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징하와 호모 루덴스

한겨레에서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지면사정으로 두달인가 쉬다가 다시 시작하는데, 너무 오랜만인지 '로자의 번역서 읽기'라고 나갔다. 첫문장에도 오타가 있어서 교정해놓는다(아침에 부랴부랴 써서 보냈으니 오타가 없을 리 없다).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대상으로 삼았다. 현재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있는데, 한겨레 지면에는 까치판이 소개됐다. 두 번역본을 다 확인하며 썼지만 주로 인용한 건 나중에 나온 연암서가판이다.  

  

한겨레(11. 10. 01) 놀이와 ‘유치한 놀이’의 차이점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로만 규정될 수 없으며 ‘놀이하는 동물’이기도 하다고 주장한 이는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다. 알다시피 <호모 루덴스>란 저작이 낳은 명명이다. 저자는 놀이가 문화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며 인간 사회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에는 처음부터 놀이의 요소가 가미돼 있었다고 말한다. 종교와 정치는 물론 심지어 전쟁에서도 놀이적 요소를 식별해낸다. 그렇게 하위징아는 우리 자신을 놀이하는 인간으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제안한다.

그러한 제안과 더불어 <호모 루덴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현대 문명에 대한 유감이다. ‘현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놀이 요소’라는 마지막 장은 놀이를 배척한 19세기 이후 오늘날의 문명이 예전 시대가 갖고 있던 놀이의 특성을 많이 상실했다는 진단과 염려로 채워져 있다. 판단의 척도는 진지함이다. 진지한 척과는 구별되는 진지함이야말로 놀이에서의 유희정신과는 대립되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예로 들자면 19세기 후반부터 스포츠는 점점 더 진지한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전문화되고 제도화되면서 순수한 놀이적 특징을 점점 잃게 됐다. 아마추어와는 달리 프로, 곧 전문선수의 정신은 더이상 순수한 놀이 정신이 될 수 없다는 게 하위징아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를 현대 문명의 가장 뚜렷한 놀이라고 보는 일반적 시각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더이상 어른이 동심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런 게임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체스와 카드놀이가 점점 진지해지는 경향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놀이와 도박의 차이는 진지함의 유무에 있다.

사회생활, 특히 정치와 관련해서도 하위징아의 염려는 이어진다. 가장 큰 문제점은 놀이가 아닌 것이 놀이처럼 보이는 경향이다. 놀이인 척하는 거짓된 놀이를 그는 ‘유치한 놀이’(Puerilism)라고 부른다. ‘유치주의’라고 해도 좋겠다. 20세기 전반기에 만연한 유치함과 야만성의 결합을 지칭하는 말이다. <호모 루덴스>가 쓰인 1938년은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가 득세하고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전쟁을 정치의 연장이자 진지한 정치의 유일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거꾸로 ‘놀이로서의 전쟁’이란 생각이야말로 유치하게 여겨졌을지 모른다. 국가들 간의 관계는 ‘진지한’ 관계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지한 관계인가. 하위징아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카를 슈미트의 사상을 표적으로 삼는다. 슈미트에게서 적은 내가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 그래서 파괴돼야 마땅한 자이다. 그렇게 되면 적은 경쟁이나 경연에서의 라이벌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오직 절멸 대상으로만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렇듯 정치적 공간에서는 적과 동지만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위징아는 “야만적이고 병리적인 망상”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관점은 인류의 진지한 관심사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일 때만 성립할 것이다. 하위징아가 보기에 슈미트 식의 ‘진지함’은 우리를 야만의 단계로 끌어내릴 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전쟁은 놀이와의 연계를 모두 잃어버렸고 하위징아의 염려는 세계대전의 참화를 막지 못했다.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그의 기대가 헛된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호모 루덴스인가 자문한다면, ‘놀이란 무엇인가’란 질문과 함께 ‘진지함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하위징아 자신이 그렇게 물었다. 우리가 유희적이길 멈추고 진지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야만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 <호모 루덴스>가 던지는 메시지이다. 

