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헤겔 레스토랑 + 라캉 카페 - 전2권 ㅣ Less Than Nothing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13_
4인방 : 투쟁, 역사성, 의지 ....... 초연한 내맡김
13장의 대상은 하이데거이다. 지젝은 하이데거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받았다. 지젝은 여러 책에서 하이데거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그의 나치즘과의 연루를 정면으로 파헤치고 있다. 그 결론은 다소 거북할 수 있는데, 하이데거는 올바른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의 1부 3장의 제목은 <금지된 지식인들, 혹은 왜 하이데거는 1933년 (비록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올바른 발걸음을 내디딘 걸까> 이다. 이것을 두고 지젝을 전체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지젝의 대답은 그의 또 다른 책의 제목 『전체주의가 뭐 어쨌다고?』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13장의 철학적 논의들은 결코 당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주장이 어떻게 철학적 타당성을 획득하는가를 위험하게 설파하고 있다.
1. 왜 라캉은 하이데거주의자가 아닌가?
하이데거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대한 주요한 비판자이다. 라캉은 적어도 1950년대에는 하이데거를 받아들였다. 라캉은 언어의 본질은 존재의 개시라는 하이데거의 개념을 배경으로 프로이트의 ‘원초적 긍정’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후 라캉은 입장을 완전히 바꾸어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무의식의 주체로 받아들였다. 왜?
2. 헤겔 대 하이데거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이 대결의 승자는 보나마나 헤겔이다. 지젝에게 헤겔은 거의 절대자다. 내 기억으로는 지젝이 헤겔을 제대로 비판하는 것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라캉마저도 헤겔과 붙여 놓으면 항상 라캉이 헤겔을 오독한 것으로 판정이 내려진다. 하이데거와 라캉의 경우라면 라캉의 승리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이데거 < 라캉 < 헤겔 이라고 볼 수 있다. 칸트와 헤겔 역시 헤겔의 절대 승이다. 마르크스 대 헤겔도 당연히 헤겔이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헤겔에 대한 무수한 비판들 모두 지젝에게는 헤겔에 대한 오독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지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젝을 읽을 때 참조하고 보면 적어도 지금 지젝이 누구를 옹호하고 누구를 비판하는지를 가리기에는 한결 수월해 진다. 책이 워낙 어렵다보니 별 꼼수를 다 부린다, 내가.
「이처럼 헤겔적인 ‘경험’을 절망의 길로 묘사하면서 하이데거가 놓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심연의 본질 그 자체이다. 즉 죽음에 직면해야 할 때 산산이 조각나는 것은 자연적 의식뿐만 아니라 자연적 의식이 자신의 부적합성 또는 실패로 간주하는 것의 척도로서의 초월론적 배경 또는 틀 또한 그렇게 된다. - 헤겔의 표현대로 하자면, 만약 우리가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리의 척도에 맞지 않는다면 이 척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하이데거가 변증법적 과정의 현기증 나는 심연을 놓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연적 의식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서 서서히 접근할 수 있는 진리의 기준 같은 것은 없다. 이 기준 자체가 과정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리하여 되풀이해서 기반이 침식당하기 때문이다. p1526」
그렇다면 하이데거가 간과하는 고통의 차원은 무엇일까?
3. 언어의 고문실
벤야민은 인간이 폭력이 아닌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어에서 찾는다. 언어는 상호 이해의 고유한 영역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간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짐승들보다도 폭력을 더 잔인하게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이데거 역시 언어가 가진 많은 폭력적 양상에 주목한 바 있다.
라캉은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모티브를 변주하여, 상징적 질서 이론의 기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이데거가 미처 보지 못했던 언어의 폭력적 양상 중 하나로 라캉은 하이데거의 모티브를 프로이트 쪽으로 선회시켜 하이데거의 집을 고문실로 특징 지웠다.
