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 골인입니다. 나달선수, 오늘 해트트릭을 기록하네요.”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골잡이 라파엘 나달은 사라고사와의 프리메라리가 31라운드 경기에서 3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5-1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들어 벌써 세 번째 해트트릭인데다 정규리그 27골로 현재 부동의 득점 1위다. 감독과 동료들의 축하세례를 받으며 경기장을 나서면서 나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지? 이 허무함은?’

거의 매 경기 골을 뽑아내고, 팬들과 언론에 의해 ‘금세기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찬사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나달은 왠지 공허한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다. 게다가 밤마다 악몽을 꾸는데, 꿈의 내용은 늘 똑같았다. 머리가 곱실거리는 한 남자가 나타나 자신을 뭔가로 두들겨 팼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통증이 너무도 생생했다.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도 프리메라리가 6연패를 앞두고 있었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FC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협하지 못했다. 레이카르트, 과르디올라, 라모스 등 수많은 감독을 경질해도, 아무리 좋은 선수를 영입해도 바르셀로나는 늘 2위였다. 메시와 호날두, 호나우지뇨와 카카, 레알에서 이적한 라울 등 초호화군단을 구축한 올 시즌에도 바르셀로나는 승점 12점차로 멀찌감치 처져 있었다. 베른트 슈스터 레알 감독은 “바르셀로나는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다”리며 큰 소리를 쳤다.


그날밤 자리에 누운 채 TV를 보던 나달은 테니스 경기에 채널을 고정했다. 마침 프랑스오픈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로저 페더러와 로빈 소덜링이 맞서 싸우는 중이었다. 결승전답지 않게 경기 내용은 일방적이었다. 페더러는 자로 잰 듯한 스트로크로 소덜링을 유린했고, 소덜링은 이렇다 할 공격도 펼쳐보지 못한 채 3-0으로 지고 말았다.

“페더러라, 저 친구 잘 치는군. 음, 정말 잘해.”

페더러라는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경기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론에 의하면 페더러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윔블던에서 처음 우승한 이래 2004년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2005년 호주오픈에선 마라트 사핀에게 준결승에서 져 3관왕에 그쳤지만, 2006년부터 2010년 호주오픈까지 17개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올 프랑스오픈까지 우승했으니 연속우승 기록은 18회로 연장됐고, 통산 우승 횟수는 26회로 2위인 샘프라스보다 무려 열두번이 더 많았다.


“테니스를 안치길 잘한 거 같아. 내가 저 친구를 어떻게 이기겠어?”

나달은 페더러의 무시무시한 스트로크를 떠올리며 도리질을 했다. 나달도 사실은 테니스 선수가 될 뻔했다. 나달의 삼촌이자 전직 테니스 선수였던 토니 나달은 나달이 세 살이 되던 해부터 테니스를 가르쳐 주었고, 늘 그에게 “넌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될거야”라고 격려했다. 토니의 기대대로 나달은 8살 때 12세 이하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지만, 나달의 마음은 언제나 축구였다. 그건 아마도 바르셀로나의 간판스타이자 스페인 국가대표로 활약한 또다른 삼촌 미구엘 안젤 나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지만, 뛰는 걸 좋아한 나달의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샘프라스가 윔블던을 제패하는 모습을 보던 나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테니스는 재미가 없어. 가만히 서서 라켓만 휘두르잖아.”

스페인과 유럽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던 12세 때, 나달은 결국 축구를 선택했다. 토니 나달은 “테니스에서도 빠른 발은 좋은 무기가 된다”고 만류했지만, 나달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토니 나달은 그 이후 미구엘 안젤 나달과 말을 섞지 않고 있다.


축구를 택한 뒤에도 나달은 승승장구했다. 인간의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 빠른 스피드는 그의 큰 자산이었고, 무심코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던 수비수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게다가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며 개인기까지 화려한 그를 막을 선수는 지구상에 없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대결을 뜻함)에서 두골을 넣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아르헨티나 출신의 메시가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형, 난 형처럼 축구를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사인 한 장만 해줄래?”


한번은 토니 나달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나달이 축구를 택한 후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진 토니는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정도로 축구를 할 사람은 우글우글해. 하지만 너만큼 테니스를 잘 칠 수 있는 선수는 지구상에 없어. 너 우리 스페인 선수 중 그랜드슬램을 마지막으로 우승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여자부의 콘치차 마르티네스가 1994년 우승한 게 전부야. 남자를 찾으려면 까마득하게 내려가야 한다고. 지금이라도 돌아와, 이 배신자야!”

스페인이 테니스를 못치는 걸 왜 자기 탓으로 몰아붙이는지 나달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2006년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56년만의 4강으로 이끈 건 전혀 알아주지 않다니. 나달은 토니 삼촌과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2010년 월드컵에서 나달은 매 경기 결승골을 넣으며 스페인을 다시 4강에 올려놓았다. 독일에게 져 탈락하긴 했지만, 나달은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달의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다. 월드컵 기간 중 잠시 사라졌던 악몽이 귀국 후 다시 생겼다. 짜증스럽게 눈을 비비던 나달이 TV를 켜자 며칠 전 열렸던 윔블던 결승전을 다시 방영하고 있었다. 그때 봤던 페더러가 쉴 새 없이 영국의 희망이라는 머레이를 몰아붙이고 있다.

“페더러의 서브 에이스가 작열합니다. 앞으로 한 포인트만 더 따면 페더러 선수가 전무후무한 윔블던 8연패를 달성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페더러의 서비스가 센터라인을 가른다. 페더러의 우승이다. 27회 우승이라니, 이 친구 정말 대단하다.

“토니 삼촌도 참, 저런 선수가 버티고 있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어?”


휴식을 위해 몬테카를로로 가는 날, 마드리드 공항에서 애인을 기다리던 나달 앞에 웬 사내가 섰다.

“헤이 나달! 나 모르겠나?”

의자에 앉은 채 머리를 들었더니 머리가 곱실한 남자가 운동복 차림으로 서 있는 게 보인다. 옆에는 약간 살이 있는 여자가 애 둘과 함께 다소곳한 표정으로 버티고 있다.

“누구...?”

나달이 앉은 채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웃었다.

“난 로저 페더러라고 하네. 자넬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보는군.”

페더러라니, 얼마 전 TV에서 보던 그 사내다.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나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했다.

