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두명 모두 모였습니다.

코스모스님 늦게 오셨지만, 출석으로 인정 ^^

3월, 산뜻하게 출발했네요. 꽃샘 바람이 많이 불기는 합니다만.

 

<인문고전강의> 중 '단테의 신곡'으로 철학사 중세를 마무리했습니다.

신의 사랑과 함께 보낸 한달이었습니다.

사랑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흘만에 내리 달리며 보고 있는 드라마 <또, 오해영>도 충만한 사랑의 이야기인데요. 엄청 아름답고 지적으로 나오는 '예쁜 오해영'이 '그냥 오해영'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는 '그냥 오해영'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대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 사랑을 많이 받고 큰 아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저도 '그냥 오해영'의 넘치는 사랑을 보면서 현실의 베아트리체는 저런 모습일까 생각했답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지옥문의 글귀가 가슴에 남을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나의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그 누군가의 지옥인 것이겠지요.

베아트리체가 될 수는 없어도 지옥문은 되지 말자 생각합니다.

 

Through me the way is to the city dolent ;

Through me the way is to eternal dole ;

Through me the way among the people lost.

 

잊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객관화, 자기 초월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 보기 싫은 자기 얼굴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할텐데요. 기도할 신을 만나지 못했으니 혼자라도 용기를 내야할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을 살피기 싫어서 이때까지 내 등 뒤에 놓아두었던 나를 당신은 잡아떼어 내 얼굴 앞에 갖다 세워 놓으셨습니다."

 

단테는 <신곡>, 기쁜 소식을 노래하며 우리에게 천국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째 맘은 아직 지옥에서 헤매고 있네요. ㅎ 역시 짐승같은 시절인 탓일까요. ;;

 

다음주는 다시 'Book dark'로 돌아갑니다.

가치관이 혼재된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은 어떤 길들에서 미래를 보았던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 모습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시절로 들어가봅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p 311 ~ 343

 

<2012 서양철학사>

파일 30, 파일 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열명이 모였습니다.

중세철학,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고대 교부철학까지 합치면 기독교 관련 철학을 3주 공부하였습니다.

이성과 믿음, 철학과 신학의 문제를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비기독교인으로서는 어려운 부분이기도하고, 새로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당치도 않은 이야기,

혹은 반기독교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는지, 뒤늦게 걱정이 됩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니 혹여라도 거슬리셨다면 사과를 드리며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지의 소치라 변명드립니다.

 

마지막에 잠깐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1980년에 쓰인 이 소설은 1986년에 번역판이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몇 번의 수정을 거쳐 현재는 4판이 발매중입니다. 두 번째 개역 때는 우리가 즐겨 듣고 있는 강유원 선생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책에는 중세 철학의 내용이 풍부하게 담겨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장미의 이름'이 보편개념 명칭론(유명론)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저도 지난주에 다시 이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추리소설로서도 여전히 재미있었고,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 본 중세철학자들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에 은근히 기뻤고(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세의 가을'이라 불리는 14세기 기독교 사회의 모습을 머리에 그릴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기원후 1000년은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심판의 날로 예언된 시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14세기 초까지 종말은 오지 않았고 당황한 기독교도들은 예언의 시기를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1000년으로 계산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세계종말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청빈을 앞세우고 종말을 예언하는 이단이 우후죽순 생겨나 사람들을 구름같이 몰고 다니고,  교회는 이들 무리들을 끊임없이 화형대 위에서 불태웠습니다. 유럽 인구의 1/3을 죽인 흑사병은 이단이 그토로 성행했던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점점 약해진 반면 종교재판은 더욱 심해져, 종교를 둘러싼 악순환이 거듭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편개념 명칭론은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보편개념이라 할 수 있는 신 역시 실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한 시대였을까요? 물론 프란체스코 교단이 이끌었던 보편개념 명칭론은 그 상대짝으로서 '의지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신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대상이 아니라, 어떤 합리적인 법칙도 거스를 수 있는 전능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신은 더 이상 로고스가 아니라 초월적, 신비적 존재입니다. 로고스는 이제 온전히 인간의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눈앞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에 몰두합니다. 신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신앙과 이성의 조화는 깨지고, 신앙과 이성은 각자의 길을 가게됩니다. 신학은 계시의 학문이 되고, 철학은 자연과학의 길을 예비합니다. 오캄 이후 신학에서 사변적 신비주의가 유행한 것도 신이 이성으로부터 놓여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성과 신앙의 결별은 신학과 철학 모두에 자유를 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까요?

