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젊은 작가들의 릴레이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번 '작가선언 6.9'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직접 참석은 못했지만, 온라인에서나마 응원을 보탠다... 


용산참사 221일째인 지난 28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작가선언 6·9’의 작가들이 추모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경향신문(09. 09. 01) 젊은 작가들, 펜 대신 피켓을 들다  

용산참사 현장에 작가들이 섰다. 용산참사 221일째인 지난 28일 소설가 권여선·윤이형·황정은·김미월·은승완씨, 나희덕·이영광·김행숙·홍준희 시인, 평론가 권희철씨 등 작가 10여명이 피켓을 들고 거리 위에 섰다. 용산참사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유족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이날은 7월21일부터 시작한 작가들의 1인 릴레이 시위 ‘시즌 1’을 마감하는 날. 2인1조로 진행되는 시위의 이날 ‘당번’ 권여선·이영광씨가 일찌감치 1인 시위에 나섰고, 여러 작가들이 한두 명씩 거리로 모여 들었다. ‘시즌 2’는 2일부터 시작된다.

릴레이 시위는 작가들의 모임인 ‘작가선언 6·9’에서 시작됐다.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각종 시국선언이 잇따르던 지난 6월 온라인 모임을 통해 결성된 ‘작가선언 6·9’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수평적 연대’를 표방한다. 6·10 항쟁일을 기념해 192명의 작가가 ‘한줄 선언’에 이어 용산참사의 아픔을 나누기 시작했다.

현재 온라인 카페에 가입한 작가는 336명. 이들이 펜 대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1인 릴레이 시위 제안자이며 ‘시즌 1’의 실무를 맡은 반장 은승완씨는 “지난해 촛불집회 때부터 이명박 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았는데 용산참사가 이명박 정권의 친기업적이고 반서민적인 정책을 극명히 드러낸 사건인 것 같다”며 “단식을 제안했는데 토론 결과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은씨에 이어 ‘시즌 2’ 반장을 맡은 윤이형씨는 “작가이기에 앞서 우선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용산참사 문제가 시급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작가는 모두 50여명. 간간이 방문해 응원하고 힘을 보탠 작가들까지 합하면 60~70명에 달한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꽃을 나눠주고, 개목걸이를 목에 걸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1인 시위를 하고 매일 유족들과 함께 추모미사를 갖는다. 7월에는 유족들과 함께 북콘서트도 열었다. 무관심한 시민들, 툭하면 방해하는 경찰과 역무원들은 이들을 힘들게 했지만, 음료수를 건네주고 격려해주는 시민들은 큰 힘이 됐다. 개인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다 릴레이 시위에 동참하게 된 황정은씨는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이 호소할 곳이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좁다”며 “용산에서 연대의 힘을 느꼈고, 이런 연대가 확장되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추모미사 시간이 다가오자 20여명의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미사 후에는 인근 찻집에서 ‘시즌 2’ 준비회의도 가졌다.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할 때까지 릴레이 시위를 계속할 예정인데, 9월 개강 등 회원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2일부터 매주 수요일을 ‘용산 릴레이 실천의 날’로 정하고 주 1회 시위를 이어간다. 용산참사 문제뿐 아니라 4대강 사업, 한예종 사태 등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해나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스스로 ‘고령자’라 칭하는 권여선씨(44)가 말했다. “정치적인 요소는 문학 속에 항상 잠복하고 있습니다. 어느 수위를 넘어서면 목소리가 터져 나갈 수밖에 없어요. 1980년대의 형식과 다르게 자기 목소리로 자유롭게 발언하는 젊은 작가들의 모습을 보며 신뢰가 생겼습니다.”

자유로운 수평적 단결을 보여주는 젊은 작가들의 목소리가 용산참사 현장에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다.(이영경기자) 

09.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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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01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선언 6.9'은 위대한 탈고입니다.

로쟈 2009-09-01 20:54   좋아요 0 | URL
책도 구입하셨나 보군요.^^

바람돌이 2009-09-01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산을 잊지 않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로쟈 2009-09-01 20:53   좋아요 0 | URL
네, 적잖은 작가들이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것도 드문 일입니다...
 

이번 학기 강의 시간표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는 것은 월요일 강의가 없다는 것이다. 대개 일요일의 뒤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부터 바삐 출근해야 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었을 것이다(그런 학기도 있었다).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어제까지 마무리짓지 못한 일들 때문에 오늘은 시름이 한가득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과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여유가 좀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 월요일 오전시간에 바쁜 일을 제쳐놓고 한겨레21의 칼럼을 먼저 옮겨놓는다. 제목 그대로 '잃어버린 쾌활함'을 찾아보기 위해서인데, 애당초 내게 '쾌활함'이 있었는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축 처진 기분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한 방책이다(나는 '명랑쾌활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가 안 갖고 있는 그들의 '명쾌함'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작에 스크랩해놓으려고 했던 것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장의기간과 겹쳐서 '쾌활함'을 입에 올리기 어려웠다. 칼럼은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마음의 생태학>에서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거쳐 스피노자의 <윤리학>까지를 횡단하며 '쾌활함의 윤리'를 길어낸다. 근래에 읽은 가장 유익한 칼럼이다.  

 

한겨레21(09. 08. 14) 발리, 고원, 쾌활함 1 

마당에서 엄마가 아이를 부른다. 엄마는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엄마 품에 달려와 안긴다. 아이는 엄마의 가슴을 만지면서 자신의 성기를 잡아당긴다. 그런데 아이가 작은 쾌감을 느끼면서 엄마의 목에 팔을 두르려고 할 때, 엄마는 받아주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본다. 아이가 엄마의 다른 쪽 가슴을 마저 쥐려고 하면, 엄마는 아이의 뒷머리를 리드미컬하게 쓰다듬는다. 만족하지 못한 아이가 짜증을 내면 엄마는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본다. 만일 아이가 엄마를 때리면, 엄마는 화내는 모습 없이 공격을 가볍게 걷어낸다. 이런 상호 작용이 몇 번 반복되면, 아이는 마침내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면서 스스로 놀게 된다. 

절정의 추구를 회피하다  
이는 1940년경 인도네시아의 섬 발리에서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라는 인류학자가 관찰한 것이다. 베이트슨은 발리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발리의 생활양식이 서양 문명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성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에서도, 절정(climax)에 점층적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문화 형태다. 반면 위의 예에서, 아이는 절정에 이르기를 원하지만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제지당한다. 그래도 아이는 마침내 다른 놀이에서 더 큰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러므로 엄마의 행동이 ‘신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강조돼야 하겠다.) 베이트슨의 보고에 따르면, 발리에서는 이 일화처럼 생활 곳곳에서 절정의 추구를 회피하고 예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트슨은 이 대조를 꼭대기가 있는 산과 높고도 평평한 고원(高原)의 비유를 들어 분명히 했다. “아이가 발리의 삶에 보다 충만하게 적응함에 따라, 연속적인 강렬함의 고원이 꼭짓점(절정)을 대체한다.” 그러니까 발리의 문화양식은 마음과 신체가 고원 상태를 형성하도록 습관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이 짧게 왔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쾌감’이 아니라 길고 강렬하게 유지되는 ‘쾌활함’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은 외부의 쾌락적 자극을 장시간 유지시킨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습관을 통해 마음과 신체의 경향 자체를 변화시키고 그에 맞게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주저 <천 개의 고원>의 제목을 여기에서 가져왔다. 이 저서는 뾰족한 절정에 집착하게 하는 것들, 어느 하나의 존재에 고착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고발한다. 국가권력, 종교, 화폐, 정신분석학의 기표, 자아의 내면으로 회귀하는 것까지도. 기쁨의 고원 상태는 ‘많은’ 변용과 정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제도들과 맺는 ‘외적’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감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베이트슨은 자신의 책 제목을 <마음의 생태학을 향하여>라고 붙였다. 이 제목은 흥미롭다. 생태학은 원래 생물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학문인데, 인간의 마음에 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생태학’을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생태학의 모토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면, 마음의 생태학의 원리는 ‘지속 가능한 기쁨’이다. 