“아, 페더러! 세계 넘버 원 선수!”

나달의 칭찬에 페더러가 씨익 웃었다.

“그런데 날 만나고 싶어한 이유는? 혹시 당신 축구 팬?”

페더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축구 안좋아해. 그저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했어.”

무슨 말인지 몰라 나달이 얼굴을 찡그리자 페더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당신은 모를 거야. 하지만 꼭 알아야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을 했으니 됐네. 나중에 보세.:

말을 마치자 페더러가 웃기 시작했다.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슨 일 있어요? 웬 남자랑 얘기하던데.”

애인의 말에 나달은 정신을 차렸다.

“응? 자기 왔구나. 페더러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게 미안하다잖아. 원 참.”

애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페더러? 혹시 그 전설의 테니스 선수?”

나달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애인은 페더러가 사라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페더러! 사인 좀 해주세요. 저 당신 팬이어요!”

순간 나달은 페더러가 꿈속에서 자신을 두들겨 패던 그 남자랑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핫, 나도 참.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달의 애인에게 사인을 해준 뒤 페더러는 잠시 멈춰선 채 1년 전을 떠올렸다. 2009년 호주오픈은 페더러에게 중요한 대회였다. 감염성 단핵구증으로 인해 2008년 시즌 극도의 부진을 겪은 터였으니까. 겨우 US오픈 하나만을 우승하는 데 그친데다 5년간 지켜오던 세계랭킹 1위 자리도 나달에게 내줬다. 나달과의 프랑스 오픈 결승에서 6-0의 치욕을 당한 거야 클레이코트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윔블던마저 나달에게 내준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2009년 첫 대회인 호주오픈에서 우승해 명예회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나달이 약한 하드코트니까 괜찮으려니 했던 호주오픈마저 나달에게 내주고 만 것. 이제 자신의 테니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설움이 북받쳤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달이 자기를 위로하고 있다. 얄미운 녀석. 병주고 약주다니. 그게 서러워 더더욱 큰 소리를 내서 울었다. 그 장면이 TV로 생중계됐으니 황제로서의 위용은 다 무너져 버렸다. 나달, 그 녀석만 없다면....


라커룸에 들어가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웬 눈이 작은 남자가 그에게 걸어왔다. 이런 판국에 사인이라니. 페더러는 손을 내저어 그를 물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걸어와 페더러 앞에 섰다.

“Do you want to rewind the time(시간을 돌리고 싶나)?"

그리 좋은 발음은 아니었지만 이 남자가 미쳤다는 건 알 수 있는 말이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종을 하나 꺼냈다.

“Hit this bell if you want(그러고 싶다면 이 종을 쳐라).”

너무 피곤했고, 순전히 귀찮았기에 페더러는 종을 쳐서 남자를 좇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땡~~~”

종소리는 컸고, 오래도록 울렸다. 페더러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의식을 잃어갔다.


“이봐. 일어나! 경기 시간이 다 됐어.”

코치가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2003년, 윔블던 1회전을 앞둔 무렵이었다. 테니스 황제의 신화가 시작된 그 대회에서 페더러는 전 대회 우승자 휴이트를 누르고 첫 우승을 한다. 우승을 하고도 담담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방송사 리포터가 물었다.

“전혀 기쁘지 않나요?”

페더러는 그 말에 씨익 웃어 보였다.

“조금요. 전 제가 우승할 줄 미리 알고 있었거든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4년, 페더러는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는다.

“천재 축구선수 라파엘 나달, 레알 마드리드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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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0-07-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나달이 계속 축구선수해서 레알에 입단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생각이 드신거죠?
이번 준결,결승 보니까 왜 나달이 잘 하는지 정말 잘 알겠더군요.
8월말에 있을 u.s오픈이 벌써부터 기대돼요.ㅎㅎ
나달 우승 기념으로 추천도 했어요.

마태우스 2010-07-07 18:21   좋아요 0 | URL
나달이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나달이 위대한 선수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테니스판에 나달이 없었다면 남자테니스가 얼마나 재미없었겠어요?
어찌되었건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paviana 2010-07-08 16: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진짜 나달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거에요?
에이 아닐텐데 ㅋㅋ

루체오페르 2010-07-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모르고 관심이 없는 분야라 어떤 글인지 잘 모르겠으나 마태님 특유의 유머가 묻어나서 정독 하다보니 그림이 보이네요.ㅎㅎ

마태우스 2010-07-07 18:20   좋아요 0 | URL
오오, 지루한 얘기를 정독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조선인 2010-07-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니스도, 축구도 몰라서... 쩝...

마태우스 2010-07-07 18:20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혹시 스포츠 안좋아시는 분이 계실까봐 스포츠소설이라고 써놨다는....

... 2010-07-0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달의 등장과 함께 흥미를 잃었던 테니스의 세계에 다시 빠진 저로서는, 그 어떤 것보다 끔찍한 상상이군요-.-

마태우스 2010-07-08 09:25   좋아요 0 | URL
상상에 불과하니 너그러이 봐주세요. 제가 워낙 페더러 빠인지라...

2010-07-07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9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10-07-0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빠와 축빠는 서로 좀 별로인 편인데, 마태님은 야빠에 축빠에 테빠까지 ...
저도 도통 뭔소리인지 모르지만, 혹시 알까 끝까지 읽어보긴 했습니다 ...

물론 뭔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슴다만 ㅜㅠ

마태우스 2010-07-08 09:27   좋아요 0 | URL
저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시네요. 전 축빠가 아니구요, 축구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K리그 팀이 몇개인지도 잘 모르는데요. 글구 제 소설이 그렇게 어려웠나 다시한번 읽어보게 되네요. 나달이나 페더러를 전혀 몰라도 내용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stella.K 2010-07-0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3류 소설이었는데...
그래도 추천이 높은 편이군요. 역시 마태님은...짱이야!ㅋㅋ

마태우스 2010-07-08 09:28   좋아요 0 | URL
추천이 많은 건 소설이 좋아서라기보단 노력이 가상해서 혹은 친분 때문에 눌러주신 걸로 압니다. 여러가지로 고맙습니다.

moonnight 2010-07-0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어요. 항상 느끼지만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어떻게 하시는지 +_+;
근데, 마태님도 독일이 이길 거라고 짐작하셨군요! 저도 스페인이 이번에 네덜란드랑 결승 올라갔으면 좋겠다 바라면서도 아무래도 독일이 이기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새벽에 경기보고 깜짝 놀랐어요. 개인적으론 네덜란드가 이번 월드컵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

마태우스 2010-07-09 11:06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글구 이번 월드컵은 참 틀리는 거의 연속이어요. 아르헨 하는 거 보고 우승하겠다 했는데 탈락. 독일이 진짜 잘한다 했더니 탈락. 브라질은 우승하겠지 했는데 탈락. 이건 뭐... 문어가 제일입니다.

