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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공산당 선언 펭귄클래식 80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권화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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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굉장히 짧습니다. 펭귄클래식 코리아 판으로 45쪽 정도의 분량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 자체는 꽤 두껍습니다. 개레스 스테드먼 존스라는 정치학자가 쓴 서설이 200쪽 가까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설 중 ‘공산주의’ 의 개념에 관한 내용을 조금 옮겨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라는 말로 변형되어 일상용어처럼 쓰이지만, 이 말을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공산당 선언』의 너무나도 유명한 첫 문장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입니다. 다음은 “구 유럽의 모든 세력들,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 밀정이 이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신성한 동맹을 맺었다.” 로 이어집니다.

 

유럽의 구세력들이 결집하여 결사적으로 쫓아내려 하는 이 유령, 공산주의는 무엇일까요? 공산주의의 어원 자체는 중세 말 기독교에 반기를 든 수도원 결사체들 중 급진파들이 처음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존스의 서설에서는 범위를 좁혀 이 용어가 현재의 의미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프랑스 혁명기부터 살피고 있습니다.

 

『공산당 선언』은 1848년 발표됩니다. 선언 자체는 1848년 전 유럽으로 번진 혁명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묻혀 버립니다. 그렇다 해도 ‘공산주의’는 당시 유럽사회에 널리 퍼진 골칫거리였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백과사전인 『국가사전』1846년 ‘보유’편에는 이런 기술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지난 몇 년간 온통 공산주의에 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공산주의는 누군가가 두려워하고 또 누군가가 두려움을 불어넣기 위해 이용하는 위협적인 유령이 되었다.” 우리가 놀라운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는 당시에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수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12년 전 인 1834년 『국가사전』초판에는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실리지도 않았습니다. 공산주의가 유럽사회에 두드러진 위치로 떠오르는 과정은 놀랍도록 급속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라는 말은 1840년대 초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1830년 7월 혁명 때 재등장한 공화주의 운동의 초급진적 분파를 묘사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재등장한 공화주의’ 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이들이 대혁명 당시의 급진 자코뱅이 주장한 공화주의를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자코뱅적 공화주의의 핵심은 ‘평등’입니다. 혁명 당시 생존자(테르미도르 반동이후)의 회상에 의하면 “자신들을 ‘평등파’라 부르는 혁명 공모자들은 불평등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인민 주권과 고덕한 공화국은 결코 보장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부패한 테르미도르 정부는 2년 전 공포정치를 주재한 공안위원회와 유사한 ‘현자들’의 비상 ‘독재’에 의해 타도되고 대체되어야 했다. 이 기구는 부자들의 재산을 압류하고, 토지를 몰수하고, 재화의 공유를 수립한 연후에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공화국에 참여할 인민에게 권력을 돌려줄 생각이었다.”

 

이 사상이 1830년 7월 혁명으로 형성된 급진 공화주의 협회들에서 재등장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7월 혁명의 결과로 세워진 루이 필립의 ‘7월 왕정’은 배신이었습니다. 루이 필립은 의회 군주정, 유산계급 참정권, 자유방임 경제를 실행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의 권력이 강화된 것입니다. 부르주아 자본주의는 평등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부르주아들이 중시한 것은 개인의 자유, 그 중에서도 사적 소유의 권리와 자유입니다. 자본주의의 단짝은 자유주의입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혁명은 거의 100년을 끌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주요 배경인 1832년 6월 봉기가 발생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ABC 회원들이라는 학생들이 마지막 바리케이드 전투에서 전멸합니다. 급진 공화주의 협회는 주로 학생들과 불만을 품은 장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급진 공화주의 협회들이 계속 반란을 시도하자 결국 1835년 공화주의 협회가 불법화되었으며 공화국에 대한 옹호도 모두 금지되었습니다.

 

공화주의 협회가 불법화되자, 합법을 선호하는 일부 급진 공화주의자들이 1830년대 말 ‘평등주의 공화국’ 대신 평화적이고 비정치적인 대체물로 제시한 것이 바로 ‘공산주의’입니다. 현대사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공화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온건한 이미지로 살아남고, 공산주의는 독재와 폭력의 이미지로 점철되어 패퇴했습니다. 물론 공화주의는 지금도 양쪽 모두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우리나라의 영문 표기는 ‘Republic of Korea’입니다.

 

공산주의는 1840년 공적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와 합류합니다. 정치 지형이 변화되면서, 평등에 집중하는 급진 공화주의와 노동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결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새로운 사회주의가 합류했던 것입니다. 정치적 차원의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공산주의가, 사회공동체와 경제적 협동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와 만났습니다. 노동 문제에 직면하여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후 공산주의는 새로운 자리매김을 해나갑니다. 공화주의적 뿌리와 분리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관련됩니다. 1841년 보수주의 프러시아 국가신문은 공산주의를 “현대사회의 산업적 궁핍”과 연결시켰고, 공산주의 사상을 “불행하고 광기에 찬 계급의 비통한 외침”으로 정의했습니다. 1840년대 독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현대 산업세계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궁핍, 빈곤, 범죄와 연결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의미는 ‘하층계급’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1843년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빈민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빈곤화된 사람들이며 .... 사회의 대대적인 해체에서 귀결되는 대중들”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노동자 계급이라고 이해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산업화의 내부에 포함된 노동자가 아니라 산업화 밖에 내팽겨진 빈민입니다.

