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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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야 겨우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단숨에 읽고 나니 왜 이 책을 그토록 읽기 어려워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번번이 팽개쳤던 책이다. 『자기만의 방』에 대한 어려움은 버지니아 울프 자체에 대한 어려움으로 작용해 나는 2년 전에야 처음으로 울프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댈러웨이 부인』은 처음에는 우려대로 힘들었지만 곧 빨려들 수 있었다. 내친김에 『항해』도 읽었지만, 『자기만의 방』은 그때도 비껴갔다.

 

이번 달 우리 독서회의 주제가 페미니즘이고, 『자기만의 방』이 선정 도서의 하나가 되었다. 두 주간 읽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와 『악어 프로젝트』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는 현란한 이론의 나열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독기가 더해져 지레 질리게 만들었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여성 혐오’에 대항한 주체의 행위가 ‘혐오’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악어 프로젝트』는 프랑스 만화인데,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표현 방식이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모두 일어나는 일이지만 눈앞에 직접적으로 그려놓은 그 그림들은 남들 앞에서 펴놓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 뭔가 꺼림칙했다. 이런 느슨한 의식으로는 페미니즘의 ‘페’자도 꺼내서는 안 되는 걸까?

 

1929년에 출간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물론 같은 여성도 소화하기 어려울 만큼 급진적이고 날카로운 작품은 아니다. 약 90년 전의 작품이니 아무리 보수적인 여성이라 해도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 투사를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1929년에는 어땠을까? 아쉽게도 당대에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울프의 ‘소설’들은 이미 당대에 “혁신적인 기법으로 내면 의식을 섬세하게 그려낸 독창적 작품들”로 평가되었지만, 『자기만의 방』은 ‘가벼운 문학적 한담’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자기만의 방』이 페미니즘 작품의 대표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페미니즘 비평이 등장하면서 부터다. 이후 페미니즘의 발전과 함께 『자기만의 방』은 찬사뿐만 아니라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 책의 위상은 굳건하다. 나처럼 페미니즘에 무지한 여성도 페미니즘하면 『제2의 성』과 더불어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책이니 말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에세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사실 강연문이다. 울프가 대학 강연에서 읽은 두 개의 논문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강연의 주제는 ‘여성과 픽션’ 이다. 언뜻 내용을 짐작하기 쉽지 않은 이 주제를 놓고 울프는 강연 첫머리에 먼저 결론을 던져 버린다.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p10”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사고의 궤적을 여러분 앞에 될 수 있는 대로 충실하고 자유롭게 개진할 것입니다. p11"

 

실제 강연이 있었던 1928년은 세계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이었고, 영국의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을 때였으며, 영국의 기혼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된 것도 약 50년 전의 일이었다. 이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어떤 시련의 역사가 있었을 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울프는 16세기에 여성 셰익스피어는 완전 불가능했다고 단언한다. 울프는 가정을 통해 이 주장을 펼쳐나가는데 그 가정이 아주 흥미롭다. 울프가 셰익스피어의 누이로 가정한 ‘주디스’는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에게 놀랄 만한 재능을 가진 누이, 이를테면 주디스라 불리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를 상상해 보도록 하지요. p72"

 

오빠와 똑같은 재능을 가진 주디스는 몰래 가출해 런던의 극장을 찾아가지만 배우 감독의 아이를 임신하고 자살을 했을 것이라고, 울프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주디스의 이야기는 가정부터 틀렸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한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는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며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 가운데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천재는 영국의 색슨족이나 브리튼족에서 태어난 적이 없으며 오늘날 노동 계층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천재가 어떻게 여성들 가운데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p75~6“

 

남성의 지배 아래,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면에 있어서 여성들은 노예보다 나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성들은 셰익스피어가 받았을 라틴어와 문법원칙, 논리학 등을 배울 수 없었다.