마음의 생태학의 원리 ‘지속 가능한 기쁨’
어떻게 높고 강렬한 고원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일반적인 원리를 말할 수는 없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방법들을 통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막연하다고? 참고할 만한 텍스트는 많다. 우선 문학작품은 변용과 정서의 실험실이다. 문학은 새로운 삶의 요소들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면의 기록 또한 중요하다. 반 고흐의 편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세잔의 대담은 구체적인 실험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블로그는 동시대의 경험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블로거들은 당신의 실험 보고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한겨레21(09. 08. 21) 발리, 고원, 쾌활함 2  

지난호에 언급한 발리의 일화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한 대목과 겹쳐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비슷하게 쓰이는 두 단어, ‘도덕’과 ‘윤리학’을 구분해야 한다. 들뢰즈의 간단명료한 정식을 빌리자면, “도덕은 우리가 해야 할 것과 관련되고, 윤리학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관련된다”. 도덕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선험적으로 지정해주는 반면, 윤리학과 관련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선험적으로 알지 못한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도덕을 형성하지만, 사회적 규율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문학과 예술은 윤리학을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종교적 명령이 없는 실천 철학이다. 윤리학은 선과 악의 구분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치 평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역량의 증감, 존재의 확장을 예민하게 느끼길 요구한다. 우리는 자신의 역량이 증대될 때 기쁨을 느끼고, 축소될 때 슬픔을 느낀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행동의 기준을 선과 악에서 기쁨과 슬픔으로 이전시키기를 제안한다.

스피노자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정도 교의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듯싶다. 그런데 좀더 나아가보자. 아무래도 기쁨과 슬픔이라는 기준은 분명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기쁨의 추구는 쉽게 쾌락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닐까? 간단한 예로 마약 중독에 대해 생각해보자. 마약이 주는 쾌감을 연장하기 위해 점점 더 중독될 때, 그것이 하여간에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좋은 것일까? 앞서 말했지만, 그것이 종교나 법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스피노자의 이차적 구분을 살펴보자. 스피노자는 기쁨과 슬픔을 다시 하위 단위로 구분한다. 기쁨은 쾌활함(cheerfulness)과 쾌감(pleasure)으로, 슬픔은 아픔(pain)과 우울함(melancholy)으로 나누어진다. 이 구분의 기준은 신체가 변용되는 범위다. 즉, 쾌감과 아픔은 신체의 일부분만 변용될 때이고, 쾌활함과 우울함은 신체의 전체가 변용될 때이다. 마약은 신체의 일부분에만 제한적으로 기쁨을 주기 때문에 그것은 쾌감일 뿐 충만한 기쁨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피노자가 쾌감과 아픔에 이중적인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쾌감은 기쁨에 속하기는 하지만 나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국소적인 쾌감을 주는 사물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픔은 슬픔에 속하기는 하지만 좋을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집착에서 풀려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때 그렇다. 그러니까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시간 안에서 봤을 때, 아픔은 쾌활함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리학의 목표는 기쁨의 형성이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해, 전체적이고 지속적인 기쁨, 즉 쾌활함의 형성이다. 

잃어버린 쾌활함을 찾아서
발리의 일화에서 아이의 불만족은 교육적 효과가 있는 아픔에 상응한다. 아이는 부모의 신중한 상호작용 안에서 쾌활함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베이트슨의 관찰이 정확하다면, 이러한 문화 형식이 몇몇 사람의 특별한 지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 안에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발리의 음악 또한 점층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배제하고, 같은 모티브가 변주되고 반복된다. 발리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언젠가 한국의 라디오에서 들었던 멜로디가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아,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였던가. 시작도 끝도 없이 완만하게 진행되는 노랫가락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한국의 사회와 문화가 최근 10여 년간 절정의 쾌감을 추구하며 급속하게 변형돼왔다는 점을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강렬하고도 평평하게 지속되는 쾌활함을 유지하는 법은 ‘잃어버린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다시 새롭게 구축할 수 있을까.(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09. 08. 31. 

P.S. 이 칼럼의 기여는 '쾌감'과 '쾌활함'의 의미를 명확하게 분절해놓은 것이다. 혹은 '쾌활함'이란 말의 용례를 새롭게 정의하고 제시한 것이다. 앞으로 '쾌활함'이란 말을 사용할 때마다 나는 전거로서 이 용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얻은 유익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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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01 08:54   좋아요 0 | URL
그리스 수도원의 본심이 마음의 고원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면
님의 고원(블로거)도 쾌활함의 연대입니다. 지난 10년이 역사의
'쾌감'이었다고 하다면 일본의 오늘은 '쾌감',아니면 '쾌활함'
일까요?

로쟈 2009-09-01 20:53   좋아요 0 | URL
'쾌활함의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죠.^^

종이 2009-09-02 10:02   좋아요 0 | URL
제대로 안 읽고 지나쳤던 좋은 글을 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로쟈 2009-09-03 22:36   좋아요 0 | URL
네, 챙겨두고픈 글이었습니다...
 

엊그제부터 환절기면 겪는 알레르기 증상 때문에 컨디션이 저조한 데다가(비록 심한 편은 아니지만 정신노동에는 그 정도로도 치명적이다) 당장 내주면 개강이어서 스트레스가 겹쳤다. 미리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데다가 마무리짓지 못한 일들까지 한 보따리니 구제불능이다. 강의는 화요일부터이지만 몇 가지 준비 때문에 내일도 학교에 나갈 확률이 높은데, 신종플루(신종인플루엔자) 때문에 학교도 어수선할 것 같다(강의실 앞에서 학생들의 체온을 재는 학교도 있다잖은가). 사망자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공포감만 고조돼 있는 상태가 아닌가. 응급의학을 전공한 동생에게 물어보니 소위 '고위험군'이 아니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독감 바이러스의 변종이란다) 당장 '고위험군' 한두 명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는가? 한동안은 예방백신도 부족하다고 하니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도움이 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신종플루를 특집으로 다룬 위클리경향의 기사인데(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0908271142031), 처음 몇문단은 생략했다. 대책에 관한 전문의의 칼럼도 덧붙여 옮겨놓는다.       