 

이 프롤레타리아트가 공산주의와 결부되자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었습니다. 『공산당 선언』의 첫 문단에서 언급된 ‘구 유럽의 모든 세력들’은 직조공 반란, 농민봉기, 영국의 새 구빈법 등 모든 것의 배후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에 대한 불만의 천둥을 뒤따르는 번개의 섬광 속에서 공산주의의 창백한 유령이 드러났다.” 당시 공산주의가 갖게 된 이미지입니다.

여기에는 공산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궁핍과 분노를 언어로 표현했다는 두려움, 공산주의가 프롤레타리아트와 동일한 것이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1840년대에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험한 계급, 사유재산에 대한 약탈적 적대와 동일시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빈부 사이의 전쟁의 징후였습니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제시됩니다. 더 이상 궁핍하고 뿌리 없는 빈민이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산업화의 산물이며, 공장들과 그들이 모이는 도시들에 의해 단련됩니다. 범죄적이며 부정적인 하층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룸펜프롤레타리아트’로 따로 분류됩니다. 이것은 엥겔스가 발전시킨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재산에 대한 위협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계속해서 “현존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들의 폭력적 타도”를 강조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선고를 실행하는 집행자가 되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를 폭력과 소위 ‘절도 욕구’와 연결하는 것은 부정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것은 변증법적 진보로 바뀌었습니다. 진보의 최고 단계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공산주의 목표의 성취입니다.

 

『공산당 선언』이 당장의 효과를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이 선언의 효과는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두렵게 했습니다. 한 세대 후 1860년대와 1870년대에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독일에 등장했을 때, 공산주의라는 말은 기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의 모태는 공화주의, 공화주의의 가치는 평등입니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흔히 우리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경제 체제로서의 대척점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여기서 추적해 본 공산주의는 정치적 개념으로 시작합니다. 물론 마르크스 이후 공산주의는 생산관계의 역사적 최종 단계로 규정되면서 경제적 개념에 밀착됩니다.

 

조금 웃기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스스로를 공화주의 체제로 천명한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자유와 평등은 궁극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적 소유의 자유가 바탕이 되는 자본주의가 평등을 추구하는 공화주의와 어느 한도까지 양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여기에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추가하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집니다. 민주주의는 民, People이 주인인 체제입니다. 북한을 비롯해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들은 인민, People을 공식 명칭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들 역시 민주주의체제임을 역설합니다. 돈이 근본인 자본資本주의와 民이 주인인 민주주의民本 는 또 어디까지 양립할 수 있을까요? 資本과 民本은 1원1표와 1인1표에서 그 차이를 극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주인인 경제체제에 살고 있으면서 국민이 주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혹은 국민이 주인인 정치제제에 살고 있으면서 돈을 주인으로 모십니다. 공산주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민을 주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모든 권력은 당의 지도자가 가집니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 !

우리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가치들을 조합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념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 최고의 조합은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삐걱 대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뉴스들만 보아도 우리가 이 국가의 주인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 가입한 독서 카페의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이 글은 카페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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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프로이트 How To Read 시리즈
조시 코언 지음, 최창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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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인간의 자부심에 충격을 안긴 세 가지 사건’ 에 관한 이야기는 프로이트가 한 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그 세 가지 사건이다. 프로이트는 “이번 현대 정신분석학 연구의 발견으로 인간은 자신의 정신조차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존재로 알려지면서 세 번째이자 가장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에고에게 ‘네가 사는 집의 주인은 네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 사는 무의식이라는 존재에 대해 약간이라도 아는 것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진화론은 인간이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라는 것, 무의식은 내가Ich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아무것도 아님이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프로이트 스스로 인간을 강타한 세 번째 충격이라고 한만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핵심은 무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무의식적 현상은 의식 세계의 언어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접신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말똥한 의식에게 무의식은 애당초 이해 불가능한 세계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던 걸까?

 

허먼 멜빌의 『사기꾼』이란 책이 있다고 한다. 미시시피 증기선에 올라탄 한 인물이 매번 변장을 하고 나타나 사람들을 속이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기꾼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그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인물에 대한 추측만 난무할 따름이다. 사기꾼은 결코 그의 가면 없이 나타나는 법이 없다. 무의식도 그렇다. 무의식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무의식의 위장술은 전위displacement와 압축condensation이다. 우리는 무의식 그 자체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가면, 전위와 압축이 만들어낸 마스크일 뿐이다. 가면을 벗기려하면, 눈앞의 현실이 사라진다. 진실은 가면 뒤가 아니라 가면 자체에 있다.

