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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사 -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
비토리오 회슬레 지음,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15년 1월
평점 :
13 독일의 재앙에 철학의 공동 책임은 존재하는가? 하이데거, 겔렌, 슈미트 : 결의성과 강력한 제도 그리고 정치의 본질로서 적의 제거
가장 재미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장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별로다. 나치즘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뽑아놓은 저 세 명의 철학자들이 그 철학의 핵심에서 어떻게 나치즘을 추동했는지 선명하지가 않다. 회슬레가 생각하는 독일정신의 정점은 칸트와 헤겔이다. 그 이후의 독일철학은 일종의 퇴보다. 니체와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후설과 하이데거가 있지만, 그들이 분명 철학사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만 위대할 뿐 저마다의 한계에 갇혀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지 20세기로 넘어 올수록 서술 자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장황하게 설명은 많은데 핵심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1장에서, 세부사항과 정확성을 버리고 일반 독자에게 큰 그림을 보여주겠다던 그의 호기로운 말에 비추어, 대중의 입장에서 조금 실망스럽다. (어쩌면 독자로서의 나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13장의 도입부는 시대의 밑그림을 잘 그리고 있다.
독일 정신사를 다루는 사람은 누구나, 어째서 ‘작가와 사상가의 민족’이 그토록 빠르게 이웃 민족들에게 대량 학살자와 그 공범자가 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사회주의의 공포는 바로 바이마르공화국이 성취한 그 문화에 의해 담지 되었던 까닭에 너무도 수수께끼 같다. 매우 많은 최고의 독일 학자와 예술가 그리고 철학자들이 20세기의 처음 30년간을 압도했다. 바로 그것이 이른바 ‘독일 정신’이 국가사회주의의 부상에 기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회피할 수 없도록 만든다. 비록 파시즘이 독일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국가사회주의는 파시즘의 다른 형식과는 아주 판이하다. 악에 대한 철저성과 독일적 특징, 철학적 특징도 그것에 속한다, 과의 연관성을 찾아보는 것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왜 그토록 많은 독일인이 히틀러를 따랐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고자 할 때는 세 가지 차원의 그룹을 구별하는 것이 좋다. 첫 째, 국가사회주의적 절멸 정치를 확신을 가지고 지지한 아주 적은 수의 독일인이다. 둘 째, 대량학살을 긍정하지는 않았지만, 온갖 잔인성을 가질 수도 있는 정권에 기꺼이 권력을 위임하고자 한 커다란 집단이다. 공산주의의 위험을 막아주고, 프랑스에 대해 패배의 빚을 갚아주고, 영국의 헤게모니를 분쇄해 주고, 그리하여 독일을 다시 강력하게 만들어 주길 바라는 소망을 히틀러 정권에 투영한 사람들이다. 셋 째, 히틀러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합법적인 정권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히틀러에 대한 반대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복종한 많은 사람들이다.
이 세 번째 집단은 루터와 칸트의 오랜 독일 전통을 따랐다. 독일 철학에서는 그럴듯한 저항이론이 존재하지 않았다. 두 번째 집단은 슈펭글러나 슈미트처럼 권력 정치에 매혹 당했다. 법치 국가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믿음과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령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계몽주의적 이상의 몰락은 제1차 세계 대전의 극단적 경험과 관계가 있다. 이성의 파괴는 1920년대에 다양한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보편주의적 이상은 니체와 반민주주의적 우파에 의해 서서히 훼손되었다. 윤리학에 대한 폄하도 한 몫을 담당했다. 정치적 좌파에 속하는 논리실증주의의 학설은 윤리학은 단지 주관적일 뿐이라고 역설하며 윤리적 질서에 대한 의무를 약화시켰다. 마르크스주의적 대안도 마찬가지로 매력적이지 못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엇보다 우선 대화에 대한 무능력으로 몰락했다. 첫 번째 집단에 대해 말하자면, 니체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살해를 정당화 했다. 도덕적 냉소주의에 니체의 기여는 컸다. 그는 냉소주의를 지적으로나 문체적으로 품위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한 탈그리스도교를 가속화했다. 전체주의적 권력 국가는 이것이 만들어 낸 의미 공백을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보면 국가사회주의 국가도 엄청난 문명의 붕괴도 니체 없이는 탄생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까?