11. 10. 01. 

P.S. 기사에서 ‘유치한 놀이’(Puerilism)는 연암서가판의 번역이며 까치판은 '미숙성'이라고 옮겼다. '유치주의'란 번역어는 나의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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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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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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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1 0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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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왕후이의 신작이 출간됐다. <아시아는 세계다>(글항아리, 2011). 왕후이의 책들을 이번에 나온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길, 2011) 등과 같이 묶어서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 기사는 <아시아는 세계다>에 관한 것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정치사상가 중 한 사람인 왕후이가 지난 15년간 쓴 논문을 엮었다. 패권국가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의 지식인으로서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티베트 문제를 보자. 티베트 정신과 철학에 주목하며 티베트 독립의 당위성에 힘을 싣는 서구 언론의 시각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민족국가를 주권 단위로 인정하는 시스템은 서양식 ‘제국주의적 승인 정치’를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류큐(오키나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중국에 조공한 조공국이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규정돼 온 아시아의 근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애쓰지만 독자는 서양 제국주의 논리를 들어낸 자리에 중화주의의 새로운 얼굴이 들어섰음을 깨닫고 놀란다.(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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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원고가 몰린 날이어서 아침에 부랴부랴 작성했는데, 엊그제 배송받은 제임스 팔레의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산처럼, 2008)의 한 대목을 거리로 삼았다. 책은 사실 두어 달 전부터 장바구니에 넣어 두고 오래 벼르다가(두 권이라 고가이기도 하고) 구입한 것이기도 하다. 에드워드 와그너의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일조각, 2007)이 다음 차례로 벼르고 있는 책이다... 

 

경향신문(11. 09. 30) [문화와 세상]조선 과거제와 사회개혁 

서평을 자주 쓰고 있기에 서평가란 직함으로도 불리지만 일이 아닌 증상으로 분류하자면 나는 책중독자에 속한다. 대개 이들은 “돈이 생기는 대로 우선 책을 사고 그 다음에 옷을 사 입으리라”고 한 에라스무스의 충고를 따르는 자들이다. 주체하지 못할 만큼 책을 사들여서 집안 곳곳에 쌓아두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보다가 다시 꽂아두길 반복하는 게 그들의 주요 일과다. 예전에는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긁어모으는 귀족형 책중독자도 있었지만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평민 책중독자’는 대개 특정 관심분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몇 가지 주제의 책에 유독 탐을 낸다.

너무 읽을 게 많다는 이유로 젊은 시절에 일부러 제쳐놓았던 분야가 동양고전과 한국사 쪽이었는데, 인생 반고비를 넘기다 보니 더는 미루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오래 벼르다가 최근에 큰 마음을 먹고 구입한 것이 제임스 팔레의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이다. 원서가 1280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으로 국외 학자의 한국사 연구를 대표하는 업적 가운데 하나다.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유학자로 전라도 부안에 은거하며 <반계수록>을 저술한 유형원을 이 서양학자는 20년 넘게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유형원과 조선 후기’란 부제의 이 책이다. <반계수록>은 1670년에 완성되지만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저자 사후 영조 때인 1770년에야 간행된다.  



하지만 제임스 팔레는 <반계수록>을 독창적인 경세론과 제도개혁론을 펼친 대표작으로 간주하며 높이 평가한다. 그의 이러한 안목과 필생에 걸친 연구가 없었다면 유형원에 대한 지금의 평가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팔레의 저작 때문에 <반계수록>도 읽어보겠다는 욕심을 갖게 된 책중독자에게는 말이다.

