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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고위층의 비리가 드러나서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일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처음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엔 혐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그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사회에서 힘이 있는 자들만이 저지를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힘없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밟고 살기 어려운 땅의 이야기 같다.

 

 

 

명문 대학에 입학이 가능한 정원의 수처럼, 모든 좋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결국 어떤 분야에서든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타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것이다. 또 나중엔, 그런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할 듯싶다.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재산이 많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신 우월감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또 한 번의 패배감을 안겨 준다.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을 안톤 슈낙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이런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독일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고위층의 ‘비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인처럼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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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안톤 슈낙 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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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7-2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의 '의자놀이'란 책이 곧 발간될 예정인데요...
의자는 정해져있고, 사람은 더 많은 경우,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추하게 싸우는 모습... 그 경쟁의 구도를 복지의 구도로 바꾸어야 사람은 살 건데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2-07-30 14:00   좋아요 0 | URL
아, 반가운 글샘님! 역시 정보맨이시군요.
공지영 작가의 책은 단편은 몇 편, 그리고 장편은 네 권을 읽었는데, 다 괜찮았어요.
경쟁의 구도를 복지의 구도로 바꾼다, 멋진데요.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생계의 문제 때문에 비관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죠.
우리 딸들이 살 미래가 걱정이 되어요. 미래 전망이 밝았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12-07-29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은자의 슬픔, 저 싯구도 생각나고
다시 들춰보고 싶어져요, 페크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외에도 많지요. 그럼에도 기쁨을 찾아야겠구요.
무지하게 더워요. 버티다가 결국 에어컨 켰답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2-07-30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남이 쓴 페이퍼 읽다가 제가 읽었던 시가 나오면 다시 들춰 본답니다.
정말 덥죠? 저는 아이들이 툭하면 에어컨을 켜서 아예 리모컨을 감춰 두었답니다.
에어컨이 천장에 부착되어 있어서 그 리모컨이 없으면 켤 수 없거든요. 그래도 바람이 있는 날이면 맞바람 쳐서 시원한 편인데, 청소를 한다든지 해서 움직이면 참 더워요.
아주 더운 날엔 저도 켤 수밖에 없어요.ㅋㅋ 그래도 전 여름이 좋아할 꼬예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7-2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자가 부리는 횡포는 보통 사람들은 경험하기 힘들죠.보통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끼리 벌이는 아귀다툼이 더 익숙하죠.평범한 사람들의 잔인성!

페크(pek0501) 2012-07-30 14:04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의‘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생각나네요. 인간은 무지함으로써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인간의 사악함을 인정하는 편이에요. 인간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에 사악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 반대편엔 천사 같은 얼굴이 있어요. 동전의 앞뒤처럼 다 갖고 있는 게 인간이란 생각이에요. 그러므로 절대적인 악인도, 절대적인 선인도 없다는 거죠. 그저 인간은 거기서 거기...ㅋㅋ
반가웠습니다.
 


<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더 큰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 - <탈무드> 중에서.




1미터 길이의 직선에 손을 대지 않고 그 직선을 짧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의 답은, 그 직선보다 긴 직선을 위나 아래에 그어놓는 것이란다. 그렇게 하면 원래 있었던 직선이 짧은 직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짧다’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어떤 불행한 일을 겪을 때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면 그 불행한 일이 작은 불행이 된다는 뜻의 구절이 <탈무드>에 나온다. “이보다 더한 불행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라”라는 구절이다.


이것의 예를 이렇게 들 수 있겠다. 십만 원을 잃어버리면 이십만 원을 잃어버린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서 그것보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여기고, 화재가 나서 집이 타버리면 인명피해가 있는 더 큰 불행을 생각해 내서 그것보다 다행스런 일이라고 여기며 위안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가정보다 차라리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남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을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예를 들면 전셋집에서 사는 사람이 월세를 내며 사는 친구를 만나서 위안을 받고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경우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불행은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로 권여선 작, <사랑을 믿다>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남자와 이별하고 실연의 고통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한 젊은 여성이 어머니 심부름으로 큰고모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서 우연히 불행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그 여성의 큰고모님 댁을 철학관으로 잘못 알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누구는 친지의 희귀병 때문에, 누구는 유괴된 손자 때문에, 누구는 바람난 남편 때문에 절실한 마음으로 점을 보러 철학관을 찾아왔던 것.