스탈린 시절 최고위직 당 간부가 물러났다는 것이 발표되면 사람들은 그가 물러남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간 존재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 라는 라캉의 명제는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이것은 언어, 즉 큰타자의 지위는 주체의 고문실이라는 의미이다. 주체가 말을 똑떨어지게 하지 못하고 거시기 거시기를 연발할 때 우리는 그것을 내적 혼란, 모호한 감정의 표현 등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말하는 것은 단지 트라우마적인 심리적 삶을 등록하거나 표현하지만은 않는다. 말하기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적 사실이다. 내적 혼란이란 ‘언어의 고문실’에 거주하는 것의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이다.
「몸에 새겨지는 전환증상부터 완전한 심리적 와해에 이르기까지 프로이트가 묘사하는 모든 정신병리학적 현상은 이러한 영원한 고문의 상처들, 주체와 언어 사이의 본래적인, 치유 불가능한 간극의 수많은 표시, 인간은 결코 자기 집에서 편안할 수 없다는 수많은 표시이다.p1530」
하이데거가 몰랐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집에 거주하는 것의 이처럼 어두운 측면을 무시했다.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건축물에는 주이상스의 실재를 위한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하도록 언어를 고문해야 한다.” 언어를 고문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식은 시다. 시는 언표의 자유로운 흐름을 리듬과 각운이라는 고정된 형식의 프로크루테스 침대에 억지로 끼워 맞춘다.
이것이 라캉이 하이데거에 맞서 주체라는 문제적 용어를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이데거는 주체를 근대의 기술 지배의 대리인으로 역사화 하며, ‘주체’를 인간-임의 본질을 가리키는 용어인 현존재로 대체해 버렸다. 하이데거가 주체성의 핵심적 차원을 놓쳤다고 비판할 때 라캉은, 하이데거가 인간이 언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의 수동성 자체가 가진 본래적인 의미의 트라우마적 충격을 놓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주체가 존재하는 것은 인간 동물이 언어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라캉적 주체는 고문당한, 훼손된 주체이다.
하이데거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의 명백한 고통을 ‘비본래적인 것’으로 번역해 버린다. 그는 수용소에서는 본래적으로(진정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산업적으로 몰살당할 뿐이라고 암시한다. 그는 정확히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곤경을 주체화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들의 죽음은 집행자들에게는 정말로 산업적인 몰살 과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라캉이 그의 가르침의 마지막 20년 동안 자신을 반철학자로 강조한 것은 하이데거에게는 없는 이것, 상징화(로고스)에 저항하는 ‘주이상스의 실재’ 때문이다. 철학은 존재-론이며, 그것의 기본적인 가정은 ‘사유하는 것과 존재는 동일’ 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를 포함해 철학이 염두에 두고 있던 존재는 항상 언어를 집으로 하는 존재, 언어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존재, 언어에 의해 지평이 열리는 존재였다. 비트켄슈타인이 말했듯,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인 것이다. 라캉은 철학의 이러한 존재-론적 가정에 맞서 비록 완전히 언어 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상징화에 저항하며, 내부에 이질적 핵심으로 남아있으며, 단절, 절단, 간극, 비정합성 또는 불가능성으로 나타나는 어떤 것으로서의 주이상스의 실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라캉은 존재와 로고스 사이의 일치를 받아들이지만 하이데거와 달리 그것을 넘어서 주체와 주이상스 사이의 불가능한 연결에 의해 지시되는 실재의 차원으로 움직인다.
