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체호프 희곡 전집」


당신의 인생은 멋지다는 니나(여자)의 말에 트리고린(남자)은 소설가로서 느끼는 고충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니나 : 당신의 인생은 멋져요!

트리고린 : 대체 뭐가 멋지다는 겁니까? (시계를 본다) 이제 그만 가서 글을 써야 합니다. 미안해요. 시간이 없어서……. (웃는다) 말하자면 당신은 가장 아픈 곳을 찌른 겁니다. 그래서 난 동요하고 얼마간 화가 나기 시작한 거요. 나의 멋지고 산뜻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사람이 밤이고 낮이고 간에 생각하면, 예컨대 달에 대해 생각하면 강제된 표상이 생겨나게 됩니다. 내게도 나름의 그런 달이 있어요. 하나의 성가신 생각, 즉 나는 써야 한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는 생각이 밤낮으로 나를 괴롭힙니다……. 중편소설 하나를 끝내자마자 무슨 일인지 벌써 다른 중편소설을 써야 하고, 그다음엔 세 번째, 그 후엔 네 번째 중편을……. 역마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끝도 없이 쓰는 겁니다. 다른 방도는 없어요. 대체 여기에 무슨 멋지고 산뜻한 게 있다는 건지, 묻고 싶군요. 오, 얼마나 소름끼치는 인생입니까! 당신과 함께 있어서 흥분하고 있지만, 나는 매 순간 끝내지 못한 소설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있습니다. 저기 피아노를 닮은 구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피아노를 닮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는 걸 소설 어디선가 써먹어야지, 하고 말이오. (중략) 작품을 마치고 나면 극장에 가거나 낚시하러 달려갑니다. 거기서 쉬면서 잊어버렸으면 하는 거죠. 그런데, 아닙니다. 머릿속에 이미 묵직한 철제 포탄이 굴러다니는 겁니다. 새로운 주제가 떠올라서 나를 책상으로 잡아당기고, 그러면 서둘러서 다시 쓰고 써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늘 자신으로부터 편안하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나는 자신의 인생을 파먹고 있다는 걸 느끼고, 어딘가 있는 누군가에게 줄 꿀을 얻으려고 가장 좋은 꽃에서 꽃가루를 모으고, 꽃잎을 따고, 꽃의 뿌리를 짓밟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정말로 미친 게 아닌가요? 

- 안톤 체호프, 「체호프 희곡 전집」, 426~427쪽.

  

위의 글을 읽노라면 체호프 자신이 작가로서 겪은 고충을 듣는 것 같다. “나는 써야 한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는 생각이 밤낮으로 나를 괴롭힙니다…….” 이처럼 소설가 트리고린은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말하지만 심심하지 않으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퇴직할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소설가라는 직업은 얼마나 좋은가. 


“저기 피아노를 닮은 구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피아노를 닮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는 걸 소설 어디선가 써먹어야지, 하고 말이오.” 이 점이 나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내가 글을 쓸 때 써먹어야지, 하는 것들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다. 만약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만큼 독서에 빠져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독서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키우고 싶다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의 경우 글쓰기 취미가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 지루할 틈이 없고 노년이 되어도 소일거리가 있으며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 혼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아 가족 간, 친구 간 불화가 생길 여지가 크지 않다.  

- 책을 유독 좋아하다 보니 다른 것들 이를테면 명품백이나 고급 자동차 같은 것에 별 관심이 없어 무엇을 가지지 못했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단점이 있다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니 허리 디스크나 소화 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스트레칭과 걷기 운동을 한다.



공연 전에 2층 객석에서 찍은 사진이다.

예술의 전당에 무용 공연을 보러 갔다. 희곡과 공연과 가까워지기로 했다.




..............................

의성 산불이 빨리 진화되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3월 18일) 오전에 찍은 사진이다. 뒷산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

그런 날이 있다. 잠에서 깬 새벽에 조용한 가운데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귀 기울여 들어 봐도 모르겠다. 혹시 비가 오는가 싶어 안방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베란다 창문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짐작한 대로 빗소리였다. 중학교 때의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눈이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기던 터라 비 내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신선하게 내 시선에 붙들렸다. 이제는 비가 내리는 것을 나도 좋아한다.  


어젯밤엔 눈이 왔나 보다. 뒷산에 눈이 쌓였다. 봄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던 이 3월에 눈이 오다니.



**

그런 책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이라 구매해 놓고선 다른 책을 읽느라 그것을 완독할 시간 여유가 없어서 새 것으로 갖고 있는 책을 말함이다. 그런 책이 집에 많은데 당장 완독할 수 없는 책은 새 책으로 남겨 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독서광이 아니라 책광인 듯.

   


***

텔레비전 화면에 개가 나오면 즐겨 본다. 하는 짓이 귀엽다. 그러나 만약 내가 키운다면 개보다는 고양이다. 개는 주인에게 충직하고 사랑받기를 절실히 바라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개의 충직에 내가 보답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때론 귀찮을 것 같기도 해서다. 새침하고 도도해 보이는 고양이라면 부담 없이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집착이 강한 사람은 부담스럽다. 



****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관세 전쟁을 이어가는 것을 보며 내 생각은 ‘저러다 미국이 망하지’였다. 요즘 신문 기사를 통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보복하려는 나라가 생기는 걸 보고 통쾌감을 느꼈고 내 예측이 맞을 것 같았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한 보복으로 내달부터 위스키 등 미국산 제품에 최고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와 다른 EU 국가에서 나온 모든 와인, 샴페인, 알코올 제품에 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재반격했다.(연합뉴스, 2025년 3월 15일) 


나는 유럽연합이 똘똘 뭉쳐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였으면 한다.(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전 세계가 똘똘 뭉쳐 미국을 왕따를 시키길 바란다.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이 언젠가는 큰 코를 다치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타자를 배려하지 않고 공공 의식이 없는 이기주의는 패배하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 이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

의사에게서 암 선고를 받는 환자가 있다고 하자.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 선고가 청천벽력과도 같을 텐데 의사는 태연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의사가 그럴 수가 있나 하고 생각한 분이 있다면 아래의 기사 내용을 읽어 두자.