 

무의식은 위장을 한 채, 우리의 의식에 교묘히 끼어든다. 그것이 바로 꿈, 농담, 실수 등이다. 무의식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식의 검열 때문이다. 이 검열관은 밤이 되면 조금 느슨해진다. 너무 꽁꽁 틀어막으면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터지기 쉽다. 밤에 살짝 풀어주면, 낮에 큰 사고 없이 지낼 수 있다. 그러므로 꿈이야말로 무의식에서 방출하는 모든 자극을 처리하는 처리장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독재정권하의 언론처럼 무의식이라는 기자와 마음의 검열관이 타협한 결과라고 했다. 독재하의 기자들은 검열관의 눈을 속여 행간에 그 의미를 은밀하게 드러낸다. 기자들이 머리를 쥐어짜 행간에 의미를 숨기듯, 꿈은 ‘꿈 작업’을 통해 애매모호한 단어와 괴상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본래 의미를 변형시킨다. 보통 꿈의 해석을, 드러난 꿈의 내용을 통해 잠재된 꿈 사고를 밝혀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꿈의 핵심은 꿈 사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꿈 작업’에 있다. 꿈에는 아무리 해석해도 해석할 수 없는 것이 남는다. 꿈 사고는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 불가능한 해석에 매달린다고 해서 무의식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은 별 의미 없이 지나친 하나의 단어 속에 그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꿈을 꾸며 우연히 말한 ‘tutelrein' 이라는 단어에는 꿈이 공들여 세공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휘황찬란한 꿈의 파노라마는 오히려 이 하나의 단어를 위한 거창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How To Read> 시리즈는 좋은 입문서다. 내가 읽은 몇몇 책들은 그랬다. 프로이트 편도 재미있다. 프로이트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리비도, 무의식, 꿈, 죽음충동을 비롯해 나르시시즘, 쾌락원리,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사도마조히즘 등 기본적인 개념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서 요약하기에는 모두 다 중요한 개념이라, 무의식과 꿈에 대해서는 간단히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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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물리학 - EBS 다큐프라임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 제작팀 지음, 홍성욱 감수, EBS MEDIA 기획 / 해나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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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리가 좋다면 꼭 해보고 싶은 공부가 천체물리학이다. 138억 년 전의 우주, 그 찰나의 빛이 세상을 만들고, 아직도 우주는 그 흔적과 기억을 품은 채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물리의 세계는 진짜 천재들의 세계다. “나는 그 누구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이 이렇게 말했다니, 그리고 아인슈타인조차 죽을 때까지 코펜하겐학파의 양자해석을 믿지 않았다니, 나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다. 그런데도 나는 거대한 우주와 미시의 양자 세계가 결국 동일하다는 생각만으로도, 들뜬다. EBS 다큐프라임의 <빛의 물리학>이 방송되었을 때도, 거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신없이 화면에 빨려 들었다. 빛을 따라 갈릴레이,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이 밝혀준 우주 공간을 보았고, 그 빛의 엑스터시 속에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을 아주 아주 작고 캄캄한 양자들의 세계로 들어섰다. 아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그 어둠의 세계에는 우주 탄생의 비밀과 모든 생명의 원리가 들어 있다. 그 다큐 <빛의 물리학>이 책 『빛의 물리학』으로 출간되어 도서관 신간코너에 딱하니 꽂혀 있었다.

 

 

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앨리스는 끝없이 낙하하고 있다. 토끼 굴속에 떨어졌는데, 땅에 닿지를 못하고 계속 떨어지고만 있다. 왜? 작가의 은유와는 관계없이 『빛의 물리학』은 이런 답을 할 수 있다. 앨리스가 땅에 닿지 못하는 것은 땅이 계속 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방해를 받지 않으면 계속 직진한다. 관성의 법칙이다. 우주에서는 한 번 힘을 받은 물체는 영원히 움직인다.

   

  관성의 법칙에 따른다면 달도, 공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하늘로 던진 공은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면 이 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중 하나의 방법은 공이 닿기 전에 땅을 내리는 것이다. 땅을 계속 내리다 보면, 공이 지나간 궤적은 둥그런 모양이 되고, 공은 계속 지구 주위를 돌게 된다. p82 」

 

뉴턴의 이 생각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 인공위성이다. 자연위성인 달도 인공위성처럼 떨어지면서 지구를 돈다. 뉴턴은 여기서 공이든 사과든 달이든 왜 떨어지는 가에 의문을 품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를 잡아당긴다. 달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관성과 지구와 달이 서로 잡아당기는 만유인력 때문에 끊임없이 돌고 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앨리스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삶의 수레바퀴를 돌고 있는 것이다. 삶의 중력을 떨쳐 내고 비상할 힘이 소년 앨리스에게는 없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추락하지 않고 궤도에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초속 7.9킬로미터의 속도를 낼 수 있어야 만유인력과 관성이 균형을 이루어 지구의 궤도에 오를 수 있다. 7.9km/s 조차 없다면 소년 앨리스의 동생처럼 삶의 궤도를 올라보지도 못하고 추락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나타났다. 뉴턴의 말처럼 모든 떨어지는 것은 그것과 지구 사이의 잡아당기는 힘 때문일까? 서로 당기는 이 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뉴턴에 의하면 만유인력은 질량과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거리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유인력과 특수상대성이론 둘 중 하나는 틀렸다. 젊은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중력과 가속도는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떨어진다는 것은 중력의 잡아당기는 힘 때문이 아니었다. 물체에 의해 공간이 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낙하란 휜 공간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것이다.

