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간 머리를 끙끙 싸맸던 희랍철학이 끝났습니다.
좀 섭섭하기도 해요. ㅎ
10명이 함께했습니다.
설 연휴로 한 주 걸러서 만났네요.
오늘은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내용 반,
강유원 선생님의 <2012 서양철학> 내용 반,
일케 반반씩 공부한 셈입니다.
강유원 선생님의 강의에는
일반인 대상의 서양 철학사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기독교에 관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수 당시의 기독교와 바울이 정립한 기독교의 차이,
헬레니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이 희랍 사유와 융합하는 과정 등을
여러 강에 걸쳐 알기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서양 철학 나아가 서양 인문학을 이해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익하고 필수적인 강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양적인 모든 것은 기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낯선 사상이라
이번 강의가 아주 좋았습니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 이라 불리는 시기의 희랍철학은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희랍철학이 진리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고 윤리학에 집중한 시기입니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목표로 아타락시아, 아파티아를 강조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전통을 이은 퀴니코스 학파, 퀴레네 학파 등이 있었고,
우리가 세계사에서 헬레니즘 시대 철학으로 배운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등이 있습니다.
퀴니코스와 퀴레네 그리고 스토아와 에피쿠로스라는 두 쌍은
반복적이라고 할만큼 유사해 보입니다.
각 쌍 내의 두 학파는 표면상으로
금욕과 쾌락을 대표하며 대립적인 성격을 보이지만
뿌리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금욕을 통하든 평화로운 쾌락을 통하든 방식은 부차적일 뿐이고
공통된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의 자립과 평정이기 때문입니다.
헬레니즘 시대 철학의 중요성은
희랍적 사유와 기독교 신앙이 융합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바울의 전도로 기독교는
유대교의 지파에서 벗어나 헬레니즘 문화의 전지역으로 확산됩니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 신앙은 필연적으로 희랍 사유로 번역되어야만 했습니다.
단순한 언어의 번역이 아니라 사유방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과정을 강유원 선생님이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아마도 저와 비슷하게
기독교라는 것이 유대교에서 출현하여 바로 로마로 넘어간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나아가는데는
희랍적 사유라는 징검다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희랍적 사유라는 것은 곧 '로고스'에 의한 탐구입니다.
유대교 혹은 나아가 기독교라는 신앙은
인간의 로고스 즉 독립적인 사유를 원죄로 봅니다.
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독립적인 판단으로 지혜의 나무에서 과실을 따먹은 것이 바로 원죄였습니다.
희랍에서 로고스는 인간의 본성이자 최고의 아레테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이성을 적절히 사용하여
학문적 지식(epistēmē)과 더불어 직관적 지식(Noūs)을 획득하여
참된 지혜 (sophos)에 이르는 것입니다.
로고스에 대한 이렇게 상반된 태도는 희랍적 사유와 기독교 신앙의 조화가 매우 힘들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성서 해석에 처음으로 희랍의 사유를 도입한 사람은
기원 전후 시기를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론이었습니다.
희랍 철학자인 필론은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 노력하였으나
신에 대해서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비주의의 길로 들어섭니다.
200년 정도 이후에 등장한 인물은
신플라톤주의를 창시한 이집트 출생의 플로티누스입니다.
신플라톤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맥이 끊긴 희랍의 형이상학을
마지막으로 탐구하였습니다.
플로티누스는 정신계와 현상계로 뚜렷이 구분된 플라톤의 형이상학 체계를
수정하여 단절된 두 세계를 연결하려 하였습니다.
플로티누스는 세계란 The One에서 단계적으로 유출되어 만들어졌다고 보았습니다. The One에서 순차적으로 Noūs와 영혼, 마지막으로 물질이 생성되었습니다. The One과 Noūs는 플라톤의 이데아 즉 정신세계와 같고, 물질은 현상계입니다.
플루티누스에 의하면 이 두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영혼' 입니다. 영혼은 정신인 동시에 물질이라는 두 성질을 갖고있는 제3의 무엇입니다. 기독교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3의 존재 즉 인간인 동시에 신인 예수와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플로티누스의 The One과 기독교의 신은 모두 일자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이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한 것에 반해
The One은 그 자신으로부터 유출된 것으로서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희랍적 사유에는 무無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은 무無없이 창조를 사유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희랍철학은 신플라톤주의로 끝을 맞습니다. 플라톤 이후 명맥을 유지하던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는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폐쇄되었고 희랍 철학 강의도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아카데미아의 마지막 일곱 스승은 망명길을 떠났습니다. 이후에는 기독교 철학이 형이상학의 문제를 사유합니다.
희랍철학은 서양에서 가장 일찍 생겨난 철학입니다. 서양철학이 자신의 근본적인 특성과 방법들을 희랍인들에게서 건네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서양의 모든 철학은 희랍 정신이 열어둔 경로들을 거쳐갑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서구인의 사유 방식들은 본질적으로 희랍인들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주는 기독교 철학입니다.
교부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내용입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제2부 기독교 p 183~208
<2012 서양철학사>
파일 21강 :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본 사상 (1:12분 부터)
파일 22강 & 23강 : 『고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