나치즘과 관련된 철학들은, 도덕적 비겁함과 비열함 그리고 부분적인 지적 기만까지도 위대한 정신적 성취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콘라트 로렌츠와 마르틴 하이데거를 여기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대표작은 미완성 작인 《존재와 시간》 이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첫 눈에 보아 아주 상이한 다섯 가지 경향을 하나의 통일적인 구상 속에 통합한다. 첫째,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새롭게 제기하고자 한다. 존재론에 대한 고백과 더불어 그는 후설의 초월론적 관념론에 반대한다. 둘째, 존재에 대한 접근은 인간적 현존재의 분석에 의해 가능해야 한다. 인간적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시간적이다. 셋째, 현존재의 시간성 이론을 고대 이래로 가사성에 대한 가장 집중적인 대결을 위해 이용한다. 넷째, 시간성으로부터 역사성에로 이어지는 다리를 형성한다. 《존재와 시간》이 마치 하나의 폭탄처럼 여겨진 것은 단지 사유 방향의 이런 독창성 때문만이 아니라 시대 분위기의 영향도 컸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죽음은 아주 현재적인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철학은 문학과 달리 죽음을 무시했다. 시간성과 역사성의 결합은 세계사적 변혁의 증인이라는 시대의 감정에 적합했다. 전적으로 독일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새롭게 조어된 독특한 언어와 결의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세인에 대한 이 책의 반항은 전선 세대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책의 음흉한 점은 양심이나 죄 같은 개념을 고쳐 정의함으로써 전통적인 도덕적 의미를 전복시키고, 무엇을 위한 것이든 결의성이 유일한 관건이라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제시한다는 데 있다. 《존재와 시간》이 단지 존재론의 역사를 파괴하려 했다고 해도 이것은 못지않게 윤리학을 파괴했다.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세계-내-존재 등등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흔하지만 몇 줄 요약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결의성이라는 개념이 눈에 뜨인다. 하이데거는 자기 저서의 윤리학적 핵심을 결의성 개념과 더불어 전개한다. 신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양심 개념을 어떻게 완전히 형식화하고 주관화하는 가는 매우 흥미롭다. 양심은 외치지만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침묵함의 양태로 말한다. 하이데거는 죄와 책임 개념을 재해석하는데, 재해석의 본질은 던져진 존재로서 우리가 자기 자신의 근거는 아니며, 실존적 기투에서 스스로를 불가피하게 몇 가지 가능성에 내맡기는 것에 있다. 하이데거의 결의성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정치적으로 완전히 다르지만 그 공허함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결의성은 오로지 결의로서만 그 자신을 확신한다.” 물론 이것이 필연적으로 국가사회주의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거기로 이어지는 길을 조금도 차단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하이데거의 결의성은 비합리적 확신의 극단화를 초래한다.
하이데거 후기의 작업은 “기술적 세계에 대한 동시적인 긍정과 부정”으로서 “사물에 대한 내맡김”이라는 정적주의적 윤리학으로 특징지어 진다. 하이데거는 기술이 중립적인 것이라는 테제를 비판한다. 기술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는 세계관계의 방식이 현현한다. 하이데거는, 모든 것이 그것에게는 부품이고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인, 근대 기술을 “몰아-세움” 이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기술의 위험은 인간적 본질의 변화에 있다. 그에게 대량 학살의 국가사회주의적 기술이 기계화한 농업과 동일한 본질로 여겨진다. 전회 후에도 하이데거는 도덕적으로 중요한 구별을 확정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범주를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확실히 하이데거는 근세적 주관성과 고삐 풀린 기술에 대한 불편함을 최초로 개념화한 사람들 중 하나다. 비록 처방을 위한 어떤 윤리학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하이데거와 국가사회주의에 관한 훨씬 흥미로운 해석은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3장의 <급진적 지식인들, 혹은 왜 하이데거는 1933년 (비록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올바른 발걸음을 내디딘 걸까> 이다. 지젝은 헤겔과 라캉 이전에 하이데거주의자로 출발했다. 지젝의 핵심은 하이데거가 자신의 철학과는 관계없이 정치적 오류를 저지른 것이거나 처음부터 잘못된 철학을 가졌기 때문에 히틀러를 지지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나치즘 연루는 그의 철학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철학을 끝까지 고수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자신의 철학에서 스스로 한 발짝 물러섬에 의해 접어든 샛길이라는 것이다. 인정하든 아니든 이 책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직접적인 분석이다.