 

17세기 일부 귀족부인들이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은 영국 최초의 여성 작가가 탄생했다. 에이프라 벤(1640~1689)은 여성이 글을 쓰는 것이 단순히 어리석음이나 분열된 마음 때문도 아니고, 돈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18세기에는 수 백 명의 여성들이 번역이나 소설로 용돈을 벌 수 있었다.

 

“그리하여 18세기 말 무렵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데, 내가 만일 역사를 다시 쓴다면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그것을 더 충실하게 묘사하고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p100”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가 등장했다. 하지만 오스틴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은 여성으로서의 제약 때문에 작품 속에 자신의 분노를 드러냄으로써 작품에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오스틴조차도 거실에서 끊임없이 방해를 받으며 작품을 몰래 썼고, 혼자서는 여행을 하지도 못했다.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면, 온갖 잡다한 일과 노동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돈이 있었다면, 샬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에 자신의 분노를 폭발하지 않고 작품을 훨씬 훌륭하게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울프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그 안의 경련과 분노를 주목한다면, 그녀가 결코 그 자신의 재능을 흠 없이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고요히 써야 할 곳에서 분노에 싸여 쓸 것이고, 현명하게 써야 할 곳에서 어리석게 쓸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등장인물에 대해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격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비틀리고 꺾인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p107”

 

울프는 ‘돈’에 대해 지나치게 중요성을 부여한다는 예상되는 비판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위대한 시인들은 모두 부유했다고. 다른 이의 입을 빌려 “시적 재능이 내키는 대로 바람처럼 불어 가서 빈자에게나 부자에게 똑같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의 진실성이 없다.p162” 고 했다.

 

“ ‘요즈음뿐만 아니라 과거 이백 년 동안에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 영국의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위대한 작품을 산출하는 지적 자유로 해방될 희망이 아테네 노예의 아들만큼이나 없는 것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p163“

 

21C인 지금도 여성의 경제적 비 자립은 여성의 가장 큰 굴레이다. 물론 경제적 자립을 한 여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여성의 재능에도 직접적 제한이 가해지는 일은 훨씬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태반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 이혼을 고려하는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경제적 어려움이다. 결혼과 함께 경제활동에서 물러난 여성들이 결혼 전의 일을 되찾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도 두려운 판에 돈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떨까? 떠오르는 분이 있다. ‘밥과 김치’라는 메모로 세간을 가슴 아프게 했던 작가 최고은이다. 스승 김영하는 제자가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여하튼 젊은 여성 작가는 가난 속에서 고독하게 죽었다.

 

가난은 비단 여성에게만 굴레는 아니다. 가난은 남성에게도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만든다. 누구나 다 알고 누구다 다 이야기하듯 가난은 대학생들을 강의실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편의점과 마트, 건설현장에 붙들어 놓는다. 울프가 말하는 ‘여성’이란 비단 생물학적 여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돈과 권력을 쥐거나 그 돈과 권력을 상속받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그런 의미에서 ‘여성’ 이다.

 

물론 가난한 사람은 좋은 시인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분노가 직접 표출된 소설이 나쁜 소설인가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지적인 작가만이 훌륭한 작가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잘 흡수하고 그 위에 무언가를 쌓을 수 있는 사람이 타고난 천재보다 더 깊이 있고 더 광범위하게 사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을까? 우리는 수 천 년에 걸쳐 집적된 지식을 토대로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은 난쟁이가 된 것이 아닌가?

