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미터가 필요한 여자

 

                                   

                            
                                   
   "이제부터 3미터씩 떨어져."

 

 

   밤 아홉 시가 되면 딸들에게 외치는 말이다. 유난히 질문이 많은 큰애와 나로부터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작은애가 성가셔서 묘안을 짜내었다. '엄마 혼자 있는 시간'을 밤 아홉 시부터 잠자기 전까지로 정한 것이다.

 

 

   5학년생인 큰애는 수학문제나 영어문제를 묻고, 일곱 살배기 작은애는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아달라고 조르는 일이 잦아졌다.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수시로 묻기도 하는 아이들이 기특하여 흐뭇하기도 했다. 아이의 궁금증은 그때그때 풀어주는 게 좋은 교육이므로 최선을 다해 답해야 하리라. 그러나 엄마 혼자 놔둘 수 없다는 듯이 달려드는 딸들에게 허구한 날 시달리다 보니 몸과 마음이 시어 꼬부라진 파김치가 되곤 하였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주부로서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인데, 아이들은 내 곁에서 쉬지 않고 쫑알대기 일쑤다. 딸애들이 장난치는 시끌덤벙한 소리 때문에 아홉 시에 방송하는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날이 많아 답답하였다. 또 조용한 밤에 책을 읽고 싶은 나의 욕구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사랑스러운 공주님들이 어느 덧 '밉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이, 밤 아홉 시까지만 말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밤 아홉 시부터 3미터씩 떨어져서 엄마에게 말하기 없기다 알았지?"

 

 

   부드러운 말투로는 효과가 없을 것 같아 만약 이를 안 지키면 혼날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았다.

 

 

   처음엔 혼선을 빚었다. 말을 걸었다가 몸을 움찔거리며 그냥 뒤돌아서고 마는 큰애, 말을 안 하는 게 어디 있느냐며 울먹거리던 작은애였는데, 그 시간만 되면 상종하지 않는 걸 며칠 겪더니 마음을 고쳐먹었나 보다. 신통하게도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아빠에게 밤마다 엄마하고 유령놀이를 한다고 웃으며 말할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드디어 아이들과 나 사이에 황금 같은 3미터를 확보한 것이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짹소리 못하는 아이들을 볼 때 내가 '냉정한 엄마'가 아닌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내 기분이 좋아야 가족에게 다정해질 게 아닌가. 딸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자기에게 충실해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래야만 다른 이도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훗날 딸들이 결혼하게 되면 휴식이나 독서를 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진정 바란다.

 

 

   아이들이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배려해 주는 것은 가족 간에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습관이 자연스레 길러지기에 아이들에게도 유익한 듯 싶다. 밤마다 혼자서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은 나를 여유 있는 주부로 돌아가게 한다. 이를테면 아이들 간식으로 인스턴트 식품을 택하기보다 손수 요리하여 먹이고, 아침마다 국을 찾는 남편을 위해 매일 새로운 국을 밥상 위에 올린다. 큰아이를 위해서 영어단어를 함께 외우고, 작은아이에게 동화책을 자주 읽어주는 엄마가 된다.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나치게 밀착된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이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힘든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사물을 볼 때도 눈에 바싹 대면 제대로 보기 어렵다. 거리를 조절하기 위해 사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야 한다. 너무 가까워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딸들이 성장함에 따라 자식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져 감을 느낀다. 자식들 인생마저 소유하고 싶은 내 욕심은 아이들의 특기를 마음대로 정하려 들고 장래희망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아마 먼 미래에는 내 가치관으로 그들의 직업선택에 간섭할 것이다. 배우자선택에 있어서도 딸의 신랑감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사윗감을 고집할지 모른다. 그래서 모녀간에 많은 갈등을 낳게 될까봐 걱정이다.

 

 

   3미터의 간격, 어쩌면 이 간격이 딸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어머니가 되게 해주지 않을까. 그 애들이 밤 아홉 시만 되면 나를 한 개인으로 존중해주듯 나 또한 그들을 소유하려 들지 않고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게 되는 3미터가 되었으면 한다.  


 
   매일 밤 뉴스를 보고 나면 떠들썩한 놀이터 속이 아닌 조용한 쉼터에서 연속극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갈증 날 때 마시는 톡 쏘는 탄산음료 같은 나만의 작은 행복을 챙기는 것이다. 주부는 휴일이 따로 없기에 이 특별한 휴식은 내게 짜릿한 즐거움을 솟아나게 한다.