독일의 재앙에 공동 책임이 있다고 보는 두 번째의 철학자는 아르놀트 겔렌(1904~1976)이다. 나에게는 무명이므로 그냥 넘어간다. 세 번째는 카를 슈미트(1888~1985)이다. 슈미트는 넘어갈 수 없는데, 세 사람의 국가사회주의 지식인 가운데 가장 도덕적으로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비열함과 위대한 정신적 성취가 함께할 수 있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꼭 들어맞게도, 슈미트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사상가요, 바이마르 시대의 가장 뛰어난 법철학자였다. 슈미트를 유명하게 만든 책은 《정치신학》과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다. 슈미트는 법학적 개념은 신학적 개념의 변형이라는 설득력 있는 법률사적 테제를 주장한다. 그는 특히 주권개념에 매혹 당했다. 예외 상태에 대해 결단하는 자는 주권을 가질 것이다. 이것은 예외적 상황에서 정치적 제도 및 결단의 이론에 대한 관심과 연결된다. 근거지어지지 않고 근거 지을 수도 없는 결단이 법의 최종적 근거다. 결단에는 거의 신학적인 존엄이 주어진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정치적인 것을 공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향한 경계설정에 의해 정의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보편 국가의 이념이 자기 모순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슈미트는 권력 투쟁을 실질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목적으로 간주하는 정치가를 정당화 한다. 국가의 절대적 주권과 예외 상태, 독재와 전쟁에 대한 그의 매혹은 단지 독일이 전체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아가는 것에 날개를 달아 준 것만이 아니다. 2001년 9.11 이후 슈미트의 이론은 미국에서도 “영감을 불어 넣으며” 작용해 왔다.
14 서유럽의 규범성에 대한 연방공화국의 적응 : 가다머와 두 개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리고 한스 요나스
국가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독일 문화의 특수한 지위도 파괴되었다. 첫째, 비판적 유대계 지식인들을 살해하고 추방함으로써 독일은 지적인 사혈을 체험했다. 대부분 앵글로색슨 나라로 도피한 유대계 지식인들은 그 나라들의 특히 미국의 학문적 발전을 엄청나게 촉진했고, 독일은 오늘날까지도 빌빌대고 있다. 둘째, 독일어 자체가 위축되었다. 종종 학문적 공용어로 독일어를 사용하던 스칸디나비아 나라들, 중부 유럽 그리고 베네룩스 3국이 영어를 사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셋째, 강력한 여파로 인해 특수하게 ‘독일적인’ 철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독일적 정신’ 이라는 것이 금기시 되지 않았을까 싶다.
1950년대는 하이데거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순수하게 철학적인 면에서 하이데거주의가 낳은 부담 중 하나는 철학의 핵심 분과인 인식론과 윤리학을 오랫동안 경시했다는 점이다. 신칸트주의 및 후설의 현상학 전통은 광범위하게 파괴되었고, 가장 재능 있는 하이데거의 제자들도 망명한 상태였고, 논리실증주의는 외국에서 계속 전개되었다. 독일인들이 몰두한 것은 체계적 야심을 억제한 철학사학이었다.
유별난 것은 새로운 철학적 돌파가 해석학과 미학이라는 오랜 독일적 분과에서, 그것도 하이데거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1900~2002) 이다. 예술 작품의 존재론에 대한 분석의 섬세함 및 정신과학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재구성은 그의 대표작인 《진리와 방법. 철학적 해석학의 개요》에 고전적 지위를 보장한다. 그럼에도 올바른 이해를 어떻게 잘못된 이해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설정을 폐기함으로써 정신과학에 혼란을 가중 시켰다. 정신과학의 학문성은 단연코 이 문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십년간의 정신과학에 대한 해체주의적 파괴 전체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해할 때 다르게 이해한다.”는 가다머에 의해 부추겨졌다.