   

「가속도의 힘이 존재하는 공간, 즉 중력이 존재하는 공간은 모든 물체를 휘게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질량이 있는 곳에서 공간은 휘어진다. 태양 주변도 마찬가지다. 태양 뒤에서 오는 별빛은 직진하고 있지만 휘어진 공간을 따라 오게 된다. 에딩턴이 지구에서 볼 수 없었던 별 사진을 찍은 것도 별빛이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중력은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답이었다. p110」

 

다시 뉴턴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사과는 왜 떨어질까? 지구가 만든 휜 공간이 사과를 가장 자연스러운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일식 때 태양 뒤의 별빛을 볼 수 있는 것도, 별이 태양이 만든 휜 공간을 따라 오기 때문이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공간을 휘게 만든다. 당신이 나에게 오는 것은 우리가 서로 당기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만든 휜 공간을 당신이 따라 걷기 때문이다. 질량이 클수록 공간은 더욱 크게 휘어진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질량과 거리는 상대적이다. 나를 더욱 무겁게 느낄수록 당신이 나에게 이르는 길은 더욱 가파르게 기운다.

 

 

 

뉴턴을 과거로 돌려보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영원한 독재는 없다. 세계의 저 너머에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양자역학! 양자역학은 곧바로 상대성이론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다. 이 두 개의 물리법칙에는 하나의 영감이 작용했다. 그것은 빛이다. 가장 큰 세계와 가장 작은 세계는 하나였다. 오래된 금언이 맞다. 우리 몸 안에 우주가 있다. 그러나 이 우주는 완전하지도 질서 정연히 아름답지도 않다. 양자역학이 추정하는 코스모스는 카오스다.

   

 

 양자역학의 산실 닐스보어연구소다. 보어는 1916년 코펜하겐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가 된 이후, 이 연구소를 양자물리학의 메카로 만들며 코펜하겐학파를 이끌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이것은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벌써 원자는 희랍에서부터 탐구되었다. 세상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알갱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쪼개지지 않을 것 같은 알갱이 속에는 여러 가지 더 작은 알갱이들, 입자들이 있었다.

 

「1920년대엔 가장 작은 물질이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에 이르자 쿼크라는 더 작은 물질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쿼크에 여섯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후 전자와 성질이 비슷하면서 질량이 훨씬 큰 입자인 뮤온과 타우, 3종류의 뉴트리노까지, 12종류의 입자들이 발견됐다. 또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 글루온, 포톤, W± 게이지 보존, Z0게이지 보존과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가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은 이 입자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게 현재 물리학의 답변이다.p298」

 

처음 발견된 것은 전자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J.J. 톰슨이 원자 안에 음극을 나타내는 작은 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원자는 중성이니 원자 안에는 전자에 반대되는 양의 전기를 가지는 무엇이 있어야 했다. 원자핵을 실험으로 증명한 사람은 러더퍼드였다. 러더퍼드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원자 모델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전하를 띤 전자가 달라붙지 않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이 문제를 풀어낸 사람이 바로 러더퍼드의 제자 닐스 보어이다.

   

보어의 원자모델에서는 가운데에 원자핵이 있고,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돈다. 내가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운 것도 이것이다. 그러나 보어 자신도 왜 전자가 궤도를 따라서 도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다음 타자로 나선 것이 닐스보어연구소의 차세대 주자 하이젠베르크였다. 하이젠베르크는 과감히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렸다. 보어의 전자 궤도를 없애버린 것이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궤도를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슈뢰딩거가 다시 궤도를 들고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두고 일어난 이 논쟁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보어는 슈뢰딩거에 크게 기대를 걸었지만, 슈뢰딩거 역시 전자를 볼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오늘날까지도 양자역학의 핵심에 있지만, 그 자신도 그의 공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공식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가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양자역학이었다.

 

도대체 전자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전자는 왜 연속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양자도약을 하는 걸까? 왜 원자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걸까? 하이젠베르크는 다시 생각의 방향을 과감히 틀었다. 원자는 단순히 작아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말하자면 인식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존재의 불가능성이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탄생한다.

   

「위치를 정확히 재려고 하면 전자의 운동량이 불확실해 지고, 전자의 운동량을 보려고 하면 어디에 있는지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즉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잴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코펜하겐학파가 최종적으로 생각한 원자 모델은 다음과 같다. 전자는 안개처럼 뿌옇다. 이전 세상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지만, 이제 세상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찬 모호한 세계가 되고 말았다. p271」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코펜하겐 해석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미래는 알 수 없다는 세계관과 인간이 불완전해서 관측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세계관이 격렬히 부딪혔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전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확률이론에 의하면 전자는 발견되기 전까지 다양한 위치에 공존한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중의 한 마리인 ‘슈뢰딩거의 고양이’ 다.