위클리경향(09. 09. 01) 신종 플루 안전지대가 없다 

사망자 발생 후 의심·확진환자 늘어
신종 플루 감염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대전에서 대학생 9명이 신종 플루 양성반응을 나타냈고 안양에선 어린이집 교사와 원생 등 6명이 양성반응으로 나타났다. 수원에서는 종교 수련회에 참가한 7명이 한꺼번에 감염됐으며, 울산에선 군인 9명이 확진 환자로 판명되는 등 집단 감염의 양상을 띠고 있다. 파주 영어마을도 신종 플루 집단감염자가 발생하자 ‘임시휴관’을 결정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도 보안요원 등 직원 8명에게서 집단감염 증상이 나타나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8명의 환자가 양성반응을 보인 20일은 신종 플루 ‘대유행’의 분기점이었다. 지난 18일 처음으로 하루 발생 환자가 100명(108명)을 넘어선 이래 불과 이틀 만에 200명 벽을 훌쩍 뛰어넘어선 것이다. 이로써 8월20일까지 국내 신종 플루 감염자는 2417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2명이 사망하고 573명이 병원과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신종 플루 의심환자와 확진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5월2일 국내 첫 환자 발생 이후 20일 동안은 10명에 불과할 정도였으나 그후 한 달 만인 6월20일 100명을 넘어서고, 한 달만인 7월23일엔 1000명을 돌파했다. 사망자 발생 이전에 평소 100여 건에 지나지 않던 신종 플루 의심 신고건은 이후 8월 18일 621건, 19일 999건 등으로 폭증했다. 감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 환자들이 스스로 신종 플루 감염을 의심하면서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10·11월 대유행 예상, 지역축제 취소 이어
가장 큰 문제는 해외여행과 무관한 ‘지역사회 감염’이 창궐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발생한 108명 환자의 감염경로를 조사한 결과 입국자 15명, 확진환자 긴밀접촉자 11명이었고 나머지 82명은 지역사회 감염으로 추정돼 지역사회 감염이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비행기를 탄 사람’으로 감염경로가 한정된 데 반해 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으로, “자신도 모르는 환자들이 곳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퍼뜨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신종 플루 지역사회 감염자는 지난 7월10일 강원 지역 어린이집 교사가 처음으로 확인된 뒤 7월25일 316명(27.1%), 8월5일 467명(30.1%), 10일 599명(33.1%), 15일 705명(34.7%), 20일 976명(40.4%) 등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조만간 지역사회 감염자는 1000명을 넘어서고, 확진환자 2명 가운데 1명은 감염경로를 밝히지 못하는 환자로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신종 플루가 정부당국의 통제선 밖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며 “지역사회 감염자가 늘었다는 것은 예방엔 한계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치료가 더욱 중요한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질병관리본부도 신종 플루의 지역사회 침투가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판단하고 개학과 더불어 환절기가 닥치면 중증환자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급 학교가 개학을 늦추거나 휴교하는 등 비상조치를 강화하고 있고, 군은 군대로 현역 장병에서 예비군에 이르기까지 신종 플루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신종 플루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전국의 축제나 국제행사가 잇따라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등 파행을 겪고 있다. 지난 12일 제주도에서 개막한 제주국제관악제는 국내외 참가자 25명과 진행자 1명이 신종 플루에 감염되면서 조기에 막을 내렸다. 충주시는 9월23~27일 예정이던 제12회 충주 세계무술축제를 취소했다. 행사 참가국 대부분이 신종 플루 환자가 발생한 지역인 데다 참가자들이 합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크다는 게 결정 이유였다. 전남지역에서도 올 하반기 개최 예정이던 여수 국제청소년축제·영어체험캠프, 고흥 국제스페이스캠프 등 각종 국제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보건 당국은 향후 신종 플루 팬데믹, 즉 대유행이 시작되면 2~4개월 만에 입원환자가 13만~23만명, 외래환자가 450만~800만명까지 확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도 20일 열린 당정 회의에서 “개학 후 9월 초에 인플루엔자 유행기준에 도달한 후 10, 11월에 유행이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번 신종 플루의 증상은 일반 독감과 거의 흡사하다. 고열이 내려가지 않고 근육통, 콧물, 기침, 인후통 등이 나타난다. 그러나 일반 감기가 하루면 열이 내리는 데 반해 신종 플루의 경우 고열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정희진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선에서 환자들의 증상을 듣고 ‘이 사람이 신종 플루 환자다, 아니다’를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신종 플루의 증상과 발생기전이 일반 독감의 그것과 똑같기 때문에 초기에 신종 플루 환자를 가려내기는 매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구강체온이 37.8도 이상이며 신종 플루 의심 증상이 보일’ 경우 보건소나 병원에서는 신속항원 검사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신속검사와 확진검사 결과 신종플루 환자로 확인되면 병원이나 보건소의 처방 아래 타미플루를 복용하게 된다. 캡슐 형태의 알약인 타미플루는 하루에 두 번 한 알씩 5일 동안 복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예방 백신이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을 뿐더러 세계적으로도 물량이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비축 중인 항바이러스제는 타미플루 199만명분, 리렌자 48만명분 등 모두 247만명분이다. 정부는 오는 12월까지 300만명분을 추가로 확보해 재고량을 타미플루 331만명분, 리렌자 200만명분 등 531만명분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구촌은 지금 ‘백신 확보’ 전쟁 중
그러나 정부의 방침대로 백신이 제대로 확보될지 미지수라는 분위기다. 신종플루 감염자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자 세계 각국이 너도나도 백신 확보에 나서 백신 공급 대란까지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 국내 백신 생산업체인 녹십자도 연말까지 500만명분, 내년 2월까지 추가로 100만명분의 백신을 생산할 계획이지만 수율이 떨어져 정상적인 공급이 어려울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국내 생산량으로 부족한 부분은 외국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근 백신 수입가격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책정된 정부예산으로는 수입물량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8일 북반구의 신종 플루 백신 주문이 10억회 복용 분량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그리스·네덜란드·캐나다·이스라엘 등은 전체 인구가 두 번씩 접종할 수 있는 분량, 독일·미국·영국·프랑스 등은 인구의 30∼78%에 해당하는 분량을 각각 주문했다고 한다. 신종 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는 지난 2004년 이후 전 세계에 2억2000만명분이 공급된 바 있지만 이미 사용한 분량을 제외한 재고량은 현재 집계되지 않고 있다.

WHO는 앞으로 2년간 최대 20억명이 신종 플루에 감염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신종 플루 백신 생산은 일부 제약사의 경우 계절 독감 백신 때문에 생산이 지체되는 등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제약업체의 경우 자국 우선공급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우리에겐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유럽질병통제센터(ECDC)는 현재의 환자 발생 추이를 감안하면 다가올 겨울이 끝날 때까지 유럽 인구의 약 30%가 신종 플루에 감염돼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된다는 시뮬레이션 자료를 내놨다. 지구상에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인구 10명 중 3명 정도가 새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돼야 면역성이 생겨 사람끼리의 교차 감염이 차단되고 확산이 수그러든다는 이른바 ‘30% 룰’을 근거로 한 연구 결과다.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지난 20세기에 있었던 세 번의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보면 전체 인구의 약 30%가 감염됐다”면서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 단계에서 신종 플루의 치명률은 높게는 0.8%, 낮게는 0.2% 정도이다. 치명률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계절 인플루엔자(감염률 10%)보다 3배나 높은 감염률 탓에 인류는 공포에 떨고 있다.(조득진기자)   

경향신문(09. 08. 28) 신종플루 유행에 대한 대책 

2009년 4월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인플루엔자 A(신종플루) 환자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여 8월 초 이미 23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국내 감염자 수도 3000명이 넘었다. 더욱이 개학과 함께 학생들의 감염이 늘어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사망자가 발생한 이 시점에 신종플루의 치명률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치명률의 산출은 어렵지만 현재까지 0.7~1% 정도로 보고 있다. 이러한 치사율은 과거에 유행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 증후군)나 조류독감의 치사율과 비교하면 낮으나 질병의 확산 속도와 감염자의 증가 속도를 볼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신종플루의 치료 예방을 위한 백신은 현재 개발 중에 있는데 국내의 백신 생산업체에서도 임상실험 허가를 받아 시행할 예정으로 가을, 겨울철 대유행을 앞두고 곧 접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종플루의 유행은 30~40년 주기로 반복되어 왔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백신의 개발과 항바이러스제 비축 등 준비를 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했으나 그에 대한 교육이나 공공기관 대응 훈련 등은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이번 신종플루의 유행은 국민의 독감, 즉 인플루엔자라 불리는 질환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이다.

신종플루는 계절성 인플루엔자에 비해 3배 정도 빠른 전파속도를 보이고 있어서 가을, 겨울로 들어서면 더 빨리 지역사회의 대유행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현재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대비책은 충분한 양의 백신 확보이다. 현재 외국 백신 회사들이 임상실험에 들어갔고, 국내의 한 기업도 임상실험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얼마나 이른 시간 내에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하는가가 우선 풀어야 할 문제이다. 이미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외국의 백신 생산과 비교할 때 이제야 계절 인플루엔자 백신을 생산하기 시작한 우리나라가 신종플루 백신까지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지 우려되고, 이로 인한 계절 인플루엔자 백신의 생산 부족도 우려된다.

현재 신종플루 백신의 국민 접종 목표 인구는 20~30% 정도인데 이것은 접종이 필요한 소아, 노약자 등의 고위험군이나 의료인, 대응인력 등을 고려할 때 충분하다고 할 수 없어 백신 확보 후에 접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문제도 중요할 것이다.