그들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된 그녀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건만 그들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강하게 끌리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집의 계단을 내려오면서 타인을 위해 빌었다. “희귀병을 앓는 친지의 완쾌를, 유괴된 손자의 생사를, 바람난 남편의 귀가를, 자식을 앞세운 뒤 늙어가는 부부의 평안과 명랑을 빌었다. 그녀가 타인을 위해 뭔가를 이토록 절박하게 빌어본 적은 없었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그녀는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는 것은 이제 남자와의 이별로 신음하던 그녀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 집을 방문하기 전과 방문한 후의 그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자신의 지독한 아픔도 싹 잊은 채 오직 남을 위해 마음속으로 절실히 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아픔 따위는 거의 치유되었다는 걸 뜻하리라. 그런 불운한 일들을 겪으며 사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고통은 아주 작은 하찮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이런 분석이 가능할 듯싶다. 첫째,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 그러므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엄살떨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나의 행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남의 불행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는 것. 셋째,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모습과의 비교가 필수라는 것.


타인과 늘 비교하는 인간의 심리로 인해,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아도 외국여행을 다니거나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고, 그리 뚱뚱하지 않아도 자신보다 더 날씬한 사람을 보면 자신은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보다는 열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뜻으로 솔제니친*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있는 한 행복하다. 아무것도 그를 막지 못한다.”


* 솔제니친 :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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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


<탈무드> :  

                     

“인생은 무엇이며, 또한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5000년의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유태인들의 온갖 지적 재산과 정신적 자양분이 모두 이 <탈무드>에 담겨져 있다.”



 

 

 

 

<사랑을 믿다> :  


권여선, ‘2008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에 정영문, 하성란, 김종광, 윤성희, 천운영, 박형서, 박민규 등의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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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2010-01-19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자주 들어오는데 오늘도 새 글이 없군요. 바쁘신가봐요. ㅎ

페크(pek0501) 2010-01-22 12: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쁘기도 합니다만 워낙 무능해서요 ㅋ. 블로거들 중엔 직장을 다니면서도 매주 신간을 읽고 리뷰를 올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유능한겁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쁜 티를 내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다 해놓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이죠. 저는 요즘 그저 게으름의 자유와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헌책방IC 2010-02-0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게으름의 자유와 느림의 미학. ㅋ 좋지요 ㅎㅎ

페크(pek0501) 2010-02-02 14:16   좋아요 0 | URL
속도주의에 빠져 바른 속도만 중요시하는 시대에 사는 게 부담스러운데, 그렇게 느림의 아름다움을 느끼자는 분위기도 있어 저 같은 사람에게 위안을 줍니다.

진지리진 2010-08-04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름다운 쌤♡
오늘 우리 만나기로 한 날인데^^
못 만났죠.. 덕분에 오늘은 감동을 주는 글..에 취해 갑니다~

페크(pek0501) 2010-08-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그리고 반가워. 그 벌칙으로, 만나면 내가 맛있는 팥빙수를 쏠게, 아니면 우리 물냉면을 먹을까 ㅋ
연구문제를 정하는 데도 힘들던데, 설문조사를 하는 건 더 힘들던데, 통계분석의 해석을
쓰고 있는 오늘은 더 힘드네. 논문쓰기가 산 넘어 산이라고 할 수 있네. 이제 좀 쉬려고 컴퓨터를 끄려다가 진의 댓글을 발견하고 반가워 로그인 했어.
이 무더운 여름날, 난 더운 줄도 모르겠어. 바다에 빠졌거든. 연애의 바다라고...ㅋ
휴우, 난 요즘 논문과 연애중...
 


