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좀 재밌는 일 없냐?"
소파에 앉아 다트를 하던 마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서해에 침몰한 보물선이 있다고 사기를 친 뒤 투자금을 끌어들이면 어떨까요?"
아영엄마의 말에 마냐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너무 식상하잖아! 남들이 몇번 써먹은 거구, 영화에도 나왔다! 넌 <목포는 항구다>도 안봤냐? 수니나라, 다트판 좀 높이 들어!"
아영엄마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뭔가 좀 창의적인 의견을 내 보라고. 폭스바겐! 뭐 좀 없어?"
"그, 글쎄요. 인터넷 서점을 접수하는 건..."
폭스바겐은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마냐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해갔다. 재떨이가 날아올까 떨고 있는데, 마냐가 의외의 말을 했다.
"그거 괜찮은 의견이야! 당장 추진해 봐!"
마냐는 씩 웃으며 화살을 던졌다. "이크! 실수다!"
"으아악!!!" 수니나라의 비명이 건물 전체에 메아리쳤다.
"안돼!"
신바드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무슨 일입니까?" 밖에서 대기하던 찌리릿과 지기가 뛰어들어왔다.
신바드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가 꿈을 꿨는데, 거대한 독수리가 내 머리를 쪼는 내용이요. 뭔가 안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소"
찌리릿이 말했다. "안그래도 요즘 마냐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경계를 강화해 만일에 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기가 반박했다. "옛부터 꿈은 반대라고 했습니다. 꿈 때문에 그 난리를 피운다면, 필시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독수리는 재물을 뜻하니, 로또라도 사심이 어떻습니까?"
둘의 말을 들은 신바드는 잠시 머리를 싸잡았다.
"내가 총애하는 두 분의 말이 틀리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소. 일단 좀 기다려 보도록 합시다"
"경의 생각으론 어디가 좋겠니?"
마냐의 질문에 냉열사가 답했다. "교봉은 접수해봤자 별로 건질 게 없고, 그래 스물넷도 외형상의 화려함에 비해 내실이 없습니다. 역시 뭘로 보나 알라딘이..."
아영엄마와 몸에 붕대를 감은 수니나라도 그 말에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거기가 책도 많고, 듣자하니 요즘은 화장품도 판답니다"
마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애들을 모아라. 사흘 후 출격이다!"
"누구냐!"
새벽 두시. 보초를 서던 복돌이가 수상한 그림자를 불러세웠다.
"어, 복돌이. 나 지기여. 신바드님이 비밀 특명을 내려서 말이야"
복돌이가 특유의 꺼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 들은 적이 없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네" 지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갔다. "전달이 안됐으면..."
순간 지기의 주먹이 복돌이의 복부를 강타했다. "지금 알아들으면 되지!"
복돌이는 큰대 자로 뻗어 버렸고, 지기는 복돌이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빼냈다. "여기는 지기. 어서 와라!"
"와와---"
난데없는 함성 소리에 신바드는 잠에서 깨어났다. "지기! 무슨 일인가?"
지기 대신 찌리릿이 달려왔다.
"큰일났습니다. 마냐 일당이 쳐들어온 것 같습니다"
"무엇이? 지기는 어디 갔느냐?"
찌리릿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게, 적과 내통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바드는 황망했다.
"일단 몸을 피하시는 게..."
찌리릿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적이 들이닥쳤다. 마냐가 외쳤다. "저기 신바드가 있다! 연보라빛 옷을 입은 놈이 신바드다! 잡아오는 자에겐 상품권을 주마!"
신바드는 달아나며 연보라빛 상의를 벗었다.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수염 긴 놈이 신바드다! 잡아라!"
신바드는 수염을 잡아뜯었다. 오랜 기간 고이 길러온 수염이라 그런지, 아니면 잡아뜯는 게 너무 아파서 그랬는지, 신바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다시금 소리가 들렸다.
"몸뻬 입은 놈이 신바드다! 잡아오는 자에겐 상품권을..."
