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소위 말하는 '죽음의 주'였다. 하루도 술을 쉴 틈이 없는 강행군의 연속, 내 휴대폰의 스케줄란에는 일정이 있음을 알리는 빨간 테두리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스케줄을 하나하나 지워가다보니 벌써 금요일, 이젠 사흘만 더 마시면 된다.

어제도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 집에 온 시각이 대충 두시쯤인데, 평소같으면 그냥 잤겠지만 난 어제 올린 알라딘 뉴스레터의 코멘트가 궁금해-대작을 쓰고나면 자주 그런다....-컴퓨터를 켰다. 코멘트를 읽고 습관처럼 다른 사람 서재를 돌아다녔다.
'이러니 알라딘에 접속 한번 할 때마다 한두시간은 우습게 날라가지..'
별 생각 없이 서재질을 하던 중, 갑자기 술이 확 깼다. 내가 진/우맘님의 서재에 남긴 코멘트 때문이었다.
"우리의 애정 전선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왜 술을 깰 일이냐고? 난 그 멘트를 부리의 이름으로, 서재 주인보기로 올렸던 거다. 그리고 그때 난 마태우스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서재주인에게만'이라는 글귀는 있지만, 서재주인이 아닌 난 그 코멘트를 볼 수 있었다. 보이지 말아야 할 게 보인다는 것,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잠시 멍해 있던 난 다른 분이 쓴 '서재주인에게만'을 보고 나서야 진상을 알아차렸다. 그렇다. 이건 알라딘의 버그다! 알라딘 측에서 일부러 '서재주인만 보기'를 해제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평소 '서재 주인에게만'이라는 글귀 아래 무슨 말들이 오가는가가 궁금했던 나에게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그로부터 두시간 동안, 난 미친 듯이 여러 서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많은 것을 알았다. 정신없이 복사를 했던 코멘트들을 몇 개만 올려본다.

수니나라님의 '즐겨찾기가 늘고있다'는 글에 서재 주인보기로 달린 코멘트다.
tarsta 2004-07-16 00:18 우리 말이죠, 조직을 만들어서 서로서로 즐겨찾기를 해 BoA요.
수니나라 2004-07-16 00:20 괘, 괜찮을까요?
tarsta 2004-07-16 00:23 뭐 어때요? 다른 분들은 다 그렇게 한다던데.... 생각 있으면 060-700-1188로 전화 주세요. 기다릴께요.

으음, 즐겨찾기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진짜인 줄은 몰랐다. 검은비의 서재에 가봤다. 거기도 뭔가가 있었다.
진우맘 2004-07-15 09:08 내 글에 추천이 많은 비결을 물어봤지? 사실 그거, 조직이야! 조직 사람이 글을 쓰면 무조건 추천을 해주는 거지.
으음,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멍든사과의 서재에 가봤다. 그 서재야말로 기발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역시 거기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즈마 2004-07-15 15:38 너 오늘도 마태우스 서재에 갔더라? 내가 그분 주위에서 사라지라고 했지!
뭔가 답이 있을 것 같아 오즈마님의 서재에 가 봤다. 역시 있었다.
멍든사과 2004-07-15 15:48 난 포기 못한다. 많이 컸구나, 오즈마!
다시 멍든사과님의 서재.
오즈마 2004-07-15 16:01 몸무게는 원래 내가 더 많이 나갔다 아이가.
오즈마의 서재.
멍든사과 2004-07-15 16:08 기어이 한번 해보자는 거냐? 좋다. 한번 붙어보자.
오즈마 2004-07-15 16:11 원한다면 얼마든지. 시간과 장소는 니가 정해라.
멍든사과 2004-07-15 16:16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새벽 두시 어때? 연장 없이 와라.
오즈마 2004-07-15 16:21 기다리마. 드디어 이 지루한 싸움을 끝낼 수 있겠구나.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41분. 그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을까? 만사 제끼고 그냥 자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그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난 택시를 집어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고수부지를 향해 가면서, 난 오즈마의 머리채를 멍든사과가 휘어잡고 있는 장면을, 그게 아니라면 멍든사과가 오즈마 밑에 깔려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하지만 둘다 아니었다. 비가 와서 인적이 드문 고수부지 유람선 앞에 한떼의 사람들이 모여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들 속에서 난 사진으로 봐서 낯이 익은 오즈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난 황급히 그녀에게 뛰어갔다.
"오즈마님, 지금 뭐하세요?"
나를 본 오즈마는 놀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마, 마태..."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났다. "마태우스다!" "마침내 태어난 우리의 스타!" "마태우스!!!"
여자들이 내게 하나씩 인사를 했다.
"스윗매직입니다. 나 이뻐요?"
"스텔라09죠"
"난 스타리, 사진하고 똑같이 생겼네요"
"호밀밭이어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복돌입니다. 제 서재 이미지랑 똑같죠? 하하"