공감 못하는 의사가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의사들이 주사기나 메스를 들 때마다 마치 자신이 찔리는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한다면 그 또한 문제일 것이다. 대신 의사들은 자기 조절이나, 주의와 집중이 필요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반응했다. 연구진은 "의사들은 공감을 의도적으로 줄여 환자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대신 이들을 어떻게 치료할지 인지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돼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동아일보, 2025년 3월 8일)


이 기사에 따르면 좋은 마음도 과하면 독이 된다. 의사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게 필요하겠다. 



******

중요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김경인 경관디자인 공유 대표’를 인터뷰한 것인데 실버타운에 절대 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건강하고 자립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살던 곳에서 사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불편해지는 집을 노년의 삶에 맞게 수리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게 실버타운에 사는 것보다 낫단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중 하나.

실버타운은 반대하신다고요.

"지금과 같은 모습의 실버타운이라면 반대합니다. 그곳이 노인 격리시설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유명 실버타운에 가보면 보안 시스템이 몇겹으로 되어있고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지요. 고령자 입장에서 보호라기보다 격리되는 느낌이었어요. 가뜩이나 외로운 노인들을 으리으리한 건물에 격리시켜서 더 외롭게 만드는 거죠."(동아일보, 2025년 3월 8일)













김경인, 「나이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

인상적인 소설을 전자책으로 읽었다. 모파상이 쓴 ‘후회’라는 단편이다. 결혼하지 않고 살아 온 62세인 남자 싸발 씨의 이야기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다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의 옛 친구인 쌍드르의 아내였다. 「아, 그녀를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러나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기회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여자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던들 그는 틀림없이 그녀에게 청혼을 했을 것이다. 처음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의 감정이 자리 잡게 되었으니까.(본문 중)


그는 혹시 그녀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이 의혹 속에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난 알고 싶다. 꼭 알아내야 한다.’ 그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으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예순두 살이고 그녀는 58살이다. 그러니 그때의 일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본들 크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집을 나섰다.」(본문 중) 


그는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어쩐 일이세요. 편찮은 것 아니세요.“ 그가 대답했다. ”아니오, 부인. 그러나 나로서는 대단히 중요하고 또 내 마음을 몹시 괴롭히는 것에 대해 묻고 싶소. 솔직하게 대답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겠소.“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난 언제나 솔직하답니다. 말씀하세요.“ ”좋소. 난 당신을 보았던 그날부터 당신을 사랑했소. 그걸 알고 있었소?“ 그녀는 옛날의 그 억양과 같은 투로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바보, 난 첫날부터 그걸 알고 있었는걸요.“ 싸발 씨는 떨기 시작했다. ”그걸…… 알고 있었다고요? 그럼……“ 그가 말을 맺지 못한 채 입을 다물어 버리자 이번엔 그녀가 물었다. ”그럼이라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죠?“」(본문 중)


「그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소? 뭐라고…… 뭐라고……. 당신은 대답했을까요?“ (중략) 그는 덜덜 떨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날 만약에…… 제가…… 제가 좀더 대담했더라면 당신은 어떻게 했었을까요?“ 그녀는 그 어떤 후회도 없다는 듯 행복한 미소를 짓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당신을 따랐겠지요.“ 그러고 나서는 발꿈치를 돌려 잼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싸발은 천재지변을 당하고 난 것처럼 깜짝 놀라 다시 길로 나왔다. 그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도 큰 걸음걸이로 자기 앞을 똑바로 걸어갔고,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생각지 않고 강 쪽으로 내려갔다. 마치 본능에 떠밀려가듯이 오랫동안 걸었다. (중략) 그리고 추억이 그의 마음을 몹시 괴롭히는, 먼 옛날에 그들이 점심을 먹었던 그 장소에 있었다. 그는 벌거벗은 나무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여기서 소설은 끝난다. 


아마도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으리라. 소설 제목이 ’후회‘니까. 그런데 나는 그가 후회할 일인지 따져 보게 된다. 가령 친구의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해서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친구의 아내와 사는 것이 잘한 일인가? 그녀의 남편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친구의 배신과 아내의 배신을 감당해야 하는 삶을 상상해 보라. 한 명의 인생을 최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두 사람은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파상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내어 상대편에게 사랑 고백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누구나 인생을 뒤돌아보면 후회가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인가. 만일 용기를 내어 그가 친구의 아내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면 우리는 응원을 해야 할까 비난을 해야 할까? 


모파상, 「모파상 단편선 1권」


내가 읽은 위의 전자책을 알라딘에서 찾을 수 없어 다른 모파상 책을 올린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5-03-18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새침하고 도도해 보여도 항상 몰래 지켜보고 있어요. 서로 기대어 살기는 개나 고양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3-19 12:03   좋아요 0 | URL
고양이는 영리한 데가 있어 더 사랑스러울 것 같아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고양이와 지내죠. 서로 기대어 의지하며 사는 거겠지요.^^

희선 2025-03-19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이 많이 온 곳도 있더군요 제가 사는 곳도 왔는데 쌓이지는 않았어요 어제 새벽에 바람 엄청나게 불어서 밖을 잠깐 보니 눈이 조금 보이더군요 이쪽에도 눈 많이 온 곳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비보다는 눈이 좋아요 비는 무서워요 여름에 오는 비가 그러네요

언제까지나 자기 집에 사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힘들어질 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희선

