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문학'에 관한 기사를 포스팅하다 보니 '신경인문학'에도 생각이 미친다. 최근에 나온 닐 레비의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바다출판사, 2011)의 번역팀이 '신경인문학 연구회'이다. 작년에 나온 <뇌 속의 인간 인간 속의 뇌>(바다출판사, 2010)의 속표지에 보면 신경인문학은 "신경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생겨나는 인문사회과학적인 쟁점들을 분석하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분야"라고 정의돼 있다. 여러 분야의 연구가 가능할 텐데, 현재 주목받고 있는 게 '신경윤리학'인 듯싶다. 저명한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윤리적 뇌>(바다출판사, 2009)도 이 분야의 책이다. 조금 시야를 넓히면 뇌과학과 문학의 접점을 모색한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도 신경인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이 분야의 책을 더 기대한다는 의미에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뇌 속의 인간 인간 속의 뇌- 뇌과학은 인간의 윤리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홍성욱.장대익 엮음, 신경인문학 연구회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3월
19,800원 → 17,820원(10%할인) / 마일리지 990원(5% 적립)
2011년 10월 02일에 저장
품절
윤리적 뇌- 뇌과학으로 푸는 인간 본성과 생명윤리의 딜레마
마이클 S. 가자니가 지음, 김효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1년 10월 02일에 저장
구판절판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 뇌과학, 인간 윤리의 무게를 재다
닐 레비 지음, 신경인문학 연구회 옮김, 홍성욱.장대익 감수 / 바다출판사 / 2011년 10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2011년 10월 02일에 저장
품절
뇌를 훔친 소설가-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14,500원 → 13,050원(10%할인) / 마일리지 720원(5% 적립)
2011년 10월 02일에 저장
품절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여름 연세대 국학연구원의 인문한국사업단에서 첫 성과로 두 권의 책을 펴냈고 나도 바로 구입을 했는데, 어쩐 일인지 언론홍보는 꽤 늦게 이루어진 모양이다. 지난주에야 관련기사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백영서 원장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사회인문학'이란 취지에 걸맞은 책들이 연말까지 몇권 더 출간되면 의미를 짚어볼 수 있을 듯싶다.   

한국일보(11. 10. 01) "인간다움을 갈구하는 사회… 대중과 소통하는 학파 만들 것"

"그다지 딱딱하지 않은 인문사회과학 책도 요즘은 2,000~3,000부 나가는 게 고작이다. 10년 전에는 5,000부는 팔렸다.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책은 참 안 팔리는데 왠지 인문학 강의는 호황이다. 노숙자나 재소자를 위한 강의에도, 최고경영자(CEO)를 모은 강연에도 '인문학'이라는 간판을 달 때가 흔하다. 인문학은 과연 위기인가.

29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장실에서 만난 백영서 교수는 "사람들이 인문학 강의를 찾는 것은 그런 강의를 들으면 뿌듯해지고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 같고 이제 내가 부속품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를 테면 종교적인 욕구나 인간다움에 대한 갈구 같은 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인문학 책은 갈수록 안 팔리는 것은 결국 출판이 그런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인문학 연구 방향이나 태도가 고립화를 자초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08년 11월부터 국학연구원이 시작한 사업이 있다. '사회인문학 프로젝트'다.

"사회과학은 정책적 학문이고 현상 분석이 강한데 인문학은 가치 판단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게 사회과학이라면 인문학은 왜 그러는지, 대안이 정말 필요한지 가치를 논의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고담준론에 빠지고 현실장악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둘을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은 사회화하고 사회는 인문성을 회복하는 '21세기 실학'을 모색하자는 거다."

물론 국내 학계에 이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끄는 '통섭원'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묶으려 하고,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이끄는 '비교역사연구소'는 탈민족주의를 화두로 역사, 문학, 철학을 섞는다. 사회인문학 프로젝트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좀더 차별화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분과를 넘어선 연구를 통해 인문학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10년 기획으로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의 1단계 사업이 최근 끝나 그 성과 일부가 한길사에서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인문학의 형성>이란 책으로 출간됐다.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사회인문학의 정의와 구상을, <한국 인문학의 형성>에서는 근대 이후 국내 인문학의 역사를 통해 최근 인문학 위기의 본질을 살폈다.

