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남)가 요지로(남)에게 돈을 빌려 준 적이 있다. 요지로는 그 돈으로 마권을 몇 장 사서 돈을 몽땅 날려버렸다고 말하고는 갚지 않는다. 그러더니 미네코 씨(여)한테 가서 돈을 받으라고 한다. 자기가 산시로에게 꾼 돈이 있어 갚기 위해 돈을 빌리러 왔다고 말하니, 미네코 씨가 자기를 믿을 수 없다며 산시로가 직접 와서 받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산시로는 미네코를 만나 돈을 받았고 그날 전람회에 가기도 하며 둘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요지로가 산시로에게 돌연 빌린 돈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달이 밝은 비교적 추운 밤이다. 산시로는 돈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변명을 듣는 것도 진지하지 않다. 어차피 갚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지로도 결코 갚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갚을 수 없는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 이야기가 산시로에게는 훨씬 재미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남자가 실연한 나머지 세상이 싫어져 결국 자살을 하려고 결심했는데 바다도 싫고 강도 싫고 분화구는 더욱 싫고 목을 매는 것은 더더욱 싫어서 어쩔 수 없이 권총을 사왔다. 권총을 사온 후 아직 목적한 바를 실행하기도 전에 친구가 돈을 빌리러 왔다. 돈이 없다고 거절했지만 어떻게든 꼭 좀 빌려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소중한 권총을 빌려주었다. 친구는 그 권총을 전당포에 맡겨 임시변통했다. 형편이 나아져 전당포에 맡긴 물건을 찾아 돌려주러 왔을 때 권총의 주인은 이미 죽을 마음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 남자는 친구가 돈을 빌리러 왔기 때문에 목숨을 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일도 있으니까 말이야.”

요지로가 말했다. 산시로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높이 뜬 달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돈을 받지 못해도 유쾌하다.

- 나쓰메 소세키, 「산시로」, 247~248쪽. 


“웃으면 안 되네.”

요지로가 주의를 주었다 산시로는 더욱 우스웠다.

“웃지 말고 잘 생각해보게. 내가 돈을 갚지 않았으니까 자네가 미네코 씨한테 돈을 빌릴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산시로는 웃음을 그쳤다.

“그래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 자네,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지?”

- 같은 책, 248쪽.


⇨ 요지로는 자신이 돈을 갚지 않아 산시로가 미네코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산시로가 이익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꽤 그럴듯한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 「산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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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이 올해 마지막 가을 모습이겠죠? ㅠㅠ

페크pek0501 2024-11-12 12:23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 벽 안이 경복궁인데 그 부근(서촌)에 좋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한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했어요.
단풍을 보자마자 바로 사진을 찍었어요.
아마도 단풍이 곧 사라질 거고 겨울이 오겠지요. 실컷 봐 두어야 하겠습니다. 굿 데이!!!
 

별마당 도서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소설 ‘라쇼몽’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이삼 년 동안 교토에는 지진과 회오리바람, 그리고 화재와 기근 같은 재해가 연달아 일어났다. 극도로 황폐해진 환경 속에서 이윽고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시체를 라쇼몽에 버리고 가는 풍습까지 생겼다. 그런 연유로 해가 지면 모두가 으스스한 기분에 라쇼몽 근처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교토 중심부에 위치한 라쇼몽은 기와지붕의 이층 구조로 되어 있는 문이었는데, 당시 여우나 너구리가 드나들고 도적이 소굴로 삼기도 하였다.)


비는 내리고 있었고 하인은 갈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형편이 궁해진 주인이 사오 일 전에 하인을 내보내서다. 밤이면 추워지는 교토는 쌀쌀했다. 하인은 라쇼몽에 와 있다. 비바람을 맞을 걱정이 없고 사람 눈에 띌 염려 없어 그곳에서 대충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문 위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폭이 넓은 사다리가 하인의 눈에 들어왔다. 문 위에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죽은 시체들뿐이다. 하인은 발소리를 죽이고 경사가 급한 사다리 맨 윗단까지 기어서 올라가서 살며시 누각 안을 들여다보았다. 누각 안에는 소문으로 듣던 대로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으나 몇 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벌거벗은 시체와 옷을 입은 시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시체들이 썩는 냄새에 하인은 자기도 모르게 코를 감싸쥐었다.