페크pek0501 2025-03-19 12:06   좋아요 0 | URL
눈이 오고 추워지니 다시 겨울 옷을 입게 되더라고요. 아 폭우가 무섭긴 하지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봄비나 여름에 잠깐 쏟아지는 소나기예요. 비 오는 날의 분위기, 라는 게 있어요. 눈이 오는 날이 흉내 낼 수 없는...
실버타운이 오히려 더 외롭게 늙어간다니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서니데이 2025-03-19 0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어제 서울도 눈이 많이 왔네요. 어제 아침에도 눈이 꽤 왔었어요.
지난주 후반에 기온이 많이 올라가더니 갑자기 또 추워졌습니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 평년의 기온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는데, 3월도 벌써 많이 지났네요.
할수만 있다면 실버타운 보다는 살던 동네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3-19 12:10   좋아요 1 | URL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네요. 날씨에 알맞게 입기가 어려워요.
우리 세대는 장수하기가 쉬워 실버타운이 대안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네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집에서 노인이 죽을 때까지 살자면 누군가는 옆에서 도와 줘야 하거든요. 저의 어머니만 해도 이젠 반찬을 만들지 못하겠다고 해서 제가 만들어 드리고, 병원도 혼자 못가서 제가 모시고 가야 해요. 노인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겠어요.

카스피 2025-03-19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새벽에 내린 눈은 아무래도 기온탓에 낮에는 다 녹았더군요.역시나 주변 산에만 눈내린 흔적을 볼 수 있는것 같아요.
미국이 관세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미국제일주이가 맞긴 하지만 그 기조는 이제 동맹이고 적성국이고 미국에서 돈벌어 가는 것을 막을 정도로 미국의 누적부채(약 35조달러)가 어마어마 하기 때문일 겁니다.이제는 가식적인 우아한 가면을 버리고 정작한 야만을 택할 정도로 미국이 급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관세 기조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유지되지 않을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25-03-19 11:59   좋아요 0 | URL
트럼프가 연설할 때 밑에 깔고 싶은 얘기가 무역 적자, 누적부채죠. 그래도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었다면 달랐을 거예요. 경제성장률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미국이 국내총생산 및 총소득은 세계 1위의 나라인데... 오늘 신문 보니 캐나나 프랑스 영국이 반트럼프 국가로 연대할 가능성이 있겠더라고요. 적국이 생겨 좋을 건 없지요. 최근 미국의 계란 품귀 현상도 일어났는데 결국 미국도 타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예요. 그걸 놓치면 안 되지요. 미국의 폭탄 같은 관세 정책이 언젠가는 미국 경제에도 타격을 줘 부메랑이 될 거라는 전망이 있던데 이를 지지하는 바입니다. 이미 미국에서 가격 상승 문제가 생겼더라고요.
트럼프는 자신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거라고 보겠지만 제가 보기엔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을 듯해요.^^

새파랑 2025-03-19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회>를 읽으니까 모파상의 단편집이 읽고싶어지네요. 이렇게 해도 후회고, 저렇게 해도 후회여어 그런거 아닐까요? ㅋ

페크pek0501 2025-03-19 12:01   좋아요 1 | URL
단편의 천재로 모파상과 체호프를 꼽겠습니다. 모파상의 단편선(문예출판사)를 추천합니다. 다 재밌어요. 이래도 저래도 후회, 맞습니다. 결혼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그래서 애들에게, 결혼해 보고 후회하는 쪽을 택하라고 말했어요.^^

감은빛 2025-03-21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단편 소설이 흥미롭네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A라는 남자는 자신의 친구 아내인 B와 친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몰래 불륜 관계에 들어갔고, 나중에 들켰다고 해요.
결국 두 가정은 모두 이혼 절차에 들어갔고, 이 두 사람은 다시 재혼을 하지는 않고
계속 연인 관계로 잘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날 이 두 사람의 사랑도 깨지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제가 이 두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직은 연인 관계였지만,
제가 알고 지낸 지 몇 달 후에 그러니까 저 사랑 이야기를 들은 지 몇 달 후에 둘은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A라는 남자는 전처였던 여성과 다시 만나는 눈치였습니다.
모든 관계는 끝이 있겠지요. 그게 누군가의 죽음일 수도 있고, 이혼이나 이별일 수도 있구요.
저 두 사람이 불륜이 아니었다고 해도 나중에 또 어떤 방식으로든 그 두 가정이 깨졌을 수도 있겠지요.
저는 나중에 이 건에 대해 여러가지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어떤 생각이든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페크pek0501 2025-03-23 14:48   좋아요 0 | URL
후회, 라는 단편이 간단한 줄거리인데도 빠져 읽게 만드는 것은 모파상의 역량이겠지요. 재밌는 소설이에요.
A라는 남자가 전처와 다시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전처에 대해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바람이 나도 불륜 상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지 않겠어요. 자기 남편을 배반한 여자가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리란 믿음을 가지기가 어렵잖아요. 저도 아는 케이스가 있는데 남편이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해 줬더니 그 남편은 그 상대 여성과 결혼하지 않고 결국 헤어져요.ㅋㅋ 외국 소설이었는데(제목은 생각 안 남) 그런 게 있었어요. 불륜은 스릴과 긴장감이 있었는데 막상 이혼하고 싱글이 되니까 상대 여성이 시시해지더라는 것. 막상 멍석을 깔아 줬더니 불륜의 사랑이 권태에 빠지더라는 것. 그렇게 읽히는 소설이었죠. 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모나리자 2025-03-24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도 우리나라도 정국이 혼란스럽고 그걸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든 요즘입니다.
트럼프가 아마도 미국을 망하게 할 거라는 영상 보도도 많더군요. 완전히 망하지는 않더라도
이전의 괜찮은 이미지의 미국은 잃어버릴 것이라고요. 정말 세계 모든 나라가 무대포 처럼 구는 트럼프를 왕따시키면 좋겠네요. 한번 당해 봐야 정신 차릴까요.
책을 읽어야 하는데 집중이 안 되네요. 분발해야 하는데.
새 한 주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5-03-26 15:07   좋아요 0 | URL
며칠 전 신문엔 미국에 등 돌린 나라들, 이란 기사가 났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꺼지지 않는 의성 산불 때문에 큰일이네요. 나쁜 일이 끊이질 않네요. 모두들 마음이 무거운 요즘입니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 오늘 왔으면 좋겠어요.
잘 지내세요, 모나리자 님!
 

