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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연을 쫓는 아이』를 읽은 적이 있다. 오래되어 기억도 희미하지만, 읽으면서도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지 잘 몰랐다. 그냥 낯설고 특이한 분위기 정도만 느낌으로 남아있다. 소설에서 역사적 배경이란 대개, 먼 산의 흐릿한 윤곽 같아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그 배경이 우리와 전혀 연관이 없다고 느껴지는 이슬람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같은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어제, 오늘에 걸쳐 읽었다. 처음에는 좀 지루했는데 1/3정도가 지나면서 바싹 마음을 졸이며 읽었다. 특히 역사적 사건에 눈을 부릅떴는데, 이번에는 여기가 어디인지 대충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달 우리 독서회의 주제가 이슬람인데, 첫째 주와 두 번째 주는 이슬람의 역사와 IS, 세 번째와 네 번째 주는 소설이 선택되었다.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1965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서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틈틈이 소설을 써서, 2003년 『연을 쫓는 아이』, 2007년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발표했다. 이 소설이 번역된 2007년 현재(원작과 같은 해에 번역되다니!), 난민을 돕기 위한 NGO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15살 무렵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난민생활을 했던 것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자 주인공 역시 비슷한 나이에 아버지뻘 혹은 할아버지뻘 되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의 질곡 속에 던져진다. 아프가니스탄 현대사는 아프가니스탄 민중 전체를 고통 속에 빠뜨렸지만 특히 여성이 겪은 수난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국민의 반이 아무 활동도 할 수 없는 가택 감금 상태’에 놓이는데, 그 반이란 다름 아닌 여성들이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사회가 혼란에 빠질 때 가장 고통 받은 것은 여성이었지만, 이 소설을 보면 그 정도가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가 없을 것이라 생각될 만큼 심각하다.
아프가니스탄은 대충 말해서, 페르시아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8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국가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 결과 현재 인구의 99%가 무슬림이며, 그 중 90% 정도가 수니파로 알려져 있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고, 최다 민족이 42% 정도의 파슈툰인, 다음이 27% 정도의 타지크인 이다. 그 외로 여러 소수민족이 있다. 동서남북으로 여러 국가와 국경을 접해있고, 역사적으로 교역의 요충지인 탓에, 이런 지정학적 위치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역사가 복잡해서 그것을 간추려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도 전근대사는 보는둥 마는둥 넘어가게 된다. 자세히 읽어도 사실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런데 현대사는 조금 유념하여 보아두어야 소설을 따라 가기도 쉽고, 현재의 IS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독립한 것은 18C초이다. 19C부터는 영국의 침략에 점차 시달리게 되었다. 영국의 간섭을 받으며 반식민지 상태에 떨어졌으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부터 완전 독립하여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 국왕은 노예제 폐지, 부르카 착용 금지, 여성 교육 등의 개혁을 실행하였지만, 지방의 종교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복잡한 권력 투쟁이 진행되던 중에 1973년, 쿠데타로 왕정이 종식되고 공화제가 수립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의 침공을 받게 된 것은 1978년 4월, 공산주의 정당이 일으킨 ‘샤우르 혁명’에 기인한다.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자 몇 달 만에 반군 봉기가 일어나 전국적인 내란에 돌입하였다. 반군 단체인 무자헤딘은 지하드에 참여하는 전사를 의미한다. 이 내전 때문에 소련이 정부군을 지원하게 되고, 1년 뒤에는 군대를 파견하여 이른바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1979년 12월에 침공하여 10년 만인 1989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두 철수하였다.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당 정권은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에 무너졌다. 무자헤딘이 공산정권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은 냉전과 소련붕괴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이 무자헤딘에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부메랑이 되어 미국에 돌아간다. 세계 최대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이슬람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태동되어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통해 성장하였다. 이 반군들에게 전투기술과 무기와 경제적 지원을 한 것이 미국 등의 국가들이다. 오사마 빈 라덴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소설을 보면 많은 아프가니스탄인 젊은이들이 성전을 위해 무자헤딘에 지원하였다. 물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 소설에는 공산주의 정책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1978년 4월 혁명이 일어난 날 밤에 태어난 라일라에게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비록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퇴직 당했지만, 이렇게 말한다. “라일라, 이 나라에서 여자들은 언제나 힘들게 살아왔다.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어쩌면 여자들은 더 자유로워졌는지 몰라. 전보다 더 권리를 누리고 있지.” “아프간 여성으로서는 좋은 때다. 라일라, 너도 그걸 이용할 수 있어.”
