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는 길을 걷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됐는데도 배가 고파왔다. 마냐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1만원짜리를 만지작거리다, 머리를 흔들었다. "안돼, 이 돈만은..."
눈앞에 가게에 진열해 놓은 닭다리가 보였다. 유혹이 일었다. "아, 안돼!"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마냐는 닭다리 한 개를 집어들고 달리고 있었다.
"서라!"
닭집 주인 가을산은 온 힘을 다해 마냐를 쫓았다. 하지만 한창 때도 100미터를 22초에 뛰었던 그녀인지라, 마냐를 따라잡기에는 힘에 부쳤다.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가..'
그때, 검은옷을 입은 여인이 마냐의 앞을 막아섰다. 무시하고 달리려 하는데, 여인이 손을 뒤로 모으더니 앞으로 쭉 뻗는다.
"으윽!"
마냐의 가슴에 격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너, 넌 누구냐?"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검은비다. 음하하하" 검은비는 마냐의 손에 든 닭을 빼앗아 베어물었다.
"장풍을 배우겠다는 애들이 없으니,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구나. 이젠 문을 닫아야겠어"
파란여우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아, 안됩니다"
파란여우를 만류하는 진우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냐. 자네가 김밥을 판 돈으로 도장을 운영하는 것도 한두해지, 이젠 면목이 없네"
둘이 부둥켜안고 우는데, 노크 소리가 났다.
"누구요?"
"도, 도와주세요"
그 말과 동시에 여인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내상을 많이 입었군. 어서 앤티크(내상에 즉효를 나타내 마법의 약이라고 알려져 있다: 역자 주)를 가져오시오"
상처를 들여다보던 파란여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만, 이 솜씨는...."
진우맘의 얼굴도 하얗게 변했다. "설마, 검은비? 가발임이 탄로난 뒤 세상을 등졌던..."
파란여우가 수심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면 강호에 폭풍이 몰아치겠군. 내 추측이 틀려야 할텐데..."
"이제 좀 정신이 드는가?"
마냐는 눈을 떴다. 세 여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뉘신지요?"
"나는 장풍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파란여우일세. 이쪽은 조수인 진우맘, 그리고 이쪽은 내 딸 플라시보라고 하네"
장풍도장이라는 말에 마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장풍이라구요?"
자신이 당한 게 바로 그 장풍 때문이 아닌가.
"저, 저도 장풍을 배울 수 있나요?"
"흥. 장풍은 아무나 배우는 줄 알아?"
플라시보의 말에 마냐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
"이게! 초면이라 봐주려고 했는데"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플라시보가 장풍을 날렸다.
"플라시보! 실내에서는 장풍을 쓰지 말라고 했잖아!"
파란여우의 고함 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의식을 잃으면서 마냐는 생각했다. '장풍 못쓰는 게 이리도 서럽다니...'
마냐가 정신이 든 건 한식경이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알라딘서 가보로 내려오는 것 중에 인터넷 서점을 석권할 수 있는 비법을 담은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봉에서 그 책을 빼앗기 위해 무림의 고수들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냉열사, 오즈마는 물론 검은비까지..."
남자의 말에 파란여우가 한숨을 쉬었다.
"냉열사, 오즈마도 힘든 판에, 검은비까지 가세했다니, 큰일이군요"
"어떻게 좀 안되겠습니까?" 남자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사람을 좀 모아야지요. 신바드님, 일단 돌아가 계세요. 제가 좀 알아볼께요"
"그래요, 그 자세에서 기를 모으세요"
진우맘은 마냐에게 장풍을 가르치고 있었다. 큰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니, 한명이라도 더 고수를 키워놓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되는가요? 휘이이익!"
"으아악!" 진우맘은 십미터를 날라 벽에 고꾸라졌다.
"미, 미안해요. 진짜로 바람이 나갈지 몰랐어요"
마냐가 달려가 진우맘을 일으켰다.
"으, 허리야.... "
진우맘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본 바람 중 가장 큰 바람이었어. 혹시 마냐가...?'
지원군 모집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찌리릿, sunnyside, 기스가 백방으로 고수들을 찾았지만,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앉은 자리에서 소 한 마리를 먹는 sweetmagic은 대학원 스케줄이 바빴고, 바람의 일인자로 불리던 갈대는 아파서 조퇴를 했다. 잘생긴 매너리스트는 해외로 떴고, 복돌이는 기르던 개가 아파서, 재야의 고수 연보라빛우주는 연애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이거 큰일이군요. 폭스바겐은 차가 고장나서 못오고, 수니나라도 컴퓨터가 터져서 정신이 없다는데..."