체호프의 희곡 중 ‘갈매기’라는 작품이 있다. 청년 트레플료프의 어머니인 아르카지나는 여배우이고, 소린은 트레플료프의 외삼촌이다. 소린이 아르카지나에게 말한다. 아들한테 돈을 주라고.


아르카지나 : 그 아이가 안됐어요! (생각에 잠겨) 취직이라도 하면 어떨까요…….

소린 : (휘파람을 분다. 그다음에는 주저하면서) 내가 보기엔 가장 좋은 것은 네가……. 그 아이한테 돈을 주는 거야. 무엇보다도 사람답게 옷을 입어야 하니 말이야. 보렴. 3년이나 똑같은 프록코트를 입고 다니고, 외투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잖아……. (웃는다) 젊은 녀석이 흥취 있게 노는 걸 막을 일은 아니잖니……. 외국으로 나가도 좋고……. 돈도 많이 들지 않으니까.

(중략)

아르카지나 : 그래요. 돈은 있어요. 하지만 저는 배우예요. 몸을 치장하는 것만으로도 파산할 지경이라고요.(436~437쪽)


아르카지나는 몸치장에 쓸 돈은 있어도 아들의 옷을 사 줄 돈은 없다고 한다. 대사만으로도 어떤 어머니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톤 체호프, 「체호프 희곡 전집」



‘니나’라는 젊은 아가씨는 ‘트리고린’이라는 유명 소설가를 흠모한다. 둘이 친한 사이는 아니다. 


니나 : (주먹을 쥔 한쪽 손을 트리고린 쪽으로 내밀면서) 짝수일까요, 홀수일까요?

트리고린 : 짝수.

니나 : (한숨 쉬고서) 틀렸어요. 내 손에는 한 알의 완두콩이 있을 뿐이에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 점을 쳐본 거예요. 누가 조언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트리고린 : 그건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오.(434쪽)


위의 대화를 보면 니나가 트리고린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고, 니나가 배우가 되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희곡은 대사에 인물에 관한 정보를 숨겨 놓는다. 니나가 트리고린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 손 안에 든 완두콩의 개수가 짝수인지 홀수인지 맞춰 보라는 물음을 트리고린에게 굳이 던질 필요가 없다. (체호프가 왜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의 행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행동의 숨은 뜻을 모르면 희곡을 읽는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말과 행동과 몸짓에는 정보가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직장의 여자 동료에게서 금요일 저녁에 전화가 왔는데 남자가 전화를 받으려다가 전화기를 잘못 건드려 전화가 끊겼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 다 미혼이다. 이때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 궁금해하며 전화하지 않는 남자라면 상대편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삼 일 후인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 둘이 눈이 마주치자 여자가 남자에게 그날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묻는다. 남자는 전화를 받으려다가 전화기를 잘못 건드려 끊어졌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여자가 상대편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안심이 된다면 그녀가 잘못 해석했다고 본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남자라면 전화가 끊기고 바로 액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만날 때까지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그녀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거나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에게 전화를 한 이유를 묻게 돼 있다. 둘이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희곡을 읽을 때도 등장인물의 말, 행동, 몸짓을 꼼꼼히 살피며 읽어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 것이 된다. 이 맛에 희곡을 읽는다.



니나 : 작가나 배우가 되는 행복을 위해서라면 저는 가까운 사람들의 미움, 가난, 환멸도 견디겠어요. 다락방에 살면서 호밀 빵만 먹고, 자신에 대한 불만과 스스로가 모자란다는 고통도 감수할 거예요. 하지만 그 대신 저는 영광을 요구할 거예요……. 진정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영광 말이에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머리가 빙빙 돌아요……. 아아!(430쪽)


이 글에서 작가는 명성을 얻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있는지 묻는 듯하다. 한 예로 어느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으나 안티팬들의 비난에 시달려 마음이 괴롭다면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안티팬들의 비난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이들이 있지 않았던가.   







두꺼운 책이라 무거워 분책을 하였다. 비용은 6천원. 



....................

더 써야 하는데 이만 줄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5-03-13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시대에도 홀짝이 있었군요.

페크pek0501 2025-03-13 23:27   좋아요 0 | URL
1860년에 출생한 체호프이니 옛날이죠. 잉크냄새 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시대에 홀짝이 있었던 게 신기하군요. 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좋은 발견입니당~~

감은빛 2025-03-14 0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갈매기 라는 희곡은 언젠가 들어본 기억이 있어요. 제가 부산 사람이라 한때 부산갈매기 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그래서 갈매기 라는 단어를 접하면 반가워요.

요즘 잇따른 연예인들의 소천 소식에 마음이 좋지 않네요.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만요. 말씀처럼 명성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면 인생의 다른 면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본인이 그런 삶을 선택한 거라면 또 옆에서 뭐라고 할 권한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참, 답답한 시절을 지나고 있네요. 이게 현실인가 싶다가도, 확실히 꿈은 아닌데. 그럼 현실이 맞네. 이러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눈 감고, 귀 막고 살고 싶은 유혹에 자꾸만 빠집니다.

