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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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편의 짧은 에세이 중에 앞에 5편이 좋았다. 작가의 삶이 담긴 에세이들. 다른 책에서 이 책으로 넘어와 읽기 시작했을 때 문장이 너무나 단정하고 맺힌 곳이 없어 읽기 편하였다. 좋은 문장을 접한다는 실감이 들었다. ‘걱정없이 사는 기술‘은 두고두고 반복해 읽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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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기르다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지음, 서현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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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발랄하면 사랑스럽기만 하겠지만 개가 나이 들고 병이 찾아 오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더이상 예쁘지 않고 병원 출입, 약 먹이기, 밥 먹이기...누군가 곁에서 늘 돌보아야 한다. 부디 강아지의 귀여움만 생각하고 개를 들이지 않기를.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온하게 돌볼 마음을 갖고 시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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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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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일상의 유지가 일정한 작업 성과를 낸다는 말, 무도와 학문을 함께 이행한다는 점, 경쟁이 아닌 자기만의 수련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점. 이런 면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자주 떠올리게 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인정과 인식, 세상에 열린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이분 첫 책으로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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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을 끌어내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3
힐러리 맨틀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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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홀]을 먼저 읽었다. 분량이 많았고 휙휙 넘어가는 속도감을 가진 소설은 아니어서 후속작인 이 책을 함께 구매했었지만 연이어 읽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른 책부터 읽으려고 일단 뒤로 미루어 두었었다. 하지만 반성은커녕 책임지는 모습 하나 없이 용산에 쳐박혀서 나라를 절단내고 있는 현실 인간을 보면서 [시체들을 끌어내라]라는 너무나 시의적절한 제목에 끌려 연말에 읽게 되었다. 연말엔 역시 장편 소설이 좋은 친구이긴 하다.

앞서 읽은 [울프홀]에서 인물들의 특징과 관계 그리고 느리면서도 내면적인 서술 방식에 적응을 한 후여서인지, 앞의 책을 읽을 때보다 500년 전의 세계에 금방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다. 


역사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작가의 이름을 다른 책을 통해 들은 바가 있어 관심이 있었고 [울프홀]에 이은 두 번의 맨부커상 수상에 대한 호기심도 컸던 차에 문학동네에서 새옷을 입고 나와서였다. 사실 읽기 전에는 극적인 장면들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빠른 전개를 예상했었다. 소설의 중심에 기구한 운명의 인물인 앤왕비와 문제적 왕인 헨리8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소설을 읽어 보니 역동적이거나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전개 방식은 아니었지만 진중한 재미가 있었다. 영국의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아주 중요한 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아무리 실제 일어난 일이 어처구니없고 무섭다 한들 사건들을 제시하는 자체로 흥미를 유발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의 재미는 주로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의 인격 묘사와 이 인물이 당대 여러 인물과 시대의 흐름 자체를 어떤 식으로 보고 평가하는가 따라가며 읽는 데서 온다. 그리고 결국 소설이 후반으로 가면 독자는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 자체에 놀라게 된다. 독자는 크롬웰과 시선을 일치시켜서 그의 시선을 따라 사건을 보느라 미처 크롬웰 자체에 대한 평가를 등한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인물이 자기 앞의 재료들을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가차없이 이용하면서 왕의 욕망과 왕의 명분을 충족시키고 완성시켰는지 마지막에서야 깨닫게 된다. 

 

크롬웰 개인에 대한 자료가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데 작가는 그 비어 있는 부분을 공략의 대상으로 삼아 소설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역사의 세부와 비어 있는 크롬웰 개인사를 상상하여, 종교적 외교적으로 꼬일대로 꼬여 있던 왕의 결혼 문제를 해결해나간 인물을 만들어냈다. 통제되지 않는 왕의 욕망. 그 욕망에 이어지는 또 다른 욕망은 앞선 욕망을 부정하고 앞선 명분을 뒤집어 엎는다. 새로운 명분을 주기 위해서 새로운 희생은 불가피하다. 크롬웰은 누가 발 밑에 깔려야 무사히 저편으로 건널 수 있을지 교통 정리를 하면서 와중에 자신의 해묵은 빚을 받아낸다.


크롬웰은 권모술수에 능하고 사방을 유심히 살피는 주의력을 지닌 일중독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거대한 인물로 느껴지는 이유는 피바람의 중심에서 그 자신 역시 머잖아 사라질 수 있음을, 끝이 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 끝이 그저 끝이 아닌 하나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을 서류 더미 속에서 문서를 작성하며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부분은 크롬웰에 작가의 내면이 겹쳐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겨울의 긴 밤,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 작품을 읽을 때 소설이 애써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인간에 대한 주된 정서가 찌르듯이 다가왔다. 그 정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강철 심장을 지니고 여러 사람의 처형장을 세심하게 준비한 크롬웰이 앤의 처형장에서 마음 속으로 '팔을 내리라고, 제발 팔을 내리라고' 소리를 외친 부분을 유심히 읽었다. 이런 것이 역사책과 소설의 차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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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6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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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정도 전에 읽었는데 이번에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것을 보고 재독했다. 책구매를 알라딘에서 하면 좋은 점 중 하나가 이 책이 집에 있는지, 언제 샀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책보다 비스콘티의 영화를 먼저 보았던 것 같은데 이건 선후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소설도 영화도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

