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란 선택의 문제가 책중독자뿐 아니라 뇌과학자에게도 관심거리라는 걸 알려주는 책이 출간됐다. 리드 몬터규의 <선택의 과학>(사이언스북스, 2011). 저자는 버지니아 공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명한 신경과학자라 한다. 책소개에는 "의사결정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드 몬터규가 소개하는 fMRI(기능성 자기공명 영상장치) 연구의 최전선"이라고 돼 있다. 이런 의사결정의 문제를 다루는 신경과학을 특별히 신경경제학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저자는 그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사실 번역서의 제목보다는 원제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Why choose this book?)'가 더 와닿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거기서 몇권씩 골라 '자동적으로' 주문하곤 했는데, 하루 주문을 쉰 김에(배송은 거르지 않았다) <선택의 과학>과 더불어 한번 자문해봐야겠다.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한국일보(11. 09. 24) 최선의 판단을 하려는 뇌, 가끔은 실수도 한다

1975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콜라업계 2인자 펩시콜라가 도발적인 실험을 했다. 상표를 가린 채 사람들에게 펩시콜라와 코카콜라를 마셔보게 하고 뭐가 더 맛있지 물었다. 소비자의 52%가 펩시콜라를 택했다. 펩시는 이 모습을 담아 TV에 광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러스에서 펩시콜라의 시장점유율은 6%에서 14%로 크게 올랐다. 의기양양해진 펩시는 펩시 챌린지(Pepsi Challenge) 캠페인을 전국으로 넓혔다. 1979년 미국에서 펩시콜라의 판매량은 역사상 처음으로 코카콜라를 앞섰다. 도전은 성공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영광의 날은 한때였다. 코카콜라 판매량은 다시 펩시콜라를 추월했다. 펩시 챌린지가 계속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미국 버지니아공대 물리학과 교수인 리드 몬터규가 쓴 <선택의 과학>은 펩시가 '맛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탄산음료에서 시원함과 청량함을 기대한다. 맛은 더 좋을지 몰라도 펩시콜라는 이런 이미지가 약했다. 이는 상표를 붙이고 시음한 사람들 대부분이 코카콜라가 더 낫다고 답한 또 다른 실험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미각뿐 아니라 기대, 보상 등 뇌의 활동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연인들이 음식점에 갈 때 분위기 좋은 집을 택하는 것도 괜한 게 아니란 얘기다.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하루에 150번 넘게 크고 작은 선택을 한다고 한다. 몇 시에 일어날까, 차를 갖고 회사에 출근할까, 점심 메뉴로 뭐가 좋을까, 퇴근하고선 뭘 할까 등. 그러나 저자는 주장한다. 선택의 가장 큰 비밀은 선택이 없단 사실이며, 인간의 모든 행위는 뇌의 가치판단에 근거한다고. 가치판단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드는 비용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따지는 행위다.

가치판단에 관여하는 부위는 중뇌와 전전두피질. 뇌의 중간에 있다 하여 중뇌라 불리는 이곳엔 도파민 신경세포 1만5,000~2만5,000개가 몰려 있다. 이 세포는 특정 행위에 대한 보상을 담당한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전전두피질은 여러 행위를 저울질해 우선순위를 정한다. 뇌의 각 부위는 최선의 가치판단을 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보상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

최후통첩게임이란 게 있다. A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그 중 얼마를 B와 나누라고 한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A, B 모두 돈을 갖는다. B가 거부하면 둘 다 돈을 얻지 못한다. A가 100달러를 받아 그 중 5달러를 B에게 줬다고 해보자. B 입장에선 A가 1달러를 준다 해도 공짜 이익이 생기는 거니 넙죽 받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뇌가 느끼는 이득의 가치가 현저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이득의 가치는 '내 이득_계수×(남의 이득-내 이득)'이란 공식으로 계산한다. 계수는 전체 액수 분의 내 이득. 위 상황을 여기에 대입하면 '5달러-5/100×(95달러-5달러)'로, 내 이득의 가치는 0.5달러란 계산이 나온다. 5달러를 받아도 뇌의 신경계는 그것의 가치를 0.5달러로 판단해 B는 A가 주는 금액을 거부하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택에선 유사 종교인 헤븐스 게이트(천국의 문) 교단의 남녀 39명이 집단 자살을 했다. 이들은 헤일 밥 혜성의 꼬리 너머에 자신들을 '다음 단계'로 데려갈 우주선이 있다고 믿어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재배치란 뇌과학의 개념을 끌어 이 기이한 현상을 설명한다. 약물 중독자의 신경계는 마약물질로 교란되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변화한다. 이 경우처럼 다음 단계로 간다는 생각 역시 신경계를 변화시키고, 죽음을 오히려 보상받는 행위로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러웠던 선택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선택의 순간마다 왕성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뇌 활동이 비로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쯤이면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Why choose this book?)>란 책의 원제에 관한 답을 찾게 될지 모른다.(변태섭기자) 

11. 09. 24.  

