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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나와 이별하기로 했다 - 융 심리학에서 발견한 오래된 나로부터의 자유
제임스 홀리스 지음, 이정란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강신주의 다상담 시절에 가장 자주 나왔던 질문 중 하나가 진로 문제였던 것 같다. 길을 잃은 불쌍한 어린 양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강신주는 하나의 결정을 하면 또다른 갈림길이 나오니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부담을 갖지 말라는 정도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강신주 다상담의 융심리학 버전 같다. 혹은 조셉 캠벨의 경구 "Follow your Bliss" 의 융심리학 버전이다. 기본적인 그림은 우리 모두 내면에는 “자신만의 길” 내지 “소명” 같은 것이 있는데 부모의 영향 같은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그러한 소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설사 자각했다 하더라도 두려움과 무력감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하는 일은 자신의 소명을 따르라고 부드럽게 권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신의 반평생을 돌아보며 악몽에 시달리는 중년이나, 회사에서 야근으로 시달리면서 묻어둔 꿈을 떠올리며 회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타겟이다. 저자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데 주로 드는 장애물은 두려움과 무기력이고, 이에 대항해서 내세우는 덕목은 통찰력,용기, 인내이다. 이 책이 통상적인 자기계발서는 아니라서 <두려움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단계별 방법> 같은 챕터가 따로 있지는 않다. 그저 두려움 때문에 과거에 포기한 것들을 다시 헤아려 보라고,우리에게는 엄청난 가능성과 회복력이 있다고 충고할 뿐이다. 마치 강신주가 <감정수업>에서 했던 말처럼 우리가 옳은 선택을 했을 때 감정이 우리를 지지해 줄 것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우리의 길을 알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억압하고 외부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 뿐이다. <두려움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샨티) 같은 아니타 무르자니의 주장과도 비슷한 느낌인데, 대신 아니타 무르자니는 에고와 ‘더 큰 자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반면 저자는 에고와 다른 ‘내면의 자율적 지성’이 있다고 말한다. 에고는 더 큰 소명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할 것이다. 뭐 다이몬 같은 걸까? 나도 30대 땐 다이몬 같은게 있으면 좋겠다고, 차라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이몬이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현실은 훨씬 단순하며 어쩌면 냉혹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다이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자는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의미라고, 의미를 위해 고통을 견뎌야 하며, 그런 과정을 밟을 때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행복’은 가끔씩 찾아올거라고 말한다. 즉 행복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처음부터 과녁을 잘못 찍은 것이라는 말이다. 음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자신을 뒤돌아보면 나의 한쪽에는 여전히 세속적 가치-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집, 근사한 이성, 맛있는 음식 등등. 행복 대신 의미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행복을 한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란 존재 안에 과연 ‘진정한 자기 자신’ 다이몬 같은 내면의 울림이 있는 걸까? 아니면 다소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인간이란 자신의 존재와 생명을-그게 육체적인 존재이든, 정신적인 존재이든, 사회적인 존재이든- 유지하면 만족하는 존재이고, 그 과정을 삶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자가 제시한 그림은 신기루처럼 느껴질 것이다. 저자는 두려움과 무기력을 내면의 문제로, 스스로가 돌파해야 하는 과제로 서술하는데, 이것이 과연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만 한 걸까. 개인을 옥죄는 두려움과 무기력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고 저자의 관점은 오히려 문제를 호도하는 것 아닐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시선을 내면이 아니라 밖으로 돌리는 것 아닐까. 어쨌든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각각의 꽃이 풍성하게 핀 꽃밭의 이미지가 저자의 이미지다. 모든 꽃이 각각 다르고, 아름답고, 자신의 달란트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계시적이고 차분한 문장이 힐링 효과를 준다. 반면 추상적인 단어가 많이 나오고 여운만 풍기는 느낌의 서술에 성미 급한 사람은 읽다가 책을 집어 던질 수도 있다. 번역의 문제인지 문맥이 맞지 않는 부분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300페이지 남짓한 책을 한 챕터씩 매일 읽으라고 저자는 권한다. 무려 21일이 걸린다. 어쩌면 저자가 원하는대로 한 문장씩 곱씹어 읽으면 다른 느낌이 날지도 모르겠다.
ps 제목은 아무래도 헛발질이다. 원제 living a examined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