 

하인은 시체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진갈색 옷에 키가 작고 야위었으며 원숭이같이 생긴 백발 노파였다. 하인은 공포와 호기심에 휩싸여 잠시 호흡하는 것도 잊었다. 노파는 관솔불을 마루 틈 사이에 꽂고 마치 원숭이 어미가 새끼의 이를 잡아주듯 시체의 긴 머리털을 하나 둘 뽑기 시작했다. 머리털은 손으로 쉽사리 뽑히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하나 둘 뽑힘에 따라 하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과 동시에 노파에 대한 격심한 증오가 조금씩 솟아났다. 하인은 악을 증오하는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인은 왜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인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에 라쇼몽 위에서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악이었다. 하인은 아까 자신이 도둑이 될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 


하인은 사다리를 힘차게 딛고 불쑥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허리에 찬 칼에 손을 댄 채 큰 걸음으로 성큼 노파 앞으로 다가갔다. 노파가 놀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노파는 하인을 보자마자 펄쩍 튀어 올랐다. 

“어이, 어딜 가?”

하인은 노파가 시체에 걸려 비틀거리면서도 황급히 도망가려는 길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노파는 그래도 하인을 밀쳐내고 가려 했다. 하인은 다시 그걸 막으려고 노파를 밀쳤다. 둘은 시체들 사이에서 잠시 말없이 밀치락달치락하였다. 하인은 마침내 노파의 팔을 붙잡아 힘껏 바닥에 팽개쳤다. 

“먼 짓을 하던 거야? 말해. 말하지 않으면 이거야.”

노파를 밀쳐낸 하인은 돌연 칼을 뽑아 그 허연 날을 노파의 눈앞에 들이댔다. 노파는 양손을 덜덜 떨고 어깨로 거칠게 숨을 쉬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벙어리처럼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포졸이 아니오. 그저 이 문 아래로 지나가던 사람이오. 그러니 할멈을 포승줄에 묶어 놓고 어찌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오. 단지 지금 이 문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만 말해주시오.” 

노파의 목에서 까마귀가 우는 듯 헐떡이는 소리가 하인의 귀로 들려왔다.

“이 머리털을 뽑아, 털을 뽑아서……. 가발을 만들려고 했지.”

하인은 노파의 대답이 뜻밖에 평범하다는 것에 실망하였다. 그리고 실망과 동시에 아까의 증오가 차디찬 모멸과 함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하긴 그려. 죽은 사람의 털을 뽑는다는 건 나쁜 짓이겄지. 그치만 말여, 여기 있는 시체들은 몽땅 그리 당해도 싼 인간들뿐인걸. 지금 내가 머리털을 뽑은 년도 말이여, 뱀을 토막 내서 말린 것을 건어라고 동궁호위대 사람들에게 팔러다녔을 것이여. 그래도 이년이 판 건어는 맛이 좋다고 무사들이 찬거리로 많이들 샀다고 혀. 나는 이년이 한 짓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테니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겄지. 그러니 지금 내가 하던 짓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어.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야.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년도 잘 알 터이니 내가 하는 짓도 눈감아줄 것이여.”(15쪽)


노파는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이 말을 듣던 중 하인의 마음에는 어떤 용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하인은 이제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인은 노파의 목덜미를 잡고서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다 벗겨가도 원망하지 말어. 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니까.”(16쪽)


하인은 서둘러 노파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붙잡고 늘어지는 노파를 발로 차 시체들 위로 쓰러뜨렸다. 사다리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이었다. 하인은 노파의 옷을 옆구리에 끼고, 순식간에 경사가 급한 사다리를 뛰어 내려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16쪽)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16쪽) 


