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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애인, 친구, 책을 비교한다면

 

 

예전에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맞히는 퀴즈가 있었다. 그중 재밌는 퀴즈가 있었는데 ‘평생 애인 없이 살기’와 ‘평생 친구 없이 살기’ 중에서 어떤 것이 낫다고 사람들이 선택하는지를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답은 ‘평생 애인 없이 살기’였다. 조사한 사람들 중 70% 이상의 사람들이 애인보다 친구를 더 중요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애인에 비해서 친구가 더 자신에게 잘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 같다. 애인과 싸우거나 결별할 때 위로해 주는 것은 친구인 경우가 많고 또 외로울 때도 위로를 해 주는 것은 친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애인은 가끔씩 적대적 관계에 있게 된다고. 그래서 애인은 늘 내 편일 수 없다고.

 

 

만약 사람들에게 애인, 친구, 그리고 여기에 책을 넣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평생 애인 없이 살기’, ‘평생 친구 없이 살기’, ‘평생 책 없이 살기’ 중에서 가장 끔찍한 삶을 고르라면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이 중에서 ‘평생 책 없이 살기’가 가장 끔찍할 것 같다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나도 여기에 속한다. 내게 책이 없는 세상은 살맛 없는 세상이다.

 

 

애인은?

 

 

애인이 있어서 좋은 점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쁨과 달콤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쁜 점은 상대에 대한 의무가 따른다는 점이다. 연애를 하면 언제든 상대가 불러내면 아무리 외출이 귀찮은 날에도 만나러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나가지 않는다면 상대는 섭섭해 하거나 화를 낼 것이다. 또 생일같이 특별한 날은 꼭 챙겨 줘야 하고 아플 땐 더 마음을 써 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 물론 사랑에 빠지면 그런 의무를 다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여러 통계에 따르면 오래 사귈수록 달콤한 설렘도 점점 퇴색한다고 하니 오래 사귀면 애인으로 인해 귀찮게 여겨지는 일이 생길 듯하다. 결국 두 사람 중 더 좋아하는 쪽이 있기 마련이고, 더 성의 없는 쪽이 있기 마련이어서, 한쪽은 화를 내고 다른 한쪽은 화를 풀어 줘야 하는 관계가 되기 쉽다. 혹자는 ‘연애’하면 떠오르는 게 ‘스트레스’라고 했다. 연인 관계에서는 싸움이 많아지기 때문이란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주는 게 애인이란 존재가 아닐까 한다.

 

 

친구는?

 

 

친구는 애인에 비해 기쁨을 덜 주지만 스트레스도 덜 준다. 애인에 비해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이 많지 않으니 싸울 일도 많지 않다. 친구의 좋은 점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준다는 점이다. 애인은 한동안 만나지 않으면 이별할 확률이 크지만 친구는 소원하게 지내다가도 언제든 만나면 예전의 친숙했던 친구 관계로 돌아가게 된다. 단점은 무관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보다는 애인이나 가족을 더 챙기기 때문에 섭섭할 때가 생길 수 있다.

 

 

책은?

 

 

그러면 책은 어떠한가. 애인이나 친구를 만나는 일과 비교하면 책을 만나는 일엔 의무도 없고 섭섭함도 없다. 그저 흥미로운 책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생길 뿐이다. 싫증이 날 새가 없이 새 책은 매일 쏟아져 나와 설렘이 이어진다. 한번 책의 달콤한 열매를 맛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자연히 책의 세계로 빠져 들게 된다.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도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으며(몽테뉴), 독서하는 사람은 참된 벗, 친절한 충고자, 유쾌한 반려자, 충실한 위안자가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M. T. 바로).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자질

 

 

나에게 재능이 있다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자질이다. 나에게 그 자질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책을 읽으면 어떠한 잡념도 사라지고 책 내용에 곧장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한 나는 행복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길 것이다. 행복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해 시기하지 않고 너그러워진다는 점이다. 시기심이란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므로,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공연히 시기심을 갖지 않는다.

