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룰라 정부의 공과를 짚는 책이 지난주에 출간됐다.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후마니타스, 2010). 저자인 조돈문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10. 01. 26) 조돈문 교수 "한국 진보진영, 룰라에게 배워야 합니다" 

노동자 출신으로 4수 끝에 2002년 좌파로서는 최초로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6년 재선에 성공한 룰라(65) 대통령. 올 연말이면 임기가 끝나지만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굳건하다. 지난해 9월 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80%를 넘었다. 그러나 룰라 정권에 대한 세계 진보 진영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과감한 사회복지정책의 시행 등 제도권 진보정당의 이상적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변혁적 정책 실험이 부재했다는 반박도 나온다.  

양극화와 계급 문제에 주목해 온 조돈문(56)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저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후마니타스 발행)에서 룰라 대통령과 브라질 노동자당의 공과를 소득불평등의 변화 추이, 계급별 지지도 등 다양한 통계로 분석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분석한 책은 국내에서도 여러 권 나왔지만 이 저서는 국내 학자로서는 사실상 최초로 룰라 정권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유학 중 한국과 멕시코 노동계급 비교연구로 박사논문을 쓰는 등 일찍부터 중남미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던 조 교수는 "1994년께부터 룰라를 주목해왔다"고 했다. 브라질 노동운동사를 정리한 이 책의 1장은 당시 쓴 논문이다. 그는 2002년 봄 브라질 대선 레이스에서 룰라가 선두를 놓치지 않자 그해 여름부터 포르투갈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룰라가 취임한 2003년 이후 브라질을 6차례 다녀오며 글을 썼다.

조 교수는 "룰라 정권은 경제정책에서는 전임 우파 정권과 연속성을 지니되 상당 정도 차별성을 보여주었고, 사회정책에서는 두드러지게 차별적이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긴축재정 운용, 고금리 유지 등이 전자의 예이고 저소득층 생계 지원, 무토지 농민을 위한 토지개혁 등은 후자의 예다.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룰라 정권의 성공은 좌파와 중도우파를 포괄하는 국내 진보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같은 시기 출범한 한국의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공공부채는 5배 이상이었고, 한국은 외채가 수출규모보다 작았지만 브라질은 외채가 수출규모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과감한 사회복지 예산을 쓰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지요. 룰라 정권이 자본주의 게임 규칙을 바꾸는 실험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빈곤층의 규모를 줄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조 교수의 말은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룰라의 노동자당도 순수계급정당을 포기하고 대중정당을 표방하며 집권하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에 분명히 반대했습니다. 반면 우리 '진보' 정권은 보수 기득권 세력과 결합해 신자유주의 대동맹을 결성했지요. 그 결과 진보정당은 사회적으로 고립됐고요. 환란 이후 삶의 질이 악화됐는데도 시민들의 사회ㆍ정치의식이 보수화된 책임은 두 정권에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불만이 바로 진보 진영의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롤라는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 빈곤층 자녀 대상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 '프로우니' 같은 성과를 보여주었기에 재집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당다운 트레이드마크를 보여준 것이지요." 조 교수는 또 롤라가 집권 전부터 지역에서 공공투자부문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참여예산제'등 차별화된 통치모델과 통치능력을 보여준 점도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진보 진영이 '새 세상이 올 것이다'는 말만 해서는 집권이 불가능합니다. 집권 전에 작은 변혁들을 실천해서 변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유도해야 합니다."  

비판사회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등을 지낸 조 교수는 최근 진보적 학술단체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우리 진보 진영이 브라질의 경험을 배우지 못하면 집권도 실패할 것이며, 집권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진보 지식인과 진보 정당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겠다"고 말했다.(이왕구기자) 

10. 01. 26. 

 

P.S. 남미의 정세와 차베스에 대해선 국내에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과대평가된 면도 있는데, <레닌 재장전>(마티, 2010)에서 지젝이 지적하는 차베스의 한계는 '오일 머니'다.  

"차베스의 한계는 다른 곳에 있다. 그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인인 바로 그것, 오일 머니다. 석유는 당장의 저주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길흉이 뒤섞인 축복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오일 머니 덕분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정말로 새로운 것을 발명하지 않고서도 그는 자신의 포퓰리즘적 태도를 계속 견지해나갈 수 있다. 돈은 실제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행위, 곧 근본적인 변화를 연기하면서 (포퓰리즘적인 반자본주의적 조치들을 취하면서 동시에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모순적인 정책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반미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와 미국 사이의 협약이 정기적으로 체결되도록 꽤 신경을 쓴다. 그는 실로 '석유를 갖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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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10-01-26 12:52   좋아요 0 | URL
음... 읽어봐야할 책이네요. 보관함으로...

로쟈 2010-01-27 08:45   좋아요 0 | URL
업무상 독서가 되시나요?^^

딸기 2010-01-27 17:38   좋아요 0 | URL
업무상 독서...를 해야하는데, 지난해부터 정말 너무 안 읽고 있어서..
올해는 좀 부지런을 떨어보려고요 ^^

로쟈 2010-01-28 18:32   좋아요 0 | URL
잔뜩 쌓아놓으셨더군요.^^

펠릭스 2010-01-26 22:52   좋아요 0 | URL
중남미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곳이더군요. 미국의 비밀스런 방식이 쭉 진행되겠지만요.

로쟈 2010-01-27 08:45   좋아요 0 | URL
라틴아메리카 총서들이 나오고 있어서 그래도 사정을 알 수 있는 길이 넓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