....................여기까지가 ‘라쇼몽’의 내용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기를 바랐을까? (여러분은 하인의 마지막 행동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요?)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이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듯 소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노파는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다. 그 머리털로 가발을 만들어 팔아야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인은 노파의 옷을 벗겨 그것을 가지고 도망간다. 그 옷이라도 팔아야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둘 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인은 처음엔 악을 증오했고,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악으로 여겼다. 그런데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지 않고서는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서 하인은 달라진다. 그래서 노파의 옷을 벗겨 그것을 가지고 도망간다. 하인도 노파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페크 1님 : 굶어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인간은 똑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2님 : 남의 흉을 보다가 자신도 똑같아진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3님 : 극한 상황에서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4님 :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는 마음을 자기만 갖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갖는다. 그래서 그 마음이 오히려 자기를 희생자로 만들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5님 : 약자를 돕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여기서 칼을 갖고 있는 하인이 강자이고, 노파가 약자다.)


페크 6님 : 생각은 전염된다. 그러므로 각자의 생각이 올발라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위의 내 해석과 달리 이 책의 뒤에 실려 있는 ‘해설’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사람을 속여 뱀 고기를 판 여자, 그 여자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려는 노파, 그 노파를 위협하여 옷을 벗기고 도망가는 하인, 세상은 악의 고리로 연결된 듯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하인은 노파 덕분으로, 노파는 여자 시체 덕분으로, 여자는 속아준 사람 덕분으로 먹고산다는 것이 가능하니, 그것은 선의 고리이기도 하다. 증오나 죄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리의 단절, 무관심이나 소외인 것이다. 

벌거벗겨진 노파에게도 아직 삶의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시체 중에는 옷을 입은 시체나 다른 여자 시체도 아직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쇼몽은 삶(生)의 문(門)이 아닐까.(261쪽)



만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가 살아 있어서 이 해설을 읽는다면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고리의 단절, 무관심이나 소외가 가장 무서운 것임을 내가 말하려고 했다고?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꿈보다 해몽이 좋군.”





....................

다가오는 추석 연휴를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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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12 19: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쇼몽이 그런 뜻이었군요. 우리나라로 치면 시체가 드나들었다는 시구문 같은 곳.
언니 생각이 다 맞는 것 같은데 역시 역자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참 남다르네요.
번역하느라 얼마나 많이 읽었겠습니까?
영화도 있는데 언제고 한 번 봐야겠네요. 넘 오래된 영화라 잘 안 보게 되느데 언젠가는 꼭...! ㅋ

올해는 추석 때도 덥다고 해서 추석 분위기가 날까 싶어요.
예전엔 이맘 때면 선선하고 좋았는데 여름이 가기가 싫은가 봐요.ㅎ
언니도 추석 잘 보내세요.
또 뵈어요.^^

페크pek0501 2024-09-13 11:07   좋아요 4 | URL
책에는 라쇼몽을 수리하지 못해 황폐한 채 있게 되자 시체를 버리고 가는 풍습까지 생겼다고 해요. 위의 글에도 나오죠. 처음엔 시체를 버리기 위해 생긴 건 아니라는 거겠죠. 저도 해설을 보고 놀랐어요. 거기까지 생각해 내다니 감탄했죠. 예전 문학평론가의 책들을 읽곤 했는데 정말 잘 써요. 어느 소설가가 그러더군요. 자기도 생각해 내지 못한 자기의 무의식까지 언급해 놔서 깜짝 놀랐다고요.
올해 추석은 여름 옷을 입고 보내야 할 듯요. 가을 추, 자인데 말이죠. 스텔라 님도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또 뵈어용^^

