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어게인을 외치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빨갱이 영화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좌파 배우일 것이다. 낯설게 느껴지는 설정이 일본에 적군파, 독일의 바더마인호프는 들어봤어도 미국에 이런 무력혁명을 외치던 세력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마지막 헌정자막을 보면 <프렌치75>라는 설정이100% 가공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을 포함해서 뼛속까지 자본주의적인 미국인들에게 이 영화의 설정이 좀 뜨악하게 다가가진 않았을까.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연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을, 그것도 폭력 혁명을 외치는 이들이 있을까. 젠슨 황과 이재용 치맥회동을 부러움이 섞인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지금의 일반적 정서 아닌가. 나 역시 APEC 정상들이 미소 띤 모습으로 즐겁게 만찬하는 장면을 보며 국뽕 비슷한 흐뭇함을 느끼다 내게 노예근성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애초에 국가는 착취기구란 말이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이 영화를 스필버그가 21세기 최고 미국영화라고 상찬했다는데 물론 망작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다. 포스터에 디카프리오가 라이플을 들고 있는 장면은 일종의 페이크인데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가 보여주는 유일한 액션은 라이플로 총 몇 발 쏘고(어째 이것도 마지못해 삽입한 장면 같다.) 달리는 자동차와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 뿐이다.(이것도 스턴트맨이 했겠지.) 정작 디카프리오 딸을 구하는 장면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물론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여기에서도 훌륭하다. 몸이 굼뜬 디카프리오가 수십년전 암구호를 기억하지 못해 욕을 퍼붓는 구강액션이 오히려 일품이다. 그래서, 은퇴한 아버지는 딸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며 소파에서 뒹굴거리고 세대교체를 한 기운이 넘치는 딸은 세 시간이 넘는 오클랜드로 시위하러 간다는 흐뭇한 결말인데, 영화에서 박탄 크로스라는 도시에 경찰들이 군사작전하듯 이민자들을 색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그냥 영화적 연출인지 실제 모델이 있는지 궁금하다. 멕시코 국경 도시에서는 트럼프가 엘에이에서 했던 것 같은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감독이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 장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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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꿈의 귀환이다. 4k리마스터링이 무슨 기술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데우스부터 밀레니엄 맘보, 바톤핑크까지 흘러간 꿈들이 다시 돌아온다. “통통 튀고 떼굴떼굴 구르는 배두나의 활력이 당시 20자평이었던 <린다 린다 린다>를 봤다. 나에게는 오래전 놓쳐버린,아쉽기는 하지만 굳이 찾아볼 동기까지는 없는,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났다 다음날 헤어져서 다시 만날 일이 없지만 간혹 기억이 나는 오래전 누군가 같은 추억으로 남은 영화였는데, 신기술 덕분인지 인류 문화사가 막바지라 그런지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물론 격세지감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살 때 약간 민망했는데 여고생들이 떼거지로 등장하는 청춘영화를 혼자 보는 나에게 변태 이미지가 중첩되나? 하는 노파심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영화는 잔잔했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둔대> 같은 분위기였다. 일단 배경이 도쿄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릴리슈슈에 나오는 도시같이 중소도시에, 학교는 내가 다녔던 학교처럼 낡아 있었다. 배우들의 대사는 절제되어 있고, 이야기 전개는 평탄했다. 미소년, 미소녀를 앞세운 디즈니풍의 청춘물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배두나가 때굴때굴 구르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통통 튀지 않는다. 일본말이 어눌한 설정인 배두나는 대부분 조용히 있다가 가끔 한국어 대사를 하는데 그 때만큼은 배두나스럽다 싶은 느낌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한 번쯤 들어봤거나 겪어봤을 이야기들이다. 끝내 하지 못한 고백 혹은 차여본 경험, 친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라이벌이 된 친구 사이, 유급해서 옥상에 상주하는 느긋한 장수생, 축제 며칠 전에 밤새워 하는 합주 연습,,,. 그런 사소한 게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면 영화 속 대사처럼 의미같은 건 없다. 하지만 그래서 이 영화속 장면들은 오래전 내가 겪은 추억같은 효과를 낸다. 결국 린다린다린다를 불러 제끼는 마지막 장면은 마지막 학창시절의 작지만 소중한 승리같은 것이리라.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곧 졸업을 하고, 어쨌든 삶은 계속될 것이다.