나는 왜 이 소설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시칠리아, 1860년대돈 파브리초 살리나 영주. 이탈리아 통일기라는 오래 전 시간이 배경이며 계급적으로도 귀족 신분인 영주가 주인공이다이러한 작품이 나에게 무슨 이유로 마음에 오래 남는 소설이 되었을까처음 읽었을 때는 살리나 영주의 입체적인 면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영주는 자신이 속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과 새로운 계층이 부상하는 것을 바라본다귀족적 우아함을 타고난 이 인물은 봉건 구조 속에서 영주로서 가장으로서 거칠 것 없이 더할 나위 없는 삶을 누리고 있으며 동시에 천문학자이기도 하여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에도 익숙하다그는 다가온 변화를 이해하고자 탐색하고 사유하고 판단한

변화에 대처하는 이 인물의 유연함에는어떤 우둔함이나 자기 계급에 대한 퇴행적인 고집이나 심지어 자기 핏줄을 우선하는 맹목도 비켜서 있을 수 있는 자기 객관화가 바탕이 되어 있다이런 점에 상당히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물러나는 한 세계의 장엄한 퇴장장엄함만큼 깊게 느껴졌던 쓸쓸함이런 부분들이 소설의 아름다움으로 마음에 남았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계층의 성쇠 부분 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인간의 '죽음'이었다소설은 내용상으로 계급의 몰락과 영주의 죽음이 조화롭게 잘 물려 있다파브리초가 죽음에 대해 숙고하는 부분과 그가 맞이하는 죽음의 장면이 특별하게 다가왔다무엇보다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고 그러자 시간이 흘러도 이 작품의 생명이 끈질기게 유지되는 힘을 알 것 같았다.


파브리초는 구세대의 몰락과 새로운 계층의 대두를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변화의 중개자로 역할한다그 변화는 역겨운 어떤 것(두꺼비를 삼켜야 하는)을 포함하고 있으세상의 악화일 수도 있지만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이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인다.


파브리초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로 생각을 이어가는데나는 31페이지 분량의 6장 전체를 차지하는 무도회 부분이 이 소설 전체의 축약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무도회장에서 인간 군상을 보며 영주가 느낀 피로와 혐오감과 흔쾌함과 잠깐의 열기새로운 세대를 위한 배려와 적절한 퇴장에 이르기까지가 그런 생각을 하게 했고, 서재에서 홀로 휴식하며 임종의 그림을 보는 장면은 그런 생각을 더욱 확실하게 했다. 무도회가 파하고 모두 지쳐 귀가할 때 영주는 마차를 거부하고 새벽별을 보며 홀로 걷는다거리에는 도살된 소를 싣고 가는 수레가 지나가고 있다영주는 별을 보며 위안을 느끼고 언제쯤이면 별과의 만남이 허락될 것인지 생각하면서기꺼이 그 품으로 가길 희망한다. 죽음은 별들의 품으로 가는 일, 그 역시 우주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기꺼운 일이다. 6장에 이 소설이 말하는 바가 다 담겨 있음을 깨달으며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에 무도회 장면이 그렇게 인상적으로 유려하면서 긴 분량을 차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또한 무도회를 마치고 홀로 걸어가는 영주의 뒷모습으로 영화를 끝낸 것이 영화적으로 무척 적절한 선택으로 느껴졌다.


소설의 첫 장은 1860영주의 가족이 모여 기도를 드리는 일과로 시작한다기도하는 홀의 천장과 바닥에 그려진 신화를 소재로 한 벽화와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이 집안의 웅장한 규모와 품격을 드러낸다기도 시간이 끝나면 문밖에서 기다리던 사랑받는 영주의 개 벤디코가 안으로 들어오고 자부심으로 빛나는 거구의 영주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1910, 1883년에 죽은 영주의 저택을 소유하고 관리하던 딸 콘체타가 오랜 세월 모으고 지녀왔던 유물들을 교회의 냉담한 기준 하에서 정리하고 버린다그리고 사십 오년 동안 박제되어 있던 벤디코를 내다 버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죽음을 자연의 일부가 되는 일로,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너른 품에 대한 부러움을 가진다나도 콘체타처럼 과거에 연연하며, 변화를 두려워하고, 붙잡고 살 소품들에 의지하는 인간이다. 죽음이라는 극한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어 있는 손을 보며 그나마 찾아 가는 것은 책읽기의 장소이다. 언제쯤, 어느만큼 그런 유연함은 가능할 것인지 알 수 없다. 기꺼운 죽음의 한 모습을 반복하여 읽으며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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