 

남녀가 평등한 시대에 ‘돈과 자기만의 방’은 이제 여성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흑수저 논쟁이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면 노력과 능력 운운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다만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여자 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고 그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가난한 여성은 중첩된 차별 아래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를 푸는 방법은 남성으로부터 무엇을 되찾아와 여성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로부터 잉여를 되찾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 먼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역시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힘든가 보다. 기본 갈등은 성차별이 아니라 계급차별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남성과 여성의 갈등, 여성 혐오와 남성혐오 등은 계급갈등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위험이 다분하다. 가난한 여성과 가난한 남성이 가난한 물적 자산을 놓고 싸운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잃어버린 열쇠는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워 힘들더라도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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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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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 오래전에 한 번 갔던 유럽여행이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강원도이건 강진이건 벚꽃이건 단풍이건 굳이 찾아다니고 싶지 않은 걸 보면 여행이나 구경이 전부 다 시들해 버렸다. 그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은 있다. 이스탄불이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거기에 놓여 있다는 다리를 화면에서 본 순간부터 이스탄불이 머리에 새겨졌다. 다리를 건너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 수 있다는 신비함은, 물론 관념이다. 육지와 육지를 잇는 바다 위의 다리는 많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바다 위를 달릴 수 있는 아주 긴 다리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라는 구분은 인간의 관념일 뿐이다. 이스탄불의 다리 위에 선다 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다리를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다리 위를 달려보고 싶다. 관념은 인간만의 욕망을 부르니까.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16세기 말,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술탄의 명령으로 비밀리에 그림을 그리던 화원들 중 한 명이 살해된다. 오스만제국이라니, 너무 낯설지만, 몇 년 전의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외국인이 본다고 생각하면 대충 감이 잡힐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은 생소해도 1952년생 오르한 파묵이 쓴 이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인문주의가 가져온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욕망이다.

 

원근법을 개발한 유럽의 르네상스 미술은 세계를 인간의 눈이 보는 대로 그린다. 게다가 초상화는 개별적 인간, 인간 주체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오스만제국은 전통에 따라 신의 말씀에 따라, 세계를 신이 보는 대로 그려야 한다. 초상화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의 율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악한 그림이다. 그러나 술탄도 신을 두려워하는 화원도 자신의 초상화를 열렬히 욕망한다. 주체는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 (․․․․) 마치 인간이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우월한 피조물이라도 되는 듯, 인간을 그림의 정중앙에 그려 넣고 그것을 우상처럼 벽에 걸어 놓습니다. 인간이 그 그림자까지 낱낱이 그려져야 할 정도로 중요한 피조물입니까? 어느 골목길에 있는 집들이 인간의 눈이 가진 미천한 지각 능력 탓에 갈수록 작아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세상의 중심에 신이 아니라 인간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 아닙니까? p2권 155”

 

“ (․․․․) 죽은 엘레강스가 입힌 금박과 테두리는 우리가 책의 한 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창문을 통해 온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세상의 중심에, 술탄의 초상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그 순간 자랑스럽게 보았던 나의 초상화가 있었다. 며칠 동안 다시 수정하고, 거울을 보고 또 보고, 속수무책으로 안간힘을 썼지만 아주 조금만 나 자신과 닮게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림은 모든 세상의 중심에 나를 그려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사악한 이유, 즉 나 자신을 실제보다 더 심오하고, 복잡하고, 신비롭게 나타냈기 때문에 나에게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흥분을 느끼게 했다. 나의 세밀화가 형제들이 나의 이 흥분을 보고, 이해하고 나와 공유해 주길 원했다. 나는 술탄이나 왕처럼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기도 했다. 이 상황은 내게 자랑스러움과 수치심을 동시에 주었다. 이 두 감정은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나를 편하게 했다. 나는 이 그림에 있는 나의 새로운 위치로 인해 현기증 나는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 쾌감이 완벽하게 되기 위해서는 유럽 화가들의 기예로 나의 얼굴, 옷의 주름들, 그림자, 뾰루지, 그리고 반점, 턱수염에서 옷감의의 짜임새까지 모든 부분, 모든 색들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림을 보는 옛 친구들의 얼굴에서 일종의 두려움과 경이, 그리고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그 어찌할 수 없는 질투를 보았다. 그들은 머리끝까지 죄를 뒤집어 쓴 사람에게 느끼는 분노에 가득 찬 역겨움과 함께, 두려움과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p2권 328~9“

 

원근법에 대해 화원들은 이런 논쟁을 벌인다. (2권 p284)

 

“세밀화가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신이 본 것을 그리네.”