<책 속의 구절>로 쓴 칼럼


확신이 어리석은 이유





문학의 지혜란 뚜렷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상반됩니다. - 수전 손택 저, <문학은 자유다> p210.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는 여러 학원을 다니느라 독서할 시간도, 숙제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 뒤에는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이것저것 배워야 남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학부모가 있다. 아이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하여 아이가 병이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부모들에게, 초등학생들은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충분히 휴식해야 키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기 싫어한다면 집에서 독서습관을 길러 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라는 말도 소용이 없다. 공교육은 아이들 모두가 똑같이 받는 것이니, 개별적인 선택의 사교육이 중요하다고 확신하는 학부모들에겐 학원은 필수사항이다. 이런 학부모들은 아이가 다니는 학원의 수가 곧 아이의 경쟁력이라고 믿는데, 그야말로 뚜렷한 견해를 가진 이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로 인해 모자간 갈등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대체로 아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는 가난한 집의 딸이다. 반대로 어머니가 결혼을 권하는 상대여자는 부잣집 딸이다. 이런 어머니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 가난한 집의 딸보다 부잣집 딸이 좋다고 굳게 믿어 버린다. 그런데 이런 경우 대부분, 가난한 집의 딸은 대체로 착하고 부잣집 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이기적으로 보이는 콧대 높은 부잣집 딸보단 착해 보이는 가난한 집의 딸이 더 좋은 신붓감으로 생각된다.


딸을 가진 어머니가, 이미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남자를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 내용의 드라마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남자가 사윗감으로서 조건이 좋다는 것과 자신의 딸이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 그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집념마저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간과한 것은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딸이 행복할 가능성은 아주 적다는 사실이다. 이미 다른 여자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남자가 사랑하지도 않는 자신의 딸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어야 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없었던 건 자신의 생각이 매우 뚜렷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는데도 검사나 의사가 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부모는 이렇게 덧붙이곤 한다.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그런데 이 말이 백 퍼센트 진실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혹시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에 부모 자신부터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자랑스런 자식을 두고 싶은 게 부모로서의 욕심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남을 비난하기는 쉬워도 자신에 대해 반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에 종종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 뛰어난 판단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뛰어난 판단력이란 올바른 생각을 밑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올바른 생각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고 독서를 하는 것도 결국 올바른 생각으로 판단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결과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안다. 앞날을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니까.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오판 가능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이것이 확신이 어리석은 이유다.


수전 손택은 그의 저서 <문학은 자유다>에서 "문학의 지혜란 뚜렷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상반됩니다."라는 말로, 문학에서 '확신의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문학에만 적용되는 말이겠는가,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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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이 칼럼을 쓰게 된 동기


중학교 일학년인 딸아이가 연예인이 되고 싶다며 연예인의 세계에 관심을 보이곤 하였다. 난 그런 아이에게, “연예인이 되려는 길은 마음고생이 심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하니 공부에만 전념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넌 그런 쪽으로 재능없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아이는 섭섭하다는 눈빛으로, “엄마는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말해, 내가 잘 될 수도 있는데, 자식의 꿈에 격려해 줘야 좋은 엄마지.”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얘가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아이의 눈엔 내가, 위의 칼럼 속의 어머니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가 비판했던 어머니와 내가 다를 게 없다는 것. 이런 생각으로 이 칼럼을 써 봤다. 나는 <유형지에서>라는 소설 속 장교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물론 거기엔 나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유형지에서>라는 소설은 내가 얼마 전 리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으로 위의 칼럼을 쓴 것이다. 이미 이 소설의 내용을 넣어 <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가>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으니 이 소설로 인해 세 편의 글을 쓴 셈이다. 그만큼 나로 하여금 할 말이 많게 만들었던 소설이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지…. 그래서 판단해야 할 어떤 일이 생기면 내 생각에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많다. 그럴 때 위안이 되는 것을 최근에 비로소 찾았다. 바로 수전 손택의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자마자, 마치 무심코 길을 걷다가 반짝거리는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으로 들떴다.


바로 이 문장이다. “문학의 지혜란 뚜렷한 견해를 가지는 것과 상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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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수전 손택’의 저서