또한 항바이러스제 치료, 예방 백신 등도 중요하지만 신종플루의 유행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러한 신종플루뿐 아니라 계절성 인플루엔자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의 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교육할 필요가 있다. 신종플루 대유행 대비 및 예방대책은 보건의료체계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사전에 준비하지 못했으면 지금부터라도 가을, 겨울철 대유행에 대비한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정진원 | 중앙대 의대교수감염내과)

09. 08. 30.  

 

P.S. 요컨대 "지구상에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인구 10명 중 3명 정도가 새 바이러스의 감염자가 돼야 면역성이 생겨 사람끼리의 교차 감염이 차단되고 확산이 수그러든다는 이른바 ‘30% 룰’"이 이번 경우에도 적용된다면, 피할 도리 없이 최소 1000만명 정도는 신종플루 환자가 될 수밖에 없고, 또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하지만 불가피한?). 치명률을 최저인 0.2% 정도로 잡으면 2만명이다(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정부의 예측치가 2만명이다). 연간 사망자가 24만여명이라니까 전체 사망자의 8-10% 정도가 신종 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비하면 테러와의 전쟁은 약소하지 않은가(신종플루가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결합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과장된 공포로 인한 공연한 호들갑일까? 결과는 이번 가을을 지나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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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31 01:07   좋아요 0 | URL
현재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비말감염'에 주의해야 한다.
'비말감염'이란 직경 5마이크론 이상의 큰 비말입자에 부착된
미생물(바이러스,세균 등)에 의한 감염으로 기침, 재채기, 대화,
기관 내 흡인 등에 의해 전파된다.

'탄저테러'는 세균성, '광우병'은 프리온(비정상적인 단백질),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바A형 바이러성이다. 영화 '눈먼자들의도시',
'에볼라바이러스'은 질병으로 인한 인간군상들에 대한 얘기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은 단백질형에 따라 A,B,C형이 있다.
C형은 사람에게 문제 없고, B형은 한 타입만 존재하며
A형은 여러 타입의 혈청형에 의해 질병을 유발시킨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두가지 당단백질(Haemaglutinin; H, Neuraminidase;N)에 의한 혈청형이 결정된다. 당단백질의 조합에 의해 256가지 혈청형 있다. 지금까지 H 혈청형과 N 혈청형은 각각 14종, 9종이 보고되어 있다.

즉 H가 16종, N이 9종으로 144종(16X9=144)의 A형 바이러스가 존재하며
H1N1(스페인독감 바이러스의 타입), H5N1(조류독감바이러스의 타입),
H2N2(아시안 독감 타입), H3N2(홍콩 독감 타입)이며,
이번은 '신종플루' H1N1 타입의 변종이다.
(H1N1이란 : 바이러스 단백질 포크 hemagglutinin 1번과 neuraminidase 1번)

사람 :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혈청형은 3가지중 (H1N1)
돼지 : 2가지 혈청형(H1N1, H3N2),
말 : 2가지 혈청형(H7N7, H3N8),
조류 : H5N1 외로 인플루엔자 혈청형에 따라 감염 숙주 친화성이 다르다.

타미플루는 바이러스의 단백질 포크의 기능을 막아 숙주세포에 침투 방어함으로 이미 감염된 세포을 살리지 못한다. 초기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는데 효과적이며, 백신은 아예 바이러스(항원)에 대항하는 항체를 미리 체내에서
생성시켜 방어하는 작용을 한다.

백신생산에 강건은 약독화된 바이러스(인위 항원)를 생산할수 있는 달걀(SPF,specific pathogen free)을 대량생산할 수있는 양계시설과 바이러스 배양시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로쟈 2009-08-31 00:27   좋아요 0 | URL
정보를 찾으신 건가요? 아니면 전문가이신데요.^^

펠릭스 2009-08-31 00:35   좋아요 0 | URL
예,,관련 전공자 입니다.

로쟈 2009-08-31 00:42   좋아요 0 | URL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히포크라테스로 하심이!^^

2009-08-31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돌베개, 2006)의 번역에 대한 '논쟁'이 2년전 한겨레 지면에 실린 적이 있다. 나는 절반만 따라가다가 이후의 진행과정을 챙겨놓지 못했는데, 뒤늦게 발견하게 되어 뒷북성 스크랩을 해놓는다. 이상수 기자의 마지막 정리 글로서 한겨레의 필진네트워크에서 가져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88892.html). 이런 스크랩이야 비공개로 해놓아도 되지만, 번역에 대한 시각(특히 '누가 독자인가?'란 대목)과 "인문학은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은 널리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개해놓는다.  

 

① [서평] 야사와 괴담으로 읽는 조선시대 /이상수
② [반론] 번역과 소통의 맥락 /신익철
③ [답변] 반론던진 신익철교수에 답한다 /이상수
④ [재반론] 이상수 기자의 지적에 대한 답변 /신익철

한겨레(07. 02. 26) [필진] 옛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2006년 말 유몽인의 <어우야담>을 옮겨 펴낸 신익철 교수는 내가 쓴 글에 대해 1월 22일 다시 긴 글의 반론을 보내오셨다. 성의에 깊이 감사드린다. 주고받는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 뭔가 생산적인 논의로 마무리될 수 있길 희망하며 이 글을 다시 쓴다. ‘과도한 표현’이 다시 문제가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앞으로는 ‘표현’을 삼가고 가능하면 마른 말투로 쓰려고 한다.

1. 옛글에서 무엇을 풀이할 것인가

내가 쓴 기사를 포함해 신 교수와 서로 두 차례씩 글을 주고받으면서 우선 가장 중요한 논점이 된 건 한마디로 ‘옛 글 속에 나오는 오늘날과 다른 표현이나 생각을 어떻게 옮길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옛글과 현대어의 문장 구조나 어법상의 차이는 번역 작업의 기본이므로 논외로 하겠다. 옛 글 속에 나오는 말을 풀이 없이 오늘날 글에 그대로 노출시킬 때 뜻이 통하지 않거나 독자들이 어리둥절할 낱말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옛 사람의 이름(字와 號 등을 포함), 지명, 책 이름 등 고유명사, 관직의 이름, 건물의 이름 : 이 경우는 그것이 인명·지명·서명·관직명임을 밝혀주면 일단 독자가 책을 읽어내려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유몽웅(柳夢熊), 서강(西江), 총병(總兵), <이륜행실(二倫行實)>, 모화관(慕華館)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인명이나 지명에 얽힌 고사를 이용해 글을 썼다면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소개해줄 필요가 있다. (여기서 든 낱말의 예는 모두 신 교수 등이 옮긴 <어우야담>에서 뽑은 것임. 아래도 마찬가지.)

② 옛 사람들이 쓰던 기물(器物)이나 행위방식 : 이 또한 간단하게 뜻을 적어주면 독자가 글을 읽어 내려가는 데 역시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정표(旌表, 효자, 충신, 열녀에게 旌門을 지어 포상하는 일)’, ‘결채(結綵, 색실 등을 지붕이나 문에 내걸어 임금이나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장식하는 일)’ 등이 그런 예이다.

③ 오늘날과 다른 옛 사람들의 일상적 표현 : 이 대목에 대해선 학자마다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예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옛 사람들의 표현을 가능하면 그대로 살리자고 주장할 것이고, 그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령 ‘동탑(同榻, 537쪽)’ 같은 낱말이 그런 예이다. 신 교수 등의 한글본에 실린 주석에 따르면 이 낱말은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한 동창생’이란 뜻이다. 나는 이런 낱말은 본문에서 ‘같은 스승에게 배운…’이라고 옮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개의 동탑인 아무개가…”라고 옮긴다고 해서 고전의 깊이가 더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고전을 독해(讀解)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 연구 독자를 겨냥한 글이라면 이런 낱말에 대해서 충실하게 전거를 찾고 풀이글을 달 필요가 있겠지만, 일반 독자를 위한 글이라면 그냥 오늘날 통하는 말로 옮겨서 뜻이 통하면 그만이라고 나는 본다. 그러나 당시엔 일상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현대인들이 친숙하지 않은 술어라면 풀이가 필요할 것이다. ‘갑자순(甲子旬)’같은 예가 그럴 것이다. 