“그렇지. 하지만 숭고한 신께서도 우리가 보는 것을 보네.”

“신은 물론 우리가 보는 것을 보지. 하지만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 지각하지 않는다네.”

 

그런데 신이 본 세계를, 신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세계는 신에게 어떻게 표상할까?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내린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신이 만든 세계, 물자체를 결코 알 수 없다. 그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독단에 빠진다. 종교가 독단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신을 보았다고 하는 자들도, 신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는 자들도 인간이다. 인간의 지각에 경험된 신은 인간의 방식으로 지각한 신이다. 우리는 인간이 지각한 신이 신 자체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서구 근대의 시작은 신에 대한 믿음에서 신에 대한 앎으로의 이행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성으로 신을 바라보는 것, 신을 요청하는 것, 혹은 신에게 이르는 것, 그 가능성과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근대 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 신은 존재해도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차지한다. 르네상스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로 불리는 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에 원근법과 초상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근본주의가 근대 문명과 충돌하는 것은 세계를 다시 신의 눈으로, 아니 신의 눈이라고 주장하는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서구가 거쳐 온 암흑기가 그들에게 눈부신 빛의 이미지로 부활한 것은 물론 서구 제국주의의 책임이 크지만, 신을 다시 중심에 세우는 것은 인간의 독단을 불러오는 퇴행이 되기 십상이다.

 

 

 

이스탄불은 그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는 도시다. 벤치에 앉아 비잔티움제국 시대의 성소피아 성당과 오스만제국의 블루 모스크를 번갈아 바라볼 수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 유럽과 아시아를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유럽의 역사와 아시아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이스탄불에 르네상스 예술이 일찍이 도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16세기 말, 오스만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시대는 신에게서 인간으로 이행하고 있었고, 터키의 세밀화는 그 전조를 재빨리 포착하며 고뇌하고 있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에 의하면.)  물론 좋은 소설이 그렇듯이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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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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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연을 쫓는 아이』를 읽은 적이 있다. 오래되어 기억도 희미하지만, 읽으면서도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지 잘 몰랐다. 그냥 낯설고 특이한 분위기 정도만 느낌으로 남아있다. 소설에서 역사적 배경이란 대개, 먼 산의 흐릿한 윤곽 같아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그 배경이 우리와 전혀 연관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슬람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같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어제, 오늘에 걸쳐 읽었다. 처음에는 좀 지루했는데 1/3정도가 지나면서 바싹 마음을 졸이며 읽었다. 특히 역사적 사건에 눈을 부릅떴는데, 이번에는 여기가 어디인지 대충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달 우리 독서회의 주제가 이슬람인데, 첫째 주와 두 번째 주는 이슬람의 역사와 IS, 세 번째와 네 번째 주는 소설이 선택되었다.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1965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서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틈틈이 소설을 써서, 2003년 『연을 쫓는 아이』, 2007년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발표했다. 이 소설이 번역된 2007년 현재(원작과 같은 해에 번역되다니!), 난민을 돕기 위한 NGO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15살 무렵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난민생활을 했던 것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자 주인공 역시 비슷한 나이에 아버지뻘 혹은 할아버지뻘 되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의 질곡 속에 던져진다. 아프가니스탄 현대사는 아프가니스탄 민중 전체를 고통 속에 빠뜨렸지만 특히 여성이 겪은 수난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국민의 반이 아무 활동도 할 수 없는 가택 감금 상태’에 놓이는데, 그 반이란 다름 아닌 여성들이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사회가 혼란에 빠질 때 가장 고통 받은 것은 여성이었지만, 이 소설을 보면 그 정도가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가 없을 것이라 생각될 만큼 심각하다.