첫 번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막스 호르크하이머(1895~1973)와 테오도르 아도르노(1903~1969)의 《계몽의 변증법》이다. 이 책은 축소된 이성 개념의 개선 행렬을 묘사하는데, 이성은 본질적으로 자기 보존에 봉사하지만 외적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또한 내적 자연도 훼손한다. 그러나 현대의 결정적인 측면을 적절하게 파악하고 있음에도 그 진단에서 세 가지 문제를 드러낸다. 첫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인류의 타락을 서구 문화의 시작에서부터 본다. 이미 신화가 계몽의 산물인 것인데, 이는 계몽이 신화로 전화되는 것을 조장한다. “계몽은 철저해진 신화적 두려움이다.” 그 결과 산업시대의 특수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둘째, 귀족주의적 문화 이해에 근거하여 문화 산업을 대중 기만으로 규정하는데, 이것은 뛰어난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맥락을 교란한다. 문화 산업의 천박성은 나치의 근본적인 악과는 전혀 다른 질서에 속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들의 비판에는 어떠한 명확한 규범적 기초도 결여되어 있다. 뛰어난 도덕적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윤리학적-논리적 근거가 지어지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첫 번째 비판 이론은 이렇게 규범적 기초의 부재로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
이 규범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 위르겐 하버마스(1929~)의 주된 관심사였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프랑크푸르트 동료이자 함께 담론 윤리학을 다듬은 카를-오토 아펠(1922~)과의 공동 작업이다. 두 번째 프랑크푸르트학파도 한 쌍의 친구가 대표하는 셈이다. 현대철학의 대립하는 두 주요 흐름, 즉 과학주의적 논리실증주의와 실존철학이 실제로는 상호 보완적이라는 아펠의 인식은 결정적이다. 이러한 흐름은 둘 다 이성 개념을 기술적-자연과학적 이성으로 축소하고 가치에 오직 주관적 지위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담론윤리학은 합의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환원된다. 한편으로 이웃 간의 혹은 가정 내의 갈등을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은 확실히 옳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 갈등을 오로지 함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는 망상적이다. 아무런 실질적 원리 없이 어떻게 합의를 달성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담론윤리학자들은 그런 원리도 대화에 의해 확증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원리로는 어떤 구체적인 윤리학적 인식도 획득할 수 없다. 담론윤리학은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추정된 다수의 의사로부터 얻어내고, 합의가 최종적인 진리 기준인 까닭에 이러한 것을 더 이상 기회주의로 느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장려된다. 의식사적으로 담론윤리학은 객관적 가치 질서의 사상을 자유 열정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며, 동시에 윤리적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시대에 적합할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말하기 위해 합리적 윤리학의 가능성을 믿으려 하지만, 그 윤리학이 엄격한 구속력을 지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버마스만큼 그토록 몇십 년 동안 사회적 논의를 전 세계적으로 각인해낸 연방공화국의 공적 지식인은 없다. 그는 저널리즘적인 표현 형식을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여기에는 다른 이들의 성과에 대한 핵심을 찌르는 요약, 현대의 문제에 대한 재빠른 적응, 공론장의 통합할 수 없는 입장 사이의 타협 및 동시에 동맹자와 적대자 간의 날카로운 경계 긋기가 속한다. 하버마스는 한편으로는 시대감각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으며, 한편으로는 독일정신의 민주화를 연구하고 그것을 결정적으로 촉진했다. 하버마스와 과거의 위대한 독일 철학자들을 비교하면, 그의 학문은 사회과학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철학적 개념에 대해, 가령 선험적인 것과 후험적인 것의 날카로운 분리에 대한 부정이나 형이상학에 대해 총체적인 거부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에 반해 형이상학은 오늘날 분석철학에서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다.
하버마스의 가장 주요한 저작은 ≪의사소통 행위 이론≫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유일한 타당성 원천은 생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행위다. 근대 체계는 생활 세계의 식민화를 추진할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행위에 함축된 타당성 요구에 대해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의무를 지우고 또 종교적으로 근거지어진 그 오구의 근원적 통일을 분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전자를 부정적으로, 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독일 철학사』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철학자는 나는 처음 들어보는 한스 요나스다. 그가 쓴 《책임의 원리 : 기술 문명을 위한 윤리학의 시도》는 근대 환경철학의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독일을 떠나 영어로 글을 써다가 노년에 모국어로 돌아와 쓴 이 책은 독일에 빠르게 수용되어, 독일을 오늘날 가장 환경 의식적인 산업국가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저자 회슬레는 요나스를 굉장히, 내가 보기에는 현대 독일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긍정 평가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요나스와 관련해 하이데거의 한 제자가 실제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독일 관념론의 자연철학과 칸트의 윤리학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은 고전 독일 철학의 중심적인 이념들을 약 200년의 철학적 발전 이후에도 시대에 적합하게 계속해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론 요나스가 미국인으로서 뉴로셀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독일어로 된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유가 더 이상 독일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역사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멘델스존 이래로 독일 문화의 부상에 그토록 본질적인 기여를 수행한 유럽의 유대인을 광범위하게 말살한 데 따른 형벌을 목격할 수 있다. p410~1
결국은 독일 관념론의 부활 가능성이다. 회슬레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객관적 관념론’의 부흥이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글에서 회슬레의 철학적 태도를 조금 살펴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철학자들에 대한 회슬레의 평가 기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같다.
일반적으로 비토리오 회슬레는 상대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현대의 철학적 상황에서 ‘객관적 관념론’의 부흥을 시도하고, 그로부터 현대의 시급한 과제에 부응하는 실천철학의 가능성을 근거 짓고자 하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객관적 관념론이란 논리적-이념적인 것의 절대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으며, 오로지 그것만을 현실적-절대적인 원리로서 고찰해야 한다는 철학적 견해, 다시 말하면 논리적-이념적인 것이 주관적 관념론에서처럼 한갓 주관적인 사유 원리일 수만은 없고, 이를테면 플라톤적이고 헤겔적인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그 자체의 존재 영역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하며, 나아가 그와 같이 객관적 성격을 지니는 이념적인 것을 동시에 자연과 주관 정신 및 객관 정신 같은 실재적인 존재를 근거 짓는 원리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견해다. p422
15 왜 계속해서 독일 철학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가?
