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마당 도서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몽」
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소설 ‘라쇼몽’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이삼 년 동안 교토에는 지진과 회오리바람, 그리고 화재와 기근 같은 재해가 연달아 일어났다. 극도로 황폐해진 환경 속에서 이윽고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시체를 라쇼몽에 버리고 가는 풍습까지 생겼다. 그런 연유로 해가 지면 모두가 으스스한 기분에 라쇼몽 근처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교토 중심부에 위치한 라쇼몽은 기와지붕의 이층 구조로 되어 있는 문이었는데, 당시 여우나 너구리가 드나들고 도적이 소굴로 삼기도 하였다.)
비는 내리고 있었고 하인은 갈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형편이 궁해진 주인이 사오 일 전에 하인을 내보내서다. 밤이면 추워지는 교토는 쌀쌀했다. 하인은 라쇼몽에 와 있다. 비바람을 맞을 걱정이 없고 사람 눈에 띌 염려 없어 그곳에서 대충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문 위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폭이 넓은 사다리가 하인의 눈에 들어왔다. 문 위에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어차피 죽은 시체들뿐이다. 하인은 발소리를 죽이고 경사가 급한 사다리 맨 윗단까지 기어서 올라가서 살며시 누각 안을 들여다보았다. 누각 안에는 소문으로 듣던 대로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으나 몇 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벌거벗은 시체와 옷을 입은 시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시체들이 썩는 냄새에 하인은 자기도 모르게 코를 감싸쥐었다.
하인은 시체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진갈색 옷에 키가 작고 야위었으며 원숭이같이 생긴 백발 노파였다. 하인은 공포와 호기심에 휩싸여 잠시 호흡하는 것도 잊었다. 노파는 관솔불을 마루 틈 사이에 꽂고 마치 원숭이 어미가 새끼의 이를 잡아주듯 시체의 긴 머리털을 하나 둘 뽑기 시작했다. 머리털은 손으로 쉽사리 뽑히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하나 둘 뽑힘에 따라 하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과 동시에 노파에 대한 격심한 증오가 조금씩 솟아났다. 하인은 악을 증오하는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인은 왜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인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에 라쇼몽 위에서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악이었다. 하인은 아까 자신이 도둑이 될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
하인은 사다리를 힘차게 딛고 불쑥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허리에 찬 칼에 손을 댄 채 큰 걸음으로 성큼 노파 앞으로 다가갔다. 노파가 놀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노파는 하인을 보자마자 펄쩍 튀어 올랐다.
“어이, 어딜 가?”
하인은 노파가 시체에 걸려 비틀거리면서도 황급히 도망가려는 길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노파는 그래도 하인을 밀쳐내고 가려 했다. 하인은 다시 그걸 막으려고 노파를 밀쳤다. 둘은 시체들 사이에서 잠시 말없이 밀치락달치락하였다. 하인은 마침내 노파의 팔을 붙잡아 힘껏 바닥에 팽개쳤다.
“먼 짓을 하던 거야? 말해. 말하지 않으면 이거야.”
노파를 밀쳐낸 하인은 돌연 칼을 뽑아 그 허연 날을 노파의 눈앞에 들이댔다. 노파는 양손을 덜덜 떨고 어깨로 거칠게 숨을 쉬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벙어리처럼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포졸이 아니오. 그저 이 문 아래로 지나가던 사람이오. 그러니 할멈을 포승줄에 묶어 놓고 어찌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오. 단지 지금 이 문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만 말해주시오.”
노파의 목에서 까마귀가 우는 듯 헐떡이는 소리가 하인의 귀로 들려왔다.
“이 머리털을 뽑아, 털을 뽑아서……. 가발을 만들려고 했지.”
하인은 노파의 대답이 뜻밖에 평범하다는 것에 실망하였다. 그리고 실망과 동시에 아까의 증오가 차디찬 모멸과 함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하긴 그려. 죽은 사람의 털을 뽑는다는 건 나쁜 짓이겄지. 그치만 말여, 여기 있는 시체들은 몽땅 그리 당해도 싼 인간들뿐인걸. 지금 내가 머리털을 뽑은 년도 말이여, 뱀을 토막 내서 말린 것을 건어라고 동궁호위대 사람들에게 팔러다녔을 것이여. 그래도 이년이 판 건어는 맛이 좋다고 무사들이 찬거리로 많이들 샀다고 혀. 나는 이년이 한 짓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굶어 죽었을 테니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겄지. 그러니 지금 내가 하던 짓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어.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짓이야.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년도 잘 알 터이니 내가 하는 짓도 눈감아줄 것이여.”(15쪽)
노파는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이 말을 듣던 중 하인의 마음에는 어떤 용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하인은 이제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인은 노파의 목덜미를 잡고서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다 벗겨가도 원망하지 말어. 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니까.”(16쪽)
하인은 서둘러 노파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붙잡고 늘어지는 노파를 발로 차 시체들 위로 쓰러뜨렸다. 사다리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이었다. 하인은 노파의 옷을 옆구리에 끼고, 순식간에 경사가 급한 사다리를 뛰어 내려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16쪽)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16쪽)
....................여기까지가 ‘라쇼몽’의 내용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독자가 무엇을 느끼기를 바랐을까? (여러분은 하인의 마지막 행동을 보고 무엇을 느꼈나요?)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이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듯 소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노파는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다. 그 머리털로 가발을 만들어 팔아야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인은 노파의 옷을 벗겨 그것을 가지고 도망간다. 그 옷이라도 팔아야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둘 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인은 처음엔 악을 증오했고,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악으로 여겼다. 그런데 노파가 시체의 머리털을 뽑지 않고서는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서 하인은 달라진다. 그래서 노파의 옷을 벗겨 그것을 가지고 도망간다. 하인도 노파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페크 1님 : 굶어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인간은 똑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2님 : 남의 흉을 보다가 자신도 똑같아진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3님 : 극한 상황에서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4님 :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는 마음을 자기만 갖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갖는다. 그래서 그 마음이 오히려 자기를 희생자로 만들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페크 5님 : 약자를 돕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여기서 칼을 갖고 있는 하인이 강자이고, 노파가 약자다.)
페크 6님 : 생각은 전염된다. 그러므로 각자의 생각이 올발라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위의 내 해석과 달리 이 책의 뒤에 실려 있는 ‘해설’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사람을 속여 뱀 고기를 판 여자, 그 여자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가발용으로 팔려는 노파, 그 노파를 위협하여 옷을 벗기고 도망가는 하인, 세상은 악의 고리로 연결된 듯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하인은 노파 덕분으로, 노파는 여자 시체 덕분으로, 여자는 속아준 사람 덕분으로 먹고산다는 것이 가능하니, 그것은 선의 고리이기도 하다. 증오나 죄악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리의 단절, 무관심이나 소외인 것이다.
벌거벗겨진 노파에게도 아직 삶의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시체 중에는 옷을 입은 시체나 다른 여자 시체도 아직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쇼몽은 삶(生)의 문(門)이 아닐까.(261쪽)
만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가 살아 있어서 이 해설을 읽는다면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고리의 단절, 무관심이나 소외가 가장 무서운 것임을 내가 말하려고 했다고?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꿈보다 해몽이 좋군.”
....................
다가오는 추석 연휴를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시간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