 

 

 

아프가니스탄은 대충 말해서, 페르시아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8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국가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 결과 현재 인구의 99%가 무슬림이며, 그 중 90% 정도가 수니파로 알려져 있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고, 최다 민족이 42% 정도의 파슈툰인, 다음이 27% 정도의 타지크인 이다. 그 외로 여러 소수민족이 있다. 동서남북으로 여러 국가와 국경을 접해있고, 역사적으로 교역의 요충지인 탓에, 이런 지정학적 위치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 복잡해서 그것을 간추려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도 전근대사는 보는둥 마는둥 넘어가게 된다. 자세히 읽어도 사실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런데 현대사는 조금 유념하여 보아두어야 소설을 따라 가기도 쉽고, 현재의 IS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독립한 것은 18C초이다. 19C부터는 영국의 침략에 점차 시달리게 되었다. 영국의 간섭을 받으며 반식민지 상태에 떨어졌으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부터 완전 독립하여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국왕은 노예제 폐지, 부르카 착용 금지, 여성 교육 등의 개혁을 실행하였지만, 지방의 종교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복잡한 권력 투쟁이 진행되던 중에 1973년, 쿠데타로 왕정이 종식되고 공화제가 수립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의 침공을 받게 된 것은 1978년 4월, 공산주의 정당이 일으킨 ‘샤우르 혁명’에 기인한다.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몇 달 만에 반군 봉기가 일어나 전국적인 내란에 돌입하였다. 반군 단체인 무자헤딘은 지하드에 참여하는 전사를 의미한다. 이 내전 때문에 소련이 정부군을 지원하게 되고, 1년 뒤에는 군대를 파견하여 이른바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1979년 12월에 침공하여 10년 만인 1989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두 철수하였다.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당 정권은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에 무너졌다. 무자헤딘이 공산정권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냉전과 소련붕괴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이 무자헤딘에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부메랑이 되어 미국에 돌아간다. 세계 최대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이슬람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태동되어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통해 성장하였다. 이 반군들에게 전투기술과 무기와 경제적 지원을 한 것이 미국 등의 국가들이다.  오사마 빈 라덴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소설을 보면 많은 아프가니스탄인 젊은이들이 성전을 위해 무자헤딘에 지원하였다. 물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 소설에는 공산주의 정책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1978년 4월 혁명이 일어난 날 밤에 태어난 라일라에게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비록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퇴직 당했지만, 이렇게 말한다. “라일라, 이 나라에서 여자들은 언제나 힘들게 살아왔다.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어쩌면 여자들은 더 자유로워졌는지 몰라. 전보다 더 권리를 누리고 있지.” “아프간 여성으로서는 좋은 때다. 라일라, 너도 그걸 이용할 수 있어.”

 

공산주의 정부는 모든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장려했고 당시 카불 대학의 학생 중 2/3 정도가 여성이었다. 여자들이 법과 의학, 공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시기다. 이후 탈레반 정권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성 권익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것이 무자헤딘에게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여 봉기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여자들이란 공부는 물론 나돌아 다녀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그곳에서는 거리에서 여자를 볼 수 없었다. 여자들은 부르카를 입고 남자가 동반해야만 거리에 나갈 수 있었다. 고대의 부족법에 따라 사는 그 지역 남자들은 여자들을 해방시키고 강제결혼을 폐지하고 여자의 결혼 최소연령을 열여섯 살로 높이려고 하는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법령에 반기를 들었다. 그곳 남자들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자신들의 딸들이 집을 떠나 학교에 다니고 남자들과 함께 일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수백 년이 된 자신들의 전통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이란 파키스탄 인접 지역인 남쪽과 동쪽의 파쉬툰 지역을 의미하는데, 수도인 카불은 이에 비해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다. 그런데 얼만 후 등장하는 탈레반은 ‘그곳’과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성장한 학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정권은 무능하고 부패하고 혼란했으며 소련군의 침공으로 수백만의 아프가니스탄인이 죽었고 또 그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었다.