 

 

   3미터의 밤을 떠올리면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즐거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이들의 방해가 없는 나만의 밤이 생긴 후로 나는 전에 비해 너그러운 엄마가 된 것 같다. 몸은 3미터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3미터 더 가까이 다가선 셈이다.

 

* 2003년 제1회 CJ 문학상 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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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50만 원의 상금을 안겨 준 수필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쓴 것인데,
이 글을 쓰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점은 '생각을 많이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점 같습니다.

제야 꺼내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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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5-05 15: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태호의 교양만화에 “에티켓”이 나오는데 에티켓이란? ‘적절한 거리두기’라던데 정말 육아도 그런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생각, 전 그 거리두기를 위해 키즈카페에서 어린이날 이러고 있다는. 인제 또 독서해야죠!

페크pek0501 2018-05-06 10:5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적절한 거리 두기는 모든 인간 관계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게 에티켓이라는 것, 님 덕분에 배웁니다. 사랑하면 상대를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 이게 문제인 것 같아요. 누구나 개인의 영역이란 게 있는데 말이죠. 자식도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저는 현재 깊게 느끼고 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8-05-05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제보다 바람도 부드럽고 날씨도 따뜻해요.
이제 5월이라서 그런지 바깥에는 초록색이 매일매일 많아집니다.
페크님, 즐거운 5월 첫번쨰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18-05-06 11:02   좋아요 1 | URL
반가운 서니데이 님. 황금 같은 연휴인데도 혹시 일하십니까?
오늘 우리 가족은 어디 간답니다. 애들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지고 있어요. 우리 부부는 속이 터지고 있고요. 어디 끌고 가려면 애먹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네요. 먼지가 없어 좋으나 빗길이니 운전 조심히 해야겠지요.
모처럼 봄 나들이를 가려 하는데 비가 오니...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봄날 만끽하시길...

2018-05-06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7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05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요? 역시 엄지 척!입니다.
언니 혹시 <밤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보시나요?
거기서 보면 평생 아들처럼 아껴줬던 아들의 친구
준희가 딸을 사랑한다고 해서 뒤짚어지는 엄마기 나오잖아요.
처음엔 꼭 저럴 필요 있나 싶다가도 일견 이해가 가더라구요.
미리 봐 두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ㅎ

저도 일과를 마치고 10시쯤 좋아하는 드라마 보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이런 낙도 없으면 하루를 어떻게 살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18-05-06 11:06   좋아요 1 | URL
그 드라마 지나친 적은 있는데 시청하지 않았어요. 중간에 보려면 연결이 안 되어서 포기하게 됩니다. 앞으론 볼게요.

뒤집어지는 엄마라, 미래의 저가 그럴지 모릅니다. 딸애가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온 남자가 나의 이상형? 빠바방... 히힛. 아직 저는 젊다는 착각 속에 사는지 만약 딸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내게 맡기면 손주라는 생각보다 내가 늦둥이 낳은 걸로 착각하고 키워 줄 것 같아요. (이래도 되는 건가?) ㅋㅋ

맞아요. 드라마 보는 게 밤 낙, 이지요. 요즘은 근데 재밌는 걸 못 찾았어요.
모래시계를 다시 하는 채널이 있길래 그걸 보긴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실 2018-05-06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글이 술술 읽히네요~
군더더기 없고 공감되는 글. 역시!
아이들도 엄마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저는 아이들 어릴때 도서관 근무중 2시간이 쉼이었어요. 점심시간, 퇴근시간 1시간전...
지금은 제 시간이 천지네용.ㅎ

페크pek0501 2018-05-06 11:10   좋아요 0 | URL
술술 읽히기만 하는 게 제 글의 유일한 장점입니다. 그 이상의 장점은 없는 게 단점이고요. 히힛...

세실 님은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저는 게으름뱅이입니다.
그래서 세실 님을 저는 끝까지 안 놓치고 살 예정입니다. 내 친구의 목록 속에~ 흐흐~~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AgalmA 2018-05-06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에 대한 조건도 상대가 사랑의 믿음이 있으니 가능한 거지 타인이면 ‘니가 그러면 나도 그런다‘라든가 카탈스러워서 가까이 하기 어렵군 하며 멀어지기 십상이죠.
사랑과 믿음 이건 평생 수행할 조건이지 조건 만족이 절대 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페크pek0501 2018-05-07 22:33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람은 가까워지고 어떤 사람은 멀어지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물 흐르는 대로 살 생각입니다. 으음~~ 이렇게 되는 게 내 운명인가 보네... 이러면서 말이죠.
상대가 나빴어, 라기보다 상황이 안 좋았어, 로 이해할 때가 있어요.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죠.
굿 밤 되시길... 재밌는 드라마를 못 찾아서 이 시간 이러고 있어요. ㅋ
 

