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복과 재산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돈 걱정이 없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재산 축적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 행운이 있으면 액운이 따르기 마련일까. 복권 당첨자가 이전보다 불행해진 사례가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소개된다. 돈이 화를 부른 경우다. ‘로또 복권 1등 당첨되어도 불행해지지 않는 법’이란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있을 정도이니, 거액이 생기면 오히려 불행에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유산이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는데 동네 사람 중에 부모의 유산이 생기는 바람에 등지게 된 형제들이 있다고 한다. 삼 형제가 의좋게 지내다가 7천만 원쯤 되는 유산 분배 문제로 멀어졌단다. 장남은 장남이라서 본인 몫이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머지 두 형제는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단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 형제는 유산을 나누지 못한 채 명절에도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해야 하므로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필요하리라. 돈 걱정이 없어야 하고, 형제간이나 친구 간에 인간관계가 원만해야 하고, 몸이 건강해야 하고, 직업 만족도가 낮지 않아야 하고, 결혼을 한다면 믿음이 가는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속을 썩이는 자식이 없어야 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낼 취미가 있어야 하는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기 힘드니 행복하게 사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반면 우리가 불행해지기는 얼마나 쉬운가. 최근 내가 집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일이 있다. 어느 날 몇 분 간격으로 쿵 하고 큰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서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추측해 보건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라 이웃집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 같았다. 아마도 창문을 열어 놓고 모두 외출하여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바람 때문에 방문이 닫혔다 열리고 다시 닫히기를 계속 되풀이되는 듯했다. 우리집이 12층 아파트인데 문제는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아파트 관리실에 문의를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책을 읽어도 티브이를 켜도 쿵 하는 소리를 지우지 못했다. 아침부터 났던 소리가 저녁이 되어도 끊이질 않았다. 밤에도 그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면 나뿐만 아니라 식구들이 밤잠을 설칠 게 뻔해 걱정이었다. 만약 온 가족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빈집에서 소리가 나는 거라면 속수무책이기에 불안하였다. 다행히 밤이 되자 소리가 나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으며 하루를 보낸 그날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뉴스에서 보도되곤 하던, 층간 소음으로 인해 이웃 간에 벌어진 싸움을 이해하게 했다. 그리고 행복의 다른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소음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잃게 되니 인간은 불행에 빠지기 쉬운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나는 큰 행운을 바라지 않는다. 큰 행운을 만날 가능성이 적은데다 그것으로 인한 기쁨이 오래가지 않음을 잘 알아서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누릴 수만 있다면 행복한 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진한 향이 나는 커피를 마실 때의 즐거움, 읽고 싶었던 책의 첫 장을 넘길 때의 설렘, 운동을 하면서 땀이 쭈르르 흐를 때의 쾌감, 운동을 끝내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을 때의 상쾌함, 목마른 화초에 물을 흠뻑 줄 때의 흐뭇함,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소나기가 세차게 내릴 때의 시원함 등으로 내가 기분이 좋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을 만큼 큰 불행은 물론이고 소음에 시달리는 것과 같은 작은 불행도 없다는 것이므로. 다른 말로 하면 무탈하다는 것이므로.
현재 코로나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무탈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닌가. 무탈함에 감사할 줄 아는 자만이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살다 보면 시련을 겪는 날들이 있지만 무탈한 날들도 오게 마련이다. 부디 ‘무탈함의 행복’을 맛보며 사는 이들이 많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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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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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20721010003757
<후기> 이 칼럼을 쓰게 된 과정
소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어느 날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지인에게 말했습니다. 이웃집에서 쿵 소리가 나서 커피조차 마음 편히 마시지 못하겠다고. 신경 쓸 일이 없으면 그게 행복인 것 같다고. 그날의 경험을 소재로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