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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1월
평점 :
이 소설의 '폴란드인'은 피아니스트이고 연주를 위해 바르셀로나에 방문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그를 초청한 주최측 사교계 인사와 식사 자리에서 한 번 대면하고 특별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를 떠난 후에도 그 인사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인연을 지속하고자 한다. 피아니스트는 일흔이고 그의 방문 일정을 관리했던 주최측 서클의 그 여성은 곧 쉰이 되는 나이이다. 폴란드인은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 이들의 이야기는 남편이 금융업자이며 장성한 자녀들도 있는 여성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독자와 마찬가지로 조금 어이없어하며 폴란드인의 접근을 곱씹게 되는 베아트리스라는 우아한 여성.
폴란드인의 정체는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 그의 내면은 베아트리스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날 뿐이고 베아트리스와 현실적인 접점은 전무하다. 그런데 그가 원하는 관계는 '오디너리한 방식'이라고 한다. 실상은 그의 모든 시도가 일상적이지 않다. 두 사람은 다른 언어를 쓰므로 영어로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하는데, 그래서 폴란드인은 언어를 대신할 자신의 쇼팽 연주 녹음을 들어달라고 보내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연주 여행지로 와 달라고 하기도 하고, 브라질에 가서 얼마간 함께 살자고 반복적으로 제안하기도 하네. 베아트리스가 자신이 제안하는 그런 만남에 응답하길 요청하곤 하는 것이다. 베아트리스가 기혼자임은 염두에 없다. 이 여성이 자신과 같은 지점으로 도달해 오기를, 어떤 결심에 이르기를, 자신과의 관계에 들기를 거듭 초청한다. 현실적인 베아트리스는 브라질 행은 제외하고, 나머지 그의 제안에는 응하기도 하면서 이 일이 무슨 일인지 알아 보게 된다. 베아트리스는 소설 속 표현을 옮겨 말하자면 이런 여성이다. '그녀는 거대하고 희망 없는 열정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건 분명히 그녀의 체질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가진 거대한 열정에 감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 소설은 '폴란드인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소개되곤 하지만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베아트리스 입장에서 전개될 뿐 아니라 베아트리스의 이야기이다.
베아트리스는 교양 있는 여성이고, 취향을 유지할 충분한 경제적 기반이 있으며, 자기 일상과 사회적 지위에 만족하는, 상식적인 세계를 운용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인물이 인간의 특별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과 사랑에 화답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었다.
두 사람이 세 번의 만남을 가진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 폴란드인은 기억 저편의 사람이 되었는데, 그가 죽었고 그녀에게 뭔가를 남겼다는 연락이 온다. 그런데 소설의 분량이 아직 삼분의 일 이상 남아 있네. 그가 남겼다는 물건을 택배로 받으려는데 잘 안 되어 폴란드인의 삭막한 서민 아파트까지 찾아가게 되고, 비어 있는 초라한 아파트 내부를 살피다가 그녀 앞으로 남긴 시 묶음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와 폴란드어로 쓰여진 시를 번역자에게 의뢰하고, 그것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후반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후반의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다. -- 뭘 남겼을꼬 번거롭다, 주저하고 고민하다가 폴란드까지 다녀온다, 시를 번역에 맡겨서까지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번거롭다, 그냥 태워버리면 어떨까 망설인다, 결국 번역을 맡기고 읽어 본다, 시가 이런 부분은 좋고 저런 부분은 이해도 안 되고 해괴하구나...
이런 과정에서 매번의 선택은 베아트리스라는 여성의 자신에 대한 충실성, 신중함, 일상인으로서의 성실로 인해 진행된다. 그리고 그런 성품은 정직하게 예술에, 사랑에 마음을 여는 길로 이끈다.
이 글 앞 부분에서 폴란드인과의 만남에 있어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라곤 없다고 했는데, 생과 사라는 극단적으로 접점을 찾기 어려운 다른 환경의 상황에서 이제 진짜 대화가 시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