라 했더니 “아흔 살? 너무 많지 않아”라고 해요. 그래도 나는 그때까지 살 거라고 했어요. p42」

 

 

김건우.

건우 엄마처럼 나도 김건우란 이름을 오래 오래 기억하려 한다. 김건우는 세월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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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1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리뷰가 있을까 해서 들어왔다가 읽고 갑니다. 이렇게 읽으셨군요. 고맙게 리뷰 읽고 갑니다.

말리 2015-04-14 13:54   좋아요 0 | URL
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오늘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주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가 자해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새 잊고 있던 세월호가 다시 돌아왔다. 세월호에 화물차를 싣고 승선했던 김동수씨는 소방호스로 학생 20명을 구했다. 그러나 그는 자랑스럽지도 떳떳하지도 못했다.

 

"다 보상받고 해결됐는데 왜 그때 일을 못 잊느냐는 사람들이 있어요. 학생들을 보면 그 학생들이 생각나고, 창문을 보면 세월호 창문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어떻게 그 일을 쉽게 잊겠어요. 사는 것이 너무 비참해요.”

 

어떤 사람들에게 세월호는 다 보상받고 다 해결되었던가 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 다음 달이면 세월호 1주기가 돌아오니까. 그만하면 잊을만한 시간이긴 하다. 충분히 잊어야 했을 시간이다. 그런데 세월호 생존자들에게도, 세월호 희생자들의 가족에게도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무엇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것도 없다. 제대로 책임진 사람은 있었던가.

 

사람들은 잊으라고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긋지긋하니 잊으라하고, 어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잊어야 한다고 걱정스레 말한다. 맞다. 잊어야 한다. 당사자들도 우리 국민들도 이제 세월호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귀를 틀어막고 입을 굳게 다물고 열심히 살면 잊히는 걸까? 기억을 꼭꼭 눌러 어둠 속에 묻으면 잊을 수 있는 걸까?

 

 

이번 주 우리 독서회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떠나보내는 방식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했다. 벨기에 작가 브룩호번의 <쥘과의 하루>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알리스는 아침에 일어나 남편 쥘이 돌연사한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남편을 곧바로 장례라는, 공적 의례에 넘겨주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은 떠났지만, 한 평생 묻고 살았던 남편의 외도와 아이의 죽음, 그 한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한만 풀어 줄 대상 없이 덩그마니 남았다. 그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한 쥘은 알리스에게 영원히 되돌아 올 것이다. 알리스가 죽은 쥘과 일상처럼 하루를 지낸 것은 쥘을 너무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다. 쥘을 잊기 위한 알리스 식의 의식이다. 알리스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보낸 편지를 꼼꼼히 기억해 낸다. 기억하기도 싫을 그 편지를 한자 한자 되살린다. 죽은 남편 옆에 앉아 맨 먼저 알리스가 했던 일이 남편이 사랑했던 여자를, 남편의 배신을 생생히 되살리는 것이란 사실이 처음에는 너무 의외였다. 사랑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아니라 영원히 묻어두려 했던 남편의 외도를 찬찬히 되돌아보는 앨리스가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알리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애도였다. 쥘을 영원히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기억 속에 억압했던 모든 것들을 남김없이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오므로.

 

장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영원히 잊기 위한 마지막 기억이다. 망자가 유령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말이다. 수많은 민담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모두 단 하나의 소원을 가지고 돌아온다. 다시 살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저승으로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한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귀신 이야기는 결국 산자들의 두려움이다. 어떤 죽음에 납득할 수 없는 의문이 있을 때, 죽은 사람의 명예가 손상되었을 때, 우리는 죽은 사람이 되돌아올까 두려워한다. 그 죽음은 잊히지 않는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어느새 되살아난다. 억압하면 할수록 되돌아온다. 이것이 귀신이나 유령 같은 허황된 이야기에 아직까지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억압된 기억이 귀신을 만들어낸다.

 

김동수씨가 지금도, 창문에 매달린 아이들을 보는 것은 그 아이들의 죽음이 여전히 의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당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300명이 넘는 목숨이 한꺼번에 물속에 가라앉은 그 죽음을, 아직 살아있는 목숨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면서도 그대로 죽어가게 했던 그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애도하고, 어떻게 영원히 보낼 수 있을까..