페크pek0501 2025-03-14 12:36   좋아요 0 | URL
갈매기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저도 읽어 보기 전에 들어 본 희곡이었어요.
부산 갈매기이시군요.ㅋ
저는 악성 댓글이나 비난이 쏟아지면 사이판이나 괌 같은 곳에 가서 아니면 국내라도 한적한 섬에 가서 인터넷 연결을 끊고 칩거하며 책이나 읽으며 산책이나 하며 맛있는 것 사 먹으며 한 달쯤 시간을 보내고 오면 자기에 대한 비난이나 소문은 사라져 있을 거라고 봐요.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리 오래 가지 않거든요. 좀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르지요.
답답한 시절이라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많다는 기사를 본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살아 내야 합니다요..^^

희선 2025-03-14 0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곡은 별로 못 읽었네요 이 책 끝까지 못 봤어요 읽어야지 하는 생각만 했네요 나오는 사람이 하는 행동과 말 그리고 몸짓을 잘 봐야 알 수 있군요 페크 님은 그런 걸 잘 보시는군요


희선

페크pek0501 2025-03-14 12:39   좋아요 1 | URL
저도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소설에 비해 희곡 읽기는 쉽지가 않아요. 등장인물이 많아 헷갈리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할 때의 분위기 파악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다행히 저는 오디오북을 가지고 있어 들으며 종이책을 읽으니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이럴 땐 오디오북이 좋습니다. 오디오북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레이스 2025-03-14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철!
과감하시네요^^

체호프 대표 희곡만 읽고,,, 단편들 읽고 있어요
읽을수록 넘 좋아요.^^

페크pek0501 2025-03-14 12:41   좋아요 1 | URL
아, 저 책이 제가 속한 동아리의 교재랍니다. 들고 다녀야 해서 무거워서 분철, 해 봤어요. 비용이 들어 그렇지 편한더라고요.
체호프 단편집을 두 권 읽었는데 다 좋았어요. 민음사 것과 펭귄 클래식 것을 읽었는데 겹치는 작품이 있긴 했어요. 체호프는 단편의 천재, 라고 봅니다. 희곡은 아직 다 읽지 못해 잘 모르겠어요.^^
 



15년 전쯤에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쓴다고 하면 의외라고 여기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처럼 블로그 문화가 활성화되기 전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몇 달 전이었다. ‘영화 토론 모임’이 끝난 뒤 밥을 함께 먹으러 가자는 누군가의 말에 내가 운동하러 가야 해서 안 된다고 말하자 무슨 운동을 하는지 묻는 이가 있었다. 내가 ‘발레’를 한다고 답하자 놀라는 이가 몇 있었다. 젊지 않은 내가 대중적이지 않은 발레를 한다니까 나에게서 의외성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날씬했던 거군요.”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고, “발레를 해서 날씬한 게 아니라 날씬한 사람이 발레를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이가 있어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우라 아야꼬, 「살며 생각하며」


사람 대부분이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 미우라 아야꼬의 「살며 생각하며」라는 수필집에 의외성에 대해 쓴 글이 실려 있다. 저자가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매일 수입이 있는 집이라서 한 은행원이 수금하러 오곤 했단다. “등이 꾸부정하고 초라한 쉰이 지난” 남자 A 씨였다. 그는 남에게 무관심했고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했다. 저자가 아사히신문사가 주최한 소설 현상 모집에 응모하여 당선이 된 일이 있었다. 이 정보를 재빨리 알아낸, 시내의 은행에서 근무하는 외무원이 (예금을 들게 만들려는) 영업을 위해 선물을 사들고 왔다. 그런데 A 씨는 도통 무관심했다. 


며칠이 지나서 A 씨는 또 왔다. 나는 A 씨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예금을 해 주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축하의 말은 해 주었지만 이렇게 말했다. 

“할당받은 이외의 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억척스럽게 자기의 성적을 올리려고 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의 철저한 이 소극성은 참으로 희소가치라 할 수 있을 보기 드문 존재였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나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이런 무기력한 은행원으로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내인가, 부모인가, 사회인가, 직장인가? 이 무기력은 과연 진정한 무기력인가, 혹은 어떤 것에 대한 저항인가? 나는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싱거운 무기력한 인생에 동정했다.(88쪽)


그런 어느 겨울 날, 아사히가와에 눈축제가 있었다. 빙상 카니발이 있다고 해서 나는 그날 밤 공원의 스케이트 링크까지 취재하러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링크를 둘러싸고 빙상 카니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스커트 아래 늘씬한 각선미를 가진 젊은 여성이 흐르는 멜로디를 타고 파란 수은등 아래에서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사람들이 그 멋진 묘기를 보려고 링크 주위로 몰려와서 한쪽이 혼란을 빚었다. 그때 링크 저쪽에서 한 남자가 스케이트를 지치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무척 세련되고 훌륭한 솜씨였다. 그는 혼란한 군중들 앞에 보기 좋게 딱 멎어섰다. 박수를 보내고 싶은 멋진 모습이었다. 

“여러분, 조금 더 물러나 주세요.”

활달한 소리로 말하는 남자의 옆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A 씨였던 것이다. 

‘아니, A 씨를 닮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가 말을 걸기를 주저했을 때 다른 사람이 그를 불렀다. 역시 A 씨였다. 

‘이런 일이 세상에 있을까?’

어쩌면 쌍둥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와 A 씨의 눈길이 마주쳤다.

“아아, 구경 오셨군요.”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그는 또 늘씬하게 발레를 추는 사람처럼 멋지게 미끄러지면서 멀어져 갔다.(89쪽)


이거야말로 보기 좋은 180도 역전일 것이다. 나는 그때의 놀람을 일생 잊지 않을 것이다. 초라하던 50대의 그는 30대의 어느 남자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웠다. 