 

14세기는 역사적으로 르네상스가 발흥한 시기입니다. 중세철학의 마지막은 르네상스로 이어집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도 중세 다음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저희는 여기서 오래 잊고 있었던 『인문고전강의』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단테의 <신곡>은 토미즘 문학의 진수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철학의 마무리는 『인문고전강의』의 신곡편으로 하겠습니다.

 

  절대자와의 만남 : 단테 <신곡>

   p 185 ~ p 258

 

 <인문고전강의> 파일 20090507 ~ 20090528

                       (1시간 짜리 8개 파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아홉명이 모였습니다.

 

중세철학, 첫 시간이었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가 주로 다루는 시기는 9C ~ 14C 정도인데요.

오늘은 개별철학자로는 12세기까지 했습니다만, 이 책은 개요 부분에서

'중세의 중심 주제들' 이라는 제목으로 중세 전반의 핵심 논점들을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중세철학 전체를 개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중심주제는

천지창조, 보편자들, 로고스 입니다.

이 주제들을 놓고 일어난 논쟁 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보편논쟁' 입니다.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립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강유원 선생님은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꾸어서

보편개념 실재론과 보편개념 명칭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보편개념이 어디에 있건 현존한다는 실재론과 보편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물 즉 이름에 불과하다는 명칭론(유명론)의 대립은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어집니다. 이 논쟁의 마지막에 오컴사람 윌리엄이 등장합니다. 오컴의 윌리엄은 움베르트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 주인공인 바스커빌의 윌리엄이 연상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도 '장미는 이름일 뿐' 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입니다. 즉 보편개념 명칭론의 입장에서 서술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장미의 이름』을 읽은 지가 십 수년이 넘어서 상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당시에는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어서 그저 아주아주 재미있는 추리소설로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이상했던 것은 왜 이렇게 어두 침침한 내용에 왜 그렇게 로맨틱한 제목이 붙었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능하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아가야 할 진도는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군요. ㅎ

 

 

다음주는 중세철학의 전성기인 13세기부터 시작합니다. 

대학, 탁발 수도회의 탄생과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가 본격적으로 연구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 스콜라철학은

14세기 유명론의 재등장과 함께 쇠퇴합니다.

스콜라철학이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했다면,

오컴 사람 윌리엄은 신앙과 이성을 분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서 중세철학은 자연과학과 근대철학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놓게 됩니다.

실제로 강유원 선생님은 오컴의 윌리엄을 중세철학에서 다루지 않고 르네상스 이행기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여하튼 13세기와 14세기 철학자를 다루게 되는 다음 시간에는

오늘 개괄 편에서 다룬 보편 논쟁을 다시 한번 공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불참하신 분들도 중세철학 처음부터 꼼꼼이 읽어 오시면 어렵지 않게 따라오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p261 ~ p304  

 

<강유원의 2012 서양 철학사>

파일 25 : 토마스 아퀴나스 부분만 들어도 됩니다. (처음부터 58분까지)

파일 29 : 스콜라 철학 후기 (스코투스, 오캄)

* 파일 26~28은 동양 철학인 송명이학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이나 영화로 <장미의 이름>을 보고 오시면 더욱 좋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랍철학이 끝나고 드디어 기독교 철학에 들어왔습니다.

기독교 철학, 보통은 중세 철학이라고 불리는 이 철학은 크게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으로 나뉩니다. 물론 교부학의 시대는 역사상 중세라기 보다는 고대, 로마제국 말기에 해당합니다.  교부학의 대표자인 아우구스티누스가 4C말~ 5C초까지 살았으니, 로마제국이 말기적 증세를 드러내던 때였습니다.

 

사도시대에 바울을 통하여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기독교는 희랍의 이성과 충돌하는 한편 희랍적 사유로 기독교 신앙을 해석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이단의 도전을 받고, 외부적으로는 이교 특히 마니교에 의해 공격당했습니다. 이러한 공격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옹호하며 교리를 확립해 나갔던 기독교 신부들을 교부라하고, 이들에 의해 확립된 기독교 교리와 사상을 교부학이라고 합니다. 교부학의 목적은 분명히 신앙에 있으나 로마제국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던 이교도 교양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교부들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신앙을 논증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신플라톤주의가 교부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의 저자 훌리안 마리아스는 기독교 사상을 철학과 엄격히 분리하여, 기독교는 종교일뿐 철학이 아니라고 단언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교부철학이 아니라 교부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을듯 한데 문외한 그것도 초보 문외한으로서는 판단할 도리가 없습니다.