백 교수는 첫 책에서 근대 학문 정립시기에 요구됐던 '세분화될수록 학문은 더욱 정교해진다'는 생각은 수정해야 한다며 사회인문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사철'로 요약되는 인문학 텍스트 읽기 훈련에 자족해서는 인문학의 본래 이념인 인간다운 삶의 고양을 충실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동집필자의 면면을 보면 이 프로젝트의 전체 상(象)이 짐작된다. 박명림 교수를 비롯해 나종석, 소영현, 이경란 등 연세대 출신 교수ㆍ연구교수가 중심이고, 김재현(경남대) 박광현(동국대) 교수 등 중도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연말까지 국학연구원 교수들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공동집필한 <사회인문학과 소통>, 백영서 교수의 <제도/운동으로서의 사회인문학>, 박명림 교수의 <사회인문학의 창안> 등이 총서 시리즈로 더 나온다.(이윤주기자) 


국립박물관 인문학 강좌에 모인 시민들. 대학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인문학을 소재로 한 대중강좌·출판물의 활황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11. 09. 29) 인문학·사회학 소통을 논하다 

대학 인문학과의 붕괴 위기에도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이 대중강좌와 출판물 시장의 인기 아이템이 됐다. 점점 더 고립되고 자폐화하고 있는 대학 인문학의 사회성 회복이 시급해 보이지만 출판과 언론이 주도하는 대중적·상업적 인문성을 인문학 본연의 사회성으로 정의할 수도 없다. 이에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만나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새로운 통합학문을 향한 학문체계를 제안하고 나섰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사회인문학’이란 이름 아래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사회인문학이란 기존 분과 학문들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서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인문학 본연의 성찰성·공공성·비판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연세대 국학연구원과 한길사가 공동기획해 최근 출간된 ‘사회인문학 총서’의 첫 권인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이들의 사회인문학 구상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먼저 백영서 교수(동아시아 현대사)는 대학 강단의 인문학에 대한 요구, 즉 근대 학문 정립시기에 요구됐던 ‘세분화될수록 학문은 더욱 정교해진다’는 관념은 수정돼야 한다면서 사회인문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문학·철학·역사 텍스트에 정통하는 훈련에 자족해서는 인문학의 본래 이념인 인간다운 삶의 고양을 충실히 할 수 없다”면서 작금의 고전을 연구하고 배우는 태도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인문학에서 고전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고전에 담긴 인문정신을 되살리면 현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주장하는 ‘인문 권위주의’로 미끄러질 수 있으며, 인식적 깨달음에 따르는 기쁨을 강조하다 보면 ‘인문 엘리트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다”고 경계한다. 그는 현재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 인문정신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사회인문학을 구현할 수 있는 사례로 ‘공공성의 역사학’을 제안한다.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 학문과 사회 위기의 일부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세계 현실을 ‘허둥대는 공동체, 불안한 개인’으로 바라본 박명림 교수(한국정치)는 “사회의 인문성 회복과 학문의 사회성 회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즉 박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사회인문학을 1980년대의 사회과학과 현재의 시장학문을 극복할 수 있는 비판적 학문 패러다임으로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순수 인문학과 상업인문학의 간극이 점점 넓어지고 있지만 대중인문학은 인문적 호기심을 높일 뿐 대중의 참여성과 사회의 인문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대안으로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현재 구분을 폐지하고 사회인문학으로 재배열할 것, 대학편제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철폐하고 기초학문을 통합한 문리(과)대학을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제도로서의 문과와 이과의 분리는 전체로서의 자연과 사회, 인간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장애를 초래하는 동시에 입시교육 체제로서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결정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분과학문과 지역연구, 개별국가연구의 결합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사회인문학의 다양한 실천양식도 논의된다. ‘글쓰기의 사회인문학’에서 최기숙 교수(한국문학)는 “오늘날처럼 학술논문이라는 제도화된 글쓰기 양식을 통해서는, 직관의 수사로 점철된 니체나 논(論) 설(說) 전(傳)에서부터 소품문과 소설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글쓰기와 문제적 글쓰기를 아우른 연암 박지원 같은 학자가 나오기 어렵다”면서 감성과 직관을 배제하지 않는 사회인문학적 글쓰기 방식을 제안한다.

