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일곱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임정수립 기념일인 4월 13일에 임시정부를 공부하였습니다. 오늘 이낙연 국무총리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임정수립 기념일을 100주년이 되는 내년부터 4월 11일로 수정하여 기념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재에 쓰인대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과정을 다음과 같이 공부하였습니다. 4월 10일에 임시 의정원이 구성되고, 4월 11일에 임시헌장을 공포하고, 4월 13일에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그런데 1989년 12월에 정부에서 처음으로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지정한 후부터 임정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기념일이 잘못 지정되었다는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4월13일이 아니라 임시헌장과 국호를 제정하고 내각을 구성한 4월 11일이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라는 주장입니다. 그간 연구 용역등을 통한 확인작업 끝에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오늘 이낙연 총리가 임정수립 기념일을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정정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1946년 4월 11일에 거행된 입헌기념식의 임시정부 요인들로, 4월 11일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직후에 출범하였습니다. 3.1운동은 대외적으로는 1차 세계 대전 중에 일어난 러시아혁명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습니다. 3.1운동을 촉발한 대내적 영향은 1917년 상하이의 대동 단결 선언, 1919년 2월 1일 만주 길림성 교포들에 의한 대한 독립 선언, 1919년 동경 유학생들에 의한 2.8독립 선언 등이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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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직후 독립운동을 지도할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각지에 8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조직적인 기반을 갖춘 것은 연해주, 상하이, 한성에서 조직 · 발표된 3개의 임시정부입니다. 임정수립 기념일로 지정된 4월 13일, 내년부터 변경될 4월 11일은 상하이 임시정부가 출범한 날입니다. 1919년 9월 11일에 헌법을 개정(1차개헌)하고 세 곳의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하여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임시정부는 해방이 될때까지 다섯 번의 개헌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임시정부 초기의 위기는 독립 투쟁에 대한 방법론적 차이가 큰 이유를 차지했습니다. 외교론을 대표하는 상하이파와 무장 투쟁론을 주장하는 만주,연해주파의 대립에 이승만의 부적절한 행위가 불을 붙였습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1919년 2월에 국제연맹에 제출한 위임 통치 청원서 사건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925년 이승만은 임시 의정원 의결에 의해 탄핵되었습니다. 2,3차 개헌을 통해 체제를 정비했지만 임시정부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킨 김구는 중국 국민당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1940년 충칭에 정착하여 조직을 강화하였습니다. 1941년에는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1945년에 미국과 함께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후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은 우리민족이 만든 일체의 행정 조직이나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임시정부도 인정받지 못하고 임정요인들은 결국 개인자격으로만 해방된 조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1945년 11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을 앞두고 중국 충칭의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다음주는 1920년대의 독립운동을 공부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1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