 

P.S. 안 그래도 오늘 오후 의정부도서관에 강의를 나가면서 가방에 넣고 간 책의 하나는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였다. 부제대로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구체적으론 뇌과학적 이유를 현단계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알라딘에는 뇌과학 카테고리가 따로 설정돼 있는데, 이 분야의 책으론 폴 새가드의 <뇌와 삶의 의미>(필로소픽, 2011)과 김종성의 <뇌과학 여행자>(사이언스북스, 2011)가 신간이다. 과거 천문학처럼 뇌과학도 이젠 '교양' 범주에 속하므로 이런 정도의 책들은 읽어줘야겠다...   

 

한편, 책의 추천사를 쓴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신경경제학 분야에서 리드 몬터규와 자웅을 겨루는 학자는 에모리대학교의 정신과 의사 그레고리 번스이다. 그의 책으론 <만족>(북섬, 2006)과 <상식 파괴자>(비즈니스맵, 2010)가 있다. <아이코노클라스트>는 <상식 파괴자>와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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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1-09-28 08:27   좋아요 0 | URL
며칠전 서유헌의 <엄마표 뇌교육>이라는 책을 주문하면서 '뇌과학'에 좀 흥미가 생기던 차에 읽게 된 책소개입니다. 저에게 유용한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리드 몬터규, 그레고리 번스 노트해두고 갑니다.

로쟈 2011-09-29 22:11   좋아요 0 | URL
뇌과학은 알라딘에도 따로 분류항목이 있습니다...
 

이번주 출간된 학술교양서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중국현대사의 지식인들에 관한 책 <20세기 중국 지식인을 말하다>(길, 2011)이다. 주섬주섬 모으고 있는 분야의 책이기 때문이다. 진작에 주문했지만 배송은 내주에 된다고 하는데, 내주쯤엔 리스트라도 만들어놓을 참이다. 참고로 국내 연구자들이 쓴 <중국 근대지식체계의 성립과 사회변화>(길, 2011)도 같이 출간됐다.   

  

경향신문(11. 09. 24) 단절된 중국사회 속에서 지식인들의 길 찾기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찬밥 신세였던 지식인이 개혁개방 이후 재등장한 것은 지식인과 현대화 과정과의 긴밀성에서 비롯한다. 지식(인)에 대한 담론은 주관적 호불호의 차원 이전에 중국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에 반드시 대면해야 하는 이슈다. 이 책의 출판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중국에서 지식인 문제의 최고 전문가인 쉬지린(許記霖, 화동사대 교수)이 엮은 방대한 역작을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사업단이 번역해 내놓았다. 목차를 펼쳐보면 현재 중국의 지식지형을 좌지우지하는 지식인들, 황핑(黃平), 위잉스(余英時), 두웨이밍(杜維明), 천핑위엔(陳平原,) 첸리췬(錢理群), 장칭(章淸), 쎄융(謝泳), 첸무(錢穆) 등 화려한 집필진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 대륙만이 아니라 대만, 홍콩, 미국 등에서 활동하는 범중화권 지식인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의 지식(인)론을 통해 현재 중국의 주요 지식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아있는 고민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쉬지린 교수는 서문에서 20세기 이후 ‘단절된 사회’ 속의 지식인의 불안한 위치가 지금도 이어진다고 진단한다. 그는 단절을 세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사대부의 중추적 기능이 상실되면서 국가와 사회가 단절된 것이 그 하나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계층 사이에 공통의 가치관과 제도가 결핍돼 공통의 지향이 상실됐다는 것이 그 둘째다. 마지막으로 지식인들이 주변화되면서 그 내부에서조차 단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20세기 대표 지식인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루쉰(1881~1936), 차이위안페이(1868~1940), 후스(1891~1962), 쑨원(1866~1925), 량치차오(1873~1929), 옌푸(1853~1921).

이런 현재적 문제의식을 머금은 이 책은 여러 학자들의 것을 엮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식(인)에 대한 계보학적 성찰’이라는 저변을 관통하는 단서가 미리 마련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고대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편의적으로 나누면 크게 네 시기다.

첫째, 춘추 전국시기에 형성돼 1905년 과거제가 폐지되기까지 사대부 문화가 지배한 시기. 둘째, 서양과의 충돌 이후 신지식인 집단이 출현하고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겪게 되는 시기. 셋째, 사회주의 건설 이후 지식의 자율성이 상실된 시기. 넷째, 개혁개방 이후 지식이 재건되고 지식인이 재출현하면서 지식인 논의가 무성해지는 시기이다.