플라시보의 말에 파란여우는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걱정이다, 걱정! 다들 그럴듯한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검은비가 무서운 게지"
"저... 제가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요즘 마냐에게 장풍을 가르치고 있는데, 바람의 크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혹시 그녀가 우리가 애타게 찾던 카이레가 아닐까요?"
"알라딘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나타난다던 그 카이레? 그럴 리가..."
플라시보가 강하게 부정했다. '마냐가 카이레라면....?' 저번에 그녀에게 장풍을 쓴 게 후회가 되었다.
"카이레든 아니든, 그렇게 소질이 있다면 우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야. 적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니, 더 열심히 가르치게"
"어딜 가?"
밖으로 나가는 플라시보를 마냐가 불러세웠다.
"어, 그, 그냥... 산책 좀 하려고"
마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산책 가지 말고, 마당에 나가 나랑 한판 뜰까?"
플라시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시, 싫어. 요즘 컨디션이 안좋아서.."
마냐의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흥, 내가 장풍을 배운 이유가 뭔지 알아? 너한테 당한 걸 복수하기 위함이야. 드디어 때가 온 것 같아"
마냐가 허리께로 손을 모았다.
다급해진 플라시보가 소리쳤다. "안돼! 장풍은 사적인 복수를 위해서 쓰여져서는 안되는 거야!!!"
순간, 마냐의 몸이 허공에 떴다가 고꾸라졌다.
"아이고, 허리야!"
"네 이놈, 마냐야!"
파란여우였다. "니가 장풍을 배운 게 겨우 그런 이유였다니, 너같은 제자는 필요없다. 당장 나가라!"
마냐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스승님, 제발 그것만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필요없다! 당장 나가!!"
그때 진우맘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진우맘아, 트라우마가 치유될 때까지는 뛰지 말라고 했거늘"
"큰일났습니다. 놈들이 알라딘을 공격하러 온답니다!"
"뭣이?"
일행은 구름을 타고 알라딘으로 향했다.
"내가 구름을 다 타보다니!" 마냐가 좋아하자 플라시보가 빈정댔다.
"촌스럽긴!"
마냐가 발끈했다. "이게!"
"어허, 구름 위에서 무슨 짓들인가? 더구나 큰 싸움을 앞둔 터에...플라시보야, 어서 사과하지 못하겠느냐?"
플라시보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고, 마냐는 내키지 않았지만 손을 잡았다.
"히히, 나 화장실 갔다와서 손 안씻었는데"
플라시보의 말에 마냐는 황급히 손을 뿌리쳤다. "이것이 정말!!!"
그러는 사이 구름은 알라딘 본부에 사뿐히 안착했다. 파란여우는 진우맘에게 통로 경비를, 플라시보와 마냐에겐 책이 있는 금고를 맡도록 했다.
"난 문앞을 지키겠네. 다들 잘 싸워 주게나"
십분 후, 검은비를 위시한 교봉 일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여우가 외쳤다.
"니들 말야, 열심히 해서 착하게 살아야지, 남의 비법이나 빼앗으려고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풍 수십개가 날라왔다.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이트에 가면 아직도 부킹요청을 받는다고 큰소리 친 것처럼, 파란여우는 아직 늙지 않았다. 냉열사, 자몽상자, 바람구두가 파란여우의 장풍을 맞고 쓰러졌다. salt, 토끼똥, 오즈마도 내상을 입고 주화입마(모든 혈이 막힌 상태: 역자 주)에 빠졌다. 하지만 적은 너무 많았다.
2선을 지키던 진우맘도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그녀도 검은비의 흑풍에 내상을 입고 쓰러졌다. "으윽! 분하다! 검은비, 서재에서 보자!"
검은비가 나타났을 때, 플라시보는 자고 있었다.
"이봐, 일어나! 검은비가 왔어!"
"으응..."
플라시보는 간신히 일어나 입가의 침을 닦았다.
"내가 이런 애송이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알라딘도 퍽이나 인재가 없구나!"
"무어야?"
마냐는 허리로 손을 모은 뒤 장풍을 내뿜었다. 동시에 검은비도 검은 바람을 뿜었다. "펑!" 두 개의 바람이 부딪히며 폭풍이 일었다.
'어린 것이 대단한걸?'
검은비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런 바람은 처음이야. 혹시 저애가...'