벼르던 책을 손에 넣게 되면 잠시 어루만지다가 필요할 때 읽기 위해 고이 책장에 꽂아두는 게 보통 책중독자들이 하는 일이지만 간혹 일부를 읽어보기도 한다. 한국사회의 신분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펼쳐본 대목에서 저자는 조선의 과거제를 이렇게 정리한다. “요컨대 국가는 거의 모든 범주의 양인이 과거를 치르고 관직에 등용될 수 있게 함으로써 조선 건국 이전이나 16세기 이후보다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좀더 확대시켰지만, 양반은 조상의 신분에 상관없이 양인들이 새로이 올라갈 수 있는 집단이 절대 아니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사회개혁의 방향은 양반이 가진 세습적 특권을 약화시키고 좀더 개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양반가문에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지위와 부, 그리고 권력과 권위를 보장받았고, 엘리트 코스의 훌륭한 교육을 받아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면 그 특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팔레의 스승인 에드워드 와그너의 연구에 따르면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750개 가문 중에서 36개 가문이 전체 합격자의 53퍼센트를 배출했다. 과거제는 양반이 아닌 양인에게도 출세의 기회를 부여한 제도였지만 실제 결과는 그렇듯 일부 가문에 편중되었다. 이유가 없지 않다. 양인도 얼마든지 과거에 응시할 수는 있었지만 양반가문과 같은 경제력이 없었기에 책을 구입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들이 공부했던 지방의 서당이나 향교는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사설 교육기관이나 가정교사에게 배우는 양반 자제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었다. 능력 본위의 인재 선발제도였지만 결과적으로 과거제는 양반가문의 존속에 오히려 기여했다. 결국 조선의 사회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것이 조선의 패망과 무관하지 않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11.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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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9-29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펠레의 (James B. Palais) Confucian Statecraft and Korean Institutions: Yu Hyongwon and the Late Choson Dynasty 의 번역이 나왔군요. 엄청난 가격과 두께에 놀라 구경만 했던 책인데... 미국에서는 아마 1000권도 안 팔렸을 듯 합니다. 도서관에만 깔릴만한 책이죠. 어쨌건 이런 책을 번역해내는 한국의 저력에 놀랍니다. 출판사가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로쟈 2011-09-29 23:13   좋아요 0 | URL
나온 건 몇년 됐습니다. 제가 오래 벼르다 구입한 거구요. 읽을 여유를 내보려고 합니다...

미국사람 2011-10-0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어쨌건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책값이 너무 비싸네요. 상하권하면 10만원이 넘으니... 쩝. 하긴 아무나 읽을 책은 아니니 싸게 팔 수는 없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서 <애도와 우울증>(그린비, 2011) 저자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http://greenbee.co.kr/blog/1536). 추석 연휴 전주에 동영상 인터뷰를 가졌는데, 내용이 정리돼 올라왔다. 책소개를 겸하고 있으므로 러시아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1. 러시아 문학을 읽고 즐기는 입장에서 본다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레르몬토프에게 '고독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붙였는데, 그는 뭔가 좀 순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레르몬토프에게는 어떤 본질적인 고독, 외로움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사회적인 배경도 이유가 있겠지만 레르몬토프의 불행한 가족사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겠지요. 제가 강의시간에 간혹 우스갯소리로 레르몬토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레르몬토프는 1814년에 태어나서 1841년에 죽는데, 러시아에서는 작가들의 100주년, 200주년에는 성대한 기념을 합니다. 그런데 레르몬토프 탄생 100주년인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지요. 서거 100주년인 1941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요. 저는 그래서 레르몬토프의 탄생 200주년인 2014년은 조금 주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러시아에 또 무슨 변고가 있지 않을까.(웃음) 레르몬토프는 유언도 「나 홀로 길을 나선다」이런 제목의 시였죠. 이렇게 생전에 고독한 작가였고, 사후에도 고독한 작가에요.
 