내용적으로는 인물뿐 아니라 인물을 둘러싼 지식인 사회의 인프라구조인 매체, 사단, 학회 등 지식사회의 권력 네트워크가 논의의 주제와 소재로 다뤄진다. 방법론에서 필자들은 사회사적, 사상사적 접근을 동원하면서 지식의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고루 추적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첸리췬이 쓴 ‘베이징 대학 교수의 다른 선택’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강사였던 루쉰과 유력한 교수였던 후스가 학내의 같은 사건에 대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권력과 개인의식 및 타자의식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근대에도 지식인의 주의주장을 ‘지식장의 권력관계’라는 요소와 분리해서 볼 경우 언제든 엉뚱하고도 허구적인 해석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중국 지식인 문제에서 간과해선 안되는 것은 인구의 70~80%가 농민으로 구성돼 있는 특수 상황으로부터 나오는 여러 사회적 문제로부터 발생한 요청들에 의해 변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제국적 규모의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관료와 지식인이라는 사대부의 이중적 신분의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변형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 여전히 중요하게 고민돼야 하는 지점이다.

한국인이 중국 지식인 사회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인 체제내 지식인과 반체제 지식인의 구분 기준도 이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이 문제는 중국의 전통적 지식인의 원형, 농민인구 문제 그리고 사회주의 경험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함께 왜 그럴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내재적 메커니즘을 살피고 인정하면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유용하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자본주의 강화 정책에 따라, 전 사회가 시장화하면서 공공영역이 상업화되는 보편적 현실 속에서, 그리고 인터넷에 의해 지식인이 또 다시 주변화되는 시대에, 지식인이 어떤 위상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격적 분석이 빠져 있다는 것이 아쉽다.(조경란 |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 

11. 09. 24.  

P.S. 기사의 필자인 조경란 교수의 책으로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삼인, 2003)도 이 분야의 가이드가 될 만한 책이다. 일단 분량이 단출하다. <현대 중국사상과 동아시아>(태학사, 2008)과 번역서 <중국 민족주의 신화>(지식의풍경, 2006)도 관심도서인데, 그래도 이 분야에서 길잡이가 될 만한 전공학자가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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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세기 중국의 지식지형과 지식인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0-09 12:06 
    '10월의 읽을 만한 책'의 카테고리로 '중국의 지식인'을 만들어놓고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등을 올려놓았었는데,마침 관련서평이 눈에 띄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개인적으로 지식인 문제는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이다.그간에 서구 지성사에 가려져왔던 '중국의 지식인' 문제가 지식인 문제 일반을 다룰 때도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지식인' 문제와 견주어볼 수도 있겠고...교수신문(11. 10. 04
 
 
Daniel 2011-09-24 13:36   좋아요 0 | URL
선생님의 폭넓은 독서 분야를 보면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드러커는 주기적으로 분야를 바꿔가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도 인생계획(?)을 세우시고 몇살때부터는 이런 부분을 읽으리라 하시나요.
아니면 그야말로 책 하나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계속 관심을 넓히시는지요.
제 생각엔 둘다이실 것 같은데^^;;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1-09-24 23:00   좋아요 0 | URL
거창한 계획을 세워두고 읽진 않습니다.^^ 관심있는 주제나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사모으고 기회가 될 때 몰아서 읽는 편입니다. 나이를 먹으며 관심분야가 더 넓어지고 있어서 애를 먹고는 있습니다.^^;

Daniel 2011-09-26 06: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관심분야가 넓어지실수록 다음 책들이 다루는 영역도 더 풍성해지겠네요. 물론 기존 책에서 다루신 것들만 해도 저같은 일반독자에겐 차고 넘치지만요.^^
 

<스파르타 이야기>(어크로스, 2011)란 책이 새로 나왔다. 우리가 잘 아는 '스파르타'이지만, 정작 스파르타와 스파르타인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는 책은 거의 없었다(소개서가 한두 권 눈에 띈다). 이번에 나온 <스파르타 이야기>의 저자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고전학부에서 그리스 역사를 맡고 있다는 폴 카트리지다. 서구의, 적어도 영국의 고전학 수준을 대표할 만한 급의 저자다. 책이 나온 김에 '스파르타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너무 적어서 미 코넬대학에서 역사학과 고전문학을 가르친다는 배리 스트라우스의 '고대 전쟁 3부작'과 같이 묶는다. 펠로폰네소스전쟁까지 포함하면 관련서가 많아지겠지만, 두 고전학자의 책 다섯권으로도 리스트는 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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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 이야기- 신화로 남은 전사들의 역사
폴 카트리지 지음, 이은숙 옮김 / 어크로스 / 2011년 9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1년 09월 23일에 저장
절판
알렉산더- 위대한정복자
폴 카트리지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11년 09월 23일에 저장
절판
트로이 전쟁- 호메로스의 서사시 그 이면의 역사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9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1년 09월 23일에 저장
품절
살라미스 해전-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1월
17,800원 → 16,020원(10%할인) / 마일리지 890원(5% 적립)
2011년 09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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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3 10:49   좋아요 0 | URL
어제 그린비에서의 특강 잘 들었습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났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했구요. 동시에 수줍은 표정을 지녔으며, 눈빛이 살아있는 학자의 모습이더라는 동석했던 친구의 평가도 아울러 전해드립니다. ^^;