 

거기다 날이 갈수록 세월호에 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폄훼가 난무한다. 우리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미친것처럼 날뛴다. 그것을 단순히 어린 아이들의 철없고 위험한 유희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상대할 필요도 없다고? 그 바탕에는 어른들의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는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억울하게 죽는 목숨이 어디 그뿐이냐고. 서둘러 덮으려는, 재빨리 잊으려는 그 마음들 위에 아이들의 위험한 장난이 미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장난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장난으로도 그런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단호한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 한 세월호는 두 번 세 번 죽음을 되풀이 할 것이고, 우리는 그 죽음의 기억에서 놓여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독서회는 다음달에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기로 했다. 올해 1월에 발간된 이 책은 작가들이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을 기록한 것이다. 아마도 읽기가 힘들 것이다. 나도 장바구니에만 담아놓고 구매를 미뤄왔다. 오랫동안 우리 집 근처 대형마트에는 노란 깃발들과 함께 유가족들의 편지를 판넬로 전시했다. 오다가다 잠깐 서서 조금만 읽어도 눈물이 줄줄 흐르곤 했다. 그런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혔을 이 책을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왜 이 고통을 되살려야 하는지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호를 진정으로 잊기 위해서라도 정면으로 바라보고, 하나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생존자들과 희생자의 가족들은 여전히 극한의 고통 속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한다고 해도 그 고통의 천분의 일을, 만분의 일을 알 수 있을까... 김동수씨는 화물차를 잃고 생계마저 막막하다고 한다. 그들의 고통은 세월호가 제대로 해결되어야, 아니 어느 정도라도 납득이 되어야, 그나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도 세월호의 상흔에서 놓여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기일 것이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독서회는 십여 명의 작은 모임이지만, 구석지고 작은 곳에서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세월호가 기억 아래 억압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구석구석에서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서로 알리면 좋겠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백만부가, 천만부가 팔린다면 그것이 그대로 해일 같은 여론이 되어 정부를 압박하고, 위험한 욕설질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회원들도 이 책만큼은 사서 읽기로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판매 부수가 그 자체로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일 테니 말이다. 더불어 <눈먼 자들의 국가>도 함께 구입하겠다는 회원들도 많았다. 이 책은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12명의 작가들이 쓴 세월호 추모 글을 모은 것이다. 이 두 책과 함께 어제 나는 <세월호를 기록하다>도 주문했다. 일주일 전에 출간된 이 책은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을 기록한 책이다. 세월호 사건을 다시 정리해 보기에는 딱 알맞은 책이 될 것 같다. 띄엄띄엄 뉴스로만 들었던 재판 내용 이외에 어떤 진실들이 드러났는지 혹은 어떤 조작과 은폐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볼 계획이다. 마침 택배 아저씨가 곧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이글은 독서회 카페에 올린 것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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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도 거의 “어머머! 재미있어!!” 라 했을 것 같다. 훌륭한 책, 걸작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에세이 분야에서 특히 여행(?) 에세이 분야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책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참 오랜만에 낄낄거리며 읽었다.

 

알라딘 서점의 프로필에 올라온 빌 브라이슨은 산적 같다. 책을 읽으며 내내 카츠는 이런 모습일 것이라 상상했던 딱 그 얼굴을 브라이슨에게서 보다니, 너무 놀랐다. 카츠가 혹시 브라이슨이 아닐까? 브라이슨이라면 캐릭터 바꾸기 쯤은 유쾌하게 해치울 것 같다. 카츠 같은 브라이슨과 진짜 뚱뚱이 카츠가 ‘스루 하이커’를 꿈꾸었던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이렇게 생겨먹었다. 미국이 크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참 길다!          

 

 

“미국의 동부 해안을 따라 고요히 솟아 있으면서 은근히 사람의 발길을 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 위로 굽이굽이 3천360킬로미터나 흐르는 길이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면서 이름만 들어도 맘이 설레는 블루리지, 스모키, 컴벌랜드, 그린 마운튼, 화이트 마운튼을 지나간다. p13”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완전히 종주하려면 적어도 5개월이 걸린다. 20Kg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150일을 매일매일 걷는다면 얼마나 신날까! 진짜? 종주를 결심한 브라이슨은 맨 먼저 흑곰에 희생된 불행한 하이커들의 이야기로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숲은, 깊은 숲일수록 으스스하다. 큰 숲을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타박타박 걸을 때는 정말 으스스하다.

 

