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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최후의 날에 관한 대화편이 <파이돈>이다. 철학자의 마지막답게 매우 철학적이다. '철학적'이라는 말에 여러 함의들이 있겠지만, 나같은 일반인에게는 보통 어렵다, 사변적이다 등을 의미한다.  




어려운 <파이돈>을 좀 이해해 보기 위해 『철학 고전 강의』를 뒤졌다. 2016년 출판되었을 때 샀던 책인데, 강유원 선생의 고전 강의 시리즈 중 가장 어렵지만, 철학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꽤 열심히 읽었다. 물론 관심이 이해를 길러주는 것은 아니어서 뭣도 모르고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철학 중에서도 형이상학만을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플라톤의 <파이돈>이다. 플라톤이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키고 있는 라파엘로의 저 유명한 그림,  <아테네 학당> 덕분에, 플라의 철학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지상이 아닌 저 너머의 세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어원이야 어찌 되었건 '너머의 세계' 가 metaphysics, 형이상학이다.  『철학 고전 강의』 의 표제를 수식하는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에서 추측할 수 있듯 저 너머의 세계는 무한자의 세계이다. 유한자는 무한자를 감각할 수 없지만 사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 형이상학을 존재케 하는 것 같다.  보고 듣고 만질 수 없기에 오로지 이성으로만 사유 가능한 세계에 대한 탐색은 원대하지만 진리로 인정 받기가 쉽지는 않다.  이성이 이 세계를 탐색한다 해도 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믿음으로만 열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들에게 형이상학이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일축되는 것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파이돈>도 그렇다. 그냥 읽으면 무슨 소리인가 싶다. 독배를 마시는 날,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감옥 안에서 소크라테스와 나누는 대화가 죽음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럽다.  차마 그를 보내기 힘든 추종자들은 슬픔에 가득 차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마침내 사유로만 추론하던 '너머의 세계'에 직접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푼 듯하다. 


이렇게 하여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며 시작된 대화는 철학과 죽음, 영혼의 불멸성, 형상과 이데아, 기억 상기설 등 플라톤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알려진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전개된다.  


그 과정은 소크라테스가 늘 그랬듯이 변증술을 통한 것이다.  <파이돈>에서 펼쳐지는 논박술과 산파술, 즉 변증술은 사실 내 눈에는 궤변에 가깝다. 현대의 과학적 관점으로는 말도 안 되고, 여지없이 반박될 것이 뻔한 것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개의 논박들이 진실인가 아닌가라기 보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들 즉 그 방법론이 철학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가 아닐까 싶다. 또한 그것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도 중요하다.  


오늘날 지구상의 반 이상의 인구가 믿고 있는 '종교' 역시 비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영혼론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종교인들이 모두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비과학적인 것도 아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종교는 뚜렷한 목적을 제시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세계를 읽는 방식을 제시한다.  사실 최고의 형이상학은 종교가 아닐까. 



『철학 고전 강의』는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파이돈>의 대화에서 읽어 내야 할 의미들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된다.  왜!,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불멸해야 하고, 그 영혼은 형상에 대한 확실한 앎을 가져야 하고, 인간은 그 앎을 기억해내야 하는지, 그 모든 형이상학적 논변의 기저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가 좋음(올바름)위에 단단히 뿌리 내리기를 염원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간절한 신념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1권 116e~117a>


<1권 118a>



우리의 철학자는 영원한 형상의 세계인 이데아로 가뿐하게 날아 올랐지만, 현실 세계의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생을 마감했다. 가장 훌륭하며, 가장 지혜로우며, 가장 정의로운 사람, 소크라테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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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었다면  <크리톤>과 <파이돈>이 궁금하게 마련이다.  사형 확정 이후 독배를 마시기까지 소크라테스가 무엇을 했길래 플라톤은 두 편이나 되는 대화편을 쓴 것일까?



아주 짧기도 하거니와 순서상으로도 먼저 읽어야 할 <크리톤>에 대해 정리해 둔다.  고전 스타디에서도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끝나면 읽기로 계획되어 있다.


나는 '현대 지성' 출판본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희랍어 완역본인데,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 책값은 싼 편이기 때문이다.  박종현 번역을 사지 않은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소위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들'이라는 네 편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조금 더 비싸더라도 선택했을 것이다. 박종현 선생은 플라톤 전공자이고, 대화편을 거의 대부분 번역하고 계신다. 