④ 오늘날과 다른 옛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식세계가 반영된 표현 : 이런 낱말들은 글쓴이의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되레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런 경우 어떤 맥락에서 어떤 표현을 동원하고 있는지 그대로 전달하고 풀이글로 그 내용을 충실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앞의 두 차례 글에서 문제 삼은 ‘상국(上國)’이나 ‘방언(方言)’ 등이 그런 예에 속할 것이다.

위의 네 가지 범주 가운데 ①과 ②는 번역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가령 명나라의 군사 지휘관인 ‘총병’을 ‘총사령관’이라고 옮기고 ‘결채’를 ‘환영 장식’이라고 옮기면 뜻은 거의 비슷하게 통할지 몰라도 오해의 소지를 남기거나 과잉 번역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옛 글을 그대로 적고 풀이글을 붙여주는 게 바람직하다.

③과 ④의 경우는 일단 번역이 가능하다. 특히 ③의 경우는 우리말로 옮기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나는 본다. 그렇게 옮긴다고 해도 이해의 맥락에서 볼 때 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④의 경우는 옛 표현을 그대로 살리고, 그 의식세계의 맥락을 반드시 풀이글로 적어두는 게 필요하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문제가 됐던 ‘방언(方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신 교수가 지난 번 글에서 들었던 <어우야담>에 나오는 아래의 문장을 가지고 말해보자.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五歲)라고 자호하였는데, 방언으로 오세(傲世: 세상을 오만하게 내려본다는 뜻)와 음이 같았다.” (49면)

이 경우 번역자가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가)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라고 자호하였는데, 방언으로 오세와 음이 같았다.

(나)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라고 자호하였는데, 조선어로 오세와 음이 같았다.

(다) 김시습은 오 세 때부터 능히 글을 지었기에 오세라고 자호하였는데, 방언*으로 오세와 음이 같았다. [* ‘방언’이란 중국의 언어인 한문만이 ‘진서(眞書)’, 곧 ‘참된 글’이고 주변 국가의 말들은 ‘변방의 말’이란 뜻으로 부르는 말. 여기서는 조선어를 가리킴.]

신 교수 등의 번역서는 대체로 (가)의 방식을 취하였고, 나는 (다)의 방식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가)의 방식을 취할 경우 옛 글의 ‘표현’을 일단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대 독자가 읽을 때 전공자가 아니라면 정확한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불편할 수 있다. (나)의 방식을 취할 경우 현대 독자가 걸림 없이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옛글을 쓴 이가 지니고 있던 오늘날의 세계관이나 의식과는 다른 세계관이나 의식세계를 제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옛 사람의 의식에 전제되어 있는 세계관을 오늘날의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독자가 오해할 여지가 남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신 교수는 지난번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필자는 북한과 남한의 고전 번역의 차이점을 떠올려 본다. 북한의 고전 번역본은 대부분 대중과의 소통을 가장 우선하여 많은 고전의 어휘들을 의역하여 현대어로 풀어쓰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남한의 번역본은 주 독자층을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북한에 비해서는 고전의 어휘를 그대로 되살려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신 교수의 지적에 위의 분석틀을 적용시킨다면, 북한은 (나)의 방식을 선호하고, 남한의 연구자들은 개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가)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지적이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다 일정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의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 교수 등의 이번 <어우야담> 번역서는 어떤 대목에서는 (가)의 방식을, 다른 대목에서는 (나)의 방식을 취하였다. ‘방언’이란 낱말만 가지고도 그 예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은 (나)의 방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구라파란 그 지역말로 ‘커다란 서쪽’이란 뜻이다.” (214쪽)

“이마두는 이인이다. 천하를 두루 보고서 이에 <천하여지도>를 그리고, 각기 그 지역의 말로써 여러 나라에 이름을 붙였다.” (216쪽)

위의 인용문에서 밑줄 그은 곳은 원문 ‘방언(方言)’을 옮긴 대목이다. 이렇게 어떤 곳에서는 (가)의 방식으로, 다른 곳에서는 (나)의 방식으로 옮기면서 아무런 설명이 없는 점도 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만족스럽다. (내가 이 책에 관해 어떤 디지털 색인(索引) 기능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이런 대목을 바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처음 받아 밤새워 읽었을 때 이미 이런 대목들이 눈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 교수는 나의 글에 대해 지난 번 반박의 글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우리가 중세 보편주의 문명권의 지식인에게서 근대 민족주의적 의식을 찾으려는 의도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시각이 획일시되어 중세 문명권에서 살아간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곡해하는 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민족주의적 시각이 없어 중세 보편주의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근대 민족주의적 시각을 당대의 세계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의 몇 문장 안 되는 글을 두고도 논의할 거리가 적지 않지만, 논의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번역’ 문제에 국한하기로 하겠다. 한 가지 여기 밝혀두고 넘어가고 싶은 건, 난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중국의 중화주의나 황실사관을 비판하고 있는 게 아니며, 되레 (신 교수의 용어를 빌리자면) ‘보편주의’의 시각에서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 중국만이 황제가 있는 나라이고, 천하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이며, 중국의 문자인 한자만이 참된 문자라는 시각은 편협한 특수주의라고 나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당시의 세계관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는 조선시대의 지식인에게 오늘날의 의식세계를 뒤집어씌워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세계관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내는 일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는 맥락으로 이해하는 한에서, 나는 신 교수의 위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방향을 잃었다. 위의 지적은 (가) 또는 (나)의 방식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해당하는 지적이지, (다)의 방식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중세 문명권에서 살아간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곡해하는 데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우려는 말하자면 (나)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들을 향한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적 시각이 없어 중세 보편주의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은 (가)의 방식에 대한 우려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신 교수는 이번에 <어우야담>을 펴내면서 (가) 또는 (나)의 방식으로 번역한 뒤, 필자가 “(다)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을 하자, “번역은 모름지기 (가) 또는 (나)의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고 있는 셈이다. 의사소통이란 이렇게 어려운 문제이다.

다시 주장을 분명하게 하자면, 나는 유몽인에게 “근대 민족주의적 의식”을 뒤집어 씌워, 그가 ‘방언’이라고 적고 있는 부분을 뜯어고치자고 주장한 적이 없다. (다)의 방식처럼 거기에 적절한 풀이글을 다는 게 번역자의 의무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나는 되레 유몽인의 글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 대한 조선조 선비들의 시각을 포함해 그들의 의식세계를 엿볼 수 있는 낱말들을 충실히 본디 그대로 살려두고, 대신 그 의미의 맥락과 쓰임새를 분명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의 방법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 누가 독자인가?

신 교수 등이 이번에 내놓은 <어우야담>이 이런 혼선을 겪은 건 ‘누가 독자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견고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나는 본다. 신 교수 등은 이 책을 내놓으면서 어떤 독자들이 읽을 것이라고 기대했는가. 연구자들인가, 아니면 일반 독자들인가. 대단히 송구한 발언이지만, 내가 보기에 연구자들이 읽기엔 부족한 대목이 없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엔 불친절한 대목이 없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다.