도대체 어느 편의 A 씨가 진짜 A 씨일까? 나는 스케이트를 타고 있을 때의 A 씨가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의 보람은 스케이트이지 저금의 권유는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의 사명에 살고 있을 때야말로 참으로 그 사람의 모습이 발휘된다고 나는 생각한다.(90쪽) 


나의 생각 : 스케이트를 타고 있을 때만 A 씨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 없고, A 씨가 가지고 있는 여러 모습을 전부 합쳐야 A 씨라고 본다. 


누구나 수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무수한 N(엔)들이 있는 셈이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아는 것은 고작 그의 일부일 뿐이니 그의 N(엔)분의 1 또는 N(엔)분의 2 또는 N(엔)분의 3만 안다고 할 수 있다. N들의 총합이 그 사람인데 우리는 타인의 N(엔)들의 총합을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를 잘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덧붙여 말한다면 인간은 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의외성이 언제 발현될지 알 수가 없다. 


   


....................

이것은 여담인데 발레를 배우면서 어렵다는 걸 느끼게 될 때마다 얻게 되는 이점이 하나 있다. 발레보단 그래도 글쓰기가 쉽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글쓰기에 필요한 용기가 생긴다는 점이다.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는 바이올린을 배운다면 여러분도 바이올린을 켜는 것보단 글을 쓰는 게 쉽다고 느낄 것이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5-03-03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선생님.
다 팔자 같아요. 저는 물론 잡글 쓰는 게 훨씬 쉽지만 죽자사자 발레만 판 사람(근데 그런 거 같지도 않았습니다만)은 글 쓰는 게 플리에 보다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5-03-03 14:17   좋아요 1 | URL
저는 몇 바퀴 돌고 나서 흔들림 없이 정지하는 게 어려워요. 어려워도 발레를 계속하는 것은 평소 우리가 쓰지 않는 근육을 쓰게 해 주기 때문이에요. 발레를 해서 유연성이 좋은 걸 유지하려면 계속해야 합니다. 유연성은 건강의 척도라고 믿거든요. 다, 팔자 같다고 생각하면 맘이 편해집니다.^^

서곡 2025-03-03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ㅋㅋ 전에 본 미드에 남성 소방관이 근무후에 줌바강사를 하는데 그게 생각나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25-03-03 14:48   좋아요 0 | URL
멋질 것 같습니다. 저, 고등학교 때 무용 선생님이 남자여서 참 색다르게 느껴졌었는데 그분이 한 바퀴를 멋지게 돌아서 우리가 감탄했던 게 생각납니다. 이달에 애들과 함께 보려고 무용 공연을 예매해 놨어요. 멋진 공연이 될 것 같아요.^^

cyrus 2025-03-03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독서 모임에 참석했을 때는 알라딘 블로그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알려줘도 블로그를 보러 올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블로그 활동을 오래 해보니까 ‘글 쓰는 나의 정체성’을 알리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새로운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알라딘 블로그에 서평을 주로 쓴다고 말해요. 알라딘에 블로그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

페크pek0501 2025-03-03 17:11   좋아요 1 | URL
저랑 정반대네요.ㅋ 저는 블로그가 생긴 초창기 때는 신기해서 제 블로그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 이젠 블로그를 갖고 있다고만 말하고 블로그 주소를 안 가르쳐 줍니다. 별로 영양가 있는 글이 없어서 말이죠. cyrus 님은 꼼꼼하게 리뷰를 써서 올리시니 알려 주셔도 된다고 봅니다. 글은 서로 알려 공유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해서 저도 리뷰를 성실히 올리고 있을 때쯤이면 지인들에게 알릴 예정입니다. 맞아요, 알라딘 기능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인터넷 서점 중 블로거 활동을 가장 하기 좋은 곳이 알라딘, 인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5-03-03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발레 하시다니 멋집니다!! 발레가 진짜 우아하죠. 페크 님 움직이실 때 기품 있을 듯요. 저도 예전에 발레 잠깐 배웠는데 진짜 힘든 운동이더라구요. 저는 세 명 모아서 강습 했는데 한 명씩 빠져서 결국 없어졌죠ㅜㅜ 겨우 3개월 하고 끝났답니다. ㅎㅎㅎ 턴 도는 거 배우다가 끝났어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5-03-04 13:01   좋아요 2 | URL
제가 발레를 할 땐 우아함과 기품과는 거리가 멀고, 저와 진짜 어울리지 않는 동작이 많아 속으로 웃음이 나와요. 이런 재미로 배우나 봐요. 힘든 운동 맞아요. 발레를 하고 나면 땀이 어찌나 나던지 비 맞은 얼굴이 되어요. 3개월 하셨으면 발레 맛은 충분히 본 것 같네요. 기회를 봐서 또 발레 하시길 권하고 싶어요. 어깨가 굽지 않고 꼿꼿한 바른 자세를 만들거든요. 저는 발레 덕분에 키가 1센티미터 커지기도 했어요. 숨은 키를 찾은 거지요.^^