아니라고 머리를 흔들며, 검은비는 더더욱 기를 모았다. 흑풍이 점점 마냐에게 가까이 왔다. 섬뜩한 공포가 밀려왔다.
'아, 안돼!!!"
순간 뒤에서 엄청난 기운이 자신에게 전해져 왔다.
"마냐, 지면 안돼. 힘내!"
플라시보였다. 그녀가 뒤에서 기를 합쳐 주자, 전세는 금방 역전됐다. 검은비는 더더욱 기를 뿜었지만,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쾅!"
번쩍 하고 빛이 비추는 듯하더니, 검은비가 수십미터를 날라가 고꾸라졌다.
"으---으---"
다시 일어나려 애쓰던 검은비의 머리가 다시금 떨구어졌다.
"플라시보, 고마워. 니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기지 못했을거야"
"고맙긴. 너도 내가 위험에 빠졌다면 그랬을건데"
둘은 힘차게 껴안았다.
"어? 마냐. 등에 뭐가 났는데?"
마냐가 겸연쩍게 웃었다. "응, 그거 사마귀야. 태어날 때부터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나 있었다더라구"
플라시보: 그래? 약 발라서 떼지 그러니
마냐: 안그래도 수술할까 생각 중이야. 근데 우리, 그 책 말야, 한번 보지 않을래?
플라시보: 안돼. 스승님이 절대로 보지 말라고 했어.
마냐: 그럼 넌 보지 마. 나만 볼래.
마냐는 장풍으로 금고를 부수고 책을 꺼냈다. "이게 뭐야?"
"왜? 뭔데?" 플라시보가 다가왔다. "변비에 걸렸을 때는 일단 많이 먹어야 한다. 적정 중량이 되지 못하면 대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옷은 되도록 밤색 계통의, 대변과 비슷한 색깔을 입는 게 좋다.... 꽉 쬐는 옷도 도움이 된다... 이거 변비에 관한 책이잖아?"
"그러게 말이야. 인터넷 서점 석권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건 어디에도 없소"
신바드였다. "서점 석권의 비결 같은 게 어디 있겠소? 굳이 비결을 말하자면 고객을 위하는 마음, 그거면 되는 것 아니겠소?"
마냐와 플라시보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러면...왜 그런 게 있는 척 했지요?"
신바드가 껄껄 웃었다. "우리가 단시간에 인터넷 서점을 석권하자 '교봉'이나 '그래 스물넷'의 질시가 심해져 왔소. 정치권에 줄이 닿아 있다는 헛소문을 내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 창업주께서는 이런저런 음해를 차단하고자 무슨 특별한 비결을 담은 책이 있는 것처럼 속여 왔던 거요. 참고로 창업주께서는 변비로 고생하셨지요. 지금까지 한 말은 비밀로 해주시겠소?"
마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마냐야, 니가 해냈구나" 파란여우와 진우맘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스승님!"
마냐는 힘차게 그들과 포옹했다. 마냐의 등께를 만지던 파란여우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스승님, 어디 안좋으세요?"
"아니, 아니다. 속이 좀 쓰리구나..."
다음날, 마냐는 성형외과에 가서 사마귀 제거수술을 받았다. 병원문을 나서는데, 기자들이 몰려왔다.
"마냐님이 카이레라는 설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난데없는 질문에 마냐가 어리둥절해하자, 기자가 부연설명을 했다.
"카이레는 등에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가 있다는데, 등을 좀 보여주실까요?"
성급한 기자는 마냐의 등에 손을 대기까지 했다. 수술 자리가 아파서 비명을 지르자 기자가 외쳤다. "사마귀 없는데? 역시 아닌가봐. 가자!"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마냐는 허탈하게 서 있었다. "그, 그게 그거였단 말야? 젠장, 괜히 수술했다!"
마냐는 다시 성형외과로 돌아갔다.
"방금 사마귀 뗀 사람인데요, 그거 다시 붙여주면 안될까요?"
마립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떼어낸 사마귀, 휴지통에 버렸는데..."
"안돼요!" 놀란 마냐는 휴지통으로 가서 사마귀를 찾기 시작했다. 세시간 후, 마냐가 탄식했다.
"여섯개는 찾았는데 왜 한 개가 없지? 아이 속상해!!!!"
계룡산 정상. 라면을 먹던 검은비는 갑자기 화가 나서 젓가락을 집어던졌다.
"두고보자, 마냐! 꼭 복수해 주겠다!"
*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보고나서 생각한 소설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대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소설의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