번역본에 대한  '리브레 위키'의 깔끔한 도표가 있다. 


플라톤 - 리브레 위키 (librewiki.net)




<크리톤>의 내용은 간단하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은 아테나이의 연례 행사 때문에 연기되었다. 델로스로 태양신 아폴론에게 제물을 바치러 간 사절단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신성한 행사에 부정이 탈까봐 이 기간에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이다.  델로스로 갔던 배가 돌아 온다는 소식을 들은 크리톤이 애가 타서 감옥으로 달려 온다.  소크라테스를 설득하여 탈옥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늘 하던 대로 탈옥이 올바른 행위인지 아닌지를 먼저 검토한 후에 그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크리톤은 친구의 논박을 이기지 못하고 탈옥시키기를 포기하게 된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설득하기 위한 전략으로,  소크라테스가 그대로 독배를 마시게 되면 살아 있는 친구들이 시민들로부터 욕을 먹게 될 것이라고 압박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돈 때문에 친구를 버렸다고 자신을 비난할 것이라는 말이다.  당시 아테나이에는 사형 집행을 모면할 수 있는 편법들이 있었고,  이것들은 거의 돈으로 해결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소크라테스의 핵심적인 사상이 등장한다.  다수가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유원 선생의 강독에서도 아테나이 민주정의 타락상을 대중 독재로 설명했다. 민주정은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의 의견이 다수의 것으로 확인되면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는 체제인데, 이때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올바르지는 않다는 것이 민주정의 아킬레스건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에는 당대 소피스트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다. "그 자는 군중들의 갈채와 자신의 어리석고 방종한 혀에 의존했는데 청중에게 재앙을 안겨 줄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었어요." 


다수가 옳다고 믿도록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테나이 민주정을 유린하고 있었고, 그 최대의 증거가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우게 만든 '오래된 소문' 즉 비방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견해를 주장의 근거로 들고 나오는 크리톤에 대해 단호히 반박하며 중요한 것은 현명한 사람들의 올바른 의견이라고 말한다. 



다수에 대한 비판이 끝나자, 소크라테스는 오로지 정의의 관점에서 탈옥에 대해 논박해 보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이 법과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행위임을 밝힌다. 







소크라테스는 그러려고 했으면 얼마든지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재판정에 나가지 않고 돈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고, 재판정에서 배심원들에게 읍소해서 동정에 호소할 수도 있었고,  대안 형량으로 추방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아 들였고, 재판정을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는 마지막 대중 연설의 기회로 삼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짧은 시간에 자신에 대한 오래된 비방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재판관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혹은 하지 않았고,  재판정은 아테나이의 법에 따라 정당하게 판결을 내렸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의 통치 제도와 법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아테나이는 다수 시민의 의견에 따라 채택된 법과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 토대를 무너뜨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법과 제도를 움직이는 시민들의 의식,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정의나 진리와는 무관하게 부와 명성을 좇는 선동가들에 의해 다수 의견이 결정되는 저급한 시민 의식과 그 무지에 대해 질타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 결과가 법이 선고한 사형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민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시스템인 법과 제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존중했다. 그가 법정에 나온 이유도 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공정하게 자신을 변론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그 권리를 충분히 행사했다.  적법한 절차에 따른 판결이기 때문에 결과가 불만족스럽다 해도 승복해야 하는 것이 민주정의 규범이다. 


현대의 민주주의도 그렇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출되었다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가스통을 들고 청와대로 들어 가겠다는 발상은 민주주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법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이런 태도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출처없는 조어를 탄생시킨 배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악법은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  다만 악법 때문에 혹은 악하게 이용당하는 법 때문에 법치라는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크리톤>의 요지라고 볼 수 있다.  


2004년에 헌법재판소가  '악법도 법이다'는 준법을 강조하는 사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교육부에 그 내용을 삭제해 주기를 요청했다고 하니,  요즘 학생들은 이런 오해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읽은 여러 글들에서 공통된 부분은 부끄러움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것이고, 부와 명성에는 그렇게 노고를 다하면서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는 부끄러움은 모두 자신을 향해 있는 부끄러움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권유를 받아들여 다른 폴리스로 달아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평생을 아고라를 누비며 역설한 자신의 말을 배반하는 부끄러운 짓이고, 재판정에 자신을 기소한 비방가들의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부끄러운 짓이다.  그 부끄러움은 타인들에게는 비웃음거리가 된다. 