신바드는 달리면서 잠옷으로 입던 몸뻬를 벗었다. 다시금 소리가 들렸다. "밤색 팬티 입은 자가 신바드다!"
더 이상 벗을 게 없었기에 신바드는 그 자리에 서버렸다. 5초도 안되어 마냐의 부하들이 그를 결박했고, 신바드는 마냐 앞으로 끌려나갔다. 마냐 옆에 지기의 모습이 보였다.
"지기! 니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기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넌 늘 나보다 찌리릿을 더 이뻐했잖아!"
화가 난 신바드는 침을 가득 뭉쳐 지기에게 뱉었다. "퉤!"
지기는 잽싸게 허리를 굽혔고, 침은 그 뒤에 서있던 수니나라의 얼굴에 명중했다.
"으윽!" 수니나라의 비명 소리가 방안 가득히 울렸다.
마냐는 신바드의 팔을 뒤로 꺾고 물었다. "알라딘을 내놓겠느냐?"
마냐의 협박에 신바드는 알라딘에 관한 모든 권리를 양도하는 각서에 서명했다. 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매주 화요일 발표되는 이주의 마이리뷰를 클릭한 kimji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이름이 빠져서가 아니었고, 당선자들의 이름이 낯설어서도 아니었다. 맨 먼저 올라온 마냐의 서평은 다음과 같았다.
[제목: 성에
내용: 어릴 쩍 냉장고 광고를 할 떼 "성에가 업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냉장고 얘긴 줄 알았는데, 주인공 이름이다. 아, x 팔려!]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던 주간 마이리뷰에 이런 글이 오르다니. kimji는 두 번째 당선작을 확인했다.
[작성자: 폭스바겐
제목: 폭소, 권지예 저
내용: 아주 웃긴줄 아랐는대 넘 어렵다. 그리고 리뷰가 뭔지 모르겠다. 알러비유와 관계가 있는건가? 이름 바꿀까보다. 폭소바겐으로!]
리뷰를 읽던 kimji의 손이 떨려왔다. 다른 리뷰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자몽상자, 카이레, 바람구두 등 단골수상자들이 모두 배제된 것도 이상했다. "뭔가 있어!"
다른 알라디너들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주의 리뷰 결과에 대해 의문을 품는 글은 곧바로 삭제되었고, 곧바로 일주간 글을 쓸 수 없다는 통보가 날라왔다. '마냐님'을 주제로 삼행시를 짓는 이벤트가 벌어진 것도 이상했다. panda78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3행시를 지었다.
[마: 마냐님
냐: '냐'가 너무 어려워도
님: 님 곁에 있고파!]
한달간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앤티크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페이퍼도 별로 올라오지 않았고, 올라온 글들도 내용이 이상했다.
[제목: 마냐의 탄생
작성자: 매너리스트
...마냐가 태어날 때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수술을 해도 다시금 날개가 돋았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진 앤티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느림님, 가을산님, 오즈마님, 다들 뭐하세요? 그리고, 왜 페이퍼가 다들 마냐님을 찬양하는 것밖에 없죠? 왜 이렇게 된거죠?]
한시간 후 전달된 메일을 읽고 앤티크는 기절할 뻔했다. "귀하의 회원 자격이 박탈되었습니다"
알라딘은 유료화로 전환되었다. 가입자에게 월회비를 받고, 서재활동을 하는 모든 이에게 서재 관리비를 받았다. 경제적 이유로 알라딘을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알라디너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알라딘을 너무 사랑했으니까. 대신 그들은 파란여우를 중심으로 반체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그리 순탄치 않았다.
마냐가 반체제 사람들과 '알라디너와의 대화'를 시도했을 때, 신중론을 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가을산도 그중 하나였다.