   

「고양이가 갇힌 상자에는 독가스가 나오는 장치가 있다. 원자핵이 붕괴되어 방사선이 검출되면 망치가 유리병을 깨고, 그러면 유리병에서 독가스가 나온다.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고양이는 과연 죽었을까, 살았을까? 보지 않을 땐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엔 확률적으로 죽은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공존할 뿐이다. 슈뢰딩거는 궁금했다. 과연 반은 죽어 있고 반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말이 되는가? 구멍을 열어서 확인해보기 전까지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면, 고양이는 죽은 걸까, 산걸까? 물론 이 질문은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p266」

 

표현을 정확히 하자면, 확인할 때까지 고양이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확인할 때까지 고양이의 생사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확률적으로 죽음과 삶이 공존한 상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밤하늘의 달도 보고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인가? 보고 있지 있지 않을 때 달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같이 철학적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세계는 not-all 이며, Whole은 hole 이다. 세계는 완전한데 단지 인간의 능력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세계관은 칸트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젝의 헤겔 해석에 따르면, 헤겔은 인식 불가능성을 존재의 불가능성으로 전환했다. 인간이 세계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세계 자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리적인 방법으로 구성해내어 산술적으로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임의의 무모순인 이론에 대해, 참이지만 이론 내에서 증명할 수 없는 산술적 명제를 구성할 수 있다. 즉, 산술을 표현할 수 있는 이론은 무모순인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

 

산술적인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공리로부터 구성된 산술체계에 대하여 이 산술체계가 무모순이라면 이 산술체계는 스스로의 무모순성에 대한 진술을 포함할 수 없고 그 역도 성립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내가 이해하는 대로 말하자면, 이발사의 역설에 대한 답과 같은 것이다. (수학적으로는 엉터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쉽게 이렇게 이해한다.)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면도해 주는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 이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하는 사람의 집합에도 하지 않는 사람의 집합에도 속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은 두 집합 중 하나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 집합을 만든 바로 그 이발사 자신만은 어느 집합에도 속할 수가 없다. 즉 '스스로의 무모순성에 대한 진술을 포함할 수 없다.'  체계를 구성한 이발사 자신이 체계의 완전성을 방해하는 구멍, (W)hole이다. 우리는 세계에 갇혀 있지만, 그 세계의 한중심부는 구멍 나 있다. <설국열차>의 심장은 엔진이지만, 그 엔진의 중심은 구멍 뚫려 있다. 그 구멍을 가리고 있는 것은 한 어린 소년의 뼈만 남은 몸뚱이다. 그 소년을 빼내자, 엔진은 정지하고, 세계는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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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지젝 - 정치적, 신학적, 문화적 독법
강응섭 외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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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을 읽은 지 십년이 되어 간다. 지젝의 이름만 보이면 무조건 읽고, 신간이 나오길 목 빼고 기다리던 때도 있었다. 쉽지도 않은 책을 무엇에 홀려서 그리 읽었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여하튼 지젝은 내가 서양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다. 지젝을 읽다보면 무엇보다 헤겔과 라캉이 궁금하고, 헤겔을 읽으려면 칸트를 거쳐야 하고, 그러려면 데카르트가 필요하고, 뭐 그렇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고 그렇게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있다. 라캉에게도 프로이트가 있고, 소쉬르의 언어학, 구조주의 따위가 따라 붙는다. 지젝도 헤겔도 라캉도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쉬운 말을 모르는지, 쉬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사상인지, 말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 이해를 위해 쓰는 말인지, 오해를 하라고 꼬아버리는 말인지, 다들 난해하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 읽게 된다. 그 난해함에 매혹 당한다. 그 매혹의 중심은 사실 텅 비어있을 지도 모르지만.

 

 

글항아리의 『라캉과 지젝』을 사두고 이제 읽었다. 9월말에 샀으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예전 같으면 득달같이 읽었을 것을 한 달이나 묵혀 두었다. 오래된 애인이 이제 시큰둥해 진 걸까? 그것보다는 원래, 여러 명이 쓴 짧은 글들을 묶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분량 상 깊이가 있을 수도 없고, 이런 저런 주제들로 왔다갔다 산만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젝과 라캉의 난해함을 이렇게 짧은글 속에 제대로 풀어내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아니, 그렇게 압축해 낸 글들을 내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학자들이 풀어낸 지젝과 라캉이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어떻게 소화해내는지가 몹시 궁금하고 또 미리 부러웠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여덟 편의 글 중 세 편만 읽을 만 했다.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해도 좋은 글을 알아볼 수는 있는 것처럼, 라캉과 지젝을 잘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들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잘 소화해 쓴 글인지 아닌지는 알 것 같다. 김정한, 이성민, 정혁현의 글은 좋았다. 가장 나쁜 글은 김석의 것이다. 라캉과 지젝에 대한 비교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지젝의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닌데, 비교를 위해 지젝을 자신이 만든 틀 속에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다. 거두절미는 논객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철학자들도 한다.