로쟈 2011-09-23 23:46   좋아요 0 | URL
네, 어제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평가가 나쁘진 않군요.^^;

saint236 2011-09-23 11:44   좋아요 0 | URL
정말로 스파르타 관련 책들은 없네요. 제일 위의 스파르타 이야기 빼고 나머지 4권은 온전히 스파르타 이야기라고 불리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알렉산더, 트로이 전쟁, 살라미스 해전은 더 그렇구요. 지상렬 닮은 김어준씨 옆의 로쟈님은 더 돋보입니다.^^

로쟈 2011-09-23 23:45   좋아요 0 | URL
아, 책을삼킨TV를 보시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09-23 17:48   좋아요 0 | URL
스파르타에 대해서는 톰 홀랜드<페르시아 전쟁>이 그래도 자세하게 나온 것 같습니다.테르모필레 전투를 많이 다뤘거든요.헤로도토스 책이 좀 따분하다고 느낀 이들도 이 책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쟈 2011-09-23 23:4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책은 다 구해놓았는데 읽을 짬은 못 내고 있어요.^^;
 
민주주의를 위한 인문학

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24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제안을 받고 인문서평을 격주로 게재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은 마사 누스바움의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궁리, 2011)이다. 추석 연휴 첫날에 독서실에 가서 읽은 책이다. 참고로 같이 읽은 건 곽준혁의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한길사, 2010)에 수록된 인터뷰이다. 이 책에선 '마사 너스바움'이라고 표기돼 있다. 서평을 쓰고 나서 <인간성 함양(Cultivating Humanity)>(1997)도 주문했는데 오늘 책을 받았다...  

  

매경이코노미(11. 09. 28) 교육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

“우리는 거대한 위기, 심중한 전 지구적 중요성을 지닌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꺼내들었다면 십중팔구 2008년 이후의 전 지구적 경제위기를 다룬 책으로 넘겨짚기 쉽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을 수밖에 없는 주기적인 위기인지, 아니면 파국적인 위기인지 여하튼 우리를 포함한 세계경제가 아직 빠져 나오고 있지 못한 위기 말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이라면 사실 새로울 건 없다. 모두가 의식하고 있는 위기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미국의 인문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궁리, 2011)에서 경고하는 ‘거대한 위기’는 “마치 암처럼 대개는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어떤 위기”를 가리킨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교육에서의 전 세계적 위기’다.   

 

책의 원제는 구호처럼 간명하다.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Not for Profit)’. 물론 주어는 ‘교육’이다. 누스바움의 선택지에 따르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건 ‘이익을 위한 교육’과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 두 가지다. 중립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그가 보기에 바람직한 교육은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이고, 이익을 위한 교육은 나쁜 교육이다. 누스바움이 우려하는 것은 각국이 국가 이익에 목을 매면서 교육현장에 밀어닥친 급격한 변화다. 경제성장만을 국가 발전의 유일한 척도로 간주하면서 빚어진 결과인데 이 때문에 인문교양과 예술 교육이 차츰 축소, 배제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이 위축되고 있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만일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전 세계 국가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전통을 비판할 수 있으며, 타인의 고통과 성취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온전한 시민이 아니라, 유용한 기계일 뿐인 세대를 생산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교육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로 귀결된다.  

바람직한 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누스바움은 세 가지 능력을 양성할 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첫째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둘째 지역적 차원의 열정을 뛰어넘어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셋째 다른 사람의 곤경에 공감하는 태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능력들은 바로 인문교양과 예술을 통해서 길러진다. 가령 예술은 우리의 내면적 자기 함양과 타자에 대한 대응 능력을 증진시켜준다. 누스바움은 시카고의 어린이합창단을 한 사례로 드는데, 리허설과 공연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은 인종,사회경제적 배경이 전혀 달라도 함께할 수 있는 체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기의 목소리를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와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능력과 기율, 책임의 감각을 키우게 된다. 더불어 다른 시대와 장소의 노래를 배움으로써 자연스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도 익히게 된다. 합창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민주주의적 결속감과 존중심이 길러지는 것이다. 물론 합창뿐만이 아니다. 음악, 무용, 회화, 연극, 모든 것이 이러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익을 위한 교육, 경제 성장을 위한 교육의 주창자들은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아이들을 내몬다. 그들은 학교에 ‘사려 깊은 시민들’ 대신에 ‘유용한 이윤 창출자들’을 배출하라고 요구한다. 그런 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 인도 교육의 선구자이기도 했던 시인 타고르의 표현을 빌면 ‘영혼의 자살’이다. 타고르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오늘날 이익을 위한 교육을 택한 인도의 학부모는 기술, 경영 대학에 입학한 자녀들은 자랑스러워하지만 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자녀들은 부끄러워한단다. 누스바움이 보기에 이건 생각보다 끔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무런 비판적 사고도 가르치지 않고 인종주의적 편견을 부추기면서 주입식 교육만을 밀어붙였던 인도의 구자라트 주에서 2002년에 폭동이 발생하여 힌두 우익 폭력배들이 2,000여 명의 무슬림 시민을 살해한 사건을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학교들이 인도식 방향으로 이동해가고 있는 현실에 “뼛속 깊이 두려운 마음으로 놀라야 한다”는 것이 누스바움의 경고다. 과연 우리와는 무관한 경고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11. 09. 20.   