"마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섣불리 응해선 안됩니다"
갈대가 반박했다. "이런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대항할 명분을 잃게 됩니다. 이 만남을 알라딘이 제자리를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둘의 의견을 들은 파란여우는 결국 갈대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가을산이 옳았다. '대화'는 속임수였고, 회의장에 모인 파란여우 일행은 그대로 사로잡히고 말았다. 반체제 활동은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진우맘과 검은비는 지하 커피숍에서 몰래 만났다.
진우맘: 이대로 알라딘이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없소.
검은비: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진우맘; 아니오. 알라딘을 위기에서 구할 사람이 하나 있소
검은비: 누구요, 그 사람이?
진우맘: 플라시보를 기억하십니까?
검은비: (눈이 커지며) 플라시보라면... 몇 년 전 산발하고 산으로 들어간 그사람?
진우맘: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소. 한때 최고인기 서재의 주인이었던 그는 마태우스에게 즐겨찾는 서재 숫자가 역전당한 뒤 충격을 받고 속세를 떠났죠. 그의 내공이라면 알라딘을 구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오.
둘은 계룡산으로 떠났다. 보름을 헤맨 끝에 동굴에서 칩거 중인 플라시보를 만났다. 플라시보는 냉담했다.
"난 이미 알라딘을 떠난 몸이오.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소"
진우맘이 눈물로 호소했지만, 플라시보는 완강했다. 참다못한 검은비가 나섰다.
"당신이 서재를 떠난 것은 속좁은 행동이었습니다. 서재의 취지는 경쟁이 아니라, 나눔에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기쁨을 같이 나눔으로써 몇배가 되게 하고, 슬픔을 나눠 반으로 줄이는 것, 그게 우리 서재의 취지가 아니었나요? 서재 순위? 그런 게 뭐가 중요합니까? 1위 자리를 빼앗겼다는 게 당신의 글을 좋아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갈 이유가 되나요?"
검은비의 말을 듣던 진우맘은 속으로 뜨끔했다. 자신도 늘 즐겨찾기 숫자에 연연하고, 서재 순위가 오르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묵묵히 경청하던 플라시보는 잠시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진우맘은 검은비의 손을 잡았다.
"당신의 말을 듣고 느낀 게 있어요. 하루 방문객을 매일 체크해 표로 만드는 등, 저도 순위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았거든요. 흐흑"
검은비가 그를 껴안았다. "울지 마세요. 누구나 다 그럴 때가 있는 법이죠"
두시간이 지난 후, 플라시보가 초췌한 표정으로 나왔다. 진우맘이 물었다.
"결정은 내리셨나요?"
플라시보가 고개를 저었다. "결정은 무슨 결정이오. 난 지금 변을 보고 왔을 뿐이오. 요즘 변비가 심해서..."
낙담한 진우맘에게 플라시보가 웃으며 다가갔다.
"한번 알라디너는 영원한 알라디너요. 알라딘을 떠난 후 난 한번도 알라딘을 잊은 적이 없소. 다시금 복귀하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소. 내게 찾아와 줘서 고맙소"
검은비와 진우맘은 뛸 듯이 기뻐했다.
"혹시...마냐 일행을 물리칠 방도가 있으신지요?"
플라시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라딘 요새는 험준한 지형에 자리잡고 있어 보통 방법으로는 뚫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그가 덧붙였다. "마태우스, 마립간, 마냐, 이 셋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그날부터 엄청난 공사가 벌어졌다. 로렌초의 시종, 연우남친, 조선남자, 너굴, smila 등 기골이 장대하고 힘을 좀 쓰는 알라디너라면 모조리 동원되었다. 책읽는나무에 실론티를 붓고 소금을 치면 엄청난 강도의 나무가 만들어진다. 그 나무에다 브라질에서 공수된 호밀을 첨가하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는 sweetmagic이 되는 것이다. 설계도에 따라 구조물은 점차 모양을 갖춰 나갔다.
알라딘 성에서 하품을 하던 마냐의 눈에 엄청난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저건 말이 아니냐?"