서니데이 2024-09-12 2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도서관 사진 예뻐요. 실제로 가서 보아도 좋겠지만, 사진 보여주셔서 좋네요.
라쇼몽 책으로 읽었을 때, 이전에 들었던 영화의 내용과 달라서 이 책이 맞나 했었어요.
괴담같은 느낌이었고요.
읽은지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는데, 여름에 읽으면 서늘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13 11:11   좋아요 4 | URL
저기가 수원시에 있는 곳, 이에요. 애들이 정보가 빨라서 따라다니다 보면 별 데를 다 갑니다. 제가 외출을 싫어해서 안 따라나설 때가 많긴 하지만요. 류노스케의 소설 중 라쇼몽 못지않게 덤불속,이 압권이에요. 언젠가 그것도 소개해 볼게요. 오늘은 덜 더울 것 같은데 또 낮이 되면 모르겠어요. 서니데이 님도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4-09-13 22:16   좋아요 4 | URL
네, 영화 라쇼몽은 소설 나생문(라쇼몽)과 덤불 속 두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하더라구요.
오늘까지는 비가 와서 많이 더운 편은 아니었는데, 내일은 다시 더워질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페크님도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14 18:21   좋아요 4 | URL
예. 그렇다는군요.
이번 추석 연휴는 더울 것 같아 걱정입니다. 좀 선선해지면 좋겠어요. 서니데이 님도 즐겁게~~ 즐겁게~~ 보내십시오.^^

바람돌이 2024-09-12 21: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쇼몽은 영화가 워낙 유명해서 제목만 알았는데... 그 유명한 영화도 안봐서말이죠. 내용인줄은 몰랐는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네요.
추석 잘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13 11:14   좋아요 3 | URL
저 글 올리고 또 다른 해석이 떠올랐어요. 도덕과 양심의 마비로 이기심만 남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러니까 전쟁이 길어지면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 싶어 그런 세상을 경계하자는 작가의 메시지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더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hnine 2024-09-13 04: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해석이 여러가지로 가능한 작품이지요. 저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나서도 곰곰히 생각해야했던 책이었어요.

페크pek0501 2024-09-13 11:15   좋아요 3 | URL
예. 그런 소설이 있어요. 어떤 소설은 작가가 말하려는 게 뭔지 모르겠는데, 이 소설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 흥미로웠답니다. 나인 님, 추석 잘 보내세요.^^

청아 2024-09-13 05: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자의 해설이 제가 요즘 읽고 있는 불완전성의 원리의 내용과 맥이 이어지네요. 삶의 문이라는 의미에서 모든 것들과 연결될지도...잘 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4-09-13 11:16   좋아요 4 | URL
청아 님의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독서가 즐거운 이유가 뭔가 알아가는 재미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은 싫증이 안 생기나 봐요. 청아 님, 추석 잘 보내세요.^^

감은빛 2024-09-13 1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영화는 이 소설의 제목과 배경을 따온 것이고, 영화의 주요 내용은 같은 작가의 [덤불 속] 소설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져왔다고 하더라구요.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집도 분명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할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4-09-14 18:19   좋아요 3 | URL
그렇군요. ‘덤불속‘은 한 사건에 대해 목격자들이 각자 말을 다르게 하여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것으로 끝났던 것 같아요.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인간의 뇌는 편집 기능이 있다 등등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되는 소설.
사실 인간에게 편집 기능이 없다면 두뇌에 과부하가 걸리겠죠. 이 책의 몇 작품은 다른 책에서 이미 읽었는데 또 사게 됐어요. 겹치는 작품이 있지만 구매할 만한 책이어서요.
감은빛 님,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4-09-18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19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9-25 04: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명절 연휴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다른 날과 같아도 달력에 표시된 쉬는 날은 더 빨리 가기도 합니다 구월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낮엔 볕이 뜨겁지만 아침과 밤은 쌀쌀합니다 페크 님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4-09-27 13:19   좋아요 4 | URL
명절 연휴가 길게 느껴졌는데 언제나 끝이 있다는 게 좋네요. 명절을 끝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요. 요즘 날씨가 좋다고 느낍니다. 한낮엔 뜨겁긴 하지만 한여름 정도는 아니고 아침저녁으론 덥지 않으니 가을 같아요. 잠을 잘 때 얇은 이불을 덥고 잡니다. 밤엔 이불 없이 못 자겠더라고요. 가을인 거죠. 희선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가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Vanessa 2024-10-08 13: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타필드인가봐요??^^