2010-07-08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선생, 잠깐 나 좀 보죠.”

학장이 불렀을 때 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불도저’란 별명처럼 그는 학장이 되자마자 ‘리모델링을 한다’ ‘실험실을 통합한다’ 이러면서 학교 전체를 공사판으로 만들어 버렸고, 난 그걸 앞장서서 비판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학장의 말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마선생, 그만둬야겠어.”

이, 이건 무슨 소리인가? 연구업적도 상위권이고, 강의평가도 괜찮은 나한테 그만두라니? 학장의 다음 말도 내 상상력을 가볍게 비웃었다.

“제보가 들어왔어. 마선생이 에이즈라더군.”

학장이 말한 에이즈가 내가 아는 에이즈가 맞는지 난 한참을 생각했다. 그게 맞단다. 학장의 설명은 이랬다.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우리 병원서 붙잡아놓고 있는데, 그 여자 말이 마선생과 잤다더군.”


난 2년 전에 결혼했고, 그 이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한 적이 없다. 게다가 난 학장이 내민 사진 속의 여자와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만난 건 사실이잖나?”

“작년 세미나 때 제 옆자리에 앉았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학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알긴 아는 거군, 맞지?”

그날 난 저녁 약속이 있어서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바로 뛰어나갔고, 그 이후엔 그녀와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나랑 잤다고 우기고 있다.

“대체 어디서 했답니까?”

학장은 씩 웃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모두 나간 뒤 의자 위에서 했다더군.”


에이즈를 검사하는 방법은 내 혈액 속의 항체를 검사하는 ‘웨스턴 블롯’과 에이즈 바이러스의 DNA를 증폭시켜 진단하는 'PCR', 이 두가지가 널리 쓰인다. 난 진단검사의학과에서 피를 뽑혔고,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두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학장은 그 결과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검사에서 음성이라고 자네가 에이즈가 아닌 건 아니야. 그 검사의 민감도가 100%가 아니라는 건 자네도 알지? 무엇보다 그 여자가 일관되게 자네와 잤다고 얘기하고 있어. 에이즈가 잠자리를 통해 전파되는 건 자네도 알지?”


여자의 증언은 별로 일관되지 않았다. 처음에 의자에서 했다고 하더니만 벽장 뒤라고 진술을 바꿨고, 나중에는 근처 모텔에 갔다고 했다. 하지만 학장은 이렇게 우겼다.

“그래도 했다는 주장에는 일관성이 있지 않은가? 저 여자가 했으니까 저러지, 안했는데 왜 저러겠는가?”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학생들도 “마선생이 에이즈래!”라며 수근대고 있었고, 학부모들은 “에이즈 교수가 있는데 학생을 보낼 수 없다”며 학교 측에 항의를 했다. 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게 아니었고, 교수회의에서 3차례에 걸쳐 조사를 한 뒤 최종판결을 내리겠다는 게 학교 측의 방침이었다.


“마선생, 혹시 테니스 치나요?”

교수회의에서 이 질문이 나왔을 때, 난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네, 칩니다만....”

“그 테니스라는 게 격렬한 운동이지요?”

난 질문을 한 최교수를 잠시 쏘아보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마선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는 거군요?”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 다음 질문도 그리 생산적이지 않았다. 자주 쓰는 체위는 뭐냐, 성해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말에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다행스러운 건 교수회의에 참석한 다른 교수들이 내 편을 들어준다는 거였지만, 난 이 모든 게 짜증스럽기만 했다.


이 모든 게 차기 학장이 유력시되는 날 견제하기 위한 현 학장의 계략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내게 이상한 질문을 던진 측도 ‘학장파’로 분류되는 학장의 꼬봉들이었다. 원래 난 이달 6월에 실시되는 학장선거에 출마할 마음도 없었다. 올해 목표는 그저 논문 15편이었을 뿐, 귀찮게시리 학장 같은 걸 왜 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소장파들 사이에서 날 지지하는 측이 꽤 많았고, 재선을 노리는 현 학장 측에선 그걸 위협으로 느꼈던 거였다. “에이, 이렇게 된 거, 선거에 출마해 버릴까?”


최종 발표가 있기 전날, 내 기분은 영 뒤숭숭했다. 에이즈가 아니라는 결정이 나올 게 거의 100%였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난 에이즈 교수라는 오명을 씻을 수가 없게 됐으니 말이다. 실제로 동료들은 나와 악수도 잘 안하려고 했고, 어쩌다 만나도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나원참 교수는 심지어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물증이 없어 음성이 나온다 해도 도덕적으로는 이미 에이즈야!”

학생들도 그랬다. “전 교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도 내가 고맙다는 뜻으로 손이라도 잡으려면 황급히 손을 뺐으니까. 학장 측의 계략은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에이즈라는 게 환자와 잔다고 무조건 전염되는 것도 아니고...”

결정문을 읽어내려가는 강교수의 얼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하품을 해버렸다. 한달 새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피로가 누적된 탓이었다. 강교수가 잠시 읽기를 멈추고 불쾌한 표정으로 날 째려봤다.

“여자의 증언에 전혀 일관성이 없고 정황으로 봐도 맞지가 않은데다....해서 본 회의에서는 마선생의 에이즈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란 판단을 내리는 바입니다.”

그 말을 듣는순간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제 끝이다. 학장에 나갈지 안나갈지는 모르지만, 이제 이런 일로 불려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난 여러 사람으로부터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았다. 학장이 내게 다가왔다.

“마선생, 자네 나병이라며?”

피로가 싹 가셨다.

“네? 뭐라고요?”

학장이 야비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보가 들어왔어. 우리 병원에서 붙잡아 두고 있는 나병 환자가 있는데, 자네와 4년 전 방을 같이 쓴 적이 있대. 아, 이건 자네가 에이즈가 아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제보가 들어왔을 뿐이야. 제보가 사실이라면 나병에 걸린 교수를 강의하는 데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내일부터 조사할테니 협조 좀 해주지.”