P.S.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는 누스바움의 단독 저작으론 처음 번역된 것이다. 그런 만큼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솔직히 절반 정도까지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스러웠는데, 마지막 6장과 7장이 다행스럽게도 기대에 부응했다. 번역에 별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역자가 '문맥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다는 [ ]가 너무 빈번하게 나와서 오히려 독서에 방해가 됐다. ( )까지 자주 등장하다 보니 뭔가 거추장스러운 느낌을 자주 받았다 . 그리고 두 번인가 '괴탄하다'란 말이 나오는데, '개탄하다'를 잘못 쓴 게 아닌가 싶다. 또 마지막 감사의 글(원서에는 서두에 나온다)에서 누스바움이 아마르티아 센 모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the late Amita Sen and Amartya Sen"을 "최근의 아미타 센과 아마르티아 센"이라고 한 건 오류이다. "고(故) 아미타 센과 아마르티아 센"이다. 아마르티아 센은 보통 '아마티아 센'이라고 표기되는 하버드대학의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로 인도 출신이고 누스바움과는 공동 연구도 진행한 적이 있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하게 영국에서도 인문학자들이 정부기관에 연구비 지원을 신청해서 지원을 받는 체계인 모양이다. 누스바움이 보기에 "이는 실로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면서 "연구 주제를 왜곡하는 귀신"이다(미국은 대학 재정이 상대적으로 독립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빚어지는 에피소드 하나.  

최근 철학과와 정치학과를 합병하여 신설된 어느 학과에서 일하는 냉소적인 젊은 철학자는 내게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최근 그가 제출한 자금 지원 제안서의 제목은 6개 단어로 되어 있는데, 이는 글자 수 제한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안서의 제목란에 "경험에 근거한(empirical)"이라는 단어를 6번 연달아 기입했다고 한다. 마치 제안서를 검토한 관료들에게 그가 여기서 다루는 것은 단지 '철학'만이 아니라는 점을 재삼 확인하기라도 하는 양 말이다. 그런데 그의 신청서는 결국 성공적으로 통과되었다."(214-5쪽) 

요는 'empirical'이란 단어를 많이 집어넣었더니 연구비 신청이 채택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에피소드의 내용이 잘못 번역됐다. "최근 그가 제출한 자금 지원 제안서의 제목은 6개 단어로 되어 있는데, 이는 글자 수 제한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안서의 제목란에 "경험에 근거한(empirical)"이라는 단어를 6번 연달아 기입했다고 한다."는 "his last grant proposal was six words under the word limit - so he added the word 'empirical' six times"를 옮긴 것이다. '제목은'이나 '제목란에', '연달아'는 원문에 없는 걸 역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집어넣은 것으로 실상은 오독의 산물이다. 보통 '몇단어 이내'라고 지정돼 있는 연구비 신청서에서 6단어가 모자라기에, 곧 더 넣을 수 있기에 'empirical'이란 단어를 6번 집어넣었다는 것이다(그게 선정 '비결'이 아닐까란 것이고). 제목에만 같은 단어를 6번 연달아 기입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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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2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족 2011-09-2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번역제목이 너무 마음에 안 듭니다. 개인적으로 '공부'는 혼자 하는 탐색활동이란 느낌이라면, '교육'은 누군가로 부터 배우고 길러지는 것이라서 저런 식으로는 쓸 수 없는 거거든요.