알라딘 성의 문앞에 나무로 된 말이 한 마리 놓여 있었다. 말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마냐는 부하들을 시켜 당장 말을 끌고 오도록 했다. 냉열사가 반대했다.
"안됩니다. 저건 적의 계략일지도 모릅니다"
마냐는 코웃음을 쳤다. "계략? 그게 계략이라고 해도, 저깟 말한마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이냐? 여러말 할 것 없다. 당장 가져와라!"
냉열사가 계속 버티자, 마냐는 주머니에서 다트 화살을 꺼내 그에게 던졌다. 냉열사는 몸을 날려 피했고, 화살은 뒤에서 꾸벅꾸벅 졸던 수니나라에게로 날라갔다.
"으악!" 뛰어난 미모로 샤론스톤이라 불리던 수니나라의 비명 소리가 멀리 울려퍼졌다.
그 광경에 놀란 부하들은 잽싸게 말을 끌고 왔다. 마냐는 말을 둘러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선정을 편 덕에 신이 이런 선물을 주시는구나"
마냐는 말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오! 이것은 sweetmagic이 아닌가! 가히 보물이로다"
기분이 좋아진 마냐는 그날밤 잔치를 벌였다. 아영엄마, 수니나라, 폭스바겐은 물론 마냐도 크게 취했다.
"이때다!"
목마의 배가 열리면서, 플라시보가 뛰어내렸다. 뒤이어 앤티크, 연보라빛우주-연우남친 커플, 너굴, 조선남자가 내려왔다.
"쿵! 윽!" 진우맘이 뛰어내리다 자빠졌다. "에이, 난 역시 운동신경이 없나봐!"
앉아서 우는 진우맘을 뒤로하고, 일행은 알라딘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다들 술에 취해 있던터라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누, 누구냐?" 마냐가 혀꼬부라진 목소리를 냈다.
"난 정의의 사자 검은비다! 알라딘을 농단한 죄로 체포하겠다!"
검은비는 마냐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손을 결박당하면서 마냐가 투덜댔다.
"우쒸, 묶기만 하면 되지 머리는 왜때려?"
감옥에 갇혔던 파란여우와 가을산, 갈대는 일행과 감격적인 포옹을 했다. 화장실 구석에 숨어있던 냉열사가 붙잡히면서 알라딘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연단에 선 플라시보가 일장 연설을 했다.
"우리는 다시 알라딘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이 공간을 알라디너들의 사랑과 꿈이 넘치는 곳으로 다시 가꿉시다! 알라딘의 탄압에 못이겨 교봉이나 그래스물넷으로 간 분들, 다시 돌아와 주십시오! 그래서 새로운 알라딘을 다시 만드는 데 협력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알라딘은 다시금 제 모습을 되찾았다. 5월 16일에 발표된 이주의 마이리뷰에는 자몽상자, 카이레, 바람구두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사람들은 페이퍼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눴다(연우남친은 우주와 마태우스에 의해 공유되었다, 이 말 쓸래다 안하기로 했습니다. 보복이 두려워서...히히).
"검은비! 뭐하니?"
진우맘이 검은비의 서재에 들어왔을 때, 검은비는 자고 있었다.
"피곤한가보다...엉, 이건?"
검은비는 일기를 쓰다 잠들어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진우맘은 쓰다만 일기를 훔쳐보았다.
[5월 17일 오늘도 방문객 100명을 못넘었다. 즐겨찾기는 155명에서 오히려 줄었다. 그래도 진우맘보다 세명 많으니,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인기, 인기를 끌기 위해서 머리를 쓰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젠 별수 없다. 내일부터 야한 이야기를 연재하는 수밖에....]
* 머리속에서 이야기가 완성된 건 지난 목요일이었는데요, 그간 밤마다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올리니, 소설의 질이 어떻든간에 시원해 죽겠습니다. 이 후련함은, 십오일간 참던 변을 본 것과 비슷하겠지요^^ 역할이 맘에 안들더라도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특히 수니나라님! 마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