한달 남짓 고생했는데 다시 또 조사를 받아야 한다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학장님, 그만하시죠. 사실 저 에이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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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이즈, 나병. 전염병과 패러디
    from 읽고 쓰고 생각하기 2010-04-12 11:22 
    마태우스님께서 올리신 이번 한명숙 전총리에 대한 검찰의 지저분한 공격에 대한 패러디를 보며 사무실에서 웃음이 났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저는 약간 다른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이 패러디에서 학장은 에이즈, 나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걸렸다는 식으로 몰고가는 상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병들은 모두 사회에서 억압받고 차별받는 병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병도 있었겠지만, 에이즈나 나병이 패러디에서 절묘하게 인식될 만큼, 아직 우리 사회에서
 
 
blanca 2010-04-1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아주 제대로 된 암시가 스멀스멀 풍기는데요. 저는 소설인지 모르고 또 첫대목에서 경악했답니다.-..- 재미납니다.^^

메르헨 2010-04-1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19금 소설인데 ...소설은 빼고 끝까지 읽다고 헉...하고 다시 봤더니
소설이네요.^^아호...깜짝 놀랐습니다. 근데 내용이 진짜 같은 이 느낌은 ... 으흠...^^ㅋ

구단씨 2010-04-1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시 놀라게 되네요.
보관함에 담으려 들어왔다가..^^

무스탕 2010-04-1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필코 차기학장으로 당선되셔야 겠습니다 ^^

Mephistopheles 2010-04-1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의 묘비에 가서 통곡을 하신 것이 빠졌습니다. 마태님.

마태우스 2010-04-1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피님/앗 그런 일이 있었나요? 주말에 신문을 안봤더니만....
무스탕님/글게 말입니다 ^^ 그런데 아쉽게도 서울시장은 H당이 될 것 같습니다..
내숭구단님/아 많이 놀라셨군요 너무 리얼했나요^^
메르헨님/으.... 저 학장님하고 친하답니다. 아주 잘 지낸다는... 글구 저희 학장은 재단에서 낙점하는 거랍니다.
블랑카님/맨 먼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다고 해주셔서 더더욱 감사드려요. 글 올리고 님 댓글을 본 뒤 편안히 잠들 수 있었어요. 감사드려요.

마냐 2010-04-1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중...최고의 패러디임다 ㅋㅋ

L.SHIN 2010-04-12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군요! 마태님 진짜로 소설 써보실 생각 없습니까? (웃음)

그나저나 새로운 월요일입니다.
이번 주도 즐겁고 힘차고 보람된 한 주 되시기를 -

쟈니 2010-04-1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 댓글을 올렸습니다. 재밌는 패러디였고, 저도 공감했지만, 조금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먼 댓글 남깁니다.

마태우스 2010-04-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쟈니님/님 서재에 가서 댓글 남기겠습니다. 꾸벅
L.SHIN님/오랜만이에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제 소설이 나온다면 알라딘에서만 팔릴 것 같아요 한 100권 정도 호호. 어쨌든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냐님/이잉.... 부끄러워요.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19금 위주로요^^

마립간 2010-04-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은 책 중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이 있습니다.
 

"따르릉"

잠을 깬 마태우스는 턱에 고인 침을 닦았다. 그 동안에도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아이 씨, 새벽 두시에 전화하는 놈이 어딨어?"

마태우스는 거칠게 수화기를 들었다.

"큰일났습니다. 박태환 선수가 위험합니다."

박태환? 그 마린보이? 마태우스는 술기운이 확 깨는 걸 느꼈다.

"아니, 박태환 선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전화건 사람의 말은 이랬다. 박태환 주변 사람들 중 첩자가 있는 것 같다, 박태환에 대한 정보를 호주의 그랜드 해켓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니 마태우스 탐정이 조사를 좀 해주면 좋겠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면 너도 좋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조사해 보죠. 근데 댁은 누구십니까?"

전화는 뚝 끊어졌다. 긴급 추적장치로 확인해보니 그 전화를 건 사람은 박태환이 선전하는 '블루마린' 홍보부 직원이었다.

"이 사람, 박태환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회사 생수판매를 더 염려하는 거겠군!"

마태우스는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금메달을 따도록 돕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올림픽이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았고, 선수단은 이미 중국으로 떠난 후였다. 마태우스는 서둘러 박태환이 연습을 하던 북경대 체육관으로 향했다. 박태환은 물개처럼 수영을 하고 있었고, 주변 경비는 제법 삼엄했다. 마태우스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누구죠?"

"전 박태환의 마사지사입니다."

"흠, 그럼 당신은요?"

"기록원입니다."

"당신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는 자신이 코치라고 한 뒤 마태우스에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인가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마태우스는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뭔가가 있어...'


다음날 다시 경기장에 간 마태우스는 곧장 코치에게 갔다.

"혹시 박태환 선수가 400미터 결승에서 어떤 작전으로 임할지 정해진 게 있나요?"

코치는 한참 동안 마태우스를 째려봤다.

"그건 왜 묻죠?"

마태우스는 세게 나가기로 했다.

"물을 만하니까 묻는 거죠!"

코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마태우스의 귀에 입을 갖다댔다.

"하아..."

코치가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자 마태우스는 펄쩍 뛰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마태우스가 저항하자 코치는 얼굴을 붉혔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태환이가 어떤 작전을 쓸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코치의 정중한 태도에 마태우스도 예의를 갖추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 건 대체 언제쯤 정해지죠?"

"대회 하루 전날입니다."

노민상 감독


대회 전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기에 마태우스는 중국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야, 저게 말로만 듣던 천안문이구나!"

천안문의 웅장한 규모에 감탄하던 도중,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아니, 저 친구는!"

그는 수영장에서 봤던 기록원이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딜 가는 거지?'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뒤를 밟았다. 그는 초조한 듯 연방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두시간 남짓 걸은 뒤 그는 허름한 문으로 들어갔다. 마태우스도 따라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렸다. 평소 영어에 능통했기에 그는 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Is no one follow you?"(따라온 사람 없었지?)

"Yes"(네)

"Did you know about Park?"(박에 대해 알아낸 거 있어?)

"No, yet. But..."(아직요. 하지만....)