 <크리톤>의 마지막 대화는 이렇다. 


크리톤 : 소크라테스, 내가 할 말이 없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크리톤, 신이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니 이 길을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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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18강, 총 12강에 걸쳐 <소크라테스의 변론> 본문에 관한 강독은 끝났다.  19강과 20강은 강독을 종합하는 결론인데, 1강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이 강독의 목적은 아테나이 민주정에 비추어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정을 검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마지막 두 강은 민주정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19강 <메넥세노스>편 간략하게 정리 



먼저 19강에서는 플라톤의 또 다른 대화편인 <메넥세노스> 에 나타난 당대 아테나이 민주정에 대한 비판을 소개한다.  처음 들어보는 대화편이라 강의를 들으며 매우 궁금했다. 아주 짧은 대화편이라 도서관에서 빌려와 금방 읽을 수 있었는데, 예상했던 바와는 전혀 달랐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실린 그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추도문을 비판한 내용이라고 들어서 굉장히 풍자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아이러니하거나 하여튼 알레고리 형식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아테나이와 희랍의 역사를 차근차근, 약간 지루하게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강유원 선생이 <메넥세노스>가 페리클레스의 추도 연설을 6가지 면에서 비판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메넥세노스>를 읽으면서 비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19강을 들을 때도 지금 왜 <메넥세노스>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강의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19강을 정리하기 위해 두 번을 더 들었는데, 그제서야 어렴풋이 연결되는 지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히 써보려고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페리클레스의 추도문은 당대 아테나이 민주정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중등학교 세계사에도 페리클레스의 시기를 '민주정의 전성기'로 표현하고, 그 제도로서의 추첨제와 수당제를 강조한다.  누구나 능력만 되고 의사가 있으면 공직을 수행할 수 있고, 그 대가를 국가가 지급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이면에는 제국주의로서의 아테나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해 설명하지만 아테나이가 주변 동맹국들에 행한 이른바 갑질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를 '헬라스의 학교'라고 단언한다.  아테나이인들에게는 자부심 가득한 아름다운 표현으로 들리겠지만, 다른 폴리스들에게는 독선과 오만으로 추종을 강제하는 제국의 선언으로 들린다.  페리클레스가 지은 파르테논 신전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그 비용은 델로스 동맹의 기금으로 충당했다.  공공의 일에 참여하면 지급하는 수당도 동맹들에게 거둬들인 기금을 유용한 측면이 있다.  아테나이의 자랑인 민주정의 이면은 제국주의 즉 협력을 빙자한 압박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내전이다. 아테나이가 주도한 델로스 동맹과 이에 대항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전쟁이다. 전쟁 3년 째에 역병으로 죽는 펠리클레스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이 전쟁은 27년을 끌면서 희랍 세계 전체를 쇠락으로 몰고 갔다. 


전몰 장병에 대한 추도사에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고인의 용기를 칭찬하고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이 전쟁은 공통의 언어와 공통의 역사를 가진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이었다.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선동이다.  



페리클레스의 추도문은 당대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연설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 추도문이 당대 아테나이의 심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면,  오만하고 독선적인 아테나이의 제국주의적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권. 아테나이 대표단과 멜로스 대표단의 대화. 일명 멜로스 회담




페리클레스 사후 이 전쟁은 그나마의 명분도 상실하고 철저히 경제적 이득에 의해 자행되는 약탈 전쟁으로 변질된다.  아테나이인들은 전쟁이 돈과 명성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와 명예가 삶의 행복이라는 시대정신, 쾌락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가장 유명한 내용 중 하나인 멜로스 원정과 이 전쟁의 분기점이 되는 시켈리아 침공이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메넥세노스>는 소크라테스가 페리클레스의 연설문으로 준비되었던 또 다른 연설문을 메넥세노스에게 들려주는 것인데, 또 다른 연설문이 있었다는 설정 자체가 페리클레스의 추도사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는 것이고, 대안 연설문의 판이한 내용이 비판의 구체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고, 그럼에도 페리클레스가 이 연설문이 아니라 그 유명한 연설을 하게 된 것은 당대 아테나이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메넥세노스> 자체는 굳이 함께 읽어 보자고 할 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그냥 국가 기념일에 들을 법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지루한 역사와 신과 선조에 대한 감사일 따름이다.   