공산주의 정부는 모든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장려했고 당시 카불 대학의 학생 중 2/3 정도가 여성이었다. 여자들이 법과 의학, 공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시기다. 이후 탈레반 정권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성 권익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것이 무자헤딘에게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여 봉기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여자들이란 공부는 물론 나돌아 다녀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그곳에서는 거리에서 여자를 볼 수 없었다. 여자들은 부르카를 입고 남자가 동반해야만 거리에 나갈 수 있었다. 고대의 부족법에 따라 사는 그 지역 남자들은 여자들을 해방시키고 강제결혼을 폐지하고 여자의 결혼 최소연령을 열여섯 살로 높이려고 하는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법령에 반기를 들었다. 그곳 남자들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자신들의 딸들이 집을 떠나 학교에 다니고 남자들과 함께 일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수백 년이 된 자신들의 전통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이란 파키스탄 인접 지역인 남쪽과 동쪽의 파쉬툰 지역을 의미하는데, 수도인 카불은 이에 비해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다. 그런데 얼만 후 등장하는 탈레반은 ‘그곳’과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성장한 학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정권은 무능하고 부패하고 혼란했으며 소련군의 침공으로 수백만의 아프가니스탄인이 죽었고 또 그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여 난민이 되었다.
1992년 마침내 무자헤딘이 승리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순조롭지 못했다. 무자헤딘은 분열되어 있었고 곧 내전이 일어났다. 소련이 물러났지만 이제 수도 카불로 군벌들의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 내전을 종식한 것은 젊은 학생들, 즉 탈레반이었다. 1996년에 카불을 장악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웠다. 탈레반 정권은 2001년 9.11이후 미국의 공격을 받고 무너졌다.
미국이 탈레반을 공격한 것은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 놓고 미국에 인도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은 축출되었던 무자헤딘 군벌들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엄청난 전력의 차이로 탈레반 정권은 금방 붕괴되었지만, 괴멸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2001년부터 2014년까지 계속되었으며, 2014년 미국은 종전을 선언하고 2016년까지 완전 철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9.11 이후 미국은 이라크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각지에서 지금도 소위 ‘테러와의 전쟁’ 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우려되는 것은 소련에 이어 미국과 10년이 넘도록 전쟁을 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또다시 탈레반 세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세력의 침략과 민주화의 실패는 민중들이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 같다.
탈레반이 내전을 종식시킨 초기에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탈레반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탈레반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임이 드러났다. 탈레반은 전단지를 뿌리며 이렇게 선포했다. “다음은 우리가 집행하고 여러분이 복종해야 하는 법입니다.” 남자들은 수염을 길러야하고 노래와 춤, 카드놀이, 장기, 노름, 연날리기도 금지되었다. 책과 영화, 그림도 금지되고 잉꼬도 키울 수 없었다. 법을 어기면 곤장에서 시작해서 손목과 발목을 자르고, 감옥에 갇히거나 처형되었다. 그러나 더 큰 재앙은 여성이 지켜야 하는 법령이었다. 마리암이 주워 든 전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여자들은 항상 집에 있어야 합니다. 여자들이 이유 없이 거리를 나다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밖으로 나갈 경우에는, 마흐람(남자 친척)이 대동해야 합니다. 거리에서 혼자 다니다가 걸리면 곤장에 처해진 후 귀가시킬 것입니다.
여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얼굴을 보여선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갈 때는 부르카를 입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하게 맞게 될 것입니다.
화장품은 금지합니다.
장신구는 금지합니다.
멋있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말을 걸지 않으면 말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들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됩니다.
공공장소에서 웃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적발되면 곤장에 처해질 것입니다.
손톱을 치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적발되면 손가락 하나를 자를 것입니다.
계집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습니다. 여학교는 즉시 폐쇄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밖에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간통을 하다가 적발되면 돌로 쳐 죽일 것입니다.
이를 명심하고 복종하십시오. 알라-우-아크바르. “
탈레반은 “인구의 반을 집에 머물게 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두 여자의 이야기다. 두 여자는 한 남자의 두 아내이고, 그 남자는 한 여자의 아버지뻘, 또 다른 여자의 할아버지뻘이 되는 노인이다. 두 여자의 삶은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를 그대로 투영한다. 늙은 남편에게 채찍으로 맞으며, 무자헤딘과 탈레반의 여성 억압에 짓밟히며, 험난한 시간을 함께 견뎌간다. 라이벌로 만나 친구로, 동지로, 혹은 모녀관계로 발전하는 그들은 서로에게 각성을 일으키며 성장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또 다른 의미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탈레반이 물러갔으나 사회는 여전히 혼란하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 주겠다던 원조는 오지 않고, 재건축이 너무 더디고, 부정부패는 만연하고, 탈레반이 다시 결집하여 돌아와 복수를 할 것이고, 세계는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을 잊을 것이라고.” 그러나 라일라는 이런 시 구절을 읽는다.
“요셉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헛간은 장미꽃밭으로 바뀔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고 홍수가 닥치면
노아가 태풍의 눈 속에서 너희들을 안내할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라일라의 마음속에는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가 있기 때문이다. 소련도, 무자헤딘도, 탈레반도 빼앗지 못했던 것, 혹은 바로 그들이 라일라의 마음속에 키워 준 것. 천 개의 찬란한 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