그 후의 말은 너무 작아서 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기록원이 나왔고, 외국인 하나도 잠시 후 문을 나섰다. 마태우스는 그 외국인을 쫓아갔다. 그가 팔레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마태우스는 웬 여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Oh, you are sorry!"(당신 잘못이어요!)

여인이 워낙 미인이었기에 마태우스는 따지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Yes, I'm sorry.(그래, 미안해요.)

말을 마치고 주위를 보니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잉? 그 사람이 어디 갔지?"

순식간의 일이었다. 낭패다,라고 마태우스는 생각했다. 30분을 더 헤매다 혹시나 싶어 프론트로 간 마태우스는 유창한 중국어로 물었다.

"쯔부샤...즈씨 므물야 센수 스야.?"(혹시 여기 머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쫭미란 쏀수이쓰. 드신 보 랄라이 헤이야"(장미란 선수라고 있습니다. 당신도 보시면 좋아할 겁니다)

마태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쯔 센수마이고 수센센수 라이라?"(그 선수 말고. 수영 선수는 없나요?)

안내원이 투숙객 명단을 훑었다.

"호이호이 쓰메잉 리라이라. 호쓰이 콰잉 타이양콰이(廣 太陽猫)쓰요"(아, 한명 있네요. 호주의 그랜드 해켓이요.)<--이상 중국어 대화는 메피스토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후부터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하지만 기록원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우스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그 바람에 코칭스탭으로부터 첩자가 아니냐고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봐요! 전 마태우스라고요! 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스타~!"


시간은 흘러 대회 전날이 되었다. 박태환 선수 주변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지금쯤은 아마도 박태환 선수의 전략이 세워졌을 것이다. 그 전략은,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줄 것이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께요."

기록원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진 뒤 3분 후에야 마태우스는 비로소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화장실에 가는 사람치고 얼굴에 조급함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어! 게다가 화장실은 그쪽이 아냐!"

마태우스는 서둘러 그가 간 방향으로 갔다. 기록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내가 너무 늦은 걸까? 그러면 안되는데..."

그때 마태우스는 皮示房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피시방이라... 혹시 저기에?"

마태우스는 피시방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3분간 눈을 부라린 끝에 마태우스는 기록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만두지 못해!"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이구...나 죽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마태우스는 그를 무시한 채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모니터는 기록원이 메일을 작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태환의 작전은 150미터부터 치고나가 전력질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켓이 미리 치고나가야만...."

마태우스는 자리에 앉은 뒤 글을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금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박태환의 작전은 지난 세계선수권 때처럼 350미터를 돈 뒤부터 스퍼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해켓도 그때까지는 천천히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내기'를 누른 뒤 마태우스는 기록원의 멱살을 쥐었다.

"너, 내일까지 입 다물고 있지 않으면 네가 어떤 짓을 했는지, 그리고 네 싸이월드 주소가 어딘지 네이버에 공개할 거야!"

마태우스의 협박에 기록원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대회 2일째인 일요일 11시 21분. 국립 아쿠아틱 센터. 박태환은 150미터부터 질주를 시작, 1위로 나섰다.

"네, 박태환 선수, 1위로 나섭니다. 해켓 선수, 눈에 띄게 당황한 듯 처지기 시작하네요!...네, 네. 박태환 1위로 달립니다....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아나운서의 흥분한 목소리가 고함으로 바뀌었다. 터치패드를 가장 먼저 찍은 박태환은 만면에 웃음을 띄고 두 손을 흔들었다. 중국의 장린이 2위, 해켓 선수는 6위였다. 전원을 끄려는데 해설자의 목소리가 마태우스의 귀에 들려왔다.

"박태환 선수가 세계선수권 대회 때와는 달리 일찍부터 치고나간 게 적중을 했어요. 이번 금메달은 작전의 승리입니다."

TV를 보고 있던 마태우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박태환이 나오는 400미터 경기를 전 밥집에서 소주를 먹으면서 봤습니다. 그걸 보고 집에 오다가 이 소설을 구상했는데요, 여건이 안되서 글로 옮기지 못하다 오늘 써서 올립니다. 겁나 유치하지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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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8-08-27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간만에 넘 잼있었어요 ㅎㅎㅎ
근데 이거 3류 소설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 ?? ㅎㅎ

(마태님 재기에 여러번 속아 카테고리 부터 확인하고 보는 매직 ㅎㅎㅎ)

마태우스 2008-08-27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그렇군요 3류소설로 바꿔놓을께요^^ 잼있다고 해주셔서 감사! 님의 냉정한 평가가 있었으니 마음놓고 자렵니다^^

Mephistopheles 2008-08-27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 중국어 명기가 좀 소홀하기에 첨부합니다.


혹시 여기 머물고 있는 선수가 있나요?"
(쯔부샤...즈씨 므물야 센수 스야.?)

"장미란 선수라고 있습니다. 당신도 보시면 좋아할 겁니다."
(쫭미란 쏀수이쓰. 드신 보 랄라이 헤이야)

"그 선수 말고. 수영 선수는 없나요?"
(쯔 센수마이고 수센센수 라이라?)

"아, 한명 있네요. 호주의 그랜드 해켓이요."
(호이호이 쓰메잉 리라이라. 호쓰이 콰잉 타이양콰이(廣 太陽猫)쓰요)

마태우스 2008-08-2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피님/오오오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중국어를 좀 해볼까 했는데, 생각이 안나서 그냥 썼었어요. 감사합니다. 님이 해주신 걸로 바꿔치기하겠습니다. 꾸벅.

paviana 2008-08-2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메피님이 도와주신거군요.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마태님이 산속에 가서 수련이라도 하고 오신줄 알고요.ㅋㅋ

Mephistopheles 2008-08-2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태님을 양궁장으로 파견했으면 중꿔 응원단들 중에 호루라기 삼키는 인간들 많았을텐데 말입니다..

레와 2008-08-27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추천~!! ^^

마노아 2008-08-2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마태우스님표 소설! 메피님 자막 제공 멋졌어요^^

최상의발명품 2008-08-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귀에 입김을 불어넣는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혹시 야구편은 없나요? ^^

비로그인 2008-08-2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림픽 메달 종목별로 다 나오는건가요?
재밌네요.