소영현 교수(근현대문학)는 ‘비평의 장소와 비평(가)의 임무’를 통해 삶의 비평으로서의 문학비평에는 타인의 시선을 내 안에 품는 망명자의 질문법과 타인과의 정서적 공감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자의 사회적 실천’이란 장에서 이경란 교수(근현대 농업사연구)는 마을공동체 운동과 인문학의 선순환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마을인문학’을 사회인문학적 실천의 구체적 모델로 제안한다.

이와 함께 대학 인문교육의 제도화 과정과 이념에 대한 연구 속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살펴보는 두번째 총서 ‘한국 인문학의 형성’도 출간됐다. 이어 ‘사회인문학과 소통’ ‘제도/운동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의 길’ ‘사회인문학의 창안:개념·범주·지향·적용’ 등이 사회인문학 총서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다.(김은진기자) 

11. 10. 0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VANITAS 2011-10-02 22:11   좋아요 0 | URL
한국인문학의 역사를 보면서 거룩한 계보를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네요 ^^

로쟈 2011-10-03 08:04   좋아요 0 | URL
인문학 전공이신가 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10-04 08:48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좀 심심(?)했네요.^^;;

로쟈 2011-10-04 20:55   좋아요 0 | URL
형식 자체는 문제의식만큼 파격적이지 않지요.^^;
 

지난달 기획회의(304호)의 특집은 '읽고 쓰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쓰는, '책에 대한 책'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리뷰 특집인데, 서평과 서평가의 역할에 대한 간단한 총론에 이어서 최성일, 이권우, 정혜윤, 고명섭, 장정일, 김은섭, 명로진, 윤미화 등이 대표 서평가로 다뤄졌다. 거기에 나도 포함돼 있는데, 한겨레신문의 최원형 기자가 맡은 꼭지의 제목이 '자유로운 '독서공동체'를 위하여'라고 붙여졌다. 로쟈식 서평의 방법과 지향점에 대해 잘 짚어주고 있어서 반가웠다. 일부를 발췌해놓는다.  

 

로쟈의 방법 

로쟈는 책과 책을, 사상과 사상을, 이 작가와 저 작가를, 대표 저작과 입문서를, 원본과 번역본을 어디에선가 불러와 끊임없이 묶고 엮고 꿰어낸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로쟈의 이런 작업 방식을 '배치하기, 짝짓기, 지도 그리기, 교정하기' 등으로 정리한 바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를 나란히 놓고선 '윤리로서의 미학'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슬라보예 지젝을 놓고 그 사상의 뿌리를 쥐고 있는 헤겔과 라캉, 마르크스를 오락가락하기도, 지젝을 앞세워 탈이데올로기 시대 이후의 한국문학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확장된다는 점이다. <책을 읽을 자유>에 모아놓은 자크 데리다에 대한 글 모음을 보자. 데리다 사상의 핵심이 뭔지, 주요 저작은 뭔지, 그의 사상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어떤 입문서를 참조하면 좋은지, 데리다에 대한 중요한 비평가들은 누가 있는지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이 내용물은 한두 번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읽기-쓰기가 반복되면서 축적된 것이다. 

로쟈의 지향 

로쟈가 지향하는 것은 일종의 '독서공동체'다. 그는 <책을 읽을 자유>에서 책 제목을 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적인 성격의 서평을 쓰면서 내가 바란 것은 그렇게 함께 읽는 '우리'의 확산이었다. 사회적 관심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좋은 책을 통해 얻은 시각과 통찰을 서로 나누고, 더 나아가 '책을 읽는 문화'를 다져가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로쟈의 읽기, 쓰기는 로쟈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이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읽기, 쓰기 속에서 퇴적물을 남기는 로쟈의 글쓰기는, 고매한 자기 세계에 빠져들어 불후의 명문을 써내는 것과도, 대중이 바라는 지식에 대해 시의적절한 명강의를 펼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그의 글쓰기는 철저하게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을 자유를 누리는, 독서공동체에만 충실하게 복무하고자 한다. 인터넷 서평꾼이나 곁다리 인문학자와 같이 조금 '비뚤어진' 정체성을 달고 있는 이유나, 글 모음이나 서재 등을 통해 자신의 정신활동을 최대한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세상엔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적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다. 필자는 글의 마무리로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의 전망에 대해 적었다.  