그런데 강유원 선생이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 비판한 6가지 중 선조에 대한 찬양이 짧고 신에 대한 언급이 없고, 현재의 아테나이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하다는 것과 그 자부심이 다른 폴리스들을 자극하고 전쟁을 부추긴다는 것을 지적한 부분을 염두에 두고 <메넥세노스>를 떠올려 보면 그 지루한 연설의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실제로는) 플라톤이 새롭게 쓴 추도문은 과거에 대해 오래 기술한다.  신들의 보살핌과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이 오늘의 아테나이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헬라스는 공통된 조상을 가졌고, 공통의 신을 모시고,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며 협력해 왔다.  


페르시아 전쟁에 관해서도 오래 이야기하는데, 페르시아 전쟁이야말로 펠로폰네소스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거대한 이민족의 침략에 대항해 여러 폴리스들이 단합하여  희랍 세계 전체를 구원한 위대한 전쟁이었다.  물론 이 전쟁이 아테나이를 희랍 세계의 최 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만들었지만 아테나이 혼자 이루어낸 승리가 아니라 스파르테를 비롯한 여러 폴리스들과 힘을 합쳐 이루어 내었다는 것에 당대 희랍 세계가 처해 있는 내전의 상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플라톤의 바람은 페리클레스가 내전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동족이 단합하여 영광을 얻었던 페르시아 전쟁을 상기하여 이 전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를 캐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누구나 정치에 참여하고 국가 정책, 전쟁도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한다고 페리클레스는 화려한 언번으로 자랑하지만,  강유원 선생이 말한 것처럼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의 의견이 다수의 것으로 확인되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는 민주정에서 그 의견이 올바름에 근거하지 않고 오로지 쾌락만을 좇을 때 혼란과 파멸로 빠져든다는 것을 플라톤은 <메넥세노스>의 평범한 연설문을 통해 웅변하고 있는 것 같다.  






20강.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민주정 문제 




강의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강유원 선생이 <위기의 시대에 읽는 고전>에서도 강조한 소크라테스와 민주정의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 보자.






소크라테스에 대한 잘못된 속설들이 여러 가지 있다.  "악법도 법이다."가 대표적일 텐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을 반대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스무 번의 강의를 통해 강유원 선생이 힘주어 반박하는 것이 이 속설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민주정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대 아테나이 민주정을 파괴하고 있던 쾌락주의 그리고 대중 독재에 반대한 것이다. 




<메넥세노스> 




그렇다면 <국가, 정체>에서 비판하는 그 민주정은 무엇인가?  플라톤이 제시한 칼리폴리스는 철인이 통치하는 일종의 엘리트 정치가 아닌가? 




<플라톤 아카데미. 이태수. 국가> 




<메넥세노스>에 따르면 아테나이가 민주정으로 부르는 것도 실제로는 최선자 정체다.  속된 말로 똑똑한 놈이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통해 잘난 놈이 지배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잘 통치할 수 있는 인물을 알아보고 선택할 것인가로 고심한다.  그 최선자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민주정이 있고, 귀족정이 있고, 어쩌면 왕정이 있다. 


고대인은 신이 그 잘남을 보증했다고 믿었고,  귀족정은 혈통이 증거임을 인정했고, 민주정은 다수 대중의 선택으로 결정했다. 




<플라톤 아카데미. 이태수. 국가> 




플라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민주정이냐 철인통치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훌륭한 통치자를 기를 것인가 하는 교육에 있었다.  그 탐구가 <국가.정체>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고 그 과정에서 철인통치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플라톤을 민주정의 반대자로 낙인 찍는 근거가 되어 왔다.  