페크pek0501 2024-10-09 10:5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수원시에 있는 건데 서울에서 멀지 않더라고요. 옷 쇼핑할 때 층층마다 매장이 넓어 저처럼 걷기 좋아하는 사람이면 딱인 곳이에요. 좋은 가을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미셸 드 몽테뉴, <에세 1>


그러니 누구나 수긍하는 견해로, 아이를 부모의 무릎 위에서 키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부모조차 자연적인 애정 때문에 물러지고 느슨해지니까요. 그래서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벌할 수가 없습니다. 또 아이는 거칠고 과감하게 키워야 하는데 그것을 두고 보질 못합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운동을 한 뒤 땀 흘리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오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 몽테뉴, 「에세 1」, 284쪽. 


더운 것을 마셔도, 찬 것을 마셔도, 다루기 힘든 말을 타도, 거친 검술 선생에 맞서 검을 쥐고 있는 것도, 생전 처음 화승총을 든 것도 차마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자식을 남자다운 남자로 만들려면 어렸을 때부터 봐줘서는 안 되고 의학이 명하는 규칙도 종종 어겨야 합니다.

- 같은 책, 285쪽.


⇨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벌하지 않고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 부모들은 자녀가 응석받이로 자라나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게 될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자식을 귀하게 여길수록 매를 들어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아이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그를 야외에서, 불안 속에 살게 하라.

호라티우스

- 같은 책, 285쪽. 


⇨ 몽테뉴(1533~1592년)는 자식을 키울 때 거칠고 과감하게 키우라면서 ‘불안 속에 살게 하라’는 호라티우스의 말을 인용한다. 불안 속에 살게 해야 불안을 극복할 힘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세상살이가 고달플 때를 대비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몽테뉴의 글을 읽으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며칠 전의 사건이 떠오른다. 그 사건은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한 남성이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고 20만 원을 결제했는데, 이 남성의 어머니가 "어떻게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그냥 치료하느냐"며 치과에 환불을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던 이 남성, 다 큰 23살 아들이었습니다. (중략) 이 남성의 어머니가 치과에 전화해서 "우리 아이가 뭘 안다고 보호자 허락 없이 그냥 치료하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과잉진료, 과잉청구한 거 아니냐?" "내가 환불받으러 갈테니 기다려라"라고 화를 냈다는 거죠.」(YTN, 2024.08.28.) 이후 어머니는 보건소에 신고했고, 치과에서는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아들이 23살이면 성인인데 아직도 부모가 애 취급을 한다면 도대체 아들이 몇 살이 되어야 애 취급을 하지 않을 것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부모의 보호 아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난 아들이 군대에 가면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또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학생인 자녀의 수강 신청을 대신해 준 학부모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부모의 지나친 과애가 자식의 인생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자녀들이 인생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부모는 옆에서 돕는 정도에 그쳐야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신체가 아직 유연할 때 모든 방식과 관습에 적응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욕망과 의지를 통제할 수 있는 이상, 젊은이를 과감하게 단련시켜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잘 적응하고, 필요할 땐 무절제와 과도함까지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젊은이가 시속(時俗)에 걸맞게 처신하게 하십시오.

- 같은 책, 308~309쪽.




그것을 알기만 하는 자보다 행하는 자가 이 가르침을 더 잘 이용하는 것입니다.

- 같은 책, 310쪽.


우리의 아이는 배운 것을 읊조리기보다는 몸으로 행해야 합니다. 배운 것을 행동으로 복습해야 합니다.

- 같은 책, 311쪽.


⇨ 알기만 하고 아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예로 양보와 배려를 미덕으로 알고 있으면서 폭력을 행사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학교를 중퇴하는 경우도 있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음주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으면서 음주 운전을 한다면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기가 받은 교육을 자랑거리가 아니라 자기 삶의 규율로 삼는 사람,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줄 알고,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키케로)인지 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대로 보여 주는 진정한 거울은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 같은 책, 311쪽.





....................