 

교부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정점에 도달합니다. 강유원 선생님에 의하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의 결합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지막 고대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불립니다. 최초의 중세인이 아니라 1000년을 훌쩍 뛰어 넘어 근대인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주제는 신과 영혼입니다. "나는 하느님과 영혼을 알기 원한다. 그 이상은 알고 싶은 것이 없는가? 전혀 없다." 고 단언할 정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혼이란 인간의 내면에 실재하는 '내적 인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내면의 발견' 입니다. 서양 사상사에서 최초로 확립된 내면성은 이후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내면에 대한 확신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루터와 데카르트로 이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에는 사도 바울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버지 하느님과 나와의 일대일 대면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신을 받아들여야 함을 설파했습니다. 즉 바울 - 아우구스티누스 - 루터 - 데카르트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바탕을 형성하는 개인주의가 확립되었습니다. 신과의 일대일 독대로 자신을 돌아보는 내면적 사유에서 출발한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근대인의 불안이라는 특성을 낳게 됩니다. 제3의 보증없이 헤아릴 길 없이 크고 심오한 신의 뜻을 단독자로서 이해하여 실천해야할 짐을 지게 된 개인은 자신이 얼마나 신으로부터 멀어져 타락했는지 또 얼마나 신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내면의 발견을 토대로 철학의 역사에 이룩한 커다란 성과는 정신철학과 역사철학입니다.  내적 인간인 영혼은 정신적입니다. 정신적이란 말은 물질적인 것의 반대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는 '자기 안으로 들어서는 능력' 을 가리킵니다. 영혼은 자기 의식을 끝까지 밀고가서 스스로를 하느님 앞에 세웁니다.

 

'자기 의식의 경험에 대한 서술' 이라 할 수 있는 『고백록』이 정신철학의 모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의식의 경험이란 가만히 앉아서 허구를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유원 선생님은  『고백록』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느님의 참된 사랑(dilectio)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목적을 전제로 자신의 삶의 국면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필연적 계기였음을 회고적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쓴 책이다." 

 

자기의식의 경험이란 삶 속의 경험 즉 겪음(pathos, passion)을 사후에 재구성하여 깊이 성찰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 겪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겪음이 내 삶의 어떤 목적에 어떤 계기로 작용했는지를 사유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목적론적 세계관이 작용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목적은 신의 사랑, dilectio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의식의 경험의 학'이란 부제가 붙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정신철학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헤겔 역시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1500년 후의 헤겔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겪음, 즉 수난과 열정의 과정은 bildung, 도야의 과정입니다. 도야란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다스려 바르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라 생소합니다. bildung 을 찾아보면 ,  '철학과 교육이 개인의 태도에 녹아들어 인격적,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를 갈고닦는 독일적 전통을 말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독일에서는 교육의 개념으로 사용되며, bildung에 관한 소설이 교양소설 혹은 성장소설입니다. '돌아온 탕아'가 주제가 되는 각종 성장소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거친 세상에 나아가 겪을 것을 다 겪고 깨침을 얻는 훈련의 과정이 bildung입니다.

 

bildung이 중요한 이유는 이 과정 없이는 인간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천국의 사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신의 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신에게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신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모른채 그냥 누리기만 했을 것입니다. 백치의 행복과 같은 것입니다. 행복을 행복으로 깨닫지 못하는 행복은 참다운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천국에 위험한 나무를 심은 까닭이 바로 pathos를 통한 bildung에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통하여 돌아온 아담의 후예들은 도야의 과정 덕분에 신의 나라의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철학에서는 '부정적이지만 필연적인 계기' 라고 합니다. 신에게 등을 돌려 떠나는 것은 분명 악이지만 그것은 궁극의 선을 위한 필연적 계기로 작용합니다.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도 이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고백록』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8권 7장 16절이었습니다. 8권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metanoia, 회심하는 과정입니다. 'tolle lege, tolle lege'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회심 장면이 결정적이지만 저는 회심 직전의 자기성찰이 더 가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오, 주님, 그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나를 나 자신으로 돌이켜 자기성찰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자신을 살피기 싫어서 이때까지 내 등 뒤에 놓아두었던 나를 당신은 잡아떼어 내 얼굴 앞에 갖다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기 싫어서 나를 피해 어디로 가고 싶었으나 갈 곳은 없었습니다." 