게시글: 찬성이 수반된 최선자 정체 | 정암학당 (jungam.or.kr)




강유원 선생은 <메넥세노스>의 "평등"을 강조하는 부분을 들어 플라톤이 민주정에 반대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국가.정체>의 칼리폴리스도 계급이 나누어져 있지만 그것은 교육 과정에서 능력에 따라 구분된 것이지 혈통에 따라 정해진 것이 아니다. 다만 국가에서 그 역할이 다를 뿐이다. 



<플라톤 아카데미. 이태수. 국가> 




수호자 집단 즉 통치자와 군인은 부도 가족도 만들 수 없다. 오직 생산자만 누릴 수 있다.  국가 통치와 보호 이외의 목적은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쾌락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수호자 집단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공동선을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만이 수호자가 되어 칼리폴리스, 아름다운 국가를 이끌 것이라고 상상한다. 








씁쓸하게도 이런 나라는 현실에 존재하기 힘들겠지만, 플라톤은 그런 국가를 하늘의 本으로라도 세워 두려고 한다.  플라톤의 하늘은 저술이었고, 그 本은 <국가.정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셈이다.  하늘의 별이 있다면 땅 위의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강유원 강독의 마무리를 할 시점에서 조금 멀리 나갔다. 이제 정리하자면 강유원 선생은 우리의 현실을 검토해 보자고 촉구한다.  우리는 칼리폴리스가 아니라 현실의 민주정체인 대한민국에 산다. 


우리의 민주정은 소크라테스-플라톤 시대의 아테나이와 지나칠 정도로 비슷하다.  통치자는 대중의 선출로 권력을 획득하고, 그 과정은 비방과 선동으로 얼룩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정의 대안을 찾지 못하는 한 선거에 의해 훌륭한 통치자를 뽑아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민주정의 수준은 그 구성원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쾌락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국가도 쾌락을 향해 질주할 것이고, 우리가 올바름을 따져 묻는다면 국가도 정의로운 법과 제도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행복이 무엇인지,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의 탁월함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앎은 unknown unknown 인가?  known unknown인가? 를 따져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강독해 주신 강유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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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자신에게 적절한 형벌을 제의 



1차 재판인 유무죄 판결에서 유죄가 결정되자, 형량을 선고하는 2차 재판이 시작된다.  절차상 원고와 피고는 각각 형량을 제안하고, 재판관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형량을 절충한 판결은 불가하다. 



1권 35e~38b가 2차 재판에서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목숨을 건 만용처럼 보이지만, 소크라테스로서는 그의 신념에 비추어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평생을 신에 대한 봉사로 살아온 그에게 합당한 형벌이 무엇이 있겠는가?  참으로 받아 마땅한 것을 제안해야 하는 것이 형량이라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인들이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한 시민들에게 수여하는 국가가 제공하는 식권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연금같은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타협할 줄 모르는 신념은 재판관들을 최악의 선택으로 몰고 간다. 마지막에 소크라테스가 벌금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이것도 거의 조롱이나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가 판결을 사형으로 몰고가는 것은 아테나이 시민들과 함께 검토하고 캐물으며 사는 삶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어차피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Unexamined life is no life" 


강유원 선생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을 반대하지 않았다. 타락한 민주정, 민주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관습들, 욕망에 대해 비판할 뿐이다. 


그런데 민주정이란 정의상 어떤 집단의 의견이 다수의 것으로 확인되면 정책으로 채택되는 체제이다.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다수가 그를 유죄로 보았고, 다수가 그에게 사형을 결정했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공정한 재판이었다. 그런데 왜 이 재판이 세기의 우스꽝스러운 재판,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재판이 되어버린 것일까? 


민주정에서 옮고 그름을 판단하는 '집단의 의견'이 "unexamined" 된 상태로 권리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캐묻는 삶'을 평생의 과업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마고그들에 현혹되어 제대로 캐묻지도 않고, 올바른 앎을 얻지도 못한 상태에서 민주정의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들은 그 자체로 재앙이 된다.  소크라테스를 판결한 재판관들이 소문에 현혹되고 소피스트들에 선동된 바로 그  타락한 민주정의 시민으로, 수천년을 전해오며 어리석은 시민의 전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16강은 35e~38b입니다. 






17강. 최후 진술 




재판은 끝났다. 행정 절차를 밟는 시간 동안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연설을 한다. 강유원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사형쪽에 투표한 사람들에게는 악담을,  벌금형에 투표한 사람들에게는 덕담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했지만, 신은 그 사람들을 악덕과 불의로 심판할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단언은 신명(神明)재판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낸다. 