<문학은 자유다>, 이후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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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09-12-3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면 새해가 시작됩니다. 빠른 세월을 화살로 또는 흐르는 물로 표현한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올해 1월 말에 블로그를 개설했어요. 블로그를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아직 그런 만한 역량이 없는 것 같아서) 어떤 책을 읽고 그냥 한 번 리뷰를 썼더니 자동으로 블로그가 생겼습니다(그런지 몰랐음). 그래서 시작된 블로거 생활입니다. 열심히 그리고 자주 글을 올려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방문객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저로선 고마운 일입니다.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로운 마음과 즐거움이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옹달샘 2009-12-31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글에 나오는 어머니들처럼 내 생각이 옳다고 우리 아이에게 잘못된 확신을 주입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수용하고 어떤 경계선을 긋지않는 자유로운 사고를 갖도록 수전손택의 저서를 읽어야겠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경인년에도 복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0-01-01 11: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옹달샘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요즘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아는 것만큼 쓰고 읽은 만큼 아는 것이므로 결국 읽은 만큼 쓴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글의 질은 독서량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많은 책을 읽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요즘따라 책 속에서 제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읽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인생은 짧고 읽어야 할 책은 많습니다.

민교 2010-01-0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수업 정말 재있었어요~^^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요 수업이매일 정말 기대되네요~^^

페크(pek0501) 2010-01-03 14:48   좋아요 0 | URL
와우!, 민교군 들어왔군요. 수업에서보다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군요. <죄와 벌>책을 읽는 것, 빨리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내가 왜 천재작가라고 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700쪽이 넘는 분량이어서 부담스러울 텐데, 즐겁게 완독하셔서 그것으로 수업한 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군요. 이번에 안 읽는다면 아마 평생 읽기 힘들 겁니다. 내년부터 고등학생이 되면 이렇게 긴 장편을 붙들고 살 수 없을 듯...

태혁 2010-01-0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수업을 듣고 3번쨰 댓글이네요..
새해가 밝았는데 새해복 많이 받으시구요..
2010년에도 밝게 수업하구요. 작년 수업 정말 재밌어요
저번주에 모르고 못갔었는데요 2010년에는 꼬박꼬박 지각안하고 다닐께요^^
새해 福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10-01-05 13:41   좋아요 0 | URL
태혁군, 반갑군요. 지난 주 태혁이가 빠진 수업은 크림을 넣지 않은 맛없는 커피였고, 향기 없는 꽃이었지요. 우리의 수업을 즐겁게 해 주는 일등공신이 오지 않아 모두들 섭섭해 하는 눈치... 다음부턴 결석을 하지 않는, 늘 성실한 학생이 되어 주시길... 그리고 우리를 계속해서 즐겁게 해 주시길...

미현 2010-01-0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토요일 퇴원했어요. 아직 앉아 있는 것 힘들어요~나중 시간 되면 천천히 은경씨 글 음미할께요^^* 2010년 화이팅~

페크(pek0501) 2010-01-05 13:46   좋아요 0 | URL
반가운 미현씨, 모든 고생 끝났고 이제 회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아 마음 놓여요. 안 그래도 연락해 볼 참이었어요. 언제 차 몰고 외출할 수 있을 때 만나요. 약속대로 맛있는 것 사줄게요. 그때처럼 우리 동네에서 영화를 보러 가도 좋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페크(pek0501) 2010-01-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눈이 많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도 하고 불편하게도 했을 눈입니다. 하루종일 바빠 컴퓨터를 켤 시간이 없어 이제 들어와 보네요. 전 제 블로그에 일주일에 두세 번 들어오는데, 그것도 잠깐 들어왔다가는, 주로 남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여러 글을 읽습니다. '많이 읽고 적게 쓰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아무래도 다작을 하다보면 글의 수준이 낮아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아마 이건 바쁘거나 게을러서 대는 하나의 핑계, 또는 합리화일지 모르겠군요................여기에 들어오시는 모든 이들에게 어제 날린 눈송이만큼 많이, 유쾌하게 웃을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책 속의 구절>


                        왜 안경 쓴 신부는 없을까



요즘 안경 쓴 여자가 예뻐 보인다는 김용건 씨


며칠 전, 한 일간지 사이트(chosun.com)에서 ‘안경 쓴 여자’에 대한 글을 보았다. 탤런트 김용건 씨가 쓴 글이었다. 그는 안경 쓴 남자는 멋있는데, 안경 쓴 여자는 별로더라, 하는 얘기를 사람들로부터 종종 들었다면서 자신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요즘은 안경 쓴 똑똑한 여자들이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듣는 앞에서 ‘똑똑한 여자는 싫다’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답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흔히 드라마 속에서 똑똑하고 못생긴 여자의 배역에 안경을 쓰게 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주인공이 미모의 여자임을 나타낼 땐 절대 안경을 씌우지 않는다. 이것은 은연중에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똑똑한 여자는 얼굴이 못생겼음을 나타내고, 안경은 그런 전달을 위한 소품임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 안경이 주는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세뇌시킨다.