로쟈와 함께 

따라서 로쟈와 함께 이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에 참여하려 한다면,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는 혼잣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로쟈처럼 나의 정신활동도 투명하게 까놓고 이야기할 정도로 공부해야 독서공동체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로쟈와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의 존재는, 학계와 출판계에서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 구실까지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역 짚기'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잘 몰라서 또는 번역자나 출판사의 얼굴 봐서 번역의 오류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는데, 로쟈가 여러 차례 오역을 짚고 문제를 제기한 뒤로 출판계 전체에 번역에 좀더 공을 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와, 이 정도라면 자유로운 독서공동체의 앞날은 더 밝은 것이라고 내다볼 수 있지 않겠는가.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란 생각이 자극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내가 바라는 '독서공동체'는 아니다. 최근에 나온 클레이 셔키의 책이 주장하듯이 '많아지면 달라진다'가 애당초 내가 가졌던 모토이다. 그래서 '대중지성'이나 '지식 품앗이'란 말도 곧잘 썼다. '오역 짚기'도 저마다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일조할 수 있는 일이다(보통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을 따름이다). 여하튼 독서공동체는 '느낌의 공동체'이기도 하고 '생각의 공동체'이기도 하며 '관심의 공동체' '의지의 공동체'이기도 할 것이다. <애도와 우울증>에 대한 저자 인터뷰에서도 기대를 밝힌 바 있지만 '러시아문학 공동체'도 희망해볼 수 있다. 그렇게 책을 읽고 말하는/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과연 뭐가 달라질까, '로쟈'가 가장 궁금해하는 일이다... 

11. 10. 0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이 2011-10-0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마지막에 단 코멘트까지 읽고 떠오른 건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의 역사>에서 언급한 몇 대목이네요. 가령 휘트먼에 대해: "여기서 그는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그것은 광신이나 정치적 학파에 전혀 때묻지 않은 '자유로운 독서가들'의 사회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같은.
이번 <기획회의>는 손에 집고 읽어봐야겠네요^^

로쟈 2011-10-03 08:0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미국도 아직은 휘트먼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사회로군요...
 

대학로에 있는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30일까지 '몹쓸 낭만주의'라는 기획전을 연다(http://www.arkoartcenter.or.kr/artcenter_kor/exhibition/exhibition_artcenter_pr.jsp). 20명의 작가가 출품한 작품이 두 곳의 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이 전시회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는데, 자료로 쓴 발표문을 옮겨놓는다. 낭만주의란 기표, 몹쓸 낭만주의란 기획에 대한 소감을 적었다.   

몹쓸 낭만주의? 몹쓸 낭만주의! 몹쓸 낭만주의는 우리가 혹은 우리시대가 낭만주의를 다시 소환하고 호명하는 이름이다. 낭만주의는 ‘몹쓸’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나서야 동시대 미술장 속으로 ‘재입장’한다. 그것이 재입장의 조건이다. 낭만주의가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기 위한 방책이고 간계이다. 그것은 왜 몹쓸 것인가. 왜 몹쓸 낭만주의인가. 

거창하게 역사적 낭만주의를 다시 회고할 필요는 없겠다. 낭만주의는 정의 불가능하다는 ‘엄살’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용도에 맞게 개념을 한정하자면, 낭만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대한 옹호이고, 규격화된 형식에 대한 조롱이며, 현실 너머의 이상에 대한 동경이고, 과도함에 대한 예찬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가 시를 일컬어 “감정의 자연스런 분출”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달리 낭만주의에 대한 정의로도 유효했다. 낭만주의는 그렇게 규범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넘친다. 그것은 거침없다. 바로 그렇게 거침없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는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며 반항적이다. 낭만주의는 자유를 구가하며 혁명을 노래한다. 릴케의 시구를 빌리자면 ‘너는 자신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고 명령한다.   