 

신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결정적 순간인 metanoia에는 반드시 선행하는 자기반성, self reflection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대자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반성적 시각없이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반성 없이 원래부터 착하게 사는 것은 평생 천진무구한 아이로 살아가는 것이고, 자기반성 없이 온갖 것들을 겪으며 평생 사는 것은 망나니로 사는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똑 바로 대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내 등 뒤에 놓아두었던 나를' 아직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백록』이 개인의 도야 과정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의 또 다른 대표작 『신국론』은 인류 전체의 도야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백록』이 정신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면, 『신국론』은 역사철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헤겔은 정신철학과 역사철학을 통합하려는 위대한 구상 아래 『정신현상학』을 썼다고 합니다. 

 

 후기가 아주 길어졌습니다. 

『고백록』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책을 모두 읽으려던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 500여쪽의 두꺼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없는 제가 종교적 고전을 이렇게 읽을 수 있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다음주는 제 3부 중세 철학입니다. 

p213 ~ p260까지 먼저 공부하겠습니다.

스콜라철학의 전성기인 13C 이전까지입니다.

13C 스콜라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다음 회차에 따로 하겠습니다.

 

<강유원의 2012 서양 철학사>

파일 24강 입니다.

파일 25강의 보편 논쟁에 대해서도 미리 들어두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10명이 참석했습니다.

한 분이 탈퇴하셔서 총 인원 12명이 되었습니다.

 

 

 

 

 

 

 

 

 

 

 

 

 

 

 

* 주요 내용 발췌

 

고백록 Confessiones

 

1권 1장 1절

 

오, 주님, 당신은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을 받으실 만합니다. 당신의 능력은 심히 크시고 당신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시 145:3) 그러기에 당신의 피조물의 한 부분인 인간이 당신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

 

(……)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in te)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

 

(……) 그러나 당신을 모르고서야 누가 당신을 부르겠습니까? 당신을 알지 못하고 부르는 자는 사실 당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아닌 딴 것을 부르는 것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어떻게 사람들이 당신을 부르며 설교하는 자 없이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 (롬 10:14) (……)

 

2권 6장 14절

 

이처럼 영혼이 당신을 떠나 돌아서서(abs te) 당신 밖에서(extra te)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찾으려 할 때 곧 외도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당신께로 다시 돌아가기까지는(ad te) 그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8권 7장 16절

 

오, 주님, 그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나를 나 자신으로 돌이켜 자기 성찰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자신을 살피기 싫어서 이때까지 내 등 뒤에 놓아두었던 나를 당신은 잡아떼어 내 얼굴 앞에 갖다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기 싫어서 나를 피해 어디로 가고 싶었으나 갈 곳은 없었습니다.

 

8권 12장 29절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통회하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습니다. (……)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tolle lege, tolle lege)는 것이었습니다. (……)

(……) 그 구절의 내용은 “방탕과 술에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읽고 싶지도 않고 또한 더 읽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구절을 읽은 후 즉시 확실성의 빛이 내 마음에 들어와(infusa cordi meo) 의심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주간 머리를 끙끙 싸맸던 희랍철학이 끝났습니다.

좀 섭섭하기도 해요. ㅎ

10명이 함께했습니다.

설 연휴로 한 주 걸러서 만났네요.

 

 

오늘은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내용 반,

강유원 선생님의 <2012 서양철학> 내용 반,

일케 반반씩 공부한 셈입니다. 

 

강유원 선생님의 강의에는

일반인 대상의 서양 철학사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기독교에 관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수 당시의 기독교와 바울이 정립한 기독교의 차이,

헬레니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이 희랍 사유와 융합하는 과정 등을

여러 강에 걸쳐 알기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서양 철학 나아가 서양 인문학을 이해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익하고 필수적인 강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양적인 모든 것은 기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저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낯선 사상이라

이번 강의가 아주 좋았습니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 이라 불리는 시기의 희랍철학은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희랍철학이 진리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고 윤리학에 집중한 시기입니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목표로 아타락시아, 아파티아를 강조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전통을 이은 퀴니코스 학파, 퀴레네 학파 등이 있었고,

우리가 세계사에서 헬레니즘 시대 철학으로 배운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등이 있습니다. 