내가 안경에 대한 시각을 교정한 것은 순전히 딸 덕분이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게 되었는데, 난 그 일에 무척 속상해 했다. 그런데 만약 안경을 쓰게 된 게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해 보니 그건 속상할 것 같지 않았다. 여기서 난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남자는 안경을 써도 괜찮고 여자는 안경을 쓰면 약점이 된다는 사회통념에 물들어 있었던 셈이다. 남자는 외모보다 경제적 능력을, 여자는 능력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인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웨딩드레스 입고 안경 쓴 신부는 없다


안경은 학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우리 사회는 학자적인 남성을 선호하는 반면에 학자적인 이미지의, 안경 쓴 여성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결혼식장에서의 신랑과 신부의 모습은 이를 증명한다. 안경 쓴 신랑은 흔히 볼 수 있는데 안경 쓴 신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안경을 썼다면 아마 화젯거리가 될 게 분명하다. 딸아이의 안경 건으로 내가 속상했던 것도 ‘여자’가 안경을 써서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다. 먼훗날 결혼적령기의 딸이 안경으로 인해 약점이 있는 신붓감이 될까봐서 염려했던 것.


여자는 후천적으로 길들여진 여자로 존재


일찍이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이란 저작에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다.”라고 설파하였다. 그녀는 남성이 씌운 ‘여자다움의 굴레’를 단호히 거부하며,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문제이듯이,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라는 그녀의 주장을 ‘안경 문제’에 대입해 보면, 안경 쓴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결국 남성의 잘못된 인식이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잘못된 인식에 의해 안경을 쓰는 여성이 안경 쓰지 않는 여성보다 좋지 못한 신붓감이라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또 후천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변했다. 예전의 20대 여성들은 ‘시집만 잘 가면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지만 이젠 거기에다 ‘취업도 잘 해야 된다’라는 말이 추가된 지 오래다. 이젠 반반한 얼굴만이 여성의 경쟁력인 시대는 지났다. 남성들도 배우자감으로 여성을 볼 때 여성의 직업에도 큰 관심을 갖고 유능한 여성을 만나 맞벌이 부부로 살기를 희망하는 추세다. 여성에 대한 이상형이 바뀐 것이다. 그러니 여성을 보는 시각도 ‘똑똑한 여성이라 싫다’가 아니라 ‘똑똑한 여성이어서 좋다’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안경 쓴 여자에 대한 인식도 자연히 변해야 한다.



요즘 컴퓨터와 텔레비전으로 인해 시력이 나빠져 안경 쓴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 중의 반은 여학생들이다. 이들이 미래에 안경으로 이해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건 불공평하고 불행한 일이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지금과 달랐으면 좋겠다. 안경 쓴 여자도 안경 쓴 남자처럼 학구적으로 보여 전혀 약점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하여 결혼식장에서 안경을 쓰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너무 큰 걸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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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003년에 ‘안경 쓴 여자’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위의 글 중 일부가 그 수필의 글과 중복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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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들의 구절


<1> 프랑스의 페미니즘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이다.”

“남녀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적ㆍ문화적 영향의 결과에 불과하다.”

“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문제이듯이,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이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저, <제2의 성> 중에서 - 

 


 

 

 

 

 

 

 

<2> 영국의 페미니즘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합니다.”

“왜 남자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무슨 이유로 남성은 그렇게 부유하고 여성은 그다지도 가난한가?”

“여덟 명의 아이를 길러낸 유모는 만 파운드를 번 변호사보다 세상에서 더 가치 없는 인물일까요?” - 버지니아 울프 저, <자기만의 방> 중에서 -  




 

 

 

 

 

 

 

<3> 미국의 페미니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성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보다는 ‘왜 당신같이 좋은 여자가 결혼을 안했죠?’하고 묻는 데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신중한 태도로 살려고 하고 싶지 않게 되며, 또 그렇게 격려 받지도 못한다.”