 

1992년 마침내 무자헤딘이 승리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순조롭지 못했다. 무자헤딘은 분열되어 있었고 곧 내전이 일어났다. 소련이 물러났지만 이제 수도 카불로 군벌들의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 내전을 종식한 것은 젊은 학생들, 즉 탈레반이었다. 1996년에 카불을 장악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웠다. 탈레반 정권은 2001년 9.11이후 미국의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미국이 탈레반을 공격한 것은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 놓고 미국에 인도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은 축출되었던 무자헤딘 군벌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엄청난 전력의 차이로 탈레반 정권은 금방 붕괴되었지만, 괴멸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계속되었으며, 2014년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고 2016년까지 완전 철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9.11 이후 미국은 이라크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각지에서 지금도 소위 ‘테러와의 전쟁’ 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우려되는 것은 소련에 이어 미국과 10년이 넘도록 전쟁을 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또다시 탈레반 세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세력의 침략과 민주화의 실패는 민중들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 같다.

 

탈레반이 내전을 종식시킨 초기에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탈레반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탈레반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임이 드러났다. 탈레반은 전단지를 뿌리며 이렇게 선포했다. “다음은 우리가 집행하고 여러분이 복종해야 하는 법입니다.” 남자들은 수염을 길러야하고 노래와 춤, 카드놀이, 장기, 노름, 연날리기도 금지되었다. 책과 영화, 그림도 금지되고 잉꼬도 키울 수 없었다. 법을 어기면 곤장에서 시작해서 손목과 발목을 자르고, 감옥에 갇히거나 처형되었다. 그러나 더 큰 재앙은 여성이 지켜야 하는 법령이었다. 마리암이 주워 든 전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여자들은 항상 집에 있어야 합니다. 여자들이 이유 없이 거리를 나다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갈 경우에는, 마흐람(남자 친척)이 대동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혼자 다니다가 걸리면 곤장에 처해진 후 귀가시킬 것입니다.

여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을 보여선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갈 때는 부르카를 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하게 맞게 될 것입니다.

화장품은 금지합니다.

장신구는 금지합니다.

멋있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말을 걸지 않으면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들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됩니다.

공공장소에서 웃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적발되면 곤장에 처해질 것입니다.

손톱을 치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적발되면 손가락 하나를 자를 것입니다.

계집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습니다. 여학교는 즉시 폐쇄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밖에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간통을 하다가 적발되면 돌로 쳐 죽일 것입니다.

이를 명심하고 복종하십시오. 알라-우-아크바르. “

 

탈레반은 “인구의 반을 집에 머물게 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두 여자의 이야기다. 두 여자는 한 남자의 두 아내이고, 그 남자는 한 여자의 아버지뻘, 또 다른 여자의 할아버지뻘이 되는 노인이다. 두 여자의 삶은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그대로 투영한다. 늙은 남편에게 채찍으로 맞으며, 무자헤딘과 탈레반의 여성 억압에 짓밟히며, 험난한 시간을 함께 견뎌간다. 라이벌로 만나 친구로, 동지로, 혹은 모녀관계로 발전하는 그들은 서로에게 각성을 일으키며 성장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또 다른 의미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탈레반이 물러갔으나 사회는 여전히 혼란하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 주겠다던 원조는 오지 않고, 재건축이 너무 더디고, 부정부패는 만연하고, 탈레반이 다시 결집하여 돌아와 복수를 할 것이고, 세계는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을 잊을 것이라고.” 그러나 라일라는 이런 시 구절을 읽는다.

 

“요셉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헛간은 장미꽃밭으로 바뀔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고 홍수가 닥치면

노아가 태풍의 눈 속에서 너희들을 안내할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라일라의 마음속에는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가 있기 때문이다. 소련도, 무자헤딘도, 탈레반도 빼앗지 못했던 것, 혹은 바로 그들이 라일라의 마음속에 키워 준 것. 천 개의 찬란한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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