먼저 연구자의 시각에서 이 책을 뜯어보자. 지난 번 글에서 나는 <장자>와 관련한 두 대목의 오역을 지적했고, 신 교수는 두 대목의 오역을 인정한 뒤, 다른 대목에서는 옮긴이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교감했으며 주석 작업을 진행했는지 비교적 길게 설명했다. 나는 진심으로 옮긴이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한글본도 도움이 되려니와, 무엇보다 각종 <어우야담> 판본을 견주어 놓은 한문본 작업은 앞으로 <어우야담>을 연구하는 이들이 참조할 때마다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왕에 우리가 “우리 출판문화와 학술연구의 발전”을 위해 말머리를 연 이상 이 문제 역시 냉정하게 논할 수밖에 없다. 신 교수는 지난 번 글에서 “‘아는 것은 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모르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대목 그대로 남겨두는 학자적 양심이 무엇보다 요구된다’라는 이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며 “우리 나름대로 행한 수고와 양심을 보여주기 위해” 역자들의 주석 작업을 비교적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주석 작업에 대한 나의 시각은 변함이 없다. 나 또한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내가 지난번 글처럼 판단한 근거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이번 번역본은 어떤 대목은 전거를 밝히고 있으면서, 다른 대목에선 전거를 밝히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있다. 일관성이 없으므로 연구자가 읽을 때는 혼란스럽다. 전거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있는데 찾아보지 않았다는 건지, 오늘날 판본에 없거나 다르다는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래서는 <어우야담>의 완정본이 될 수 없다. 가령 아래의 경우들이 그렇다.

① 그러므로 <서경>에 이렇게 이르고 있다. “별에는 바람을 좋아하는 것이 있으며, 비를 좋아하는 것이 있다.” (508쪽)

→ 이 구절은 내가 찾아본 결과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나오는 글이다. <서경>에는 “星有好風, 星有好雨.”이라고 하여 “星有好風好雨.”라고 한 <어우야담>과 몇 글자 다르다. 또 <서경>은 백성과의 관계를 논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고, <어우야담>에서는 천문기상을 논하면서 나온 것이어서 맥락 또한 다르다.

② <좌전>에 이르길, “화살이 내 손을 뚫고 팔꿈치에 미쳤으나 내가 부러트리고 말을 몰았다.” (621쪽)

→ 이 구절 역시 찾아보니 <좌전(左傳)> ‘성공(成公) 2년’(B.C. 589년) 조에 나오는 기사이다.

오늘날 고전들은 모두 색인(索引) 작업이 나와 있고 또 대부분의 주요 고전들은 전산화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수고를 들이면 전거를 당장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문제 또한 ‘매우 사소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철저한 작업을 거치지 않고서 우리는 <어우야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가령 당시 조선조 지식인들이 <서경>이나 <좌전>을 어떤 판본으로 어떻게 읽었는지가 이런 사소한 대목에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옮긴이들은 어떤 곳에는 원문을 찾아 밝혀두고, 다른 곳에선 아무 설명 없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 연구자의 시각에서 볼 때 옮긴이들이 도대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주석 작업을 했는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대목은 일반 독자의 시각에서 볼 때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하겠다. 그러나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의 시각에서도 불만스러울 수 있는 대목이 몇 가지 있다. 나 또한 독자로서 궁금한 것, 두 가지만 질문을 드리겠다. 이건 정말 질문이다.

1) ‘태사공’은 누구인가  

<어우야담>에는 적어도 세 차례 ‘태사공(太史公)’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①홍도 가족의 인생유전(#10, 41쪽) ②황여헌과 정사룡의 문장(#185, 318쪽) ③제목과 무관한 시권(#337, 541쪽) 등이 그런 예이다.  

‘태사공’이란 잘 알려진 바대로 한(漢)나라 때 중국의 역사가인 사마담(司馬談)과 사마천(司馬遷) 부자로 인해 널리 알려진 관직 이름이다. 한나라 왕실의 역사기록관인 사마담-사마천 부자는 대를 이어 <사기(史記)>를 완성했는데, “태사공은 말한다”(太史公曰)이란 형식으로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의 평가를 남겼다.

그런데 <어우야담>에 바로 그 “태사공은 말한다”(太史公曰)는 코멘트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코멘트가 등장할 때마다 매우 신선했고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모차르트가 망나니 질을 하다 아버지의 얼굴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독자로서 매우 궁금하다. 도대체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이 태사공이란 누구인가.

태사공이 코멘트하고 있는 내용은 모두 <어우야담>에 소개된 사람과 사건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 대목이 사마천의 말을 따온 것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유몽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것일까. 유몽인은 대사간(大司諫)의 벼슬을 지냈는데, 당시 관행으로 대사간이 스스로를 ‘태사공’이라 부를 수 있었던 걸까? 일반적으로 태사공이란 사관(史官)을 지칭하는 것이고, 사간(司諫)이란 임금에게 시정에 대해 건의하는 간관(諫官)이 아닌가.

만약 유몽인이 스스로를 ‘태사공’이라 지칭한 것이라면, 이는 유몽인이 <어우야담>을 저술할 때의 자의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유몽인이 스스로를 ‘태사공’이라 지칭한 것이라 하더라도 의문이 다 풀리지는 않는다. 유몽인은 <어우야담>에 소개한 많은 인물과 사건에 대해 스스로 자유롭게 개입하면서 평가를 남기고 있다. 그럴 때 그는 스스로를 ‘태사공’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가 자칭 ‘태사공’이라고 한 게 아니라면, 그 사안과 인물에 대한 당시 사관(史官)의 평가를 유몽인이 옮기면서 “태사공은 말한다”라고 한 것일까? 그러나 사관이 기록한 사초(史草)는 당시 임금도 감히 볼 수 없었던 물건이므로 사관의 평가를 유몽인이 열람하거나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어찌 된 걸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나라에서 벌어졌던 이런 사태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질문이라 하더라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태사공’이란 누구인가. 신 교수 등이 이번에 상재한 책에선 의문을 풀지 못했다. 혹시 이미 이에 관한 연구가 발표된 바 있거나 신 교수 등 옮긴이들이 이에 관한 연구가 있으시다면 이번 기회를 빌려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런 대목이야말로 옮긴이들의 풀이가 절실하게 필요한 대목인 것은 아닐까? 만약 이 문제가 아직 학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면, 적어도 지금까지 연구로는 왜 유몽인이 ‘태사공왈’이란 표현을 등장시켰는지 해명되지 않았다는 풀이글이라도 그 말이 등장하는 대목에 달아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어우야담>을 전공한 이들이 다른 연구자와 독자들에게 해야 할 서비스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2) 갑자순(甲子旬), 갑인순(甲寅旬), 갑신순(甲申旬), 갑오순(甲午旬) 등은 무슨 뜻인가   

역시 나의 무식함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이지만 궁금한 걸 푸는 게 더 중요하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번에 서평을 쓰기 위해 신 교수 등이 펴낸 한글본 <어우야담>을 읽으면서 ‘일기의 관찰과 예후’(#319, 505~512쪽)라는 글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조선(한국)이 지리적 기후적으로 중국과 다르므로 일식의 관찰이나 일기 변화 등도 중국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천문 관측이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이 대목은 번역이 좀 까다로운 대목에 속한다. 옛사람들의 천문지식이나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옮긴이들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이 글에 나오는 갑자순(甲子旬), 갑인순(甲寅旬), 갑신순(甲申旬), 갑오순(甲午旬) 등은 무슨 뜻인가. 음력의 용어인 것으로 짐작은 가지만 한글본에는 풀이글이 없어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절기의 변화에 따라 일기가 달라짐을 서술한 듯한데 분명하지가 않다. 가르침을 구한다.