마태우스 2008-08-3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헤헤,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종목별로는...글쎄요...
최상의발명품님/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 귀에 입김을 부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야구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아이디어가 없네요 생각해볼께요!
마노아님/그러게 말입니다. 중국어가 들어가니 훨씬 더 그럴듯해보여요!!
레와님/어맛 감사합니다.
메피님/그렇죠?^^ 박성현 지는 순간 어찌나 속상하든지요. 그게 짜증나 이틀간 올림픽을 아예 안봤다니깐요...
파비님/중국도 안가본 제가 어찌 중국말을...호홋.

하얀마녀 2008-10-2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보는 3류 소설이네요. 아직 건재하신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흐흐흐.

2009-05-29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코올에 관한 책을 사려고 교보에 갔다가, 저자 이름이 ‘윤미화’인 책을 발견하고 잽싸게 집어들었다.


 


‘유아지도’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만 해도 동명이인이겠지 했지만, 책날개에 붙은 사진이 아무래도 낯이 익다. 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유아교육에 대한 저자의 소신을 담은 에세이집이었는데, 책 곳곳에서 난 내가 아는 그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에 염소만한 동물은 없다...... 아이들에게 영여 회화를 시키는 대신, 염소와 함께 뛰놀게 할 수는 없는 걸까?”(<염소만이 희망이다>에서)

봄이 지천에 깔렸다. 이제 아이들과 함께 봄을 뜯어 먹으러 나가봐야겠구나. 어흥”(<어느날 봄>에서)

발해만의 오염 정도를 알기 위해 꼬리를 담갔다가 기절할 뻔했다. 고등어 한마리가 내 꼬리를 덥썩 물어버린 거다.”(<발해만 어류 보고서>에서)

일주에 한번은 정말 걸쭉한 묵밥을 한 대접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어진다.”(<미녀는 묵밥을 좋아해> 중)

인간이 야생여우에 가한 폭력의 역사를 아이들이 잊게 해서는 안된다.”(<여우는 알고 있다>에서)


3분의 1쯤 읽다가 책을 덮었다. 가슴이 북받쳐 더 읽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난 사려던 책은 팽개쳐 둔 채 그 책 세권을 포개 계산대에 내밀었다. 한권은 내가 읽고, 두권은 입시경쟁 때문에 정서가 메말라 가는 조카들에게 줄 생각이다. 3월이 가기 전에 우리 모두 이 책을 읽자. 가슴 뭉클한 무엇을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파란여우님, 책 정말 멋져요! 냈으면 냈다고 말이라도 해주시지!

 

이거 3류소설이어요! 책 사신다는 분,

 

   제발 그만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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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3-19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당분간 책주문는 삼가해야 되는 입장인데....한권 사야겠군요..^^
키득키득...^^
책 내용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문도 있던데...^^

마태우스 2007-03-19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과 그분의 친분관계로 볼 때 세권은 사셔야죠! 한권이 멉니까....

기인 2007-03-19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책 소개 감사합니다. :)

하늘바람 2007-03-19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파란여우님이란 분 책인가 봐요

홍수맘 2007-03-1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럼 저도 한권 주문해야 겠어요. 오홋 님이 이런 눈썰미까지......

조선인 2007-03-1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하하하하하 설마 낚인 분이 있는 건?

마늘빵 2007-03-1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적어도 세 권은 사야겠는걸요. 안봐도 감동이에요.

해리포터7 2007-03-19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기가 막히군요.ㅋㅎㅎㅎ

2007-03-19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7-03-1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이 2005년에 나온검돠! 이렇게 물을 먹고 있었다니. 눈밝은 마태님이 아니었다면...

프레이야 2007-03-1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 조선인님 아니면 낚일 뻔했어요 ㅎㅎ

가을산 2007-03-1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류소설이라면.... 이건 책을 사라는 것도 아니고 사지 말라는 것도 아니여.... ^^

토토랑 2007-03-1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두 조선인님 아녔으면 바로..-_-;;;

마노아 2007-03-1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반가운 이름이에요^^ 저도 보관함에 담았어요.

가넷 2007-03-1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런...-_-;;;

클리오 2007-03-1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3류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보관함에 담으신다하니... --;;;

moonnight 2007-03-19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한참 읽다가 으잉 하고 카테고리확인했어요. -_-;;;

치유 2007-03-1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또 넘어갈뻔 했어요..-_-;;

마노아 2007-03-1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댓글 확인 안 했음 큰일날 뻔..;;;; 아아, 눈썰미가 부족해요ㅡ.ㅜ

마태우스 2007-03-20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아아...큰일났네요. 알라딘엔 너무 순진한 분들이 마나요...ㅠㅠ
새벽별님/호호 그런가봐요^^
배꽃님/휴, 다행이다....댓글이 절 살렸군요. 지기님한테 저 책 주문 못하게 말려달라고 SOS를 쳤는데....
달밤님/님이 알라딘 스탠다드십니다. 땡스투까지 한 분은 순진도에서 10점 만점에 9.9 이상입니다...
클리오님/그러게요. 세상은 아직 아름다운 곳인가봐요^^
그늘사초님/니, 님도 속으셨나봐요...?
토토랑님/휴,... 다행이다...
가을산님/어머나 멋진 유머십니다!!
배혜경님/어머 죄송해요. 와...조선인님 댓글이 절 살렸군요.
마냐님/지, 진짜로 사시면 안되는데...마냐님한테 이런 면이 있으시다니...ㅠㅠ
속삭이신 홍수맘님/이거 3류소설이어요...ㅠㅠ
해리포터님/서, 설마 님도...보관함에 담으신 거 아니죠?
아프락사스님/이젠 사람 안속이고 착하게 살래요...ㅠㅠ
속삭이신 분/님 말씀에 공감합니다...착하게 살아야 해요.
조선인님/정말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이 책이 갑자기 열권쯤 팔릴 뻔했어요....그게 나쁜 게 아니라...제가 지탄받잖아요...엉엉.
홍수맘님/잽싸게 제가 댓글 달아드리길 정말 잘했어요...^^
속삭이신 ㅈ님/서, 설마 님도? 그, 그러시면 환급해준다는 전화에 속을 분들이 이곳엔 이리도 많다는 얘기...?
하, 하늘바람님/그, 그게 아니구요...잉, 어쩌나.
기인님/니, 님도 속으시다니...엉엉.

마냐 2007-03-20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친절한 마태님, 캄사!

진/우맘 2007-03-2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달팽이 2007-03-2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여우님의 책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군요..
앞으로 더욱 많은 책을 쓰게 될 거겠죠..우리 여우님...