 

 

행복한 독서광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돈 많은 친구를 만나면, “넌 부자가 되거라, 난 책으로 행복할 테니.”라고. 옷을 멋지게 입는 친구를 만나면, “넌 멋쟁이가 되거라, 난 책으로 행복할 테니.”라고. 나에게 만약 ‘부자인 것’과 ‘책이 주는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책이 주는 행복’을 택하리라. ‘멋쟁이인 것’과 ‘책이 주는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책이 주는 행복’을 택하리라.

 

 

 

책이 넘쳐서 책장에 못 들어가고 있는 책들

 

 


책을 보면 참 잘생겼다고 느낀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볼 때면 또는 책이 방바닥에 쌓여 있는 것을 볼 때면 나는 그것의 잘생긴 외양에 감탄하곤 한다. 이보다 더 잘생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전자책의 출현으로 인해 종이책의 종말을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종이의 질감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에 의하면 독서의 두 가지 동기는 독서를 즐기려는 것과 읽은 책에 관해 자랑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책에 매료된 적이 있는 사람은 즐거움을 얻으면서 동시에 자랑거리를 갖게 하는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책과 관련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책과 관련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고 싶은 책을 고르는 것/ 새 책의 첫 장을 펼치는 것/ 새 책의 빳빳한 질감을 느끼는 것/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책을 읽는 것/ 책에서 외우고 싶을 만큼 좋은 구절을 발견하여 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 책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것/ 독서광인 친구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책과 관련하여 내가 싫어하는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책이 구겨지는 것/ 내가 아끼는 책을 누군가가 빌려 달라고 하는 것/ 책을 재밌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외출할 일이 생기는 것/ 아끼던 책이 오래되어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는 것/ 책 읽으며 안구건조증이 느껴지는 것/ 전자책의 편리성 때문에 종이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신문 기사를 보는 것.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6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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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19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장에 꽂지 못한 책들은 저렇게 탑으로 만들어놨어요. 저러면 책 한 권 빼기가 귀찮아요. 특히 책탑 제일 아래에 있는 책을 꺼낼 때가 난감해요. 그리고 책탑 사이사이에 먼지가 쌓여 있어요. 가끔은 책탑 전부를 해체하고 바닥을 청소해줘야 해요. ^^;;

페크(pek0501) 2019-06-21 21:4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렇게 탑으로 쌓아 놓는 이유는 먼지가 덜 앉기 때문이에요. 보기에 맨 위의 책만 먼지가 앉을 것 같잖아요. 하지만 님이 말씀하신 대로 책 사이사이에 먼지가 많아요. 자주 닦아야 합니다. 예전엔 유리로 된 문을 닫는 책장을 썼어요. 다시 책장을 산다면 유리 문이 있는 책장을 사야 할까요. 그런데 책을 꺼낼 때마다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게 불편하지요.

다시 보지 않을 책은 버려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책 사랑... 뭐든 사랑이 지나치면 난감한 일이 생깁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moonnight 2019-06-19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애인 친구 모두보다 책입니다 ㅎㅎ;; 와인 한 잔 따라놓고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페크(pek0501) 2019-06-21 21:49   좋아요 0 | URL
사랑이 뭔지 알게 되면 애인이란 존재도 시시해지지요. 이혼한 사람들도 대부분 한때 사랑해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생각하면 사랑이니 애인이니 하는 게 참 시시해집니다.

책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책에 한번 빠져 버린 사람은 영원할 것 같습니다.
와인 한 잔 따라놓고 책... 멋지십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독서 시간이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문나잇 님.

2019-06-19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1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06-19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방도 페크님처럼 책으로 둘러쌓여 있어 잠잘곳도 마땅치 않아요ㅜ.ㅜ

페크(pek0501) 2019-06-21 21:54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오랜만입니다. 건강 괜찮으시지요?

잠잘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라니 상상이 갑니다. 책을 위한 방인지 사람을 위한 방니지 모를 지경이겠습니다. 그래도 행복하게 느껴지는 걸요.
감사합니다.