세상은 한때 혁명의 시대였고 낭만의 시대였으며 낭만주의의 시대였다. 세상은 바뀔 것처럼 보였고, 바뀌는 게 응당했으며, 그렇게 뒤바뀔 세상은 역사적 필연으로도 보였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계산되고 관리되는 사회?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며, 모든 리스크는 주식처럼 분산‧관리되고, 개인은 스펙과 커리어로 통제된다. 간명하게도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낭만주의는 역사적 과오이거나 향수이거나 시대착오적 광기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낭만주의, 너는 졌다’라고 현실은 말한다. 한때 낭만주의는 자신의 정점에서 예술을 절대화하고 예술가를 세계의 새로운 창조자로 공포했지만, 이제 그것은 신화가 됐다.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술일반의 대명사로까지 격상됐던 낭만주의는 예술의 과거사이자 뒤안길이 되었다. 현실을 과소평가한 대가인가. 혹은 현실의 저주인가.     


강민수, idyll(광장), 혼합기법, 155x195, 2010 ⓒ강민수 

그리하여 낭만주의는 죽었다. 예술은 낭만이 아니다, 라는 부인도 예술가들의 입에서는 나왔다. ‘예술이 밥 먹여 주더냐’라는 유구한 조롱도 맞장구치며 이와 함께했다. 예술은 현실이고, 예술은 실용이라는 선언도 어쩌면 놀랍지 않다. 하지만, 방부 처리하여 냉동고에 집어넣듯이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일까. 예술은 무엇에 대한 믿음이던가. 우리에게, 우리시대에 여전히 예술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다면, 그리고 여전히 예술에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다면, 예술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자 꿈이고 우리 감각과 감수성의 갱신을 의미한다면, 예술은 꿋꿋하게도 여전히 낭만적인 것 아닌가. 낭만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자기 자리이다. 어떤 것의 최대치를 그 본질로 규정할 수 있다면, 낭만주의는 예술 자체이기도 하다. 현실과의 영원한 불화를 자기 존재의 불쏘시개로 갖는 한, 예술은 언제나 낭만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낭만주의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이면서 낭만주의가 되돌아오는 이유이다. 컴백홈. 컴백낭만주의.   

하지만 이 ‘돌아온 낭만주의’는 현실의 압도적인 위세 속에서 자신의 몸을 낮춘다. 낭만주의는 배제의 제스처, 거세의 포즈를 동반할 때만 현실 속으로 편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검열을 통과하려고 할 때 이제 낭만주의가 붙일 수 있는 표찰은 ‘새로운’이 아니라 ‘몹쓸’이다. 몹쓸 낭만주의는 목에다 밧줄을 건 낭만주의다. 당신은 이 낭만주의에 대해 마음껏 욕하고 비아냥거려도 좋다. 이것은 ‘몹쓸’ 낭만주의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용어들을 무료로 대여해줄 수도 있다. 무슨 뜬금없는 낭만주의냐고 반문하는 건 기본이다. 아직도 그대는 낭만주의냐고 조롱할 수도 있겠다. 혹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낭만주의도 돈이 되나요?  

그런 포즈가 당신에게 중요하다면, 그건 당신의 몫이다. 잘 챙겨 가시길 바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몹쓸 낭만주의’란 명명 자체가 당신의 고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이 전시가 앞세운 ‘주권적’ 제스처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비난과 비방과 비아냥거림은 전혀 새롭지 않은 ‘표절’에 불과하다. 당신의 안목은 당신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새롭지 않다. 그것은 미적이지 않으며, 윤리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재미도 없다. 당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 당신의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몹쓸 낭만주의’는 그런 점에서 한 번 더 몹쓸 짓을 했다. 이 시대에 감히 예술이 살아있다고 말하려는 시도, 그럼으로써 현실의 승리를 껍데기로 만들려는 시도 말이다. 자신의 목을 내놓은 낭만주의는 이로써 한 번 더 부활한다. 그리하여 낭만주의가 돌아왔다. 이번엔 좀 몹쓸 놈이다.  