퀴니코스와 퀴레네 그리고 스토아와 에피쿠로스라는 두 쌍은

반복적이라고 할만큼 유사해 보입니다.  

각 쌍 내의 두 학파는 표면상으로

금욕과 쾌락을 대표하며 대립적인 성격을 보이지만

뿌리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금욕을 통하든 평화로운 쾌락을 통하든 방식은 부차적일 뿐이고 

공통된 목표는 지혜로운 인간의 자립과 평정이기 때문입니다.  

 

 

헬레니즘 시대 철학의 중요성은

희랍적 사유와 기독교 신앙이 융합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바울의 전도로 기독교는

유대교의 지파에서 벗어나 헬레니즘 문화의 전지역으로 확산됩니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 신앙은 필연적으로 희랍 사유로 번역되어야만 했습니다.

단순한 언어의 번역이 아니라 사유방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과정을 강유원 선생님이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아마도 저와 비슷하게

기독교라는 것이 유대교에서 출현하여 바로 로마로 넘어간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나아가는데는

희랍적 사유라는 징검다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희랍적 사유라는 것은 곧 '로고스'에 의한 탐구입니다. 

유대교 혹은 나아가 기독교라는 신앙은 

인간의 로고스 즉 독립적인 사유를 원죄로 봅니다.

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독립적인 판단으로 지혜의 나무에서 과실을 따먹은 것이 바로 원죄였습니다.

희랍에서 로고스는 인간의 본성이자 최고의 아레테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이성을 적절히 사용하여

학문적 지식(epistēmē)과 더불어 직관적 지식(Noūs)을 획득하여

참된 지혜 (sophos)에 이르는 것입니다.  

로고스에 대한 이렇게 상반된 태도는 희랍적 사유와 기독교 신앙의 조화가 매우 힘들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성서 해석에 처음으로 희랍의 사유를 도입한 사람은

기원 전후 시기를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론이었습니다. 

희랍 철학자인 필론은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 노력하였으나

신에 대해서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신비주의의 길로 들어섭니다. 

 

200년 정도 이후에 등장한 인물은

신플라톤주의를 창시한 이집트 출생의 플로티누스입니다.  

신플라톤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맥이 끊긴 희랍의 형이상학을

마지막으로 탐구하였습니다.

 

플로티누스는 정신계와 현상계로 뚜렷이 구분된 플라톤의 형이상학 체계를

수정하여 단절된 두 세계를 연결하려 하였습니다.

플로티누스는 세계란 The One에서 단계적으로 유출되어 만들어졌다고 보았습니다. The One에서 순차적으로 Noūs와 영혼, 마지막으로 물질이 생성되었습니다. The One과 Noūs는 플라톤의 이데아 즉 정신세계와 같고, 물질은 현상계입니다.

플루티누스에 의하면 이 두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영혼' 입니다. 영혼은 정신인 동시에 물질이라는 두 성질을 갖고있는 제3의 무엇입니다. 기독교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3의 존재 즉 인간인 동시에 신인 예수와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플로티누스의 The One과 기독교의 신은 모두 일자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이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한 것에 반해

The One은 그 자신으로부터 유출된 것으로서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희랍적 사유에는 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은 무없이 창조를 사유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희랍철학은 신플라톤주의로 끝을 맞습니다.  플라톤 이후 명맥을 유지하던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는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폐쇄되었고 희랍 철학 강의도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아카데미아의 마지막 일곱 스승은 망명길을 떠났습니다. 이후에는 기독교 철학이 형이상학의 문제를 사유합니다.

 

희랍철학은 서양에서 가장 일찍 생겨난 철학입니다. 서양철학이 자신의 근본적인 특성과 방법들을 희랍인들에게서 건네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서양의 모든 철학은 희랍 정신이 열어둔 경로들을 거쳐갑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서구인의 사유 방식들은 본질적으로 희랍인들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주는 기독교 철학입니다.

교부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내용입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제2부  기독교  p 183~208

 

<2012 서양철학사> 

파일 21강 :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본 사상 (1:12분 부터)

파일 22강 & 23강 : 『고백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