모나리자 2025-03-03 2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블로그 15년 되셨군요! 저는 올 여름이면 9년이 되네요. 저도 제가 블로그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한해 두해 지나면서 왜 이걸 더 빨리 몰랐나 했었네요.ㅎㅎ
뭐든 시작이 어렵지 발을 들인 후에는 한가지라도 나에게 유익한 점이 있다면 하게
될 것 같아요. 발레는 스트레칭 동작도 들어있고 해서 몸을 유연하게 하는 등 장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전 아이들 어릴 적에 에어로빅을 다닌 적 있는데 빠른 동작을 못 따라
하니 은근히 스트레스였던 기억이 납니다. 꾸준히 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내 안에 또다른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3월에도 화이팅 하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5-03-04 13:05   좋아요 2 | URL
블로그, 모나리자 님도 오래되셨네요. 저도 제가 블로그를 해서 제 글을 공개하며 살 줄 몰랐어요. 발레를 배우게 될 줄도 몰랐어요. 발레는 스트레칭 동작이 많아 건강에 좋지요. 에어로빅도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발레 동작이 너무 어려워서 개인 지도도 받았었답니다. 몇 번 하다가 말았던 것은 수강료가 너무 비싸서요. 생돈을 날리는 기분이 들어서리...ㅋㅋ못하더라도 꾸준함의 힘을 믿고 단체 수강을 받기로 했죠. 발레는 배울수록 재밌어요.^^

희선 2025-03-04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한테는 여러 가지 면이 있겠지요 그걸 다 알기는 어렵겠습니다 오래 알고 지내도 잘 모를 듯합니다 어느 날 새로운 면을 알게 되면 그것도 재미있겠네요 자기 자신도 잘 알려고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은 듯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03-04 13:08   좋아요 1 | URL
제 뱃속으로 낳은 자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많은 걸요. 저는 제 인생이 앞으로 또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남들이 볼 땐 별 변화가 없다고 보겠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게 있거든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심이 많고 타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이 점을 명심하면 인간관계에서도 별로 스트레스를 안 받을 듯합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감은빛 2025-03-04 0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미있고 훌륭한 글을 서재 이웃인 페크님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저도 예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저의 어떤 특정한 측면만 보고 제가 아주 특이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지인들이 대부분인데, 제가 보기엔 그 지인들 모두 평범하지 않다고 느끼거든요. 다들 좀 더 평범하게 남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고, 또 좀 많이 다른 독특한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다수는 그런 면을 다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죠.

제가 요즘 장발에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서 어딜가나 눈에 확 띄고, 주목을 좀 받는 편인데. 어디 산에서 도 닦다가 내려온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면만 보는 이들에게 저는 그런 선입견을 통해 규정되거나 고착화 된 이미지 속에 가려지겠지요.

페크pek0501 2025-03-04 13:14   좋아요 0 | URL
미우라 아야꼬의 수필집을 오디오로 듣고 이렇게 재밌다니 이런 건 종이책을 사야 해, 하는 생각으로 그의 책을 세 권이나 샀답니다. 소설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수필도 재밌게 잘 써요. 잘 쓴 수필이라고 해서 반드시 재밌는 건 아닌데 이 책은 재밌답니다.
장발에 수염, 이라면 김어준이 떠오르네요.ㅋㅋ 한 이미지가 강렬하면 다른 것들은 그 속에 묻히게 되기 마련이지요.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내버려 두는 사회이길 바랍니다. 남의 일에 간섭할 필요가 있나요. 저와 제 가족의 삶만으로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말이죠. 맘 편히 개성을 살리면서 살자고요. ㅋㅋ좋은하루 보내세요.^^

감은빛 2025-03-05 20:02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하필 김어준이라니요. ㅎㅎ 이런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장발에 수염을 기른 남성이 워낙 없으니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정되어 있는 것이요. 다양한 스타일이 가능할텐데요. 여성 분들이 머리를 기르면서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하는 거처럼요.

사람으로서도 정말 끔찍하게 싫은 사람이 김어준이지만, 스타일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페크pek0501 2025-03-06 11:11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 미안합니다. 하하~~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정되었다, 에 동의합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을 아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김어준의 안티가 많긴 하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이 재밌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도 보고 책도 샀어요. 위선을 떠는 것도 재밌고 건방을 떠는 것도 웃겨요. 연구 대상, 입니다. 그래도 유시민 작가는 한국에서의 그의 역할을 꽤 인정해 주더군요. 좋은하루 보내십시오.^^

카스피 2025-03-04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이젠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 보다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5-03-06 11: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만 해도 유튜브 영상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이 알라딘에서도 다른 곳?이 있어 그쪽으로 이동하여 연재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예전엔 글을 올리면 화제글에서 금방 내려오는데 이젠 등록된 글 수가 적어서인지 화제글에 오래 머물러 있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25-03-04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귀엽습니다. 분명 발레뿐만 아니라 뭐든 새로 배우는 건 다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뭔가를 배운다는 건 보람있는 일인 것 같아요. 뭔가를 배우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잖아요.
저도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 되야할텐데 말입니다.
이책 보는 순간 왜 저는 레오버스 카글리안가? 그 작가가 생각난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이 사람 책이 유명 했는데 말입니다. 교육 에세이로 유명했던 거 같은데요. ㅋ

페크pek0501 2025-03-06 11:17   좋아요 2 | URL
저, 발레에 진심이에요.ㅋㅋㅋ 아, 발레를 정말 잘하고 싶당, 하고 느낍니다.
새로 배우는 건 다 어렵지요. 처음 하는 거니까요.
맞아요.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유익할 뿐 아니라 즐거운 일이고 젊어지는 일입니다.
교육 에세이, 제가 모르는 작가입니다.ㅋ 좋은하루 보내세요.^^

2025-03-05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6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자책이 있는데 읽어 주는 기능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완독했다. 그런데 꼼꼼히 한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아 종이책을 어제 샀다. 좋은 글이 많다.  