 


 



소크라테스의 나무람에서 벗어나는 길은 "남들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자신을 가능한 한 훌륭하게 다잡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쉽게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인간은 타인에 대한 강압을 선택해 왔다. 그리고 역사는 그것을 인류의 부끄러움으로 기록한다.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




부끄러움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중심 주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이지만 또한 "무지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알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먹고 제일 먼저 깨달은 것, 제일 먼저 알게 된 것도 부끄러움이었다.  부끄러움은 인간의 조건이다.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창세기 3:4~7)



눈이 열리고 올바름을 분별하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진정 인간이 되었다. 인간의 삶은 에덴 동산이 아니라 추방된 이 고통스럽고 부조리한 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 최초의 인간이고,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한 자기 스스로에 대한 눈뜸과 부끄러움은 인간 제1의 조건이 될 것이다.  



*17강은 38c~41a입니다. 






18강. 최후 진술 계속과 마지막 말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둘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은 것이고 죽은 사람은 그 무엇에 대해서든 그 어떤 감각도 갖고 있지 않거나, 아니면 전해지는 말마따나 어떤 바뀜, 즉 영혼이 이곳에서 딴 곳으로 옮겨 사는 일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40c)


소크라테스는 어느 쪽이 진실이든 어떤 나쁠 것도 없다고 한다. 훌륭한 사람은 살아 있을 때든 삶을 마치고 나서든 신들이, 죽은 이후에 영혼이 있다면, 돌 볼 것이니까.


그런데 이런 영혼의 관념은 당대 아테나이인들에게는 생소했다. 영혼은 육체와 함께 있을 때만 살아 있고, 육체의 소멸과 동시에 그림자처럼 힘을 잃는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것처럼 영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고, 영원불멸하다는 생각은 그에게 새로운 신을 믿는다는 혐의를 둘 만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어서 만나보고 싶은 영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영혼들을 검토하고 탐문하면서 지내는 일이 즐겁고 최대로 좋은 일일 것이라고 할 때는 들뜬 아이 같기도 하다. 


" 팔라메데스와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 그리고 옛날 사람들 가운데 부정의한 심판 때문에 죽은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될 때마다, 나 자신이 겪은 일들과 저분들이 겪은 일들을 견주어 보면서 보내는 삶이 말입니다." (41b) 


부정의한 심판 때문에 죽은 사람으로 아이아스를 들고 있는데, 아이아스는 <일리아스>에 나오는 대표적 영웅으로 오뒷세우스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두고 경쟁하다가 표결에서 패하고 자결한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한 기사를 참고하면 좋겠다.  박경귀원장 고전특강(45) - 트로이 전쟁 영웅 아이아스의 죽음 (mediapen.com)


 






아이아스가 용장이라면 오뒷세우스는 지장이다. 다시 말하면 우직하고 용맹한 아이아스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맨 앞에 나서서 싸웠다면,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를 고안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꾀를 써서 공을 세웠다.  아킬레우스의 아름다운 무구를 갖는 다는 것은 트로이아 전쟁에서 가장 큰 공헌을 세웠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기 때문에 결국 장수들의 투표로 승자를 가리게 된다.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는 화려한 말솜씨로 장수들을 설득하여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차지한다.  


소크라테스가 '부정의한 심판 때문에 죽은'  인물로 아이아스를 꼽은 것은 화려한 언변을 가진 오뒷세우스를 소피스트에,  오뒷세우스의 말빨에 모욕 당한 아이아스를 소크라테스 자신에게 비유했기 때문인 것 같다.  콕 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들 가운데 누가 지혜로운지, 그리고 누가 지혜롭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은 아닌지 하는 것들"을 탐문하고 싶다고 말함으로써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를 은근히 비꼬는 것 같다. 