맑은 생각 2019-06-22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없다면 마음까지 없다.ㅎㅎ

페크(pek0501) 2019-06-25 11: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이 글의 좋아요 수가 높은 것은 이곳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알라딘이어서일 거예요.
댓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6-2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책장이 멋지네요. 책탑의 책도 적절한 크기로 잘 정돈된 느낌도 들구요. 제 책탑은 곳곳에 쌓여있다보니 서재의 멋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ㅜㅜ

페크(pek0501) 2019-06-25 11:58   좋아요 1 | URL
책장이 오래되었는데 싫증이 나지 않네요. ㅋ 똑같은 책장 세 개를 붙여 놓은 것입니다. 구석에 다른 책장이 하나 더 있어서 기억 자로 책장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건 찍히지 않았어요. 그건 다음 기회에 공개하기로 하죠.
책탑이란 말이 멋지군요. 그냥 그렇게 쌓인 것이지 따로 연출하진 않았어요.
사진이 잘 나온 것이지 실제로 보면 깔끔하지 않습니다. ㅋ
사진의 효과가 성공인 셈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9-06-25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에도 책상위에 책이 많이 있는데, 갈 곳이 없어요. 그렇다고 이전에 산 책을 버릴 수도 없고요. 그 책도 안 읽은 책이 거의 많거든요. 책은 좋은데, 계속 신간이 많이 나오니 사게 되네요.^^;
페크님, 오늘 서울은 32도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더운 하루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오후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7-01 13:45   좋아요 1 | URL
아직 견딜 만한 더위입니다. 곧 폭염이 시작되겠죠. 눈에 문제가 생겨서- 결막염 등 - 안과에 다니고 있고 그래서 책을 끊고 오디오북을 즐겨 들었어요. 오늘 안과에 가서 다 나았는지 확인하고 올 생각입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한 삶을 사는 것에 - 평범한 삶에 - 감사하고 싶은 날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성에 2019-06-28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사랑, 하면 저도 할 말 많습니다.
먼 대학시절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샀던 책을 지금 까지도 끌어 안고, 벽 한면을 가득 채운 한글 책들을 어떻게
대물림하나 하는 것이 장차 난감한 이국 생활입니다.
글을 쓰려면 여러 자료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도와주는 내 자식같이 사랑스러운 책들,
저의 자랑은 내 인생 성장과 고락을 함께 묵묵히 지켜주는 나와 함께 묵어가는 책들입니다.

페크(pek0501) 2019-07-01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이국 생활에는 그런 고민이 있겠군요.
저는 자식들에게 제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깨끗한 책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나머지 책은
고물상에 그냥 넘겨 주라고 할 참입니다. 이미 말한 바 있어요.

그러니까 살면서 버리기, 가 중요할 듯해요. 버릴 줄 아는 것도 실천하면서 배워 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얼마전, 삼사십 권을 버렸는데 더 버려야 할 책이 있는데 쉽지 않네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자식 같은 사랑스러운 책들이라서...

하루하루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 글을 왜 쓰는가

 

 
지금의 이 시대는 작가만 글을 쓰는 시대가 아니다.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책을 낸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 사람마다 글 쓰는 이유가 각각 다를 것이므로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중 두 가지만을 뽑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인가, 재미있어서인가. 글을 왜 쓰는가.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첫째,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는 목적 중 하나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책을 통해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글 쓰는 사람은 남에게 읽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여기엔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이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 또는 지적 능력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이렇게 썼다. “의젓한 인간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답 –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최인호 작가는 오래전 한 일간지(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사뮈엘) 베케트니 이런 작가들이 인터뷰를 안 하는지 알겠어. 인터뷰라는 건 자기 미화야. 100% 자기 미화. 난 옛날부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동시에 싫었어. 나온 기사를 보면, 진짜 내 얘기가 아니야. 남에게 보여지는 내 얘기였어.”