또 ‘일기의 관찰과 예후’라는 글의 끄트머리에는 여기 서술한 내용이 “유대정이 일찍이 눈으로 보아 징험한 것”이라고 유몽인은 기록했는데, 흥미로운 건 여기 나오는 내용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중국의 민간 속담에도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구름이 동쪽으로 가느냐, 아니면 서, 남, 북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내리는 비의 양이 달라진다는 내용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구름이 가는 방향이란 다름 아니라 바람이 부는 방향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내리는 비의 양이 달라진다는 관찰은 경험적으로 사실일 수 있지만, 어떤 지형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구름이 높은 산을 넘을 때 비를 뿌리고 간다는 건 자연과학적으로도 사실이지만, 높은 산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관찰 사실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갑자순(甲子旬), 갑인순(甲寅旬), 갑신순(甲申旬), 갑오순(甲午旬) 등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유대정이 일찍이 눈으로 보아 징험한 것”의 내용과 진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상론할 겨를은 없지만, 중국의 속담과 유몽인의 기록을 비교해보건대, <어우야담>에 실린 유대정이란 인물의 천문 현상 관찰 내용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너무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문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대목 또한 조선조 선비들의 의식형태를 평가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본다. 오늘날은 <삼국사기>에 실린 일식(日蝕) 관련 기록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계산하고 검증해보는 시대다. 갑자순, 갑인순 이런 용어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밝혀놓지 않고 넘어가서는 번역을 완성했다고 할 수 없다. 일반 독자의 시각에서 볼 때에도 ‘일기의 관찰과 예후’같은 글의 번역과 해석은 한번 읽고 이해하기에 충분하지가 않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내가 보기에 이번 신 교수 등이 상재한 <어우야담>은 연구자들이 읽기엔 부족한 대목이 적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고,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수월하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이 독자를 대상으로 풀어주어야 할 궁금증이 충분히 해소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논하는 까닭은, 우리가 옛 글을 오늘날의 글로 풀어 출판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옮겨야 경제적이면서도 의미의 왜곡을 피할 수 있고, 또 어떤 대목에 진정한 풀이글이 필요한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아무런 사감(私感) 없이 “우리 출판문화와 학술연구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불편한 문제를 논하는 필자의 충정을 신 교수 등이 이해해주리라 믿을 뿐이다.

3. 인문학은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학문이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지난 글에서 “우리의 번역 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대부분의 번역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고전 번역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며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그 대목을 모두 따놓자면 아래와 같다.

필자는 한국한문학을 전공하기에, 중국 주석서를 참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기자의 지적대로 중국의 주석서가 한국의 번역서에 비해 수준이 높다는 데에는 공감하며, 역자들의 <어우야담> 번역서가 이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충분히 인정한다. 나는 여기에는 경제 지표나 주석자들의 열성과 노고만으로 단순 대비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개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먼저, 중국은 완벽한 주석서를 출간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비해 우리 학계에서는 번역서에 대해 평가가 매우 미미하다. 대부분 번역서는 일반 논문 한 편보다도 못하거나, 기껏해야 동등한 비중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번역서에 대한 평가가 전무하다시피 하니, 대부분의 학자들이 여기에 열성과 노고를 바치려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번역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고전 번역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며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주요 고전에 대한 교감을 수반한 수준 높은 번역을 수행하기 힘들게 하며, 우리의 번역 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땅에 발붙이고 살면서 나름대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천학비재한 사람으로서 위의 대목에 동의할 수 없기에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국가 쳐다보지 마라  

우선 나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국가가 뭘 해주길 바라며 그쪽을 자꾸 쳐다보는 데 대해 좋게 여기지 않는다. 국가가 하는 일은 무엇을 하든 그건 결국 국가의 사업이다. 언제 어느 곳에 존재했던 국가가 진정한 인문 정신의 발양을 위해 투자했던가? 어떤 계몽군주의 위대한 발자취도 결국은 군주와 통치자들의 치적을 위한 사업일 뿐이다.

물론 나는 국가의 예산 가운데 좀더 많은 부분을 인문 분야로 돌리도록 하는 데에는 적극 찬성한다. 그거야 당연히 나쁠 게 없다. 그럼에도 인문학을 한다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무관하다. 국가가 돈을 주든 말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높은 평가를 해주든 말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가장 기초적인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좋아서 인문학을 하는 게 아닐까.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는 채. 사실 난 국가가 제대로 된 인문학 연구를 악랄하게 방해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국가가 쓸데없이 나서서 간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한 사람은 직장에 사표 던지는 데 3초 이상 걸리는 걸 수치스러워 하는 어른이다. 물론 사표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대전제이겠지만. 몇 년 전에도 그는 서너 번째쯤 되는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흐린 술집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도 단골인 그 술집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날 아내가 귀갓길에 쌀을 사오라고 했는데 지갑을 열어보니 2만원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걸로 그는 집에 들어가는 길가에서 난초 파는 이를 만나 춘란을 한 뿌리 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난이 중요하지 쌀이 중요해?”

그렇다. 난이 중요하지 쌀은 중요하지 않다. 이건 한 가난한 인문학도의 행위예술이다.

나는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게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대학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안경알을 가는 걸로 생업을 삼다 폐병 걸려 죽었고, 인문학의 정신과 같은 맥락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모차르트도 고흐도 살아생전엔 아무런 영화도 누리지 못하고 가난뱅이로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런 죽음도 작은 일이다.

중국의 학자들, 대부분 가난하다. 개혁개방 이전, 중국공산당의 지배체제 아래서 그들은 국가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 성과는 모두 국가에 귀속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연구기관과 연구원을 국가가 장악해야 한다고 믿는 공산당의 방침에는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중국 대학교수의 기본급은 이천 몇 백 위안, 한국 돈으로 30만원 남짓이다. 그들이 펴낸 책은 전공자가 아니라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의 선비들처럼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이건 매우 강렬한 인문학의 전통이다. 우리가 자꾸 국가나 자본 쪽을 쳐다보면 이런 인문학의 전통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아니한다

몽골이 중국을 지배했을 때, 어떤 지식인은 몽골의 원(元) 제국 조정에 들어가 녹을 먹었고 어떤 지식인은 그걸 거부했다. 허형(許衡)과 유인(劉因)은 각각 양쪽을 대표하는 경우로 이름을 남겼다. 허형이 원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고 베이징으로 가던 도중에 유인을 방문했다. 유인은 허형에게 “단 한번의 부름에 응한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처신이 아닌가”하고 슬쩍 나무랐다. 그러자 허형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행해지지 않을 것이오”(不如此道不行)라고 받아쳤다. 나중에 원나라 조정은 유인에게도 벼슬을 주겠다고 불렀지만 유인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유인은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않을 것이오.”(不如此道不尊)

인문학자라고 굶어죽으란 법은 없다. 인문학 저변의 확산을 위해 대중적 저술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며, 나는 그런 쪽에 재능을 가진 이들의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허형이 한 말처럼 그렇게 대중화작업을 하지 않으면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대중화 작업은 인문학의 ‘샘’이 아니라 ‘흐름’이라고 본다. 인문학의 샘이 마르지 않게 솟아나도록 하기 위해선 유인처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않을 것”이라고 고집하는 태도가 인문학을 하는 이들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뚝심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면, 어떤 글을 상재하든, 무엇을 중요하게 다루고 무엇을 아낌없이 버릴 것인지가 분명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상이 신 교수께서 성의 있게 올려주신 글에 대한 나의 또 다른 몇 가지 단상들이다.

[추신] 나는 이 글 또한 중국에서 마무리했다. 지난달 24일 귀국한 뒤 30일 다시 중국으로 나와 여기저기를 돌다 쿤밍(昆明)에서 이 글을 내 블로그에 올린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신 교수 등 연구자들이 6년 광음(光陰) 피와 땀으로 옮긴 <어우야담>을 한 권 사서 서재에 모셔두길 권유한다. 한국 인문학의 진일보를 위한 발전 기금을 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책 디자인도 그지없이 세련됐고 장정도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논한 건 좀더 나은 번역을 위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내용을 얘기한 것이다. 독자 제현들의 혜량(惠諒)을 구한다.  

09. 08. 30. 

P.S. 국가와 인문학의 관계, 그리고 인문학 대중화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중국통답게 중국 학자들의 학문 태도를 예로 들면서 궁핍한 여건 속에서도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의 선비들처럼 꾸준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이건 매우 강렬한 인문학의 전통이다. 우리가 자꾸 국가나 자본 쪽을 쳐다보면 이런 인문학의 전통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기본급은 이천 몇 백 위안, 한국 돈으로 30만원 남짓"의 대우를 받더라도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게 인문학이고 인문학 전통이라면(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다른 특혜들이 주어진다. 적어도 자료수집에 관한 비용은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안다), 우리에게 그러한 인문학은 전통은커녕 진작에 씨가 마른 게 아닌가 싶다(적어도 나의 견문으론 그렇다). 더구나 CEO가 대통령을 하고 돈이 존중받는 나라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않을 것”이란 유인의 말은 존경스럽지만,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한국인은 구원은 믿으려고 할 망정 도(道)는 존중하지 않는다). 나는 '안경알 가는 철학자'를 스피노자 이후에 들어본 바가 없다. 이 또한 인문학자들의 '로망'이요 '노스텔지어'가 아닐까 한다.   