「라캉적 ‘주체’는 상징적인 것 속의 간극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그것의 지위가 실재이다. -발메가 지적하는 대로 환상의 논리에 대한 핵심적인 세미나(1966~7)에서 하이데거와 10년 이상 투쟁해온 후에 라캉이 결국 역설적으로 그리고 전혀 예기치 않게 하이데거로부터 데카르트로, 데카르트적인 코기토로 돌아가 버리고 만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1539」
「주이상스의 실재는 오직 우리가 존재의 영역을 벗어났을 때만 접근될 수 있다. 라캉에게서 코기토는 순수한 사유의 자기투명성으로 환원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코기토가 무의식의 주체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주이상스의 실재가 뚫고 지나가는 존재의 질서 속의 간극 또는 절단면이다. p1539」
라캉은 무의식의 주체로서의 코기토에 대한 사유를 ‘나는 내가 사유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비합리주의적 생철학의 위험을 인식하고, 라캉은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사유한다.’로 나아간다. 사유와 존재의 외견상의 동질성에 나 있는 갈라진 틈을 지적함으로써 이 둘이 겹친다는 환상을 기반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이 라캉의 목표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이 둘이 겹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분명히 부정적인 방식으로다. 라캉은 마침내 데카르트적 코기토의 가장 철저한 0-점을 존재와 사유 사이의 부정적인 교차점으로 파악하게 된다. 내가 사유하지 않으며 그리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소실점으로 말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실체, 물, 어떤 것이 아니며, 나는 존재의 질서 속에 있는 공백으로, 간극으로, 틈새로 환원된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순수한 코기토로서 나는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대립물과 일치하는, 즉 아무 내용도 없으며, 그 자체로는 생각하지 않는 ‘순수한’ 사유로 환원된다.
“오늘날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은 포스트모던한 지구화 또는 그에 대한 반응과 저항의 동역학의 결과이다.” 는 민주주의적 유물론의 새로운 공리다. 민주주의적 유물론은 하나의 무한한 보편적 진리를 격렬하게 거부한다. 그것은 정치에서 겪은 대로 전체주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물 변증법은 하나의 단서를 추가한다. “단, 진리의 급진적-해방적 정치는 예외로 하고.” 물론 이 진리를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 안에서이다. - 언어를 고문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헤겔은 이미 알고 있었듯이 사유할 때 우리는 언어에 맞서 언어 속에서 사유한다.
4. 대안적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나치 연루는 1933년~1934년 겨울 학기의 세미나인 ‘자연, 역사, 그리고 국가의 본질과 개념에 대해’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 시기의 텍스트들은 통상 하이데거의 최악의 부분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지젝은 여기서 이 동일한 텍스트들이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 급진 해방 정치를 향한 방향을 가리키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비록 하이데거 자신은 계속 밀고 나가지 않았지만 지젝은 그 불길한 그림자들 속에서 해방정치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지젝은 하이데거가 나치즘에 빠진 이유는 다름 아니라 바로 그가 그의 기획을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의 기획에 충실하지 못하고 물러섰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1930년대 중반의 하이데거는 미래의 공산주의자였다. 나치와의 연루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의 올바른 일보’ 였다. 하이데거는 단순히 독일의 민족적-반동으로 기각될 수 없다.
하이데거의 출발점은 존재자들과 존재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인민과 국가 사이의 관계로 직접 옮겨 놓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즉 국가는 “인민의 존재의 한 방식이며 존재의 한 종류이다. 인민은 그의 존재가 국가인 존재자이다.”
「인민의 성원들은 자신들의 국가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가지며, 그것을 의지한다. 인민들에게 자신들의 국가는 단지 복리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 그들이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을 무릅쓸 에로스의 대상이다. 국가의 헌법은 단지 합리적 검토와 협상의 문제, 개인들의 복리를 규제하는 사회계약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유된 삶의 비전에 대한 헌신이기도 하다. p1547」
하이데거에게 국가는 홉스와 로크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 국가와는 다르다. 국가는 단순히 사회계약에 의해 개인의 재산을 보호해주는 공권력이 아니다. 국가는 공유된 삶의 비전을 가진, 헌신의 대상이다. 여기서 지배의 문제가 등장한다.