 

헤겔도 그렇지만 라캉도 해석이 분분하다. 라캉 스스로도 견해를 끊임없이 바꾸었을 뿐 아니라, 어떤 개념에 대해 똑 부러지게 의미를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일쑤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경향이 드러나는데, ‘증상과의 동일시’ 와 ‘환상을 횡단하기’를 놓고 김석과 김정한은 전혀 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다.

 

이 두 개념은 정신분석의 완료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라캉에게 정신분석은 임상에 좀 더 가깝고 지젝에게는 정치와 깊이 관련된다. 임상이든 정치든 분석은 어느 시점에서 완료되는가? 혹은 성공하는가? 김석은 증상과의 동일시에서, 김정한은 환상의 횡단에서 정신분석의 완결을 보고 있다.

 

「정신분석 윤리의 근본 지향점은 개별 주체가 자기 욕망의 주인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를 정립하는 것이다. 존재는 상징화에 저항하며 기표적 질서에 대해 ‘탈존ex-sistence’하는 ‘무적인 것 ex-nihilo’ 이다. 존재가 자신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 바로 분석적 상황은 물론이고 일상에서 경험하는 증상이다. 증상은 말하는 주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의 조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증상은 주체가 겪는 병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프로이트적 의미의 임상 지표가 아니라 바로 실재의 메시지로서의 증상을 의미한다. 실재의 메시지로서의 증상은 해석이나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향유의 대상이다. 이제 증상을 통해 대타자가 박탈한 향유에 다가설 수 있다.

존재 회복은 최종적으로 증상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 완수된다. 지젝은 환상을 가로질러 이데올로기의 중핵에 있는 실재적인 것과 조우하면서 상징적 질서 너머로 향한 것을 강조하지만, 라캉은 욕망에 대한 철저한 충실성을 통해 실재(증상)에 대해 도달할 것을 주장한다. 지젝이 사회적 환상을 가로질러 상징계를 전복하는 혁명을 주장한다면 라캉은 주체가 갖는 증상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 기표 S1-S2로 이어지는 기표 연쇄가 결국 존재의 진리를 보증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상징계의 무능을 넘어서고자 한다. 정신분석의 윤리는 상징계가 거세하려는 존재를 향하며, 존재로의 귀환은 결국 실재에 속하는 증상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 가능하다. p42~3 김석」

 

김석은 라캉과 지젝을 ‘증상과의 동일시’와 ‘환상을 횡단하기’로 각각 대비한다. 김석이 말하는 증상은 실재적인 것으로 이것과의 동일시를 통해 주체가 존재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징계란 기표의 세계로, 주체는 상징계에 들어서는 대가로 존재를 상실한다, 즉 거세당한다. 김석은 환상을 횡단하는 것을 또 다른 환상 즉 기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에 반해 김정한은 ‘증상과의 동일시’를 상징적인 것, 다시 말해 상징계에 적당하게 적응해 사는 것으로, 기각한다. 정신병 환자에 대한 임상적 치료는 보통 다른 사람들과 그럭저럭 잘 어울려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젝에 따르면, 밀레의 정치적 입장은 그의 라캉 해석과 무관하지 않다. 정신분석 치료와 관련하여, 초기 라캉이 상상적 동일시를 떨쳐 내고 상징적 질서의 한계를 넘어 실재-물의 너머와 영웅적으로 대면하는 윤리를 제시한다면, 후기 라캉은 이런 ‘한계-경험’ 자체를 거부하고 급진주의를 포기하면서 온건한 방식으로 후퇴한다. 라캉에 따르면 “분석을 너무 멀리까지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 환자가 사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후기 라캉에게 정신분석 치료는 주체성의 철저한 변형이 아니라 국소적 미봉책이다. 밀레는 이 후기 라캉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신분석의 끝을 ‘환상 가로지르기’로 개념화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와 반대로 분석의 목표를 ‘증상과의 동일시’로 재정식화한다. 주체는 자신의 독특한 향유 방식을 압축하고 있는 증환이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밀레는 ‘환상 가로지르기’와 ‘증상과의 동일시’를 대립시키면서, ‘증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주체가 자신의 독특한 향유를 유지하는 길을 제시한다. 이것이 정치적 맥락에서 함의하는 바는 “냉소적인 자유주의적 보수주의” 인데 왜냐하면 주체의 안정적인 향유를 위해서는 기성 권력의 상블랑이 향유의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성 권력이 규정하는 일상의 법과 전통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징적 상블랑들이 가짜 내지 허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렇지 않은 듯 즐기라는 것은 냉소적인 윤리다.p54~5 김정한」

 