<수필> 부메랑  


이십여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대학시절, 미팅에서 만난 남자이다. 그는 얼굴에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의대생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차를 마시며 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가 내 목을 바라보더니 뜬금없이 목걸이를 샀느냐며 사뭇 시비조로 물었다. 나는 학생 신분으로서는 좀 고급스러워 보이는 십팔금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 주신 대학입학 선물이었다. 아버지께 선물로 받았다고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학생이면 학생다워야지 왜 그런 사치품을 하고 다니냐고 힐난하듯 말했다.  


그의 말인즉, 그런 돈이 있으면 불우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고아원에서 간식도 없이 밥 세 끼를 단무지 조각으로 때우는 아이들을 한 번쯤 생각해 봤느냐고도 묻는다. 뒤이어 공부엔 관심이 없고 멋만 내는 여대생을 혐오한다는 둥, 내가 책을 읽지 않게 생겼다는 둥, 강의를 잘 빼먹을 것 같다는 둥 하면서 비위를 건드렸다. 나는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다가 고작, 내가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는데요, 했다. 그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기만 할 뿐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작은 얼굴, 깡마른 체격에 까만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녔다. 누가 보아도 겉멋만 부리는 여대생으로 보였을 게다. 그렇다 해도 함부로 내뱉는 그의 말이 몹시 불쾌하였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있는 가난한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부터 나와 다른 부류라고 짐작은 했었다. 반면 나는 집안이 비교적 넉넉하였기에 가난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처음엔 그를 건실한 청년으로 보았는데 곱지 않은 말투로 내 기분을 망쳐 놓는 그에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가난하면 마음이 그렇게 삐딱해져요?"  


결국 나는 그에게 이렇게 쏘아주고 헤어졌다. 서로 감정이 상했기에 다시 만날 약속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이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부유한 사람들 모두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듯한 그들의 구겨지고 그늘진 모습이 싫어졌다.  


철부지 여대생이었던 내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여 십 년쯤 되었을 무렵 'IMF'가 닥쳐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우리의 가정 형편도 어려워져서 남편과 나는 한숨 짓는 일이 많아졌다. 게다가 남편이 실직까지 하게 되자 내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난생 처음 가난의 아픔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형편이 회복되었는데, 그 일로 어렵게 사는 이웃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제 내 나이 마흔이 넘었다. 여전히 여유롭지 못한 나와 달리 주변에는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사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나는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불쑥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난 골프 치는 사람들이 참 싫더라. 허영심 같아 한심해 보여."  


무심코 던진 말이었는데 마침 그 중에 골프를 시작했다는 친구가 이 말에 기분이 상했었는지 그 다음날 전화를 걸어 왔다. 내 말이 섭섭했다며 그 친구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해지면 그렇게 마음까지 삐딱해지니? 어쩌면 말을 그렇게 해?"  


순간 멍하였다. 귀에 설지 않은 이 말, 이건 오래 전 내가 누군가에게 쏘아붙인 바로 그 말이 아닌가. 그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내 뒤통수를 치다니….  


던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부메랑. 그것은 원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사냥하거나 전쟁할 때 사용하던 도구였다. 그들은 던진 자리로 거슬러 오리라는 것을 알고 부메랑을 사용했겠지만, 나는 돌아올 줄 몰랐던 말을 했던 것이다. 이십여 년 전의 내 말이 긴 세월을 지나 되돌아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하루아침에 내 자리가 뒤바뀐 것 같았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부자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들의 고급스런 취미 생활을 나는 그저 허영심으로만 몰아붙인 셈이다.    

 

빈자가 되어보고서야 나는 목걸이로 괜한 트집을 잡았던 그 남학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쯤 그 학생은 의사가 되어 있을 테지. 중년에 접어들었으니 생활의 여유도 찾고 휴일이면 골프를 칠 수도 있겠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내가 '골프를 칠 비용이면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많이 사 줄 수 있을 텐데' 라고 말하면 그는 뭐라고 할까. 젊은 시절의 나처럼 이젠 그가 비아냥거릴 수도 있을 게다.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은 의식주를 위해서만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에서일 것이다. 이 욕구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남보다 좋은 자동차를 타고 싶고 품위 있는 옷을 입으려는 마음, 그것이 금전에 대한 욕망을 더 강하게 해 주리라. 나 역시 앞으로 생활이 윤택해진다면 골프를 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이십여 년이란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이십대였던 나와 사십대인 현재의 나는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삶은 또 어떤 부메랑을 숨겨 두고 있는 걸까.   