‘화요 발췌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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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9-03 1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도서관이군요. 사진으로는 여러번 봤는데, 한번도 가보지는 못했어요.
코엑스 공간이 크니까 책도 많을 것 같고, 좋을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 많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오후는 여전히 덥네요.
잘 읽었습니다.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04 22:04   좋아요 4 | URL
별마당 도서관, 굉장해 보였어요.규모가 크더라고요. 다음에 또 사진 올릴게요. 그게 더 멋진데 별마당 도서관, 이란 글자가 없는 사진이라 위의 사진을 먼저 올렸어요. 저는 코엑스 안 가고 수원에 있는 스타필드에 갔고 그 안에 별마당 도서관이 있더라고요. 스타필드가 곳곳에 많이 생겼는데 쇼핑하다 보면 탁 트인 공간이 매우 넓어서 많이 걷게 되어요. 이젠 뭐든 대형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편안한 맘으로 늦여름을 즐기십시오.^^

서니데이 2024-09-04 22:55   좋아요 4 | URL
수원의 스타필드에도 별마당 도서관이 있었네요. 사진만 보아도 좋으니까 다음에 또 사진 보여주세요.
페크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4-09-05 11:42   좋아요 4 | URL
예, 다음에 또 사진 올릴게요. 부족한 글을 사진으로 카바해 보겠다는 마음이 깔려 있는 거죠. 우하하~~~
오늘은 날시가 흐려 햇볕이 뜨겁지 않으니 늦여름 같이 느껴집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24-09-03 19: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충격이네요. 보호자의 동의...? 우리나라 부모의 수준이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죠?
인요한 씨 아시죠? 언더우드 3센가 하시는 분.
그분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기를 혁대로 때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좀 놀랐습니다. 그렇게 고상한 가문의 사람도 맞을 땐 무섭게 맞앗구나.
요즘엔 학생들이 학교에서 책상에 엎드려 자도 선생님이 제제를 못한다고 하더군요.
학생 인권 때문에. 그게 무슨 학생 인권이라는 건지 원.
저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남자 아이 어머니 학교에 오셔서 담임 선생님이 자기 아들래미 때려 달라고
부탁하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어요. 울나라 사람들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그런 부모가 과연 이 시대에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저도 몇년 전 별마당 도서관 간 적있는데 아직도 건재한가 봅니다.^^

페크pek0501 2024-09-04 22:10   좋아요 3 | URL
요즘 부모들 과잉보호가 심한 경우 많아요. 우리 아이 보내겠다고 미용실에 전화 와서 나중에 보면 그 아이가 수염이 난 성인이라잖아요. 학교 선생님이 때리면, 학부모가 찾아와 나도 안 때리고 키운 애를 당신이 뭔데 때리느냐고 한다고 하잖아요. 혁대로 때리는 건 좀 안 좋겠네요.ㅋ 옛날 학부모님들은 선생님 앞에서 예의를 갖추고 깍듯이 대했지요. 쇼핑 하실 일 있으면 스타필드, 한 번 가 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도 우리 애들 따라갔어요. 인터넷으로 스타필드로 검색하면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렇게 넓은 쇼핑몰은 처음 봅니다. 운동장급이에요.^^

꼬마요정 2024-09-03 2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도서관 여전하군요. 예전에 한 번 가봤는데 정말 멋지다 생각했어요. 이런 곳들이 계속 살아남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일하던 사무실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실수가 잦은 직원이 있었는데 일과 관련해서 문책하니까 직원 아버지가 직접 와서 난리 치다 갔죠. 결국 그만뒀는데 다 아버지가 처리해줬어요. 당황스러웠답니다. 그 직원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요...