여기서 김정한은 별 다른 설명 없이 증상과 증환을 섞어 쓰고 있다. (엄밀히 이 두 개념은 다르며, 김정한처럼 증상을 상징계적으로 본다면 증환은 실재적인 개념이다.) 여기서 김정한은 아니 그보다는 지젝은 ‘증상과의 동일시’를 라캉이 아니라 그의 사위인 밀레의 탓으로 돌리며, ‘증상과의 동일시’를 존재의 회복으로 본 김석과는 다르게 존재의 타협으로 본다. 김정한에게 ‘환상 가로지르기’는 상징계의 궁극적 변혁인 반면 ‘증상과의 동일시’는 환자의 임시적 치유에 불과하다. 김정한은 밀레가 후기 라캉을 받아들이면서 ‘증상과의 동일시’를 주장한 반면, 지젝은 급진적 라캉을 바탕으로 ‘환상 가로지르기’를 정신분석의 완료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상 가로지르기는 환상과의 과잉동일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환상 즉 지배 이데올로기에는 반드시 피지배자들의 본래적 갈망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젝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피착취/피지배 다수자가 자신의 본래적 갈망들을 인지할 수 있을 일련의 특징들을 통합시켜야 한다. 요컨대 모든 헤게모니적 보편성은 적어도 두 개의 특수한 내용을 통합시켜야 한다. ‘본래적’인 대중적 내용과, 지배와 착취의 관계들에 의한 그것의 ‘왜곡’” 이라고 지적한다. 피지배자가 이데올로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사실 속아 넘어간 것이 아니다. 그 이데올로기에 피지배자가 원하는 가치가 내재해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지지한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프랑스 혁명의 자유와 평등은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였지만, 그 속에는 민중의 무조건적인 평등이라는 가치가 내재해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시장의 자유와 권리의 평등을 목표로 했지만, 민중이 갈망했던 것은 분배의 평등이었다. 분명히 부르주아지의 ‘자유와 평등’은 가로질러야 할 환상이었지만, 그것은 민중의 무조건적인 평등이라는 환상과의 과잉동일시를 통해서만 전복될 수 있었다. ‘평등? 그래봤자 부르주아지만 배부른 짓이지’ 라는 냉소가 아니라, ‘그래, 우리는 누구나 골고루 나누어 가지는 평등을 원해!’ 라는 것, 평등이라는 환상에 대한 철저한 믿음, 바로 그 과잉동일시가 1830년 이후의 부르주아 체제를 끊임없이 위협에 왔던 프랑스 혁명의 전개 과정이었다.

 

 

여하튼 지젝은 지젝으로, 라캉은 라캉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라캉은 너무 어렵고 사실 라캉의 세미나들은 거의 번역이 되지 않아서 읽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라캉의 정신분석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들 혹은 입문서들은 꽤 있는 편이니 그것부터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글들은 연구논문 형태여서 학자들 사이의 논쟁에는 생산적일지 모르나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너무 지엽적이고 설명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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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8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9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나리자 훔치기 - 왜 예술은 우리를 눈멀게 하는가 What's Up 7
다리안 리더 지음, 박소현 옮김 / 새물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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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는 사실 우리를 사로잡는 사악한 눈이다. 반지는 그것을 가진 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사로잡아 사우론의 응시 아래 놓는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보여 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공포다. 슈퍼맨이 매번 어벙한 클라크 기자로 돌아왔던 이유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사회적 페르소나를 연기할 때, 즉 가면을 쓰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부지불식간에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면 별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수치심과 불안감을 느낀다.

   

고대의 이론들은 우리가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눈이 빛을 내뿜는다고 믿었다. 그러

나 시각의 기하학은 데카르트의 유명한 그림처럼, 눈이 빛을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빛을 수용하는 기관이라 보았다. 그렇다면 빛을 뿜는 사악한 눈은 사라진 것일까? 1911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모나리자>를 훔친 페루지아는 모나리자가 자기를 향해 미소를 짓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모나리자가 그를 응시했고, 그는 그것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파울 클레는 “숲을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고 말했다. 클레가 메뉴판에서 신문지의 여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이렇게 무언가에 응시당하고 있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것이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그림은 사악한 눈을 자신으로부터 돌리게 만드는 일종의 덫이다. 화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미지나 물건을 떨어뜨린다. 도망자가 일부러 돌을 던지거나 소리를 내서 추적자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라캉은 몇몇 시각 예술은 사악한 눈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스크린으로 기능한다고 보았다. 회화는 눈을 위해 덫을 놓는 필사적인 행위이다.

 