푸슈킨은 굉장히 간명하고 간결합니다. 그래서 푸슈킨에게는 '간결성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푸슈킨은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복잡해요. 뭔가 많은 것을 말하고 숨겨놓은 작가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에게는 굉장히 매력이 있습니다. 연구거리가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구서나 연구논문이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그런데 국내 독자들이 번역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에 비해 조금 심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푸슈킨은 주 장르가 시, 운문, 서정시 이런 종류였고, 드라마도 조금 있지만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국내독자들에게는 푸슈킨의 문학이 원래 가지고 있는 크기만큼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2.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에 관심을 갖고 연구대상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국내에는 덜 알려진 편이지만, 푸슈킨은 러시아문학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지명도가 떨어지는 편이 아닙니다. 레르몬토프 역시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을 다루는 것은 특이한 편은 아니지요. 다만,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조금 드문 편입니다. 서구에서는 두 사람에 대한 비교 연구가 조금 있지만, 국내에서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석사논문으로 두 시인이 쓴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 오네긴과 『우리 시대의 영웅』의 주인공 페초린을 비교하는 논문을 썼어요. 그래서 박사논문은 자연스럽게 그 연장선이 되었던 것도 있습니다. 했던 주제를 다시 하는 것이 편하기도 했고, 책 머리에도 썼지만 이 논문을 쓸 때 개인적인 특수한 사정도 있었죠.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3. 책 제목이기도 한 '애도와 우울증'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애도'와 '우울증'이 어떻게 다르고, 문학작품에서 어떤 차이를 불러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프로이트 전집 번역본에는 '슬픔과 우울증'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슬픔'이 너무 광범위하고 막연하기 때문에, '애도'라고 한정해서 이야기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애도'는 죽은 자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좀더 일반화시켜서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의 정서적 반응을 애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상실에 대한 두가지 태도가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애도적인 반응과 우울증적인 반응이에요. 애도적인 반응은 어떤 대상이 상실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이 '슬픔'인거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눈물이 마르듯 슬픔도 영원하지는 않지요. 슬픔이 추슬러지는 과정을 '애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울증은 그런 현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태도에요. 그리고 상실의 원인을 자기 자신한테 귀속시키지요. 이런 과정이 우울증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우울증에는 개인차가 있는지 아니면 케이스 각각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프로이트는 이러한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얘기했지요.

낭만주의 시인들에게는 보통 어떤 이상, 현실 너머 세계에 대한 동경이 기본 정조입니다. 그래서 현실에 부재하는 '이상화되지 않은 현실'에 대한 정념이 중요하게 다뤄지지요. 때문에 낭만주의 시인들에게는 이러한 '상실'에 대처하는 두 가지 태도가 지배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에게는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논문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대략 구도가 맞춰질 것 같다는 감은 조금 있었어요. 실제로 논문을 쓰는 과정은 작품 속에서 제 생각을 확인해가는 과정이었는데 의외로 잘 맞아떨어졌지요. 원래는 두 시인의 작품 전반에까지 애도적 반응과 우울증적 반응을 적용하려고 했는데 기한과 분량의 제약 때문에 나중을 기약하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두 시인의 작품 일반까지 확장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4.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를 각각 애도적 유형과 우울증적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들을 러시아 근대문학의 정념론적 기원으로 평가하셨는데, 두 시인이 어떻게 다른 '두 기원'이 될 수 있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러시아에서는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를 모두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지만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으로 평가를 해요. (소비에트 문학비평의 영향으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리얼리즘)에는 우열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실주의 이전 단계로서의 미숙한 단계를 낭만주의로 보는 것이죠. 낭만주의자가 성숙하면 다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죠. 두 작가의 작품에 그런 면이 없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리얼리스트가 되는 방향으로 이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레르몬토프가 대표하는 낭만주의 사조의 독자성을 조금 더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푸슈킨은 문학정신적으로는 낭만주의를 넘어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푸슈킨은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고, 당시에는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러시아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진정한 낭만주의'라는 말을 써요. 반면 레르몬토프는 자신의 낭만주의를 '진정한 낭만주의'라고 생각하죠. 레르몬토프가 푸슈킨의 낭만주의를 '성숙'이라고 포장되지만 '변절'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푸슈킨 식의 낭만주의와 레르몬토프 식의 낭만주의는 서로 다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레르몬토프의 주제인 '영원한 사랑'을 예로 들면, 푸슈킨은 영원한 사랑은 믿지 않아요. 푸슈킨은 사랑이 변하고 성숙해가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레르몬토프와 푸슈킨은 같은 낭만주의 시인으로 묶이지만, 각기 다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이 낭만주의에 대한 이해나 두 시인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도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5. 러시아 문학 작품을 정신분석학으로 읽어 내는 시도가 많은지 궁금합니다.