여기서 강유원 선생이 보는 관점은 조금 다르다. 이 문제는 오뒷세우스냐 아이아스냐를 공정하게 선택하는 데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 다 각각의 주장대로 공헌이 있고 각자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공로를 우위에 놓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아이아스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두 영웅을 화합시켜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 방법은 없는 것인가? 아이아스의 자결은 공동체의 분열이며 막대한 손실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오뒷세우스와 아이아스의 지휘관인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리더십이다.  리더, 특히 민주정에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은 충돌하는 집단들 혹은 사람들 사이에서 설득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다수의 결정이 어느쪽의 의견을 채택하든 반대편도 그 결정에 승복하도록 설득해 내는 것이 훌륭한 지도자의 역할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대중에게 핵심 쟁점을 제시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공정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올바른 민주정을 위해 도입해야 할 새로운 무엇에 대해 고민했다. 강유원 선생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아스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정체.국가>에서 플라톤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최선자 정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 같다.  아가멤논이 지혜로운 철학자였으면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의 갈등을 원만하게 조율했을 것이고, 설혹 오뒷세우스가 투표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아이아스가  흔쾌히 승복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관리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는 아이아스를 매개로 <정체.국가>로 가는 플라톤 사상의 단초가 있다는 말을 강유원 선생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강유원 선생이 고전은 형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강의 앞 부분에서 강조한 바가 있다.  대표적인 형식으로 원환 구조, Ring Composition이 있다.  <변론>도 그렇다.  첫 문장을 다시 읽어 보자. 


"아테네인 여러분, 나를 고발한 사람들로 인해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17a)


'나는 알지 못합니다'로 시작하여,  '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로 끝을 맺는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가 소크라테스 사상의 핵심이라면, 이 원환 구조는 주제를 핵심적으로 드러낸다. 


* 18강은 41a~42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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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강. 신이 지시한 사명들(1)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시기와 비방으로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  이 일을 지시한 것은 신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신의 지시를 전쟁에서 배치된 자리를 지키는 것에 비유한다.  지휘관의 지시를 받아도 죽음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신이 명령하는데 죽음이든 다른 어떤 일이든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마치 예언자의 말과 흡사하다. 그런데 델피 신탁은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고만 했지 소크라테스에게 캐묻고 다니라고는 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캐묻고 다닌 것은 신탁을 검토하기 위해 소크라테스 스스로가 찾아 낸 방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신의 지시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스스로 정립한 사명이 아닐까?


*13강은 28b~29c입니다. 






14강. 신이 지시한 사명들 (2)







소크라테스는, 재판관들이 그가 캐묻는 삶을 그만두면 방면하겠다고 약속한다  해도, 신에게 복종하여 계속해서 캐물으며 다닐 것이라고 단언한다.  처음부터도 그랬지만 이쯤되면 재판에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아예 없다.  강유원 선생은 소크라테스가 이 재판을 신명(神明)재판으로 이끌고 있다고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神에게 판단을 맡기고 자신은 이 재판정을 아테나이 시민에 대한 연설의 장으로 삼는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다.  (혹은 그것들 중 하나다.)  아테나이인들에게 삶의 방식을, 그 근원인 신념의 체계를 바꾸라고 질타한다. 


강유원 선생이 실감나는 비유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내 식으로 바꾸면 이렇다.  형제자매들의 단톡방에서 아파트 매매와 벼락 거지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언니, 클래스e에 '위기의 시대에 읽는 고전' 들어봐.  부와 명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잖아." 라고 톡을 보낸다면?  나는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시기는 모르겠고 비방은 소크라테스가 들었음직한 비방을 듣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고르기아스, 1권 491e~492e>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아테나이는 <고르기아스> 편에 나오는 바와 같이 우리 시대와 매우 닮았다.  무한히 욕망을 쫒고, 현명함과 용기로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탁월함이며 행복이다.  명성과 명예와 재물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쾌락 추구 사회이다. 