 
여기서 ‘자기 미화’란 ‘자기 자랑’인 셈이다. 신문 인터뷰뿐만 아니라 TV 출연에서도 ‘자기 자랑’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은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며 자신의 집, 부부 금실, 음식 솜씨 등을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한결같이 집은 멋지게 꾸며져 있고, 부부 금실은 좋으며, 음식 솜씨는 최고임을 보여 준다. 결국 ‘자기 자랑’이다. 의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가 TV에 출연해 하는 일은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강점을 알리는 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어느 의사는 유명 인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 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정치가가 출연하면 그가 출마할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하여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작가가 출연하면 그가 쓴 책의 판매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랑하고 싶은 욕구는 TV에 출연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주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주부들이 모이는 친구 모임엔 남편 자랑과 자식 자랑이 단골 화젯거리가 된다.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에 이런 글이 있다. “평균적인 유부녀는 다른 유부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사는 듯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그들의 남편보다 부유하고 자기 자녀들이 그들의 자녀들보다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고자 애를 쓴다. 부유한 유부녀라면 집안 관리와 인테리어에 있어 이웃들보다 나은 취향을 과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TV 출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보통 주부들이나 모두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어떤 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모두가 갖고 있는 것이지 글 쓰는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다시 말해 ‘글을 왜 쓰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서'라고 볼 수만은 없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자신을 자랑할 방법은 글쓰기말고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둘째, 글쓰기 자체의 재미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글쓰기를 악기 연주와 비교할 수 있다. 누구나 피아노나 기타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결국 그 악기에 대한 흥미를 가진 자만이 악기를 다룰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도 글 쓰는 재미를 아는 자만이 글을 쓸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쓰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글쓰기 그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져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만 글을 쓴다면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일기의 독자는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도 일기를 쓰는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글쓰기 자체가 좋아서 쓰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볼까 봐 꼭꼭 숨겨 둔다. 이럴 때 일기는 나만의 비밀스런 세계 속에서 작은 행복을 갖게 한다. 매일 쓰는 건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씩 꾸준히 써 온 게 삼십 년 이상이 되었다.


 
글쓰기엔 분명히 문장과 문단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적합한 낱말의 선택, 그것들의 조합, 직유나 은유로 문장을 묘사, 그것들의 배치, 문단 구성 등을 하는 행위는 마치 퍼즐놀이를 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노트에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컴퓨터로 글을 쓸 때 자판을 두드리는 재미가 있다.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재밌는 놀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들이 글을 쓰는 큰 동기를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로 ‘미학적 열정’으로 인한 즐거움을 들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 혹은 말의 아름다움과 말의 적절한 배열이 지니는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에 주는 영향을 인지하는 즐거움, 좋은 산문의 단단함을 알아보고 좋은 이야기의 리듬을 인지하는 즐거움,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그래서 놓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어떤 경험을 공유해 보려는 욕망.”


 
확실히 글쓰기에는 강한 매력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왜 연애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연인들은 ‘만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라고 말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서’ 글을 쓴다고 할 수 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겐 이 세상에서 글쓰기만큼 유혹적인 일이 없다. 만약 더 유혹적인 게 있다면 글 쓸 시간에 그것을 할 것이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들은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도 지금 이 순간 행복 속에 있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4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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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책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

 

 

 

 

 

 

 

 

 

 

 

 

 

 

 

 

 

 

 

 

 

 

이수역에 ‘알라딘 중고 서점’이 생겼다고 해서 가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매장이 컸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집에서 가까우니 자주 놀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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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은 연애가 참 어렵다고 말한다. 왜 어려울까. 연애가 어려운 이유 중에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점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건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아서다.

 


사람에 따라 어휘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몰라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르는 이야기가 있다. 김유정 저, <동백꽃>이란 단편 소설이다. 점순이(여자)는 ‘나(남자)’에게 굵은 감자 세 개를 주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점순이가) “느 집엔 이거(감자) 없지.”하고 생색내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가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하고 말하며 그 감자를 어깨 너머로 쑥 밀어버리자, 점순이는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나중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었다. 점순이가 눈물까지 흘려도 ‘나’는 여전히 점순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느 집엔 이거 없지.”하는 소리를 ‘나’는 “너네는 가난해서 감자 없지?”하는, 약을 올리는 말로 들었을 듯싶다. 점순이가 ‘나’에게 감자를 준 것은 “내가 너를 좋아해서 너를 주려고 감자를 가져왔단다.”라는 의미였는데 말이다.