낭만주의 3대 작가 중에 니콜라이 고골이 있는데, 고골은 일찍부터 정신분석적 접근대상이었어요.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작가를 카우치(안락의자)에 좀 눕혀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그러한 정신분석학적 접근법 자체를 좀 싫어하는 편이에요. 정신분석학적 작가 심리학 등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접근법으로는 연구를 잘 하지 않고, 권장하지도 않아요.

대신 영어권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연구가 조금 있어요. 푸슈킨의 창작심리에 대한 연구가 약간 있고, (참고문헌에도 소개했지만) 몇 명의 연구자들은 정신분석학적 접근으로 러시아문학을 연구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러시아에 있을 때, 정신분석학적으로 러시아 문학을 연구한 라페리에르(Rancour-Laferriere)라는 사람의 작품이 번역되어 출판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 신문에서 그 책에 대한 조롱기 어린 서평이 실린 것을 봤지요. "우리의 푸슈킨, 우리의 톨스토이가 정신병자란 말이야?" 이런 식의 반응이랄까요, 러시아에서는 이런 반응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6.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텍스트의 무의식'은 무엇인가요?

책에서 '텍스트적 무의식'이나 '텍스트의 무의식'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국내에서 통용되는 표현 같지는 않아요. 저도 이론적인 뒷받침을 갖고 썼던 개념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작가적 무의식'이라는 말은 쓰지요. 그런데 저는 작가의 텍스트에서 작가가 의도하고 전달하려고 했던 것 이면에서 말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무의식이 텍스트로 전이되었다고 할까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메시지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나 코드가 있다는 것이죠. 이 숨겨진 코드(메시지)는 의도적으로 작가가 숨긴 것이라기보다는 작가조차도 속이는 것을 뜻합니다.

꿈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자신의 꿈이라고 자신이 다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꿈을 해석해 줄 수 있는 타자가 필요한 것처럼, 저는 작품에서도 그러한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연구자가 밝힐 수 있다고 봅니다. 작가의 텍스트에 대해 작가가 어떤 억압된 무의식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는 것, 이러한 역할은 텍스트 읽기와는 조금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텍스트의 무의식 읽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7. 무의식으로 작품을 읽어 내는 작업을 또 하게 된다면, 시도해보고 싶은 작가가 있으신지요? 앞으로 선생님의 활동에 어떤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다 관심이 있어요. (웃음) 작가론이나 작품론, 특히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비교론도 써보고 싶어요. 조지 스타이너(Geroge Steiner) 이후에는 그러한 시도가 별로 없는데,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요즘은 『러시아 문학 강의』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는 독자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는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러시아 문학의 유산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계문학의 유산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러시아 문학을 같이 공유하고 음미하는 그런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드라마 까페나 드라마 폐인까페 같은 것도 있잖아요. 그러한 까페들처럼 러시아 문학 공동체, 러시아 문학 애호가 공동체 같은 것도 가능할 텐데, 저는 그 공동체에 일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11.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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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7 07: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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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7 0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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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2011-09-27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와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같은 책들이 더 빨리 많이 나와주지 않은 것이 아쉬운 독자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로쟈님께서 러시아 명작 좋은 번역을 추천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공개적으로 하시면 곤란해지실까요? 그래도... 저와 같은 생각의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 댓글을 남깁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 작품 만이라도 골라주시면 (이미 해놓으셨는데 저만 못찾는 것이라면 이 무지를 용서하시고 깨우쳐주시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로쟈 2011-09-28 08:09   좋아요 0 | URL
음, 그게 전문가가 다수 참여하거나 상당 규모의 사업단이 꾸려져 벌인 일입니다.^^; 그런데 러시아문학의 경우엔 사실 선택지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유일 번역본이 다수라서요...