페크pek0501 2024-09-04 22:15   좋아요 3 | URL
멋져서 저도 사진으로 남겼어요.
그런 아버지가 계셨군요. 요즘 아이들을 하나 둘만 키우다 보니 공주님, 왕자님으로 키워 문제인 것 같아요.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서 그들이 어른답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다른 한쪽에선 자녀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아동 학대가 있고... 꼬마요정 님, 오랜만의 방문이네요. 반갑습니당~~ 잘 지내십시오..^^

희선 2024-09-05 0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무살 넘었는데 부모 동의를 받고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다니... 수술이라도 하는 거면 동의 받아야겠지만... 예전에도 자식을 과잉보호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하지 않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군요 안전이 걱정돼서 그런 거겠지만... 어느 정도는 자식을 그냥 놔두기도 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희선

페크pek0501 2024-09-05 11:41   좋아요 2 | URL
요즘 아이들이 똑똑하긴 해도 성숙하지 못한 게 부모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인 듯해요. 자립심을 키워 주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데 말이죠. 저렇게 어머니가 이의를 제기하고 만약 돈을 찾아온다면 그 아들은 혼자 판단해서 하는 일을 주저하게 되고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지요. 그런 부모의 행동이 자식을 바보가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란 걸 인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 모든 부모들이 중심을 잘 잡아야겠어요.^^
 




1.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현대 사회는 낙인의 존재를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낙인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122쪽.


정상인은 낙인을 포용하는 듯한 몸짓을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낙인자가 자신과 동등한 인간임을 믿지 않는다. 미디어에 종종 나오는, 낙인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 통합 의례―고아들에게 키스하는 연예인,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정치인 등등―가 이를 잘 보여준다. ‘사회’를 대표하여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는 이 정상인들은 자기 앞에 있는 낙인자들을 아무나 덥석 껴안음으로써 자기가 그들에 대해 아무런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과시하려 한다. 하지만 정상인들이 이렇게 낙인자들의 몸을 함부로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관계의 불평등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 같은 책, 123쪽.


⇨ 낙인자들의 몸은 함부로 만져도 되는 것일까?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낙인자들을 이용해도 되는 것인가? 


낙인자의 편에서, 이러한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이다. 낙인자는 정상인들이 변덕스럽게 베푸는,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친절을 받아들여야 한다.

- 같은 책, 123쪽.


⇨ 낙인자에게는 남의 친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단 말인가? 남의 친절을 황송하게 받아야만 하는가?


소아마비를 앓은 어떤 작가는 눈이 오는 날 이웃이 찾아와 가게에서 사다 줄 물건이 없는지 물어보면, 필요한 게 없더라도 부탁할 물건을 생각해낸다. 상대방에게 베풀 기회를 주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 같은 책, 124쪽.


⇨ 낙인자가 오히려 정상인을 배려해 주는 셈이다. 이것은 낙인자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2.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김현경 님의 글을 읽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글이 있었다. 정희진 님의 글이다. 그 글을 옮겨 본다. 


2022년 한국의 대통령 윤석열 부부가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한 때 일이다. 김건희 여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14살 소년의 집을 직접 찾아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정상 배우자들의 앙코르와트 방문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대신 비공개로 개별 일정을 진행한 것이었다. ‘캄보디아(의 이미지)’에 동일시하는 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제 캄보디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분노했다. 동시에 이는 평범한 시민의 고달픈 일상이기도 하다. 타인이나 집단이 나를 마음대로 재현(묘사, 평가, 규정)할 때는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야 할까. 

-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43쪽.


캄보디아에서 대통령 부인의 성녀(聖女) 코스프레는 윤석열 정권의 성격을 압축한다. 더 놀랄 일이 무엇이겠냐마는, 그래도 놀랐다. 나는 윤 대통령 부부가 ‘나쁜 사람’이거나 ‘극우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상한 경우라고 본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이런 커플은 없었다. 만일 미국의 영부인 질 바이든이 한국을 방문해서 환경이 좋지 않은 보육원을 방문해 사진을 찍어 널리 알린다면? (중략) 이는 의전이고 국격이고 운운할 것도 없는, 정신 나간 권력자의 기이한 행동이다.

- 같은 책, 44~45쪽.


⇨ 만약 미국의 영부인이 한국을 방문하여 환경이 좋지 않은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 널리 알린다면, 한국 국민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3. 