 

 

“우리는 상대가 만일 우리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 행동하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라고 존 그레이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말한다. 존 그레이는,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에는 똑같은 어휘라고 할지라도 그 어휘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여자가 “나는 좀더 로맨틱한 기분을 느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남자는 “그럼 당신은 내가 로맨틱하지 못하다는 말이오?”로 해석하는데, 이것을 제대로 해석하면 “당신은 정말 로맨틱한 사람이에요. 이따금씩 불쑥 꽃다발을 내밀어 나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데이트를 신청해 주지 않을래요? 그럼 나는 너무 행복할 거예요.”의 뜻이란다.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뜻을 안다 하오

 


<장자>, 추수편에 이런 얘기가 있다. 호숫가에서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물고기가 정말 즐거운 것인지 장자가 모르는 것처럼 혜자 역시 타인인 장자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 우리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즐겁게 노는 것인지, 좋아하던 짝과 헤어져 슬퍼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인지, 먹이를 먹고 난 뒤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운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우리 맘대로 해석할 뿐이다. 어디 물고기뿐이랴. 참새가 짹짹거리는 것도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소리인지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서로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물고기’나 ‘참새’에 비해 훨씬 쉬워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진실을 알기란 헤엄치는 물고기나 짹짹거리는 참새의 기분을 헤아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므로 다른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연인 사이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지난 주말 잘 보냈어요?” 여자가 웃으며 대답한다. “아주 잘 보냈어요.” 이 대답에 남자는 기분이 나빠진다. 남자는, ‘어떻게 나를 만나지 않고도 잘 보낼 수 있는 걸까, 내가 보고 싶지도 않았다는 말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그리워해서 주말을 자신처럼 우울하게 보내길 바랐던 것. 여자는 남자의 표정이 좋지 않자 역시 기분이 상한다. ‘나랑 함께 있는 게 싫은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진작 여자가 주말을 왜 잘 보냈는지를 남자에게 말해 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여자는 주말에 이 남자를 만날 때 입을 옷을 사느라 쇼핑하며 즐겁게 보냈던 것이다. 누구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옷을 고르는 시간이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소개로 몇 번을 만난 대학생 남녀. 여자가 남자에게 말한다. “우리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 남자는 이 말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나와 애인이 되기는 싫단 말이군.’ 그런데 그녀의 진의는 그 남자를 신뢰하고 좋아해서 계속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라고 했으며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결국 현상만 보고 그 본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하는 말의 뜻을 잘못 알아듣기 일쑤다. 그래서 서로 오해하고 상처받고 다투고 급기야 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의 마음엔 이미 고정관념과 편견이 들어 있는데다가 제멋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마음을 살필 때는 내가 짐작한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하리라.

 

 

 

원문은 이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yechongbon?Redirect=Log&logNo=221531449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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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책들)

 

 

 

 

 

 

 

 

 

 

 

 

 

 

 

 

 

김유정, <동백꽃>
점순이가 눈물까지 흘려도 ‘나’는 여전히 점순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느 집엔 이거 없지.”하는 소리를 ‘나’는 “너네는 가난해서 감자 없지?”하는, 약을 올리는 말로 들었을 듯싶다. 점순이가 ‘나’에게 감자를 준 것은 “내가 너를 좋아해서 너를 주려고 감자를 가져왔단다.”라는 의미였는데 말이다. 
 