덧붙이자면, 나는 국가와 학문은 생각보다 끈끈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위기지학'(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정치적 동물이고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한 인간조건에서 해방된 '학문'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명한 중국학자 지셴린(계선림)의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그의 대인다운 여유와 애국심이었다. 비록 문화혁명시에 혹독한 고초를 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했던 학자였지만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그 또한 중국의 '강렬한 인문학의 전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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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3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와 인문학의 관계, 그리고 인문학 대중화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해주고,,,"를
다른 말로는 'Back to Back'며, 이 반대말은 '엎친데 덥침',,,

로쟈 2009-08-31 00:30   좋아요 0 | URL
^^

펠릭스 2009-08-31 01:14   좋아요 0 | URL
인문학이 인간 존재감을 일께워 줄 것이라는 기대감속에
올바른 절망만이 있을 뿐이라는 뜻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2009-08-30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0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ti 2009-08-30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이네요. 퍼가요^^

로쟈 2009-08-31 00:28   좋아요 0 | URL
이상수 전 기자는 사실 동양철학 박사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8-3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봤습니다~

로쟈 2009-08-31 00:29   좋아요 0 | URL
의외로 반응이 좋네요.^^

2009-08-31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3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philocinema 2009-08-3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호 논박의 전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09-09-01 20:57   좋아요 0 | URL
옮겨놓는 건 별로 힘든 일이 아닙니다.^^;
 

지난주 관심도서 두 권은 신시아 브라운의 <빅히스토리>(프레시안북, 2009)와 제임스 베니거의 <컨트롤 레벌루션>(현실문화, 2009)이다. 전자는 빅뱅부터 현재까지의 '통합적 지구사'를 표방한 역사서이고, 후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또 다른 기원'으로서 '제어혁명'을 제시하고 있는 사회과학서이다. 생각보다는 덜 주목받았는데, 눈에 띄는 리뷰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08. 29) 빅뱅에서부터 다시 쓴 지구인의 역사 

역사책은 흔히 인류가 문자로 기록을 남긴 약 5,500년 전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의 시간은 '선사'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데, 대체로 인간이 구석기를 사용하던 시절을 시점으로 삼는다. 그보다도 앞선 시간은 역사가 아니라 생물학이나 지질학, 혹은 천문학 같은 과학의 대상일 뿐이다. 



<빅 히스토리>는 이런 구분을 거부하며 역사의 대상을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것"으로 확장한다. 미국 도미니칸대 교육학과 교수인 저자 신시아 브라운은 "역사는 과학적 작업의 한 부분"일 뿐이라며 "구태여 두 부분으로 나눠 하나는 '과학'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역사'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은 137억년 전 우주의 시작인 빅뱅에서 출발한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시간대_우주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_에 대해 과학 용어를 통해 생각할 능력을 갖게 됐으며, 그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의 이야기를 보다 큰 맥락 속에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초(超)거시적 입장에서 기후, 음식, 성, 무역, 종교, 사상, 제국, 문화 등 역사의 기본 요소들을 다룬다.

<빅 히스토리>의 관점은 특정한 민족이나 문화권의 관점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 시민의식이 필요한 글로벌 시대의 역사가 어떤 변종을 거치게 될지를 예견케 한다. 또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의 복합적 결과로서 역사를 구성함으로써,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새로운 통섭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유상호기자)   

 

중앙일보(09. 08. 19) 토플러가 놓친 것, 토인비가 꿰뚫어 본 것 

앨빈 토플러는 틀렸다=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토플러는 근시안적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역학(다이내미즘)을 간과한 채 한시적이고 지엽적인 변화에만 주목”(34쪽)했다. 제3의 물결(정보화 혁명)이 가족 형태, 경제와 정치구조 등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예견했지만, 수박 겉핥기에 그쳤을 뿐이다. ‘지구촌’을 언급(1964년)했던 마셜 맥루언,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예견한(60년) 다니엘 벨, 탤러매틱 사회론의 시몽 노라(78년) 역시 절반만 맞았다.

아놀드 토인비가 맞았다=토인비가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던 것은 1884년이다. 증기기관차·철도 등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거의 100년 뒤의 일이다. 산업혁명이 사회변화의 핵심으로, 이를 통해 인류사에 농업사회가 처음으로 종언을 고했다고 지적했는데, 이후 그 용어가 학계에 보편화됐다. 저자 말대로 “현재 진행 중인 사회변동을 저류로부터 제대로 파악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이 책은 그 ‘어려운 일’에 대한 도전인데, 결과는 경이롭다. 꼭 20년 전 미국에서 출판된 이후 고전 반열에 올랐다고 하는 데 지금 봐도 설득력이 크다. 읽을거리로 치면 가히 ‘월척’인데, 맥루언·벨·토플러 등과 달리 콘트롤 레벌루션(제어혁명)이라고 하는 키워드로 산업혁명 이후 펼쳐진 ‘모든 것의 역사’를 쥐고 흔든다. 정치·경제·미래학은 물론 커뮤니케이션·생물학까지 넘나드는 학제적(學際的) 접근도 당연한다. 



저자는 우선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보화 사회가 시작됐다는 통념부터 뒤집는다. 콘트롤 레벌루션은 산업혁명 이후 즉각적으로 발생했다. 산업혁명 때문에 인류의 삶 최초로 대량생산· 대량 유통이 가능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콘트롤하지 않으면 자칫 사회가 마비되거나 대형사고가 따를 판이었다. 실제로 사고가 빈발했다. 이런 위기를 효과적으로 제어·관리하는 기술이 이때 등장했다. 물류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철도·전신·우편·라디오 등 전에 없던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정보처리(프로세싱)와 교환 그리고 제어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인데, 이것이 인류사에 등장한 제어혁명의 첫 모습이다.

단일통화·표준시·디지털·컴퓨터·인터넷 등의 등장도 그 맥락이다. 이 덕분에 예전의 고립된 지역시장이 단일한 세계 경제체제로 통합이 가능했다. 즉 현대사회 변화의 가장 큰 저류에는 제어혁명이 있다는 주장이다. 정보화사회·후기산업사회 등의 규정은 단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그렇게 딱딱한 것만은 아니다. 19세기 무수한 발명의 일화를 미주알고주알 드러내며 그 안의 숨은 의미를 천착해내는 등 만물상적 지식은 크게 부담없다.

모든 과학기술이란 생명 유기체의 섬세한 메커니즘을 모방하거나 확장한 것이라는 제1부 2장의 시각이 특히 주목할만하다. 생명의 핵심이란 결국은 프로그래밍과 제어라는 독특한 시각인데, 사회학자가 쓴 과학론이 아주 볼만하다.(조우석 문화평론가) 

09. 0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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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30 19:21   좋아요 0 | URL
초거시적인 측면에서 역사도 과학의 일부라고 한다면 혁명(산업,제어)과 물결(제1~4물결)은 사회 변환점이며 예측변수들입니다. 또한 '자연의 재앙'은 상수에 속할 것 같은데요.

로쟈 2009-08-30 20:39   좋아요 0 | URL
초거시사로 보면 시대사도 잠깐일 테니까요...

게슴츠레 2009-08-30 20:01   좋아요 0 | URL
<컨트롤 레볼루션>에 대해서는 서동진 씨가 블로그에 올리신 추천사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www.homopop.org/log/index.php?pl=286&ct1=7&ct2=6

로쟈 2009-08-30 20:38   좋아요 0 | URL
책 추천사에는 저자가 이야기꾼이라고 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