이런 아테나이에서 소크라테스는 쫓아버려야 할 성가신 존재이다. 하지만 재판정에 세워야 할 만큼 성가신 존재라는 것은 역으로 소크라테스의 목소리가 그렇게 공허하지만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을 돌보라는 그의 외침에 공명하는 박수 소리도 상당히 있었고, 그것이 아마 쾌락을 탐닉하는 아테나이인들에게 뺨을 후려처진 듯한 분노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아테네인 여러분,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항변을 하고 있는 게 전혀 아닙니다. 어떤 이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즉 여러분이 나에게 유죄 표를 던짐으로 해서 신이 여러분에게 준 선물에 대해 뭔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려고 항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날 죽인다면, 이런 유의 다른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 할 테니까요.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하자면, 그야말로, 마치 크고 혈통 좋지만 큰 덩치 때문에 꽤 굼뜨고, 어떤 등에가 있어서 일깨워 줄 필요가 있는 말과도 같은 국가에 신이 붙여 놓은 그런 사람 말입니다. 신은 나를 바로 그런 사람으로 국가에 붙여 놓은 거라고 난 생각합니다. ( ....)  아마 여러분은 마치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난 사람들처럼 짜증을  내면서 아뉘토스의 말을 따라 나를 탁 때려서 쉽게 죽이고는 나머지 삶을 쿨쿨 자면서 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이 여러분을 걱정하여 다른 누군가를 여러분에게 보내주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 (30d~31a) 



*14강은 29c~31d입니다. 






15강 무죄를 애걸하지 않는 까닭 



소크라테스의 법정 연설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대중 연설이다. 소크라테스는 개인적으로는 누구든 만나서 캐묻고 조언도 하고 돌아 다녔지만, 공적으로는 대중들 앞에 나서지도 않고, 공적인 업무에 종사하지도 않았다. 




<고르기아스. 해설>



<고르기아스>에는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적인 삶이 아테나이인들에게 비웃음을 당했음이 드러나 있다.  구석진 곳에서 젊은이들과 소위 '지혜-사랑'을 하는 것은 어른답지 않으며 매질을 당할 한심한 일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공적인 일을 하지 않은 것은 한마디로 목숨을 보전하여 신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여러분에게든 다른 어떤 다수 대중에게든 진정성 있게 반대하여 많은 불의와 불법이 국가에 생겨나는 것을 막으면서도 목숨을 보전할 사람은 인간들 가운데 아무도 없거든요. 오히려 참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사람은, 잠깐 동안이라도 목숨을 보전하겠다고 한다면, 공적인 삶이 아니라 사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31e~32a)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은, 강유원 선생이 강조하거니와, 소크라테스의 사적인 삶이 개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나이라는 폴리스가 어떻게 하면 정의롭고 올바른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캐묻고 탐색하며 살았고,  마지막 남은 목숨마저 그 봉사를 위해 내던졌다.  소크라테스의 사적인 삶은 지극히 공적인 활동이었던 것이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 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칸트는 이성의 공적 사용과 사적 사용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계몽은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의해 진전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공무원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이성의 사적 사용이다. 업무에 대한 지침과 공무원 법 등의 범위 안에서만 이성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무원도 직업에서 벗어나 공동체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성을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의 직책에 따라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법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고 비판해야만 하는 것이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  계몽을 위해서는 이성의 공적 사용이 항상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성의 사적 사용과 공적 사용이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   요즘에도 공무원에게 영혼이 있어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이 현실이다.  이성의 공적 사용과 사적 사용은 부딪히기 일쑤이다. 


소크라테스가 당면한 문제도 이 딜레마였던 것 같다.  자신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위험해 처했던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면서 아마도 공적인 활동을 계속했다면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사적인 삶'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칸트에게는 '이성의 공적 사용'이고,  '공적인 삶'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성의 사적 사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믿는 바 정의롭고 올바른 공동체를 위해 '이성의 공적 사용'을 평생의 임무로 받아들였고 이를 위해 '사적인 삶'에 몰두했다. 




15강의 제목으로 돌아가서 소크라테스가 무죄를 애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정리해 보자. 


첫째는 아름답지 못한 일이고 소크라테스 자신뿐 아니라 아테나이에도 수치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죽음이 무서워서 동정에 호소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둘째는 재판관에게 사적인 탄원을 해서는 안된다. 재판관은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결과적으로 소크라테스 자신도 재판관도 신에 대해 불경하게 된다.  법에 따라 재판을 하겠다고 신에게 서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테네인 여러분, 내가 아름답지도 정의롭지도 경견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여러분에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 (35d) 



이렇게 1차 재판은 종결되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제목 그대로 변론만 싣고 있기 때문에 재판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별도의 언급은 없다.  1차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기록에 따르면 전체 배심원 500명 중 280대 220으로 유죄가 결정되었다.  



*15강은 31d~35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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