2007-03-20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7-03-2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책 낼일 있으면 마태님께 꼭 말씀드릴께요 ^^;

파란여우 2007-03-2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컴에 들어오지 않은 시각에 이런 대형사고가 있었군요.
저는 이름까지 도용당했는데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선 말씀들이 없으시네요.ㅠ.ㅠ
어쨌거나, 책을 사신다면 저자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 줄수도 있으므로..*^%$@$%^&
(사래는 건가,말래는 건가..@@)풋

미즈행복 2007-03-2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참에 소설가로 전업을 하심은 어떠신지?

마태우스 2007-03-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즈행복님/아이 몰라....^^
속삭이신 분/어머나 어째 그런 일이...너무 속상해요요요
여우님/도용이라뇨.. 세상에는 많은 윤xx님이 계십니다^^ 근데 사라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지 말라는 것 같기도 하네요
무스탕님/그럼요! 제가 적극 밀어드립니다
속삭이신 분/혹시 몰라서 꼬리를 고등어에게 물리는 대목을 넣었는데.....모르셨군요
달팽이님/님 서재 가서 말씀드렸는데...신청 안하셨죠?
진우맘님/웃는 척하면서 사실은 신청하셧죠?'
마냐님/헤헤 제가 좀 친절하고 겁이 많죠

Koni 2007-03-2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어 보여요. 꼭 사야겠는걸요. ㅎㅎㅎ 특히 영어회화 대신 염소와 뛰노는 거... 솔깃한데요.

여울 2009-11-1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퍼가요. ㅁ
 

 

알라딘을 떠난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 ‘알라딘 직원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왔다. 자신을 김정아라고 밝힌 그 직원은 내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해줬다. 내가 나간 후부터 알라딘의 하루 방문객 숫자가 평소 30만명 수준에서 20만명 가량으로 30% 이상 줄어들었으며, 매출액의 감소는 훨씬 더 크다는 것.

“저도 이게 단지 마태우스님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마태우스님의 서재 방문객 숫자가 하루 300명이 못되는 수준인데, 저렇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원래 연초에는 책 판매량이 줄어들기도 하고요. 근데 저 통계가 작년 동기와 비교한 것이고, 마태우스님이 나가시고 사흘 후부터 매출액이 떨어져서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요. 평범하고픈 콸츠님이 나가신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요.”


메일을 읽다가 좀 황당했다. 나한테 이걸 믿으라고? 혹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계략이 아닐까?

“그래서... 저희들끼리 회의를 한 결과 제가 님한테 메일을 보내는 겁니다. 님이 미녀를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미모가 좀 되는 저한테 책임을 맡긴 거죠. 마태우스님, 2월도 되고 했으니 이제 돌아와 주세요. 저희가 굶게 생겼어요.”


장고에 장고를 한 끝에 난 이런 답장을 썼다.

“제가 존경하는 로쟈님이 한달에 150만원 내외의 매출을 좌우하신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땡스투로 판단컨대 저는 기껏해야 한달에 열권 내외의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칠 뿐이지요. 그래서 전 님이 제시하신 통계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더 믿을 수 없는 건 님의 미모 여부입니다. 최소한 사진이라도 제시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셔야지 않겠습니까? 제 복귀 여부는 사진을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답장을 하고 후회를 했다.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닌지, 진짜 미녀면 어떡해야 하는지 등등. 이따금씩 메일 확인을 했지만 그녀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난 다른 알라디너가 직원을 사칭해 작전을 한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사흘 후, 다시금 메일이 왔다.

“마태우스님, 사진을 보내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다 관두기로 했어요. 그래요, 님 말씀대로 전 미녀가 아니어요.”

이런이런, 날 속이려고 하다니! 잠시 부르르 떨다가 나머지 글을 읽었다.

“회의를 다시 한 결과 저희 사장님이 나서기로 했어요. 조유식 사장님 아시죠? 그분과 마태우스님이 술 대결을 벌여서 이기는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 어떠세요? 물론 술값은 저희 사장님이 다 부담하고요.”


난 조유식 사장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목동 어디쯤에서 소주를 마셨었다. 난 한병반을 마셨고, 조 사장님은 두잔인가를 마시고 얼굴이 붉어지셨다. 그리고는 내가 빈 잔을 채우려 할 때 손을 내저으셨다. 난 그때를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지옥훈련을 하셔도 내가 이긴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 내가 늘 마음에 새기는 경구다. 난 그때부터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 일찍 들어와 저녁을 먹었고, 저녁 식사 후 샤워를 한 뒤 소주 석잔을 원샷으로 들이킨 후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난 소주 네병도 거뜬할 정도로 몸이 완성되어 있었다.


종로의 ‘얄리성’이라는 중국집에 도착한 건 약속시간보다 3분이 늦은 후였다. 조사장님은 먼저 와 계셨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분은 내 생각보다 몸이 불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마태우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난 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조유식 사장이 아니었다. 그가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껄껄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너, 너는... 알코올계의 대부 바람구두? 여긴 웬일이냐?”

바람구두는 다시금 껄껄 웃었다.

“넌...오늘 나와 대결해야 한다.”

속았다는 걸 알고 도망치려는 순간,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날 결박했다. 메피스토, 울보, 스텔라, 물만두.... 심지어 해적님은 채찍까지 들고 휘둘러 댔다. 난 꼼짝없이 자리에 앉았고, 알코올계의 대부와 고량주로 원치 않는 대결을 해야 했다. 탕수육 몇 개를 집어먹은 것, 그리고 내가 메피스토님한테 혹시 가발 아니냐고 물은 것, 이런 것들 외에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잠에서 깼을 때 난 낯선 방에 있었고, 내 옆에는 야클님이 자고 있었다. 머리 위에 있는 쪽지가 눈에 띄었다.

[넌 졌다. 돌아와라 -바람구두-]


2월 26일 오후 한시, 난 떨리는 손으로 카테고리를 하나씩 열었다. 마태우스의 제2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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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7-02-2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흐흐흐.. 그럼 시즌2 인가요? 언제봐도 정겨운 님의 모습! 오늘따라 더 멋져보이십니다! 전 이카데고리가 술일기인줄 알았어요.