『나를 부르는 숲』은 그 유쾌함으로 또는 그 유쾌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산과 숲, 자연에 관한 것들 뿐 아니라 사람에 관한 생각들, 특히 사람에 관해서 그렇다. 브라이슨의 동반자 카츠도 독특한 인물이지만, 나는 메리 앨런을 보며 너무너무 웃었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앨런. 플로리다 주에서 왔고 카츠가 공포에 질린 어조로, 순간적으로 지어낸 ‘한 편의 걸작’이라는 별명이 영원히 따라붙었다. 소파에 누워 있던 개가 소파에서 내려와 다른 방으로 피신할 만큼 격렬하고 강력하게 코를 풀어 귓속의 유스타키오관을 정돈할 때 -자주 그렇게 했다- 외에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나는 살다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과 얼마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게 신의 섭리라는 것을 안다. 메리 앨런은, 심지어 애팔래치아의 깊은 산중에서도 그 섭리를 피할 수 없다는 증거였다. p86”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내 교우의 상․ 하한치를 훌쩍 뛰어 넘는 ‘한 편의 걸작’이 불쑥 인생에 뛰어들 때는 있다. 앨런처럼 모두 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불쑥 사라지지만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 쩔쩔 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이상하게 보였던 사람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고 누군가의 인생에서 ‘한 편의 걸작’으로 남아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1852년부터 산 위에 지어진 호텔들, 산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에 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생각나게 했다. 톱니바퀴 궤도 기차에 수영장, 골프 코스, 엘리베이터를 갖춘 호텔들이 우후죽순으로 세워져, 1890년대까지 화이트 마운튼에는 200개의 호텔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자동차는 사람을 한 곳에 머물러 있게 두지 않았다. 호텔들은 관광객이 최소한 2주일을 머물 것이라는 가정 아래 지어졌지만 사람들은 하룻밤이면 미련 없이 떠나갔다. 20세기는 사람들의 관심이 한 곳에 충분히 오래 머무는 시대는 아니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그렇게 사라져 간 호텔 중에 하나인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주변의 곳곳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입구를 연상시킨다. 브라이슨이 유머 속에 비판하는 관광지의 상술과 행락객들은 딱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공원 관리국의 행정도 어쩜 그렇게 우리와 비슷하게 엉망진창인지, 누가 뭐래도 미국은 형제의 나라라는 또 다른 증거 같기도 하다. 물론 주미 한국대사가 칼침을 당하면 미국인들도 석고대죄에 부채춤과 북소리로 용서를 구할지는 의문이다.

 

『나를 부르는 숲』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브라이슨과 카츠가 대충대충 트레일을 건너뛰는, 슬렁슬렁 정신이다. 끔찍한 스모키에서 내려온 그들은 택시를 타고 남부를 떠나 단박에 버지니아까지 가버린다. 스루 하이커가 되기로 한 결심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운동화 신은 할머니가, 우드로라는 이름의 인간 비치볼이, 그리고 3천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캐터딘까지 종주에 성공했는데 내가 그 욕구를 포기한 기분이 어땠을까 -사실, 괜찮았다. 나는 여전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단지 그 전부를 걷지 않았을 뿐이지. 당신이 믿거나 말거나 카츠와 나는 벌써 50만 발자국을 찍었다. 그리고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어떤지 알기 위해 앞으로 450만 발자국을 더 찍어야 한다는 건 필수적이지는 않은 것이다. p182”

 

어쩌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필수적’에 강박 되어 있다. 산에 가면 ‘필수적으로’ 정상에 올라야 하고, 일단 결심하면 ‘필수적으로’ 100대 명산을 모두 정복해야 한다. 하나라도 빠뜨리면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이 된다. 대학에 가려면 SKY를 가야하고, 수술을 하려면 최고의 명의를 찾아야 하고, 밥을 먹어도 맛집을 검색해야 하고, 빵을 하나 사도 전국 3대 빵집 앞에 2시간의 줄을 서야 한다. ‘필수적으로’ 최고를 찾는 정신이 우리의 삶을 무한경쟁으로 내몬다.

 

브라이슨은 일 때문에 한 달간 등산을 중지하고, 8월에 카츠와 다시 만나 메인 주의 트레일 구간을 함께 걷기로 했다. 그때 카츠는 브라이슨이 올 때 까지 혼자 전 구간 종주를 잠깐 계획한다. 그러나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난 감사하게 생각해. p254”

 

“그가 말했고 나도 동의했다. 우리는 에미캘롤라를 떠난 이후 800킬로미터, 125만 발자국을 걸어왔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만한 충분한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등산가다. 우리는 숲에서 똥을 누었고 곰들과 함께 잤다. 우리는 산사람이 되었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p254”

 

브라이슨과 카츠를 가짜 산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8월에 다시 만난 이들은 카츠가 길을 잃고 헤맨 후 결국 트레일을 포기한다. 카츠가 묻는다. “그래, 트레일을 포기해서 기분이 언짢니? p411”

 

“확실치가 않아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대해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었고,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하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 보았으면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 항상 그랬다. p411”

 

그냥 산행을 할 때도 그렇다. 한때는 매주 한 번씩 번질나게 북한산에 올랐다. 바위를 엉금엉금 기며 내가 여기를 왜 또 왔나 후회하지만, 내려와 매표소가 눈앞에 보이면 벌써 다음 주에는 어느 코스를 오를까 궁리하곤 했다. 그래서 산은 삶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브라이슨의 묘사는 삶에 대한 은유기도 하다.

 

끝내 마운트 캐더딘을 아쉬워하는 브라이슨에게 카츠는 말한다. “다른 산은 봤잖아, 브라이슨. 너는 얼마나 많은 산들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 p412”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산들에 올라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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