 

 

 

 

 

 

 

 

 

 

 

 

 

 

 

 

 

 

존 그레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우리는 상대가 만일 우리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 행동하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

 

 

 

 

 

 

 

 

 

 

 

 

 

 

 

 

 


 

장자, <장자>
<장자>, 추수편에 이런 얘기가 있다. 호숫가에서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롭게 놀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들의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나?”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말이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라고 했으며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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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8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08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말에 확대 해석하는 사람을 친구나 직장 동료로 만나면 정신적으로 피곤해요.. ^^;;

페크(pek0501) 2019-05-09 13:13   좋아요 0 | URL
너무 나가는 사람을 말함이겠지요? 별 뜻 없이 한 말에도 귀를 곤두세우면 피곤하죠. 둥글둥글한 사람을 우리가 좋아하는 이유가 편안함 때문이겠죠.
남의 말이 자기를 겨냥할 말처럼 들려 귀에 거슬리면 다음부터 조심해야겠다, 하는 정도로 끝맺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기가 좋은 날 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은빛 2019-05-09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논의해야 할 일이 많은 저로서는 무척 공감가는 글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이 타인과 소통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차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이어진 날에는 정말 피곤해요.
이게 육체 노동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좋아요˝를 백만개쯤 누르고 픈 글입니다. ^^

페크(pek0501) 2019-05-10 13:01   좋아요 0 | URL
정말 백만 개를 누르셨나 봅니다. 좋아요 수가 많은 걸 보니... ㅋ
같은 사물을 봐도 각자가 다른 느낌으로 보니 타인과의 소통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는데 말이죠.

어려운 일을 하시고 사시네요. 전 그래서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단순 노동이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사실 고단하죠.

요즘 계속되는 좋은 봄 날씨로 저처럼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제목 : 남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만약 어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상대에게 선물 공세로 환심을 사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것은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상대가 선물을 준 ‘사람’이 아닌 ‘선물’만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돈이 들지 않고 효과도 만점인 것.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답을 구해 본다. “특별히 예쁘거나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랑 받는 방법은 만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의식적인 아부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과 어울리는 순간을 즐기고, 무엇보다 그들이 과시하는 능력을 즐기는 것이다.”

 

 

러셀에 따르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은 ‘상대가 과시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자기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 연인에게 열광했던, 또는 현재 열광하는, 또는 미래에 열광할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우리가 친구보다 연인에게 열광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연인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멋지게 봐 줌으로써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니까.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화자는 연인인 상대의 두 앞니 사이가 벌어진 것을 장점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예쁘다고 느낀다.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치아의 완벽성을 독창적으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보았다. 나는 그녀의 치아 사이의 틈에 그냥 무심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예뻐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눈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두 앞니 사이의 틈’에서도 독창성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게 바로 연인의 눈이다. 그래서 자신을 최대한으로 아름답게 보는 ‘연인’이 그렇지 않은 무심한 ‘친구’보다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TV 드라마에서 딴 여자와 바람피우는 남편의 단골 대사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그 여자는 나를 남자로 느끼게 해 줘.”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 여자는 남자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던 나를 남자로 느끼게 해 줘.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남자로 말이야.’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아내와 함께 있는 것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을 잘 봐 주는 사람이 좋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무조건 그 사람이 자신을 잘 봐 주기 때문인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매력 때문이리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똑같은 조건이라면 자신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정도로 매력적인 두 사람이 있다면 그중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다. 우월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니까.

 

 

이런 예를 들어 본다. 만약 자신이 중학교 때의 성적은 상위권에 속하고 고등학교 때의 성적은 하위권에 속한다면 중학교 동창회와 고등학교 동창회 중 어디를 가고 싶어 할까. 두 동창회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있다면 어디로 발길을 돌릴까.

 

 

답은 뻔하다. 중학교 동창회에 갈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열등하게 보이는 자리보다 우월하게 보이는 자리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인정해 주지 않는 친구보다 인정해 주는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상대가 ‘당신을 만나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 같아.’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면 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누구나 자신을 초라하게 보는 사람을 싫어하고 자신을 멋있게 보는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1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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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넣은 인용문)

 

 

 

 

 

 

 

 

 

 

 

 

 

 

 

 


버트런드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
“특별히 예쁘거나 뛰어나지 않더라도 사랑 받는 방법은 만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의식적인 아부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과 어울리는 순간을 즐기고, 무엇보다 그들이 과시하는 능력을 즐기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치아의 완벽성을 독창적으로 그리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한 것으로 보았다. 나는 그녀의 치아 사이의 틈에 그냥 무심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예뻐했다.”