보통 라캉의 스크린은 이중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가리개인 동시에 지시자이다.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일화인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핵심은 이것이다. 새들은 제욱시스의 포도에 속아 넘어갔지만,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의 베일에 속아 넘어 간다. 베일과 스크린은 그 뒤의 대상을 감추는 동시에, 그 뒤에 무엇인가가 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이다. 제욱시스는 엄청난 그림이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에 속았다. 이미지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하는 것들을 반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술적 이미지의 속성은 현실에 대한 모방이 아니라 시선을 유혹하고 기만하려는 노력이다. 욕망의 궁극적 대상은 금지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불가능성이기 때문이다. 파라시오스의 베일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텅 빈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모나리자>는 그것이 사라진 이후에야 불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남녀노소 수많은 프랑스인들은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사라진 것을 보려고 루브르 미술관으로 몰려들었다. 이전에 한 번도 모나리자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군중들이 보려고 몰려든 것은 모나리자가 사라지고 남은 텅 빈 공간이었다. 모나리자가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 없기 때문에 보러 간 것이다. 모나리자는 ‘잃어버린 숭고한 대상’ 이 되었다.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던 브레즈네프가 ‘못생겼지만 똑똑해 보이는 여자’ 라고 했던 그 그림이 말이다. 사람들은 이 텅 빈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의 한 신문이 보도한 대로 루브르가 재개관했을 때 “군중들은 다른 그림은 보지 않았다. 그들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성스러운 <모나리자>가 미소 짓고 있던 먼지투성이 공간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리고 열광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조콘다>가 거기 있는 것보다 사라진 것이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라캉의 주장에 따른다면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뒤 루브르에 몰려든 군중들은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을 입증해 주었다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이란 물物 Das Ding 이라는 텅 빈 장소, 다시 말해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는 장소 사이의 틈새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텅 빈 공간을 보러 몰려든 군중들에 대해 한 신문에서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미술작품 자체를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미술작품이 차지하고 있는 장소 때문에 미술작품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장소는, 적어도 『르 피가로』에 따르면, “무시무시하게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거대한 공백” 이었다. p133~5」

 

 

物 Das Ding 이란 일종의 ‘부재하는 원인’ 이다. 이글대는 우리의 욕망은 사악한 눈과 같다. 이 사악한 눈, 욕망을 사로잡은 물物 Das Ding 은 그러나 덫이다. 클레의 강박적인 그림이자 파라시오스의 베일이다. 이 대상은 결코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욕망은 원초적으로 충족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의 맛을 찾아다니는 그 어떤 미식가도 ‘절대 맛’을 찾을 수 없고, ‘절대 음’을 위해 피를 토하는 창극인도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어떤 영웅도 금지된 대상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은 신이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애초에 부재하기 때문에, 불가능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물物 Das Ding이 텅 빈 장소여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떤 실체적 대상도 텅 빈 장소 혹은 욕망의 베일을 대신할 수 없다. 최고의 덫은 텅 빈 물物 Das Ding이다. 한 번도 모나리자를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먼지투성이의 텅 빈 장소에 열광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의 욕망이 어떤 실체적 대상에 절망할 위험 없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사회가 보지 못하도록 금지한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찾는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야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특징이 아닌가? 그러므로 2여년 뒤 모나리자가 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기이한 반응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했을 때, 진짜 <모나리자>는 이미 수년 전에 도난당해서 없고, 이번에 도난당한 <모나리자>는 모조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모나리자>가 다시 루브르에 돌아 왔을 때 그것은 진짜 <모나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회자되었다. 이러한 추측들을 쓸데없는 어림짐작으로 간주하는 대신 장소와 그것을 채우고 있는 요소, 즉 욕망의 텅 빈 공간과 욕망을 충족시켜 줄 것이라 주장하는 모든 대상들 사이의 필연적인 틈새가 초래한 구조적 결과로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무언가가 항상 우리에게 대상과 장소 사이의 그러한 틈새를 환기시켜 줄 것이다. 프로이트에게는 그 장소가 결코 존재한 적 없는 대상의 장소라면 모든 경험적 대상은 그 장소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p171」

 

사람들이 진짜 모나리자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모나리자가 사라지고 남은 텅 빈 장소에 사람들이 열렬히 투여했던 그 욕망을 결코 진짜 모나리자가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진짜는 진짜 대상이 아니라 진짜에 대한 갈망 혹은 욕망 또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것은 실제로 결코 성취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완성된 것이라는 이상은 미완성 된 대상들을 통해서만 희구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결코 눈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점에서 미완성이다. 즉 어떤 예술도 눈이 추구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없다. p238」

 

사우론의 눈, 사악한 욕망의 눈은 결코 충족을 모른다. 그러므로 욕망은 끊임없이 완성을 미룬다. 히스테리증자와 같이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어요.’ 라고 말한다. 베일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텅 빈 장소에서 욕망이 보는 것은 욕망 그 자체뿐이라는 것을, 욕망이 만든 환상이라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악한 눈은 역설적이게도 보지 않으려 한다. 욕망이 눈멀어 있기 때문이다. 베일 뒤의 無 그 자체를 똑 바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를 구성하던 환상의 전체 틀이 무너진다. 좌표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환상을 횡단하기’ 이다. 욕망은 환상의 횡단을 거부하지만, 근본적인 틀을 뒤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상을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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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10-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최고입니다. 그렇잖아요. 이 책 바구니에 담고 관심을 가지는 중인데 이렇게 만나네요.....요즘 반값 할인을 하거든요....

말리 2014-10-2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값하길래 얼른 샀습니다 ㅎ. 지젝보다 친절하고 훨씬 쉬워요. 이 책 내용과 어디선가 제가 읽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마구 섞어 써서 책읽으시면 다르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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