「지배와 따름의 관계는 본래적인 방식에서는 공동의 의지, 공유하는 목표에 대한 헌신에 근거하고 있다. “지도자와 그가 이끄는 사람들이 역사적 운명 속에서 그리고 하나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하나가 되는 곳에서만 진정한 질서는 자란다.” 투쟁에의 결의를 정초하는 이러한 공유된 헌신이 결여되어 있는 곳에서는 지배는 착취로 변하며, 질서는 인민에게 강요되고, 외적으로 강제된다. p1548 」
지배와 따름은 착취와 강요가 아니라 공유된 비전을 위한 헌신이다. 현대의 자유주의 국가들에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현대 자유주의 국가는 인민의 의지를 표현하는 대신 모든 폭력을 독점한 채 개인들의 의지를 제약하는 법의 대리인으로 기능한다.
「공동체의 의지에 대한 의식에 관한 질문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문제이다. 그것은 오직 지도자의 의지와 인민의 의지가 본질적 특징 속에서 인식될 때만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공통적 존재의 기본적 관계를 인민과 지도자의 이러한 현실성을 향해 이끄는 것인데, 여기서 이 둘은 현실 속에서 하나다. 둘은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p1549」
1934년의 이 발언은 하이데거가 나치의 권력 찬탈을 인정한 이유를 너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서 덧붙여야 할 질문은 하이데거의 사상과 나치즘 사이에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하이데거가 정치적으로 너문 순진했을 뿐인가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젝은 여기서 제3의 노선을 제안한다.
「하이데거의 사상과 나치즘 사이에 직접적 관련성을 주장하지도 않고 또 둘을 분리시키는 간극을 강조하지도 말고, 이 간극을 그의 사유 자체의 핵심으로 옮겨 놓은 다음 나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그의 사유의 내재적 실패 또는 비정합성에 의해, 그의 사유 자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부당한’ 비약과 이행에 의해 열리게 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그것이다. 진지한 철학적 분석이라면 어느 것에서나 외적인 비판은 내재적 비판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p1550」
5. 역사성의 비역사적 핵심
죽은 나치 병사의 옷 속에서 칸트가 발견되었다 따위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의지의 자율성이라는 칸트적 윤리는 이미 주어진 도덕 법칙을 인식하고 따르는 윤리가 아니다. 즉 윤리적 행위에서 나는 단지 나의 의무를 따를 뿐만 아니라 나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칸트는 본인의 의지를 국가나 지도자의 의지에 떠미는 것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도덕적 자율성이란 정확히 내가 나의 의무를 확고하게 떠맡으며, 결코 타자의 의지의 도구가 된다는 터무니없는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그가 충분히 ‘주체주의적 결단론자’가 아닌 데 있다. 그의 초기 결단론은 지나칠 정도로 사전에 미리 정해진 운명에 응하는 것과 정반대 것이었다. 철저한 주체주의와 보편주의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단독적 보편성이라는 동일한 입장의 두 측면이다. 이 둘 모두가 대립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인민)의 특수한 운명이다. 바로 여기서 히틀러를 따를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에게서 보편적 이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독일 민족의 구체적인 역사적 운명의 목소리를 인식할 때 말이다. p1571」
하이데거는 기술의 시대에 존재자들과 기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을까? 그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우리가 기술적 대상들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올바로 이용할 경우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나 그것들을 풀어-놓게 되지요.... 저는 기술 세계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부정하는 이러한 태도를 옛날 말로 ‘사물들에 이르는 초연한 내맡김’ 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이데거<동일성과 차이>) p1573」
여기서 하이데거는 최악의, 쿨한 포스트모던적 태도를 보인다. 쿨한 사람은 무관심한 또는 내적으로 거리를 둔 듯한 태도로 모든 것을 하는 것이다.
6. 초연한 내맡김에서 계급투쟁으로
하이데거는 “오직 고국이 팽창적으로 될 때만, 바깥과 상호작용할 때만 - 하나의 국가가 될 때만 인민의 존재의 방식이 된다.” 고 했다. 하이데거에게 플레모스(투쟁, 전쟁)는 분명히 외부의 적과의 다툼이다. 하이데거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플레모스를 지배하는 자들과 그들에게 예속된 자들 사이의 투쟁으로 읽는 독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적 갈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계급투쟁의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존재론적 지위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의 존재 방식은 국가가 아니라 계급투쟁(사회적 적대성)이다.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이런 적대성을 모호하게 할 뿐이다.