 

 

 


두 권 모두 내가 아끼는 책이다.


특히 《런던통신 1931-1935》는 요즘 재독하고 있을 만큼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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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한쪽에서만 보시나요?

 

 


우리는 흔히 ‘자연 보호’라는 말을 사용한다. 인간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는 일이 많아 생겨난 말이다. 자연의 소중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연을 보호하자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젊음의 탄생>에서 이어령 저자는 ‘자연 보호’라는 말은 잘못된 말임을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 왔지 언제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 왔느냐고 말하며, ‘자연 보호’라는 말 속에 이미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인 인간의 오만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한다. 사실 ‘자연 보호’란 말은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긴 말이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며 궁극의 목적이라고 여겨서 인간을 주체로 보고 자연을 객체화시킨 결과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에 익숙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장애가 없는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말하는 것에도 익숙하다. 그래서 몇 년 전만 해도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누어 장애인에 대해 비정상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백인 중심의 사고가 ‘유색 인종’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역시 흑인 중심에서 보면 백인은 ‘무색 인종’이 되는 것이다.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요시하는 뜻을 은연중 나타내고 있는 말들에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드러난다. 즉 강자가 되는 쪽의 말이 널리 사용된다. 이렇게 양쪽에서 보지 않고 한쪽에서만 보는 시각은 한쪽을 유리하게 만들고 다른 한쪽을 불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자연의 일부인 곤충에 대해서도 매미 쪽에서 보지 않고 인간 쪽에서만 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매미의 삶에 대한 시각이 그렇다. 매미는 보통 유충으로 6~7년 동안 땅속에서 지낸 뒤에 지상으로 올라와 성충이 되어 1~3주 만에 죽는다. 즉 유충으로 길게 살다가 성충이 되어서는 짧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지상에서의 짧은 생을 살기 위해 긴 시간을 지루하게 땅속에서 살았다는 것으로 해석해 놓은 여러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매미의 중요한 삶을 땅 위의 삶으로 보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매미에게 있어서 중요한 삶은 유충으로 사는 땅속에서의 삶이라고 말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게 그들의 운명이듯이 매미는 땅속에서 사는 게 그들의 운명이라고 볼 수 있다. 개체 변이를 염두에 둔다면 매미가 지하에서 살기엔 성충보다는 유충으로 사는 게 환경에 적응하기 편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매미가 지상의 짧은 삶을 위해 지하에서 긴 시간을 지루하게 보냈다는 것은 인간의 난센스일 수 있다. 매미의 전성기는 유충으로서의 삶일 수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 인간도 전성기는 장년기가 되기 전의 아동기와 청년기가 아닐는지.

 

 

한쪽에서만 보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가족이든 친구든 타인에 대해 배려가 없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서로 자기 입장에서만 보는 시각 때문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친구 관계에 있는 갑이란 사람과 을이란 사람이 동업하여 회사를 차렸다. 그런데 서로 자신이 회사를 위해 한 일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한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갑은 내 자본금이 을의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간 회사이니 자기의 덕이 크다고 생각하고, 을은 이 회사를 차리자고 아이디어를 맨 처음 낸 것은 자신이라며 자기의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갑은 자신이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니 자기가 을보다 더 많이 일한다고 생각하고, 을은 회사에 큰 수익을 올린 계약을 자신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기 쪽에서만 보니 동업을 하면 깨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현상은 두 사람이 만나는 친구 관계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자동차를 타고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함께 먹고 헤어졌는데, 한쪽에서는 자신이 점심을 샀으니 다음에 만나면 상대방이 점심을 사야 한다고 여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점심값보다 자신의 자동차 기름값이 더 들었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자신은 상대방에게 많이 베푼 것 같은데 돌아오는 것은 적게 여겨져서 손해를 본 느낌을 갖는다.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은 그 누구나 하나의 진리만을 따르면 따를수록 그만큼 더 위험한 잘못을 저지른다. 그들의 잘못은 어떤 허위를 따른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진리를 따르지 않은 데 있다.” 이 글을 한쪽에서만 보면 안 된다는 말로 읽었다.