그들이 모인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오즈마와 멍든사과가 한번의 결투로 내 소유권을 차지한다는 소문이 나자, 거기 항의하는 의미로 달려온 거였다. 그들은 그냥 온 게 아니었다. 스텔라는 각목을, 스타리는 체인을, 복돌이는 야구방망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누군가 외쳤다.
"이왕 이렇게 오셨으니 님에게 선택권을 드리죠. 우리 중 하나를 골라 주세요. 그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어요"
"맞다!" "그렇게 합시다!" "옳소!"
"그만들 하세요!" 난 소리를 빽 질렀다. 고수부지는 갑자기 정적에 빠졌다. "턱!" 스타리가 손에 감은 체인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경쾌한 파열음이 났다.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우리처럼 책도 많이 읽은 사람들이 이러면 됩니까"
울기 좋아하는 오즈마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즈마가 울자 복돌이와 스텔라도 따라 울었다.
"절 좋아해 주시는 여러분의 마음은 감사할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하나고, 여러분은 많습니다. 전 무지개가 되고 싶습니다. 보고 있으면 좋지만, 잡으려면 잡을 수 없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제가 오래도록 무지개로 남을 수 있게 도와 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여러분 모두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 때문에 싸우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저와 함께 아랍으로 갈 게 아니라면, 우리 그냥 지금처럼 정겹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술에 취해 두서없는 연설이 되어 버렸지만, 그들은 내 말뜻을 알아들은 듯했다.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박수는 점점 커졌고, 한시간이나 이어졌다.
"자, 오늘의 화해를 기념하는 뜻에서 해장국이나 먹으러 갑시다. 제가 살께요!"

사람들을 이끌고 모레네 설렁탕으로 가려는데,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안돼! 그 싸움은 무효야!! 완전 사기라고!"
스타리가 말했다. "저 사람, 플라시보 같은데?"
그러고보니 사진에서 몇 번 봤던 기억이 났다. 난 그녀를 불렀다.
"플라시보님!"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플라시보는 당황한 듯했다. "마, 마태우스....??"
난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고 플라시보에게 같이 설렁탕집에 갈 것을 권유했다. 플라시보는 손에 쥐고 있던 볼링공을 내게 맡겼다.

고수부지 입구에서 난 묘령의 여인이 서 있는 것을 봤다. 빨간 옷을 입고, 빨간 우산을 쓰고 빨간 장화를 신은 여인. 물론 미인이었다.
"님은 누구신가요?"
내 물음에 여인은 수줍게 웃었다.
"전 마냐라고 해요. 안그래도 걱정이 되어.."
"아니, 님은 이미 결혼을 하셨잖아요!!!!"
내 외침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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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7-1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변태...ㅠ.ㅠ

드디어..1등..!!!

아영엄마 2004-07-16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이 무슨... 할 말이 없사옵니다..
미녀부대에게 둘러 쌓인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크흑... 다른 서재로 발길을 돌리고 시퍼요...@@;; (서재주인에게만 보이기로 할 걸 그랬나요? ^^;;)
---------------------- 덧붙임------------------
이런... 이 글이 3류 소설 카테고리에 든 것임을 몰랐습니다.. 전 정말 처음에 진찌인줄 알았단 말예요... 뒷부분에 가서야 꿈인가? 그러고..아무리 생각해 봐도 난 너무 순진해.. 믿었는데..크흑...

호랑녀 2004-07-1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무지하게 헤매다 봤더니... 3류소설이군요...ㅠㅠ ...
저는 역사소설들도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로드무비 2004-07-1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우리처럼 책도 많이 읽은 사람들이 이러면 됩니까?"
<알라딘네 사람들> 집필하시는 거 어때요?

갈대 2004-07-16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볼링공....ㅋㅋㅋ

조선인 2004-07-16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파리스였던 거군요. 훨씬 공정한 심판이었습니다. 크흐흐흐흐

stella.K 2004-07-1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각목을 휘두르다니...뭡니까 이게? 마태우스님 나빠요.-_-;;

superfrog 2004-07-16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님의 3류 소설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하셨군요..^^

하얀마녀 2004-07-16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즐겨찾기 부분까진 픽션인줄 눈치 못채고 있었어요. 장소가 여의도 고수부지라는데서야 겨우 눈치를 챘습니다.

