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지은이가 허금주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빈폴에서 만든 셔츠다. 새삼스럽게 메이커 입은 걸 자랑하는 이유는, 내 지도학생들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고르고 고른 것”이라며 생색을 내는데, 디자인과 색깔이 어떻든간에 지도학생들로부터 뭘 받았다는 감동이 그 옷이 과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지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한다 (지금 다시 보니 뭐, 좋구만)
금주기간인지라 5월 모임을 연기할까 했지만, 나는 안마셔도 애들은 마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애들을 만났다. 하지만 내가 안마시니 애들 역시 술은 안마신 채 고기만 먹었고, 2차는 심지어 볼링장에 갔다. 평소 130정도의 점수를 기록하고, 최고기록이 214인 내가 85점, 96점이라는 역사에 남을 저조함을 보였고, 그게 우리팀 패배의 원흉이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도학생들이 “정말 보람있는 하루였다”라고 얘기를 했다는 게 더 중요했다. 한명은 이랬다. “다음에 또 볼링치러 가요”
난 그들이 나랑 만나서 술을 진탕 마시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들은 옷 대신 양주를 선물했고, 우리는 2차에 가서 그 양주를 다 비우곤 했다. 가끔씩 오버이트를 하는 학생이 있었고, 나 또한 맛이 가서 헤롱대다 언제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집에 갔던 게 그간의 지도학생 모임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이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들은 단지 술을 좋아하는 내게 맞춰주기 위해 분위기를 술 쪽으로 몰아갔었던 거다. 술을 마실 땐 알지 못하던 걸 깨닫고 나니, 몇 년간 학생들에게 술만 왕창 먹였던 자신이 부끄럽다. 술을 마시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얼마든지 있는데, 예컨대 보드게임이라든지 볼링이라든지, 그것도 아니면 농구라든지-이건 해가 길어야지 할 수 있지만-난 오직 술만 고집했던 거다. 그들 역시 술을 좋아할 거라고 착각하면서.
사실 난 아픈 입으로 고기를 집어먹으면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술 없이 고기를 먹는 게 돈이 아깝게 느껴졌고, “술자리 20여년 중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맑은 정신으로 밤기차를 타서, 우아하게 책을 읽으면서 집에 가고 있자니 나도 좋았다. 지금까지 나랑 놀았던 사람들 중에는 분명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필경 나에게 맞춰 주느라 원하지도 않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앞으로 술 말고 다른 인생이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겠다.
* 물론 이건 내가 금주 기간이니 하는 말이다. 그런 게 어딨어! 6월 초만 되면 죽어라고 마실 거야!
** 술을 끊으니 술자리가 많아진다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오늘만 해도 모교에서 모임 있다고 오란다. 물론 난 술은 안먹고 회만 먹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