11. 10. 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계절도 날짜를 맞추는지 10월이 되면서 기온이 쑥 내려갔다. 어제부턴 선풍기 바람도 이젠 춥게 느껴진다. '기운다'는 표현은 이럴 때도 쓸 수 있을 듯싶다. 어떤 기준으로도 '여름'은 갔다. '겨울'이 남았을 뿐이다. 유난히 추워질 거라는 '설'이 있지만 그보다는 밤이 점점 길어진다는 게 내가 체감하는 겨울이다(러시아만큼은 아니더라도). 10월마저 손에서 놓으면 겨울이 문턱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 10월에 손에 들 만한 책들을 골라본다. 지난달부터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좋은책 선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게 돼 내가 고른 책도 포함돼 있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벤 라이더 하우의 <마이 코리안 델리>(정은문고, 2011)다.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편의점 운영기'가 부제. 그러고 보니 소설이 아니라 '외국에세이'로 분류되는 책이다. "저자인 벤 라이더 하우는 한국인 장모를 통해 한국 이민 사회의 그늘과 빛을 모두 경험한다. 생존과 성공을 위해 억척스럽게 일하면서도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을 동시에 지니는 장모 세대의 가치관과, 저자인 벤 라이더 하우의 합리적이지만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청교도 백인 중산층 문화가 정면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란 소개를 읽으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한국사회를 체험한 '외국인'의 에세이라고 하니까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2011)도 생각난다. 엊그제 대학로 이음책방에 갔다가 손에 든 책이다. 눈에 띄기에 같이 계산한 책이 <1898, 문명의 전환>(이학사, 2011)이다. <남자의 탄생>과 <박정희 평전> 등의 저자 전인권의 6주기를 맞아 유고와 함께 그와 같이 공부했던 이들이 마무리한 글들을 묶었다. 부제는 '대한민국 시공간의 기원'. 문학 분야의 책은 아니지만 '한국과 한국인'이란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간 책으로 끼워넣는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유홍준의 국보순례>(눌와, 2011). 군말이 필요없는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이제 국보와 보물도 역사학의 범주에서 다시 고찰하고 연구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준 셈이다. 이래저래 유홍준 교수는 한국사의 지평을 넓혀주면서, 역사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과제와 임무를 던져주고 있다."는 게 추천자의 촌평이다. '국보순례'니까 한국사이면서 미술사에 관한 책인데, 이런 경우에도 갈래는 모호하군. 내친 김에 한국미술사에 관한 신간들을 클릭해본다. <클릭, 한국미술사>(예경, 2011)와 <한국불교미술사>(미진사, 2011)가 올해 나온 책들이다. 작년에 1권이 나온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도 후속 권들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엔터니 플루의 <존재하는 신>(청림출판, 2011)이다. 사실 주제 자체는 전혀 흥미를 끌지 않는데, 저자가 영국에서는 무신론자고 꽤 유명한 인물이었나 보다. 그러다 '신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화제가 된 모양. "이 책의 저자 엔터니 플루는 소크라테스의 분석철학적 전통을 이어 받아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서” 과거 합리적 무신론의 선봉장 역할을 하다 유신론 진영으로 투항한 철학자다."라고 설명한다. 신경과학자들이 <신은 뇌 속에 갇히지 않는다>(21세기북스, 2011)나 이어령의 <지성으로 영성으로>(열림원, 2011) 등이 비슷한 '커밍아웃' 형 책이다.     

물론 무신론의 보루는 플루가 비판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지만 무신론에 대한 입문서로는 줄리언 바지니의 <무신론이란 무엇인가>(동문선, 2007)이 좋을 듯싶다. 바지니는 인생의 의미를 다룬 <빅 퀘스천>(필로소픽, 2011)의 저자다. 지난달에 강의차 꼼꼼히 다시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보다도 더 재미있었다.   