로쟈 2011-09-22 13:21   좋아요 0 | URL
네, 제목은 저도 맘에 안 듭니다.^^;

수증기 2011-09-2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들러서 즐겁게 읽는 사람입니다.^^

'괴탄하다'가 '이상하고 허탄하다'의 괴탄(怪誕)이라면
그런 뜻으로 쓰는 것은 종종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맥락이 이상해서 의심하셨겠지만 여기서 자양분을 많이 얻는 독자로서
혹시나 도움될까 해서 남깁니다

로쟈 2011-09-23 08:50   좋아요 0 | URL
그런 말도 있군요. 하지만 어떤 단어를 그렇게 옮겼을지는 좀 의문이에요. 문맥상으론 그냥 '개탄하다'여서요.^^;
 
책으로 읽는 책세상

이번달 출판문화(550호)에 실은 출판 칼럼을 옮겨놓는다. 주제에 대해서 고심하다가 '책중독자가 보는 책의 미래'에 대해 썼다. 원고를 써야 할 때쯤 톰 라비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돌베개, 2011)이 손에 잡히기에 읽은 게 빌미가 됐다.   

  

출판문화(11년 9월호)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는 질병, 책중독자

지난 7월에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교보문고, 2011)를 빌미로 ‘책으로 읽는 책세상’이란 주제를 다룬 바 있다. 구텐베르크 혁명의 결과이기에 ‘구텐베르크 은하계’로도 불리는 책의 지배적 형태가 전자책(e-book)으로 변화 혹은 진화해 갈 것인가가 책의 미래에 관한 핵심 쟁점이다. 책이란 말이 붙긴 했지만 ‘전자책’이 과연 책의 변신인지 아니면 책의 종말인지, 의견은 여러 갈래다. 하지만 그런 의견의 평균치나 평균적인 전망보다 더 궁금한 건 ‘책중독자’들에게 책의 미래가 어떻게 비칠까 하는 문제다. “책 없인 못 살아!”라고 외치는 책중독자들이 적어도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더 많은 발언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그들의 고뇌를 보통사람들의 경우보다는 더 무겁게 평가해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책중독자를 자처하는 톰 라비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독베개, 2011) 후기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문제가 책의 미래이면서 책중독자의 미래다. 때로 혹은 허구한 날 “책에 대한 사랑으로 살짝 몸이 달아오르는” 책중독자들이 흠모하는 것은 물론 종이책이다. 책의 대명사로서의 종이책, 두께와 질감과 중량을 갖고 있는 책 말이다. 서점 혹은 책방이란 이 책들이 차려 자세로 진열된 공간이며, 책중독자란 기본적으로 그 ‘사랑스러운 것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자들이다. 이 책중독자들의 기본 영역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책방을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책을 사서 쌓아두는 것, 그리고 책을 읽는 것. 전자책이 대세를 차지하는 책의 미래라면 이런 기본적인 영역의 ‘구조변동’을 의미한다.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책의 구입은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서 다운로드받는 것을 뜻하고, 독자는 손바닥 크기의 디지털 독서 기기를 주머니에 꽂아가지고 다니게 될 것이다. 아니 독자가 아니라 ‘최종 콘텐츠 사용자’들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우리 책중독자들이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것을 책이라고 부르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런 세상은 더 나쁜 세상은 아닐지라도 뭔가 다른 세상이며, 그 다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책중독자란 종도 도태되거나 멸종될지 모른다. 인터넷서점의 등장으로 이미 많은 동네서점이 문을 닫은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옛날 옛적에 책이라면 종이책밖에 모르던 책중독자들이 있었더라……”    

사실 책방을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이미 생활의 기본 영역에서 빠져나간 지 오래다. 톰 라비는 1995년 즈음만 해도 다른 사람과 ‘우리의 사랑스러운 보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화 주제 가운데 하나인 에벌린 워의 초기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정신적인 피붙이를 만나기까지는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이 걸리곤 했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 나도 워의 소설 <한줌의 먼지> 같은 걸 읽지 않았기에 그의 말상대가 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런 고충에 대해선 맞장구를 쳐줄 수 있다. 책중독자용 수다를 요즘과 같은 대형서점에서 나누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정은 한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책방들의 사정이 예전에 크게 나았던 것도 아니다. 책방 주인 내지는 서점 직원과 책에 대한 수다를 나눠본 건 개인적으로도 서점 순례 경력이 30년이 넘지만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수다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을 만났을 때나 가능한 편이고, 대개는 온라인의 북커뮤니티를 통하는 게 빠르다. 다시 라비의 말을 옮기면, “문학에 관한 대화의 공간인 아마존닷컴이나 반즈앤노블닷컴, 또는 수많은 다른 웹사이트를 이용함으로써, 부지런한 ‘마우스질’로 책방을 둘러보고 대화를 나누고픈 욕구를 실컷 채울 수가 있다.”  