이 물음은 독일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철학이 처한 세계적 환경과 관계가 있다. 학문의 영역에서 분업은 전문화를 강요하고, 전문화는 철학의 이념과 관련해서는 치명적이다. 종교적 동기의 고갈은 철학에서 본질적인 힘의 원천을 빼앗았다. 정치적 이념에 대한 거부 반응은 공적인 지식인에 대한 욕구를 다소 제거했다. 오늘날의 대중철학자들은 텔레비전과 신문의 문예란에, 이를테면 좀 더 광범위한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대중철학의 교양은 학문적 철학이 좀 더 기술적으로 변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분석철학에 의해 촉진된 이런 과정은 부분적으로는 필요한 것이었다. 논리학의 변형에 힘입어 획득한 논증 분석의 정밀함을 경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정밀화가 결코 언제나 유용한 것은 아니며 종종 유해하기도 하다. 그것과 결부된 비용은 좀 더 중요한 철학적 문제에 대한 연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불행한 이원론은 독일 철학에 손해를 끼쳤다. 독일 철학은 좀 더 앵글로색슨적인 분석철학과 좀 더 프랑스적인 대륙철학 사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 철학의 몰락을 그것에로 환원할 수는 없다. 이러한 몰락은 오히려 세계사적 상황과 독일 정신의 종언 그리고 독일 대학들의 특수한 문제와 연관이 있다.
첫째는 언어다. 지구화는 국제적인 공용어를 필요로 하며, 현재 그것은 영어다. 미래에는 중국적 사유의 영향이 점점 더 커질 수 있고, 따라서 독일어의 입지가 더 나아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둘째는 독일 정신이다.
무엇이 독일 철학을 다른 유럽의 전통과 구별시켜주는지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미 중세에 개인의 영혼을 신과 밀접하게 결합하는 이성주의적 종교철학이 나타났다. 권위로부터 아무것도 규정할 수 없는 신의 본질에 관한 숙고는 독일 정신의 가장 웅대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의지주의를 거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신의 이성으로부터, 따라서 선험적으로 세계의 일정한 특징을 이해하고자 시도해야만 했다. 경험주의에 대한 독일의 거부는 라이프니츠에게 있어 신학적 동기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선험주의는 고대의 행복주의와 영국의 도덕 감정의 철학에 대한 대안으로서 칸트의 윤리학을 산출했다. 그리고 새로운 윤리학은 독일인에게 독일의 공무원 국가를 가능케 한 유일무이한 윤리적 진지함뿐만 아니라 비상함 비굴함을 새겨 넣었다. 18세기 유럽에서 세계의 역사성을 발견했을 때, 갱신된 루터교는 소박한 계시 신앙으로부터 인간 문화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신학에로의 목숨을 건 도약을 이루어냈다. 독일 관념론 체계에서 마무리된 그 결과는 철학적으로는 웅대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매우 높은 수준의 역사학적 반성은 19세기 동안 그리스도교를 광범위하게 부식시켰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위기에서 너무도 혐오스러운 세계관으로 응축된 보편적 상대주의로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독일 상대주의의 도전은 후설부터 아펠에 이르기까지 다른 문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근거 짓기 노력을 구상케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 다른 문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개관하는 한 독일 정신의 이러한 본질적 특징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아마도 독일적인 근본성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그 잔여물에서는 심지어 철학적 체계학에 대한 독일적 감각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을 그토록 뚜렷하게 가령 미국과 구별해주었던 철학적 형식의 종교성은 사라져버렸는데, 그 까닭은 아마도 저주받은 12년에 대한 슬픔과 부끄러움이 과거의 정신적 보물을 자기 것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을 위축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p415~6
셋째, 독일 학문 제도의 상태는 좋지 않다. 제도적으로 보면 독일 철학의 위대한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여기서 다룬 저작들은 여전히 철학적 사상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다. 그것이 어디서 이루어지든 철학은 만약 라이프니츠와 칸트 그리고 헤겔의 결정적 이념이 오늘날의 문제의식의 높이로 올라서지 못한다면 현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 작은 입문은 고전의 독해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했다. 저자로서는 (…) 문화의 방주가 저 사상들을 새로운 시작을 하는 구원의 물가로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p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