* 2004년 하나은행이 공모, 제9회 하나여성 글마을잔치에서 특선으로 당선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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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내 마음의 풍경 

 
어느 전시회에서 밀레의 ‘첫 걸음마’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어린아이가 첫걸음을 떼려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엄마는 어린애를 바로 뒤에서 붙들고 있고, 맞은편에서는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어린애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있다.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광경이나 나는 진한 감동을 느끼며 그 그림 앞에서 한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낮잠’이란 제목의 농민화도 좋았다. 부부가 일을 마치고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듯한데,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여인의 얼굴이 반쯤 보이는 것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그림 같은 광경이 많이 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 보아 온 광경 중 지워지지 않는 것들을 모은다면 두꺼운 앨범 하나가 만들어질 것 같다. 그 추억의 앨범으로 지난 시절을 회상할 수 있다는 건 축복 같은 일이다.

 

아파트에 사는 나는 때때로 옛 친정의 마당을 그리워한다. 눈을 들면 하늘이 훤히 보이고 잠자리와 나비가 자유롭게 놀다 가는 뜰.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침을 열어주고 밤에는 달과 별이 친구가 되어 주는 곳.

 

어릴 적 소꿉장난을 하거나 줄넘기를 한 곳도 마당에서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 놓고 친구들을 불러다 놀곤 하였다. 그리 넓지는 않았으나 우리가 놀기엔 충분했다. 엄마가 부엌에서 간식거리를 만들면 풍겨 오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노는 게 즐거웠다. 찐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따위를 함께 놀던 아이들과 경쟁하듯 앞다투어 먹으면 참 맛있었다. 흥겨웠던 그 시절을 좋은 그림으로 기억한다.

 

내가 열세 살쯤에 넋을 잃고 바라본 풍경이 있다. 우리 집 근처의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마치 훌륭한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담벼락에 있는 흠집과 낙서를 보면 정겨웠다. 그 지붕 아래 어디선가 아이를 부르는 어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왠지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산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집들을 끼고 도는 골목길은 나에게 좋은 산책로가 된다. 천천히 걸으면서 여러 가옥들을 만난다. 푸른 나무들이 햇볕을 받으며 하늘을 가득히 맞이하고 있는 집, 옷들이 빨랫줄에 평화롭게 널려 있는 집, 꽃밭의 꽃들이 고운 빛깔로 사람의 시선을 끄는 집, 앙증맞게 생긴 아이의 신발이 보이는 집 ···. 이것들은 마음의 사진이 되어 가슴에 새겨진다.

 

내가 여행을 갈 때 설렘을 느끼는 것도 멋진 경치에 대한 기대 때문일지 모른다.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나무는 늦가을의 운치를 느끼게 하고, 설경은 언제 보아도 설렌다. 산 그림자를 품은 호수는 명상적인 분위기로 나를 이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촌가나 먼지가 뽀얗게 이는 시골길이 눈에 띄면 마음의 고향을 보는 듯하다. 기적을 울리며 사라지는 기차의 마지막 모습은 나를 버리고 떠나는 연인처럼 어떤 아쉬움을 남겨 놓는다. 철새들의 행렬, 해질녘 바람 부는 숲, 어둠에 서서히 묻히어 가는 마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사랑과 사람이 함께하는 풍경이다. 사랑을 담은 얼굴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얼굴은 그 사람의 심경과 같아서, 온화한 표정을 짓는 이를 보면 어떤 인생을 사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어느 날 동네에서 본 두 노인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탄 할머니에게 과자를 조금씩 떼어 먹이며 웃음 띤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사랑이 느껴졌다. 서로를 바라보고 웃기도 하는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더 행복한지 모른다. 사랑을 받는 이보다 주는 이에게서 더 흐뭇한 기쁨이 엿보였다. 행복이란 자신의 처지에 있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음을 보여 주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목욕탕에서 노인의 등을 밀어주던 젊은 새댁, 리어카를 힘겹게 끄는 이를 위해 뒤에서 밀어주던 어떤 이, 병원에 진찰 받을 시어른을 모시고 온 며느리, 가족을 위해 푸짐하게 장을 봐 오는 주부. 이들의 모습도 모두 한 폭의 그림 같다.  

 

내가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듯이, 이젠 남들이 간직하고 싶은 풍경을 만들고 싶다. 밀레의 작품같이 진한 감동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기억되는 그림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나는 사는 날까지 몇 점의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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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으니 새롭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