여기서, 1934년에 있었던 하이데거의 문제적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공동체의 의지에 대한 의식에 관한 질문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문제이다. 그것은 오직 지도자의 의지와 인민의 의지가 본질적 특징 속에서 인식될 때만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우리의 공통적 존재의 기본적 관계를 인민과 지도자의 이러한 현실성을 향해 이끄는 것인데, 여기서 이 둘은 현실 속에서 하나다. 둘은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p1549」
정치적 참여에 대한 하이데거의 생각은 외부의 적에 대한 공동의 투쟁 속에서 인민과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 사이의 통일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계급투쟁을 정치적 삶을 구성하는 플레모스로 간주한다면 공통의 정치적 의지 문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계급투쟁에서 피억압자들의 집단적 의지를, 계급적 플레모스를 극단까지 밀고 나갈 해방의 의지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이 집단적 의지가 공산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다.
로베스 피에르, 아이티의 흑인 독립운동가 투생 루베르튀르, 존 브라운, 체 게바라 등의 지도자들에게서 전형적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공산주의 혹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그 수단들이 적합한 것, 정당한 것 또는 심지어는 가능한 것으로 공인되기 이전에 아무런 타협 없이 곧바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 고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집단적 행동은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민과 지도자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현실성이 됨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 최근 바디우는 혁명적인 공산주의적 ‘개인숭배’의 복권을 제안한 바 있다. 진리-사건의 실재가 (지도자의) 고유명 -레닌, 스탈린, 모택동, 체게바라- 을 통해 상징적 픽션의 공간 속에 기입되는 것이다. 지도자의 고유명의 숭배는 혁명 과정의 부패를 알리는 신호이기는커녕 그러한 과정에 내재적이다. 이를 다소 조야한 용어로 표현해 보자면, 정치 운동은 대중을 동원하는 고유명의 역할이 없다면 개념적 범주들에 의해 드러나는 존재의 실정적 질서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의 윤곽 자체를 바꾸는 차원은 오직 고유명의 개입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p1581~2」
집단적 의지 자체나 집단적 의지가 지도자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의지를 올바르게 구현하지 못한 개인을 지도자로 잘못 인식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하이데거의 정치를 공산주의적으로 발본화하는 것을 옹호하다가는 의지의 근대적인 전체주의적 결단론이라는 최악의 덫에 빠져 하나의 파시즘적 전체주의를 그것의 좌파적 거울 이미지로 대체하게 되리라”고 바디우 혹은 지젝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젝은, 히틀러가 가진 문제는 정신 나간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가 충분히 폭력적이지 않은 것에 혹은 충분히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모든 행위는 근본적으로 반응이었다. 그의 행동은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유사-혁명의 대규모 장관을 연출함으로써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적 진부함에 대한 반응이었지만 파시즘은 그것에 대한 내속적 부정으로 남아 있었으며, 부르주아 사회의 지평 안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아렌트의 (암묵적으로 하이데거와 정반대되는) 지적은 올바르다. 나치즘의 진짜 문제는 전권을 행사하는 주체주의적·니힐리즘적 교만 쪽으로 ‘너무 많이 나간 것’이 아니라 충분히 나가지 않은 것에, 나치즘의 폭력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경멸하는 질서에 봉사하는 데 머무르고만 무기력한 행위화였던 데 있다... 나치즘은 수많은 경멸의 대상이 된 데카당스한 부르주아적 질서를 효율적으로 흐트러뜨리기는커녕, 독일인들을 만족에의 몰입으로부터 깨어나게 하기는커녕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꿈이었다. p1584~5」
그러므로 하이데거를 나치즘으로부터 구하려면 좀 더 많은 의지와 투쟁 그리고 좀 더 적은 초연한 내맡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