김지우,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위의 두 권의 책은 김지우 님의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라는 책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에는 여성 장애인인 저자가 비장애인 남성을 사귀는 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당연히 내가 끈질기게 구애했을 거라는 사람부터, 우리의 관계가 그의 일방적인 희생일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나와 사귀는 것은 굉장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며, 그걸 이겨내(?)고도 내 곁에 있는 그는 너무나도 뛰어난 인품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 김지우,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154쪽.


카페에서 모르는 사람이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우리의 음료 값을 대신 내겠다고 말했을 때, 그 사람을 만류하며 내 카드로 계산을 마친 뒤 카페를 나오면서 전혀 상관없는 우주에 애인을 초대한 기분이 들었다. 비장애인 남성인 애인은 내가 아니면 아마 평생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 순간 나는 애인을 굉장히 힘든 길로 이끈 사람이 되었고, 그는 자동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위험한 우주에 뛰어든 착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와 내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으면 모두가 우리를 돌아보는 일상에서 그런 시선을 견뎌‘주는’ 것이 가끔 ‘고마웠’다. 나는 우리 사이에 위계를 짓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 같은 책, 156쪽.


⇨ 이럴 땐 주위 사람들이 모른 척하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장애인도 연애합니다.” 이런 당연한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 같은 책, 157쪽.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먼 것 같다. 낙인자든 장애인이든 그 누구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 때는 그것이 오히려 상대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헤아려 봐야 한다. 이때 본인이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예의나 배려를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 때문에 어느 누구도 상처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 참고 사항 :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쓰는 ‘정상인’이라는 말은 삼가야 한다. 장애인이 비정상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반대 의미로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좋다. 여기서는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 위해 ‘정상인’이라는 말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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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20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08-20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인자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네요. 저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배려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부족한 거 같습니다ㅠ

페크pek0501 2024-08-20 19:53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낙인자, 라는 낱말을 저도 위의 책에서 처음 접한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에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지요. 낙인, 이라는 낱말은 많이 쓰지만요... 저도 장애인 차별, 인종 차별 등에 대해 각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누구나 맘 속으로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거든요.^^

2024-08-20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2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젤소민아 2024-08-21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술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만든 단어라 하더라도 ‘낙인자‘, ‘정상인‘은 듣기에 불편하네요 ㅠㅠ *참고,를 통해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역시, 페크님!

페크pek0501 2024-08-21 11:23   좋아요 0 | URL
참고 사항을 눈여겨보시고 댓글에 남겨 주시고... 역시 젤소민아 님!
감사합니다.

희선 2024-08-29 0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글에서 정상인이라는 말이 좀 걸리기는 했습니다 왜 그렇게 썼을지, 낙인자와 정상인이라니... 그 부분은 좀 더 생각하고 썼다면 좋았을 듯합니다 비장애인도 언젠가 장애인이 될 수 있죠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저도 다르지 않네요 아니 몸은 괜찮아도 마음은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도와야 하는 건 아닌 듯해요 도와달라고 한다면 도와주는 게 좋을 듯... 도와달라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때는 물어보는 게 좋을지... 그런 거 잘 못하는군요


희선

페크pek0501 2024-08-29 15:44   좋아요 1 | URL
그렇죠? 걸리죠? 비장애인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희선 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여름이 서서히 가고 있는 듯합니다. 아침과 밤엔 덜 더워요. 얼른 늦여름과 초가을이 왔으면 좋겠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그래, 전시회는 언제가 될 것 같아?” 나는 물었다.

“모르겠어.” 마야가 말했다. “아직 구체화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이런저런 서류 작업이라든가, 준비할 게 굉장히 많을 테고―”

“그래도 어쨌든 전시회가 열린다는 거잖아.”

“그렇지.” 마야는 말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래.”

나는 잔을 내려놓고 마야를 바라보았다. 벌써 마야가 떠나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빛이 어딘가 달랐다. 아마도 그때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이미 가버린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낀―내 인생의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마야가 내게 다가왔다. “있잖아, 거기 가면 네 부모님 댁에서 지내도 되겠다.”

“물론이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고 분명 마야도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점진적인 멀어짐은 그해 여름 내내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지했다.

- 「사라진 것들」 중 ‘넝쿨식물’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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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14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