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말하는 그 착한 일들을 실천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쾌락 때문이야.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지. (중략) 자네가 거지에게 동냥을 하면 그건 자네 자신의 쾌락을 위한 거야. 내가 위스키 소다를 또 한 잔 마시는 게 나 자신의 쾌락을 위한 것이나 같아'.-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중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다가 이 글을 만났다. 주인공 필립에게 시인 크론쇼가 한 말이다. 필립이 쾌락이라는 표현에 반감을 나타내자 크론쇼는 '행복'이라 하지 않고 '쾌락'이란 말을 사용하겠다며 그 이유는 쾌락이 사람의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겼던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상기시킨다.
우리 인간이 착한 일들을 실천하는 이유가 쾌락 때문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악행은 물론이고 선행조차도 쾌락이라는 이로움 때문에 한다. 쾌락을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또는 흐뭇함으로 바꿔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인에게 생일 선물을 주었다면 그것이 즐거워서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서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돈을 주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기분이 좋아져서다.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금을 냈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기분이 좋아져서다.
이번엔 자원봉사자들이 홍수로 침수된 지역에서 피해 복구를 도우며 고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들에겐 어떤 이로움이 있을까? 일례로 흐뭇함이라는 이로움이 있을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듯싶다. 하나는 힘들지만 봉사 활동을 하면서 그 자체로 흐뭇함을 느끼는 부류다. 또 하나는 힘들지만 봉사 활동이 끝난 뒤에 흐뭇함을 느끼는 부류다. 마치 집안 청소를 마친 후 흐뭇함을 느끼듯이 말이다. 혹자는 자신이 하고 싶어서 봉사를 하는 것이니,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이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남을 이롭게 했으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남을 이롭게 하는 일에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세상사이다. 누구든 앞으로 자신이나 가족이 암 선고를 받거나 교통사고가 나서 하루아침에 불행의 나락에 빠질지 모른다. 그런 힘든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안이 되리라. 만약 그런 자들이 없다면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리라.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까운 친구를 만날 때 밥 사주는 일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친구에게조차 선심을 쓸 줄 모른다면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악행을 하든 선행을 하든 자기를 위한 것이니 이기심의 발로인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선심을 쓰는 것도 이기심의 발로다. 선심을 쓰면 따르는 사람이 많아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높은 반면, 선심을 쓸 줄 모르고 인색하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여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인간관계에서는 손해 보는 것이 이익으로 돌아오고 이익을 보는 것이 손해로 돌아온다. 그런데 인색하여 자기가 불행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이 이기심의 발로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이익일 테니.
흥미롭게도 긍정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타적 행위는 행복 지수를 높여 준다고 한다. 가령 기부를 비롯해 양보, 배려, 친절, 봉사, 희생 등의 이타적 행위가 남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자기에게도 이로운 셈이다. 그러므로 이타심을 갖는 게 이롭겠다. 선행을 하는 게 이롭겠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도 될 듯하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남을 해롭게 하지 않고 선행을 베풀려고 노력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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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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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30817010003431
(이 글과 관련한 책)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1>, 354쪽에서 발췌하여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