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스바움을 기다리며
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마사 누스바움의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궁리, 2011)이다. 저자가 2008년 방한한 적이 있고, 그때 한 차례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미국 인문학계를 대표할 만한 여성 학자인데(고전학을 전공했지만 현재는 시카고대학의 석좌교수로 철학과 법학, 윤리학까지 강의하고 있다) 국내에는 그간에 단독 저작이 소개되지 않았다(공저만 두 권 나와 있는 듯싶다). 사실은 더 무게 있는 책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인문학과 시민교육'이란 주제도 괜찮아 보인다. 우리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서이다. 다른 저작들도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11. 08. 06) 교육, 이익이 아닌 시민을 만들라
책의 원제는 ‘Not For Profit’이다. 그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 누스바움(64)이 강조하는 핵심은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세계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주목하는 교육의 목적이다. 그는 오늘날의 교육이 “다른 문화권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감소시키며, 전 지구적인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능력을 오히려 손상시킨다”고 진단하면서 “교육을 국민총생산의 도구로 환원하려는 노력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교육의 목적을 ‘이익’이 아닌 ‘민주주의’로 환원하자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에는 ‘위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저자가 보기에 “교육의 목적이 마치 경제성장인 양 행동하고 있는 사태”는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다. 저자는 주로 미국과 인도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이로 인해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시민정신의 기초가 흔들리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책의 곳곳에 깔려 있다.
저자가 열정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인문학의 부활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발상지였던 유럽에서조차 상황은 비관적이다. “유럽의 인문학 학과들은 미국의 인문학 학과들이 그러하듯이… 이윤창출에의 기여도가 보다 뚜렷한 다른 학과들에 합병되기 십상이다. 합병되고 만 학과는 이윤창출에 가깝거나 그렇게 보이도록 자체 요소들을 강화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를테면 철학과가 정치과학과에 합병되는 경우, 플라톤 연구나 비판적 사색의 기술,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 따위가 아니라 기업윤리 같은 것들을 강요받는다. 오늘날의 유행어는 바로 ‘효과’이며, 그것이 명확하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보다 경제적 효과다.”
그것은 “유능한 기술·비즈니스 엘리트들을 양산해 GNP를 상승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불평등을 무시하는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 적합한 도덕적 둔감성”을 키운다. 아울러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적 적대 프로젝트”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예컨대 “기괴하고 거대한 ‘문명의 충돌’에 자신이 참여하는 사태를 기분좋게 여기게” 하며, “세계의 ‘다른 곳’에서 온 ‘나쁜 놈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게 한다.
저자는 잘못된 교육이 결국 “악독한 사유”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인문학과 예술교육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명령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세계에서 불현듯 사라지고 말” 운명에 처한 인문학과 예술이야말로 “존경과 공감을 받을 만한 자신의 생각을 지닌 채, 타인을 전인적 인격체로 인식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이성적이며 공감에 바탕한 논쟁을 위해 공포와 의심을 극복할 능력이 있는 나라들을 창조”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오늘날의 교육에서 중요한 교수법으로 거론하는 것은 ‘과거의 지혜들’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보여주는 열정적 상호작용,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이 강조하는 주체적으로 삶을 해결하는 의지와 타인과의 동등한 삶의 가치, 페스탈로치가 실천했던 공감과 사랑의 교육, 독일 교육가 프뢰벨이 시도한 놀이를 통한 교육, 미국의 현대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가 제창한 경험으로서의 교육 등에 주목한다. 인도의 타고르가 다양한 종교와 민족을 수용하는 교육을 실천하려고 참여형 학교를 설립했던 사실도 떠올린다. 이 모두가 오늘날 유용하다는 것이다. 법철학, 정치철학, 고전학, 연극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인문주의자인 저자는 현재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다.(문학수 선임기자)
11. 08. 07.
P.S. 누스바움에 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마사 너스봄'이란 저자명으로 나온 편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삼인, 2003)이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론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마티, 2008)도 꼽을 수 있겠다. 원제는 '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 그리고 교육 문제를 다룬 책들에 대한 가이드로는 '앎과 삶' 시리즈로 나온 <교육>(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를 참고할 수 있다...