2011-09-27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남자파 2011-09-2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립중앙도서관의 로쟈님 박논은 꽤 여러명이 읽었는지 꽤 꼬질하더란 소식 알려드립니다. 책도 꼭 사서 다담달에 싸인 받고 싶네요. ^^'
러시아문학강의 얼른 탈고하시길,,,많은 기대됩니다. 공동체도요^^

로쟈 2011-09-29 22:12   좋아요 0 | URL
의외인데요.^^; 러시아문학강의는 겨울이 오기 전에 내려고 합니다...
 

본방사수는 못하더라도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나는 가수다'와 '나는 꼼수다'이다. 딴지라디오의 '나는 꼼수다'는 물론 '나가수'가 없었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테니 일종의 파생물이다. 더불어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역시나 가능하지 않았을 테니 이쪽으로도 파생물이다. 그래서 결국 2011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됐지만, 어쩌면 역사는 2011년을 '나는 꼼수다'와 함께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거기에 비하면 조중동이 그렇게 공을 들이는 '종편'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망할 것이다!). 물론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는 가정하에서이지만(그렇게 된다면 2할은 나꼼수 덕일지도 모른다. 8할은 물론 '가카' 덕분이고). '나는 가수다' 본방 시간이 다가오는 김에, '나는 꼼수다'에 헌정하는 페이퍼도 올려놓는다. 이미 충분히 화제가 되고 있기에 뒷북성이긴 하지만, 주로 특기가 뒷북인 분들은 참고하시길. '나꼼수' 4인방 중에서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김용민 PD의 인터뷰기사다.  

   

PD저널(11. 09. 08) “언론장악 비극의 틈새에서 ‘나는 꼼수다’ 탄생”

김용민 시사평론가(사진)는 친동생인 김용범 Mnet <슈퍼스타K> PD만큼 바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 된 인터넷 라디오방송 <나는 꼼수다>의 연출을 맡고 있어서다. <나는 꼼수다>는 김용민 평론가가 10년 전 <극동방송> PD 생활 당시 조용기 목사에게 쓴 소리를 하다 사표를 낸 뒤부터 줄곧 꿈꿔왔던 대안미디어다. 김용민 평론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주요 사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각하의 언론장악 꼼수”덕에 <나는 꼼수다>가 성공했다고 말했다. 김용민 평론가를 지난 1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PD 김용민은 목요일이 특히 분주하다. 오전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서울시 성산동 마포FM에서 <나는 꼼수다> 1회분을 녹음해서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의원, 주진우 <시사IN>기자가 워낙 입담이 좋아 듣는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녹화가 끝나면 마포 생선구이 집에서 30분 간 급하게 식사를 한다. 식사비는 이 중 수입이 제일 좋은 김용민씨가 낸다. 저서 <조국 현상을 말한다>는 <나는 꼼수다>의 인기 덕에 2쇄까지 다 팔렸다. 하니TV 녹화일정을 마치고부터 평균 다섯 시간 가량의 편집 작업을 시작한다.

이날은 “꼼수다 언제 올라오냐”는 ‘압박’에 못 이겨 전화기를 꺼버리는 때도 있다. 목소리의 강약을 수동으로 조절하고 ‘망한’ 멘트는 삭제하고 대화 이슈와 관련된 보도내용을 찾아 인용(인서트)하며 자체제작 음악으로 편집을 마친다. 내용상 편집은 거의 없다. PD 김용민은 “너무나 편집을 정교하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편집한 걸 모를 정도”라며 좋아했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허투루 만들 수 없다는 ‘위기감’이 높아졌다. 그래서 문성근씨 출연 편은 재미없다는 이유로 내보내지 않고 한 회를 새로 찍었다. 하양세라는 얘기가 두려워서다. 