분명 그렇게 독서환경이 바뀌었다. 하기야 그런 변화된 환경이 아니었다면 나도 ‘인터넷 서평꾼’으로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라비도 비슷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사실상 문학적 신실함을 증명해주는 거라곤 주변에 엄청나게 쌓아놓은 책 더미 외에는 없는 평민 책중독자가 자신의 초라한 신분을 넘어서 진정한 서평가가 될 수 있다.” 바로 인터넷 시대에는! 여기서 라비가 ‘평민 책중독자’라고 한 것은 본래 책중독이 상당한 재력과 서가공간을 필요로 하는 아주 ‘비싼’ 질환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 서양 귀족들은 유명한 애서가가 세상을 떠날 경우 그가 남긴 장서를 모두 사들이는 게 관습이었다고 한다. 비좁고 불편한 책방에서 서성거리며 어렵게 책을 골라낼 필요도 없고, 일반 대중과 섞이는 일도 없으니 여유만 된다면야 아주 편리한 방식이었다. 그들은 책방의 책을 모두 갖다달라고 하고선 “내가 원하는 건 갖고 나머지는 넘겨주겠소”라는 식으로 말했다. 예컨대 영국인 독서가 리처드 히버는 앉은자리에서 3만권을 사기도 했다고. 물론 그런 건 보통 사람들, 곧 평민들로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책중독자는 대개 재산가들이었다. ‘평민 책중독자’의 등장은 값싼 페이퍼백 혁명 이후의 일이다.  

분류하자면 나 또한 책중독자이다. 더 나쁘게는 평민 책중독자. “돈이 생기는 대로 우선 책을 사고 그다음에 옷을 사 입으리라”고 한 에라스무스의 말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면에서도 그렇고, 라비가 제시하는 책중독자 테스트 항목을 체크해보아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25가지 항목 가운데 ‘책을 몇 권이나 샀는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다’거나 ‘책을 사들이는 것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한 적이 있다’, ‘책방 직원이 찾지 못하는 책을 당신이 찾아낸 적이 있다’ 등은 주저 없이 ‘예’에 해당하고 ‘책을 읽다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징계를 받은 적이 없다’는 비록 해당사항이 없기에 ‘아니오’라고 답하지만 카드로 책값을 돌려막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던 경험은 해고나 징계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책중독자가 ‘되는’ 게 아니라 책중독자로 ‘태어나는’ 거라고 하면, 가족 중에 유독 나 혼자만 책중독에 빠진 걸로 보아 유전적 돌연변이인 것 같기도 하다(유감스럽게도 과학계는 어떤 유전자가 이 질환과 관계가 있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라비의 정확한 지적대로 대부분의 책중독자는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치유되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영혼을 들어올릴 수 있기 전에, 우리는 중독이라는 시궁창에서 나뒹굴어야 한다.” 이게 치유법인가? 그렇다. “책 사는 데 돈을 몽땅 쏟아부어 고통과 죄책감을 일으킬 때까지 책을 사들어야 한다.” 그런 고통과 죄의식의 밑바닥에 도달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도움과 구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니, 이건 어떤 필연의 여정이다. 라비의 충고는 이렇다. “책을 많이 많이 사들여라. 그래서 심한 곤경에 빠져 다시는 책을 사고 싶지 않을 때까지.”  

치유되고 싶어 하지 않는 질병이란 점에서 책중독은 사랑의 열병을 닮았다. 역사적으로 이를 입증해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19세기 프랑스 사람 실베스트르 드 사시는 “아, 내 사랑하는 책들!……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라고 부르짖곤 했단다. 전자책에 대한 책중독자들의 거부감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것을 책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책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라는 식의 기분을 갖게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책중독자는 신기술을 반대하는 ‘러다이즘’ 신봉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일과는 무엇인가. 책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사들여서 집안 곳곳에 쌓아두고 서가에서 빼내 냄새를 맡으며 훌훌 넘겨보다가 일부분을 읽고는 다시 꽂아두거나 쌓아둔다. 그러고는 다음날도 똑같을 일을 반복한다. 라비에 따르면, 굳이 라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것이 “우리 책중독자들에게 무척이나 유쾌하고 의미 있는 일련의 이벤트와도 같다.” 하지만 이제 ‘책의 미래’와 더불어 진정한 책중독자의 시대도 종말을 고할지 모를 일이다.  

사실 “아아, 결국 우리는 죽으리라”는 운명이 유별난 비애감을 자아내는 건 아니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애서가의 경우도 특별하지 않다. 책을 사랑하던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도래할 뿐이다. 사랑의 대상이 반드시 종이책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세대마다 취향은 다르니까. 달라질 수 있으니까. 세살 때부터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며 자라는 다음 세대에게는 전자책이 특별한 에로티시즘의 대상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책의 형태는 비록 달라질지라도 ‘읽는다’는 독서 행위는 적어도 당분간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다. <게코스키의 독서편력>(뮤진트리, 2011)에서 저자는 “내가 읽었던 책들과 나의 이전 자아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아를 형성시키는 이 과정은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적었다. 이 읽기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빛이 사라지고 밤이 드리워질 때까지, 더는 책을 읽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책을 읽게 되리라.”   