계절을 타는 이라면 낙엽의 계절인지라 삶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 물어봄직한데, <빅 퀘스천>과 같은 시리즈의 책으로 폴 새가드의 <뇌와 삶의 의미>(필로소픽, 2011), 그리고 가미야 미에코의 <삶의 보람에 대하여>(필로소픽, 2011)도 읽어봄직하다. 특히 일본의 영문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가미야 미에코는 버지니아 울프 연구와 푸코 번역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빅 퀘스천>에서도 언급되는 존 코팅엄의 <삶의 의미>(동문선, 2005)은 바지니보다는 플루와 좀더 가까운 입장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이종은의 <평등, 자유, 권리>(책세상, 2011)다. <언어와 정치>(인간사랑, 2009), <정치와 윤리>(책세상, 2011) 등에 이어지는 책으로 저자는 독자적인 정치철학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학자.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긴 한데, 추천자는 그 의의를 이렇게 짚었다. "한국 민주주의가 자유의 평등화라는 정상적인 길을 밟아오지 못하였다는 저자의 관찰은 새롭기도 하고 제법 흥미로운 쟁점이기도 하다. 평등, 자유, 권리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수용되고 있는가를 짚어본 시도는 아주 흥미롭다. 저자는 교육 평준화, 수능 등급제, 지역 할당제의 교육정책의 쟁점들에 나타난 평등의 문제를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평등의 복잡한 개념과 달성 가능성을 논하였다."  

 

사실 10월은 서울시장 보선이 있는 정치의 달이기도 하므로 정치인들의 책과 정치평론 범주에 속하는 책들이 대거 쏟아져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단연 베스트셀러감은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다. '나꼼수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와 <닥치고 정치>가 한국 정치지형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겨레의 인터뷰 연재를 모은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한겨레출판, 2011), 그리고 손석춘의 <새로운 바보를 기다리며>(21세기북스, 2011)도 '지금, 여기'에 관한 책들이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프릭 버뮬렌의 <비즈니스의 거짓말>(프롬북스, 2011)이다. 사실 비즈니스는 관심사가 아니가 관련서를 읽을 일이 거의 없지만, 이 책은 흥미를 끈다. 추천자에 따르면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서다. "저자는 이 책이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지 알려 주는 시중의 책들과 다름을 강조한다. 저자는 철저한 연구와 입증된 자료에 근거하여 성공을 장담하는 법칙은 없음을 독자들에게 보이려 한다." 그러니 '성공'을 장담한다면, 다 '거짓말'이다. 범람하는 비즈니스 책들 가운데 군계일학으로 꼽아둘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거짓말 유혹은 강력하다. 거짓말 같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과 정보는 사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소통과 실행이다!'라고 선동하는 <실시간 혁명>(더숲, 2011)은 어떤가. '급변하는 소셜미디어와 스마트의 시대, 기업과 조직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란 부제가 즉각적인 구입을 선동한다!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바꾸는 모바일 혁명'을 모토로 한 척 마틴의 <서드 스크린>(비즈니스북스, 2011)도 골라놓고 보니 강적이다. 그래도 기본은 '비즈니스의 거짓말'에 주의하라는 것.    

6. 과학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이 추천한 책은 <조복성 곤충기>(뜨인돌, 2011)다. 우리에게도 이런 곤충기가 있었다는 걸 알게해주는 책인데, "이번에 발간된 <조복성 곤충기>는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가, 63년 후에 다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단지 옷만 바꿔 입고 출연한 것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에 나오는 곤충의 그림도 새로 곁들이고, 엮은이의 자료 발굴 노력으로 내용도 추가되고, 또 곤충 전문가들이 꼼꼼하게 감수하였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었다면 <조복성 곤충기>도 읽어볼 일이다. 곁들여 휴 래플스의 <인섹토피디아>(21세기북스, 2011)는 어떤가. 말 그대로 '곤충 백과사전'. 개인적으로 어제 주문해놓고 오늘 배송을 기다리고 있는 책가운데 최고의 기대작이다. 이상교의 <곤충만세>(미세기, 2011)은 그림을 곁들인 동시집이다. 아빠가 <인섹토피다아>를 읽을 때 아이는 옆에서 <곤충만세>를 읽는 풍경을 잠시 떠올렸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정병모의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다할미디어, 2011). "저자는 민화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유로움을 꼽는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관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신분의 자유로움에서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의 문화가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는 18세기라고 하는 시대적 자유로움에서 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저자의 책으로 <미술은 아름다운 생명체다>(다할미디어, 2001), <한국의 풍속화>(한길아트, 2000) 등도 눈에 띈다. 이미 10년 전 책들이군. 