 

 

 

 


* 어느 플랫폼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20번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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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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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 누구나 하나의 진리만을 따르면 따를수록 그만큼 더 위험한 잘못을 저지른다. 그들의 잘못은 어떤 허위를 따른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다른 진리를 따르지 않은 데 있다.(239쪽) 


사람을 유익하게 꾸짖고 그의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할 때는 그가 어떤 방향에서 사물을 보는가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방향에서 보면 대체로 옳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옳은 점은 인정하되 그것이 어떤 면에서 틀렸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이에 만족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모든 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는 것에는 화내지 않지만 틀렸다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본래 사람은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또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그 방향에서는 본래 틀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감각이 인지하는 것들은 항상 진실된 것이므로.(15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 민음사.
...............

 

 


파스칼에 따르면,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만 당신이 한쪽만 봤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걸 알아 두면 남에게 조언을 할 때 편리하겠다.

 

한쪽에서만 보면 한쪽만 보인다. 참고로 나도 한쪽만 보기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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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4-11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보호, 인간보호...생각이 많아지는 글입니다 ^^오늘도 홧팅 페크님~

페크(pek0501) 2019-04-11 23:15   좋아요 0 | URL
히히~~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뒤집어 생각해 보라는 어느 책 구절에서 힌트를 받아 써 본 글입니다요. 카알 님도 파이팅!!! 댓글 감사하고요...

cyrus 2019-04-11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 인구조사국에서는 유색인을 ‘non-white’라고 써요. 이렇게 보니 백인 중심 사고방식이 반영되었다는 걸 알 수 있네요.

페크(pek0501) 2019-04-11 23: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님 덕분에 한 가지 배웠네요.
예전에 영어 배울 때 men이 남자의 복수를 뜻하면서 인류, 라고 해석하여 이건 남성우월주의가 만들어 낸 영어야,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여자의 복수로 인류를 뜻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사람의 대표는 남자라는 의미가 담긴 듯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oren 2019-04-11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스칼의 <팡세>를 읽으면서 페크 님이 인용해 주신 바로 저 대목(15쪽)에서 크게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어떤 방향에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천양지차‘가 나니까 말이지요.

페크(pek0501) 2019-04-11 23:0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예전에 고부갈등을 겪고 있는 고모와 그 며느리 사이에서 제가 각각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요. 고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고 며느리(저한테는 사촌 새언니가 됨.)한테 말을 들으면 또 그 말이 맞고 해서 내가 간신인가,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팡세의 저 구절을 보았다면 저까지 포함해 세 사람을 이해했을 텐데 말이죠.

오렌 님처럼 고전을 정독하시는 분이 결국 높은 곳에 다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칼럼에지혜를 담으려면 제 두뇌로는 안 되고 팡세 같은 고전을 읽어서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 놔야 그나마 가능성이 생길 것 같습니다. 좋은 봄날 보내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9-04-1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것 있는 것 같아요. 누가 조금 더 이익이 되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조금 더 잘해주고 싶을 때에는 의좋은 형제가 되지만, 내가 손해보는 것에 민감해지면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쪽의 입장을 다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가끔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읽으면서 다음엔 조금 더 잘해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페크님, 요즘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어요. 내일은 미세먼지 많은 날이 될 거라고 뉴스에 나옵니다. 마스크 챙기세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9-04-11 23:25   좋아요 1 | URL
저도 글을 이렇게 쓰면서 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고 손해를 봐도 그냥 통과하자, 그러는데 막상 당하고 보면 달라질 때가 있어요... 크크~~

아, 오늘까지 며칠 동안 날씨가 정말 좋아서 행복했답니다. 많이 걸었고 꽃 구경하며 꽃 사진을 많이 찍었고요. 저 위의 사진도 그저께 찍은 사진입니다. 찻길 중앙에 있더군요.
내일은 마스크를 챙겨야 하다니 맥빠져요. 저는 날씨가 제 인생에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줄 몰랐어요. 미세먼지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용.
서니데이 님도 마스크 챙기시고... 편안한 삶이 지속되시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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