가을산 2004-07-1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무지게님! ^^

진/우맘 2004-07-1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씨.... 전에 집에 비치해 둔 철근 찾느라 늦게 나갔더니만....
난 또 왜 아무도 없나 했네. 해장국 먹으러 간 거였구나.-.-

2004-07-16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07-1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님도 오셨었군요. 그 마음만 받겠습니다.
가을산님/하하, 알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얀마녀님/여의도 고수부지에서 탄로가 났군요... 좀더 그럴듯한 장소를 대는 건데...
금붕어님/무서운 신인들 때문에 인기를 위협받아서요,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스텔라님/님의 우아함으로 미뤄볼 때 리듬체조에 쓰이는 리본을 쥐어 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나빴습니다.
조선인님/공정한 심판이라기보다, 무책임한 게 아닐까요???????
갈대님/이상하게 플라시보님은 볼링공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로드무비님/호호호. 한번 해볼까요???
호랑녀님/님만 알고 계세요. 사실 이건 어느정도의 사실에 근거한 거랍니다^^
아영엄마님/님 가지 마세요!!! 님이 계셔야 화룡점정이랍니다.
멍든사과님/제 정체를 이제야 알아차리셨군요!!

찌리릿 2004-07-1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두를 읽고는 "아.. 이게 뭐야.. 이런 버그가!"하며 개발팀을 불렀습니다. ㅠ.ㅠ "00씨, 마태우스님 글 봤어요? '서재주인장에게만 보이기' 코멘트가 다 공개된데. 도대체 개발을 어떻게 하고 있는거요?"하는 순간... 옆에서 "3류 소설이라는데요."... ㅠ.ㅠ
잡고 나면 또 생기고, 잡고 나면 또다른 버그가 발견되는.. 끝없는 버그와 싸워야하는 직업상 민감성때문에.. 오버하고만... ㅠ.ㅠ
(그러고 보니.. 마태우스님은 기생충(어쨌든 애도 버그는 버그죠.. ^^) 전문가, 저는 웹의 기생충 전문가인가.. ㅋㅋㅋ)

부리 2004-07-1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앗, 제가 님을 괴롭혀 드렸군요. 죄송합니다. 리얼리티를 위해 3류소설이라는 말을 안붙였거든요.........

진/우맘 2004-07-1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찌리릿님!!!

조선인 2004-07-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우하하하하....찌리릿님!!!

sooninara 2004-07-1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이 불쌍해요..ㅠ.ㅠ..
저도 처음에 제이름이 나와서 깜닥이야...했다니깐요..^^ 리얼리티 죽입니다요..

ceylontea 2004-07-1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는 진짜인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검은비님 서재에 진우맘님 글을 보며 어.. 먼가 이상하다... 하다가 3류소설임을 알았어요...
아까.. 진우맘님 서재에서 마태우스님이 말씀하신 리얼리티의 의미를 깨달았다고나..
그리고.. 찌리릿님.. 오해 하실만 하네요... 너무 열심히 일만 하시는 거 아녀요...??

플라시보 2004-07-16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그러게 말입니다. 볼링공이 뭐냐구요. 뽀대안나게시리. 전 볼링은 칠줄도 모르는디.... 앞으로 제 이미지에 맞게 최소한 사시미나 한조의 검 정도는 준비해주세요.^^

클리오 2004-07-16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몇몇 미녀들의 마태님 쟁탈전을 그것도 실화처럼 쓰시다니.. 저도 첨에 진짜인 줄 알다가 3류 소설인가... 하고 위로 올라갔어요. 근데 마태님, 이거 인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거 맞아요? 어쩐지 염려가... ^^ ㅋㅋㅋ

panda78 2004-07-1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도 갔는데.. 장소를 잘못 찾았나 봐요... 새벽 네시까지 어디야 어디 하면서 헤매고 다녔어요... 흐흐흑-

코코죠 2004-07-1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몸무게는 멍든사과보다 더 나갔던 오즈맙니다. 마태우스님이 저를 아신 게 3개월, 제가 마태우스님을 기다린 게 26년인데 이런 결과가 오리라고는....철푸덕...난 죽어버릴테야 으흙으흙

starrysky 2004-07-1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님의 소설보담 찌리릿님의 댓글이 더 재밌어요, 라고 하면 정말진짜 삐지실 거죠??
쿠쿠, 사실 님의 멋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제 모습이 너무 수줍어 글을 한번에 좌라락 못 읽겠어요. 심호흡 해가면서 찔끔찔끔 한 문장씩 두고 두고 읽을게요. ^^ (근데 제가 한때 껌 좀 씹고, 침 좀 뱉고, 체인 좀 돌린 거 어케 아셨을까아.. 으이? 역시 알라딘에 비밀은 없어~;;;)

sweetrain 2004-07-22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저두 고수부지에서 연장 휘두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