한 번뿐인 내 인생 이렇게 살다가 가기 싫다 하고 마음먹은 이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겠다 마음먹은 이후, 내게 또 하나의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사적 관계도 끊어내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전화나 문자도 받지 않았다.(161쪽)


아주 쉬운 예를 들면 “너 의외로 다리가 굵다”라든가 “너 얼굴이 생각보다 커”, “어머 배 나온 것 좀 봐. 왜 그렇게 살이 쪘어. 얼른 빼!”라든가, “너 성질 좀 안 좋잖아”, “너 머리 그렇게 자르지 마. 이상해”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을 멀리했다.(161쪽)


“언니 그러면 주변에 사람 아무도 남지 않을 거예요. 그걸 다 끊어내면 혼자 남아요.”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그런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나 자신을 폄하하는 말들과 괴로워하며 싸우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나아요.”(161~162쪽)


“듣기 싫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야”라는 사람은 “듣기 싫은 이야기를 왜 굳이 해야겠니? 나는 성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라는 말도 없이 그냥 차단했고, “저기 내가 좀 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괜찮겠니?” 하고 접근해 오면 “아니 괜찮지 않으니까 절대 하지 마세요!”라며 응수했다.(162쪽)


그냥 되었던 것 아니다. 연습했다.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렸고, 그리고 기회가 오면 떨리지만, 이렇게 하면 내가 교양 없고 예의 없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혹은 꼰대라고 욕할까 봐 겁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162쪽)


⇨ (이에 내가 덧붙여 말한다면) 그런 기분 나쁜 말을 하는 곳에 나를 두고 싶지 않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


이런 글을 읽으면서 왜 내 속이 시원해졌는지 모르겠다. 저자에게 잘했네요,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굳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남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한두 번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주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관계를 끊는 것이 낫다고 본다. 


나의 경우 한 친구의 어떤 단점이 못마땅해서 내가 잔소리를 하는 악역을 맡고 싶지 않아 끊어낸 적이 있다. 만나면 내가 상처를 주게 될까 봐 걱정이 되어 지금도 연락이 오면 따뜻하게 대해 주고 내가 연락을 하진 않는다.


늘 기분 좋은 말만 들을 수는 없을 테니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처 받는 걸 감수하는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행운이라 할 만하다.  




올해 2월에 산 책. 



....................

어제 외출했더니 오늘 일이 많아 긴 시간 동안 집안일을 했다.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 글을 좀 쓰려 했는데 매일 칼퇴근하는 남편이 귀가했다. 내가 안방에서 내다보지 않으니 거실에서 “이리 오너라” 한다. 웃겨. 자기가 왕인가? 거실로 나가 보았다. 장을 봐 왔다고 한다. 동태탕을 사 와서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편히 그리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장을 보는 것은 그의 취미.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니 이 시간이다. 이제 누워 쉬고 싶어 이쯤에서 글을 마친다. 다음에 많이 써야겠다. 매일 일을 미루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25-02-28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이게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필요합니다. 관계를 끝장낼 용기란 결국 상대방과 동등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선다는 의미죠.

페크pek0501 2025-02-28 21:18   좋아요 1 | URL
저자는 ˝사람하고 헤어지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146쪽)라고 쓰기도 하고,
˝우리는 우리의 장점에 대해 들어야 한다˝(154쪽)라고도 썼더군요. 제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나 지적을 받은 경험이 있던 터라 공감했어요.
관계를 끝장낼 용기가 그런 거군요. 앞으로 이 책을 꼼꼼히 읽어 많이 배우려 합니다.
고통만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는 글이 와 닿았어요. 제가 바꿔 표현하면 약자가 되어 본 자만이 성장한다. 가 되겠어요. 약자의 위치에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성장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5-02-28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은 그냥 안 만나고 서서히 끊어내는 쪽이에요. 싫은 사람을 계속 만나는건 자기 학대같아요. ㅎㅎ
장봐와서 이리 오너라 하는 남편 너무 멋져요. 우리 남편도 장 봐오면 이리 오너라 저리 가거라 해도 다 봐주겠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25-03-01 13:04   좋아요 1 | URL
아, 자기 학대일 수 있겠네요. 예전엔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다 받아들이기로 하며 산 것 같은데 이젠 걸러 낼 것은 걸러 내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다는 생각이에요.
이젠 나이 들어 집안일을 혼자의 힘으로 하기가 벅찬데 청소, 장 봐 오기 등을 남편과 나눠 하니 좋긴 해요. 이리 오너라 저리 가거라, 님의 표현이 재밌습니다.^^

2025-03-0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3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4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6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6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6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5-03-0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따뜻한 음식이 좋은 시기인데 동태탕 맛있게 드셨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편안한 사이에서는 더 그렇고요.
사람을 만날 때, 끝나고 돌아올 때 좋은 기분이 드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조금씩 느낌이 다르긴 해요. 좋은 사이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또 이전에는 가까운 사람도 시간 지나면서 멀어지고, 전보다 가까워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인간관계는 참 어렵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03-03 12:39   좋아요 0 | URL
동태탕이 매콤해서 맛있었어요. 가끔 음식을 사 오면 편하지요.
만나고 돌아올 때 좋은 기분이 드는 사람을 만나라, 좋은 말씀이네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네요. 나이가 들고 나니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좋은하루보내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모나리자 2025-03-03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공감하고 웃음짓게 하는 글입니다. 원래 누구나 나이가 더해질수록 관계 맺는
사람이 적어진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유튜브 영상에도 인간관계에 대한 영상이
많이 나오더군요. ‘혼자가 편하다‘ 등등...책과 친구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ㅎㅎ
날씨가 춥습니다. 감기조심하시고요. 3월에도 화이팅 하세요. 페크님.^^

페크pek0501 2025-03-04 12:56   좋아요 0 | URL
저는 독서, 영화 등 동아리가 생기니까 아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사회에서 만났다고 할 수 있는데 적당한 거리가 있어서 서로 예의를 갖추다 보니 지적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서 좋은 것 같아요. 또 얘깃거리가 풍성해요. 저도 휴튜브에서 보니 친구는 별 필요가 없고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취미 같은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벌써 3월입니다. 모나리자 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