11. 0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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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9-1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하핫! 아코, 죄송합니다. 집사람하고 글을 읽다가 웃어버리고 말았어요. '카드로 책값을 돌려막다가 신용불량자가 됐던 경험은 해고나 징계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에서 둘 다 유쾌하게 웃어버리고 말았어요. 마침 책이나 사서 읽으라고 들어온 '축의금(?)'-한 30만원가량 됩니다.-을 정말 책 사는데 다 쓸 것이냐고 옥신각신 중이었거든요. 집사람은 10만원만 쓰라고 못을 박았고, 저는 최소 5만원은 더 할당해줘야 한다고 연좌투쟁(?)중이었거든요. 덕분에 희망(?)이 보였습니다.^^ 여전히 바쁘시죠? 시험기간도 다가오네요.

로쟈 2011-09-20 23:13   좋아요 0 | URL
빵가게님도 얼른 책으로 수입원을 찾으셔야겠습니다. 원고료로 책값을 충당하는 게 한 방법이긴 해요...

영남자파 2011-09-1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님 제가 댓글달기 외람되오나 ... 낭만적이십니다.^^ 가난을 재밌게! 출산파업만 실천 한다면 모두에게 가난은 대수가 아니지요.

미국사람 2011-09-20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러 다니는데 미친 놈이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위안이 가는 그런 글입니다.

빵가게 님은 마누라 님의 바가지를 어떻게 견디어 내는지 궁금하군요. 하긴 여기 눈팅하는 분들도 그런 분이 많을듯...


로쟈 2011-09-20 23:12   좋아요 0 | URL
책중독자 연합회라도 만들어야겠습니다.^^

Daniel 2011-09-20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심히 공감되어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저에겐 위로의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1-09-20 23:10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사합니다.^^

singing 2011-09-2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글 없이 칼럼만 읽어도 바로 선생님 얘기란걸 단박에 알겠는걸요.ㅎㅎ
저도 읽다 웃음났어요..(웃을일 아녔나?^^)
어중간세대인 저로서는..아... 어두운 책의 미래는 생각도 하기 싫으네요.

로쟈 2011-09-20 23:10   좋아요 0 | URL
신용불량자 얘긴 책세상에서도 한 기억이 있는데요.^^;

영남자파 2011-09-2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아이야아아아아~~ 쌓인 책, 문학적 신실함!('학창시절'이라는 기간까지만인 애도보다는 일분일초도 잊지못하는 극심한 우울증에 가까운 ㅋ)

...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 알 것 같아요^^

영남자파 2011-09-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챙욕심이기에 망정이지, 그림이었다면?
어느 무명화가에서부터 고갱, 고야, 이중섭, 나혜석, 보티첼리, 벨라스케스, 라파엘로, 모네, 마네, 고흐흐흐흐.....
아부지 돈 쫌 필요!!^^

로쟈 2011-09-20 23:10   좋아요 0 | URL
그림도 '화집'은 괜찮은데요.^^

rolla 2011-09-2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민 책 중독자 하나 추가요^^ 왜 책장을 사도사도 이중삼중으로 꽂아도 자리가 없는 걸까요?? 서점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새 책 냄새에 짜릿한 황홀함을 느끼는 1인... 이보다 더한 쾌락이 어디 있을지... 얼마전에 과제로 이블린 워 단편 번역했었는데 재미있더군요ㅎㅎㅎ

로쟈 2011-09-20 23:09   좋아요 0 | URL
'이블린 워'가 왜 '에블린 워'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재밌게 지내시군요.^^

park6 2011-09-2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냄새를 맡으며 훌훌 넘겨보다가..." 이 구절을 읽고 킥킥 대면서 웃었습니다. 저도 습관적으로 책 냄새를 맡거든요. 그러다가 혹시 누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주위를 둘러보지요ㅎㅎㅎ

로쟈 2011-09-24 09:48   좋아요 0 | URL
일종의 페티시즘이죠.^^;

우리시온 2011-10-2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유익이 되는 책위주로 선택하며 읽고 있습니다
특히 서점에 가면 인문한 책들을 주로 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책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에 불과합니다
성경에서는 ...일부러 종교를 언급하고 싶지않지만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책들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책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수천년동안 사십명의 이상의 저자가 만들어진 <책중의 책>입니다
로쟈님과 그의 열혈 독자들에게 정중히 권해 드립니다
무종교이면 그냥 책들의 하나로서 읽으시면 됩니다
참고로 저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더 전진하고 진전된 곳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책중독자>이기 때문에 가눙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많습니다!

로쟈 2011-10-22 09:10   좋아요 0 | URL
같은 중독자라니 반갑습니다.^^

가명 2020-09-2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 라비 <어느책중독자의고백> 업데이트: 일하는 척 하면서 서류 사이에 구멍을 뚫어 책을 읽을 필요는 이제 없습니다 우리에겐 전자책이 있습니다!

가명 2020-09-2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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