<나는 꼼수다>는 사용자 1000만 명을 넘어선 스마트폰의 등장과 팟캐스트 서비스로 인터넷 라디오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며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명박허전>, <나는 각하다> 등의 제목이 거론됐지만 김어준이 낸 <나는 꼼수다>가 최종 선정됐다. 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정봉주 전 의원이 패널로 가세하고 ‘나는 꼼수다 맞춤형 기자’ 주진우 기자가 김어준의 추천으로 영입됐다. 김어준은 ‘깔대기’(정봉주)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정봉주) ‘누나전문기자’(주진우) 등 캐릭터를 ‘하사’하며 스토리를 강화했다. 영어강사 출신 정 전 의원의 말하기 스킬과 주 기자의 ‘디테일’이 더해지자 ‘대박’이 났다. 여기에는 김용민 평론가의 연출능력도 한 몫 했다. 

<나는 꼼수다>는 지난 7일 방송까지 18회를 이어오며 기존 시사프로그램 포맷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 권위주의의 상징인 ‘각하’와 조롱이 담긴 ‘꼼수’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 정치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장치로, “적극적으로 당파성을 띠며 정치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를 소망해 온 제작진의 결과물이다.

“정치가 거대담론 같지만 결국은 인간의 욕망체계에서 벌어진다. 각하가 여자·돈·개고기를 좋아하고 권력자가 미사여구를 내뱉는 것도 결국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망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시사를 알게 되고 각하와 민주주의를 알게 된다.” 그는 “상당 내용은 주진우가 이미 쓴 기사”라며 “구술을 통해 텍스트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녹음스튜디오가 없는 마포FM의 구조상 녹화는 두 시간 이상 할 수 없다. 다른 스튜디오로 이동하며 녹음을 해봤지만 맥이 끊겨서 관뒀다. 김용민 평론가는 “공짜로 스튜디오를 빌려주겠다는 분이 계시지만 김어준 총수는 비좁은 마포에서 우리 넷이 지껄이는 게 좋다고 한다”며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처럼 우리의 흐름을 계속 유지하는 게 개편이고 개혁”이라고 말했다. 김용민 평론가는 <나는 꼼수다>가 “총선·대선 국면에서 편파적일 것”이라 예고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이 정당을 공개지지 하는 것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권자들이 똑똑하면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해도 객관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 시민들은 모든 미디어가 지난 총선에서 천안함 국면으로 몰았어도 야당에게 다수표를 몰아줬다. 관제언론시대에도 4·19 혁명과 87년 6월 항쟁을 만들었다. 국민은 이미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똑똑한 국민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나는 꼼수다>의 인기를 설명할 수도 없다.”

그는 <나는 꼼수다>의 성공을 “‘언론장악’이란 비극의 틈새를 노린 마케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KBS나 MBC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 권력이 오너로서 공영방송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언론자유 인식이 있는 정부의 등장만을 바라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입 바른’ 말을 하며 인기가 높아진 결과 ‘압박’도 있다. 휴대폰이 도청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딴지일보>는 뜬금없이 해킹사건을 겪었고, 정봉주 전 의원은 갑자기 대법원 판결일이 앞당겨지기도 했다. 또 다른 ‘압박’도 있다. ‘권력화’에 대한 우려다. 김용민 평론가는 “우리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다. 웃고 자빠지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 총수는 대중의 반응에 민감해하지 않는다. 내게도 늦게 올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며 “대중에 얽매이지 않고 초심으로 방송을 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나는 꼼수다>는 여러 압박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꼼수’ 본연의 마케팅에 나설 예정이다. 추석선물로 <나는 꼼수다> 인기 에피소드 10편을 추려 올릴 예정이고, 10월에는 탁현민 교수와 함께 <토크콘서트>를 기획 중이다. 김용민 평론가는 “청와대 앞마당이나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당에서 하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다”며 웃었다.