기인 2007-02-2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작가로서의 컴백. 마태우스님의 진정한 컴백이시군요! ^^

paviana 2007-02-2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번에 대학 졸업하시나봐요.학사모가 참 잘 어울리시네요.ㅋㅋ

Mephistopheles 2007-02-2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사실...알라딘 직원 사칭 이메일은 제가 계획했던 몇몇 복귀작전 중에
하나였는데.....

얼음장수 2007-02-2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하게 재미있네요.

다락방 2007-02-2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3류소설이란 카테고리에 속해있단걸 다 읽고나서야 알았습니다. 읽으면서 아, 알라딘이 이런 메일도 보내는구나. 생각했어요. ㅎㅎ

짱꿀라 2007-02-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복귀로 서서히 웃음꽃이 피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물만두 2007-02-2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태우스님 3류소설을 읽어야 한다니까요^^ 금단현상 겪은 보상은 어찌하시렵니까~^^

야클 2007-02-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밤 우리 사이에 아무일도 없었겠죠?

2007-02-28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7-02-2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학생은 아니고...그럼 단대 학장님 오아 총장님? 꺅~~~~~

비연 2007-02-2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오랜만에 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좋슴다!

2007-02-28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07-02-2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때 술잔 카운트 담당이었는데, 마태님이 고량주 132잔째에서 뻗으셨어요.
바람구두님과 나머지 사람들은 그 뒤로 또 한바탕 마셨구요. ^^

BRINY 2007-02-2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에 제가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저희 학교에서 ㄱㅅㅎ군이라고 한명 그쪽으로 갑니다. 잘 부탁드려요, 교수님.

2007-02-28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적오리 2007-02-28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류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워요..^^

치유 2007-03-01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즐거움을 주시는군요..

sweetmagic 2007-03-01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속아요 안 속아 ~ ㅋㅋㅋ

미즈행복 2007-03-0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인지도 모르고 넘 재밌게 읽었네요. 다른분들의 댓글로 소설임을 알았어요. 하지만 진짜로 알라딘에서 저런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요. 스타신데. -앗, 내눈에 콩깍지?- 근데 이렇게 유명하신 분을 학교에서 연구가 좀 안된다고 자를 수 있나요? 마태님덕분에 학교가 유명세를 치르는데? 총장내지는 이사장에게 현명히 판단할 것을 종용하는 멜을 보내야겠네요 -그러다 이번에도 확인들어가서 저를 곤혹케 하시겠죠?- 그렇담 총장과 이사장의 멜주소도!!! 그리고 아무리 그러셔도 저는 꼭 알아낼거예됴. 뭔지 아시죠?

무스탕 2007-03-0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중국집 앞에 세워논 무스탕 확인하셨나요? 널부러진 마태님 대충 싣고 달리느라 기름좀 태웠습니다 ^^

미래소년 2007-03-0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마태님은 학교 사람이시군요, 새 학기와 함께 컴백~!
반갑습니다, 와락!!! ^^*

진/우맘 2007-03-0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왔슈~ 그동안 컴중독자 연우땜에 거의 독서일지만 연명하던 저도, 이제 개학과 더불어 컴백해볼게요. ㅎㅎㅎ

진/우맘 2007-03-0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혀빡문
ㅋㅋㅋ 저기말유, 서재대가로서....방명록에 답글 정도는 달아줘야 하는 거 아뉴?
뭐, 까잇거 팔구십개 밖에 안 되더만~~~~ㅋㅋㅋㅋㅋㅋ
=3=3=3333

sooninara 2007-03-0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돌아왔습니다.호호
경기도민 되었으니 환영식 해주실거죠?

반딧불,, 2007-03-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영합니다!!!

별빛속에 2007-03-0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뒷북이지만.. 정말정말 복귀 축하드립니다! ^ ^!!

커피우유 2007-03-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오랫만에 들어왔는데 반가운 소식이 있네요. 돌아오셔서 기뻐요 마태우스님 ^0^

Koni 2007-03-0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반가워요 마태우스님~

마태우스 2007-03-04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님/저두 반갑습니다 냐오님
커피우유님/한달 반 떠나있었는데 제법 오래된 것 같아요^^
햇살박이님/감사드립니다. 글구 뒷북 아니어요. 복귀 후 10일 지날 때까진 뒷북이 아니라는 네이버의 정의도 있습니다
켈님/별일...없었습니다^^
속삭이신 분/정말 그렇죠? 그거 보는 순간 안되겠구나, 돌아가야겠구나 싶었어요.
반딧불님/님의 환영사가 유난히 반갑습니다^^
수니님/당근 그래야죠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진우맘님/님이 열심히 한다는 말, 이제 안믿겨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미래소년님/본의 아니게 그리 되어 버렸네요^^
무스탕님/아 그렇군요 제가 내릴 때 모르고 진공청소기 가지고 내렸는데 언제 돌려드릴께요
미즈행복님/저도 안잘렸으믄 좋겠는데... 당당하게 연구논문 점수로 안잘리고 싶어요 정상참작 이런 것보다는요... 하여간 예서 뵈니 반갑습니다
매직님/아아 님을 속이려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나요..
배꽃님/부끄럽습니다^^
해적님/호호 저두 쓸수 있게 되어 기뻐요
속삭이신 분/카툰 봤어요 그리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미모에 걸맞는 아름다운 마음씨...
브리니님/잘 알겠습니다. 찾아볼께요!
가을산님/132잔....와, 제가 그렇게 마실 수 있음 정말 좋겠어요 제주량은 너무 약해요 흑.
속삭이신 분/억울하진 않는데요^^ 일찍 맛이 가면 그만큼 건강에 좋은 거 아니겠어요^^
비연님/님도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세,세실님/너무하세요 흑. 우리 서로 돕고 살아야죠...
속삭이신 ㄷㅂ님/제마음 아시죠?^^
야클님/그랬던 것 같습니다아. 아쉽게도!
만두님/지금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구벅
바람구두님/앞으로 잘할께요 님께 큰 빚을 졌는지라....^^
산타님/헤헤 잘못한 거 지금부터 열심히 일해서 갚아야죠!
다락방님/아아 님의 순수함이란...!!!^^
얼음장수님/고맙습니다 꾸벅.
메피님/어...그렇다믄 제가 속았을지도...^^
파비님/학생같단 얘기죠? 호호호호
기인님/헤헤 부끄럽습니다
해리포터님/아, 시즌 2가 더 멋진 표현이겠네요^^그간 잘 계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