 

ps 얼마전에 배두나를 비롯한 파란 마음멤버들이 방한했던데 나는 엉뚱하게도 케이와 다투고 밴드에서 나가서 시종일관 삐진 표정만 보여주었던 린코와 손목 부상으로 연주를 못한 모에의 근황이 궁금했다. 특히 시간을 때우느라 술을 마시고 ‘water is wide’를 부르는 모에 캐릭터와 배우 이미지가 너무 잘 맞아서 마치 내가 그 캐릭터를 잘 아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조연들은 그 후 어떤 주연의 시간을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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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의 영화 중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재미있었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의 구차함과 찌질함, 그 안쓰러움과 민망함을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같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영알못이었기에 두 번을 본 후 이 영화의 주제가 뭘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떠오른 문장은 행복은 불행을 이해하지 못한다였다. 영화는 나이든 노처녀 메리와 단란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톰과 제리를 대비시킨다. 이제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고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메리와 아들의 여자친구와 상견례를 하며 인생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노부부의 마지막 대면은, 메리가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는 것으로 끝난다. 메리 역을 한 배우 연기가 정말 끝내줬는데 아마 영국아카데미? 여우상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을 대비시키는 이 패턴이 <내 말 좀 들어줘>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악에 받쳐서 매사에 싸움닭인 언니와 오프라 윈프리를 연상시키는 동생.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정말 아연한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행복은 전혀 오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행복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다정다감하고 똑같이 세파에 힘들어하며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불행은 이런 행복조차 흉내내지 못한다. <내 말좀 들어 줘>에서 언니는 동생에게 가족이 싫다고 털어놓는다. 미운 정 고운 정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싫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처럼 이 영화에도 해피엔딩은 없다. 하지만, 뭐랄까 마이크 리가 한발짝 더 나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극 중에서 동생은 언니에게 말한다. 언니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한다고.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행복과 불행이 딴나라 사람들처럼 멀뚱멀뚱 쳐다봤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너를 이해하진 못해, 그래도 적어도 옆에 있어 줄게. 할 수 있다면 손을 꼭 붙잡아 줄 거야,하고 말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처럼 배우의 연기부터 디테일이 섬세하다. 이 영화는 해변에서 조약돌을 하나씩 뒤집어 본다는 느낌으로 봐야 제 맛이다. 마이크 리 영화 중 <비밀과 거짓말>이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아는데 언젠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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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대목에서 모든 것이 복잡해지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인생이 슬픔의 베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콜먼의 시각을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또 그 점에서는 베케트의 시각도 .확실히 나의 문제는 나에게 삶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것이다. 나는 삶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나는 아팠을 때 괴로웠지만, 통증은 부분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을 잃는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쁨이 불가능하다고 상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저녁 담화 뒤 이제 공기가 은빛으로 변하며 어스름으로 넘어가고 아래 골짜기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음악이 시끄럽게 올라오는 오래된 수도원 정원에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곳에 있으니, 토스카나의 언덕 높은 곳의 삼나무들 아래 이렇게 향기로운 공기 속에 있으니, 아름답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축제장의 소음은 성가시지 않았다. 어스름 녘에 함께 명상한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쌓인 채 침묵 속에 고귀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보니 아름다웠다. 골짜기를 굽어보는 얕은 난간에서 있던 임신 6, 7개월쯤의 젊은 여자가 기억난다.
배 위에서 간신히 만나는 두 손의 손가락들은 느긋하고 늘씬했다. 가끔 여자는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려 긴 목을 비틀었다. 목의 뻣뻣한곳을 풀어 주려는 것 같았다. 인생은 너무 아름다워.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전혀 역겹지 않아. 그녀의 입술에는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명상때문에 인생은 더 아름다워졌다. 내가 그것을 더 차분하게 경험하게 해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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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셀렉션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장정일 해설 / 이상북스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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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 바깥에서 그 창건너편에서 검고 거대한 새가 날고 있을지도 모른다. 검은 밤 그자체와도 같은 거대한 새, 늘 보는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새처럼 하늘을 나는 검은 새, 다만 너무 크기 때문에 부리 사이의 구멍이 동굴처럼 창 건너편으로 보일 뿐, 그 전체를 볼 수 없을거 - P182

야. 내가 죽인 모기는 나를 전체적으로 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녹색 체액을 간직한 부드러운 배를 찌부러뜨린 거대한 뭔가가 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고 죽었다. 지금 나는저 모기와 마찬가지로 검은 새에 짓눌려 찌부러지려 한다. 그린아이스는 그것을 가르쳐주려고 온 것일 거야.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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