“여자가 의식화되고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남성에게는 불리한 것이 아니다. 서로 인간이 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남편과 아이들과 가정에 대한 헌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남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쁜 원칙과 싸운다.” - 베티 프리단 저, <여성의 신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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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구절>


우리가 아는 것은 일부일 뿐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어 왕>은 리어 왕이 세 명의 딸들 중에서 효심 있는 셋째 딸의 진심을 모르고 감언이설을 늘어놓은 첫째 딸과 둘째 딸의 거짓말을 진심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큰 불행을 겪는 비극을 보여 준다. 역시 그의 작품 <오셀로>는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가 다른 남자와 밀통하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오셀로가 의처증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목 눌러 죽이고, 나중에 자신이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는 비극을 보여 준다. 이 모두 진실을 몰랐던 대가였다.


리어 왕도 오셀로도 진실을 몰랐던 것은 그 대상의 일부만 알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상의 전체 중 어느 일부만 알았던 것이며 그 나머지는 몰랐던 것. 리어 왕은 세 딸에 대해서, 또 오셀로는 아내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무엇을 안다고 할 때 그저 그것의 일부만 알 뿐이며 그 나머지는 모르는 것이다. 그 무엇도 전체를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엇을 안다고 해도 제대로 아는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다음은 브레히트의 시이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 혼자서?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대동하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 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브레히트,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에서





이처럼 언어가 어떤 대상의 본질을 알게 하는 데에 한계가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또한 그것을 아는 데에 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을 바비큐 꼬치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연인들은 상대방의 어떤 요소들을 꼬치에 꿰고 나머지는 무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자는 자기의 연인 남자에 대해, 미남 - 큰 키 - 팝송을 좋아함 - 폐소공포증 - 솔직함 - 게으름 - 산책을 싫어함 - 검정색을 좋아함 등을 꼬치에 꿰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에 대해 보고 느낀 것 중에서 그의 특징들만 골라내어 꼬치에 꿰어 그 상대를 이해하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대상의 일부만 알고 그 나머지는 모르면서도 마치 전체를 알고 있는 듯 착각하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오류를 범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총체적으로 알기보다 부분적으로만 잘 알고 있어서 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나 자신의 의외의 면에 대해 깜짝 놀라며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하고 의아해 하곤 하였다.  

  

그러므로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말할 때 ‘나는 그에 대해 잘 안다’라는 말은 ‘나는 그의 어떤 면을 잘 안다’로 고쳐 말해야 할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은데 누구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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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와 친숙해져서 인터넷 악성 댓글에 대한 피해가 생기고 그것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바 있다. 최근엔 모 방송인의 싱글맘 생활에 대한 비난의 댓글이 쏟아지기도 하였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얻은 것에 대한 비난으로, 아버지가 없는 아이의 장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쓴 글이었다. 이것을 보며 자신에 대해서도 총체적 파악이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입을 떼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싱글맘 중에는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삶을 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또는 자식을 갖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였는지, 우린 알지 못한다. 그저 싱글맘이 되었다는 사실, 그것만 알 뿐이다.


누구든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선 무엇에 대해서든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직접 경험하기 전엔 그 무엇의 일부만 아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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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과 관련한 책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셀로>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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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09-08-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서^^ 글 잘 읽고 갑니다.자주 제가 쓴 것처럼 공감이 되거든요.

페크(pek0501) 2009-08-20 09: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을 완성하고 나면 고쳐야 할 결함이 눈에 띄어 완벽한 글을 쓰기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건 제 마음 설레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글의 결함이 생각나 수정하러 들어왔어요. 싱글맘 댓글 얘기는 이 글에서 사족인 듯하여 <후기>라는 글로 빼냈습니다.

옹달샘 2009-08-2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입니다. 나 자신도 나를 모를 때가 있는데 남을 완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모든 걸 안다면 시시할 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연애하는 사이라면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가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크(pek0501) 2009-08-29 00:16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글쟁이 친구! 상대에 대해 백 퍼센트를 알아버리면 사랑하기 힘들걸요. 인간의 검은 마음, 응큼함, 속물근성까지 다 알고나면 사랑의 감정이 생길까요. 아주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두요. 아마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타인의 일부만 아는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도 빠질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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