<나는 꼼수다>는 차기 정권이 들어설 2013년 2월을 방송 종료일로 잡고 있다. 하지만 급작스레 출연진이 구속되면 이 과정을 생중계하며 마무리할 생각이다. 이와 함께 10·26 서울시장 선거도 생중계를 계획 중이다. 김용민 평론가는 <나는 꼼수다>의 성공에 힘입어 선대인 연구원·우석훈 박사와 함께하는 <나는 꼼수-경제 편>도 기획 중이다. 그는 올 해 박사논문도 쓸 계획이다. 주제는 ‘한국보수정치세력의 개신교적 기원’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언젠가 꼭 ‘천안함 사건’을 다루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은 각하의 꼼수 중에서도 정수”라고 말했다. ‘전지적 각하시점’으로 매 회 통렬한 분석과 사회비판을 이어가는 국내 최초 ‘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이 언론장악의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는 순간을 기대해본다.(정철운 기자) 

11. 09. 25.  

P.S '나꼼수' 열풍은 출판으로도 이어져 알라딘에서도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가 출간전부터 이미 블로거 베스트에 올라와 있다. 김용민 PD의 <조국 현상을 말한다>(미래를소유한사람들, 2011)도 나꼼수 광고에 따르면 3쇄에 들어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나꼼수'는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주진우 기자가 대표필자?). 개인적으론 방송대TV의 '책을 삼킨 TV' 녹화 때문에 김어준 총수와는 격주로 얼굴을 보는 사이여서 <닥치고 정치>의 표지가 너무 '친숙하다'. 책을 많이 안 읽는 듯한 포즈를 취하지만 '사바나의 본능'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진화심리학의 애독자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그에게 더 배운 건 없지만, 그가 명명한 '전지적 각하시점' 만큼은 그의 혜안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것만은 한 수 배웠다. 나꼼수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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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1-09-25 20:01   좋아요 0 | URL
제가 아이폰을 구입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나꼼수를 팟캐스트에서 다운받을때입니다. 미디어의 진보는 학자들의 통박을 벗어나죠. 작년 2학기 강단에서 일종의 해적방송류는 시한을 다했다고 떠들었었는데...요즘 바보소리을 듣습니다. 이명박이 가카로 불리워지는 순간 저는 그 순간의 어떤 지점에서 짜릿합니다.

로쟈 2011-09-25 20:1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냥 인터넷 링크를 통해서 듣는데, 10회쯤 넘어가면서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책으론 할 수 없는 일이죠...

달사르 2011-09-25 23:16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처음으로 나꼼수 들었는데요. 어찌나 유쾌하게 웃었는지요. 연출을 맡은 김용민 씨에게 '늦게 올려도 미안해하지마라'라고 말을 한 김 총재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같이 신나게 웃어제끼는 거죠.

로쟈 2011-09-27 08:24   좋아요 0 | URL
나꼼수가 딴지일보를 삼킬지도 모르겠어요.^^

2011-09-26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런마음황구 2011-09-26 08:19   좋아요 0 | URL
장미의 이름이 많이 생각나더군요.두려움을 넘어서는 웃음의 힘.

로쟈 2011-09-27 08:25   좋아요 0 | URL
'변화'는 그런 데 있는 듯해요...

영남자파 2011-09-26 21:42   좋아요 0 | URL
비비케이때 의원들 디디밟고 달리며 정봉주가 2단 옆차기하는 거 보고 감명 받아서 심마넌 후원했던 기억이...^^
김어준은 씨바, 졸라등의 엄마한테 맴매맞을 뒷골목 언어로 성공한 2인 중 하나죠. 김구라와 더불어.

로쟈 2011-09-27 08:26   좋아요 0 | URL
욕에 대한 자부심은 확실히 갖고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