 

개인적으론 최근에 아르코미술관의 '몹쓸 낭만주의'전 세미나 등에 참여하면서 한국 현대 작가들의 작업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됐다. 그래서 관련서 몇권을 주문해놓은 상태인데, 이진숙의 <미술의 빅뱅>(민음사, 2010), 권근영의 <나는 예술가다>(세미콜론, 2011), 김정환의 <어떤 예술의 생애>(호미, 2011) 등이다. 더불어, 미술이론서와 미술사 관련서들도 이 참에 '업뎃'을 했다. 애서가들이 주기적으로 또 해야 하는 일이 이런 업뎃이다.   

 

8. 교양

교양분야의 책은 내가 골랐는데, 석영중 교수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가 첫 책이 됐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게 적었다.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라는 부제가 얼핏 문학적 감동의 뇌과학적 원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초점은 문학과 뇌과학(신경과학)의 만남이고 접점이다. 어디서 만나는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의미 있는 삶의 탐색이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책은 흉내, 몰입, 기억, 변화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함께 그러한 조건하에서 ‘의미 있는 생존’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뇌과학과 문학, 어느 한 쪽만을 편독해 온 독자라면 보다 균형 잡힌 교양을 위해 길잡이로 삼을 만하다.

이 책을 읽다가 뇌과학서를 몇권 더 구입했는데, 노먼 도이지의 <기적을 부르는 뇌>(지호, 2008)과 닐 레비의 <신경윤리학이란 무엇인가>(바다출판사, 2011) 등이 그런 경우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유경숙의 <유럽 축제 사전>(멘토르, 2011). ‘28개 국 101개의 유러피언 페스티벌 속으로 안내하는 책’, ‘열정과 전통, 파격이 살아 숨쉬는 유럽 축제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란 문구가 책의 내용을 말해준다. 유럽 축제 가이드북. 한때 유럽축제문화에 대한 책들이 여럿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시 찾으니 <유럽의 축제문화>(연세대출판부, 2003)과 박종호의 <유럽음악축제 순례기>(한길아트, 2005) 정도를 건지겠다. 하긴 수확의 계절은 축제의 계절이기도 했으니, 기분을 좀 내보는 것도 좋겠다. 정말로 유럽에까지 가야 하는 건가?..  

10. 중국의 지식인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중국의 지식인'이다. 최근에 나온 몇권의 책 때문인데, 올해 관심을 갖고 주섬주섬 책을 모아오던 아이템이어서 넙죽 구입했다.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에서 펴낸 책 세 권이다.  

 

거기에 왕후의 책 세 권도 더 보탤 수 있겠다. 순서대로 하면,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창비, 2003), <죽은 불 다시 살아나>(삼인, 2005), 그리고 <아시아는 세계다>(글항아리, 2011)이다.   

개인적으론 러시아 지성사에 대해서도 이만한 규모의 책들이 출간되면 좋겠는데, 그나마 최근에 나온 <러시아 문화사 강의>(그린비, 2011)가 기본서의 공백을 채워주는 책이고, 이사야 벌린의 <러시아 사상가>(생각의나무, 2008)과 올랜도 파이지스의 <나타샤 댄스>(이카루스미디어, 2005) 이후에 아직 특별한 '업뎃'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싶다. 20세기 지성사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백지 상태여서 아쉽다. 

11. 10.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플라톤의 <국가>를 골라놓는다. 부분적으로야 읽곤 하지만, 완독한 적은 없는데, 이번에 나온 에릭 해블록의 <플라톤 서설>(글항아리, 2011)이 자극이 됐다.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싶다. 그래서 <국가>와 관련된 책을 또 모으고 있는데, 네틀쉽의 <플라톤의 국가론 강의>(교육과학사, 2010)도 그중 하나다. 1925년에 나온 책이니 정말 오래 전 책이고, 책의 토대가 된 강의는 한술 더 떠서 1887년과 1888년 초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책은 국내 교육학 전공자들이 옮겼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확산되고 깊어진 건 역설적으로 현 정부의 '치적'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달에 있을 정치철학 강의도 준비할 겸 두 종의 <국가란 무엇인가>도 이달의 읽을 책 목록에 들어 있다.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을 그린 최병성의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오월의봄, 2011)는 또다른 방식으로 국가란 무엇인지 묻는 책이 될 듯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10-01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1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